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우리나라 감정노동의 실태와 해결 방안, 젠더 불평등1. 서론-문제제기‘감정노동’을 주제로 선정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한 은행사 상담원에게 걸려왔던 홍보 전화였는데, 내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인지 상품을 권유하는 통화는 점점 길어졌다. 내가 계속 거절 의사를 밝히자 상담원이 갑작스럽게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사실 이 통화가 오늘 마지막 통화였는데, 상담원을 시작한지 3일 동안 실적을 한 건도 못 올려서...계속 막무가내로 통화를 끌어서 죄송해요.’라고 털어놓았다. 나는 무어라 대답을 할 수 없어서 ‘힘드시겠어요, 힘내세요’라고 말했고, 상담원은 이내 친절한 목소리로 돌아와 ‘통화 감사합니다 고객님.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하며 통화가 마무리되었다.그때부터 나는 그녀들의 미소와 친절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백화점 입구에 늘어서 있는 제복 차림의 직원들은 저 자세와 표정만큼이나 착하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졌을까? 혹시 항상 웃으며 고객들을 상대하느라고 속으로는 굉장히 힘들어 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들 말이다.우리나라 서비스산업 감정노동 수행은 52.3%(2013년 기준) 정도로 혹실드의 감정노동 수행 기준(40%이상)을 초과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객의 불쾌한 언어 사용이나 무리한 요구에 대한 실질적 대응이나 규제 방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씩 SNS를 타고 퍼지는 ‘백화점 진상녀’와 같은 영상으로 인해 감정노동 토픽이 이따금 이슈가 되기도 하지만, 이내 사그라든다. 내가 ‘우리나라의 감정 노동’으로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로 인해 감정 노동자들을 하대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또한 감정노동 문제에 있어서 젠더 불평등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는데, 혹실드의 통계를 빌리자면 감정 노동을 많이 요구하는 직업은 여성이 남성의 두 배정도 높으며, 감정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는 직업의 백분율 역시 여성이 남성의 두 배 남짓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전근대적인 노사 관행, 지나친 성 상품화와 맞물려 더 문제가 심화되는데, 이는 단편적으로 유럽 등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들(나이가 많은 승무원, 심지어는 우리나라에서 노인으로 분류되는 나이도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과 우리나라 승무원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종합하여, 나는 ⅰ) 감정노동의 실태 ⅱ) 감정노동에 있어서의 젠더 차이와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이끌어 나가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2. 논의먼저 ‘감정노동’이란 무엇일까? 감정노동이란 ‘고객의 기분에 맞추거나 조직에서 요구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말한다. 혹실드는『감정노동』에서 ‘조직이 근로자로 하여금 겉으로 보이는 행위만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 상태를 조직의 감정규정에 맞게 조정하도록 제시하는데, 그 결과 실제 자신의 감정상태와 조직에서 요구하는 감정상태 사이의 감정적 불일치를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감정노동자들은 업무에 필요한 감정만을 드러내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나 느낌은 억압·회피함에 따라 감정의 자기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데, ‘무의식적으로 특정 상황에 요구되는 감정을 자동반사적으로 느끼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화기만 잡으면 상냥한 목소리가 저절로 나게 된다던가, 눈물이 나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짓 자아(false self)’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상태가 심화되면 내 감정이 없는 듯한 일종의 ‘감정적 마비’를 경험하는 상태에 이르러 종국에는 자아와 정체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감정노동 인구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임금 근로자 1700만명 중 약 740만명(약 43.5%)이 고객 상대 업무를 하루 절반 이상 수행하는 감정노동자로 나타났다. 또한 감정노동에서 절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서비스 및 판매 종사자의 수도 2007년부터 2014년에 이르기까지 4.11%의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도·소매업 종사자가 6279%가 증가하였고 숙박·요식업 분야에서 6136%가 증가하는 등 몇몇 분야에서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주었다. 현대 서비스 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점점 기업은 과도할 정도의 친절을 감정노동자들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다면 정신 건강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심각한 직무 스트레스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여성 감정노동자들의 48.9%가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30.6%는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4%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감정노동이 직접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지만,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무 스트레스는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신체질환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현대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직은 직선 형태의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그 증가세가 총 노동인구를 고려하면 증가세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미래에도 꾸준히 증가할 것임은 예견 가능하다. 단순 반복적인 직업은 이미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여 왔고, AI의 발달과 고도의 기술 발전은 점점 인간 고유의 활동 영역인 서비스직을 제외한 일자리를 빠르게 잠식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이렇듯 많은 인구가 감정노동이 필요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고, 감정노동자들의 숫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감정노동자들에 관한 논의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시작되었고, 실제로 ‘감정노동’이 법안으로 발의된 시기는 2012년 19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한 질병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서 산재법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발의한 것이 처음이다.이제 주제를 바꿔, 감정노동에 내재된 젠더 불평등을 살펴보고 나아가 전체 노동 시장에서의 불평등, 보편적인 젠더 불평등까지도 논의해 보고자 한다.젠더 불평등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여성이 어머니와 같은 범주에 속하는 구성원들로 보는 경향이 있고, 여성이 더 ‘순응적’이고 ‘협조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감정노동자들의 젠더 인식 불평등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이 아니다. 책에 소개된 예시를 빌리자면 비행기 탑승 승객들은 일반적으로 남성 승무원이 여성 승무원보다 더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남성이 여성에 관한 권위를 행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앞서 ‘어머니와 같은 범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모든 계급에서 여성이 대인 관계에 많이 개입되어 있는 무급 노동을 많이 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표적인 무급 노동인 ‘가사 노동(domestic labor)’은 굉장히 중요한 토픽인데, 맞벌이 부부의 남녀 가사노동 현황을 살펴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내·남편이 각각 3시간13분?41분이며 남편만 취업상태일 경우 6시간?46분이다. 심지어는 아내만 취업상태이고 남편이 무직 상태여도 2시간39분?1시간39분으로 아내의 가사 분담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이것은 근대, 현대의 남성-여성의 위계적 정의가 확산되며 굳어진 다분히 기형적인 가사분담 양태이다. 수업 시간에도 언급되었듯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환산하면 2004년 기준으로 240만원, 물가지수를 적용해 보면 2004년 대비 현재는 30%가 상승하여 300만원을 상회하는 가치를 지닌다.현재 가사노동과 육아를 남·녀가 동등하게 분담해야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남편은 ‘리모컨을 쥐고 빈둥대는’ 일이 허다하다.이러한 근본적인 성 불평등은 노동시장 전체에도 잠식해 있다. 2010년 기준 OECD의 통계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4~9%수준, 미국,스위스,독일은 19%~21%수준이지만 한국은 무려 39%라는 격차를 보인다. 이것은 남·녀의 이공계 진학률 차이(인문사회계와 이공계는 약 1000만원의 초봉 격차가 있다)을 고려하고서라도, 이해하기 힘든 수치이다.이것은 OECD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유리천장 지수로 설명되는데, 상대적으로 고위직에 오르기 힘든 현실 때문에 남성 고위연봉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감정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감정노동자들의 젠더 불평등, 더 나아가 고용 구조에 있어서의 젠더 불평등까지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감정 노동자들의 감정 문제와 젠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3. 해결방안 및 결론먼저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자. 유럽에서는 감정노동자 정신건강 연구조사와 제도화가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특히 감정노동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의 한 영역으로 다루고 건강위험 요인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하다. 일본은 1999년 정신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제정되었다. 2010년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건수가 308건으로 한국의 15배라는 점은 유의미한 격차이다.우리 사회에서, 서비스직에 대한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나는 감정노동 문제 해결에 있어 최우선적 선결 과제를 ‘정부와 기업의 강력한 개입’으로 꼽고 싶다.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고려하면, 무엇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회 구성원에게 감정노동의 문제점을 알려 주어야 한다. 분명히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자정적으로 인식을 개선해 나가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 전반의 감정노동 문제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므로, 각 기업에게 감정노동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적 해결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