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길들이기 1 감상문는 영국 작가 크레시다 코웰이 2003년에 출간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이 원작에서 배경과 캐릭터만 가져와 를 제작한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를 만든 딘 데블로이스와 크리스 샌더스이다. 이 둘은 드림웍스에 와서 처음으로 만든 로 개봉 첫 주말 3일 동안 4373만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영화정보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97%의 평점을 받았다. 이는 82%에 그쳤던 를 넘어선 수치였다. 그동안 픽사와 비교되어 오면서 픽사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픽사에 대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히컵이 살고 있는 버크 섬을 침략한 용들과의 한판 전쟁으로 시작한다. 손재주는 있지만 싸움재주가 없는 히컵은 자신이 만든 돌팔매 투척기로 용 한 마리를 쓰러뜨린다. 다음날 히컵이 발견한 용은 용 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나이트 퓨어리’다. 히컵은 용을 죽여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영웅심을 뽐내려 하지만, 목숨을 체념한 듯한 용의 눈빛을 보고는 칼을 내려놓는다. 이 사건으로 둘은 친구가 되고 히컵은 이빨이 없는 용에게 투슬리스(toothless)란 이름을 붙여준다. 한편, 바이킹 족장인 아버지의 강요로 바이킹 훈련에 참가한 히컵은 수많은 용들과의 대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투슬리스와 함께 놀면서 용의 생태적 습성을 파악한 히컵은 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마을의 바이킹은 일생을 바쳐 용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숙명에 놓여 있다. 히컵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 과제와 친구인 투슬리스와의 관계 속에서 고민에 빠진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통해 용을 이해하면서 용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이 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족장인 아버지를 승계해야 할 그는 적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전쟁을 종식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족장인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는다. 히컵의 아버지와 바이킹들은 히컵을 구하러 온 투슬리스를 포획하고, 투슬리스를 이용하여 드래곤의 둥지를 찾아가게 된다. 투슬리스 덕분에 드래곤의 둥지를 찾은 바이킹들은 드래곤들의 뒤에는 드래곤들을 조종하는 거대한 드래곤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드래곤을 화나게 만들어 위험에 처하게 된다. 히컵은 투슬리스와 바이킹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한다. 마을에 포획되어 있는 드래곤들을 풀어 그 드래곤들을 타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히컵과 친구들은 드래곤들과 교감하는 데 성공하게 되고 드래곤을 타고 드래곤의 둥지로 간다. 히컵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투슬리스를 위험에서 구해주고 투슬리스와 함께 거대한 드래곤과의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 투슬리스와 히컵은 함께 거대한 드래곤을 쓰러트리고 마을의 영웅이 되고 히컵의 모습을 통해 공존하는 법을 배운 바이킹들은 버크섬을 바이킹과 드래곤이 함께 평화를 누리는 곳으로 만든다.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느껴진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힘은 ‘메시지’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컵과 투슬리스는 서로의 약점을 채워주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히컵은 한쪽 다리를 잃음으로써 불구가 되었지만, 영화는 절대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희망이 가득한 엔딩을 보여준다. 그 희망이 빛나는 것은 히컵과 투슬리스는 다른 종족이기 때문이다. 히컵은 같은 바이킹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존재였다. 그의 존재는 바이킹사회 내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 받아왔고, 약하고 겁 많은 이미지로 인해 소외되었다. 히컵은 언제나 소외되어 왔기에 덫에 걸린 투슬리스를 죽이지 못한 것이다. 바이킹 사회에서 비난 받던 약점으로 인하여 강한 친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경쟁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유년시절부터 경쟁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시험과 기록으로 평가되고, 남들보다 못하면 부모님으로부터 혼나곤 한다. 강한 자만이 인정을 받는 바이킹 사회는 남보다 더 잘해야 인정받는 한국의 사회와 겹쳐진다. 더욱이 인터넷 문화가 활발해 질수록 나와 다른 사람은 적으로 간주된다. 사소한 취향 하나에도 모두 열을 내면서 경쟁을 벌이고, 개인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문화에도 경쟁의식이 생기게 되었다.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사회를 한 줄로 세워놓고 성공자와 실패자로 구분 짓게 되었다. 개성은 점점 인정을 받기 힘들어졌다. 에서의 바이킹 사회와 ‘루저’인 히컵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되어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영화는 히컵의 약점으로 인하여 사회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다는 점이다. 히컵은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니었고, 그로 인해 드래곤과 접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경쟁사회라 하더라도 모든 존재에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는 더 발전하게 되는 결론을 볼 수 있다. 는 소통하는 법과 모든 사회의 구성원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내용은 예전부터 계속 되어왔지만, 의 장점은 이러한 묵직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재미있게 즐기고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주제까지 던져준다. 그래서 이 영화가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좋은 애니메이션은 재미와 좋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는 재미와 보기 즐거운 영상은 물론이고, 좋은 내용을 가진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된다. 에 나오는 무기를 내려놓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애니메이션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편가르며 싸우는 많은 모습들에도 이러한 히컵과 투슬리스의 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람이 분다애니메이션 영화 는 일본 박스오피스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 화제 작품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제 7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제 3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진출’이라는 다양한 성적을 거두었다. 자료에 따르면 는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5년 일본의 항공모함 이착륙 전투기--공식명 영식 함상전투기(줄여서 영전 ‘제로센’)--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1903-1982)의 실제 삶과 시인 겸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3-1954)의 소설 속 이야기를 엮어서 만화로 만든 것으로 모델 그래픽스에서 2009년 4월호부터 2010년 1월호까지 연재되었던 것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든 것이다. 우선 영화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대한 꿈을 꾸는 지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의 상상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보는 라이트 형제의 전기를 보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의 꿈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로는 비행기에 대한 영어 잡지를 보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 잡지에 나오는 이탈리아의 백작은 소년의 꿈이자 자신의 꿈에 나와 서로에 대한 꿈을 공유하며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꿈속에서의 백작의 비행기도 오류로 추락하는 등 자신의 꿈을 이루기가 쉬운 과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백작이 만든 비행기에는 3층으로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에 타서 즐거워하는 광경이 나온다. 백작은 비행기가 반드시 좋은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의 꿈에서 꿈이 같은 소년 지로에게 보여준다. 여기서 일종의 멘토로서 성장하는 지로에게 걸맞은 이야기들을 해주는 백작은 사실 지로 자기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으로써 더욱 지로의 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또한, 처음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꿈을 꾸던 소년이 지붕 위로 올라가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한 어린 소년의 순수한 꿈이 피어나는 이 모습은 감독 특유의 감성이 물씬 풍겨 나와서 또다시 관객들을 황홀케 하는 환상적인 판타지 세계로 영화가 진입하는 것 같았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1923년 9월 1일, 청년이 된 지로가 도쿄행 기차를 타고 가다가 바람에 날려간 모자를 받아준 소녀 나호코와 만나게 된 날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시구로 바람이 부는 날 처음 만난 지로와 나호코의 인연을 암시한다. 그 순간 느닷없이 지축이 울리면서 대지진이 일어나고 세상은 잿더미로 변하고 지로는 소녀와 헤어지게 된다. 땅이 흔들리고 기차가 탈선하고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도쿄가 불바다가 되었던 관동대지진으로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으며, 사망자와 행방불명 된 사람들은 총 40만 명에 달했다. 영화 속에서 땅이 우는 소리와 함께 시가지가 폭삭 무너져 내리면서 아비규환인 상황과 끝없는 피난행렬의 묘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되었다. 비행기 설계자의 꿈을 갖게 된 소년 지로가 꿈의 세계를 드나들며 자신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가던 그 시대는 관동대지진과 일본이 끝없는 불경기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져 국민들이 위정자에 대한 불만이 극도에 달했고, 이를 달래려고 일본 정부는 제국주의로서의 야욕을 키워가며 무기를 만들고 무모한 침략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였던 불행한 시대였다.어렸을 때부터 꿈꾸어 오던 대로 오로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지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 항공사에 입사해서 비행기를 설계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꿈에 그린 것처럼 사람들을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비행기에 태워 하늘을 날게 해주고 싶었던 지로의 순수한 꿈은 침략 전쟁 준비로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지로가 만드는 항공기는 오로지 빠르고 튼튼하고 폭탄 같은 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전투 폭격기여야 했다. 선진 독일의 전투 항공기 제작기술을 익혀오라는 정부의 명령에 의해 독일 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지만, 지로는 자신이 설계한 비행기가 전쟁에 이용되는 것이 괴롭기만 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대한 순수하고 무한한 열정과 사랑을 가진 설계자로서의 지로는 자신이 설계한 아름답고 완벽한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터라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순응하며 군이 원하는 대로 비행기를 만들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밤낮없이 설계도면을 그려댔다. 세월이 흘러 자신이 꿈꾸던 최고의 비행기를 만들지 못하고 좌절한 지로가 찾아 든 산속의 호텔에서 뜻밖에 대지진 때 함께한 나호코를 다시 만나고 둘 사이에 사랑이 움트고 결혼을 약속한다. 이곳은 대다수 국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헐벗고 굶주리며 어렵게 살아가는 세상을 깡그리 지워버린 듯 바깥세상과 차단된 동화 속 마을 같은 아름다운 빛깔로 가득한 세상이 펼쳐진다.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둘 사이에 흐르는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통해 전개되는 사랑이야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빙그레 웃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하였다. 역시나 미야자키 하야오답게 실사처럼 빼어나게 그려진 배경 묘사만큼은 압권이었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수채화 같은 자연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워 그 섬세한 터치에 감탄하였다. 이 둘의 관계에서 재회를 하는 장면이나 지로가 나호코에게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날려 주고 이를 잡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모두 ‘바람’이 모티브로 작용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 ‘바람’이 슬픈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호코의 건강 악화로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안 이들은 한 시골의 직장 상사의 주례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 영화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대한 꿈을 가진 지로에 대한 얘기와 바람이 맺어 준 인연인 “나호코”와의 러브스토리를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지로와 나호코와의 러브스토리가 정말 볼만하다고 꼭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아픈 나호코와 오른 손을 잡고 지로가 설계도를 만드는 모습에서 어떤 논평가는 지로가 이기적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오히려 나는 매우 현실적인 묘사로 보였다.또한 에서 개인적으로 전쟁이 독일과 일본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독일인과의 만남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쟁을 미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것을 반증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의 시대 상의 국민들의 모습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끌어내고 있고 이들을 미래세대에게 공감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노력도 엿보였다. 그 시대의 소용돌이에 있던 사람들 개개인의 삶은 어떠했을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군국주의의 미화니 그런 것을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인터넷 블로그에 많은 비판들을 보고 오히려 놀라웠다. 영화가 예기하려고 하는 의도된 것들을 무시하고 일장기가 달린 비행기가 나왔고, 맥락을 무시하고 지로가 군국주의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다소 놀라웠다. 오히려 전쟁이 가진 위험성과 파멸성을 반복적인 암시적 메시지로 나타내었다고 본다. 다른 판타지 물과 달리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시대적 배경을 들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통해 느낀 것은,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감과 미래세대가 가져야 할 가치,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잘못된 점을 배워 더 좋은 쪽으로 미래 세대가 나갈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담론에 사로잡혀 세상을 보면 순간적으로는 편안할 수 있지만 세상은 더 복잡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다른 흐름과 진실, 아름다움 같은 것을 볼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은 사실 시대적인 배경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꿈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담은 애니메이션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지로도 상황에 의해 자신의 꿈인 아름다운 비행기가 폭격기로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자신도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잠시 시대적인 배경과 역사를 떠나서 생각해본다면,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메시지는 그저 우리와 같은 평범한 한 남자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한 번쯤은 이 애니메이션을 국가 전체의 이야기로 보지 말고 그 어려웠던 시대 속에서 그래도 자신의 순수한 꿈을 놓지 않고 계속 꾸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해 온 지로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라고 왜 힘들지 않았겠나. 지로도 그저 자신의 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전부였던 그저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텐데 말이다.
애니메이션 감상문는 독일 라우엔 스타인 형제가 제작한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으로서, 1989년 아카데미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권력을 상징하는 상자와 인간들의 탐욕이 부른 비극을 우화적으로 표현하였다.나는 이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고 한 문장이 떠올랐다. “세상엔 자기 혼자와 욕망만이 남았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우선 배경은 5명의 사람들이 알맞은 위치에서 무게중심을 맞춰 나가는 판자 위이다. 이것은 즉, 혼자 살 수 없고 타인과 협력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를 잘 반영한 것이다. 5명은 등 번호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얼굴과 같은 의상을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5명의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주목 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곧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평등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쥬크박스의 등장과 동시에 평등하고 획일적인 5명 사이에 ‘욕망’이라는 것이 생긴다. 쥬크박스를 오래 가지고 싶은 욕망은 떠나가는 순간 놓지 못하는 그들의 행동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균형이 깨지고 욕망으로 인해 변해버린 구성원은 급기야 타인을 판 밑에 밀어버리지만, 결국 판의 끝과 끝에서 쥬크박스만을 쳐다볼 뿐이다. 나는 정말 이 애니메이션의 결말을 보고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상자는 욕망의 대상이 되고, 결말을 보면 결국 상자와 자신만이 남게 되는데, 구성원 모두를 밀어버렸기 때문에 그마저도 균형을 맞춰 줄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아 상자를 진정으로 갖지도 못하는 안타깝고 어리석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권력을 독점하지만, 에서는 끝과 끝에서 서있는 쥬크박스와 사람을 보여주며 타인이 없는 권력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임을, 탐욕에 따르는 구성원간의 균형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려준다.쌍둥이 형제인 Wolfgang Lauenstein과 christoph Lauenstein은 1985년 독일의 카셀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얼마 지나지 않은 1987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작품을 만들게 된다. 단편 애니메이션 는 정치, 인간의 심리, 이기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되묻게 만드는 수작으로 워싱턴 포스트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등의 유명지에 작품평이 실릴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더욱 큰 가치를 갖는 것은 표현연출에 있어서의 상징성과 더불어 블랙유머(black humor)에 있다. 멜로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이 벌이는 무섭도록 희극적인 상황은 범죄의 극단적 희화화로 표현되며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멜로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 균형을 깨트리고 다른 누군가는 다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균형을 깨트린다. 아예 멜로디 박스 위에 올라타 앉아버리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잠재적으로 균형을 깨트릴 누군가를 밀어 떨어뜨림으로써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균형을 잡아줄 누군가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멜로디 박스를 독차지하기 위해 벌인 비인간적 태도들은 이 작품의 백미인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 결국 아무도 독차지 할 수 없는 사물과 고독한 인간의 균형 상태로 종결된다.정치와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자 인간을 스스로 조롱하는 것은 어쩌면 제 얼굴에 침 뱉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징, 비유, 풍자, 과장, 은유, 희화로 대표되는 만화의 근본은 비정상적, 비인간적, 비도덕적 등 누군가가 권력 앞에서 말로써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우회적으로 그러나 날카롭게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멜로디 박스를 최후에 소유할 뻔 했던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에 대한 경종이 아닌, 공동체로서 충분히 논의해야 했던 민주적인 기회에 대한 상실에 대해 더욱 긴장해야 하는 것이다. 멜로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적으로만 간주했던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나 오히려 멜로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던 평범한 소시민들이나 힘의 불균형, 분배의 불균형으로부터 오는 거대한 불균형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순 없다는 의미이다. 달리기에서 미리 선 밟지 말라는 경고를 우리는 우스갯소리처럼 하지만, 그 비유에는 뼈저린 부조리가 담겨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망자적인 태도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좀처럼 부정출발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위태로운 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