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일까 아니면 내가 갖지 못함에 대한 질투일까‘SBS ‘그것이 알고싶다’ 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시청하곤 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하면서 인간의 이기성과 탐욕에 혀끝을 찰 때가 종종 있고, 또 한편으로는 사회가 점점 병들어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각각의 주제는 마지막에 공통의 결론에 거의 맞물리게 된다.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우린 이러한 소재에서 분노를 느끼고 그것이 사회적 불만의 표출로 까지 일어나 하나의 사회 합의를 이끌어내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행동이라는 것으로 이끄는 힘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분노의 출발점, 그리고 보편적으로 느끼는 다시 말해, 비슷한 부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느끼는 그 분노라는 감정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그리고 그런 분노의 감정에서부터 출발한 사회의 불만 표출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이러한 분노와 그런 분노의 결과물들이 혹여 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을 누군가 가지고 있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깐, 사회를 변화시켜 보자는 그러한 움직임이 꼭 옳음, 선으로 반드시 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지지 못하였는데, 남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질투라는 감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느끼곤 하였다.먼저 분노는 의식의 진행이나 관념의 유지가 방해되었을 때 일어난다. 즉, 윤리, 원칙, 준칙, 당위, 약속, 기대와 같은 ‘관념’을 어겼을 때 우리는 분노한다. 내가 믿고 사회의 대부분에서 믿는 ‘당연한 관념’을 위배한 이들은 분노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가장 최근 이슈인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과 그리고 이 사건에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의 책임감에 대해 분노를 하고, 그리고 일간베스트라는 곳에서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 누군가를 자신들의 단지 웃음거리로 전락시켜 버리고 대중을 놀랍게 한다. 또한, 이러한 국민들의 분노는 정치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국내를 넘어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여학생들 납치사건에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하며 분노한다. 이러한 예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믿고 있고 지키고자 하는 생각에서 서로 어긋나면 분노를 하게 되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믿음을 기반으로 한 자기 정체성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가장 극도의 분노를 내보이곤 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삶과 분노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상은 사회가 늘 내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조화로운세계로서 존재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내가 그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에 따라 교육받고, 공부하고, 일하고, 사회에서 지정한 적정 시기에 따라 진학, 취직, 결혼, 출산, 은퇴 등을 수행 했을 때 그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서 ‘행복과 안정’을 제공한다. 나의 정체성 추구는 사회에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며, 나의 가장 좋은 삶은 이 사회가 제시하는 가장 좋은 제안과 일치한다. 그런 이상으로서 사회는 내 존재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된다.(p28) 우리는 단순화된 이 과정을 무의식 적으로 따라하게 되고 마치 이것이 최고의 방향인 것으로 인식하여 여기서 조금만 엇나가도 두려워하고 의문을 가지고 더 나아가면 많은 불안한 상황들을 몰고 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이러한 방향들을 가는데서 조금 지치게 되면 과거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를 비교하게 된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에는 말이야~ 라는 말을 사용하며,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을 것이라고 자기가 보고싶고 그렇게 믿고 싶은 부분만을 골라내 생각하고 합리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이전에 비해 현대 사회에는 선택의 자유가 훨씬 넓어졌다. 단순히 말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의 분야와 그에 대한 방법도 다양해지고 개인은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연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큰 이점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개개인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현재 삶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고 그들 사이에서 의견을 모아 그것을 사회로 드러낸다. 그리고 현대는 그 전달의 속도가 인터넷의 발전과 특히나 sns와 카카오톡 등과 같은 다양화된 수단을 통해 확산되고 공감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 속에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은 ‘돈’에 의해 합쳐질수도, 나눠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있었던 선거를 예로 들면, 집값이 올라간 지역은 여당이 압승을 했고, 집값이 떨어진 지역은 야당이 압승을 했다. 분노는 다른 지역의 집값이 올랐을 때 내 집값이 떨어지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 역시 여당과 야당이라는 두 축의 순환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정치적인 행위인 투표가 ‘정당한 관념’ 구축(올바른 사회 실현)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정당한 관념을 요구하는 분노가 합리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 반면, 삶의 실패나 열등감에서 생가는 분노는 무차별적 대상을 향한 증오로 이어진다고 이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정당한 관념’이 어떠한 것이고, 분노와 증오는 과연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한가지 개인적인 경험을 들면, 한 뉴스 기사에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에 다니는 직원들이 만약 퇴직금을 받지 않고 회사를 그만 두면 그 직원의 자식을 그대로 채용해주는 제도가 있다. 이것과 동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한국의 대기업에서 종종 이런 유사한 형태로 혜택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기사는 이러한 것을 비판하면서 취업난 속에서 어렵게 살아나가고 있는 젊은이 들을 옹호 하였고, 댓글에서는 부(엄청난 부는 아니지만 사회의 중상층에 속하는)의 대물림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러한 기사와 댓글을 접하면서, 섣부른 일반화일수도 있겠지만, 이 기사에 분노하고 비판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마냥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이런 기회가 있다면 나는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만큼 이러한 현상이 남은 가졌지만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이고,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이 책을 읽고 있으면 돈을 추구하는 삶, 안정된 삶, 일반화된 삶, 누군가 정해준 삶, 그리고 그러한 것이 획일화된 교육의 문제로까지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쓴이는 사회의 병폐만을 보고 얘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수치화된 점수에 집중을 하고,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 양성소로 전락한 이 사회가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문제점 속에서도 개개인의 원하는 목표와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그것이 대기업에 가고 싶은 꿈이든, 공무원을 하고 싶은 꿈이든 그 자체만을 바라보고 아 사회는 이렇게 획일적으로 되어가고 있고, 대부분이 만들어 놓은 행복에 집중을 하며 살아 간다 라고 단순화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대기업에 들어가서 멋진 비즈니스 맨이 되는 것이 꿈일 수도 있고, 나라 일을 함으로써 보람을 얻고 그 속에서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밑에서부터 만들고자 노력하는 꿈일수도 있다. 사회의 단편만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사람들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각자 나름의 삶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마거릿 대처’(1925. 10. 13~2013. 04. 08)서론2013년 4월 8일,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던 그녀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은 애도하였고, 오바마는 “자유투사 잃었다” ,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뛰어난 지도자였다. 많은 여성의 본보기가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에 애도를 표시했다. 그녀는 ‘대처리즘’ 이라는 단어를 형성하며 많은 정책적 분야에 있어서 영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3번 연임이라는 영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기록도 남겼다.1987년 9월의 인터뷰에서는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개인이 있을 뿐입니다. 개인은 반드시 스스로를 도와야 하며, 누가 당연히 뭘 해주리라고 기대하면 안됩니다” 라는 말을 통해 그녀가 이러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 계기와 이러한 생각들이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사회는 그녀의 정책들을 어떻게 반응했으며, 영국사회에 끼치는 그녀의 영향과 그 결과에 까지 이르는 글이 될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애도하되, 정책은 비판해야 한다는 말 처럼 그녀는 많은 업적도 있지만, 그에 따르는 많은 비판도 받았던 것이 마땅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처리즘’은 어디에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이 글을 시작해보도록 하겠다.본론식료품집 딸, 어린 대처 마거릿 힐다 로버츠그녀는 영국 중부의 작은 마일인 그랜덤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는 식료품점을 경영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마거릿이 두 살 때 시의원에 당선되고, 시의 여러 직책을 거쳐 그녀가 대학에 진학할 즈음에는 그랜덤 시장에 취임했으므로 대처가 평범한 식료품집 딸이었던 것은 오해이다. 그래도 알프레드는 본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지만 노력 끝네 점원으로 일하던 식료품점의 주인이 되고, 다시 정치에 입문해 시장까지 된 사람이었기에 여러 사람들의, 그리고 딸의 큰 존경을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마거릿을 자신의 정치활동을 도울 ‘운동원’으로 키웠다. 그가 1935년의 총선정치철학에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인다.필요한 말만 하는 과학도1943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 화학을 전공하면서도 바로 정치에 참여하려 했으나 당시 대학가는 진보파가 절대로 우세했기에, 비교적 소수의 동아리인 옥스퍼드 보수협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당시 옥스퍼드에는 마거릿 같은 중류 출신은 드물었고, 어려움이라고는 조금도 모르고 자란 상류층 자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말끝마다 민중과 혁명을 이야기하며, 체제를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설치는 일을 마거릿을 차갑게 보았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부와 명예, 독실한 신앙, 가족과 전통에 대한 애착. 미국의 신보수주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공유했던 특성과 신념을 그녀 역시 가졌고, 그 가치를 위해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맞섰다.마거릿 대처의 이름으로 정치에 등장하다마거릿은 1948년에 옥스퍼드를 졸업했는데, 그 해 보수당의 연차대회에 참석했다가 보수당 클럽 회장의 눈에 들어 다트포드의 보수당 후보로 1950년에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다. 여성 후보로서는 전국 최연소였고, 보수당 후보로는 유일한 여성 후보였다. 비록 선거에서는 떨어졌지만 이때 만난 데니스 대처와 1951년에 결혼하게 된다. 1955년, 변호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자 했으나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하는 인식에 젖은 보수당 간부들 때문에 계속해서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1958년 런던의 핀츨리 선거구에 입후보할 수 있었다. 이 지역구는 보수당의 세력이 큰데다 대처처럼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이 많은 곳이어서, 대처는 마침내 1959년 꿈에도 그리던 국회의사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대처는 정치인으로서 유머감각이라고는 없었고, 말도 거창하고 화려한 표현을 쓰지 않고 필요한 말만 했다. 그래도 “필요한 말만 하는” 점, 과학도답게 연설에서 반드시 통계수치와 계량적 지표 등을 내세우며 듣는 이의 신뢰감을 높인 점,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이면서도 당차고, 열정적이고, 강철 같은 의지를 내보인 점들이 그녀를 높게 평가하였다. 그래서 그녀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스스로 대단치 않은 개혁에 너무 큰 위험을 감수했다고 자책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왜 영국의 정치는 그토록 대단치 않은 개혁에도 벌벌 떨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도 남겨준 사건이었다.“사상 최고 최대의 제국” 병들어 가다세계대전 이후 쭉 내리막길을 걸었던 영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는 경제와 사회에서도 일종의 한계가 나타났다. 케인즈주의의 큰 정부, 복지사회가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세금은 많고, 일자리는 없는 “영국병”을 낳으며 심각한 회의의 대상이 되었다. 1970년대 말 영국 경제는 실질성장률 마이너스, 실업률 4~6퍼센트, 인플레이션 15퍼센트라는 지표를 보였으며 새로 기업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복잡한 정부규제와 무거운 세금, 걸핏하면 벌어지는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사회 전반에 “경제하려는 의지”가 실종된 상황이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뭔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대안은, 정책에서뿐 아니라 인물에서도 찾아져야 했다.‘철의 여인’ 등장하다히스 내각이 1974년에 무너지면서 그녀는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설움도 겪게 되었으나, 그것은 동시에 크나큰 기회였다. 정권을 빼앗긴 책임을 물어 히스의 당권에 도전하고, 1975년에 보수당 당수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야당 당수로서 노동당 정부를 매섭게 몰아붙였고, 마침내 1979년, 경제난과 총파업이 엎친 데 덮치며 “불만의 겨울” 속에 노동당이 무릎을 꿇었다. 마거릿 대처는 보수당 최초의 여성 당수에 이어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서구 국가들 중에서는 최초의 민선 여성 최고통치자이기도 했다.‘대처리즘’대처는 경제적으로 통화 안정을 통해 인플레이션 치유하고 재정지축삭감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자유 시장 경제를 활성화하고 개인과 기업의 진취적 기상과 정신을 도모했다, 또한 1945년 이후 영국 사회에 퍼진 나태, 무책임, 방종을 몰아내기 위해 자신에 엄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인내하고기업의 성공을 원하게 되었다. 둘째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영역을 확대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덜 의존하도록 하고, 교육과 국민 보건 서비스와 국영 산업 분야에 시장 체제를 도입하여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성장률은 높아졌으며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생활수준이 향상했다. 셋째, 정부가 공공주택을 판매하고 국가 소유 자산을 팔아 대중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정부의 소득세 감소 정책으로 특히 고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이득을 보았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금전적 동기를 부여해서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하여 경제를 활성화 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으로 소득의 양극화를 발생시켰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그러나 그러한 정책으로 소득의 양극화를 발생시켰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1979~1992년 상위 10%의 수입은 62% 증가한 데 비해 하위 10%의 소득은 17% 감소했다. 또한 제조업의 쇠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비스 부문을 활성화시켰는데 이는 제조업 분야의 실업자 수를 증가시켰다. 1979년 130만명 이었던 실업인구가 1981년 250만명 으로 증가했다. 실업률이 4.5%에서 9.1%로 거의 두배가 늘어난 수치였다. 서비스업은 남부에만 국한하여 지역 격차도 심화시켰다. 일부 사람들은 효율성만 너무 강조한 자유 경쟁 시장으로 사람들을 내몰면서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위기를 맞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 통제 하에 두었던 규제들을 완화시킴으로써 자유 경쟁시장이 약육강식의 성격을 갖게 했고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기업들에 의해 도산하게 되었다. 이는 고용악화, 실업률 상승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의 철폐로 기업을 사고 팔기가 늘어나 오히려 독점이 강화되었다. 규제는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은 영세 중소기업, 환경오염, 제품의 안전성 등 반드시 필요한 규제마저 없애 버렸다.“이제 무더운 여름이다”특히 1980년대 초에는 성장률과 물가는 조금씩 나아졌지만 실업률과 무주택자의 분열을 유도하고, 미리 확보해 둔 석탄 재고를 풀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며 버텼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만이 진리그녀는 1980년 6월 25일의 인터뷰에서 자유 시장과 자유 경제를 옹호하며 “대안은 없습니다(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잘라 말했다. 이 발언 TINA라고 약식 표기되며, 신자유주의만이 진리라는 입장을 나타내는 발언으로 종종 인용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신자유주의는 그녀의 정치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중심이었으며 정책들을 추진하고 진행해 나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친기업 정책을 펴면 투자가 늘고, 투자가 늘면 경제가 성장하며 고용이 증가한다”는 신자유주의의 믿음이 현실적 한계를 드러냈던 것이다.결론대처의 정책으로 영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겉보기에 1970년대 당시의 문제들을 잘 해결 한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빈부격차, 실업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영국의 사례는 대한민국의 정책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눈에 띄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경제 정책에서 친기업 정책을 쓰는 경향이 많아 졌으며, 노조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고, 복지 정책에 분야에 있어서 축소를 하는 등 영국의 모습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영국사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받아 드릴 상황이 형성되지 않았고, 아직 영국과 같이 사회적 시스템이 발달한지 얼마 안된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대상황이 고려되지 않은채 정책들이 진행되는 측면도 있다. 이는 물가의 불안정과 빈부격차의 심화 등 서민의 삶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치게 되며 사회적 보장 체제가 작동 되는데 있어서 기득권 층의 이익 많이 더 넓어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만일 약자들에 대한 아무런 배려나 준비 없이 무리하게 경쟁 원리가 도입이 되고, 경제적 활성화의 측면에 있어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