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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실학사상과 교육
    2014. 10. 08 WED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교육실학이란 ? 01 실학 실학 ‘ 實學 ‘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 ’ 18~19 세기 조선후기 대두된 학문경향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의 문화와 산업 발전 목표 근대화를 위한 실용주의 추구성리학이란 ? 02 조선의 중심사상 성리학 ‘ 性理學 ‘ 성명 · 의리의 학 ( 姓命義理之學 )’ 의 준말 유학의 한 계통 중국 송 ( 宋 ) 대에 들어와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을 ‘ 성리 , 의리 , 이기 ’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해석한 학문 의리실천의 도덕적 경향실학의 발생배경 성리학의 한계 내부적인 요인 03 성리학의 비판분위기 고조 조선 중기이후 사회적으로 안정을 유지해오던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 !실학의 발생배경 사회적인 혼란 내부적인 요인 04 관리들의 가렴주구 이론과 학설 위주의 유학자 황폐화 된 삶 잦은 당쟁 사회계급 변동실학의 발생배경 임진왜란 외부적인 요인 05 조선 1592 년부터 1598 년까지 2 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전후 7 년간의 왜란이 승리로 끝났으나 피해 막심 전 국토의 ⅔가 황페화 전사자와 노예 , 포로등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 서얼허통 , 향리의 동반직취임 , 노비의 방량등 신분제의 혼란과 문화재 손실실학의 발생배경 병자호란 외부적인 요인 06 조선 1636 년 청나라의 2 차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두달의 항쟁 끝에 조선의 굴복으로 마무리 조선 임금 인조의 삼전도에서의 항복 청나라의 직간접적인 내정간섭 군신관계에 의한 엄청난 곡물요구 문화재 훼손과 백성의 삶의 피폐화 오랜 전쟁으로 인해 민생은 도탄에 빠지다 .외부적인 요인 07 실학의 발생배경 서학과 고증학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서학의 영향으로 조선사회 구조적 모순 타파를 꾀함 청나라의 고증학과 발달된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의 문화와 산업을 발전 시키고자 함 실학이 한 학파를 형성하여 사회개혁을 위한 수단으로 또한 학문연구의 목표로 발전실학 발생배경 08 실학의 발생배경 종합적 요인의 실학의 발생배경 오랜 전쟁에 의한 백성들의 삶의 황폐화 관리들의 가렴주구 , 성리학의 폐단 정치 · 경제 ·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학문연구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에 도움과 , 백성들의 실생활에서의 쓰임과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의해 나타남실학 사상 09 실학 사상 18 세기 전반 ( 실학의 제 1 기 ) 실학사상의 초기단계 반계 유형원 , 이익 중심의 경세치용학파 근대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로써 근대적인 요소를 사회문화에 파급 토지제도와 행정기구 등 제도상의 개혁에 치중 예설 이나 성리설이 비생산적이고 관념록적인 풍조라 하여 반대 학문의 방향을 정치 경제적인 현실 문제로 전환 유형원 : 토지 제도 바로잡아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 . 반계수록 지음 정약용 : 실학 연구를 집대성 , 백성을 위한 정책 주장 . 화성설계 . 거중기 제작 이익 : 봉건적 제도 타파 주장 , 농업중시실학 사상 10 실학 사상 18 세기 후반 ( 실학의 제 2 기 ) 연암 박지원 중심의 이용후생학파 상공업 발전의 필요성 절감 , 교통확대 · 생산기술혁신을 통한 생산력 증진 주장 새로운 문화예술운동 전개 , 새로운 종교에 열중하고 신앙 보급 박지원 : 상업기술을 익히고 , 화폐를 사용할 것을 주장 . 열하일기 지음 박제가 : 상공업을 발달시키고 , 중국의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 . 북학의 지음 홍대용 : 지동설을 주장 . 서양의 근대적인 천문학에 관심 . 의산문답 지음실학 사상 11 실학 사상 19 세기 전반 ( 실학의 제 3 기 ) 완당 김정희 중심의 실사구시학파 경서와 금석 , 고전의 고증을 일삼는 학파 학문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엄격한 객관적 태도로 사실 밝히는데 주력 학문을 다루는 태도는 평심정기 ( 平心精氣 ) 하며 박학독행 ( 博學篤行 ) 위주 김정희 , 이규경 , 최한기 : 실학사상이 개화사상으로 넘어가는 시기 활동 사회개혁 방안보다는 철저한 고증과 분석에 기초한 근대적인 학문연구 태도 확산에 기여실학 사상 12 실학 사상 실학의 사상적 근거 실학자들은 대부분 사대부 계급에서 분화된 이른바 몰락한 양반 으로 각 시기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르지만 근본적인 사상적 근거는 새로운 국가관 · 국민관 에 의한 민본주의의 실천을 위한 정치 · 사회 · 경제를 혁신하는 것실학 사상사 13 실학 교육 사상가 유형원 ( 柳馨遠 , 1622~1673) 조선 후기 실학자 실학 발전의 토대를 쌓은 인물 ‘ 반계수록 ’ 에는 토지제도 , 조세제도 , 교육제도 , 과거제도 , 관리임용제도 , 군사제도 등 다방면에 걸친 개혁안이 담겨 있다 특히 토지개혁의 균전제 는 이후 실학자들의 토지 제도 개혁안의 출발점이 됨 * 균전제 : 농민들에게 땅을 고루 나누어 주는 토지제도실학 사상사 14 실학 교육 사상가 이익 ( 李瀷 , 1681~1763) 유형원의 학풍을 이어 실학의 대가 정약용을 비롯한 후대 실학자들에 큰 영향 노비제도 , 과거제도 , 양반 문벌 제도 , 미신 , 승려 , 게으름을 국가 발전을 해치는 6 가지라 주장 농업을 향상시키고 농민을 보호하기를 주장실학 사상사 15 실학 교육 사상가 정약용 ( 丁若鏞 , 1762~1838) 실학연구를 집대성 관리들은 백성을 위해 바른 정치 시행 주장 기술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 제시 능률적인 경제운영의 지혜 가르침 화성설계 , 거중기 만듦 ‘ 목민심서 ’, ‘ 흠흠신서 ’, ‘ 경세유표 ’ 등을 저술 .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체계화실학 사상사 16 실학 교육 사상가 이덕무 ( 李德懋 , 1741~1793) 북학파 실학자들로부터 영향 받음 신분의 폐쇄적인 교육에서 탈피주장 인간의 도야를 목적으로 하는 개방적 초학 교육 주장 고증학을 수용하여 북학을 일으키는데 공헌 * 도야하다 :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아 기르다 .실학 사상사 17 실학 교육 사상가 박제가 ( 朴齊家 , 1750~1805)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혁신 주장 청나라와의 통상 확대 주장 ‘ 북학의 ’ 는 정치 , 사회 제도의 모순점과 개혁방안 뿐만 아니라 생활 도구의 개선을 다룸실학의 의의 18 실학의 의의와 한계 실학의 의의 자유로운 비판 정신을 가진 실사구시의 실증적 학문 백성의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 조선의 현실을 생각하는 민족적 학문 양반 사회모순을 개혁하고 산업을 발전시켜 새로운 사회로 나가려는 근대지향적 학문실학의 한계 19 실학의 의의와 한계 실학의 한계 실증적 , 민족적 , 근대지향적 인식을 발전시켰으나 , 몰락 지식인들 의 개혁론으로 국가의 현실 정책에 반영하는데 한계 실학자들의 사회개혁안은 봉건체제의 안정적 존속과 유지 이므로 전통적 성리학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는데 한계생각해 볼 문제 20 생각해 볼 문제 1) 실학 교육사상이 당시 조선후기의 사회나 교육을 개선하는데 바람직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제에 적극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실학 교육사상을 펼친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사대부 계급에서 분화된 이른바 몰락한 양반 , 즉 재야 학자들이었습니다 . 대체로 정치 권력과 거리가 멀어서 국가정책에 의견을 반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Q / A 23 Q / A 질 의 응 답2014. 10. 08 WED 감 사 합 니 다 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교육학| 2014.10.23| 23페이지| 2,000원| 조회(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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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립 교향악단 연주회 감상문
    나는 4월 2013년 4월 11일 오후 7시30분 아트센터에서 제 104회 도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 가서 연주를 들었다. 이동호 지휘자와 김윤희 바이올린분이 하시고 총 4곡을 연주하였다. 첫곡은 김정길의 연작교향시 중 제3편 “한라산 비경”을 연주하였고 두 번째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35를 연주하였다. 세 번째 곡은 이영조의 섬집 아기 환상곡, 그리고 네 번째곡은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을 연주하였다.Ⅰ연작교향시 은 제주 오페라 의 작곡가 김정길 선생이 지난 2008년 제작해 제주시와 도립교향악단에 증정한 작품으로, 제주의 풍경과 민속적인 설화를 바탕으로 작곡됐다. 동양화를 보듯 한라산의 비경이 장엄하게 들린다. 이곡은 3개의 연작교향시로 *제 1곡/ 아름다운 섬 제주, *제 2곡/탐라의 소리, *제 3곡/한라산 비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곡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섬 제주의 풍경과 민속적인 설화를 소재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제 3곡 은 4/4박자 정악풍(正樂風)의 느린 흐름으로 시작된다. 이곡은 한라산의 신비한 모습을 불규칙적인 리듬의 변화와 현란한 색채를 이용하여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그 후의 2/4박자의 활기찬 빠르기로 바뀌어 첫 부분과 대비를 이루게 하고 끝부분은 오페라 백록담의 종악장에 사용된 토속적인 주제를 대위법칙으로 전개하여 영원무궁한 한라산의 비경을 장업하게 노래한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태어난 작곡가 김정길 선생(1933년 1월 28일~2012년 3월 17일)은 기독교적인 기틀 아래 음악을 비롯하여 미술, 문학, 체육 등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부친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김정길 선생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타고난 재능이있었고, 또 군악대에 입대하게 되면서 전문적으로 음악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김정길 선생뿐만 아니라 김정길선생때 세대의 음악가들은 음악을 접하고,공부한 과정은 지금 현재와 매우다르다. 저때의 세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남/북 간의 전쟁등 험난한 과정을 거쳤고, 이어 4.19 5있다. 차이콥스키는 1840년에 태어나 1893년에 사망한 러시아 작곡가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재정 러시아의 말기로 극심한 혼란기이다. 1850년대 러시아는 크림전쟁에서 패한 후, 군사적, 사회적 후진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를 극복하려고 농노 해방 등 근대화가 시작하였으나, 이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해방된 농도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못하였고, 각지에서 소수민족의 소요가 일어났다. 경제 공황 속에 노동 운동이 과격화 되어 혁명의 싹이 커져가고 있었다. 차이콥스키가 사망한지 불과 8년 후인 1905년에 제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그 시기의 러시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 그는 평생 우울증을 앓았다. 그는 콜레라로 어머니를 14세 때 여의었는데, 그의 우울증의 원인을 거기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하여 항상 고민하였다. 1877년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갑작스럽게 결혼했으나 그 결혼 생활은 파탄이나 오히려 그의 우울증은 극도로 악화되어 자살기도까지 하게 된다.결국 차이콥스키가 유럽으로 요양을 떠나면서 그들은 헤어져 살게 된다. 이혼을 하지 않아 법적으로 부부관계는 그의 부인이 먼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우울한 차이콥스키의 인생이었지만 그를 지켜준 것은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였다. 폰 메크 부인은 그보다 9살 연상이고 많은 자녀를 가진 부유한 미망인이었다. 차이콥스키는 이후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된다. 정신적으로도 폰 메크 부인에게 크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와 파산이후 그는 국제적 명성이 있는 작곡가로 더 이상 부인의 후원금이 꼭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부인이 주는 정신적 지원은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부인의 편지가 끊긴 후 그는 큰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 후 차이콥스키는 절망을 떨치고 작곡에 매진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작품이 교향곡 6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작품들은 교향곡 제6번 b단조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b단조, 백조의 이야기를 듣고 잠이 드는 아기의 평온함으로 시작하여, 프레스티시모로 질주하는 환상 속의 동화를 꿈꾸다가 첫 자장가로 돌아오는 모습은 지극히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연상시킨다. 3악장 - 알레그로 콘 푸코는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맹렬하고 장대하며 스펙타클한 악장으로 손꼽힌다. 오케스트라의 네 마디 서주 후부터 펼쳐지는 피아노의 굵고 거친 슬라브 무곡풍의 론도 주제와 이어지는 간결한 가요적인 부주제가 잇달아 펼쳐지며 서정과 기교의 긴박감 넘치는 조화와 대비를 이룬다. 특히 마지막 피아노 코다 부분에서의 빠르고 강렬하며 비르투오시티 넘치는 옥타브와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총주의 터질 듯 벅차오르는 사운드는 러시아의 호방함과 저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3.백조의호수는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더불어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음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차이콥스키 당대에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여성 무용수의 각선미와 우아한 포즈를 살리는 것에 안무가 치중되어 있어 단순한 춤곡 반주, 그 위에 장대한 나열 형식 등의 발레 작품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춤추기 위한 음악보다는 절대음악의 성격을 지닌 난해한 작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 상연되었던 1877년, 평가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차이콥스키는 두 번 다시 발레음악을 작곡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할 정도였다 한다. 그것은 시대를 앞서간 자의 고독과 시련이었다. 이 작품으로 차이콥스키는 발레음악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100년간 안무가들에게 종속되어 있던 발레음악은 이 작품의 출현으로 인해 무용의 반주가 아닌 무용과 대등하게 가까운 지위로 올랐다.4.호두까기 인형은 차이콥스키의 이른바 ‘3대 발레’ 가운데 마지막에 속하는 이 작품은 앞의 두 곡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비하면 길이도 좀 짧고 분위기도 가벼운 편이지만 그만큼 더 친숙해지기 쉬운 감흥을 지니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애상적인 분위기 없이 밝고 달하기 위해 종종 무대에 올렸다. 곡의 구성은 장대한 종결부가 딸린 3부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제1부는 ‘모데라토 인 모도 디 마르차 푸네브레(장송곡풍의 보통 빠르기로)’의 처연한 행진곡으로 시작된다. 여기에 흐르는 b♭단조의 무거운 선율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으로, 세르비아의 민요 [오 빛나는 태양이여, 그대의 빛은 불공평하단 말인가?]에서 유래했다. 이 의미심장한 선율이 관현악 편성을 달리하여 되풀이되며 격렬한 첫 번째 클라이맥스를 구축한다. 제2부에서는 관악기들의 스타카토로 장조의 새로운 선율이 등장한다. 희망을 상징하는 이 밝고 경쾌한 선율 역시 세르비아 민요에 기초한 것이다. 빠른 전개 속에서 다시금 긴장이 고조되며 연결악구로 넘어가면 저현부에서 귀에 익은 선율이 들려온다. 훗날 [1812년 서곡]에서도 사용된 이 선율은 제정 러시아의 국가인 [신께서 차르를 구원하신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부분은 위기에 처한 세르비아를 구출하겠다는 러시아인들의 결의를 나타내는 듯하다. 열기를 더해가며 제3부로 넘어가면 제1부의 선율이 다시 등장한다. 이제 음악은 긴박감을 고조시키며 더욱 격렬한 투쟁을 펼쳐 보이고, 마침내 두 번째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그 배후에서 타악기와 관악기로 울려 퍼지는 리듬은 베토벤의 '운명적 리듬'을 연상시킨다.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인 제1부, 밝은 서광이 비치는 듯한 제2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제3부를 차례로 통과하고 나면, 종결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시작된다. 템포가 알레그로 피우 모소(조금 더 빠르게)로 변경된 가운데 팀파니의 타격음이 울려 퍼지면, 클라리넷이 이끄는 목관 파트와 트럼펫이 이끄는 금관 파트가 러시아 민요에서 취한 경쾌한 가락을 릴레이식으로 연주한다. 그리고 이어서 트롬본과 튜바가 [신께서 차르를 구원하신다] 선율을 강력하게 부각시킨다. 이후 음악은 극도로 열광적인 분위기로 치달아 현란하고 떠들썩한 패시지가 숨가쁘게 이어지다가 장엄하게 마무리된다. 6.1812년 서곡 Eb장조를 작곡하기 시작한지며, 대포의 연발과 함께 금관이 연주하는 장중한 주제는 제정 러시아 국가인 ‘신이시여 차르를 보호하소서’이다. 성대한 종소리와 함께 전곡이 마무리된다. 덧붙이는 말이지만 제정 러시아 국가 선율은 구소련 시절에는 글린카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에 나오는 합창 선율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아마 정치가 히스테리를 부리면 예술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가의 사례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Ⅲ 섬집 아기 환상곡(2007)은 작곡가 이영조 교수의 선친 이홍렬(1909~1980)은 “바우고개”, “코스모스를 노래함”, “고향 그리워”, “어머님의 마음”, “진짜 사나이”등 한국인이면 누구나 사랑하는 수많은 노래를 남겼다. 그 중 “섬집 아기”는 이제 동요의 범주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자기만의 “마음의 성”을 갖게 하는 소중한 노래가 되었다. 이 교수는 바다-섬-섬집-엄마-아기-자장노래-파도 이런 소박한 노래의 시상에 더하여 섬집 아기의 주제를 극대화하기 위해 역시 그의 선친의 곡인 ‘자장가’를 그위에 중첩시켜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모성을 표현한다. 상사을 더 하여 모래 벌에서 아장거리고 뛰노는 아가의모습,그리고 환상의 폭풍과 그 후에 다시 찾아오는 평안과 위로 등을 상징적 수법으로 모자이크한다. 시작부분의 긴 선적 주제는 수평선을 상징하여 그 위에 점묘적 섬이 묘사된다. 전통화성과 대위법, 우리의 민속 요소와 반음계주의 그리고 현대의 격렬한 불협화음 등 작곡상에 나타난 그간의 시대적 작곡기법들이 집약된 환상곡이다.Ⅳ한국 환상곡안익태 작곡의 합창단-관현악과 관악기를 위한 대 환상곡 은 관현악단과 혼성 합창으로 구성된 단일 악장의 작품이다. 1938년 2월 20일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에서 초연되었으며 보완을 거쳐 1958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완성된 곡이 연주되었다. 독일 후기 낭만파 양식이 기조가 되고 있으며 특히, 후반부의 합창 부분은 의 가락이 중심을 이루며 ‘만세,만세’의 가사로 격양과 고조를 이루면서 끝이난다. 이 작품은 태고의 민족 탄생과 유구한 역사, 그리고 외적 침략다.
    독후감/창작| 2013.12.10| 13페이지| 2,5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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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토벤 제9번 교향곡 감상문 평가C아쉬워요
    2013년 4월 8일 음악감상 수업시간에 나는 『베토벤 제9번 교향곡 4악장』이라는 아주좋은 연주가를 듣게되었다. 이 활기찬 합창곡은 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찬송가로 불리우며 찬송가로써 뿐만아니라 보통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곡이다.이 『베토벤 제9번 교향곡 4악장』은 제목에 나와있듯이 베토벤이 작곡한 곡이다. 베토벤의 풀네임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이고 1770년 12월에 출생해 1827년 3월에 사망했다. 57년간 흔히 ‘음악의 성인’(樂聖)이라 불리는 삶을 살았다.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 였다. 그는 영웅적인 기백에 백절불굴의 투지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다. 베토벤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다. 베토벤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베토벤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엄한 교육을 시켰다. 베토벤은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었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빈으로 갔다. 베토벤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1973년, 22세 때에 베토벤이 빈에 나타났을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토벤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귀병을 앓고 있었다. 1814년 이래 베토벤은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베토벤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 황제 취임에 의해 이것을 파기했다고 전해진다. 작곡가 자신이 제5번 교향곡 이상으로 이 곡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제6번 교향곡은 제5번 교향곡과는 대조적으로 천진난만한 밝음이 가득하며 이라는 표제는 작곡자 자신이 붙였다. 다시 베토벤은 각 악장에 각각 표제를 주어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묘사라기보다는 감정의 표현’인 점을 특히 주의하고 있다. 1808년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작곡자 지휘 아래 제5번교향곡과 함께 초연을 장식하는 이 기념비적인 연주회도 많은 곡목과 연습 부족의 악조건이 겹쳐, 마침내 화가 난 베토벤이 고함을 질러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당연히 이 곡의 평판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당일의 프로그램에는 「제6번 F장조」, 「제5번 c단조」라고 소개되어서 완성은 오히려 교향곡이 먼저가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최초의 스케치가 1803년에 보이므로 완성까지에는 5년의 세월을 요한 것이 된다. 아무튼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걸작이 때를 같이 하여 구상되고 완성되어간 사실에는, 모차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뭔가 창조의 비밀이나 역설을 느끼게 한다. 다만, 자세히 검토하면 공통된 수법이나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5악장 구성은 이색적이지만 제4, 제5악장은 끊음새 없이 계속된다. 악기 편성은 표준인 2관 편성에 피콜로와 2개의 트롬본을 더하고 있다. 제5번 교향곡의 너무도 유명한 곡. 제1악장 첫머리의 ‘운명’의 동기는 전교향곡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모두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작곡자 자신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이 동기를 설명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이 곡이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스케치에서 완성까지 5년의 세월이 소비되고 그 동안 손질을 거듭한 것으로 생각된다. 연주 시간은 30분이 채 못 되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큰 차는 없지만, 그 압도적인 내용은 과연 거대한 곡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한 c단조라는 조성은 베토벤의 성격에 가장 어울린다고 하는데, 반드시 독단이며 베토벤도 어쩌면 이 서주를 강조하기 위해 이라 불렀던 것 같다. 곡은 은인의 한 사람인 카를 리히노프스키 후작에게 바쳤다. 제14번 소나타는 비평가 렐슈타프(Ludwig Rellstab)가 이 작품의 제1악장을 가리켜 스위스의 루체른 호반의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다는 비유에서 생긴 명칭이다. 어느 것이나 베토벤이 전혀 모르는 일이지만 과연 이야기 풍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성격을 가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성의 피아노 소나타임에 틀림은 없다. 그 자신도 제13번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이 곡을 '환상곡풍 소나타'라 부르고 있다. 곡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기 전, 이미 귓병이 절망적임을 깨닫고 있었던 무렵에 작곡되었다. 그러나 이 해에는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와의 연애도 있어서 결혼의 행복을 생각한 해이기도 했다. 소나타도 줄리에타에게 바쳤는데 그녀와의 연애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했음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제17번 소나타는 3악장. 이 곡의 이해를 위해서는 셰익스피어의 『텀페스트』를 읽으라고 베토벤이 말했다고 한다. 전 악장이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대담한 악상은 이상하게 긴박한 어두운 정서에 차 있다. 제23번 소나타는 제2기를 대표하는 걸작의 하나로 고금의 피아노 소나타 중 왕자라고 할 만한 명작이다. 1805년 34세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바로 교향곡을 쓰기 시작한 무렵이다. 어느 것이나 제2기 베토벤 특유의 정열을 세게 발산하는 듯한 격렬한 표현과 깊은 혼의 휴식을 띤, 엄숙하고 평화로운 표정을 겸비한 곡이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동기를 겹쳐 가는 긴밀한 음악적 구성 면에서도 공통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제1악장에 종종 모습을 나타내는 ‘운명’의 동기는 이들 두 음악의 정신적인 연결을 명백히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현란한 거장적인 연주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해서, 그런 점으로도 많은 명피아니스트들의 의욕을 복돋우는 중요한 레퍼토리의 하나가 되고 있다.이라는 징이다. 더 나아가 마지막 [5번 소나타]에서는 이러한 형식을 확장해 낮은 음역의 느린 2악장과 푸가로 시작하는 빠른 3악장 모습으로 응용, 발전시켰다. 한편 [교향곡 5번]과 [교향곡 6번]이 작곡될 무렵에 탄생한 [3번 소나타 A장조]은 위대한 원숙함을 선보인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9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던 중기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눈물과 슬픔의 중간 단계라고 말할 수 있는 이 [3번 소나타]는 1807년부터 1808년 사이에 작곡되었는데 그 특유의 칸타빌레적이고도 우울한 성격으로 인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도 직접적으로 대비된다. 베토벤은 보다 가벼운 음색과 질감을 탐구하고자 했고, 심지어 작품의 첫 오프닝에서 첼로가 혼자 진행하게 남겨두었다.Ⅵ 독주 협주곡은 피아노 협주곡으로 5개의 피아노협주곡, 1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화려한 색채로 황제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곡 가운데 하나 이다. 로맹 롤랑이 ‘걸작의 숲’이라고 부른 베토벤 제2기의 정점을 형성한 명곡. 그 웅혼 장려한 아름다움은 확실히 「황제」의 이름과 어울리지만 이 이름은 작곡자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후세의 속칭이다. 곡을 완성한 1809년은 나폴레옹 군이 빈을 점령하여 경제적인 궁핍도 극에 달하고 불안에 떨던 시기였다. 전란 때문에 연금 수입이 두절되고 있던 베토벤의 생활도 몹시 곤란을 격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 빛나는 승리감에 넘치는 명작과 그것을 결부시킬 에피소드는 그다지 없다. 5곡의 그의 피아노 협주곡 중 여성적이고 우아한 「제4번」과 함께 널리 애호되고 있다. 그의 좋은 이해자·보호자였던 루돌프 대공에게 바쳐지고 있다. 제1악장에 독주 피아노의 전주를 넣고 제2·제3악장이 끊김이 없이 이어지는 점을 제외하고 대개는 전통적인 협주곡 형식에 의하고 있다. 관현악은 표준적인 2관 편성이다.Ⅵ 장엄미사는 베토벤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최고라고 극찬한 곡중주, 여러 가지 실내 악곡, 협주곡, 교향곡 등의 갖가지 연주 형태를 확립하였다. 이 시대는 사회적으로 신인문주의가 제창되었고, 사상적으로는 계몽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시민계급이 해방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위에 모든 예술은 단순 명료하고 간결하며, 인간의 실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음악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여러 면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고전파 음악의 특징은 몇 개의 성부나 멜로디가 동시에 진행되는 대위법 중심의 복잡한 다성음악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화성 음악으로의 변화이다. 고전파 음악은 뚜렷한 가락에 풍요로운 화음이 수반되고 곡의 형식이 엄격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대체로 논리적이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또한 교향곡이 탄생되는데, 원래 신포니아(sinfonia)라는 것은 오페라나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 여러 곡으로 이루어진 성악곡을 연주하기 전에 순수한 기악곡으로 연주하던 것이었는데, 이것이 고전파 시대에 독립적인 다악장의 곡으로 변모하였다. 형식적으로는 당시의 소나타를 관현악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다. 건반악기의 주류는 오르간이나 쳄발로에서 피아노로 옮겨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쳄발로로부터 현대의 피아노로 옮겨가는 중간 단계인 '포르테 피아노'가 많이 쓰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는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을 들 수 있다. 하이든은 소나타 형식과 악기 편성법을 확립하였고, 모차르트는 소나타 형식을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을 최고도로 발전시키고 낭만파 음악에의 길을 열었다. 교향곡 제9번 : Symphony No.9 D장조 op.125 1826년에 출간 된 초판 스코어의 제명에 [실러작 송가'환희에 붙임'을 마지막의 합창으로 한 대관현악,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폐하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베토벤에 의해서 봉정된 교향곡 작품 125]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이 작품의 바른 명칭이다..
    독후감/창작| 2013.12.10| 13페이지| 2,000원| 조회(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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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 연주회 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처음엔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었지만 막상 감상문을 과제물로 제출해야 한다고 하니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해 하던 그때에 클래식산책 교수님이 연주회를 한다며 피아노 듀오 연주회 티켓을 전해주셨다. 장소도 가까운 뮤즈홀에서 한다고 하니 그전에 가보았던 다른 음악회보단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 감상을 하러가기로 했다. 오후 7시30분부터 한다는 말에 저녁을 먹고 서둘러 가서 중앙에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음악회를 감상할 준비를 하였다. 팜플렛을 보며 오늘 있을 연주회를 잠시 상상도 해보았고, 친구들과 음악회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도 나누어보았다. 이윽고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무대 위가 눈이 부실정도로 환하게 빛났다. 다행히도 중앙 앞쪽이라 연주자의 표정이나 동작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평소에 음악을 들을 때 연주자의 표정이나 동작하나하나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이번 연주회는 피아노 듀오 연주회였다.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M.bonis의 Suite en forme de valses와 J.Strauss의 Donau walzer - Blue banube Waltz op.314와 M.Moszkowski 의 Spanish Dances op.12와 C.M.weber 의 Aufforderung zum Tanz op.65, J.Brahams/L.spitzer 의 Waltz in Ab, op.39 no.15, I.Albeniz/L.spitzer의 Tango, L.V.Beethoven/E.Parlow의 Country Dances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곡들에 대해 아는 곡은 없었지만 즐겁게 즐길 마음으로 연주회의 막이오르는것을 보았다. 첫곡으로 M.bonis의 Suite en forme de valses가 연주되었다. Ballabile, Balse lente, Danse sacree, Scherzo-valse, Interlude et Bacchanale으로 되어있고, 이곡은 8명의 아이의 엄마인 M.bonis가 가족 지원없이 작곡활동을 해나간 그녀의 열정이 담긴 곡이다. 생계를 책임졌어야 하는 작곡가 M.bonis는 8명의 아이들을 책임지면서 자신의 꿈인 작곡가를 계속해서 해나가는 데에서 강인하고 아이들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모습과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포기하지않고 해나가는 멋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이곡에 뚜렷하게 표현되어있었었다. 서로의 눈빛을 보며 열정적이고 강인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의 모습을 보며 왠지모르게 어깨에 힘이들어가면서 주먹을 불끈쥐게 되었다. 강인하고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M.bonis의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으로 J.Strauss의 Donau walzer - Blue banube Waltz op.314가 연주되었다. 이곡은 음악가이신 J.Strauss의 아버지가 J.Strauss가 지금이나 예전이나 생계가 힘든 음악가를 하기보다는 은행원이 되기를 원하셨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와 경쟁하게된 그는 아버지의 죽음후 아버지의 명성을 넘어 왈츠의 왕이란 타이틀을 가졌다라는 에피소드를 가지고있다. 이곡이 작곡하게 된 목적은 J.Strauss의 조국 오스트리아는 당시 독일과의 전쟁에서 진후 내리막을 걷고 있어 우울한 시민들에게 위로를 하고자 빈의 한 합창단은 J.Strauss에게 밝고 경쾌한 곡을 의뢰했고 J.Strauss는 그 제의를 받아들여 이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진후의 처참하고 좌절스러운 그때의 분위기를 상쇄시키고 희망과 꿈을 주기위해 작곡되어서 곡 자체가 굉장히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연주가 쾌활하고 신이나며 무언가 힘을 주는 그런 연주였다. 그러나 쾌활하고 밝은 분위기속 감춰진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었던 곡이였다. 우리나라도 전쟁후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지않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처럼 J.Strauss의 조국 오스트리아도 시민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자 한 곡의 느낌처럼 힘을 냈을거 같았다. 이곡이 끝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연주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몸을 풀고 휴식을 취하다 다시 막이오르고 연주를 시작하였다. 세 번째 곡으로 M.Moszkowski 의 Spanish Dances op.12를 연주하였다. allegro brioso, Moderato, Con moto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곡은 흔히 스페인무곡으로 불리운다. 이곡을 작곡한 M.Moszkowski는 쇼팽전문 연주자였으며 이곡, 스페인무곡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의 말년에는 가족과 재산을 잃고 건강까지 잃게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M.Moszkowski의 음악들은 작은 카페에서 잘 어울리도록 이야기하듯 감정의 변화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무곡은 스페인의 투사들로 말할 수 있는 정열적인 점과 열정적인 점이 특징이다. 곡자체가 파이팅이 넘치고 정열적이다. 피아니스트들의 쉴새없는 움직임과 서로의 눈빛을 맞춰가며 최상의 호흡을 맞추는 그림은 계속봐도 질리지 않을것만 같았다. 정열적이고 열정적인 곡이 끝나고 그다음 곡으로는 2pianos 8hands로 C.M.weber 의 Aufforderung zum Tanz op.65, J.Brahams/L.spitzer 의 Waltz in Ab, op.39 no.15, I.Albeniz/L.spitzer의 Tango, L.V.Beethoven/E.Parlow의 Country Dances를 연주하였다. Aufforderung zum Tanz op.65를 시작으로 차례로 연주가 되었다. C.M.weber 의 Aufforderung zum Tanz op.65곡은 아내 칼로리네에게 바쳐진 곡이다. 무도회의 화려한 정경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곡이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예쁜 선율을 가지고 있었다. 정열적인 왈츠곡이며 마지막에는 무도회장에서 퇴장하는듯한 그런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두 번째로 J.Brahams/L.spitzer 의 Waltz in Ab, op.39 no.15가 연주되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이곡의 작곡자 브람스는 오직 한사람만을 짝사랑하며 그사람만을 바라면서 살아갔다고 합니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 바로 스승 슈만의 아내이자 아름다운 당대의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을 40여년동안 짝사랑을 했습니다. 평생을 짝사랑 하면서도 그녀를 아낀 브람스는 이곡 왈츠에서도 한사람만을 위한 왈츠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씁슬함과 좌절감도 느껴졌습니다. I.Albeniz/L.spitzer의 Tango가 그뒤를 따라 연주되었습니다. 탱고의 전형적인 느낌의 강렬한 악센트, 열정적인 눈빛을 느낄 수 있었고, 격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잘 느낄 수 있었던 곡이였습니다. 경쾌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음색이 긴장감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었고, 기분을 띄워주는 효과를 가진 그런 곡이였습니다. 마지막 곡으로 L.V.Beethoven/E.Parlow의Country Dances를 연주했습니다. Country Dances는 17세기 영국의 농촌에서 유행한 쾌활한 2박자의 춤이라고 하였고, 1710년경 프랑스에 전해져 콩트르당스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점차 민속적인 색채가 없어지고 사교적인 춤과 음악으로 세련되었다고 합니다. 이곡도 위의 곡들과 마찬가지고 쾌활하고 흥겨운 곡으로서 농촌민들의 또 시민들이 일상에서 탈피하고 활기차게 즐기고 노는 그런 곡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독후감/창작| 2013.12.02| 3페이지| 1,000원| 조회(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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