1. The difference of the solar heat and photovoltaic power generation.태양열발전과 태양광발전의 공통점은 둘 다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발전 방식이고 다양한 적용 가능성과 무공해, 무한 청정 에너지원이다. 그리고 기존의 화석에너지와 비교했을 때 전세계적으로 고르게 분포하고 이용할 수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이자 단점은 흐린 날이나 밤에는 전력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태양열 발전(太陽熱發電)은 태양열을 거울을 통해 한 점으로 집중시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서 발생하는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방식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방식이다. 흔히 태양광 발전과 혼동한다. 태양광선에 의한 열에너지를 열기관을 사용해 기계에너지로 바꾸어 터빈 발전기를 회전시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방식이다. <중 략>3) How do these results compare with your manually generated observations? What differences are there if any?- 본 실험에서 거리를 잴 때 바닥에 붙은 테이프를 이용하였다. 테이프는 거리가 비교적 정확하지만 그 위에 태양전지판을 올려놓을 때 정확하게 올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태양전지판에 랜턴이 비추는 각도도 항상 일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듯 하다. 따라서 표에 나와 있는 거리대로 정확하게 실험할 수가 없다. 하지만 계산은 표에 작성한 수로 했기 때문에 실제값과 계산값에 차이가 생긴다. 주위 환경의 영향을 살펴보면, 실험실 내부를 밝히기 위해 켜놓은 형광등 불빛, 주위의 핸드폰 빛 등 빛이 정말 중요한 실험 변수인 실험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한 정확한 거리에 있더라도, 최대 전류값을 나타나게 하는 랜턴의 각도가 있다. 그 각도를 항상 맞춰줘야 하는데 우리는 최대값이 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어림잡아 측정을 했다. 또 값이 흔들리는데 정확히 멈춰져있지 않은 상태로 측정을 하였다. 여기에 원인이 또 있는 것 같다.
1)실험 제목 : 포물체의 운동2)실험 목적물체가 지표면에 대해 기울어진 방향으로 발사된 경우의 운동을 살펴보고, 이 물체의 운동이 발사각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관찰함으로써 중력에 의한 포물선운동을 이해한다.3)관련 이론수평방향에 대해 θ 만큼 기울어진 각도일 때. v0의 초속도로 발사된 물체의 수평 방향 속도는 v0cosθ, 수직방향의 속도는 v0sinθ-gt이다. 여기서 g는 중력 가속도, t는 발사 후 경과시간.<중 략>A. 초속도 측정① 발사대를 지면과 수평으로 맞추어 놓는다.② 포토게이트 타이머를 pulse 모드로 맞춘다.③ 구슬을 발사한 후 구슬이 두 포토게이트 사이를 지나는 데 걸린 시간 t를 측정한다.④ 위 과정을 5번 반복하여 t의 평균값을 구한 후 두 포토게이트 사이의 거리(포토게이트의 머리 부분 사이의 거리) L을 측정하여 구슬의 발사초기속도를 구한다. B. 수평 이동 거리 측정① 발사대를 지면과 20˚각도로 맞춘다.② 포토게이트를 발사대에 설치하고, 포토타이머 플레이트를 구슬이 떨어질 위치에 놓는다.③ 포토타이머를 pulse모드에 놓고 구슬을 발사 한다.④ 구슬이 발사대로부터 플레이트까지 날아간 거리, 시간 t를 기록하고 이 과정을 3회 반복한다.<중 략>(1) Fig. 2 와 같이 사각질량에 실을 연결하여 회전막대에 끼워넣는다.(2) Fig. 2 와 같이 사각질량이 회전막대 위에서 움직일 때, 사각질량의 질량중심이 회전축에서부터의 최대 거리가 20cm, 최소 거리가 10cm가 되도록 stop 나사를 사각질량 양쪽에 고정시킨다. (3) 사각질량에 연결된 실을 Fig. 2 와 같이 회전축의 중심에 통과시킨다. (4) 사각질량이 stop 나사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지 확인한다.(5) 회전축을 잡고 회전막대를 회전시킨다.
불교의 윤회사상2012100790기계공학과정해윤윤회사상이란 무엇인가? 윤회사상 : 불교 교리 가운데 하나. 중생이 죽은 뒤 그 업(業)에 따라서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을 천명한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총 6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육도윤회라고 한다. 첫 번째는 지옥도이다. 가장 고통이 심한세상 이라고 불리운다. 이 지옥에 태어난 이들은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두 번째는 아귀도이다. 고통은 지옥도 보단 덜 하지만, 심한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다. 세 번째는 축생도이다. 이는 인간이 아닌 생물로 태어난다. 네 번째는 아수라도이다. 노여움이 가득 찬 세상으로서, 남의 잘못을 철저하게 따지고 들추고 규탄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 태어난다. 다섯 번째는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인도이고, 마지막 단계인 여섯 번째는 행복이 두루 갖춰진 하늘 세계의 천도,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같은 개념이다. 곧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의 한 곳에서 내세를 누리며, 다시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그 다음 내세에 태어나는, 이것을 반복하는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 윤회의 세상에서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고,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 곧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을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관이다. 이 윤회는 철저하게 스스로 지은대로 받는다는 자업자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스로 착한 일을 하였으면 착한 결과를 받고, 악한 일을 하였으면 악한 결과를 받는 자기책임적인 것이다.자기가 지은 바를 회피할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받을 수도 없다. 오직 자기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서 다른 세계로의 향상과 향하가 가능할 뿐이므로,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는 윤리도덕적인 측면, 즉 권선징악적인 차원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해탈의 차원에서 이 윤회설이 강조되었다.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이나 극락의 왕생 등을 보다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한 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보다, 현실의 삶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세계나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점검하도록 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마음이 번뇌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축생이라고 보는 등, 이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끊임없이 육도를 윤회한다고 보았다.위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에 있는 윤회사상의 정의와 설명에 대한 글을 정독하고 약간의 요약을 한 것이다. 여기서 의문점은, 불교에서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이나 극락의 왕생 등을 중요시하였다고 했는데, 윤회사상의 정의에서 보면, 윤회의 여섯 세상에는 절대적인 영원이란 없고,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하면 지옥에서 다시 인간도로, 천국에서 아귀도로 몸을 바꾸어서 태어난다고 했다. 곧 육도의 세계에서 유한의 생을 번갈아 유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윤회의 굴레에서 열반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그 삶의 내세에 천도에 간다고 하여도, 천도의 삶의 내세에는 결국 다시 아귀도로 간다는 것이다. 이 것은 모순이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윤회의 굴레의 한 삶에서, 업을 쌓고 그에 따라 천도에 가도 그 천도의 삶의 내세에서는 다시 아귀도로 가고, 윤회의 굴레 속에 빠진다는 것이다.석가모니께서는 깨달으면 윤회가 끝난다고 하셨다. 윤회를 한다는 것은 아직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 되지 않아 다시 태어날 원인이 남아 있다는 뜻이고 윤회가 끝난다는 것, 즉 깨달았다는 것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완전히 소멸되어 다시 태어날 원인도 함께 소멸된 정신적 상태, 의식 수준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열반에 드는 것, 궁극적 깨달음은 죽음에 이르러야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열반이 죽임이 아니라면, 나에 대한 집착, 현세의 삶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저번 레포트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열반이니 해탈이니 진리니 이러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 석가모니고 나발이고 누가 누구에게 뭐가 진리다, 해탈이다, 열반이다. 라고 할 수 없다. 윤회사상을 믿는다면, 그 것을 믿는 자신의 마음과 업이라고 생각되어 지는 것들 모두 상대적인 것이고 자신이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업의 정도를 판단하여 여섯 세계 중 한 세계에 집어 넣는다는 말인가? 그 업의 정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세세한 기준.. 석가모니가 말하던가? 내가 무뇌한 중생이라 그런 건지, 종교에 반감을 가진 학생이라 그런 건지 딱딱하고 부정적으로 말했는데, 분위기를 바꾸어 얘기를 해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종교를 믿지 않지만(과학을 믿는다), 윤회사상에는 굉장히 흥미가 있다. 그냥 재미가 있다. 전생에 뭐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등등 흥미로운 주제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몇 개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먼저, 내가 현세의 삶에 있어서, 삶의 질 좋고 나쁨은 내가 하기 나름에 있다. 내가 노력을 해서, 성공을 했다. 그로인해 부와 명예를 모두 잡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노력을 안했으면, 하류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이것은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이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현세에서의 상류인생과 하류인생은 극과극이고 현세에서 천국과 지옥이다. 행복한 삶 불행한 삶이 공존한다. 이것도 전생의 업에 따른 것인가? 하지만 이는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물론 환경, 장애등 선천적인 핸디캡도 생각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얘기하는 것이다. 마음가짐 자체나 그 마음가짐을 갖는 인간의 능력이 업에 의한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세의 삶은 이미 정해진 윤회의 굴레 속 운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의 사상에서 운명이란 없다. 왜냐? 간단히 말해서 운명이 있으면 업을 쌓을 수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운명에 의해서.
뷸교 진리 의미에 대한 고찰(십우도를 보고)2012100790기계공학과정해윤추석에 과제가 있었다. 큰 과제는 아니고 ‘십우도’라는 그림을 보고 레포트 몇 장 쓰는 것이다. 다들 명절에 바쁘게 움직였지만 과제를 핑계로 ‘십우도’를 보며 사유했다. 십우도란 소를 찾는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 우리의 본성을 찾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불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를 진리의 상징으로 보고 심법전수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한다. 심법을 전수 한다는 것은 전할 전, 줄 수, 마음 심, 법 법. 옛날부터 사제가 전수하여 온 심법을 이른다.최초로 심우도를 그렸던 송나라 때의 곽암 선사는 화엄경이 말하는 미륵불의 출세를 상징화하여 그렸다고 한다. 심우도를 살펴 보면 총 10가지 그림으로 되어있는데, 일도스님의 인터넷 공간인 ‘토굴넷’의 정보를 참고하여 살펴보면,1. 심우(尋牛)첫 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 버린 것이다.2. 견적(見跡)두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견적(見跡)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3. 견우(見牛)세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이다.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 작용에 몰입하면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4. 득우(得牛)네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게 꼬뚜레를 꿰어 끌고 가고 있는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하지만 아직도 오랫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三毒)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 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6. 기우귀가(騎牛歸家)여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7. 망우재(존)인(忘牛在人)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망우재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8. 인우구망(人牛俱忘)여덟번째 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9. 반본환원(返本還源)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포대화상이 누구인가?십우도를 그린 곽암 선사에 의하면 바로 이 포대를 짊어진 화상이 미륵 부처님이다. 결국 십우도는 저자거리로 나서는 미륵부처를 찾아야 산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십우도란 우리의 이성적인 마음이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이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욕망에 휩싸인 검거나 진한 색깔의 소로 표현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마음이 장애(?)임을 알아서 그 마음을 순화하는 수행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그 마음이 청정해지면 자신을 외부로 욕망으로 치닫게 하던 마음이 잡히고.. 고요해지고.. 경안해 진다. 즉 소를 묶어 놓지 않아도 날뛰지 않게 된다. 그 시기가 지나가면 원래 소와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수류화개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과 자신이 하나임을 알고 보살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십우도의 참뜻은 내 마음의 미륵 부처님을 찾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아무 신앙도 없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모든 종교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내가 지식이 거의 없는 이슬람교 힌두교 같은 종교는 논외로 하고 내가 그나마 역사 공부나 어머니를 통하여 아는 종교인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이 있는데, 셋 다 모두 비판적인 입장이다. 불교는 솔직히 유일 신을 믿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서 자아속에서 신을 찾아가고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던지 득도, 미륵이 궁극점인 종교라서 내가 무식한 대학생이라서 그런지 이해가 안가고 접하기도 쉽지 않아 부정적으로 생각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내 생각에 불교는 단지 지식에 목마른 중생들이 그것을 채우기 위해, 또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발전해온 종교라고 생각한다. 불교에 국한된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운영하여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십일조 강요, 자동이체 헌금 등등.. 나의 어머니가 열렬한 기독교 신자신데, 내가 교회를 가주면 하루종일 기분 좋아하셔서 가끔 교회에 따라 가곤 한다. 거기서 목사의 설교를 듣고있으면 굉장히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고 허점도 많다. 신자들을 보고 있으면 참 갑갑하고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람의 믿음이 참 무섭다. 종교가 무섭다. 과거 전쟁사를 보면 전쟁과 갈등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비롯되는데, 그 표면엔 종교가 항상 있었다. 종교는 명목으로 주로 작용하였다. 나는 종교란 사회적 집단의 한 종류이고, 다만 절대적이고 사람들을 세뇌시켜 결속력이 아주 높은 구조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랑 과거에 종교로 인해 갈등이 많이 있어서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공격적으로 변해서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다시 십우도 얘기로 돌아가면, 내가 아직 소를 잃은 것도 모르는 우매한 중생이어서 그런지, 진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와 내 마음의 미륵 부처를 찾아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는 자아의식도 없는 대학생 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십우도’는 하나의 ‘종교선전물’ 같다. 삶에 고단함을 느낀 중생들이 그림을 보며 마음을 다시 잡고 종교활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만큼이나 무아의 경지, 진리를 찾는 것,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어렵다. 아니, 그 것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무 감도 안 온다. 종교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비판의식 때문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분명한 건, 진정한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아가며 사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누구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진리를 찾기 위해 부모를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아내 아쏘다라를 창부로 만들고 자식을 장애자라고 불렀다. 부모 자식 그리고 자신마저 버리라고 했지만 어떤 방법으로 버리는지 왜 석가모니는 버리라고만 하고 그 방법을 모르는지.. 이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면 그것이 불교인들이 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은 석가모니에게 적용될 뿐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석가모니가 추구하는 바에 대한 이질감에서 자신이 우매하다고 생각하고 지쳐가는 것이다. 득도를 하지 못한채.. 사람들은 무릇 살다보면 어떠한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인생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그 윤택함 속에서 계속해서 깨닫는 것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또 이것이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교에서 말하는 ‘득도했다.’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불교 느낌으로 말해보자면, 나는 항상 모든 일과를 마치고 저녁 11시 정도에 5~7Km 조깅을 한다. 불교로 말하면 수행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 생각 없이 조깅을 하다보면 너무 심심하다. 그래서 자꾸 어떠한 생각이 난다. 보통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 어제와 오늘의 반성 및 잘한 점 등을 검토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오늘 내 행동에 대한 반성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지가 생각이 난다. 이제 그대로 그것을 삶에 적용시켜본다. 근데 그게 잘 작동하고 그로써 나는 뭔가 인간적으로 성숙해 진 것 같고 성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수행(조깅)을 들어가면 더 발전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나의 과거의 잘못된 행동과 그것에 대한 앞으로의 대처법 등이 자꾸 생각나고 나는 더 성숙해진다. 이 과정이 무한히 일어나면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가 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입장에서의 수행과 깨달음이다. 불교의 입장, 십우도가 탄생한 시대적 배경 등을 고려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물론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진리에 대해서 강요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해탈한다는 것.. 나는 매일 해탈하고 있다. 내 과거의 부끄러운 점이 문득 떠올라 허허 웃는 것, 잘못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먼저 사과하는 것, 입은 많고 안주는 적어서 내가 별로 못 먹었지만 그로써 살이 빠진 것 그 사실을 알고 앞으로 안주대하는 이다.
공부는 운동이다 ! 역학적 관점으로 본 공부 제 2 회 이그노벨 페스티벌 윤영조 정해윤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하다 보면 쉽게 허기짐을 느낀다 !!칼로리 소모 ( 운동 ) ☞ 배고픔 유발 * 칼로리 소모란 ? 역학적인 관점에서 ‘ 일 ’ 을 했다는 것 ! 일의 공식 일 (J) = 힘 (N) X 거리 (m) (1J=4.2Cal)앞서 정의한 ‘ 일 ’ 의 개념을 공부에 대입해보자 ! 일 = 힘 X 거리 공부 ( 일 ) = 연필 잡는 힘 ( 힘 ) X 필기한 글자의 총 길이 ( 거리 )악력 ( 힘 ) 글자길이 ( 거리 )직접 실험 해보기 ! * Problem 글자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 매우 난제 ! ☞ 창의적인 방법이 필요 ! * How 펜의 잉크 용량 과 거리 라는 개념의 새로운 접근법 고안 ! 1. 펜의 잉크를 모두 소진하여 직선을 긋고 ! 그 직선의 총 길이를 잰다 . 2. 1 시간 동안 공부를 한 후 , 그 동안의 잉크 사용량을 측정한다 . 3. 측정한 잉크 사용량을 토대로 , 1 시간 동안 쓴 글자의 총 길이를 추정한다 .꽉 차있는 잉크로 선 긋기 ! 잉크를 다 쓸 때까지 !실험 중 ..!A4 용지 100 줄 씩 총 15 장 = 약 1500 줄 이므로 거리 = 1500 X 29.7cm = 약 450m 측정된 악력 = 2N 펜 하나의 잉크를 모두 사용할 시 , 일 = 450m X 2N = 900J 여기서 , 띄어쓰기와 글자간 여백을 고려한 계수인 3 을 곱하면 2700J = 11.34Kcal 실제 공부한 결과 ! 1 시간 내내 필기 공부를 할시에 사용한 잉크량은 약 90% 이다 . 따라서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은 29.7cm 21 cm 11.34Kcal X 0.9 = 10.2 Kcal 실험 결과 !보너스 !! ☞ 다리를 떨어가며 공부를 하면 !? 거리 힘 : 올라 갈 때 힘 : 내려 갈 때 일 = 힘 ( 올라 갈 때 + 내려 갈 때 ) X 거리 ( 다리 떨 때의 높이 )실험 결과 ! 거리 = 약 5cm 힘 = 5N 횟수 = 5 초에 약 25 번 ☞ 1 시간에 약 18000 번 ‘ 일 ’ 의 정의에 대입하자 !! ☞ 18000 X 0.05m X 2N = 1800J = 18.9 Kcal (1 시간 ) 따라서 다리를 떨며 공부를 하면 시간당 10.2Kcal + 18.9Kcal = 29.1cal 를 소모결론 ! 공부를 하면 시간당 약 10.2 Kcal 를 소모 한다 . 다리를 떨며 공부하면 시간당 약 18.9 Kcal 를 추가로 소모 한다 . 필자의 경우 공부를 할 때 항상 다리를 떨며 , 1 시간에 3 분 정도 헤드뱅잉을 하며 , 1 시간에 1 번 ‘ 위아래 -EXID’ 춤을 춘다 . 또한 80kg 의 거구이며 기초대사량 또한 높다 . 따라서 위에서 구한 칼로리 소모량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것이다 . 뇌가 소모하는 칼로리 또한 높은 편인데 , 이는 현재 수준에서 계산에 한계가 있었다 . 따라서 위에서 구한 칼로리에 뇌가 소모하는 칼로리를 합하면 훨씬 높은 칼로리를 소모할 것이다 . 사람에 따라 펜을 쥐는 악력 , 공부 집중력 , 다리 떠는 주기나 강도 , 공부 자세 , 기초대사량 , 몸무게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른 운동의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 ! 시간당 소모 칼로리 (Kcal) 종목 칼로리 종목 칼로리 가벼운 걷기 180 가벼운 정원손질 270 골프 270 빠른 걷기 300 배드민턴 340 승마 340 맨손체조 420 본격적인 정원손질 420 가벼운 달리기 480 테니스 480 스케이트 480 스키 480 크로스 컨트리 540 보트젓기 540 축구 540 미식축구 540 핸드볼 600 격렬한 달리기 630 자전거타기 660 수영 720 공부도 다른 운동 못지 않다 ! 게다가 지식의 함양까지 되므로 사실상 제일 좋은 운동 !기대효과 ! 부와 운동과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공부 장려 , 그로 인한 국력 상승 ! 공부와 허기짐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적절한 식사나 간식 섭취량을 수치로 계산하여 비만 방지 ! 좋은 공부 자세 , 공부 방법을 개발 ! 쉽게 허기짐을 방지하거나 또는 허기짐을 불러오는 ( 다이어트 ) 경쟁력 있는 공부 상품 개발 ! 공부로 인한 소비 칼로리를 정확한 수치로 계산하여 올바른 식습관 정립에 도움 ! 공부를 할 때 여러 가지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연구로 안 좋은 습관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 ! 여러 사람이 어렵게 느끼는 혹은 생소한 물리를 생활에 접목시켜 사람들의 호기심 자극 ! 그로인 한 교양 상승 !아쉬운 한마디 .. 메르스 사태 때문에 일정이 취소 된 것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 ㅠㅠ 이번 이그노벨 페스티벌에서 위트 , 재치를 겸비한 ppt 발표가 제 무기였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 Ppt 로만 제출하려니 제 연구가 잘 전달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 두 번째 출전입니다 꼭 수상하고 싶습니다 … 주최자 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