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3
검색어 입력폼
  • 위대한 유산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위대한유산을 읽고Ⅰ. 작가 및 작품소개찰스 디킨스는 1812년 영국 출생으로 포츠머스 교외에서 살다가 10살에 런던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12살 때는 아버지가 빚 때문에 체포되어 구두약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15살 때부터 변호사 사무실 하급서기관, 법원 속기사, 기자를 거쳐 월간지의 편집장으로 일하기에 이르면서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황폐한 집, 위대한 유산 등의 작품을 쓴다. 꾸준하게 많은 단편과 수필을 쓰면서 유럽 각지에서 낭독공연을 펼쳤으며 1870년 58세의 나이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은 템스 강의 늪지대에서 살던 한 시골 꼬마 ‘핍’이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되는 이야기로 1860년 찰스 디킨스가 창간한 주간지인 ‘일 년 내내’에 연재되었던 「장사가 아닌 목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에서 시작되어 1861년 연재를 끝내고 간행되었다. 간행되고 바로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영국과 미국에서 큰 성공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 디킨스의 독자가 빠르게 늘어나서 어느 기차역에서나 그의 책을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Ⅱ. 등장인물 및 줄거리템스 강의 늪지대 근처 시골마을에 사는 핍은 일찍이 부모와 다섯 형제들을 잃고 한명 남은 누나와 그의 남편인 대장장이 조 가저리의 집에서 자라난다. 어느 날 교회묘지에서 핍은 한 탈옥수를 만나게 된다. 탈옥수는 핍을 협박하며 줄칼과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시켰고 핍은 두려워하면서도 그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탈옥수는 줄칼로 쇠고랑을 떼어내고 늪에서 다른 탈옥수와 만나 싸우다가 결국 다시 감옥선으로 끌려가게 된다.이후 핍은 조 가저리의 숙부인 펌브추크의 소개로 윗마을의 대저택에 살고있는 미스 해비샴의 집에 놀러 가게 된다. 미스 해비샴은 젊은 시절 한 사기꾼에게 결혼사기를 당해 결혼식 날 신랑이 결혼식에 오지 않은 뒤부터 밖을 출입하지 않고 온 집안에 커텐을 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살아온 여자였다. 핍은 미스 해비샴에게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곳에서 미스 해비샴의 양녀인 에스텔라를 만나게 되고 에스텔라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에스텔라는 핍을 촌놈취급하며 쌀쌀맞게 대하면서 점점 자신이 사는 집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된다.그러던 중 재거스라는 변호사가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핍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핍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 충분한 돈을 받으면서 신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많은 돈을 가지게 된 핍은 점점 더 부자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며 미스 해비샴의 집에 들릴 때에도 조 가저리의 대장간에 가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조와 누나 그리고 친한 친구였던 비디와 멀어지게 된다.런던에서 새로 만난 친구인 허버트나 익명의 누군가의 대리인으로 일하며 핍의 돈을 관리해주는 재거스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만난 웨믹과 친하게 지내며 돈을 흥청망청 쓰는 작은 숲의 티티새라는 모임의 회원이 되기도 하면서 어느새 빚까지 내어 가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그의 앞에 조잡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나타난다. 그가 바로 핍을 신사로 키우기 위해 많은 돈을 주었던 프로비스였고, 또한 핍이 어린 시절 먹을 것과 줄칼을 가져다주었던 그 탈옥수였다.프로비스는 감옥선에서 종신형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핍을 신사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힘든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었고, 결국 그 돈으로 핍을 신사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다. 핍은 그런 사실을 알고 프로비스를 경멸하고 또한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종신형을 받은 프로비스가 자신을 보기 위해 영국으로 다시 들어와서 이번에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지기 때문에 그를 숨겨주게 된다.한편 미스 해비샴은 결혼식이 파탄된 이후 남자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가지고 살면서 재거스변호사에게 두세살의 고아인 에스텔라를 받아서 키웠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했지만, 결국 미스 해비샴을 에스텔라를 차갑고 냉철하며 사랑을 믿지 않는 아이로, 남성에 대한 자신의 복수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키우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 미스 해비샴은 에스텔라가 양어머니인 자신이나 타인을 사랑하게 되길 바라지만, 에스텔라는 양어머니에게 사랑을 배우지 못했는데 왜 자신에게 사랑을 요구하냐고 한다. 핍이 그 곁에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좀 더 신사적인 사람을 만나라고 충고했지만 결국 에스텔라는 허영과 탐욕, 잔혹함과 비열함으로 악명이 높은 드러물과 결혼하게 된다. 또 미스 해비샴은 결혼식 드레스가 불타는 바람에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결국 핍은 에스텔라를 잃고, 조 가저리의 대장장이 조수였던 올릭의 계략에 빠져 목숨까지 잃어버릴 뻔 했지만 친구들 덕분에 살아나게 된다. 그 후 프로비스와 함께 외국으로 떠나려고 하지만 프로비스의 숙적인 콤피슨의 고발로 막히게 되고, 프로비스는 사형을 기다리던 중 사망하게 된다. 핍은 열병에 걸려 앓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핍의 빚쟁이들이 몰려와 압류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때 조 가저리가 나타나 핍을 정성스럽게 간호하고 빚까지 갚아준다. 결국 핍은 어린시절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고 시골에 내려가 비디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조 가저리가 비디와 결혼하게 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버트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사무원으로 해외로 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날 고향에 들렀다가 미스 해비샴의 저택에 가게 되는데, 그 저택에서 이혼한 에스텔라와 재회하고 함께 손을 잡고 폐허가 된 저택을 떠나게 된다.Ⅲ. 주제: 위대한 사람은 외부적 요인이 아닌 내면의 의지와 철학으로 만들어진다.이 소설을 읽으며 내게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의 의지와 외부적 요인 중 어떤 것이 더 큰 영향을 끼칠까? 하는 것이었다. 한 시골마을에 살던 평범한 시골 소년이었던 핍은 미스 해비샴과 에스텔라를 만나면서, 또 막대한 유산을 받으면서 크게 변화하게 된다. 그는 미스 해비샴의 집에 놀러다니게 되면서 그 전까지 만족스럽게 생각했던 조 가저리의 대장간과 그의 작은 집에 불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집과 또 친구같이 다정한 조 가저리를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며 그런 태도를 고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고치지 못한다.또 에스텔라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서 대장장이 견습공으로 또 몇 년 지나면 조 가저리의 뒤를 이을 대장장이가 될 자신의 인생을 답답하게 느끼던 핍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런던으로 떠서는 조 가저리와 누나, 친한 친구였던 비디까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외면하는데, 한 순간에는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다시 자신의 가족들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일찍 집을 나서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런던에서 시종까지 부리면서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조와 비디를 떠올리고 자신이 있었던 그 작은 대장장이의 집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면서도 그의 행동은 바뀌지 않고 점점 더 조나 비디와 멀어지게 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비디에게 오히려 인간의 추한 면을 보았다는 등으로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유산도 잃고, 유산을 주려고 했던 프로비스도 죽고, 빚더미에 깔려 열병으로 앓아 누웠을 때에 가서야 조와 비디의 소중함을 깨닫는다.「위대한 유산」이라는 타이틀은 핍의 인생이 외부적인 요인이었던 ‘위대한 유산’으로 인해 변하게 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로또 당첨이 인생을 바꾼 이야기나 어렸을 때의 불우한 가정환경이 범죄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지와는 관련 없는 외부의 사건들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운명론적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또 이와는 달리 인간 내부의 의지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자주 접하게 된다. 팔도 다리도 없이 태어났으나 의지와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닉 부이치치와 같은 사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끝없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의 성공이야기, 축구공을 살 돈이 없어서 돌멩이를 차고 다니면서도 결국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성장한 호날두 같은 운동선수의 이야기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주변의 환경들 보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인생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과연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핍은 외부적 요건에 의해 인생을 변화시켜 나간다. 그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 자신의 의지나 소원에 따른 것이 아닌, 외부적 요건에 의해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핍은 그런 요건들에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해 주겠다는 말에 거절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로 런던으로 떠나가고, 에스텔라에게도 늘 그녀가 말하는 대로 끌어가는 대로 끌려간다.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외부적 요인에 휩쓸리면서도 가끔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있었던 곳, 또 자신이 두고 온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또 반성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프로비스의 등장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돈을 잃고 빚을 지며 전전긍긍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마지막에 가서야 그는 조와 비디에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외부적 변화에 등을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것이었다. 그나마도 조와 비디가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그에 밀려 다시 해외로 떠나게 된다.
    독후감/창작| 2017.03.16| 5페이지| 2,000원| 조회(390)
    미리보기
  • 주홍글자를 읽고
    주홍글자를 읽고Ⅰ. 작가 및 작품소개너새니얼 호손은 1804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학교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다쳐서 3년 동안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독서에 열중하게 되었고 16살 때 ‘리어 왕’을 읽고 작가의 꿈을 키웠다. 처음 펴낸 장편소설인 ‘팬쇼’는 별다른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두 번 들은 이야기’가 에드거 앨런 포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마련했다. 궁핍한 생활 때문에 친구의 소개로 세관에서 검사관으로 3년 동안 일을 하기도 한다. 1850년 ‘주홍 글자’를 출간했고 영국 리버풀의 영사관에서 영사로 일을 하기도 하였다. 1864년 5월 여행 중 뉴햄프셔에서 사망하였다.호손은 작가로 살면서 25년여 동안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래서 1850년 ‘주홍글자’를 집필하여 아내에게 읽어주었을 때, 아내가 마음이 아프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예감하여 기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호손이 사망하기 전까지 겨우 7800부 밖에 팔리지 않았다. 미국 청교도사회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로 호도되었고, 러시아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었고, 20세기에 와서도 미국 미시건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이 책이 필독서로 선정된 것에 대해 ‘도색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에게 선정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출간 당시부터 여러 비평가들에게서는 호평을 받았으며, 허먼 멜빌은 ‘호손의 천재성을 기리는 징표로, 나의 책 ’모비 딕‘을 그에게 바친다.’고 하였다.Ⅱ. 죄의 청산은 진실함에서 시작된다.헤스터 프린이 주홍글자를 달고 숲 속의 외딴 오두막으로 들어갔을 때, 그 곁에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떨며 서 있던 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헤스터 프린의 딸 '펄'의 아버지인 딤스데일 목사였다. 마을 구성원의 대부분이 청교도로 이루어진, 그래서 목사의 사회적인 위치가 정치나 관료보다도 높았던 시대, 딤스데일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절감하며 고통을 받으면서도 결국 그것을 드러내어 밝히지 못한다.헤스터 프린이 비겼다는 것에서 받는 고통이 상당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라는 사회적 위치 때문에 외면적으로는 완전무결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그 간극에서 오는 괴로움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게다가 그런 괴로움들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작은 죄에도 괴로워하는' 매우 신실한 모습으로 비춰졌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딤스데일의 목사로서의 명성은 더 높아져 갔다. 남들이 보기에 딤스데일은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계속 걸어 올라가는 것 같이 보이는데, 실제 딤스데일 자신은 지옥을 향해 지하로 난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은혜로운 일을 행해도 정작 자신은 그 은혜 속에서 평안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저히 좁힐 수 없는 내면과 외면의 간극은 결국 그의 육체까지 좀먹어버린다.헤스터 프린과 딤스데일 목사를 통해 죄 지은 사람이 어떻게 그 죄를 청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절대 알려지지 않고, 절대 들키지 않는다면 죄를 자기 마음속에 묻어 둔 채 그냥 지내도 괜찮은 걸까? '다시는 저지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을 한다면 이미 저질러진 죄에 대해서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것일까? 이 책 속의 딤스데일 목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삶 속에서 이런 고민을 몇 번은 마주하게 된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의 돈을 훔쳤을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없어진 돈을 찾는 부모님을 보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애써 지어내면서 마음속으로 '제발 이번 한번만 그냥 넘어가게 해주세요. 앞으로 절대 안 그럴게요.'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었다. 그 때, 만약 정말로 들키지 않았고, 그대로 넘어갔고, 다시는 내가 돈을 훔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괜찮은 것일까?딤스데일은 죄책감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장롱 속에 채찍을 숨겨두고 자신을 피가 나도록 채찍질을 하고, 무리하게 목사의 일을 해 나가면서 건강을 망쳐도 '차라리 죽었으면'하는 생각을 하며 자기를 방치한다. 아무리 목사로서의이기에, 진실하지 못했던 한 순간이 후에 따라오는 모든 생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내가 부모님의 돈을 훔쳤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은 채 넘어갔고, 실제 그 '훔친다.'는 행동은 교정이 되었어도 나중에 생각했을 때 '역시 숨기길 잘했지'라고 생각할까? 내가 생각했을 땐 아닌 것 같다. 거꾸로 생각해서 그때 훔친 게 드러나고 부모님께 매를 맞고 벌을 받은 후 나중에 어른이 되어 내가 생각했을 때 '그때 안 들켰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할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물론 들켰든 들키지 않았든 그 이후의 행동이 실제로 교정이 되었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훔쳤다는 것이 드러나고 혼나고 넘어갔을 땐 그 부분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 마무리가 된 것이지만, 안 들켰다면 후에 생각했을 때 계속 찜찜함이 남아있었을 것 같다. 아마 이후에라도 부모님께 '그때 그 돈을 훔친 게 나였다고' 말하고 나서야 마음이 시원할 것 같다. 비록 부모님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실 지라도 말이다.결국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진실함' 인 것 같다. 눈앞에 어떤 벌이 닥쳐올지라도 자신의 죄를 변명하거나 꾸미지 아니하고 진실하게 털어놓는 것이 스스로의 죄에 마침표를 찍고 그 다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죄에서 진짜 해방되기 위해서는 진실함이 필요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딤스데일의 고백을 들으며 우리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해방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정말로 간절히 진실함을 되찾아야 했던 사람이 결국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진실함을 되찾았기 때문이 아닐까?Ⅲ. 청산 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헤스터 프린은 간통죄를 지은 후 주홍글자를 가슴에 달고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무채색 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오직 딸아이를 키우고 바느질로 생계를 연명하며 숲 속의 외딴 집에서 조용하게 지낸다. 그녀는 이전까지의 자신의 성격도, 성향도 모하였을까? 내가 하나님의 입장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만, 하나님은 그런 헤스터 프린을 흡족하게 '반성하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기 보다는, 불쌍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다. 죄를 짓고, 충분한 반성을 한 이후, 우리의 삶은 어때야 할까?사람은 모두가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 한 명도 같은 사람이 없다. 즉, 각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방식, 성향,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헤스터 프린은 젊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고, 또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그녀는 다른 젊은 남성과 간통을 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 후 헤스터 프린은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상처를 받고, 이전에 '헤스터 프린'이었던 모든 것을 버린다. 머리카락을 모자로 가리고, 무채색의 옷을 입고,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마음에서 열정을 봉해버린다. 주홍글자를 달고 있는 그녀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빠진 나머지 그녀로서의 모든 것을 봉인해버림으로 남은 인생을 딸아이만 바라보며 그냥 엄마로서만 살아가려고 애쓴다. '자신'이라는 것은 다 부정해버리고 만다.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색깔이라고는 없이 그저 정해진 법률과 규칙에 따라서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의미? 물론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에는 다른 목적도 있다. 만약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면, 우리는 기계가 되면 될 것이다. 기계는 자기 생각이 없어서 오직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절대 그 법칙을 벗어나지 않으며, 실수가 없으니 '죄'도 없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애초에 죄를 짓지 않도록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은 인간에게 생각을 주었다. '자유의지'를 주었다. 왜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을까? 왜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다르고, 모두 성격이 다르고, 모두 성향이 다이기 때문이 아닐까?우리는 실수를 한다. 죄를 저지른다. 살면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고 실수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죄를 짓고, 반성을 한 후에 우리의 삶은 어때야 할까?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대판 싸우고, 반성을 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아예 '친구'를 만들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게 좋은 방법인가? 아니다. 자기의 기질과 성향을 다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질과 성향을 다시 되돌아보고 좋은 방향으로 살려 나가야 한다. '열정'과 '의욕'이 가득한 나의 성향을 다른 좋은 방향으로 쏟아 부어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다.죄를 청산한 후에도, 나는 '나'다. '나'여야 한다. 죄를 짓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해버리는 것은 결코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없다. 만약, 자신을 봉인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평생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헤스터 프린도 자신의 모든 것을 봉인하였었지만 결국 딤스데일 목사와 숲속에서 만났을 때, 모자를 벗어 머리카락을 풀어내고 주홍글자를 가슴팍에서 떼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끼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며 먼 곳으로 목사와 함께 떠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 긴 봉인의 시간에도 그녀의 본성은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바에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이런 본성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까?'를 생각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Ⅳ.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죄를 짓는 사람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늘, 그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헤스터 프린과 딤스데일 목사를 용서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로저 칠링워스'였다. 그는 본래 책에 파묻혀 사는 학자로,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생각도 없고 가정을 이루려는 생각도 없었지만, 아내로 맞은 헤스터 프린과 함께 살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과 함께 하는 기쁨을 몰랐던 그가 헤스터 프린으로 인해 변화를 같다.
    독후감/창작| 2017.03.16| 5페이지| 2,000원| 조회(152)
    미리보기
  • 로빈슨크루소를 읽고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Ⅰ. 작가 및 작품소개대니얼 디포는 1660년 런던에서 양초 도매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니얼 디포의 아버지는 런던시티라는, 당시 영국 부르주아들의 거점에서 양초사업을 하였기에 비교적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왕정복귀 후 영국국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공직진출이나 고등교육이 제약되어 장로교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으며 엄청나게 많은 글을 기고하기도 하고 쓰기도 하였다. 그런 중 국기를 문란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유죄선고를 받고 형을 치르기도 하였다. 1719년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도 놀라운 모험'을 익명으로 출간하였으며 폭발적인 인기로 한 달 만에 2쇄를 찍고 각종 해적판, 작가가 작성하지 않은 속판, 그런 속판의 해적판까지도 엄청나게 판매되며 인기를 끌었다. 1731년 런던 시내의 하숙집에서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무기력증'이었다고 한다.Ⅱ. 등장인물 및 줄거리로빈슨 크루소는 영국의 중산층 상인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중산층이야말로 인간이 행복을 누리기에 가장 적합한 최상의 위치라고 말하며 그에게 일을 물려줄 테니 아버지 곁에서 부지런히 얌전히 살라고 한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방랑에 대한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결국 부모님께 아무런 인사도 없이 친구 아버지의 배를 얻어 타고 바다로 나간다. 몇 차례의 승선동안 노예로 사로잡히거나 극심한 폭풍에 시달리는 등의 고초를 겪으며 브라질에 농장을 세우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지만 또 한 번 모험에 대한 욕망 때문에 농장에 필요한 흑인노예들을 사오는 배를 타게 된다.노예선은 항해 중에 엄청난 폭풍과 만나 좌초되고, 로빈슨크루소는 한 섬에 도착한다.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사망하고 혼자가 된 그는 야생의 맹수나 식인종들을 두려워하며 좌절하지만 안전한 잠자리를 만들고 좌초된 배의 잔해에서 각종 필요품을 가져오는 등 무인도생활을 시작한다. 도구가 부족한 가운데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 결국 성채와 같은 보금자리를 갖게 되고, 홀로 생활하는 외로움 속에서 병에 걸려 아플 때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책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다. 그는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인도 생활 또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으며 매일 부지런하고 계획적으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섬의 한 해변가에서 자신보다 훨씬 큰 발자국 하나를 발견하고 식인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은폐생활을 하다가 무인도생활 24년 째, 식인종이 먹으려고 데려온 한 원주민을 구조하여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에게 식인종의 습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가르친다.프라이데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죽을 때 까지 무인도에서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중 27년째 되는 어느 날, 영국 선원들이 보트에 타고 무인도에 온다. 그들 중 결박되어있던 사람들과 이야기 한 결과 그들이 함선의 선장이며 선원들의 반란으로 무인도에 버려질 위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영국인 선장을 도와 다른 선원들을 항복시키며 반란을 진압하고, 그중 죄질이 가장 나빴던 몇 명에게 무인도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는 함선에 올라 문명세계로 귀환하게 된다.Ⅲ. 행복한 삶은 주변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로부터 시작된다.로빈슨 크루소는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에 불구하고 결국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까지도 귀가 솔깃해지고 이해될 만큼 아버지가 그토록 설명을 하고 회유를 하는데도, 왜 로빈슨 크루소는 떠나려고만 하는 걸까? 처음엔 그게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모가 부모라는 권위를 이용해서 막무가내로 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아들을 사랑하는 진심어린 마음에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했음에도 그런 부모님께 작별인사조차 하지 않고 친구아버지의 배를 몰래 타고 가출을 하는 로빈슨크루소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상하다는 들었다. 말하는걸 보면 타고난 불효자식도 아닌 것 같고, 아버지의 눈물에 마음 찡해하는 평범한 아들인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사람이 일상의 중심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사람마다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요소가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요소를 들자면, '주변 사람들과의 만족스러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이처럼 '사회성'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인간이기에, 인간에게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하다. 가까이는 부모, 형제와의 관계 그리고 좀 멀리는 친구, 교사, 이웃과의 관계까지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만족스럽다면 다른 부분이 조금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삶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로빈슨 크루소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안에서도 일상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있던 자리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또 다시 그 자리도 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로빈슨 크루소도 정든 집을 버리고 바다로 떠나 갖은 고생 끝에 브라질에 부를 축적하기에 충분한 농장을 짓고 그곳에 정착하는 듯 했으나 다시 또 무모하게 바다로 떠나게 된다. 이런 습성을 표현하기 위해 '역마살'이라는 단어까지 생긴 것을 보면 이런 사람이 시대나 장소와 관계없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주변사람들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로빈슨 크루소가 조난당해서 홀로 살아야만 했던 24년간의 시간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변 사람들과 정말로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면의 자신과 마주치게 된다. 내면의 자신을 만나고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극도의 외로움을 극복해 나가게 된다. 무인도의 생활 도중에 자기 자신과 많은 토론을 했다는 등, 어떤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와 이야기를 나눴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런 것이 바로 자신과의 관계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로빈슨 크루소가 자신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회복하계 되는 계기는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비를 맞고 병에 걸려 홀로 끙끙 앓으면서 '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는가?',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성경을 통해 그 해답을 찾게 된다. 신을 찾으며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시간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하게 된다. 물론 한 순간에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잘 곳, 먹을 것, 입을 것, 식인종문제, 무인도탈출문제 등 각종 문제들과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하면 현명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과 토론을 하고, 신께 기도하면서 24년간 자신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속해있는 장소에 대한 불만이 생긴다. 그럴 때, 가볍게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거나, 심하게는 이사를 가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장소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장소에서의 일상이 범죄나 학대로 여겨질 정도의 수준이 아닐 때의 이야기이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 중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 문명이 있는 곳이라면 사람사이 사는 것은 다 비슷비슷할 것 같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아프리카든 어디든지 사람들은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따듯하고, 차갑고, 무관심 한 등등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들 간의 관계라는 건 다 비슷하게, 복잡 미묘한 것일 것이다.그렇다면 그 수많은 복잡 미묘한 관계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생각되는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간에,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사제 간에 서로가 합당하게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 장소가 바로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이 아닐까? 그런 장소에서 살아간다면 평생을 살아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또한 반대로 그런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든지 가장 행복한 장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빈슨 크루소도 기나긴 무인도 생활 끝에 프라이데이를 만났을 때, 프라이데이가 하는 말 한마디에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리고는 프라이데이와 함께라면 이 무인도에서 평생토록 나가지 못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생기고 서로를 아끼는 관계가 되자 답답하고 힘들었던 무인도생활마저도 평생을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좋은 곳이 된 것이다.행복한 삶을 위해서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살아간다면 그곳이 바로 행복이 시작되는 곳 일 테니. 또,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내면의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나의 존재에 대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 내 인격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얻으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하게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진정성이 생기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힘들게만 느껴질 때,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먼 곳을 동경하기보다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주변사람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만든다면,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6.08.29| 5페이지| 2,000원| 조회(335)
    미리보기
  •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Ⅰ. 작가소개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일본 에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듬해 시오바라 가문의 양자로 가게 되지만 나중에 복적된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일본 문부성의 제 1회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되어 영국에서 2년 동안 유학을 하게 된다. 귀국 후 도쿄 제국대학 강사로 일하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도련님' '산시로' '문' '행인' '길위의 생' 등 일본 근대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양자로 갔다가 22살에 복적되기까지 친부모, 양부모들에 의한 그의 불안정한 삶이 그의 예민한 감수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장편소설인 '명암'을 집필하던 중 1916년 위궤양 악화로 50세에 사망하였다.Ⅱ. 작품소개'마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1914년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읽혀진 소설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가마쿠라의 해변에 놀러가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상경하여 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선생님과 인간관계를 만들게 되는데, 선생님의 사상과 지식에 이끌리면서도 별다른 직업이나 욕망, 포부도 없는 선생님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본가에 내려가서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지내다가 선생님의 장문의 편지를 받고 결국 그 의문점을 풀 수 있게 된다.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세계'에 대해 심도 깊게 드러낸 작품으로 특히 근대의 지식인들의 자아에 대하여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어 20세기 일본문학 최고의 수작으로도 불리고 있다.Ⅲ. 마음이 책 마지막 장의 선생님의 유서를 읽으며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마음을 주고 또 받는 과정이 어쩌면 이렇게도 균형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선생님이 자신의 친구 K에게 표출했던 악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서가 50 때로는 100으로도 받아들인다. 정말로 그렇게까지 상처 입히려는 마음이 아니었는데, 당사자의 괴로움을 느끼며 다시 결국 내 마음에도 상처가 생긴다. 결국 10으로 시작 된 것이 마지막에는 그 수십 배의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주는 만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의도만큼, 딱 내가 준만큼 상대방이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K의 마음속에서 두 배, 세 배로 커져 갈 때, 고삐를 놓쳐버린 말처럼 내가 뱉어버린 말이 수습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입히며 질주하는 모습을 보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 그저 망연자실해서, 차갑게 식어버린 친구의 주검을 그러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로, 우리가 주고받는 마음들에 적어도 어느 정도의 균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10을 줄 때, 상대가 10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가 10을 주면 최소 1에서 최대 50까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최저점과 최고점이라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자기가 주는 상처의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주는 입장에서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가 보다도 받는 자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내가 1의 상처를 주더라도 이미 99의 상처를 입은 자라고 한다면 1의 상처만 줬는데도 나오는 결과는 수 십 배처럼 느껴지게 된다. 반대로 내가 90의 상처를 주는데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 상처들을 다 받지 않고 9정도 상처만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처음에는 왜 마음은 이토록 주고받는데 균형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참 슬픈 기분이었는데, 다시 잘 생각해보니 마음은 결국 '받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 같다. K의 마음이 그만큼 절박하고 힘들었기에, 선생님의 작은 악의에 목숨을 끊게 되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 결과는 수년을 이어가 결국 선생님의 죽음까지 가게 되고, 내가 낌이다.우리가 악의를 표출할 때 그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명확하게 들여다 볼 수 없는 부분이니, 결국 아주 작은 악의라도 그 악의가 받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결론으로 나올 지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타인에게 악의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작은 악의라도 말이다. 운이 좋아 상대의 마음이 강해서 내 악의가 별 소득도 없이 사그러들지도 모르겠지만 '운'이라는 불확실한 것에 내 마음을 걸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든 저렇든 내가 남에게 준 악의는 결국 나에게까지 뻗어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Ⅳ. 인간 존재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선생님의 인생을 꿰뚫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다급하면 악인이 된다'라는 것 같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숙부에게 재산을 잃으며 가졌던 배신감이 모든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변화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 자신만큼은 정직하다는 믿음으로 살다가 결국 여자 때문에 친구에게 악의를 내보이며 친구를 배신하고 여자와 약혼하며 나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린다. 남에 대한 믿음도 없고 나에 대한 믿음까지 잃게 되니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선생님은 늘 죽음에 대한 욕망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사실 난 선생님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급하면 악인이 된다.’라고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래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배신을 하는 자신에 대해 ‘나도 사람이니까’하며 용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유독 자기 자신은 용서하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택한 것일까? 물론, 친구가 그 때문에 죽기까지 했다고 생각하면 쉽게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은 사라지고 또 다른 희망에 눈을 돌려가며 살기 마련인데. 적어도 나는 그럴 텐데. 대쪽 같이 곧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유연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악행을 저지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너무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결국 그것이 자기혐오로 이어지다 보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어버린다. 세상에 ‘남’은 80억이나 되지만, ‘나’는 하나다. 솔직히 남이 미워서 용서가 안 되면 남을 피해버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미워하면 방법이 없다.우리는 살면서 부모님을 통해, 교육기관을 통해, 그리고 책 혹은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서 '사람은 마땅히 어떠해야한다'라는 이상적인 부분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사람은 착해야 한다',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등등 말로 듣게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람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 이상적인 부분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그런 이상들을 지켜내지 못할 때가 많다. 가식적이고 게으르고 정직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그런 '현실적인 인간상'을 때로는 타인에게서 또 가끔은 자신에게서도 만나게 되는데, 이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런 경우 느끼게 되는 실망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나 이상적인 측면만 추구하다 보면 현실에서 타인에 의해 상처 입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사람은 정직할거야, 사람은 다 착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산다면 작게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인다던가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전 재산을 잃는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 현실적인 측면만 바라보다 보면 '사람은 다들 거짓말을 해, 사람은 다들 자기 밥그릇만 채우려 해'라는 생각으로 살다보니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구 등등 타인을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고, '남들도 다 거짓말을 하는데 나도 해도 되지'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본의 아니게 선한 사람들에게 상처까지 입히게 될 수 있다.그러니 너무 이상적인 측면만 추구하는 것도, 너무 현실적인 부분만 바라보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이 해도 어린 시절 폐지를 주워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땡볕 아래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상대에 따라, 그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 추억에 따라 또 그 당시의 상황에 따라 등등 수 십 가지, 수 백 가지 다른 이유들로 사람이라는 존재가 선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니 사람에 대한 이상이나 현실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좀 비약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악하게 산 사람이라도 삶을 다하고 죽는 그 순간에라도 반성을 하고 사죄한다면 그의 인생은 의미가 있었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설사 반성을 하지 않았더라도 혹시 육체적으로 각막이나 장기기증이라도 하고 가는 인생이라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인생 아닌가?)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조차도 그저 ‘이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이 다가올 때 과연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결국, 인간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각 상황 상황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 입장, 남의 입장을 잘 살피며 움직이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사는 동안 늘,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하는 물음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겠다. 그런 물음이 없는 인생을 산다면 잘못된 선택을 하고서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크게 엇나간 삶을 살아가게 될 위험성이 있으니까 말이다.Ⅴ. 인상 깊었던 구절“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이 세상에 나쁜 부류의 인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처음부터 악인으로 정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네.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지.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막상 다급해지면 순식간에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야. 그래서 방.”
    독후감/창작| 2015.08.25| 5페이지| 2,000원| 조회(376)
    미리보기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Ⅰ. 작가 및 작품소개1899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15세 때에는 함께 살던 조부마저 세상을 떠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경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를 창간하여 새로운 현실묘사를 시도하는 '신감각파'운동을 일으켰다. 설국은 12년 동안 수없는 수정작업을 거쳐 1948년 완결판으로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천우학', '산소리', '고도'등의 작품으로 독자적인 서정문학의 장을 열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72년 3월 자택에서 가스자살로 사망하였다.Ⅱ. 등장인물 및 줄거리부모님이 남긴 재산으로 별다른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며 등산과 여행을 즐기는 시마무라는 눈이 많이 내리는 산골마을 설국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와 맑은 목소리를 가진 요코를 만나게 된다. 설국은 시마무라가 여러 차례 온천장에 방문하면서 밝고 거침없는 성격의 고마코와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강단 있는 성격의 요코 두 여자와 얽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그의 감정, 설국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 소설이다.Ⅲ. 산골마을의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여러 소설의 첫 문장 중에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문장을 읽으며, 과연 ‘설국’이라는 소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두근거리는 마음과 동시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이라는데 너무 어렵고 난해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했던 마음은 소설을 읽어나가며 금방 사라졌다. 그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설(고도를 기다리며, 마의 산 등)을 읽으려고 시도해봤지만 초반을 읽으면서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포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읽기도 전에 겁을 먹었는데, 설국은 의외로 표현이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폭염으로 푹푹 찌는 열기에 눈은커녕 바람조차 뜨겁게 느껴지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설국’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겨울에 관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 동안이라도 더위를 잊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키보다 더 높이 눈이 쌓이는 한 겨울의 산골 마을을 생각하며 여름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순간순간 아름다운 문장에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너무나 예쁘고 실감나서,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은 적도 많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에는 누군가 내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가진 소설’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설국’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글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예전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은 많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것을 표현해 내는 것에는 너무나 단순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연두색, 청녹색, 녹두색, 코랄색, 에머랄드색 등등 푸르른 계열의 색에 대해 표현하는 단어 자체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푸른 산을 눈앞에 두고서는 그것에 대해 정말 재미없고 밋밋하게 ‘이 산은 녹색입니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다. 설국을 읽으며 정말로 내가 얼마나 표현에 인색하고 내 머릿속에 얼마나 정형적인 부분들이 많은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사계절 자연풍광에 대한 묘사는 부담스럽게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단어 하나하나를 따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면 마치 그 풍광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저 그 풍광만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글을 쓴 작가의(혹은 서술자인 시마무라의) 그때의 감정이나 정서가 옅게 바탕에 깔려있어서 내가 서술자가 되어 그 풍경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표현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설국의 문장의 아름다움은 정말 내가 이 몇 마디 서평으로 표현해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도 어린 시절에 강원도 태백의 산골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설국의 배경에 대해 큰 어려움 없이 상상해낼 수 있어서 더욱 생생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하며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물론 책의 줄거리도 좋았지만 글자로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자연에 대한 묘사에는 정말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Ⅳ. 사람의 감정에 대한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묘사시마무라가 설국의 온천장에 방문한 내용이 중심으로 쓰여져 있는데, 소설의 시간대는 연속적이지 않고 시마무라가 기차를 타고 온천장으로 오는 부분부터 온천장을 떠나는 부분으로 여러 번 끊겨진 채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읽어나갈 때, 지난번의 방문과 지금 읽어나가는 곳 사이에 시간의 차가 있음을 기억하며 읽어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어라? 갑자기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이 드는 돌발행동이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의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잘 읽지 못해서, 가끔 당황스러울 때 마다 다시 뒤로 가서 예전의 방문에 대해 한 단어 한 단어를 자세히 읽어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만큼 인물의 감정선이 정말 미묘하게 서술되어 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에는 슬슬 읽어나가더라도 ‘아 대충 이런 식으로 감정이 변화하고 있구나.’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설국 같은 경우에는 ‘싫어요, 갈래요’ 나 ‘완전히 환해졌네요. 가겠어요.’ 같은 짧은 한마디를 그냥 술술 읽어선 안 되고 문맥에 따라서, 또 등장인물간의 지금의 상황과 분위기, 시간대, 방금 전에 나눈 대화를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아~ 지금 이 말이 가기 싫은데 가겠다고 하는 거구나’ 혹은 ‘아,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자기감정을 숨기려고 하는 말이구나.’라는 등 스스로 그 인물의 감정을 읽어내야 하는 느낌이라 솔직히 인물의 감정들을 따라가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분량은 장편소설 치고는 꽤 짧은 편인데, 이런 식으로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펼쳐놓은 상황들을 전, 후로 종합적으로(꽤나 작은 것 까지) 잘 알아야 하고, 때로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어떻게 감정이 흘러가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읽는 도중 꽤 뜬금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소설의 표현 자체는 난해하고 어렵지는 않지만 손쉽게 술술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오히려 술술 읽히는 분량이 많은 소설보다도 좀 더 힘을 쏟아서 읽어야 하는 편이었다.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게 좋았던 것 같다. 뭐든지 대놓고 표현하고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요즘의 경향인 것 같은데 설국을 읽으면서 숨기고 또 숨기고,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감정과 정 반대의 행동을 반복하며 괴로워하고, 하고 싶은 말 대신 ‘은하수가 예뻐요’ 같은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느낌이 뭔가 애달프면서도 순수한,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꽃으로 치자면, 당당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해바라기라고 한다면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안개꽃 혹은 길가에 피어있는 정말 작고 가냘픈 들꽃 같은 느낌이었다.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였기에, 독자인 내가 애를 써서 인물간의 감정들을 읽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혀 수고스럽지 않고 오히려 소설을 다 읽어나갈 즈음에는 줄어드는 장수가 슬퍼질 만큼 이 소설이 좋아졌다. 책을 덮으며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 세 사람에 대해서 떠올리면 한없이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그 세 사람의 시간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초봄에 내리는 마지막 눈송이처럼, 하얗고 깨끗하게 내려 순간에 녹아 사라지기에 슬프면서도 기쁜 그런 느낌이었다.그동안 ‘노벨문학상이 뭔가? 아무리 상을 받아도 내가 읽기 어려우면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설국을 읽으며 ‘과연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국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여러 일본 소설 중에서 아니, 읽어보았던 모든 소설들 중에서 가장 표현이 아름다운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Ⅴ. 인상 깊었던 구절"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서양의 인쇄물에 의지하여 서양무용에 대해 글을 쓰는 것만큼 편한 일은 없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한 탁상공론이 없고 거의 천국의 시에 가깝다. 연구라 해도 무용가의 살아 움직이는 육체가 춤추는 예술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의 상상으로 서양의 언어나 사진에서 떠오르는 그 자신의 공상이 춤추는 환영을 감사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사랑에 동경심을 품는 것과 흡사하다.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雪)이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뺨이 떠올라 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간진초 였다. 순간, 시마무라는 뺨에 소름이 돋을 듯 서늘해져서 뱃속까지 말갛게 되는 느낌이었다. 단숨에 텅 빈 머리 가득 샤미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제로 그는 그저 놀랐다기보다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경건한 마음에 사로잡혔고 회한의 상념에 완전히 젖어들었다. 자신은 이제 무력할 뿐, 고마코의 힘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기꺼워하며 몸을 던져 떠 있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
    독후감/창작| 2015.08.07| 5페이지| 2,000원| 조회(29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0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2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