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는 르네상스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고안해낸 시대개념- 야만의 시대- 오늘에 이르러 중세는 더 이상 문화적 암흑세계가 아님- 지중해 문화와는 다른 독자성을 띈 유럽문화가 형성중세유럽문화의 특징 1. 게르만족이 그들의 전통적인 문화적 기반 위에 고전 고대 문화(그리스 로마신화)와 크리스트교를 수용. 유럽을 무대로 `독자성을 띤 새로운 문화` 형성2. 중세를 통해 크리스트교 문화가 지배적인 위치3. 중세유럽 세계가 봉건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기 시작.중세 3시기 구분법 : 초기(5C~10C) - 게르만 대이동에 따른 혼란기. 로마제국 멸망- 프랑크 왕국이 성립. 중세사회의 성립을 주도- 크리스트교 문화가 유럽세계에 영향력 확대하는 시기중기(11C~13C) - 정치, 사회적 안정기- 근대 유럽국가 성립기- 크리스트교 발전이 전성기에 이르렀음후기(14C~15C) - 황혼기.- 새로운 변화가 모색되며 근대를 준비하는 시기게르만족 : 아리아족 일파- 키비타스 = 정치생활하는 조직집단. 자유인 전사의 모임. 주요활동 모의봉건제의 기원 : 종사제 - 전사들 사이에서 조직된 집단.종사와 그들의 수장으로 구성. 수장이 윗대가리경제활동 : 자급자족 중심.종교 : 자연 숭배의 다신교민족이동 이후엔 대체로 크리스트교로 개종2. 게르만과 로마제국3C전에는 로마한테 게르만족들 개쳐발리고다님그래서 토지도 주고 평화를 조건으로 정책 폈는데 이썌끼뜰이 4C부터 로마시민들이랑 싸움4C 말, 게르만족의 대이동 - 로마제국 멸망 직접적인 원인 (무력적인 방법)원인 : 훈족의 침입 ,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cf) 이동 할 때 게르만족은 키비타스 보다 더욱 큰 규모의 부족 단위 정치집단 만듬7왕국 - 영국 초기의 부족국가오도아케르(게르만족 출신 용병대장) - 고트족임오도아케르 - 로물루스 아우구스토스 폐위시키고 지가 이태리 왕이라고 하고 다님.로마의 종말 -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로마가 망하면서 원거리 여행 또는 교역이 어려워짐. 경제적 어려움 직면.문맹률도 존나 높아짐 - 로마의 도서관케한 등재 발명.로마교회로 인해 크리스트교의 수호자로 인정됨.(2) 카롤링거 왕조와 프랑크 왕국의 발전마르텔의 아들 피핀 - 751년 메로빙거 왕조 끝. 교황의 승인 받고 카롤링거 왕조 창설.교황의 승인 : 이후 교권과 속권 사이에 관계 정립에 중요한 계기.교황의 요청에 따라 롬바르드족 패고 이태리 중부 땅 회복.그 땅 교황에게 기증.4. 샤를마뉴와 중세의 제국(1) 샤를마뉴의 대외정책피핀의 아들 샤를마뉴 때가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샤를마뉴 - 1. 영토를 두배로 확장. (영국, 이베리아 반도, 이태리 남부를 제외하고 서유럽)2. 작센 전쟁과 동유럽 원정은 유럽 외부 세계의 게르만족들 유럽 문명권으로 끌 어드림.3. 정복전쟁의 절반 이상이 정복지 주민들을 크리스트교로 개종시키기 위한 것.4. 전승의 원인 : 조직화된 군대, 새로운 무기, 특히 군비5. 기사도 문학이 발전함 (성기사 롤랑이 전사한 것을 바탕으로 롤랑의 노래)(2) 샤를마뉴와 로마제국의 부활샤를마뉴 - 1. 교황 레오3세에게 적대적이었던 로마 귀족들을 제압. 교황을 보호2.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됨. 교황에게 인정받음.로마제국의 부활 - 교황의 계획에 따라 추진됨.(게르만 이동에 따르는 혼란의 시대가 끝나고 유럽사회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문화체계를 건설하기에 이르렀음)1.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황제교황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비잔틴 황제는 이태리에 대한 종주권을 고집하고 이태리 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함.비잔틴제국의 예속권에서 독립하기 위한 시도.2. 로마제국의 부활은 단순히 교황이 비잔틴 황제의 영향권으로부터 독립한 것보다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지님1. 샤를 대제의 대관에 신이 개입하였음을 강조.샤를 대제가 다스리는 `신성한 제국`으로 선언 - 크리스트교적 제국이 됨. 즉 신성로마샤를마뉴는 이슬람과도 우호적인 관계 유지(3) 카롤링거 르네상스샤를마뉴 - 수도원학교 건립. 교육을 강화. 성직자들에 의해 이루어짐.학자들을 초빙하여 라틴고전을 연구.라틴 문화 부흥에 크게 이바지.꺼 정화를 위한 개혁운동의 진원지수도원 운동 : 크리스트교의 금욕주의적 전통에서 발전육체적 고행이나 금욕적인 전통에서 발전나중에 세속화 경향에 물들곤 했음. - 도미니쿠스가 이에 불만을 품고 민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감. 프란체스코 등이 전개한 탁발 수도회 운동.초기 크리스트교 교회 - 정치, 사회적으로 세소적인 문제와 결부 됨.따라서 수도원운동은 자각운동임. 크리스트교에서도 인정받음.최초의 수도원 - 안토니오스 3, 4C 이집트(다포기. 극단적인 금욕)그러한 삶을 통한 개인의 구원과 신과의 연합을 추구이후 서구 세계의 수도원 제도의 모델이 된 관행 - 6C 성. 베네딕트에 의해 마련됨.베네딕트 - 노동, 청빈, 동정, 복종등을 강조.규칙적인 기도와 학문을 포함하는 노동 엄격하게 규정.육체적인 노동 - 참회 및 자기부정을 위한 금욕적 삶의 실천 의미했으나 동시에 자급자족을 위한 생산의 필요성에 의한 것.수도원 - 새로운 경작방법과 수공업 기술을 개발하여 게르만 농촌사회에 소개.그들을 크리스트교 세계로 끌어들임.수도원의 학문 활동은 고전 문헌의 보존에 크게 기여.수도원 학교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 크리스트교적 주지주의의 확대를 도모.클뤼니 수도원 - 베네딕트의 영향을 받음. 더 강화.속권으로부터 교권의 독립을 강조.성직매매 폐지.세속 군주에 의한 성직 임명권의 폐지 등을 제안.최초로 중앙집권적인 수도회로 발전. 300여개 이상의 분원을 둠.중세 초기 교육의 중심 - 교회, 수도원에 부속된 학교수도원은 신앙생활을 위한 공간 + 고전연구 및 필경. 중세학문중심지중세 초기의 유일한 지식계급 = 수도사수도원 학교는 성직자가 되려는 애들한테 크리스트교 교리와 문법, 논리학, 산수, 기하학 다 가르침대학 - 12C 도시가 발달하면서 도시에도 대학이 등장.ex) 법학으로 유명 볼로냐 대학, 신학으로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 파리대학.14C 후반 universitas (전체라는 의미) 교사와 학생의 공동체.상업 혹은 수공업 길드와 구별할 필요성에서 studium generale이 상대적으로 강세.이를 위한 논리학이 중시.따라서 교회 학교를 중심으로 스콜라 학풍의 철학, 신학이 융성.파리에서도 자립적인 교수 영업활동이 활발하게 전개. 교수 자기가 선택해서 수업 받음.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이 크게 유행.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기존의 신학체계에 반하는 논리를 포함. 교회 당국으로부터 상당한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분야.논리학의 최고 권위자 아벨라르 : 토론식 수업을 권장. 분석적이고 비판적 연구방법.유럽의 신학지망생들을 끌어 모음.기존의 관습과 권위에 대한 비판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파리지역 교수들은 교회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학무관의 통제를 받고 있었음.특히 학무관이 교수들에 대해 복종선서를 강요하면서 교수들의 반감이 표출.아벨라르와 교수들이 국왕에게 이러한 상황을 진정. 교황에게도 받아 들여 달라고 건의.교황은 이에 1200년 특허장을 발행. 교수의 연구 자유를 보장.교수들의 노력으로 길드 체제의 universitas를 자치적인 `상설 고등교육기관`으로 전환.여기서도 학생들이 여러 가지 학내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1215년 1231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의 교서로 확보. 파리 대학에서 허용된 `교수와 학생들의 자유`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주어진 특권` > 대학은 구속 없는 자유를 누림.파리 대학은 교수들이 주도하는 대학으로서 이후 북유럽 대학의 모델이 됨.(3) 대학의 성격과 역할universitas = 교수와 학생들이 대내적으로는 상호부조와 협력. 대외적으로는 자치“자유로운공동체” > 하나의 길드.universitas는 내부의 규약을 제정, 대표 선정, 재판권 행사.구성원들에게 법률적, 사회적 보호를 제공이러한 권리는 교황, 군주의 특허로 보장됨.이러한 자유가 학문의 자유를 가능하게 함.중세 이후, 대학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진리에 대한 열망이 새로운 지식인들을 탄생.1. 교과과정과 수업중세 대학에서는 상공업 길드에서처럼 계서 과정이 마련.신입생은 6년 동안에 걸쳐 7자유학과. 즉 산수, 기하학, 음악, 문법, 논리학, 세력 확대, 나아가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 > 클레몽 종교회의 소집. 예루살 렘 해방을 위한 유럽세계 궐기 호소. 유럽세계 군주 및 제후들 `무장 순례`로 대규모 원정.13세기까지 계속됨. 대규모의 원정만 8차에 걸쳐 수행.성지회복이라는 원래의 목표는 실패.1차 원정 성공. 5차 원정때 일시적으로 회복. 성지 졸곧 이슬람 세력.실패의 주요 원인 - 십자군이 각국의 각계각층 사람들로 구성조직화, 체계화 X원정이 거듭됨에 따라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우선시 됨.원정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놈들.4차 원정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대표적인 경우.4차 때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함. 돈 때문에(통상권, 베네치아의 요구)일시적이었지만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라틴제국을 건설.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유럽 세계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 로 활동영역 확대. 지중해 무역활동의 확대. 고전고대의 많은 문화유 산들이 유럽세계에 소개. (12세기 르네상스)고대문화의 서구세계로의 유입 - 르네상스의 한 단서.장원경제의 해체를 촉진 - 무역확대에 따른 도시와 상공업의 발전흑사병으로 유럽 세계의 1/3 죽음 - 농노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상승상공업이 성장함에 따라 장거리 무역 확대. 돈 더벌 수 있었음. 이슬람까지장기간에 걸친 기사들의 해외원정 -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그들이 몰락함으로써 군주들은 그들의 권력 강화시킬수 있었음.원정과정에서의 각국 군대사이의 대립 - 민족감정 촉발. 왕권강화에 기여2. 상업과 도시의 발달12, 13세기를 정점으로 14세기부터는 많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줌.이 변화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상공업의 발전과 그에 따른 도시의 발전.11세기 이후 정치,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지고 농업혁명과 더불어 농업 생산성이 향상.생산성의 증대로 농촌사회에서 거래활동이 일어남.농업 식민운동 - 식민운동으로 시작. 토지의 개간과 대규모 간척사업.노동력의 유동성으로 노동력 가치가 상승.농업 식 증대
거대한 전환을 읽고21310511 김진석거대한 전환은 18세기말~20세기 초중순의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근거로 자유방임주의의 문제점을 꼬집은 책이다. 거대한 전환은 2차 세계대전 기간, 1944년에 칼 폴라니가 집필한 책으로 자유방임주의, 즉 당시 자유경제체제였던 사회가 화폐경제, 무역 등 금본위제로 유지되었거나 또 세계 몇몇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평화가 지켜지던 세계가 결국엔 1,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등(2차 세계대전은 금본위제의 해제로 인한 강대국들 간의 보호무역으로 인해 발생했다.)을 자유방임주의의 실패라고 간주하고 그 이유를 분석한 책이다. 칼 폴라니는 봉건제, 계급구조에 의해 사회가 통제 당하던(경제가 사회에 종속됐던) 18~19세기 초와 비교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생산기술의 개선으로 인한 산업혁명의 결과로 돈, 즉 화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서 경제가 사회에서 나와 독립한 자유주의란 체제가 갑자기 등장해 세계 사회모습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한 이러한 측면을 책 제목인 거대한 전환을 통해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칼 폴라니는 중도사회주의자(민주적 사회주의자)라 볼 수 있다. 폴라니는 사회가 경제보다 더 큰 범위라고 생각했다. 사회가 경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경제가 사회에 종속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비록 사회는 경제적 요소에 크게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경제가 사회보다 더 중요한 범위가 되어 버리면 그 전에 보았던 18세기~20세기 초에 발생했던 사회의 문제점이 미래에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를 경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 폴라니를 사회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폴라니는 다른 사회주의자들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자유주의가 문제점이 많아서 일단 기본은 사회주의지만 자유주의의 장점은 흡수한 느낌이랄까. 흡사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중간이라는 느낌이 책을 읽는 도중 계속 들었다.폴라니는 유물론의 성격을 띄는 자기조정적인 시장 자체가 유토피아와 같이 실현시킬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조정 시장의 기초가 되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여러 이론들이 애초에 성공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폴라니는 그 근거로 자유주의는 인간존재와 자연을 상품화 시키는데, 이것들은 경제적 상품으로 영속될 물건이 아니라고 주장 했다.만약 노동이 상품이라고 우긴다고 해도 노동에는 인간의 본성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임금에 상관없이 직업을 받아들인다면 실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은 토지, 호수 및 바다 등으로 먼 옛날부터 인간과 함께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은 유동될 수도 없을뿐더러 토지가 유동된다면 엄청난 재앙들이 따를 것이라 폴라니는 주장한다. 또한 토지를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매개체로 본다. 이를테면 그 나라 인구의 정력과 활기, 식량 공급의 풍족함, 군사적 방어를 위해 필수적임 및 심지어 기후의 변화도 토지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옛날부터 땅은 계급사회의 원동력이 되어 전 세계 모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었다. 또한 땅에서 재배한 물건이 오늘날 화폐와 같은 기능을 해 물물교환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인류를 약탈과 무자비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땅이 넓다고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닐뿐더러 기후변화를 설명하기엔(물론 황사 등 토지만의 특성 때문에 기후가 형성되는 몇 가지 예도 있긴 하지만) 크게 변화를 받는 영향을 주는 이유가 너무나도 많기에 토지로 기후변화의 이유라고 하기엔 합리적이지 않다.폴라니가 자기조정시장이 유토피아와 같은 허상이라는 주장에는 2가지 층위가 있다. 첫 번째는 기본적인 도덕적인 이론이고 두 번째는 국가가 경제를 통제해야한다는 측면이다. 이미 당시엔 미국 대공황 등으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져 대부분의 국가들이 금본위제를 탈퇴하고 보호무역을 실시한 결과 2차 세계대전을 치루고 있었던 소위 말하던 지옥이었던(자유주의가 완전히 실패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경제에 간섭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절대생산비 이론)”은 성립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초국적 사회운동 (WTO, IMF)은 칼 폴라니의 의지를 잇는 운동이다. 그런데 막 걸음마를 시작한 이 운동은 벌써 끝날 위기에 처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선진국이 나서서 개발도상국을 도와줘야 한다는 그런 의식이 흐려지고 있다,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의 협정(NAFTA)등 이 깨지고 있고 보호무역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전 지구적인 화합이, 즉, 시장 자유주의의 결함이 발견되어 금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에 당당히 맞서지 못한다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일어난 그 비극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칼 폴라니는 보여준다. 또한 아프리카 등 여러 개발도상국에서의 군사적인 민족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의도와 다르게 전혀 반대로 발생하고 있다. 폴라니의 생각이 맞다면 미래엔 더 혹독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예측된다. 폴라니는 최소한 인간과 자연 모두를 시장 압력에서 보호해주는 새로운 규제장치의 구조인 뉴딜정책을 보고 그는 미래의 희망을 찾았다. 폴라니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국제적 갈등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 예시로 여러 예시를 들며(노인들의 사회보장, 노동자들의 전국 노동관계법 등)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인간과 자연 모두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폴라니는 생각했다. 시장민주주의는 옳지 않고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론과 달리 국가의 사회구조, 경제를 너무 자유롭게 풀어두어서는 안된다는, 국가의 최소한의 간섭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모든 생각과 의식에 깔려있다.
제 9주. 상업혁명제 1차.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학습목표1. 지리상의 발견과 신대륙의 발견이 이루어진 배경을 배운다.2. 지리상의 발견 이후 진행된 상업혁명의 전개과정과 내용을 배운다.학습내용1. 근대화 이행시대2. 지리상의 발견3. 상업혁명의 전개키워드팽창의 정신, 콜롬버스, 대양무역, 가격혁명, 주식회사, 선대제, 젠트리, 엔클로져, 중상주의, 핵심국가, 반 주변부 국가, 주변부 국가1560~1760상업 자본주의1780~1890산업 자본주의. 산업자본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자가 주체1890~1970금융 자본주의. 식민지 팽창. 금융, 증권1970~현재기술과 지적 자본주의. 금융, 증권보다는 하이테크한 고난도의 기술, 지적인 기술, 과학적인 어려운 수준의 기술컴퓨터 IT산업이 발전하던 시기* 자본주의 발달의 시대 구분- 자본주의는 시기에 따라 주체와 특성이 달라짐.1. 근대화 이행시대1. 근대(modernity)란 무엇인가?- mode. 라틴어로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 새로운 것 추구. 낡은 것으로부터 탈피단지 오래됐다는 의미 X. 더 이상 인간에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부합할 수 없는 상 태를 의미- 비합리적인(irrational) 것으로부터 탈피- 권위주의적, 억압적, 미신적인 것으로부터 탈피2. 서양에서 근대로의 이행의 세 가지 계기- 르네상스 : 예술과 학문상의 변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유적인 움직임을 표현.- 종교개혁 : 신앙상의 변화. 개인적인 자유. 자발적인 선택으로서의 신앙- 상업혁명 : 경제 사회구조상의 변화. 지리상의 발견. 지구는 둥글다는 의미를 찾음대규모의 교역 수직적인 상승. 근대로의 들어가는 첫 관문2. 지리상의 발견1. 신대륙과 신항로의 발견들1492년콜롬부스의 산타 마리아호, 신대륙의 발견스페인과 중남미 발견1498년바스코 다 가마의 남아 희망봉 발견남아메리카의 최남단의 끝을 발견태평양으로 갈 수 있는 항로 정확히 발견(그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정확히)1519~1522년마젤란의 태평양 횡단과 세계일주- 콜롬부스는 3번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한 모습파리보다 남쪽에 위치하며 사치스러운 구질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던 모습의 시절 - 파리시내의 국민들의 증오심이 날이 갈수록 커짐Ⅰ. 배경-사회적2. 사회적 배경구제도 시대의 귀족과 평민사이 적대감 심화1) 신분제- 프랑스는 자유사회. 인구 2300만- 성직자 10만, 귀족 40만, 나머지 제 3신분(=시민계급, citizen)- 귀족의 세력 5%가 토지 40% 소유.- 제3신분 = 상층 부르주아, 소 부르주아, 도시노동자, 농촌 소농 구성제3신분 세력은 모두 자유인이었고 납세층이었음.2)당시 인구 2300만, 프랑스는 자유사회성직자 10만, 귀족 40만, 나머지 제3신분(=시민계급)제3신분 = 상층부르주아(성공한 문인, 법률가, 의사, 제조업자, 금융가),소부르주아(기술, 손재주, 자영업자, 수공업 종사자),도시노동자, 농촌 소농*세개의 계층사이가 혁명이 전개되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자 서로의 갈등이 심화3) 18세기 프랑스의 신분제 모순, semi-feudal- 경제 = 봉건적 성격, 자본주의적 성격이 섞여있었음.-귀족들은 전국토의 1/5차지(5%가 40%), 특권, 면세권, 신분적 위신, 봉건적 영지.최고법원, 관직, 성직, 삼부회의 귀족원 독점-배타적(4대째 귀족혈통 가진 자만 귀족의 신분획득 가능)* 신분대립프랑스 신분 대립제 2신분 제 3신분특권귀족 vs 도시 부르주아궁정 납세층4) 농촌에서 영주-농민의 적대감 증가(국왕이 자유 경영 금지시킴)- 프랑스 농민은 대다수 자유소농, 사유농, 사적 소농- 프랑스는 카톨릭사회, 귀족사회여서 국왕은 토지 귀족이 상공업을 하는 것을 천하다 여겨 금지시킴.- 그러나 부역폐지 이후에도 현물지대 잔존.봉건적 부정기적 직접세(Taille), 잡세 계속 증가. 농민의 증오심.토지소유욕 land hunger. 부재지주에 대한 증오심이 날로 커짐*현물지대 : 현금, 현물지대, 부역지대5) 도시민 곡가 폭동-자유인, 상공업 종사, 납세민, 계몽사상(자연법+이성) 흡입(ex, 볼테르, 디드로 의적 계급사관 부정.구체적 사실 부분에서 사관과 불일치 주장.-그러나 아직은 보편적 인정을 받지 못함.-프랑스혁명 덕으로 진행되고 있던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자유럽게 확대된 것이지 프랑스혁명 전은 봉건상태였고 프랑스혁명 이후로 자본주의가 도입된 것은 아니다.- 현재는 교과서에서 시민혁명+민중혁명이라고 가르침 < 팩트퀴즈Q1. 프랑스 혁명에서 백색반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1) 혁명전쟁을 의미한다.2) 나폴레옹의 등장을 의미한다.3) 로비에스피에르의 몰락을 의미한다. > 우파의 기습적인 성공을 의미.4) 당통의 처형을 의미한다Q2.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맞지 않는 것은?1) 시대별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였다.2) 19세기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자유주의 승리의 대표적 사건으로 설명하였다.3) 부르주아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은 혁명 이후 자본주의적 계급관계를 강조한 탓이다.4) 프랑스 혁명사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인 르페브르는 쌍뀔로뜨의 역할을 발굴하였다. > 농민의 역할을 발굴함. 프랑스 혁명사에서 최대의 성과, 해석 완벽한 설명사를 내논 인물로 존경을 받고 있음.학습정리1.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난 사건의 주기에 대해서 알아 보자1) 구제도2) 공식적 저항 (테니스 코트까지 말로 싸움)3) 무력의 충돌. 바스띠유 감옥 습격사건. 국왕의 패배. 4) 온건파 지배. 입법 의회. 1791 헌법까지 세움5) 두 번째 무력 : 온건파가 무너지고 급진파, 과격파가 권력을 잡음루이16세와 귀족 대학살 6) 급진파 내에서도 권력 투쟁 : 로비스피에르에 의한 공포정치. 1793 헌법 제정7) 백색반동 : 온건파 복귀 2. 민중을 누구를 의미하는가?- 쌍뀔로뜨층. 도시의 하부 중산층을 의미. 소상점주 수공업자 지주3. 폭력은 언제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였는가?1) 바스띠유 감옥 습격2) 뛸러리 궁의 습격3) 1793년 6월 대학살4. 1791헌법과 1793헌법을 비교해 보자.- 1791년 헌법 : 입헌군주정의 헌법 채택. 온건한 헌법- 1793년 헌법 : 공배체제)자본가와 생산자는 화합할 수 없다.4) 1870년대 각국 노동자연대 호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그러나 …. 기술력, 의식 문제는 매우 미비.5) 수정적 마르크스주의, 수정적 사회주의 대두.(이윤->군내분배, 노동자 복지 고안)1890년대, 생산성. 합법적 의회제, 민족성 중시. 사회민주주의로 변화함.러시아만 예외, 러시아는 폭력혁명론 수용@19세기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1830~1848년 : 초기 사회주의 - 유토피아적생 시몽에 의한 조화로운 설득, 중재를 호소하던 시기1848~1860년대 : 인민주의 - 인민봉기1870~1880년대 : 마르크스주의 - 계급투쟁론1890년~1914년 : 사회민주주의 - 의회정책면(해외시장개척 성공) 수정적 노선1. 영국 노동운동의 노선의 변화.1880년대 산업혁명의 2단계전개. 국익 증가.기술발달 고도화, 전통적 수공업자보다 대기업 미숙련공 주도1) 정부개입‘기업주(사용주) vs 노동자’ 갈등에 개입 시작.임금상승, 해외 수입을 일부 재분배노동자 선거권 허용 시작. 의회정치 참가. 노동당 창당, 광부 출신2) 1871 영국 공장법 통과 노동조합 합법화.(trade union) 노조 = 노동조합단체협상권(Collective Bargain), 파업(Strike) 권리 쟁취. 단협 = 단체협상권1890년대 합법적 노조주의 전통으로 전환됨.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함, 부르주아지 양보 및 후퇴->산업화를 통해 분리되어 있는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의 타협과 견제, 산업민주주의를달성하는 가장 모범적 사례>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6. 19세기 유럽 각국 노동자운동의 다양성1) 영국 - 1870년 노동조합주의의 발생(노동자당을 통해 의회의 다수를 차지)의회주의, 자본주의 체제 수용(생산증가). 접목함. 노조주의2) 프랑스- 1871년 이후 신디칼리즘(무정부주의)전통, 신디칼주의생산자 연합조직. 전국시도.1871년 파리꼼뮨 폭동3) 독일- 1871년 통독 이후 노동자 대중 정당인 사민당 결성. 국가 사회정책비스마르크에 의해 점차 혁명보가 폭발하여 전제정이 붕괴하였다.2) 독일에서도 수병반란이 일어나 결국 제정이 붕괴하였다.3) 미국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동유럽국가가 독립을 얻게 되었다.4) 독일 동부의 슐리펜 작전으로 러시아 전선이 단기에 무너졌다. > 서쪽의 슐리펜 작전이었음.제 3차 - 제 1차 대전의 결과와 변화Ⅳ. 전쟁의 결과1. 세계 경제의 중심 이동- 유럽에서 미국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이동함. 유럽은 채무자 국가로 전락.(미국은 유럽에 대해 상품판매, 차관, 융자, 조약 등 미국 덕으로 유럽이 재생)- 이탈리아 10억불, 영국 30억불, 프랑스 20억불.연합국 총 70억불, 차관포함 하여 116억불.프랑스 타격이 제일 컸음- 외국식민지 이권 감소, 포기함.모든 국가가 손해, 타격, 불만.- 미국의 여러 대학이나 연구소가 기업가들로부터 엄청난 투자를 받게 됨 - > 19세기의 산업협력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는데 지원받음. 산업협력의 결과로 1870년대 에디슨이 등장. 전기의 발견.축음기, 냉장고, 각종 가구 들. 일렉트릭 회사. 유럽이 모르는 사이 미국은 엄청난 기술적인 발전 이룩- 20세기 초, 100년 만에 온 세계를 지배할 새로운 상품인 각종 기술이 농축된 자동차 산업 오픈. 전기와 화학의 발달전기+화학 = 자동차 산업 탄생- 21세기 휴대폰, 스마트폰- 무기 대여 사업도 함.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미국만 이득을 봄2. 사상자와 인구 감소사망 850만, 부상 1700만, 실종 1,000만 = 총 3,750만 희생(독일 측 600만, 프랑스 550만)경제복구에 커다란 어려움.3. 정치변동- 러시아 전제정 붕괴 - 1917. 10. 볼셰비키 혁명(민중과 연합)- 합스부르크 제국 붕괴 - 동유럽 신생 7개국 독립(자유주의 변신 기회)- 터키제국 붕괴 -> 발칸 반도 각국 독립….- 독일 제2제국 붕괴- 국내혁명, 바이마르 공화국 등장. 바이마르 헌법에 사회 경제적인 복지법을 많이 세움.역사적으로 가장 앞선 민주적인 헌법 : 바이마르 헌법바이마르 공화국 등장. (사회민주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