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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프리덤라이터스 감상문
    프리덤 라이터스 감상문스승에서 선생님으로 또 선생님에서 교사로 지칭어가 바뀌기 까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그리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공교육을 바라보는 시선과 공교육을 직접 행하는 사람들의 변화된 가치관이 서로 맞물려 ‘교사’라는 직업위주의 단어가 굳어지게 된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는 교권이 추락했다는 보도가 방영되고 학생들의 교사 불신 현상이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떤가, 교사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리덤 라이터스’는 어쩌면 예비 교원인 우리가 한번쯤은 고민해 보아야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많은 현실적 제약들과 학생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며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치유한 그루웰을 통해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오랫동안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를 하나로 묶는 결속제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은 큰 문제없이 꽤나 효과적인 결속제로 역할을 해 왔기에 별다른 의식 없이 단일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그렇게 교육해 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도 새로운 삶을 위해 국제 이민을 감행한 외국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단일 민족은 해당 될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 것이다. 결국 문화의 용광로라는 미국처럼 우리도 더 이상 ‘인종 차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그런 점에서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의 교실은 우리나라의 미래이며 영화에서 언급 되었던 홀로코스트는 어쩌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고통스런 모습을 대변했다 할 수 있다. 그루웰은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지만 학교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학생들은 온갖 사회의 어두운 곳에 그늘져 있었고 주류 취급을 받지 못하는 유색인종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해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가 아닌 그들의 마음 깊숙이 탐구하고 치료해 준다. 학생들의 상처, 불만의 중심을 파고들어 학생들에게 매일매일의 경험과 그를 통해 느끼는 것들에 대해 글을 적게끔 한다. 불평만으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경험에 학생들은 점차 바뀌어가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되고 그루웰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놀라운 변화를 보인다.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안네에게 완전히 동화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지식을 탐구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또 자신의 현재 모습이 나치를 피해 숨어있는 안네와 닮았다고 느낀 것인지 학생들은 안네의 죽음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다. 안네의 삶은 결국 나치 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 학생들은 매우 혼란을 겪지만, 학생들은 안네의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독후감/창작| 2013.11.20| 1페이지| 1,000원| 조회(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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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마지막 황제 감상문
    영화감상문마지막 황제1. 시대적 배경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00년대 중국은 격동의 시대였다. 청나라 말기에는 제국주의시대로 이행해 가면서 나타난 심각한 위기감 때문에 캉유웨이 등의 변법자강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단순히 유럽 선진국의 기술만을 이식해야 뿐 아니라, 전통체제 그 자체를 변혁해야 함을 주장하는 운동이었다. 이 변법자강운동에 광서제까지도 동조를 했지만 서태후 등의 수구파의 반대로 겨우 100일 유신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의화단운동을 계기로 외국 군대의 베이징 진주로 인해 수구파가 최종적으로 몰락하였을 때 비로서 입헌안을 비롯한 여러 개혁안이 처음으로 채용되었다. 멸만흥한의 민족주의는 화교 ·유학생 ·민족자본가의 반봉건주의와 합류하여 쑨원이 주도하는 중국혁명동맹회에 결집되어 신해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결국 1912년 선통제 푸이의 퇴위와 함께 청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신해혁명의 성공은 청 왕조의 종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중국의 전제군주제와의 결별이기도 하였다. 중국의 근대사는 이 후 청 왕조 말기부터 시작된다.신해혁명은 제1혁명이라고도 하는데 이 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함으로써 2000년간 계속된 전제정치가 끝나고, 중화민국이 탄생하여 새로운 정치체제인 공화정치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혁명은 변법자강 운동과 의화단 운동의 실패로 중국을 구하는 길은 청 왕조의 타도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혁명파의 지도자인 쑨원은 중국 동맹회를 결성하고 삼민주의(민생, 민권, 민족)를 내걸고 중국인들에게 무장 봉기를 권유하였다. 이에 청 왕조는 입헌 군주제 채택과 국회 개설을 약속하였는데, 이 때 청 왕조가 철도 국유화를 발표하자 우창에서 신군이 봉기하였고 거의 모든 성이 독립을 선언했다. 신해혁명은 1911년 성공하게 되어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추대하고 중화민국의 성립을 선포하였으며 청 왕조는 위안스카이에게 혁명 진압의 전권을 위임하였다. 하지만 그는 혁명파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총통에 취임하고 결국 청 왕조를 멸망시켰다.쑨원이 이끌었던 신해혁명이 성공하고 얼마 후 ‘세계 제 1차 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질서 재편을 위해 파이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중국은 일본과 강압적으로 체결한 21개조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식은 중국의 애국운동을 더욱 촉발시켰고 결국 5·4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운동을 통해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소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 후 운동의 주모자들은 국민당으로 개정하여 공산당과 제1차 국공합작을 하였다.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의 영토에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931년 일본은 만주를 점령했다. 중국군은 곳곳에서 일본군에게 패퇴하고, 국민당 정부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한 채 양자강 상류의 중경으로 퇴각했다. 일본군 중국을 차례로 정복한 후 선량한 민간인의 학살을 일삼았다. 이렇게 일본과 중국이 전면전을 벌이면서 점차 전선이 확대되자 영국과 미국들은 일본에 항의하였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전쟁 말기에 중국군은 몇 군데에서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다. 마침내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였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중국은 항일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2. 줄거리마지막 황제는 1908년 황제가 되어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하였던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는 실제 푸이의 자서전인 ‘나의 전반생’을 기초로 푸이가 황제에서 평범한 식물원의 정원수가 되는 일대기를 전개한다.1950년 만주 중-소 국경지대의 기차역에서 푸이는 다른 전쟁범죄자들과 함께 이송된다. 이송되는 도중 푸이는 화장실에 자살을 기도하고 이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생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1908년 세 살의 푸이는 선황제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황태후인 ‘서태후’의 명으로 황제에 등극한다. 황제에 오른 얼마 뒤에 푸이는 동생을 통해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진짜 황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금성에 갇히게 된 푸이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성 안에서만 황제노릇을 하며 지내게 된다. 그가 14살이 되는 해에 영국인인 존 스톤이 가정교사로 자금성에 들어오게 되고 이 후 다양한 서구문물에 흥미를 보이고 직접 사용해 본다.어머니가 아편중독으로 자살하신 것을 알게 된 푸이는 궁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이미 그는 문 하나도 마음대로 열 수 없는 황제였기에 또 다시 좌절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혼기가 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이 황실 어른들에 의해 황후와 후실을 맞는다. 자금성의 변화를 원했던 푸이는 어느 날 태후와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손으로 변발을 자르기에 이른다. 존스턴을 만나 함께 공부하면서 해외유학의 꿈을 품고 있던 그는 결국, 1924년 군사혁명으로 인해 자금성에서 쫓겨나 텐진으로 가게 된다. 텐진에서 여전히 부유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결국 후실이었던 문연 공주가 푸이를 떠나게 된다.일본은 만주를 침탈하여 만주국을 새로이 세웠는데 그 황제의 자리에 푸이를 세우려 한다. 푸이는 다시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계략에 넘어가게 되고 다시 황후가 된 완용공주는 기쁘기는커녕 일본에게 농락당하는 푸이에게 실망한다. 유일한 친구였던 문연공주도 떠나고 푸이와의 사이도 그리 원만하지 않았던 그녀는 아편에 중독되고 운전사와의 밀애로 아이를 갖게 된다. 아이는 황제도 모르게 사산되고 황후도 어디론가 가게 된다.1945년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일본은 항복하고 만주국도 멸망하게 된다. 푸이는 도망치려 했으나 결국 다시 잡혀 전범수용소로 이송된다. 1950년 중국으로 이송되지만 공산정권에 의해서 10년간을 재교육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수용소에 이송됬음에도 자기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했지만 점차 재교육을 받으며 황제에서 일반 시민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모든 형기를 마친 1959 특사로 사면되고 식물원 정원사가 되어 평범한 시민의 몸으로 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이 살았던 자금성에 가 자신이 황제였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옛 신하가 준 선물을 증명으로 선물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3. 소감1910년부터 1950년대 까지 그 어떤 나라보다 격변의 시기를 보냈던 중국의 역사를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상징을 지닌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시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 시기의 중국은 신해혁명, 중국인들의 심각한 아편중독, 국공내전, 일본의 만주 침략과 만주국 건설 등 사회적으로 거센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반면 타의로 자금성 내에 갇혀있는 푸이는 밖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심지어는 자신이 더 이상 ‘진짜’ 황제가 아니라는 사실조차도 알고 있지 못하다. 중국의 ‘천제’에서 그저 철저하게 계획된 상징물인 ‘황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는 자금성 내에서 누구보다 개방적이고 야망 있는 황제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저 문하나 마음대로 열 수 없는 힘없는 황제였다. 과연 푸이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가 있었고, 또 그가 원한 조국은 어떤 곳 이였을까.‘푸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누구보다 개혁을 원하고 실행하려 했다. 자금성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모두가 반대하는 안경을 쓰던 그에게 개혁은 간절했고 동시에 흥미로웠다. 특히 자신의 변발을 단칼에 자르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매우 충격적이었다. 3살에 황제에 오른 푸이에게 가장 큰 명분이자 뿌리는 ‘황실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인 ‘전통’을 자신의 손으로 베었다는 것은 그가 개혁을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야망 있게 조국 개혁과 만주국 지배를 원했던 푸이는 결국 10여년의 감옥 생활을 끝낸 후 평범한 정원수로 생을 마감한다. 방이 1000여개의 달한다는 자금성에서 1000명이 넘는 환관들의 시종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던 ‘황제’의 죽음으로는 오히려 독살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하늘의 아들(천자)’라는 황제도 결국 사회적 흐름에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푸이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의 일반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인과 소수의 서민들을 제외하고는 자금성에 갇혀있던 푸이처럼, 당장 눈앞의 현실에 갇혀 눈과 귀가 의도치 않게 닫혀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푸이는 결국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바람에 휩쓸릴 수 밖 에 없었다. ‘황제’로서의 자신의 모든 자존심과 지위를 지키지 못한 채 외압에 결국 굴복하고 순응 할 수 밖 에 없었던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11.12| 4페이지| 1,000원| 조회(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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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s 10대 성장 보고서 감상문
    EBS 다큐프라임 ‘10대 성장 보고서’모범생인 아이, 말썽꾸러기인 아이 모두가 어느 순간 ‘사춘기’를 겪게 된다. 품안에 자식인줄 알았던 부모님들에게는 소리 없이 찾아온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사춘기를 ‘10대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열병’ 쯤으로 치부해 왔다. 그 ‘열병’은 매우 불같지만 아무 원인도 해결책도 없이 자연히 생기고 자연히 없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생명 과학 기술이 날로 진화해 가는 지금, 우리는 사춘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청소년의 뇌’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게 되었다. 원인 없는 병은 제아무리 명약이더라도 효과가 없지만 원인 있는 병은 사소한 약재로도 큰 차도를 보일 수 있다. 물론 사춘기가 ‘병’은 아니지만, 그 원인을 알게 된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사춘기가 왜 찾아오는지, 어떻게 아이들의 사춘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어린 시절에 뇌가 완성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뇌는 20대 중반까지도 끊임없이 성장한다. 특히 우리가 흔히 철들었다고 말하는 20대 중엽이 되면 개인의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완전 발달하게 되는데 이때의 뇌를 ‘이성의 뇌’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관심 있어 하는 10대의 뇌는 전전두엽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는데 이때의 뇌를 ‘원시의 뇌’라고 한다. 따라서 아직 ‘이성’이 충분하게 발달되지 못한 청소년들은 ‘원시’적인 모습을 많이 띄게 되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춘기’인 것이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감성적으로 매우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주변까지 집중을 분산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개인 정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정서 눈금의 자가 ‘어른’에 비해 세밀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의 정도를 인지하는 ‘메타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런 특징들은 사춘기 아이들 극단적인 감정과 예측 불허의 모습을 설명해 준다. 또한 쾌감 등의 ‘보상’ 부분이 크게 활성화되어있고 그와 반면에 자극에 매우 둔감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위험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위험행동’의 모습은 특히 아이가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더욱 심화된다. 사춘기는 비단 아이의 직접적인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수면 패턴’에도 영향을 끼친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신체적 성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멜라토닌’의 분비도 활성화를 띄게 된다. 멜라토닌의 분비로 아이는 이전보다 2시간가량 취침시간이 늦춰 지게 된다. 또한 사람은 사회적 접촉 즉, 핸드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있을 경우 취침을 하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늦춰진 취침시간에 반해서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등교시간은 빨라진다. 결국 아이의 수면시간이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이의 우울증이나 감정조절의 어려움, 그리고 기억력 감퇴까지 이어지게 되고 이것은 다시 사춘기의 또 다른 원인이 된다. 결국 악순환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것이다.이런 원인들은 결국 사춘기 청소년들이 ‘혼자만의 세계’, ‘심각한 감정기복’이라는 대명사를 얻게 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왜 아이들이 ‘이전’과는 갑자기 다른 모습을 보일까 라는 부모들의 고민과 갈등은 사춘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 부족인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사춘기 초기 연령대가 낮아지는 추세이므로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이제 왜 사춘기 아이들이 특정 행동 양상을 보이는지 알았다면 더 이상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 하면 안 된다. 먼저 ‘집’에서는 아이의 행동 변화와 사춘기의 특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이들 스스로 집에서의 규칙을 정하게 하여 그것을 지키게 하거나 아이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양보·타협·수용을 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수면패턴 형성에 기꺼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학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데, 마찬가지로 사춘기의 특성 및 행동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을 무조건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고 계획할 수 있도록 인생수업 측면도 강조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충분한 수면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멍크시톤 고등학교나 세인트 조지 고등학교의 경우 학교 자체적으로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늦춰 아이들의 수면시간을 보장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높아졌고, 오히려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낸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독후감/창작| 2013.11.12| 2페이지| 1,0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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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범모 '교육과 교육학' 1장 교육의 정의 감상문
    교육과 교육학-제 1장 교육의 정의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교 심지어는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간의 인생은 대부분 교육과 함께이다. 요즘에는 비단 ‘학교’에서 뿐 아니라 ‘인터넷 강의’ 혹은 ‘TV특강’등 다양한 장소와 매체를 통해 과거에 비해 비교적 손쉽게 교육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명확하고 보편적인 정의를 확립하지 않는 다면 어떤 것이 올바른 교육인지 구분하는데 한계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런 교육에 대한 정의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세워야할 올바른 교육관을 정립시키는데 중요한 기초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제 1장 교육이란?’에서는 교육의 정의와 함께 그 정의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책의 저자는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고 정의했다. 그 세부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세부 내용을 크게 3파트로 나눴는데 인간행동, 변화, 계획적이 각 소주제이다. 교육의 정의를 자세하고 섬세하게 기술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교육 혹은 교육관에서 아쉬운 점이나 다양하고 보다 폭 넓게 용어를 서술하고 설명했던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지금 우리 교육이 왜 부족한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단순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문들과 비교하고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왜 그런 비판이 의미가 있는지 어떤 경위로 그런 비판이 나왔는지 자세하게 서술해 주지 않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위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교육은 우리 삶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동시에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또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육의 정의를 세워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교육은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서술하고 있다. 먼저 교육의 주체는 ‘인간’이다. 교육의 목표는 성적을 잘 받는 것 혹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어떤 것이 목적이고 수단인지 망각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성적이 목적인지 혹은 인간 자체가 목적인지에 따라 교육의 전반적 내용이 모두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확고하게 주체를 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구체적으로 주체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책에서는 ‘인간행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행동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피상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내면적 영역인 지식, 사고, 가치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도 인간행동에 포함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행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앞에 설명, 즉 피상적인 모습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한가지로 고착된 생각을 보다 폭 넓게 확장시켜주어 왜 그런 용어를 쓰게 되었는지 보다 유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단순히 교육이 인간을 주체로 삼는다는 것에 끝나지 않고 현재의 교육이 주체로서의 인간을 충분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인간을 충분하게 파악하지 못했는지 또 그런 문제점을 어떻게 발전시켜 보다 교육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난해하고 아쉬웠다.단순하게 인간을 주체로 삼는 것으로 교육을 정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앞서 말한 교육의 정의에서 ‘변화’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변화는 육성, 조성, 함양, 개발 따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체되거나 이미 정해져서 바꿀 수 없는 운명 등과 대립된다. 만약 인간행동이 이미 하늘에서 혹은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교육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된다. 변화를 기대하지 못하는 교육은 의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능동적으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은 교육의 기본 전제이다.하지만 무조건적인 변화가 교육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잡지를 자주 보던 아이가 화려한 옷들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어 색감에 민감해 졌다고 해서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할지라도 교육되었다고 할 수 없다. 목표와 이론 그리고 과정을 통해 즉 계획적으로 그것이 통제되지 못하였다면 더 이상 교육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특정 교육을 통해 그 통로, 목적지가 어디로 향하는지 목표를 설정하고 전문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과정을 정립하여 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다만 교육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이론적인 영역이 빈약할 수 있다. 다른 영역에 비교해서 실증된 이론과 원칙의 뒷받침이 비교적 부족하기 때문이다.어떤 학문이든 마찬가지로 ‘용어’의 설명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용어 혹은 평소에도 자주 사용했던 용어일지라도 전문영역에서 사용되는 의미는 매우 다를 수 있다. ‘인간행동’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행동이라는 단어는 ‘행동으로 옮겨라’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상적이고 밖으로 표출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학생들의 일종의 편견을 예측하고 미리 도움이라도 준 듯이 ‘행동’의 구체적인 범위를 새로이 세워주었다. 새롭게 내려진 의미로 저자의 의견에 한층 더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또한 교육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런 정의에 부합하지 못하는 현실의 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인간을 교육의 주체로 삼고 있지만 정작 그 대상인 인간을 충분하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함께 충분한 이론적 배경이 부족한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독후감/창작| 2013.11.06| 2페이지| 1,000원|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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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화기 배움터의 변화와 자아찾기로서의 일상성 감상문
    개화기 ‘배움터’의 변화와 ‘자아 찾기’로의 일상성누구나 한번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부모님께 혹은 다른 가족들에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날로 복지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어쩌면 ‘학교’라는 배움터는 으레 나이가 차면 가는 곳이라 인식되어 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다양한 문제들도 왕왕 발생하곤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대중매체에서 학교와 우리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왜 학교에 가는 것이고, 학교생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 민족의 학교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탐구하기 위해서는 ‘개화기 학교’가 지녔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우리 민족에게 ‘학교’란 서구에서 밀려오는 ‘근대의 첫 경험’의 한 가닥이었다. 크게 2가지 흐름을 가지고 1876년부터 1910년까지 개화기속에서 ‘학교’를 이해하려 한다. 먼저 이전의 전통적 배움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배움터(학교)를 받아드리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배경과 함께 그러한 배경을 가진 학교가 어떤 한국인의 특유한 교육 문화를 형성하였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과 시대적 흐름을 우리 교육의 독특힌 문화 형성과 연결 시켜 논리적 연결성을 강조함은 물론 읽는 내내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또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시켰던 주체는 누구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특히 개화기 교육의 주체는 여성과 아동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이들이 어떤 점에서 ‘주체’였는지 논하고자 한다.먼저 첫 번째 흐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위 단락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개화기 당시의 학교란 근대적 첫 경험이었다. 학교라는 외향적인 형식 때문에 ‘근대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학교가 ‘주체적인 자아의 발견’, 즉 내적인 의식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이 진정으로 학교가 근대적 첫 경험이었던 까닭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고증을 사례로 제시하며 우리 교육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1883년 정부가 세운 ‘동문학교’라는 외국어학교로 시작하여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배재학당’, ‘이화학당’등 과 비슷한 시기 정부에서 ‘육영공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수의 신식 학교가 세워지게 된다. 이런 학교들을 크게 관립-귀족형, 사립-선교사형, 그리고 사립-민간인형으로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자 개화를 받아드리는 유형 그리고 배움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서로 다른 3가지 유형들이 개화기에서 어떻게 개화를 받아드리고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개화’에 대한 조선인들의 생각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개화기 당시 서민들의 실제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한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통해 어떻게 개화를 받아드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개화는 외국의 개화를 순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특징에 따라 스스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는 개인별 혹은 나라별 개화의 종류를 개화, 반개, 미개 이 3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이와 함께 비개방적인 개화의 죄인, 병신, 원수들을 경계하고 있다. 이런 비개방적인 태도들은 허명의 개화로 실용성 있고 자기 주체성도 올바로 선 개화는 실상의 개화로 구분지었다. 개화를 받아드렸던 당대 풍토를 기반으로 위에서 언급했던 관립-귀족형, 사립-선교사형, 그리고 사립-민간인형의 개화기 학교라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생각해 보자.먼저 관립-귀족형 신식 학교의 학생들은 보통 주체적으로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가문이라는 외부적인 상황 혹은 압박 때문에 신식학교에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비주체적인 모습은 ‘허명의 개화’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은 자신들이 고관의 자제라는 특권 의식이 신식 학교에서 더 이상 수용되지 않자 점차 개화에 폐쇄적으로 변모해 가게 되었다. 그들의 이런 출세와 성공을 쫓는 인생관 그리고 외부(가문)에 의존하는 비주체적인 자아상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 후 1894년부터 생긴 신식 학교들은 서민들도 학생으로 받아드렸는데 선교사가 세운 사립-선교사형과 민간인이 세운 사립-민간인형이라 할 수 있다. 귀족들과는 달리 서민들은 특권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가 그들의 자발적인 배움의 욕구였다. 이런 배움의 욕구는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개화열과 구국열’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점차 다가오던 자국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배움이 필요했던 것이다.이제 두 번째 흐름인 개화기 교육의 ‘주체’로서의 여성과 아동들의 학교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개화기 교육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사실 양반 남성들에게는 별다른 새로운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전통적 교육에서 소외당했던 여성과 평민층의 아동들에게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전통 교육기관들의 폐단이 심각해져 가며 ‘딸아이도 공부시켜야 한다’라는 의식의 전환이 개화기 교육에 커다란 줄기를 이루었다. 배우고 싶은 열정 때문에 미래의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 자아를 찾기 위해 여성들은 신식 학교로 몰려들었다. 여학생들은 교육자와 피교육자간 권위적 관계가 아닌 돌봄의 관계를 이루며 보다 긍정적으로 ‘자아 찾기’를 실천할 수 있었다. 특히 여성의 교육은 일반 양반 남성들과 그 내용이나 배우는 과정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오랜 시간 동안 교육의 주체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이 삽시간에 교육의 주체로서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추가적인 설명 없이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인데 여성들의 교육의 목적과 그 방식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통해 자연히 받아드릴 수 있었다.
    독후감/창작| 2013.11.06| 2페이지| 1,000원| 조회(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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