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디자인의 흐름목차 ▷ 1900-2000 년대 사회적 배경과 그 해의 유행한 헤어 스타일 ▷ 헤어 디자인의 역사 - 한국 미용의 역사 - 서양 미용의 역사1900 ~ 2000 년대 사회적 배경과 헤어 스타일 START1900 - 1909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과학의 발달이 급속도로 이루어짐 . ( 감각적인 것 → 사색적인 것 / 과잉장식 → 단순 / 형식적 → 기능적 ) 르네상스 이래로 왕실과 화려한 사교계의 시대 , 낙천적이고 낭비적인 시대 , 상류귀족과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앞을 다루어 멋을 즐겼던 최후의 시대가 됨 . 당시 유행한 장식예술 및 조형예술 : 아르누보 ( 새로운 : nuveau , 예술 : art 의미 ) 식물형상을 통해 상징적인 표출 , 물결치듯 굽어치는 곡선을 통해 유동적 형태로 표현 .ㆍ헤어 스타일 퐁파두르 스타일의 유행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 세의 정부였던 Marquise de Pompadout (1921-1964) 가 유행시킴 . 그녀의 이름을 따서 퐁파두르라고 부르게 됨 . 아르누보의 풍요로움과 곡선미가 나타남 . 느슨하고 부드럽게 치켜올린 머리형태의 전체적 실루엣에 잘 표현 . 20 세기 이전보다 무척 단순화 . 전시대의 과잉장식적 머리형태에서 단순 형태로 가는 첫 단계의 스타일 . 마샬 웨이브 (Marcel wave) 의 유행 마샬 웨이브 : 헤어 스타일링기의 영에 의해 일시적으로 모발에 변 화를 주어 물결모양을 만드는 방법 - 19 세기 말경 파리의 미용사 마샬 그라토에 의해 고안된 빗으로 웨이브의 방향을 잡아 스타일링기를 회전시키며 조작 .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웨이브가 특징이다 .모자 19 세기말 이후 모자 크기가 커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형태와 크기가 다양해 짐 . 초기에는 타조털을 많이 장식한 메리 위도우라는 밸벳으로 만든 모자와 버섯모양으로 크게 만든 모자가 유행 . 복식에서 나타난 호블 스커트에 이러한 넓은 모자는 불안한 외모를 나타냈다 .1910 - 1919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세계 제 1 차 대전 후 여- 1939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1929 년 뉴욕의 주가 폭락으로 1930 년대는 세계경제공황으로 인한 대규모노동운동이 일어나면서 산업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 보내려는 운동이 일어남 . 여성에게 종래의 전통적이며 우아한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팽배하였음 . 1939 년에는 미국의 정규 TV 방송의 시작으로 영상의 시대가 시작되고 , 오락산업이 활발 , 할리우드 전성기를 맞게 되면서 , 패션과 헤어 , 메이크업의 유행이 직결됨 .ㆍ헤어 스타일 파마 웨이브 (permanent wave) 의 유행 1930 년대 초는 짧은 머리가 그대로 지속되다가 점차 긴 머리가 선호되었음 . 경제적 불황 , 사회적 불안 , 정치적 혼란 , 영화의 부흥기 등의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로 인해 헤어스타일의 변화가 가장 다이나믹했음 . - 퍼머넌트 , 브릿지 등을 선 보였음 . 모자 편평하고 챙 (brim) 이 있는 것으로 한쪽 귀와 눈이 가려질 정도로 비스듬히 기울여 쓰는 것이 유행함 .1940 - 1949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1940 년대의 경기 침체가 조금씩 벗어날 무렵 , 세계 2 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크게 증가함 . 미국의 뉴욕은 화장 , 매혹적인 머리스타일과 세련된 의복 등 새로운 패션의 중심지가 됨 . 전쟁의 어지러운 시기에서도 사람들은 더욱 더 영화에 열중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미국의 헐리우드는 더욱 그 입지를 굳혀감 .ㆍ헤어 스타일 우아하고 세련된 성숙한 컬의 스타일이 유행 1940 년대 헤어스타일은 본격적으로 펌이 다양해짐 . 컬이 점점 화려해지기 시작함 . 머리를 부드럽게 어깨위에 내리는 (Pompadour Style) 과 승리의 타래 로 불리는 머리카락을 머리둘레에 계속해서 돌려 모양을 만드는 스타일이 여러 해 동안 유행함 . - 후반기에는 헤어스타일이 짧아지게 되고 과감한 형태의 귀고리 , 긴 줄의 진주가 크게 유행함 .1940 - 1949 년대 1950 - 1959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 1950 년대에는 미국이 유행을 나 아주 짧은 스타일의 커트도 등장 . 다양한 퍼머넌트 기법이 개발되었는데 대체로 굵고 자연스러운 웨이브와 스트레이트 퍼머넌트가 선호 .1990 - 1999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1987 년 미국 증시의 폭락으로 세계적으로 경제 대공황을 맞게 되면서 80 년대의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보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노력 . 기존의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틀에 박힌 스타일이 아닌 다양하게 개성을 표현하는 ‘ 포스트 모더니즘 ’ 경향이 생김 . 국내 미용 업계의 성장과 발전으로 미용기업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함 .ㆍ헤어 스타일 각자의 개성에 따라 굵고 완만한 웨이브에 젤이나 무스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손질한 스타일이 유행 다양한 컬의 퍼머 머리 , 자연스러운 생머리에 헤어핀이나 밴드로 장식한 스타일 등 다양한 연출법이 나타남 . 다양한 색의 헤어 컬러링이 보편화되면서 블리치나 매쉬 등 부분염색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패션가발도 대중화 됨 .2000 년대 ㆍ사회 문화적 배경 - 한 세기가 바뀌면서 많은 컬렉션 발표와 트랜드가 발표 . -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기구가 개발되면서 퍼머분야도 다양화 , 개성화도 크게 발전함 . ㆍ헤어 스타일 자신만의 개성을 무엇보다 중요시 되었고 , TV 속 연예인들의 스타일이 큰 열풍 . 동양인의 얼굴형과 두상에 맞춰 볼륨과 가벼움을 함께 주는 샤기스타일이 크게 유행 . 곡선을 가미한 롱 레이어 헤어스타일 , 층을 많이 준 샤기컷 , 복고를 한 머쉬룸컷트가 주를 이룸 . 그 외 콘로우 , 드레드 , 블레이즈 등 특수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특수머리 전물 살롱이 많이 생기기 시작함 .헤어 디자인의 역사 START한국 미용의 역사 고조선 , 삼한시대 미용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세워진 고조선시대의 미용의 실체를 입증할 근거는 희박하지만 , 뼈 비녀와 그 밖의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 지금으로부터 4,000 여년 이전에 이미 쪽진 머리와 상투 머리가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 2,000 여년 전리의 일부를 묶고 나머지는 뒤로 내렸다 . 통일 신라 시대에서 이어져 내려온 비녀의 사용이 많아져 옥잠 호도잠등의 꽃과 보석으로 장식된 비녀와 가체를 상류층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 미혼남자들은 검은 띠로 머리를 묶었다 . 그리고 원 침략 이후 남성들은 변발을 하기도 했다 . 고려 말엽에는 머리 염색이 서민 사회까지 확산되었는데 , 그 재료로는 숯 , 재 , 옻나무등이 백모를 커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조선시대 미용 남존여비 , 재가금지 , 서열차별등이 가부장적 부계중심의 유교사회로 정착된 조선시대에의 남자들은 상투를 트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 혼례를 올리지 않은 처녀 총각의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하고 , 양쪽 귀 위 머리를 땋아서 , 뒤에서 모아서 땋아 늘어뜨리고 , 댕기를 묶었다 . 부인들의 머리에는 얹은 머리와 쪽진 머리가 성행했다 . 얹은 머리에는 궁중에서 왕비 혼례용으로 사용되었던 대수머리와 내명부가 사용했던 의례용 대수머리가 있고 , 족두리를 쓰는 어여머리는 외명부나 반가의 부녀자들과 일반인이 혼례용으로 사용하였다 . 조선후기 영조의 가체 금지령 이후 , 쪽진 머리가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으로 사용되었는데 , 왕비는 도금한 봉황을 내 , 외명부는 흑각으로 개구리를 만들어 앞가르마 정 가운데를 장식하였다 . 단순화된 쪽진 머리에는 비녀와 뒤꽂이등의 장식품이 사용되었다 .1900 – 1910 년대 1895 년 갑오경장이후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고종 자신이 머리를 자른 후 , 관리들이 성문이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를 잘랐다 . 이에 반발하는 사대부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 1900 년대에 유행한 깁슨걸 스타일은 동백기름을 바르고 머리를 달라붙게 하던 관습적인 머리형태에서 탈피한 획기적인 스타일이기도 했다 . 올백으로 빗어 후론트 부분을 세워 부풀리고 네이프 부분에 세가닥 땋기의 댕기머리로 겹쳐묶는 방법으로 외국공관의 외교관 부인들과 여선교사들의 퐁파두르 스타일은 당시 이화학당의 학생 중 여러명과 1910 년대에는 년대 우리나라에서는 1960 년대 초에는 앞머리의 부위와 귀 양옆에 높이를 준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다 . 우리나라에서는 이 스타일을 바가지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1964 년 업스타일과 함께 보브 스타일이 유행하였고 , 65 년경부터는 가발 붐이 일기 시작해서 머리모양을 개성 있게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세련된 멋을 냈다 . 68 년에는 보브 스타일이 가수 윤복희씨에 의해 소개되어 , 간편하고 손질하기 쉽기 때문에 직장 여성이나 학구파 신여성에게 유행하였다 . 또한 양장이나 한복을 입고 올림머리를 함으로써 고데기를 사용해서 머리형을 살리고 장식적인 컬과 가발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현대 드라이어의 시초가 되었다 . 1970 년대 1970 년에는 긴 머리를 그냥 자른다는 개념에서 모발을 각도에 의해 나누어 기하학적으로 자른다는 개념이 완전히 정립된 시기이다 . 1970 년대 전반기는 컷트의 절정을 이루었고 , 쉐기 컷트라는 일명 거지 컷트가 유행하였고 앞머리를 변형한 계단식과 젊은 여성들의 간결하고 생동감 나는 상고머리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 이제까지 아이론과 셋트에 의한 단단한 웨이브 구성은 사라지고 가벼운 웨이브 스타일이 나왔는데 , 재미교포 미용가 홍계남씨에 의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1980 년대 80 년대 초에는 여대생이나 직장여성을 중심으로 바리캉과 레이저를 변형한 컷트오 펑크헤어 또는 디스코머리와 같은 중성적인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다 . 80 년대말에는 긴 머리의 굵은 퍼머 스타일과 스트레이트와 더불어 머리장식이 유행하였다 . 1982 년에는 세계미용연맹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서 양 미용의 역사 고대의 미용 고대 이집트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발은 그 시대의 부를 상징하고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위상으로서 자리 잡았으며 , 각기 다른 스타일의 가발을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과 힘을 표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또한 그리스나 로마시대에는 머리 모양이 생의 감정을 반영해주는 일종의 장식품으로 가발 , 웨이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