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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수시모집 우선선발 합격생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전형구분 일반전형? 지원자 기재사항성 명김 * *주민등록번호89**** - 1******주 소서울특별시 마포구 ***동 ***아파트 ***동 ****호연 락 처010 - **** - ****전적대학(최종학부)? 지원자 확인서약1. 본인은 자기소개서를 사실에 입각하여 직접 작성하였습니다.2. 본인은 자기소개서에 고의적인 허위사실 기재나 대리작성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불합격, 합격 취소 또는 입학허가 취소, 향후 귀교가 시행하는 입학전형에서 지원 자격을 제한 받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할 것입니다.3. 본인은 자기소개서와 관련하여 귀교가 내용 확인을 요청할 경우 협조할 것입니다.위 사항에 대해 확인서약합니다.2013 년 월 일지원자 성명 서명가톨릭대학교 총장 귀하수험번호※* 아래의 1-4번 항목의 내용을 토대로 본인을 소개하십시오.아래의 항목들을 참고하여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관련 증빙자료가 있으면 제출하십시오. 제시된 모든 항목에 대하여 기술 할 필요는 없으며, 또한 필요하다면 제시된 항목이외의 내용을 추가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술하되 전체 내용은 A4용지 2~3장 분량으로 제한하여 주십시오.1. 지원자가 어떠한 가치관의 소유자인지 기술하십시오.(1) 세계 각국에서의 경험 : 상호의 다양성을 존중합니다.‘6년 동안의 열 두 번의 여행.’ 스무 해 동안 바다 한 번 건너 본 적 없는 한국 토박이었던 저는, 학부 생활동안 대부분의 방학을 해외 연수와 여행으로 보냈습니다. 다양한 견문을 직접 보고 익히는 것이, 또래보다 어렸던 저의 생각과 사고를 넓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여태까지 접했던 문화와는 너무나도 다른 점에 놀란 적도 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의 다양성에 대해 편견 없이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유럽 전역을 도보로 여행하던 영국 친구, 종일 노래만 부르며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던 호주친구까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습도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려 노력하였고, 그러보니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사소한 오해 또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2) 의학에 대한 열망 : 체계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의학의 길을 꿈꿉니다.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학문을 대하는 저의 자세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이론과 학설을 존중하고, 그를 검증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개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논리적 사고와 실험적 결과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 왔던 방법과는 달리, 한의학은 『동의보감』 등의 원문을 위주로 한 조금은 다른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의 경우 다양한 가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그 가설의 성립과 기각을 반복하며 꾸준히 발전 가능한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서를 통한 검증이 주를 이룬 한의학은, 고서에 나타나 있지 않은 이론은 새로운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습니다. 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 또한 어렵다 보니, 그런 학자들을 심지어 괴짜 취급하는 경향성도 보였습니다. 환자의 다양성을 중시한다는 한의학이었지만, 학문 본질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함에 큰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이러한 고민이 들 때 마다 저는, 의학 각 과 서적과 논문을 통해 부족함을 보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국제무대를 향한 꿈과 학문적 발전을 위해서 의학을 심층적으로 학습하고 탐구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2. 다른 지원자와 차별되는 본인의 능력을 설명해 보십시오.(1) 섬세함과 꼼꼼함 : 여학생이 빌려가는 남자의 노트강의가 끝난 후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이 필기, 무슨 내용이야?”, “여기 부분 정리를 못했는데 필기 좀 빌려줄래?”어릴 때부터 이어진 정리하고 요약하는 습관은, 자라면서 학업에 관한 필기실력으로 발휘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주면서 오히려 제가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고 학업성적도 좋아지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 이후 친구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에도 주변에서 흔쾌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학부시절 교우들과 원만하게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요즘은 기념일이나 해야 할 일을 정리하여,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의료봉사나 진료하는데 있어서는 환자분의 증상과 징후를 최대한 세심하게 체크하려 합니다. 이런 꼼꼼한 면은 추후 환자를 대하거나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신뢰감을 얻을 수 있고, 혹시 모를 사고나 실수 예방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2) 창의적인 아이디어 : 조그만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어내다.우간다 의료봉사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가건물에 천막을 쳐서 공간을 마련했던지라 진료실과 약국이 멀리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현지어를 공부 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말로만 안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매번 봉사단원들이 환자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환자가 많아지면서 처방받으러 가야 할 환자가 집으로 가버린다거나, 진료를 받지 않고 약만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환자 안내에 혼선이 생겨 진료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그 다음날 아침, 어떻게 해야 할 까 고민하다 짐을 살펴보던 저는, 공항에서 짐을 포장하다가 남은 박스테이프 뭉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길 양쪽 끝에 의자를 하나씩 세워두고, 그 의자를 테이프로 연결해 놓은 후에 ‘이 노란 선을 따라가세요.’라고 현지어로 안내했더니, 신기하게도 이탈하는 환자분 없이 그 날, 그리고 그 다음 봉사까지 원활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이처럼 테이프로 만든 작은 줄 하나는, 작은 생각의 변화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이후 매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학업에 임할 때나 보건소 사업을 진행할 때에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3. 학업 이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경력을 기술하십시오.(1) 5년간의 의료 봉사 : 초심을 잃지 않는 삶을 위한 작은 실천첫 의료봉사는 본과 2학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학우와 함께 봉사 팀을 꾸려 강서구의 노인정으로 봉사를 나간 것입니다. 봉사 팀의 상황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기업과 근처 한의원에서 약과 침을 지원해 주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이 점차 줄어 나중에는 저희가 직접 침을 구매해서 봉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군소리 없이 봉사에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저도 더 힘을 내서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졸업 후,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이어진 의료봉사는 매 순간 잊기 쉬운 초심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였습니다. 가끔 일이 힘들고 고되다고 생각될 때 마다, 봉사를 마치고 오면,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직 이렇게도 많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일지라도, 매번 와줘서 고맙다는 쑥스러운 인사에 보람을 얻어, 요즘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2) 검은 대륙의 충격 : 국제보건의료인으로의 꿈을 꾸게 되다.더 큰 세상의 의료현실을 보고 공부하고자, 본과 3학년 때는 우간다로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말라리아로 인해 40도 넘는 열로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던 아기. 구더기가 알을 깐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피부를 절제해야 했던 아이. 이들의 모습은, 상상외로 열악한 제3세계의 의료 현실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상처를 치료해 주고 필요한 약품을 처방해 주는 일은 마쳤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국가에 걸맞은 의료체계의 개선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길에 일조할 수 있는 의료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마지막 날, 한의사로서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싶어 현지의 한인 의사분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조심스레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AIDS와 전염병들이 만연한 이곳에서는, 한의학의 주요 도구인 침·뜸이 적용되기 어렵고, 현지인들에게 낯선 치료방법과 약물은 오히려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실제로도 보건카드를 소지하고 방문한 환자들의 약 5%가 HIV 보균자였고, 채혈 등 상당한 부분이 제한 받아 대부분 투약을 통한 치료가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의사로서 국제보건의료인을 꿈꾸던 저에겐 적지 않은 괴리감을 가져다주었으며, 의학 공부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3) WHO-WPRO 총회 : 마닐라에서 직접 본 국제무대국제보건의료인에 대한 막연한 선망을 너머, 국제기구를 직접 견학하고 체험해 보고자 ‘이종욱 글로벌 영 프런티어’에 지원하여 WHO를 방문하였습니다. WHO 서태평양지부의 연례회의에 다른 의과대학 친구들과 함께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연제를 나누어 스터디하고, 참여국의 대표 입장이 되어 나올만한 의견들을 정리하고 마닐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직접 가서 살펴본 국제회의는 예상과 많이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각국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팽팽한 긴장감이 회의장 안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각국 대표들은 타국에 도움이 되는 실례를 알려주고,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WHO 사무총장 마가렛 챈은 미국 등 강대국들의 소극적인 국제보건정책 참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며 회의장을 긴장감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에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국제기구의 모습과 분위기를 몸소 느껴보았고, 실제로 WHO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꿈꾸는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 2014.03.06| 4페이지| 10,000원| 조회(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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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고려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시모집 자기소개서 (서류합격)
    자기소개서 작성시 유의사항1. 본인이 직접 한글로 작성하여야 합니다. 한글 이외의 언어로는 작성이 불가합니다.2. 자기소개서 표지 이외에 본인의 성명, 부모 및 친인척 성명, 직장명 등 본인과 보호자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기록하지 않아야 합니다.3. 흑색 필기도구(연필 제외)를 사용하여야 하며, 워드프로세서로도 작성 가능합니다.4. 자기소개서는 입학원서와 함께 일괄 제출하여 주십시오.자기소개서 항목별 지침1. 자기소개서의 학력 및 경력사항만 고등학교 이후의 내용을 작성하시고 자기소개서의 기술부분은제약없이 자유롭게 작성바랍니다.2. 경력과 자격 및 면허는 교육/연구/훈련 프로그램 이수, 참가 등을 포함하여 자신의 능력 평가에 도움이 되는 모든 종류를 포함합니다.3. 비교과영역 성취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수한 업적을 성취한 분야로서, 연구활동, 창작활동 및 특허, 직업 활동, 사회단체 활동에서의 성취업적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중 연구활동은 논문, 저술 등출판물(단, 학위논문 제외)을 포함하며, 창작활동으로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을, 특허는 발명특허,실용신안 등이 포함됩니다.4. 증빙서류 목록은 관련 항목의 번호와 내용 등을 기입하십시오.증빙서류 관련 유의사항1. 증빙서류가 없는 것은 평가에서 제외되므로 반드시 증빙서류를 첨부하십시오.2. 증빙서류는 반드시 원본만 인정하며, 꼭 반환이 필요한 서류의 경우 방문접수 기간 중 입학관리실을 방문하여 원본대조필 확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3. 문서형태가 아닌 증빙서류(예; 비디오테이프 등)는 평가되지 않으니 제출하지 마십시오.※ 제출 서류를 위조하거나 허위로 작성할 경우에는 불합격 처리되며, 합격 이후에도 합격 또는 입학허가가 취소됩니다.자기소개서지원자 기재사항성 명***생 년 월 일***주 소***전 화 번 호( ) - 휴대폰 :전 형 구 분수시모집 □ 일반전형 □ 특별전형정시모집 ? 일반전형전적대학(최종학부)학교명/학과명/졸업년도○○대학교 / ○○학과 / 201*주소서울특별시전화번호( 02 ) ○○○ - ○○○○지원자 확인서약1. 본인은 자기소개서를 사실에 입각하여 직접 작성하였습니다.2. 본인은 자기소개서에 고의적인 허위사실 기재나 대리작성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불합격, 합격 취소 또는 입학허가 취소, 향후 귀교가 시행하는 입학전형에서 지원 자격을 제한 받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할 것입니다.3. 본인은 자기소개서와 관련하여 귀교가 내용 확인을 요청할 경우 협조할 것입니다.위 사항에 대해 확인서약 합니다.2012 년 10 월 15 일지원자 성명 서명고려대학교 총장 귀하1. 학력기간학교(고등학교부터)전공분야 (학과)학위200*년 3월 ~ 200*년 2월○○○○○○고등학교-고등학교졸업200*년 3월 ~ 201*년 2월○○대학교○○학과학사2. 경력(직장)기간기관직위/역할비고(프로그램 등)201*년 4월 ~ 현재○○○○○○○○○○○○보건사업3. 수상 경력(장학금 포함)일자종류(수상내용)수여기관200*년 *월 *일○○올림피아드 ○○상대한○○○○회/4. 자격 및 면허일자종류주관부처201*년 *월 *일○○보건복지부5. 비교과영역 성취(연구활동, 창작활동, 특허, 특기, 직업, 봉사활동 외 단체 활동 등)일자활동 내역주관 기관비고201*년 *월 *일한국과학재단 R&E(Research and Education) 연구원한국과학재단200*년 *월 *일** 기념사업단 영어번역 연구원보건복지부201*년 *월 *일WHO-WPRO 인턴십보건복지부/ WHO서태평양지부6. 자기소개고려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하게 동기를 다음 항목에 맞게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주십시오. (띄어쓰기 포함 각 항목별 300자 이내, 신명조체, 글자크기 10, 줄간격 160%)1) 본인의가치관을기술하고그 가치관을형성하는데중요했던 경험과성장과정을기술하시오.어릴 때 방 한켠에는 세계지리 전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보고 읽으며 자연스레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꿈을 꾸었고,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자.’는 인생의 모토를 갖게 되었습니다. 학부 동안 중국연수를 통해 전공 관련 경험을 쌓았고, 항공산업, 피겨스케이팅 등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서로의 생활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특히 의료봉사나 방문진료에서 만나는 분들과의 원활한 소통에 기반이 되었고, 보다 두터운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2) 학업이외대학시절의중요한 활동과결과를 기술하고, 그 경험이의학을전공하는데어떤 의미를갖는지 기술하시오.꼬박 스무 시간을 날아 도착한 반대편 지구.아프리카에서의 15일은 저의 인생 목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제때 치료하지 못해 구더기가 자리잡아버린 상처, 말라리아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꿈에 다시 나타날 정도로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의사로의 진로만 생각하던 저는, 그 이후, 열악한 제3세계의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힘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염 위험으로 인해 한의학의 주요 도구인 침뜸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고, 제 꿈인 국제보건의료인으로서 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이 필요하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3) 제출한서류에서표현하지 못한타인과구별되는본인의 강점을기술하시오.여학생 못지않은 꼼꼼한 면이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업에 있어서는 이러한 꼼꼼함이 필기 실력으로 발휘되었습니다. 시험기간마다 제 필기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학우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학교| 2013.09.15| 4페이지| 5,000원| 조회(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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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 지식인을 위한 변명 독후감 감상문 평가A좋아요
    [ 9 ] 쪽 中 [ 1 ] 쪽지식인을 위한 변명지식인을 위한 변명1. 知識人이란 무엇인가?혹시 지식인이라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반인들은 이들을 사회에 주축이 되고 있는 존재로 여기면서, 장차 미래를 짊어져야할 계층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에 대한 동경마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식인의 행위와 직능의 테두리가 문화적 보수주의라고 생각하며, 지식인들이 이 테두리를 넘어섰다고 생각되기만 하면 즉시, 이들을 비난하곤 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생산성이 전혀 없으며, 봉급에 의존하며 자신을 지키지 못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자이다. 이런 상황의 대표적인 예로 일본과 프랑스를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식인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이 필요로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이 세상에서 지식인들이 사라지게 될 거라고 예견하고 있다.이러한 여러 가지 비난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 이 모든 비판들은 ‘지식인이란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려 드는 작자’이며 ‘사람들이 옳다고 받아들인 진리와 그 진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행위 전체를 인간과 사회라고 하는 보편적 개념으로 부정하고 드는 자’ 라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보았을 때 이들은 ‘지적 능력과 관계되는 일을 통해 명성을 얻고, 이 명성을 자기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 하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을 통해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려드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들 권능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들의 권력과 명성을 남용해 여론에 압력을 가하며 자신의 본분을 잊으며 행동하고 있다. 이런 이들의 행동이 과연 지식인이라는 존재가치와 일치하는 것일까?지식인이 위처럼 권능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비난 받는 걸로 보아 지식인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기능에 의해 그 존재가 규정되는 사람들의 한 경우라 볼 수 있다. 지배계급에 의해, 실용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위에서 만들어진다. 이는 운명이 구조화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의 일자리 뿐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지배 계급은 그 자신의 궁극적 목적인 이익에 준하여 실용적 지식을 가진 자들의 수를 정한다.둘째로는, 실용적 지식을 지닌 전문가의 이데올로기적, 기술적인 교육도, 지배 계급이 수립한 교육체제에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배 계급은 자신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 자신이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줄 지식과 경험을 그들에게 공급하도록 교육을 통제할 수 있다. 즉, 지배계급은 그들을 전통의 수호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용적 지식을 지닌 전문가의 선발은 계급관계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된다는 점이다.지식인이 나타내는 것은 이러한 수준이다. 모든 것은, 지배 계급에 의해 실용 지식 전문가가 된 사회적 노동자가 모순을 느끼며 괴로워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지식인은 휴머니스트이다. 부당한 특권을 가진 그를 보면, 휴머니스트적인 평등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모순되고,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그것을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특권 자체일 뿐 스스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를 포기할 수 는 없다.또한, 초기에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주입시켰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이들 자신의 또 다른 부분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만의 지식, 그들 자신만의 방법과 모순되는 것이다.이 이후 19세기 후반 ありなり와 もり에 의해 개혁된 교육제도를 통해 초등교육은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의 기초위에 서게 되어버렸다. 이로써 소년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복종심을 갖게 되고, 이와 동시에 もり는 기초에만 머물러 있던 메이지시대의 교육이 학자와 전문가를 배출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고등교육의 자유를 허가했다. 이 이후 실용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존재하는 모순이 지배계급의 요구에 드는 것이다.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 내의 지식인으로서 그들의 보편성이란 바로 자신을 보편적 계급이라 믿고 있던 부르주아계급의 거짓된 보편성을 가짐으로써, 너무 조급한 보편화 태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이런 지식인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사회란 그 구조와 위치, 운명에 의하여 개별적인 집단이 보편성이 법칙을 위해 투쟁하는 곳임을 알고, 보편적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즉, 인간은 인간의 미래인 것이다.이런 이유로 앞에서 말했듯이 지식인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머리만 큰 사람이 되어, 지식인이 된 후에도 실용적 지식을 위해 일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못하고 구속되지 말고, 실천적 주제를 실현하고, 그러한 존재를 만들어내고 떠받쳐 줄 수 있는 사회의 제원리를 발견해 내야 할 것이다.지식인은 자기 고유의 모순이 결국 객관적 모순의 특수한 표현임을 알고,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이러한 모순과 싸우는 모든 인간에게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입된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것만으로 자기 임무를 다 해내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사실 그것은 그 자신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그가 만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념적으로 사회 밖에서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는 것 보다는 가장 혜택 받지 못한 계층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계층은 보편성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억압과 착취에 의해 특수화된 압도적 다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 30억 인구 중에(이 책은 1965년도의 강의를 바탕으로 하였다.) 20억이 영양실조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비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풍요운운의 어리석은 이야기가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대중이 해야 할 일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우상을 타파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 이 차원에서 새로운 모순들이 생겨난다.무엇보다도 혜택 받면 결국 지식인의 일이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대중 계급 내에서 영원히 되풀이 되어 나타날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이다. 또한, 지배계급에 의해 주어진 자본으로서의 지식(Capital-savoir)을 민중문화의 고양을 위해 사용하고, 현재 같은 상황에서 혜택 받지 못한 계급 안에서 실용 지식 전문가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노동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혹은 적어도 그런 지식인과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지식인의 고유의 목적을 되찾고, 투쟁을 통해 도달해야 될 만인을 위한 현실적 목표, 즉 인간의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노동계층의 역사적 목적으로서의 보편화)를 보여줌으로써 진행 중에 있는 모든 행동을 근본적인 것으로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대중 정당이나 노동 계급 조직기구에 의해 표현되는 정치권력까지 포함하야 모든 권력에 대항할 줄 앎으로써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들의 탐구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 지식인이란 전문지식을 소유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의 주된 모순에 의해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의 보편화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배계급이 자기네의 특수한 목적을 위해 지식인을 도구의 수준으로 전락시킨데 반해 이들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은 지식인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앞을 통해 알게 되었다.그렇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동화될 수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가 자신의 계급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듯, 그 계급도 그에 대해 더 이상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며, 그 계급도 그를 받아주려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된 상황이면 지식인이란 차라리 불필요하고, 잘못 만들어 낸 존재로 인식 되어야 되는 것 아닐까?지식인들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우리사회의 부산물이며, 그의 내부에 존재하는 진리와 믿음, 지식과 이데올로기, 자유로운 사고와 권위적인 원칙 사이의 모다는 것은 언어를 소유한다는 것이며 언어가 작가와 다르며, 사람들과 다름으로 해서 언어를 소유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Roland Barthes는 문필가와 작가를 구별했다. 문필가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며 작가는 공통 언어의 수호자이나 보다 멀리 나아가며, 비 정보로서의 언어를 통해 언어적 대상물을 생산한다고 정의했다.문학 작품의 의미 작용 내용은 객관적 세계의 객관화된 세계 또는 주관적 세계를 겨냥할 수 있다. 두 경우에서 그 자체만으로 파악된 작품 내용은 추상적이다. 즉, 그것을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물로 만드는 조건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Zola는 자신이 본 세계를 보았다. 주관적 환상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관찰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Thibaudet은 졸라를 서사시적 작가라고 불렀다. 작가들 중 가장 객관적인 작가는 작품 속에 보이지 않는 느껴지는 것들이 현존이 되길 원하고 있고, 이와 달리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현존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즉 이들은 자신과의 완전한 일치 상태에서 자기 작품 속에 부르주아 이상주의와 개인주의를 특수화 하고 있는 것이다. Racine는 작품 속에서 폭로된 통주관성을 생산하면서 그의 사회를 생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Gide는 Nathanael에게 주는 충고 속에서 또는 일기의 내밀한 페이지들 속에서 자기를 생산하고 조건화하는 세계를 말하고 있다.어떤 작품이던 보족적인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존재의 역사적 개체성과 목표의 보편성이 그것이다. 하나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부분이며, 세계의 전체성은 그 부분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중적 양상은 고전주의 작품과 자연주의 작품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표면적으로 명백하게 나타나진 않았다. 이런 작가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데 존재와 목표에 있어 개체적 보편성과 보편화하는 개체성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이중열쇠를 갖고 있는 대상물을 생산해 냈던 것이다.반대 한다.
    독후감/창작| 2013.09.11| 9페이지| 1,500원| 조회(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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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사 - 암사동 선사 유적지 답사 계획서
    암사동 선사유적지로 떠나요!암 사 동 선 사 유 적 지 로 떠 나 요 !? 답사지의 자연 및 인문적 환경서울시 강동구 암사2동에 위치하고 있는 암사동 유적은 기원전 3,000~4,000년경에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터가 남아있는 집터유적이다. 또 한 곳에 여러 채의 집을 지어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취락유적이기도 하며 이러한 취락유적은 남, 북한을 통하여 이곳 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유적은 1967년에서 1975년 이르는 사이에 경희대학교, 대학연합발굴단, 국립중앙박물관등에 의하여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그간에 28채의 움집터가 발견되었다. 움집터의 평면 모양에는 원형과 네 모서리를 약간 죽인 말각 방형의 것이 있다. 움집터 안팎의 생활면에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갈판, 갈돌, 돌도끼, 돌화살촉, 긁게, 그물추등 생활도구가 많이 나왔고 또 탄화된 도토리 알도 여러 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헤아리는데 있어 더없이 소중한 집터 유적이고 이곳에 세운 여러 채의 움집은 당시의 움집터 위에 약 2m 두께로 흙을 덮고 그 위에 가상 복원한 것이다.? 답사지의 소재의 유물과 유적■ 움집 직경 4∼6m 크기의 원형이나 모서리를 깍은 방형의 구덩이를 0.5∼1m 정도 판 다음에 바닥 중앙에 나무로 된 기둥을 박은 후, 구덩이 주위에 서까래를 경사지게 세우고, 꼭대기에서 서까래들을 끈으로 묶은 뒤 나뭇잎이나 풀로 지붕을 덮었다. 움집의 중심에는 화덕자리와 저장고등의 내부시설을 만들었다.아하! 그렇구나!움집이 반지하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① 겨울에는 따듯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땅위가 아무리 춥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깊이 이상의 땅 밑은 아주 따뜻하다. 움집 안에는 화덕 이외에 특별한 난방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인들은 추위를 견디는데 유리하도록 땅을 판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냉기를 제공한다.② 내 키에 맞는 집!키 큰 사람이 서서 생활하거나 불을 피웠을 때 불길이 천장에 닿지 않으려면 일정한 높이가 필요했다. 그런데 움집은 사람들이 만든 최초의 집이라 아직 높이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래서 바닥을 낮추는 것이 안정된 집을 지으면서 생활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이러한 반지한 형태의 움집을 만들었던 것이다.■ 주거형태우선 암사동에 살았던 사람들은 신석기인들 이다. 신석기 인들은 간석기를 사용했으며 농경에 성공한 집단이다.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정착생활이 시작됐다는 것이다.이들의 농경은 어땠는가?암사동 사람들은 신석기 인들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었다. 이들은 ‘조’라는 작물을 경작하였다. 이 ‘조’는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거쳐 식량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농경은 청동기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신석기시대에는 아직 어로와 채집이 주요 식량재원이었다.이들은 무엇을 채취하였는가?암사동에서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도토리가 집터에서 발견되었다. 도토리는 그 두터운 껍질 덕분에 보관이 매우 용이하였기 때문에 신석기인들에게는 중요한 식량이었다.신석기 사람들이 주된 거주지는 강가였다. 실제로 암사동에서는 뼈로 만든 낚시 바늘 하고 그물추 등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돌, 또는 짐승의 뿔을 다듬어 만든 작살이나 창으로도 물고기를 잡은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이렇듯 물고기 또한 신석기 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식량이었다.이들의 사냥은 어땠는가?이들은 채집뿐 아니라 수렵, 즉 사냥을 통해서 식량을 얻었다. 그것은 집터에서 출토되는 돌창이나 돌화살촉과 같은 사냥도구와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되는 사슴, 멧돼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짐승 뼈들로부터 추정할 수 있다.아하! 그렇구나!고인돌에 대한 오해~~!암사동 유적지 정문에는 고인돌이 위치해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이 고인돌이 암사동 유적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고인돌은 암사동 유적지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이 암사동 유적지는 신석기 때의 유적으로서 신석기 무덤은 고인돌이 아니라 위에 설명했던 것과 같은 그다지 커다란 특징이 없는 무덤이다. 선사시대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이러한 오해를 안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오해를 할 소지가 많다.■ 토기 (빗살무늬 토기)신석기 인들은 흙으로 그릇을 빚어 식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했다. 농사를 지은 후 거두어들인 곡물로 음식을 준비, 조리하고 저장하는데 이 그릇을 이용했다. 신석기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를 암사동 선사유적지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토기는 진흙덩이를 손으로 빚거나 가래떡 같은 흙띠를 돌려 쌓아 만들었다.아하! 그렇구나!왜 빗살무늬 토기는 토기의 끝은 뾰족할까?뾰족한 밑바닥은 땅에 반쯤 묻어 저장하기가 쉽다. 그리고 이곳 암사동과 같은 강가의 땅은 모래흙(사질토)이 많아 손쉽게 바닥을 둥글게 파낼 수 있기 때문에 바닥을 둥글게 파내고 그 안에 밑이 뾰족한 토기를 두어 음식물을 담아두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석기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든 그 속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릇의 모든 힘은 그 무늬에서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릇표면에 무늬를 새긴 것이다.■ 불 피우는 방법① 손으로 비비는 법 : 손으로 막대기(발화봉)을 나무판(판절구)에 강하게 오랜시간 비벼서 불을 얻는 방법이다.② 관성바퀴 회전이용법 : 좀 더 발전된 방법으로 관성바퀴를 이용한 작용에 의한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하여 얻는다.③ 활 회전법 : 활을 이용하여 막대기(발화봉)를 강하게 회전시켜 불을 얻는 방법이다.? 선사유적지 답사 계획(1일)시간탐사내용9:00~9:20학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성균관대역으로 이동하자.9:20~9:30성대역에서 암사행 전철 표를 끊고 청량리방면 전철을 탑승하자.9:30~9:42금정역에서 내려 같은 승강장에 있는 당고개행 열차를 탑승하자.9:42~10:17사당역에서 내려 위층에 있는 외부순환선을 타자. (내부순환선으로 갈아탈 경우 서울 시내를 돌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10:17~10:462호선 암사역에서 내려 8호선 암사행을 탑승하자.10:46~10:52암사역에서 내린 후 1번 출구로 나오자.10:52~11:10직진으로 걸어가도 되고,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으로 갈 수 있다.(그 외)88올림픽 대로에서 암사4거리에서 좌회전 하면 도착할 수 있다.(cf : 여유가 있다면 암사동의 유명한 지리산 토종 흑돼지를 먹어보는 것도 괜찮다)1. 암사 선사 유적지 정문의 모습이다. 한 사람당 300원의 입장료가 부과되고, 어른은 500원이니 준비해 두도록 한다. 입장은 아침 9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로 제한된다. (동절기에는 오후 5시 및 매주 월요일 및 1월 1일에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2. 위 지도에서 ②를 나타내고 있는 움집 모형이다. 움집은 일부에 한해서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게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원형 그대로가 아니라,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움집 안의 유물들은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아쉬움도 있다.3. 위 지도에서 나타내고있는 마지막 부분인 ③과 ④이다. ③은 오른쪽 사진의 제 1전시관이고 ④는 제 1전시관과 붙어있는 제 2전시관이다. 두 전시관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생활모습을 담고 있는 원시생활 전시관이다. 제 1전시관은 주로 움집의 표본을 담아놓았고, 제 2전시관은 마치 실제인 듯한 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사회과학| 2013.09.11| 5페이지| 1,500원| 조회(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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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물 - 현미경의 특징
    현미경으로 바라본 세상* 현미경이란?현미경은 인류 탄생 이래 비행기, 전기, TV 발명 등과 더불어 인류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발명품이다. 여기서는 광학현미경에 관해서만 다뤘다.1) 현미경의 역사현미경에 관한 기록은 AD 1000년경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렌즈의 사용 때부터이다. 미세한 사물을 확대하기 위하여 렌즈를 사용하였지만 현재로서는 그 기원을 밝히기에는 기록이 부족하다. 다만 현재의 현미경과 같은 구조를 지닌 현미경 (Multiple lens) 을 발명한 사람은 1590년대의 네덜란드사람인얀센 (Zacharias Jansen) 과 John Lipperhey이다. 당시의 발명품은 주로 해양탐사를 위해 사용되어 그 형태는 망원경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후에 현미경 기술에 지대한 발전을 미친것이 바로 렌즈의 가공 기술인데 반세기 후의 현미경은 17세기 네덜란드 사람인레벤후크 (Anthony van Leeuwenhoek :1632~1723) 와 로버트 후크 (Robert Hook) 에 의해 현재의 현미경의 모태가 되었으며 이들은"짧은 초점거리 (焦點距離, focal length- 렌즈의 중심축과 초점이 맺히는 부분까지의 거리)를 지닌 렌즈가 배율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라는 것을 발견하였다.그들은 또한 순도가 높은 석영을 가공하여 유리를 만들어 렌즈를 제조하였으며 현미경 화상을 불명확하게 만드는 색수차 (chromatic aberration-빛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고유한 파장 때문에 생기는 현상)도 발견하게 된다. 색수차에 관해서는 본 웹페이지의 렌즈의 특성에 설명되어 있다.위 그림은 현재 현미경의 모태가 된 후크 현미경의 가상도이며 재물대(Specimen Holder)와 조명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1670년)1758년 존 달라드 (John Dollard)는 색수차 현상을 제거시킨 achromatic lens (색지움 렌즈)를 특허 신청했으며 1930년대까지 대부분의 현미경에서 achromatic lens를 사용하게 된다. 17세기 이후 1882년부터 독지칭한 것은 아님^^;;)"실존하는 미세한 유형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깨워준 현미경에게 박수를 보낸다.2) 현미경의 한계와 해상력을 결정짓는 요인현미경은 대물렌즈에는 적게는 5개에서 15개정도의 렌즈가 들어 있으며 대물렌즈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렌즈 중심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사물을 볼 때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즉 렌즈를 정밀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대물렌즈를 통해서 얻어진 실상은 대안렌즈를 통해서 상하 좌우가 실상과 반대인 허상을 얻게 되는데 이론적으로는 현미경의 최고 관찰 가능배율이 2500배-3000배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1500-2000배 이상에서 정교한 시료를 관찰할 경우 뚜렷한 상을 얻기 힘들다. 그 이유는 현미경의 분해능을 결정짓는 것은 렌즈의 배율 보다는 렌즈의 개구수와 빛의 파장이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분해능이란 어느 한계선에 이르기 까지 두 개의 작은 물체가 여전히 분리되어 보이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분해능이며 분해능 값이 작을수록 해상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가령 현미경의 분해능이 0.5μm라고 가정한다면 0.5μm까지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물체를 분리하여 볼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즉, 분해능 (Resoving power)= {0.61 λ} over NA(numeral aperture : 개구수) 이며 이때 λ는 빛의 파장, NA (numeral aperture:개구수)= n × sin un : 커버글라스와 대물렌즈의 맨 앞에 있는 렌즈 표면 사이의 매개물질 [예, 공기, 물, 유침오일 (immersion oil)]의 굴절률 (refraction index; RI)sin u : 렌즈의 광축 (optical axis)과 대물렌즈로 들어가는 빛 중 가장 바깥의 광선으로 이뤄지는 각도즉 NA (렌즈의 개구수)값이 크고 광원의 파장이 짧을수록 분해능은 좋아지게 된다. 통상 대물렌즈의 NA값은 렌즈에 쓰여 있다. 또 한 가지 분해능을 결정짓는 빛의 파장에 대하여 말하자면 학교 생물시간에 다뤄봤던 현미경은 그냥 자연광을 피부조직 연구, 관찰, 검사▣ 재료학: 금속, 세라믹, 신소재, 반도체 공정(포토마스크, 반도체 칩)▣ 고고학: 화석, 광석, 출토품등의 균열 상태, 구조 관찰▣ 환경학: 토양, 수중의 미생물, 수질 검사 등이외에도 폭넓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현미경은 정밀한 광학기기 이므로 사용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용방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경우 시료 또는 대물렌즈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현미경은 크게 현미경 몸체, 접안렌즈, 대물렌즈, 스테이지, 조명 장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방법1) 시료가 놓여 있는 Stage를 대물렌즈로 부터 멀리 놓이게 한다. 이는 현미경을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실수로 고배율로 대물렌즈를 회전시켜도 시료와 부딪혀서 생기는 렌즈나 시료의 손상을 방지 하게 된다.2) 광원을 조절한다. 통상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쓰이는 현미경은 반사경을 조절하여 밝기를 조절해야 하지만 최근의 현미경은 대부분 조명장치가 함께 있으므로 조명장치의 다이얼을 돌려서 시야가 밝아지도록 조명을 조절한다.3) 시료를 고정한다. 시료를 재물대(Stage)위에 올려놓고 클립으로 고정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통상의 현미경은 재물대가 고정되어 있어서 시료를 직접 손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Mechanical Stage라는 재물대는 재물대를 X, Y축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다.4) 대물렌즈를 선택한다. 앞서 얘기 했듯이 현미경은 낮은 배율에서 높은 배율로 옮겨 가면서 관찰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저배율에서 관찰을 하면서 관찰 하고자 하는 시료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배율을 조금씩 높인다. 즉 자신의 현미경의 가장 낮은 대물렌즈의 배율이 5배일 경우 5배의 대물렌즈부터 관찰한다.5) 접안렌즈를 선택한다. 4번까지의 모든 작업이 끝났으면 적당한 대안렌즈를 선택한다. 대물렌즈는 고정되어 있으나 대안렌즈를 통하여 배율을 조절할 수 있다. 대안렌즈는 보통TIMES10,TIMES15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미경의 배율은 접안 전용 세정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나 없을 경우에는 일반 소독용 알코올을 사용해도 무방하다.6. 대물렌즈의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에서 대물렌즈를 고배율로 돌리면 대물렌즈가 스테이지에 부딪칠 염려가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가령 WD (작동거리:Working Distance)가 긴 대물렌즈의 경우 큰 상관이 없으나 WD가 짧은 대물렌즈의 경우 부딪힐 가능성이 아주 높으므로 초보자가 현미경을 다룰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렌즈는 대게 코팅막이 씌워져 있으므로 코팅막이 벗겨질 경우 렌즈의 성능이 급속히 나빠지며 상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없다.# 초점을 맞추기 힘들 때 간단하게 맞추는 방법초보자의 경우 저배율에서 스테이지를 위아래로 아무리 움직여도 초점을 맞추기 힘들 때가 있는데 이때에는 우선 반사경을 조절 하여 시야가 제대로 확보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시야를 확보한 후 가장 배율이 높은 대물렌즈를 시료와 최대한 가깝게 놓고 다시 저배율의 대물렌즈로 돌려놓는다. 그다음 저배율 렌즈에서 스테이지를 조금씩 내려가면서 시료를 찾아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이크로미터 사용법마이크로미터란?현미경의 대안렌즈에 눈금이 새겨진 유리판인 대안마이크로미터를 넣고 관찰하면 미세 시편의 크기를 잴 수 있다. 이 때 사용되는 것이 대물, 또는 제물마이크로미터이다. 대물마이크로미터는 길이 1mm의 구간을 100등분한 눈금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결국 가장 작은 한 눈금이 1/100mm 즉 10㎛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현미경의 대안렌즈를 빼내어 대안마이크로미터를 속에 넣고 다시 조립하여 현미경에 끼운다.- 대물마이크로미터를 재물대에 얹는다.- 대물렌즈를 위치시킨 후 초점을 맞춘다.- 대안렌즈를 둘려 대안, 대물마이크로미터의 눈금이 평행하도록 조절한다.- 대물마이크로미터를 옆으로 움직여 대안, 대물마이크로미터의 선이 일치하는 한쪽 끝을 찾는다. 그런 다음 대물마이크로미터를 반대편으로 움직여 두 마이크로미터의 눈금 이 일치하는 선을 찾는다. 남일 대물마이크로미터 눈금 X개와 대안마이크: Astigmatism)렌즈의 주축 (중간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부분을 지나 맺혀지는 결상점이 주축의 수직부분에서 맺히는 결상 점과 다른 위치에 생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결상점이 렌즈의 끝부분을 지날 때와 주축부분을 지날 때의 결상 점의 위치가 다르다.③ 왜곡 수차(歪曲收差 : Distortion Abberation)광축 (Optical Axis)로부터 각각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광로가 결상 점에서 왜곡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림3)과 같이 광축에서 떨어진 부분에서 배율을 확대할 경우 결상 점의 상이 그림의 (a)와 같이 Pincushion 형태를 나타내며 반대로 배율을 낮출 경우 그림의 (c) 와 같이 Barrel distortion 형태를 나타낸다.④ Coma 수차Coma 수차는 결상 점의 이미지가 마치 혜성 (Comet) 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과 같이 광축에서 결상 점이 멀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며 보통 돋보기로 햇볕을 통과시킬 때 일직선상이 아닌 돋보기가 약간 비스듬하게 놓일 경우 통과된 빛이 마치 혜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⑤ 상면 만곡 (像面彎曲: curvature of image field )평평한 시료를 확대시킨 렌즈의 초점 이미지는 렌즈가 이루고 있는 렌즈의 곡면 구조와 닮아있다. 즉 렌즈에 의해 맺힌 상은 평면이 되어야 하나 곡면을 이루게 된다. 이는 렌즈 양면의 곡률에 의하여 일어나는 현상인데 가령 현미경을 통해서 시료를 관찰할 때 같은 초점위치에서 이미지의 중앙 부분이나 가장자리 부분 중 한부분이 뿌옇게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렌즈가 이루고 있는 곡률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아래그림에서 a)부분과 b)부분의 초점이 거의 맞았다고 봤을 때 a) 부분에서는 가장자리가, b)부분에서는 가운데 부분이 뿌옇게 보이게 된다. 현미경에서 가장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 볼록렌즈와 볼록렌즈 사이에 오목렌즈를 사용하게 된다.⑥ 색수차 (色收差:이다.
    자연과학| 2013.09.11| 10페이지| 2,0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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