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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기 동기 활성화 방안
    읽기 동기 활성화의 방안Ⅰ. 서론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겪는다. 하지만,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는 각각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을 듣고 느낀 점을 써 보자.’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자. 여기에서 평소에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듣거나 혹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가요를 즐겨 듣거나 음악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이 문제를 해결 하는 태도 역시 부정적이고 소극적일 것이다.이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동기’가 해결하는 태도 나아가서는 결과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그렇다면 ‘읽기’의 경우에는 어떨까? ‘읽기’ 역시 일종의 ‘문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읽는 행위는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읽기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시 ‘동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동기’가 ‘읽기 교육’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읽기 동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논의를 하겠다.Ⅱ. 본론일반적으로 학습자들의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평가목표성향’을 가진 학습자이고, 다른 하나는 ‘학습목표성향’을 가진 학습자이다. 먼저, 평가목표성향이란 학습 자체에 대해 흥미가 있기보다도, 자신이 학습을 통해 성취한 결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는 성향을 말한다. 즉,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학습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학습목표성향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껴, 자신의 내적 만족을 위해서 학습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의 학습자는 주위의 평가에는 크게 여의치 않고 새로운 과제에 끊임없이 도전한다.실패를 경험했을 때 평가목표성향의 학습자는 곧 좌절하고 포기하고 만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를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두려워한다. 평가목표성향을 가진 학습자들에게 실패의 경험이 반복되면, 이들은 점차 학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학습된 무기력’의 상태까지 되어 버릴 수 있다. 반면에 학습목표성향의 학습자는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이것을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생각하여, 다음의 문제 상황에서는 더욱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이러한 두 성향의 학습자를 읽기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평가목표성향’을 가진 학생은 ‘미숙한 독자’로, ‘학습목표성향’을 가진 학생은 ‘능숙한 독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즉, 미숙한 독자는 단지 누군가가 시키거나 시험을 친다거나 하는 단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읽기 행위를 한다. 반면에, 능숙한 독자는 자신의 내적 욕구에 의해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읽기 행위를 한다. 그렇기에 미숙한 독자는 읽기 자체에 흥미가 없으며, 단지 글에 주어진 단편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능숙한 독자는 읽기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읽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글을 읽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특히 문학 작품과 같은 경우에는 진심으로 주인공의 처지를 공감하며 깊이 있게 수용하게 된다.이러한 두 유형의 독자들이 독서에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미숙한 독자들은 텍스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이를 자신의 능력의 탓으로 돌리고 좌절감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읽기에 대한 흥미가 점차 떨어지고, 읽기 행위 자체에 두려움을 갖게 된다. 반면에, 능숙한 독자들은 독해에서의 실패를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노력의 부족으로 돌린다. 자신이 집중해서 글을 읽지 않았다거나, 혹은 텍스트의 내용이 처음 접한 낯선 내용이기에 자신이 이해를 잘 못했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이러한 읽기에 대한 학습자들의 성향과 그에 따른 읽기에 대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읽기 동기’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즉, 실패한 경험이 누적된 학습자는 읽기의 상황에서 동기가 저하되어 읽는 행위 자체를 피하고 싶어 하고, 긍정적이고 성공한 읽기 경험이 누적된 학습자는 새로운 읽기 상황에서도 동기가 유발되어 능동적으로 읽기를 수행해 나간다. 동기라는 것이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은 곧 동기가 선천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읽기 행위에 동기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미숙한 독자의 경우에도 특정한 환경이나 교육, 교사의 지도 등을 제공해 주면 충분히 능숙한 독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그렇다면 이러한 독자들에게 읽기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가장 먼저, 긍정적인 읽기 경험을 많이 시켜주는 것이 좋다. 특히 읽기를 두려워하는 학습자들이 읽기에 동기를 갖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부정적인 읽기 경험의 반복이다. 그렇다면 이는 곧 긍정적인 읽기 경험을 많이 할 경우 읽기에 대한 동기가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습자들의 수준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를 제시해 준다. 그리고 조금씩 어려워지는 텍스트를 읽게 한다. 여기에서 텍스트의 난이도를 높일 때 고려해야 할 점은, 학습자의 현재 읽기 능력 보다 높은 수준으로 잡되, 학습자의 노력이나 교사의 도움으로 성취될 수 있을 수준으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둘째, 읽기 활동을 하기 전, 배경지식을 많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읽기의 과정을 설명하는 모형 중에서 ‘하향식 모형’이 설명하듯이 읽기에서 배경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학습자는 텍스트를 읽을 때 자신이 아는 내용에 대해서는 더욱 흥미를 갖고 자신감 있게 읽어 나간다. 이는 곧 읽기의 동기와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교수-학습 상황에서 배경지식의 유무가 읽기에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독자가 읽기에 실패했을 경우, 이것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셋째, 읽기를 수행해 나갈 때의 유용한 독해 전략들과 이러한 전략들이 텍스트의 종류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물론, 읽기 자체가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기에 이러한 전략을 알고 적용한다고 해서 능숙한 독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들이 미숙한 독자들에게는 매우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글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 하거나, 텍스트의 종류나 성격에 따라 사용되는 독해 전략이 다른데, 이를 모르고, 무작정 읽기를 수행하는 미숙한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보전달의 글에서는 이 글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사실적 독해’나 ‘중심 내용 파악하기’ 등의 전략을 가르쳐 주고, 논설문이나 건의문 등 필자의 견해가 많이 개입된 글을 읽을 때에는 ‘비판적 독해’의 전략을 가르쳐 주면서 효율적인 읽기를 하게 하는 것이다.넷째,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준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상이란 외적 보상이 아니다. 외적 보상은 학습자들의 읽기 동기를 일시적으로는 향상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력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외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읽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읽기 동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학습자들에게는 ‘내적인 보상’을 주어야 한다.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보람 등을 학습자들이 내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읽기 동기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학습자들의 수준에서 평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나 분야에 대한 글을 읽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문/어학| 2013.06.23| 3페이지| 1,000원| 조회(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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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일-한국문학통사] 1권 6장 요약 및 정리 (나눔고딕체)
    6. 중세전기문학 - 제2기 고려전기6.1. 쟁패와 창업의 신화적 표현6.1.1. 건국신화의 재현?건국신화의 필요성신라가 기울어감에 따라 신라-후백제-고려의 후삼국 시대가 그들의 싸움은 무력만으로 해결 할 수 없었다. 신라가 통치력은 거의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의 무게 때문이었다. 후삼국을 통일해서 신라를 대신하는 왕조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력뿐만 아니라 정치이념이나 문화역량에서도 신라를 넘어설 수 있어야 했다.문화적으로 신라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한문학이나 유학뿐만 아니라 ‘건국신화’ 또한 긴요한 구실을 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이미 신화시대가 아니었다. 신화적 질서를 내세운다 해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국의 주인공이 하늘과 통하는 신이한 인물이라고 꾸미기도 어려웠다. 민중영웅의 전설과 건국신화 사이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건국신화를 고대와는 다르게 마련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했다.?견훤과 궁예견훤견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네 가지 형태로 전한다. 네 가지 전승의 공통적인 내용은 견훤이 미천한 처지에서 태어난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미천하면서도 비범하다는 이중성이야말로 견훤을 영웅으로 부각시키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궁예 열전에 전하는 궁예의 생애는 고대 건국신화에서 보이던 전례와 일치한다. 저절로 생긴 소재들을 모아 영웅의 일생을 재현하는 작업을 제대로 해내고, 불교에서 가져온 미륵신앙까지 보탰다. 그 작업을 스스로 했다고 생각되는 궁예는 걸출한 통치자이고 위대한 창조자였기 때문에 파탄을 자초했다. 신화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불신의 기미가 나타나자 누구든지 서슴지 않고 죽이는 횡포로 방어책을 삼았다. 반발 세력을 키운 결과 왕위에서 몰려나 도망을 가다가 이름 없는 백성에게 살해되었다. 고대 건국신화의 주인공과는 반대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궁예는 중세의 위기를 고대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안을 완벽하게 역사철학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혈통신화는 고대의 유산이다. 고려가 중세국가로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는 문화를 창조했으면서 왕족은 신성하다는 것을 낡을 방식으로 입증해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를 만들었다. 조선왕조의 창업자들은 그런 잔재를 완전히 없애고 유교 이념을 충실하게 구현해 널리 모범이 될 만한 중세국가를 만들었다.6.2. 향가 전통의 행방6.2.1. 고려전기의 향가한시와 향가가 아울러 존재했던 신라문화의 이원성은 고려에 와서도 유지되었다. 한시는 귀족 상호간의 정감 전달방식이라면, 향가는 귀족과 민중 사이의 교류를 담당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소홀하게 할 수 없었다. 또한 한시로는 흡족하게 나타낼 수 없는 감격, 노래를 불러야만 풀릴 수 있는 고조된 느낌을 호소하려고 하면 우리말 노래인 향가가 필요했다.그러면서 한시와 향가의 관계 양상이 신라 때와 달라졌다. 고려의 향가 또는 그 잔존 형태는 한시로 번역된 것과 함께 전해, 한시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었던 사정을 말해준다. 한시는 신라 때에 비해 월등한 발전을 보였는데, 향가는 오히려 쇠퇴했다.향가의 쇠퇴는 표기법의 문제도, 민족정신이 위축되어 우리말 노래가 타격받은 것도 아니다. 향찰은 고려말까지 통용되었고, 고려말 한문학이 한층 더 발전했어도 시조가 나타나 한시와 우리말 노래 사이에 균형이 다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한시에 비해서 향가가 약화된 현상은 고려전기 문화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다시 살피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화담당층이 연속되면서 신라문화가 계승된 것이 고려전기문화의 기본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절정에 이르렀던 앞 시대 문화를 이어서는 그 성과를 넘어선 창조를 이룩할 수 없게 마련이다. 개혁을 해야 마땅한데, 그럴 수 있는 세력이 온갖 진통을 겪은 끝에 고려후기인 13세기 이후에야 나타났다. 그럴 수 있기까지 향가가 지속되다가, 시조시대로 들어서는 전환을 겪었다. 향가가 지속되는 동안은 중세전기이고, 시조시대는 중세후기이다.예종의 와 정서의 은 향가의 잔존형태라고 할 수 있다. 두.균여를 숭앙하자는 것이 서술태도였으며, 신이로운 행적을 들어서 숭앙의 이유를 대고자 했다. 을 보면 저자 혁련정은 물론이고 11세기의 일반 사람들이 한 세기 전에 이루어진 균여의 향가를 어렵지 않게 해독할 수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6.2.3. 예종의 및 관련 작품① 예종은 두 공신인 신숭겸과 김낙을 생각하면서 를 지었다. 예종은 두 공신의 모습을 보고서 한시를 먼저 짓고 이어서 향가를 지었다. 한시에 이어 지은 향가는 ‘단가이장’이라고 했다.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두 토막 노래여서, 향가로서도 손색이 있고, 한시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한시로 만족할 수 없어 향가를 지었다.는 8구체 향가라고 할 수 있으나 앞뒤가 나누어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나타내고자 하는 바와 밀착되어 있어 널리 이용할 만한 형식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홀로 뛰어난 향가를 다시 일으키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다. 쇠잔기의 향가 또는 향가의 잔존 형태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타당성을 갖는다.② 예종은 라는 노래도 지었다. 에 예종이 자기 잘못이나 정치의 득실을 알고자 해서 언로를 크게 열었으나 신하들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자, 그 노래를 지어 신하들을 풍자했다고 한다. 벌곡이란 잘 우는 새라고 했으니 뻐꾸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유래 설명만 있고 사설은 전하지 않아 어떤 노래인지 자세히 알 수 없는데. 에 이라고 하고, 라고도 하는 노래가 전해서 그것이 바로 가 아닌가 하는 추정을 낳게 한다.의 유래 설명과 연결시켜 이해하면 숨은 뜻을 알 수 있다. 국왕의 잘못이나 정치의 득실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신하들이 뻐꾸기처럼 울어줄 것을 기대했는데, 비둘기인 양 소리를 낮추고 말았다고 풍자한 뜻이라고 이해된다.는 민요였을 수 있다. 예종이 이미 있는 민요를 이용해 자기 심정을 나타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요라도 상층의 관심사에 따라 원래의 것과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향찰로 표기되었으면 향가이다. 민요인 를 향찰로 표기해 향가 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6.2.4. 정정신을 개발해 사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문학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과거제를 문학고시로 만들었다. 과거제에서 필요로 하는 문학은 민족어문학이 아닌 공동문어문학이다. 공동문어문학은 문명권 전체에 통용되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문화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를 제공했다.6.3.3. 조익-왕융-최승로조익에 광종이 우아한 기풍을 숭상해서 어진 문인들을 등용했다 하고, 천년이나 살아서 깃털이 검어졌다는 현학이 날아와 모두들 찬양하는 글을 지었다고 하고서, 조익의 송(頌)을 들었다.왕융성종이 죽을 무렵 명을 빌기 위해 죄수를 풀어주기를 청하니, 성종이 생사는 죽을 무렵 명을 빌기 위해 죄수를 풀어주기를 청하니, 성종이 생사는 하늘에 달렸으니 죄지은 무리를 풀어주면서까지 명을 빌 것은 없다고 했다는 말이 에 전한다.최승로최승로의 작품은 과 에 보인다. 하지만 최승로의 이름이 길이 남도록 한 것은 시가 아닌 산문이다. 성종이 즉위하자 그 동안 겪고 생각한 바를 정리해 정치에 관한 소견을 적어 올린 문이 이다.임금의 바른 도리를 조목조목 갖추어서 제시한 글은 최승로가 처음 지었다. 말은 지극히 공손하지만 유학의 높은 경지에 이른 선비는 임금의 스승일 수 있다는 확신을 은근히 내비쳤다. 제왕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 유학의 임무라고 여겨, 구체적인 사례를 충고의 자료로 들었다.태조의 를 존중한다고 하고서 그 대안이 되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해 중세이념을 한층 높은 수준에서 재정립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념을 신하가 주도해 이룩한 것이 획기적인 전환이다.유불 비교론을 전개했다. 불교는 몸을 닦는 근본이고, 유학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라고 했다. 신불의 가호를 비는 허황된 생각을 버리고 합리적인 통치방안을 강구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유학의 정치이념을 제시했다.→ 문명권 전체의 보편적인 규범과 민족문화의 독자적인 특성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이중구조의 이론을 분명하게 했다.6.3.4. 현종-최충-박인량현종현종은 어려서 승려 노릇을 할 때 지었다는 시 두 편이 본문에 전한다. 또한 관을 정립하려고 를 지었다.→ 에서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에 구애되지 않고 역사를 이해하는 민간전승이 이어지고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고려후기에 이르면 이니 가 나와 에 반론을 제기했다.6.5.3. 비범한 인물의 탄생고려는 국가 통치에서 신화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신화를 멀리하고, 영웅전설이 지닐 수 있는 설득력도 동원하지 않으면서 중세국가의 통치이념을 이룩하고자한 것이 커다란 발전이다.그러나 국가 시책에 따라 민간전승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군주가 아니며 행적이 비범하다고 할 정도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이따금 신화적인 요소까지 지닌 영웅전설의 모습을 갖추어 전해졌다. 그 주인공에 문신, 승려, 장군 등이 두루 보이는데, 탄생이 신이하다고 해서 그 뒤의 활동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민중영웅을 희구하는 전통이 어떻게 하다보니 특정 인물과 결부되었으리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최응- 태조를 도와 건국과 통일을 이룩한 인물들 가운데 특별히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 인물.- 나라에 반역을 할 조짐이 있다고 죽이라고 했다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최응과 결부되었다고 보는 편이 적합할 것 같다.균여에는 설화라고 할 것들이 이어져 나온다. 탄생, 수난, 지은 노래의 영험 등을 설명할 때 신이한 사연이 곁들여 있어, 균여가 고답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사 사람들과 가까워지고자 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균여를 예사 사람 이상이라고 높이면서 그 이하라고 낮추기도 했다. 신화의 주인공이 겪던 수난이 되풀이되기도 하고, 비정상적인 요소가 약화되기도 했다. 영웅의 일생을 서두만 갖추었다.→ 이 자료는 신화에서 물려받은 유산인 영웅의 일생이 계속 구전되면서 해당되는 인물을 찾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강감찬출신을 미천하게 한 것은 강감찬을 민중영웅으로 만들고자 한 개변이어서, 국풍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천상의 무슨 별이 떨어져 강감찬이 태어났다고 하고, 다시 문곡성이 지상에 와서 강감찬이 되었다고 한 했다.
    인문/어학| 2013.06.23| 17페이지| 2,500원| 조회(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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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일-한국문학통사] 2권 7장 요약 및 정리 (나눔고딕체)
    7. 중세후기문학 - 제1기 고려후기7.1. 무신란-몽고란과 문학7.1.1. 시대변화의 추이시대적 상황1170년(의종 24년)에 무신란이 일어나고, 1258년(고종 45년)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무신정권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문신이 결정적으로 몰락한 탓에 문신이 담당하는 문학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무신란이 일어난 다음에도 문학활동은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 기간 동안에 등장한 문인들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왕성한 창작의욕과 날카로운 비평의식을 가지고 문학을 새롭게 해서 문학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배경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먼저 무신란 이전의 문인과 무신란 이후의 문인은 동질적인 문인이 아니다. 문인의 성격과 구실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역사의 전환을 겪으면서 새로운 문인층이 등장해서 다음 시대의 문학을 이룩하는 것이 문학사의 당연한 과정이다. 무신란은 그럴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무신란이 일어나자 신라 이래의 오랜 인습을 지켜오며 권력을 독점하고서는 안일을 도모하는 데 몰두했던 문벌귀족이 몰락했다. 특권의식이나 형식주의를 특징으로 삼는 문벌귀족의 문학이 청산되었다.신진 사대부의 등장무신정권 담당자들은 스스로 새로운 문학을 일으킬 수 없었다. 파괴를 하는 데 그치고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파괴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새로운 문학의 창조자는 무신란 파동이 지나간 뒤에 스스로 일어났다. 문벌귀족이 국권을 장악한 동안에는 진출이 억제되었던 지방 향리 또는 중소 지주 출신의 문인들이 중앙정계에 등장해 새로운 문학을 이룩하는 주체가 되었다. 신흥사대부 또는 신진사류라고 일컬어지는 그 사람들이 무단통치 동안에 등장하기 시작해, 무신정권이 무너진 다음에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특권층인 권문세족과 다투다가, 마침내 조선왕조를 이룩하기에 이르렀다.새로운 문학 경향무신란으로 기존의 지배체제가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무신정권 참여자 가운데 천민 신분에서 올라간 사람도한 신의를 창출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으뜸가는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므로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택해 용사를 정묘하게 하는 데 힘써, 고인의 표현을 가져와서 새롭게 활용하자고 했다.탁물우의- 사물이나 형상에 의탁하여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 형체가 없는 마음과 고인에게서 가져온 말을 연길시키면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物)이 필요하다. 물은 경물이나 사물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심이냐 물이냐 하는 논란에서 단연코 심을 택하고 물을 배격했지만, ‘심’이 ‘언’을 얻어 밖으로 나올 때에는 ‘물’이 필요하다. ‘물’을 매개로 하고 소재로 삼아야 ‘심’에서 뜻하는 바가 형체를 갖출 수 있다.7.2.2. 이규보의 주장?이규보의 : 이규보 이라는 시화집을 지었다.문학론의 전개논리를 제대로 갖춘 논설을 써서 원론적인 문제에 깊숙이 파고들고, 때로는 시를 써서 시론을 전개했으며, 공격하고 주장하는 어조가 너무 격해지면 풍자문을 쓰기도 했다. 시화의 범위를 넘어서서 문학론 전개의 다양한 방법을 개척했다.철학하늘은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인 것들의 본체이다. ‘기’는 객관적인 것을 사람이 나누어 가진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는 하늘에 근본을 두어 배워서 얻을 수 없다고 해서 기의 객관적인 성격을 말했다. 그런 ‘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갖추었다고 해서, 기질이나 개성을 ‘기’의 양상으로 이해하도록 했다. 각기 지닌 ‘기’에 따라서 시로 나타낼 뜻이 마련되고, 나타낼 만한 뜻이 있어야 말을 연결시키는 표현에 힘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원리와 절차를 무시하고 말이나 다듬어 좋은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이인로와 이규보이인로이규보시를 지어 고인이 이르지 못한 신의를 창출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누구나 목표로 삼았다. 이인로와 이규보가 그 점에서는 견해차가 없었다. 그런데 이인로는 용사의 기법을 차선책으로 삼아 마땅하다고 하고, 이규보는 새로운 말인 신어를 사용해야 신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이규보는 용사의 가치를을 광범위하게 보여주어 설득력을 확보했다. 한문 문장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다양한 문체를 갖추어, 서로 다른 문화형태가 각기 그것대로 지닌 특성이 손상되지 않게 했으며, 우리말의 어순과 어휘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친근하고, 비속하고, 미천하다는 데 진실이 있다는 주장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다채롭게 제시했다. 는 완성된 체계 같은 것을 거부했다. 짜임새가 워낙 느슨해서 자료를 보태도 그만이고 빼도 지장이 없다. 저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고 해석과 평가를 자제했다. 인용한 문헌을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문체가 각기 다르고 시점이 통일되어 있지도 않다.- 사대부 문인들은 제대로 된 고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할 때, 일연은 규범에서 벗어난 변격한문을 즐겨 사용했다. 전대의 관념과 수식을 거부하는 중세후기의 새로운 세계관을 나타내는 공통된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각기 상이하게 나타났다. 다른 선승들이 한시의 격식을 불편하게 여기고 우리말 노래에 접근하고자 한 것과 같은 시도를 일연은 산문에서 하면서, 글과 말이 이원화되어 있는 폐단을 한정된 범위 안에서나마 극복해보려고 했다.주체성에 대한 인식- 민족 주체성 인식의 논리: 불교는 유교에 비할 바 없이 광대한 영역에 자리잡고 유교의 폐쇄된 사고방식을 넘어선다고 했다. 유교 대신에 불교를 내세워 자기중심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을 다각도로 전개했다.★ 고려말에 등장한 새로운 사상 신유학과 선종이 각기 택한 문체 혁신의 방향이 달랐다.신유학꾸밈이 없으면서도 알찬 고문을 확립해서 현실과 근접된 정신세계를 이룩하고자 했다.선종우리말에 가까운 한시문으로 일상적인 차원의 절실한 체험을 살리고자 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신유학의 방향이 지배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뒤의 방향은 일단 꺾이다가, 훈민정음 창제에서 부정이 되는 방식으로 관철되었다.7.4.4. 와 그 이후의 작업영사시역사를 읊은 시를 영사시라고 했다. 영사시는 서사시와 구별된다. 어느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관된 사건을 전 기술의 역량에도 문인으로 필요한 소양까지 보태 중앙정계로 진출한 신흥사대부가 그런 사람들이다.?가전의 갈래적 특성- 가전의 출현은 함께 나타난 또 하나의 교술문학인 경기체가와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경기체가와 가전은 둘 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특별한 표현 방법을 갖추어 나타낸 전에 없던 비실용적인 문학갈래이다. 둘 다 특별한 표현을 갖추면서 실용적인 용도는 없어 사물에 대한 관심의 세계관적 의의를 강조했다.- 가전은 내용이나 어조가 심각하지 않은 희필이다. 그래서 실용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사서에 오르는 전을 쓰는 엄숙한 자세나 경직된 태도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사실을 기록해 남기는 부담에서 아주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자유롭게 나타냈다. 그러나 접근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상당한 예비지식을 가지고 겹겹의 구조를 헤쳐 나갈 수 있는지 시험한다.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경고한다.- 사물의 속성을 말하면서 관련이 있는 고사를 잡다하게 열거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고, 논의의 차원을 높여 사물과 사람이 별개의 존재일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일생을 적용해 사물의 속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사물의 쓰임새를 비유로 삼아 사람의 처지를 문제 삼기도 하는 이중의 작업을 한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전형적인 구조가 작품에 따라 각기 특이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① 임춘화려한 공상이나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처지를 나타냈다. 이규보와 상통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물을 중요시하면서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점이 달랐다.- 술을 의인화 → 국순의 행적이 사람과 연관 됨.- 숨어 지내면서도 숭앙을 받는 것이 벼슬을 하다가 망하는 것보다 낫다 하고, 정치의 혼미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불행하게 된 자기 처지를 합리화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돈을 의인화- 돈이 벼슬을 하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자기는 어렵게 살 수밖에 없다고 개탄하고, 나라를 망치는 무리에 대한 불만을 래도 있어 그 자체로 즐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예종이 지었다는 와 같은 작품으로 향가의 잔존형태의 하나로 추정절구방아를 둘이서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밥 먹는 것이 창피스럽게 되었다고 하면서 노동한 성과의 분배가 잘못되고 있는 불만을 나타냈다고 생각된다.- 형식상의 공통점와 은 세 토막 형식으로 보는 편이 적합하다. 세 토막 형식은 안정감보다는 율동감이 두드러지고, 가락이 다채로운 노래에 쓰인다. 장이 나누어져 있는 긴 노래뿐만 아니라, 한 장에 해당하는 길이만 가진 짧은 노래에서도 세 토막 형식을 즐겨 사용한 것이 속악가사의 특징이다. 민요 선택을 다르게 해서 향가와는 이질적인 율격을 이룩했다.- 내용상의 공통점와 은 어버이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아름다운 행실을 권장하는 데 적합하다고 할 만한 노래이다. 그런 것들을 민간에서 찾아 궁중에서 불러 풍속 교화에 써야하는 정책을 고려후기에 구태여 폐기하지 않아, 해당 사례가 더러 남아 있을 수 있다.- 차이점그러나 는 다른 일면을 살피면 지배질서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으며, 에서 말한 어머니의 사랑은 도덕을 내세우는 교화와 다르다.어머니를 여읜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부른 것 같으나, 아버지를 호미에, 어머니를 낫에다 견준 것을 보면, 자라서 농사를 짓는 시기에 이르러서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에 사무친다는 사연을 나타냈다고 보는 편이 적합하다.?어떤 부류에 속한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노래이다. 장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나 과 같으나, 길이가 길다. “아소 님하”라는 감탄구를 여음이 아닌 본문에다 넣어 결말을 마련한 점에서 사뇌가와 상통한다. 줄을 나누고 토막을 분간하는 일정한 규칙이 보이지 않은 채 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와 같다. 진실 되고 절실한 사랑의 노래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는 에 장을 나눈다는 표시를 하고 실어놓았으나, 장과 장 사이에 여음이 삽입되지는 않았다. 율격이 특이하다. 네 토막씩 석 줄로 이루어져 광의의 시조라고 할 수 문이다.
    인문/어학| 2013.06.23| 34페이지| 3,000원| 조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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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일-한국문학통사] 3권 요약 및 정리 (나눔고딕체) 평가A+최고예요
    9.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 - 제1기 조선후기9.1. 민족 수난에 대응한 문학9.1.1. 시대변화의 계기-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1기이다. 이 시기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고 그 나름대로의 뚜렷한 특징을 가진 한 시대이다.?시대적 특징임진왜란, 병자호란 극복의 이유와 그 의미① 충성이 절대적이라고 하는 쪽에서는 국왕이 국경을 넘지 않고 왕통이 이어진 것이 하늘의 도움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② 왕조와 민족을 갈라서 생각하면, 왕조의 지배체제가 안팎으로 한계를 들어냈어도 민족의 역량이 살아 있어 외침을 물리치고 문화공동체를 수호할 수 있었다.→ 집권층이 무력해지자 그보다 하층에서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세력이 대두했다. 전란 당시 의병에게서 단서를 보인 하층의 성장과 항거가 확대되었다.시민 계층의 성장- 상공업에 종사해 돈을 버는 시민이 등장했다. 신분사회에서 계급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의 도전을 막고 신분제를 지켜 신분과 계급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되게 나타났다.- 조선왕조는 신분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다가, 시민이 양반의 신분을 얻고 능력 있는 농민도 그 뒤를 따라 양반의 수가 전인구의 과반수가 넘게 늘어나 신분제가 무력하게 되었다.?시대적 변화에 대한 집권층의 대응양상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배층은 전란의 상처를 회복하고 안으로 체제 비판을 막는 방안으로 일본이나 청나라 오랑캐에 맞서서, 조선왕조야말로 중세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힘써 주장했다. 그 때문에 근대 지향의 문화 운동까지도 그런 가치관의 전제를 일단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철저한 반론은 아주 힘들게 전개되거나 격렬한 양상을 띠어야만 했다.?문학의 양상- 전란을 겪으면서 이룩된 각계각층의 수많은 기록, 증언, 술회, 상상은 문학사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게 했다. 엄청난 시련이 닥치자 지금까지 존중하던 격식을 버리고, 보고 느끼고 통탄한 바를 생생하게 나타내는 새로운 표현을 있다.→ 집권층의 위세를 자랑하는 관인문학을 재흥하려면 문학론을 정비하고, 작품 선집을 편찬할 필요가 있었다.김석주 점차 생기를 잃고 있는 사부를 재인식하자고 주장하면서 시선집을 편찬했다. 서인 계통 민운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수록했다.김창협- 보수적인 도학을 기본 입장으로 택했으면서도 그동안 제기된 비판적인 성향의 문학을 가능한 대로 포괄하려는 절충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정론과 천기론을 아우르려고 했다.- 마음껏 진출할 기회를 얻고, 자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백성의 어려운 처지에 관심을 보인 사연이면서, 권럭 쟁패의 좌중에서 자기대로 느끼는 고립감이나 무력감의 간접적인 표현이기도 하다.김창흡 연작시. 주변 경물에서 얻은 차분한 감회를 차분한 어조로 나타내면서 현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이병연가까이 있는 소재를 무엇이든지 가져와 진솔하게 표현해 다작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조영석칩거하면서 사소한 사물을 유심히 살피면서 잔잔한 감동을 발견하는 데 몰두했다.9.2.5. 사상의 근거에 관한 논란서인정권의 문인들이 고문과 시 양면에서 정통 한문학을 재확립하고자 해서 문학을 둘러싼 시비가 일단락 난 것은 아니다. 권력에서 밀려난 다른 당파 특히 남인은 반격을 시도하면서 서인정권이 겉으로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유학의 근본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나무랐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강경한 비판을 하는 이단사상이 다각도로 나타났다.→ 문학의 독자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문학의 사상적 근거에 관한 논란이 한동안 전면에 부상했다.허목- 후대의 번거로운 논설을 피하고 상고시대 유학의 근본정신을 재확인하자고 주장했다. 주자의 권위를 공자를 내세워 거부하는 논법을 펼쳤다.- 참다운 선비의 모습을 찾는 것을 긴요한 과제로 삼아 지었다. 기이한 재주를 지녔으면 자취를 숨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김시습, 정렴 등 몇 사람의 생애와 처신을 재평가하면서 말했다.→ 이라는 대목에서는 세상에 나왔다가 문득 자취를 감추거나 원통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다루면서, 부당한 권력에 대한 깊은 반감을대적인 권위를 비판하는 방법을 원시유학 재흥에서 찾으려 했다. 에 대한 재해석을 다각도로 시도해 문학론 혁신의 논거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했다.허균, 김만중, 박지원오랜 권위를 버리고, 당대에 새롭게 이루어지는 문학을 옹호하는 논리를 찾았다. 문학은 시대마다 달라지게 마련이라 하고, 현실의 생동하는 모습을 바로 표현하는 작품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했다.박지원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의 문집에 붙인 서문에서, 오랜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을 다채롭고 대담하게 전개했다.홍대용 파격적인 견해를 거침없이 내놓으면서 문학관을 온통 바꾸어놓았다. 이하 위항인들의 시집의 서문과 발문지체 낮은 사람들이 한시집을 내는 데 대한 반감을 의식해, 당시 사대부 문단에서 커다란 비중을 가지고 있던 대가들의 서문을 받아서 싣고, 자기네가 쓴 서문 또는 발문도 여럿 넣어, 자기네 시작 옹호가 새로운 문학론이게 했다. 벼슬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하는 한시 창작은 천기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수한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을 폈다.김천택 위항시인들의 서문을 앞세우고 자기 자신의 서문과 발문을 보태서 많은 말을 했다.- 책의 앞뒤에 붙이는 서(序)와 발(跋): 책을 소개하고 칭찬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그 두 가지 글에서는 일반적인 원리에 비추어볼 때 다소 예외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다.허균 역대 한시를 자기 관점에서 거론 동시대의 작품을 시비의 대상으로 삼았음 작품선집김득신 시가 관념적으로 경색되는 것을 비판남용익 작품 평가의 기준 재확립신경준시의 원리와 창작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시도- 시화: 시화는 논설과 달라 일반론을 전개하는 부담을 갖지 않고, 서문이나 발문처럼 특정 작품집에 대한 해설로 국한도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홍만종- 우리 한시의 내력과 변천을 거론- 고려 이래의 시화를 널리 모아 그 서문에서 문학비평의 의의에 대한 자각을 나타냄임엽- 역대의 시화를 집성- 문화의 전반적인 양상을 다루는 종합적인 저술에서의 문학론 전개이수광이익이규경, - 만필: 아주앙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19세기 전반기의 판소리 명창- 송흥록 (전라도), 고수관 (충청도), 염계달 (경기도), 모흥갑 (경기도로 추정)→ 전라도에서 생겨난 판소리가 중부지방으로까지 널리 알려지자 광대의 출신지가 다양해졌던 변화가 확인된다.공연 장소판소리광대는 농촌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장터에서 청중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 형편에서 고생을 하면서 이름을 얻으면, 부잣집에 초청되어 갔다. 지체 높은 사람들도 부를 만큼 인정받고, 관가에서 공연하는 기회를 얻었다.유파소리를 하는 기풍의 차이가 서로 달라 여러 유파로 나누어졌다.서편제-전라도 서쪽 지방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날치는 무속에서 유래한 요소를 많이 지니면서 하층의 인기를 끄는 소리를 했다.동편제- 송홍록이 판소리를 격조 높은 예술로 가다듬기 위해 애썼다.강산제- 박유전이 양쪽의 기풍을 합쳐 만든 또 하나의 유파.더늠판소리는 어느 대목을 독특하게 부르는 자기 장기인 더늠이라는 것을 마련해야 명창이라고 평가될 수 있었다. 열두 마당으로 늘어난 판소리 사설이 광대에 따라서 다르게 불리어지고 개작이 첨가되면서 문학적으로 더욱 풍부한 내용을 지니게 되었다. 개작을 할 때에는 유식한 문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9.5.5. 소설과 관련된 생업?한국소설의 특징: 소설을 창작한 작가를 찾으면 문학 담당층 확대의 또 다른 국면을 확인할 수 있다.특징작가 이름이 없는 것은 한국 고전소설의 특징이다. 그 당시 소설의 독자는 여성이었다. 한국소설은 여성을 위한 독자소설인 것이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랐다.작가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다. 여성 독자는 작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대부 신분일 때에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여성 독자에게 환영받을 소설을 보수로 받고 쓰는 것은 체면이 많이 손상되는 일이어서 작자가 자기 이름을 내놓을 수 없었다.무명의 작가가 취미 삼아 소설을 쓴 결과, 작품수가 8백종 이상 되고 100책을 넘는 것들까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원고료에 해당하는 돈을 받고 써서 준 염려해 한문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시조의 내용을 한문으로 옮기기만 하고, 번역 또한 시가 되어 시조의 형식을 짐작할 수 있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이형상시조를 한시로 옮기면서 한시 고유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았다. 번역시로 시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시조의 평가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고, 번역시가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의의를 가진 작품일 수 있게 하자는 목표는 설정하지 않았다. 원작의 모습을 충실하게 전하는 것이 번역시의 임무라고 생각했다.홍양호번역시가 작품이 되게 하려고 했다. 시조에 상응하는 한시의 형식은 칠언절구라고 판단했다.신위- 번역시 이름을 라고 해서 고려 때 이제현이 사용한 용어를 재현했다. ‘소’는 짧은 형식, ‘악부’는 우리말 노래를 옮겨놓은 한시이다. 이제현이 민요를 한역할 때 사용한 칠언절구의 짧은 형식을 시조 한역의 고정된 형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명시한 말이 ‘소악부’이다.- 우리말로 된 노래는 평측에 맞지 않고 운자를 맞출 수 없으므로 격조를 높이기 위해 소악부를 짓는다고 했다. 한시로 번역해서 결격사유를 보완한다는 말이다.장단기구시조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해서 칠언절구라는 완결된 형식에 맞도록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산압기운시조의 가락이나 운치를 시조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옮겨다놓는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신위가 에서 시조를 선택하고 한역한 방식에는 이념적 긴장을 풀어버리고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소론 특유의 성향이 나타나 있다.정현석 당시 유행하던 노래와 춤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해 편찬했다. 국문시를 한역해 가치를 높이자는 것만은 아니었다. 한역을 국문시가 원문의 어구 이해를 위한 주석으로 삼고자 했다.유진한 이른 시기 판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대가 들려주는 사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 개요를 재정리해 한시를 만들었다.→ 국문시가가 많아지고 인기를 더해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한역이 나타났다. 새롭게 등장한 인기공연물은 판소리의 한역을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하다.9.7.다.
    인문/어학| 2013.06.23| 89페이지| 5,000원| 조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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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자문화 part + 비판점
    쓰기와 사고력이 갖는 관련성에 대하여Ⅰ. 들어가며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타인의 생각을 똑같이 말이나 글로 이해한다. 문자문화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쓰기 행위를 자신의 의식 속에 내면화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쓰기 행위를 단순히 구술로 발화되는 언어를 문자로서 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물론 기본적으로 쓰기는 말을 글로 옮기는 행위이지만 그것이 쓰기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쓰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을 재구성하고 결정한다. 구술문화권이 사람들이 정형화된 패턴으로 지식, 기술을 조직하고 기억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듯이, 문자문화권의 사람들 역시 쓰기의 고유한 특징이 그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 보고서의 핵심이자 결론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문자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조직하고 재구성하는지를 월터 옹의 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Ⅱ. 쓰기를 통한 의식의 재구성쓰기는 사고를 재구성한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말하고 듣는 능력을 타고 나는데, 쓰기는 이러한 사고를 재구성 해준다는 말이다.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은, 선천적인 능력 보다는 쓰기 기술에 의해서 새로운 사과과정을 형성한다.쓰기는 흔히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언어 혹은 자율적인 담론이라고 일컬어진다. 구술언어에서는 화자, 청자, 말하기 환경과 같은 다양한 상황맥락(여기에서는 context를 상황맥락이라 부르기로 한다.)에 영향을 받지만 쓰기에는 그러한 것들의 영향에 크게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문자언어는 구술언어와는 달리 발화 상황에서 직접 묻거나 논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으며 그것을 쓴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문자가 발명되고 쓰기라는 행위가 시작되었을 때, 고대 아테네 시대를 살았던 플라톤은 쓰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언어, 지식 등을 정신 밖에 표기하여 설정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쓰기는 비인간적이고 하나의 사물이며 만들어낸 인간의 내적인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 말에 관련될 때 가장 그러하다. 그러한 변화는 향상될 수도 있으며 쓰기는 의식을 높인다. 자연스러운 환경으로부터의 일탈 즉 쓰기 행위는 인간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인간 생활을 충실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쓰기는 기술이고 기술은 인공적인 것이지만, 이 인공성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문자’로 할 수 있는 ‘쓰기’에 대한 수행을 배움으로써 쓰기를 내면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쓰기를 스스로의 일부로 삼아 내면화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풍부해지고, 정신은 확장되며, 그 내적인 생의 밀도가 짙어질 수 있다.쓰기는 단순히 기호론적인 표시가 아니다. 쓰기는 ‘발화’의 표시이며 누군가가 한 말 또는 말한 것으로 상정되는 말의 표시이다. 우리가 오늘날 보통 쓰기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한정적인 의미의 것이다. 쓰기는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서 인간의 의식을 독창적이고도 결정적으로 비약시킨다. 이는 쓰기가 단순히 기호론적인 표시가 아니라 시각적인 표시의 코드체계가 발명되고 그것에 의해서 쓰는 사람이 정확한 말을 결정하여 텍스트를 마련하며, 읽는 사람은 그 텍스트에서 그 말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이다.이러한 완전한 의미에서의 쓰기에 의해서 코드화된 시각적인 표시는 말을 사로잡게 되고, 그 결과 지금까지 소리를 통해 발전해 온 정밀하고 복잡한 구조, 지식체계의 특수한 복잡성이 그대로 시각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나아가서 그러한 시각적인 기록으로 해서 그보다 훨씬 정교한 구조나 지식체계가 산출될 수 있다. 쓰기는 단순히 말하기에 첨가된 것이 아니다. 쓰기는 말하기를 구술-청각의 세계에서 시각이라는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이동시켰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생활 구조를 고쳤다.그렇다면 이러한 문자문화의 ‘문자성’이라는 것의 초기 모습은 어떠했을까? 쓰기는 초기에 비밀스럽고 마술적인 힘을 갖는 도구로 간주되었다. 이는 쓰기로 인해서 말에 영속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문자성이 한정적으로만용을 제공했다. 왜냐하면 구술증언에 대해서는 고쳐 물을 수도 있고 반론을 제기시킬 수도 있지만, 텍스트에 대해서는 그러한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쓰인 문서의 진위여부는, 쓰기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대상에 의해서 종종 증명되었다. 문서에 곁들어져 있는 칼, 검과 같은 상징적인 증여물이 문서의 신용도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가 지나고 나서, 쓰기로 인해서 도표나 리스트와 같은 것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말로 된 자료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데에는 쓰기의 특유한 조직체계가 반영된 것이다.텍스트 속에서 말과 그 말을 작성하는 작자는 구술발화와는 달리 다양한 상황맥락이 크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고립되어 있다. 구술언어에는 억양, 어조와 같은 반언어적 요소가 반드시 결부되어 있지만, 쓰기에는 ‘구두법’과 같은 최소한의 영역에서만 그러한 표현이 가능하다. 이렇게 쓰기에서는 상황맥락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쓰기를 할 때에는 독자를 머릿속으로 상정하여 쓰기 행위를 해야 한다.분명히 초기의 쓰기에서는 구술문화의 영향이 많아, 독자가 상상해서 이야기 장소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을 해두었다. 예컨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대화에는 철학적인 제재를 대화형식으로, 중세에는 철학적-신학적인 텍스트를 반론과 답변의 형식으로 나타냈다. 독자는 이렇게 대화, 토론 형식으로 된 텍스트를 읽어 가면서 자신이 그 텍스트 안에 참여하고 있거나 엿듣고 있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이러한 현상은 점차 사라져갔고, 쓰기의 정신역학이 점차로 이야기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쇄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쓰기를 내면화함에 따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모든 언어와 사고는 어느 정도 분석적이라는 점에서 구술언어도 분석적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문자언어는 그 분석을 한층 정밀하게 한다. 문자언어는 구술언어에 비해 한층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자언어에는 어떠한 몸짓, 얼굴 표정, 억양, 실제의 청자도 없기 함한다. 기록되지 않은 방언들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지만, 기록방언은 여타의 방언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방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과 지식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방대한 양의 어휘가 들어 있다.기록방언은 쓰기로 해서 그 어휘를 풍부하게 갖기 시작했지만, 그 풍부함은 인쇄의 덕택으로 충분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 기록방언의 자원이 널리 이용될 수 있게 된 것은 사전의 덕택이기 때문이다. 쓰기의 역사상 아주 초기부터 다양한 종류의 제한된 단어의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쇄가 충분히 확립되지 않는 동안은 어떤 언어의 단어에 관해서도 전체적이고도 포괄적인 설명을 시도한 어떠한 사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전은 구술문화의 세계와는 한없이 떨어져 있다. 쓰기와 인쇄가 의식 상태를 바꾼다는 것을 이만큼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은 없다.기록방언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통속적으로 올바른 문법과 관용은 기록방언 그것의 문법과 관용을 말하는 것이어서, 그 밖의 여러 방언의 문법과 관용은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질서라는 개념은 상당 부분 시각에 감각적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기록방언이 쓰이고 나아가 인쇄된다는 사실은 언어를 질서 속에 간직하는 특별히 규범적인 힘을 그 기록방언에 부여하는 한 원인이 된다.구술문화권에 문자가 도입되면서 문자문화가 시작되었고, 그로인해 온전한 의미에서의 구술문화는 파괴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쓰기와 구술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서양의 ‘수사학’과 ‘학술 라틴어’이다.수사학은 본래 대중 앞에서 말하는 기술로 구술적인 연설의 기술이어서 설득과 설명을 위한 것이었다. 고대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솜씨로 대중 앞에서 노래를 했다. 그러한 솜씨가 기술로 조직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구술문화권에서는 기록의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지식이나 기술을 체계적으로 조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사학의 기술은 비록 구술적인 말하기와 관련된 능력이라 할 학교의 규칙이 정해짐에 따라서 라틴어는 학술 라틴어, 즉 쓰기에 의해서 완전히 통제된 언어가 되었다. 그에 반해서 다양하게 분화된 일상어는 구술적인 말로서 발전해 갔다. 결과적으로 라틴어는 소리와 시각의 분열에 직면했던 것이다.이러한 시대에서 학교에 다니는 것은 대부분이 남자였고, 이로 인해 학술 라틴어는 남성만이 쓰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라틴어는 학교 교육과 같은 공적 담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술 라틴어는, 유아기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과는 달리, 유아기 이후 의식적으로 배움으로써 습득되었다.그렇지만 역설적으로 학술 라틴어는 구술성과 문자성에 관련되어 있었다. 학술 라틴어는 쓰기에 의해 통제되었지만, 구술성과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고전주의식 교육의 이상은 유능한 저작자가 아니라 대중 앞에서 말을 잘 하는 훌륭한 웅변가를 양성하는 데에 있었다. 학술 라틴어의 문법과 어휘는 근본적으로 문자 이전의 구술 세계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학술 라틴어의 체계가 구술문화에서 유래했고, 그 당시의 교육 목표가 웅변가를 양성하는 데에 있었다는 점을 보면, 학술 라틴어가 구술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학술 라틴어는 공적 담론에서만 사용되던 언어였기 때문에, 언어의 가장 깊은 뿌리를 내리는 유년기 생활에서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리고 학술 라틴어는 같은 유럽 안에서도 표기는 같았지만 발음이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학술 라틴어는, 쓰기가 담론을 고립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고립화의 결과로 학술 라틴어가 다른 언어에 비견할 데 없는 생산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두드러진 실례이다. 쓰기는 지식의 주체와 지식의 객체를 분류하여 객관성을 세우는 한 원인이 된다. 학술 라틴어는, 사람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강하게 끼치는 모국어의 심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간 미디어 속에서 지식을 채움으로써, 더욱 크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인간 생활 세계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또 중세다.
    인문/어학| 2013.06.23| 8페이지| 2,500원| 조회(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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