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BERGER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방송영상전공 3학년20112968 손나라우리는 말을 배우기 전에 사물을 보고 느끼는 행위를 먼저 배운다. 이처럼 우리에게 이미지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관계인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서 영향을 받는다.그렇기에 이미지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에 따라서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도 한다.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은 재창조되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애초에 이미지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신화이다.신화화는 영상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은 양육과 가사에, 남성은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역할의 신화가 가장 보편적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였고 오늘날엔 여성이 남성을 역할을 하기도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이 새로운 정체성의 신화가 되기도 한다.오늘날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과거의 미술을 본다. 매우 다른 방식으로 본다는 것을 말한다. 이 차이는 원근법에 있다. 하지만 카메라의 발명 이후 이러한 모순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진의 발명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복제가 가능함에 따라 고유성이 사라져버렸다. 사진뿐 아니라 그림 또한 복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현재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작품들의 가품이 몇 개가 더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존 버거는 복제품이 예술의 권위를 부수어 버리거나 제거해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복제품을 소유함으로써 특정한 계층이 누리던 삶을 나 또한 누릴 수 있다는 대리만족 때문이다. 하지만 복제된 이미지들이 널리 퍼질수록 원작의 희귀성 때문에 원작의 가격이 더 오를 것이다.현대의 생활을 예로 들어본다면 여자라면 누구나 명품가방을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방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가짜가방을 사 그 기분을 내려한다. 세월이 흘렀을 때 명품가방의 가격의 그식이 사회 맥락적으로 존재하다. 여자의 감시자는 남성이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유럽 유화의 한 범주를 차지한 것이 여자의 누드화이다. 여자들이 일종의 구경거리로 보여 지고 판단되는 것을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었다.이러한 누드화를 중세기에는 만화처럼 연속되는 장면들의 그림으로 자주 표현하였고, 르네상스 시대엔 벌거벗음을 의식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한 순간만 그려졌다. 이러한 그림의 내용은 주로 여성이 그냥 벌거벗은 것이 아니라 관객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벌거벗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오로지 남자의 성적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림 바깥에 있는 관객이 진짜 애인이라고 생각해야한다. 그림에 거울이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거울은 여자의 허영을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며 여자가 스스로를 하나의 구경거리로 대하는 데 동의하는 것처럼 만든다. 이렇게 누드는 타인에게 보여 지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서 만들어지고 전시되어 진다.존 버거는 벌거벗음, 나체를 나눠 구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체는 다른 사람에게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고 성적으로 자극을 하고 벌거벗음은 자신의 대상화를 배제하고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벗는 것은 똑같은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했다. 그래서 나는 베네통 광고에서 흑인 여자가 백인 아기에게 모유를 주는 광고사진을 떠올려 보았다. 상위를 입지 않은 흑인여자는 분명 벌거벗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대면하는 순간에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 이를 존 버거는 상대방이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평범함’이라고 설명하였다. 벌거벗음과 나체의 구분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굉장히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벌거벗음과 나체화 구분의 모호한 설정은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보고 보는 법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 생각한다.유화는 묘사되는 대상이 마치 눈앞에 있어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인 것처럼, 그 질감 광체, 입체감 등는 것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육체적 욕망이나 쾌락을 포기했음을 제대로 표현될 수가 없었고 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린 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다. 이는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모순이 되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림의 시선을 보면 아래쪽에서 위로 보는 것은 전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며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면 인간이하의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것의 예로는 18세기 작품인 브리타니아에게 진주를 바치는 인도인에서 잘 나타 나있다.미술사는 유럽의 회화 전통 속에서 탁월한 작품과 평범한 작품을 구분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탁월한 작품과 평범한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데 진품과 모조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해명은 고사하고 무엇이 그 둘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결과 혼란은 미술계에 큰 파동을 불러일으킨다.화가는 돈벌이가 되지 않자 보통 수준의 평범한 유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런 작품들이 표현하는 명목상의 가치가 화가 본인에게는 별 다른 의미가 없다. 본인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주문받은 그림을 완성하는 일 또는 그림을 파는 일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화가들은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재산과 교환 방식에 대한 새로의 태도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결정되는 세상을 보는 방식은, 다른 시각예술이 아니라 바로 유화에서 시각적으로 표현 될 수 있다.많은 유화들은 금 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단순하게 과시하듯 보여주는데 지나지 않았다. 그림은 소유자의 재력과 일상의 생활방식이 실제로 어떤한 것이지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첫 번째, 좋은 품종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 족보를 강조하는 가축들이다. 가축들의 족보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강조해서 보여주었다.두 번째, 여러 가지물건을 그린 그림도 있다. 이것은 예술작품들을 한데로 모아 그린그림이다.(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값비싼 물건들)세 번째, 건축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일본을 통해 그리고 식민지 시대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전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구의 서양화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처럼 몇 백년간 이어져 온 것도 역사적 배경의 이해 없이 단시일 내에 받아들이기만 급급했다. 처음 미술이 전래되던 시기의 초기 작가들도 투철한 작가의식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단지 망국의 울분을 잊기 위한 하나의 도피수단이라는 언급을 내보였다.그래서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유화가 나타내는 부, 권력 등의 표상은 우리나라 대부분 유화에서는 찾아 불 수 없으며 기술적 혁신만을 받아들여졌다.훌륭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보잘것없는 작품이 있기도 하다. 존 버거는 이런 명작엔 작가의 숭고한 정신적 상황을 반영하고 조악한 작품에는 가치와 예술성을 반영하지 않고 판매의 목적으로 생산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여성의 사회적 성에 대한 집적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많이 변화되어왔다. 이는 대중의 의식을 잘 대변해주는 광고나 시각이미지, 미디어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광고와 미디어에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과거엔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와 역할 그리고 언어표현은 성별에 따라 단일하고 고정적이었다. 예컨대, 순종과 강요, 적극성과 소극성, 희생과 억압,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좋은 여성과 나쁜 여성의 이분법적인 구도에 기반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과 남성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모습과 역할 등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존 버거는 우선 광고이미지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광고는 사람의 심리를 끊임없이 자극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워야 하며 최첨단의 것이어야 한다. 광고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면서도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고는 자유경쟁 시장체제에서 기업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광고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물건을 사라는 공통된 주제를 내비친다. 공익광고나 기업이미지 광고는 직접적으로 광고에 차용된 예술작품의 예를 든다. 광고에서 인용된 미술작품은 우월한 문화적인 권위를 암시하며 신화화되어 있기도 하다. 소비자는 이런 광고를 보면 이 제품의 고유 속성인양 착각을 하고 광고제작자는 유화의 전통을 이해하고 소비자에게 교묘하게 설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LG전자의 명화를 이용한 광고를 들 수 있겠다. 예술을 생활에 친근하게 접근시키는 아트 마케팅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리젠트 거리와 LG그룹 옥외광고(토마스숏터보이즈), 훔친키스와 LG전자 트롬세탁기(프라고나르), 탁터가셰와 LG전자 싸이언 휴대폰(고흐), 론강의 별밤과 LG그룹 옥외광고(고흐)등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유화에 깊이 의존할수록 신비화의 과정을 통해서 고유하고 유일함을 주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근본적으로 현실적인 사건과 현실, 실재감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고에서 과거 유화 작품의 모티브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유화작품이 광고에서 위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다. 광고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에 호소하는 동시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두려움을 유발시킨다. 따라서 돈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삶의 능력과 일치된다. 이 점에서는 존 버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광고는 자본사회의 삶에 걸맞게 소비자에게 항상 미래시제로 호소를 한다. 그래서 광고는 현재의 세계를 배제하고 항상 소비자를 결핍관념을 형성하여 만족감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광고는 고가의 제품이나 고급 이미지를 지니는 의류, 액세서리, 화장품, 가전제품, 아파트 광고는 존 버거의 논의에 부합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음료수, 스낵, 기업 이미지 광고 등의 수없이 많은 광고들이 소비자와 같은 눈높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광고를 통해 호기심을 일으키고 이러한 호기심은 소비자의 주의를 이끌고, 따라서 구매의욕을 높일 것이다. 우선 옷을 하나 팔더라도 수없이 많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