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것 이상의 것에 신 경쓰지 않았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 지만 조나단 리빙스턴에게는 먹는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는 것을 사랑했다”1)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2) 조나단이 나는 것을 연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열번 모두 시속 110km를 넘는 순간, 깃털이 엉망으로 뒤엉키며 바닷물에 처박히 고 말았습니다.”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 과학과 종교에 관한 질문들“우리는 신앙이 우습게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신앙은 그저 개인의 의견이나 취향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항상 던지는 질문 앞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저 말문을 닫을 뿐이다. 우리는 논리와 과학의 용어로 신앙을 설명할 줄 모른다.”) 역자가 서문에서 너무나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이 안타깝게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자, 나의 현실이다. 이러한 무지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 책이 쓰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책의 저자는 과학자임과 동시에 성공회 사제이다. 그만큼 과학적 지식과 신학적 지식의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 자신을 “과학과 종교 두 개의 관점으로 실재를 보는, ‘두 개의 눈을 가진’ 사람”)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저자는 일단 과학과 종교에 관한 실수를 바로잡으며 책을 시작한다. 과학은 사실을 바탕으로, 종교는 의견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사실을 과학자의 관점, 즉 과학자의 의견으로 해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의견과 사실이 섞여 있고, 그러나 그럼에도 과학이 어느정도는 진리를 알게 해준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해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학과 종교의 공통점(근거 있는 믿음을 추구 한다거나, 해석과 경험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두기에 수정될 가능성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 순수한 사실이나 단순한 의견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노력의 양면이라는 것))과 차이점(과학은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나, 과학적 지식은 인생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나 종교적 지식은 그에 비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점)) 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살고있는 풍성하고 복잡한 세계를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모든 형식의 탐구를 사용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탐구하는 작업에는 과학과 종교 양쪽의 통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교와 과학에 상과학적 질문에 종교적 대답을 하려는 오류가 있고, 그렇기에 ‘빈틈의 신(과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현상을 창조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렇다면 책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된 두 가지 방법 모두가 효력을 잃게 된다.그렇다면 과학 이외의 것인 종교는 아무 의미가 없는가. 저자는 여기서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과학에서 당연한 법칙이나 원리가 되는 것들, 예를 들어, 지구의 자전이나, 중력, 마찰력 등의 물리적인 힘 같은 것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과학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특성들”) 에 대해서 과학은 경험적 대답만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성들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질문으로 “과학을 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과, “우주는 왜 그렇게 특별한가?” 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주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수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수학이라는 상당히 일차적이고 순수한 도구. 즉,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부의 합리성’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예를 들면, 우주와 같은) ‘외부의 합리성’과 연결되는 그 놀랍고 신비로운 과정이, 내부의 합리성과 외부의 합리성.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창조주의 합리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주의 존재로써 과학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대답, 즉, 과학을 통한 세계의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라는 곳이 참으로 특별하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생명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속의 여러 가지 정해져 있는 물리량(중력이나, 원자의 핵을 결합하는 힘, 그 이외의 자연의 힘 같은 것들), 대폭발로 인한 우주 팽창의 속도), 혹은 별이 형성 될 수 있도록 하는, 또 별이 생명체를 위한 기본 재료를 만드는 여러 가지 조건들), 그리고 우주의 크기) 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잘 지금까지 창조세계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이 모두 신의 영역 안에 있다는 점을 짚어준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과 같이 변화되어지게 되는 과정과 신은 어떻게 연결될까. 그러한 과정 하나하나가 ‘우연과 필연’ 이라는 두 가지 경향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이야기 해본다면, 균일하지 않았던 처음의 우주가 균일해 지는 과정이나, 생물의 진화같은 것들이 우연과 필연의 상호작용으로 창조세계에서 일어난 과정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저자는 “나는 인자하고 동시에 성실한 신은 독립성과 안정성이라는 한 쌍의 능력을 창조세계에 주었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결론적으로 창조는 ‘완성된 것으로 시작하는 것’ 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 이라는 견해를 밝힌다.)그런데, 이렇게 지금까지 창조주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악과 고통’ 이라는 문제이다. 악은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생겨난(예를 들어, 잔인성과 태만함) ‘도덕적 악’ 과,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기는(예를 들어, 병이나 재앙) ‘물리적 악’.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도덕적 악’ 이라는 것은 인간이 ‘프로그램화 된 기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악이 발생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인간의 자유라는 더 큰 선을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자유의지 방어’(the free will defense)라는 것이다.)또, ‘물리적 악’ 이라는 것은 합리적인 신이 합리적으로 우주를 만들었기에 우주에서 많은 것들이 그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신의 뜻은 지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그 본성에 맞게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고 말하며, 이를 ‘자유과정 방어’(the free process defense)라고 정의 한다.)위와 같은 방식으로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신이 존재할 때, 악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해명이 성공적으 미적 경험이나, 인간의 도덕적 소양, 종교적 신비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설명으로 종교적 대답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 특별히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지만 새로운 영역에서 자연법칙의 결과가 변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성경의 일관성을 토대로 볼 때 믿음을 뒷받침 할 수 있을 것)이며, 공통적으로 진리를 알기위해 노력한다는 점), 보이지 않지만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 이면서 동시에 신앙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한다.『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라는 책을 덮으며 저자인 존 폴킹혼의 과학적 지식의 깊이와, 신학적 지식의 깊이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아직 과학적 지적수준도, 신학적 지적수준도 높지 않은 나는 책속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개념에 대하여 분명하게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나는 생물의 진화를 믿는다.”라고 밝히며 진화라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진화론 자체가 명백한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이다(다윈 자신도 진화가 명백히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지 않음을 언급했다)),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짧게나마 들자면,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진화가 멈추었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관찰했던 13종류의 핀치새는 오늘날도 여전히 13종류의 핀치새로 살아가고 있다))책을 읽고 나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를 향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고, 두 번째 문제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변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항상 복잡한 싸움을 해왔지만, 시대에 따라 그 관계가 변화되기도 하면서 오늘날 보편적으통해 말한 것과 같이 말이다.그러나 내가 받은 교육만 해도 진화이론은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과학’이었고, 창조론은 그저 교회에서만 다루고, 배우는 내용이었으며, 아무도 깊이 있는, 이성적인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에 교회학교의 현실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아직 ‘독립’)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안타깝게도 학문적 영역에서 힘을 잃었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갈등’ 모델)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는데, 특별히 유명한 무신론자로 알려진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R. 도킨스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신앙은 천연두 바이러스에 비견할만하지만 그보다 더 근절하기 어려운, 세상의 큰 해악 중 하나”)라고 말한다.하지만 책의 저자인 존 폴킹혼은 “우리가 물리적 실재와 만나는 일이 과학인 것처럼, 종교는 우리가 신적 존재와 만나는 일이다. 과학자는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 또한 “도킨스의 견해에 의하면 과학은 신을 문화의 변두리로 추방함으로써 신에 대한 신앙을 파괴했다. 거기에서 신은 망상에 빠진 광신도들에 의해서만 환영받을 뿐이다. 물론 명백한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상당히 많은 과학자들이 신을 정말 믿는다는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론은 결국 “과학을 종교와 대립시키려는 무신론자들의 계획은, 과학자이자 또한 신앙인이기도 한 수많은 과학자들로 인해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보수적인 기독교 혹은 이슬람의 몇몇 집단이나, 창조론자인 모리스 또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갈등’ 모델로 설정하고 있기에, 무신론자들만 종교와 과학간의 관계를 ‘갈등’모델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더 이상 ‘갈등’ 모델로 설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가 만들어 놓으신 법칙인 과학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한다는 것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