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아노의 영화 은 중세 말기, 이탈리아에 위치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 영화로, 프란체스코파인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제자 아드조가 베네딕트 수도원에 머물며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은 단지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은 살인사건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면엔 중세 말기 부패된 기독교의 모습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중세 시대 사람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기독교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이래로 교회는 민족 대이동을 겪으며 재산을 축적하고 세력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기독교는 점점 세속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고 지배층이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정화 운동이 일어나지만 오히려 수도원이 교회 타락의 본원지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 내에선 프란체스코 파, 베네딕트 파, 돌치노 파, 도미니크 파와 같이 다양한 교파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교리를 내세워 철학적 언쟁을 벌인다. 이에 흥미를 느낀 필자는 영화 내의 대표적인 두 학파인 프란체스코 파, 베네딕트 파에 대해 간단히 조사했다.우선 주인공인 윌리엄으로 대표되는 프란체스코회는 1209년 이탈리아의 아시시 출신인 성 프란체스코가 창립한 수도회다. 성 프란체스코가 살았던 당시는 정치, 경제, 사회, 법률, 종교와 같은 여러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정치적으로는 권력 쟁투로 인한 전쟁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 프란체스코는 수도회를 창립하였고, 이들은 영화 내의 윌리엄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교회의 청빈과 완전한 포기를 강조하였다.완전한 포기는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청빈(Poverty), 순결(Chastity), 순종(Obedience)이 그것으로, 세상의 포기와 육체의 포기 그리고 자기 의지의 포기를 의미하였다.)이들은 이후 인노켄티우스 3세에게 인가를 받고 빠르게 성장했지만, 프란체스코회의 ‘청빈 사상’은 재력을 통해 권력을 휘두르던 교황청과 기존의 수도회의 반감을 샀다.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22세는 청빈을 지지하며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하는 프란체스코회의 몇몇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몰았고, 이로 인해 교황과 대립하여 파문당했던 신성 로마제국 황제 루드비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결합해 황제파가 형성된다.)영화의 배경이 되는 베네딕트회는 성 베네딕트가 529년경에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에 창립한 수도회다. 당시 베네딕트가 태어난 시기의 서방로마제국은 정치, 사회, 도덕, 종교적으로 부패하여 대제국이 붕괴될 무렵이었다. 베네딕트는 로마의 귀족으로 태어났으나 20세쯤 되어 세속에서 떠나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이후에 529년경에 수도원을 건설하여 성스러운 일인 육체노동과 더불어 성경독경을 강조했다. 그는 공동체를 위한 규율집을 작성하여 극단적인 금욕주의 대신에 엄격하기는 하지만 정도에 지나치지 않는 질서와 규범을 통한 지혜로운 수도 생활을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기본적인 목적으로 일상적인 수도 생활 가운데서 영적, 실제적, 경제적 차원을 강조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주님의 섬김을 배우는 학교”로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영화 속의 기독교는 자신의 권력을 더욱 더 확대하고 유지하는 데 치중하고, 기존의 사상과는 위배되는 사상은 곧 절대적인 악이자 금단의 지식으로 간주하는 추악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단자로 몰린 사람에게 베르나르귀와는 다른 판결을 내린 윌리엄을 고문하여 판결을 번복하게 하는 모습과 신마저 웃음거리로 전락시켜 신성한 교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명목 하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을 극도로 경계한 호르헤 수도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나르 귀는 그러한 사상을 접하는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 화형은 그야말로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호르헤 수도사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에다 독을 발라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살인했다. 작가는 이러한 중세 기독교의 실체를 의 배경과 등장인물들로 설정해 신본 주의적 사상에 찌들어 타락할 만큼 타락한 중세 암흑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에 대적하는 인물로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상징하는 윌리엄을 내세웠지만 그 또한 결국엔 뿌리 깊게 박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교황청에게 대적하지는 못한다.필자는 영화를 보며 그 곳곳에서 처음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배분과 자선, 신의 진정한 섭리와는 모순되는 상황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소에게 여물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마을 사람들의 식량 배출구와 마을 처녀와 식량을 대가로 성관계를 맺는 것이 수도원의 배분과 자선인가? 베르나르귀와는 다른 판결을 내린 윌리엄 수도사를 고문해 판결을 번복하게 만든 것이 이단을 색출해 신의 진정한 섭리에 닿는 길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을 금서로 지정해 그 책을 접한 수도사들을 살해하는 것이 진정 지식을 위한 일인가? 그 이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화로운 신의 나라가 존재하는가? 사실 이들에게 이미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교회는 이단을 판별하기 위해 재산을 축적해야만 하고, 그렇게 판별된 이단은 반드시 화형에 처해 기독교의 권위를 민중들에게 보여준 뒤 신에게 복종하게 만들어야만 하며, 신에게 복종하기 위해선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웃음은 악마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악마가 두렵지 않으면 신 또한 필요 없다. 그래서 호르헤 수도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을 두려워하고 숨겨 수도사들이 새로운 사상에 눈 뜨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