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 글목을 돌다예상 독자 : 운명을 마주하여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운명이라는 벽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등의 즐겁고 행복한 일도 운명이고, 갑작스레 큰 사고를 당하는 등의 고통스럽고 슬픈 일 또한 운명이다. 심지어 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는 일조차 운명이라고 한다.긍정적인 일도 운명이고 부정적인 일도 운명이지만, 사람들이 운명을 마주했다는 것을 크게 깨닫게 되는 때는 부정적인 운명과 마주했을 때이다. 그 운명으로 인해 크고 작은 상처와 고통을 겪으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게 된다.운명은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운명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도 아니고, 그런 과정에 따른 결과도 아니다. 과정과 결과 모두 운명이다. 이러한 운명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운명을 대하는 방법으로는 그 운명과 마주하여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며 운명을 바꾸는 것도 있을 것이고, 운명과의 대결에서 패하거나 이길 자신이 없어서 대결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드리는 것도 있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긍정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다.「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북한으로 끌려간 H,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프레모 레비와 빅토르 프랭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순이, 탈레반 납치와 911 테러의 위험에 빠질 뻔했던 화자의 조카와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화자인 ‘나’와 같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떻게 운명에 대처해야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퍼즐‘나’의 이야기 뿐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작품이 구성되어있다고 해서 이 소설이 액자식 구성인 것은 아니다. 액자식 구성이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액자처럼 작품 속에 녹아들어있는 것이라면, 이 소설은 ‘나’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즐의 조각과 같이 되어 있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추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퍼즐을 다 맞춰야 퍼즐 조각들이 나타내려 하는 그림을 알 수 있듯이, 작품 내의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화자와 작품 속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퍼즐과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화자 혼자만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빌려 쓴 것이 아니라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로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나’의 고통과 상처의 이야기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보다 분명히 드러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만약 화자 혼자만의 이야기였다면 설득력이 떨어졌을 작품이 하나의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운명과 마주한 사람들작품에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운명과 마주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가시와자키 해변에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도중에 북한에 납치된 H, 주인집 아들의 강간으로부터 빠져나왔지만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가 된 순이, 아우슈비츠에 끌려가게 된 사람들, 탈레반에 납치된 선교자들, 911 테러의 위험을 당할 뻔했던 조카와 그녀의 아버지, 가정폭력을 당하고 이혼을 한 화자. 이들은 모두 역사적인 사건과 현실 등에서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서 운명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이 운명을 헤쳐 나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나’는 H를 만나기 전까지는 H가 당한 일에 대해서 “나 말고도 세상에는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와 같이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나’의 생각은 점점 바뀌었고, ‘나’는 H를 통해 자신이 받은 상처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H로부터 치유를 받게 되는 것이다.한 막이 끝나면 내 역할은 바뀔 수 있을 거라는 부질없는 희망…… 희망이라는 가면을 쓴 집착 때문이었다.‘나’는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신경과민증 환자 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런 상황으로부터 ‘나’는 큰 고통을 받았고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언젠간 이 상황이 끝날 것이라고, 언젠간 사람들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부질없는 희망이었다.희망이 부질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또 다른 고통에 빠져들던 ‘나’는 H로부터 운명과 마주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살기 위해 희망을 버린 H그렇다면, H를 비롯한 순이, 탈레반에 납치된 선교자들 등등과 ‘나’는 운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H 등은 평범한 인생을 살던 도중 외적인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고통을 경험하게 되고, 그 일로 인하여 유명해지게 되어 ‘평범’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생을 살게 된다. 반면, ‘나’는 남편의 가정폭력과 같은 외적인 힘에 의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가 겪는 고통의 근원일 될 뿐이지 ‘나’의 고통, 그 자체는 아니다. ‘나’의 고통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내적인 고통일 뿐이다. H 등은 자신의 힘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고통을 받았고, ‘나’는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고통 속에 빠진 것이다. 이 둘의 고통을 비교하게 된다면 누구의 고통이 더 클까? H 등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다고 볼 수 있다.“어떻게 살았느냐고 당신은 내게 여러 번 물었지요? 죽고 싶지 않았느냐고 당신은 내게 여러 번 물었지요? 아니요, 죽겠다, 하는 생각은 했지만 신기하게도 죽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말 알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자살한 사람보다 지금 도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살았느냐?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죠. 아이들이 태어났고 저 아이들을 위해서 살자, 일본에 돌아갈 꿈을 포기하자……아니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내 맘대로 내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돼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 거죠…… 그래서 살 수 있었어요.”희망이라는 것이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모든 순간이 절망인 사람들에게는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저 ‘희망’이라는 단어일 뿐이다.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은 이뤄질 수 없는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부질없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낸다. 희망을 버렸기에 살아 갈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안 되는 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냥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더 옳다. ‘나’는 이러한 것을 H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나’는 H도 이와 같이 운명에 맞춰 살아가는데, H보다 상대적으로 고통을 덜 받은 ‘나’도 충분히 자신의 고통의 운명에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보다 더 고통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과 비교하고 대비를 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던 것이다.“어쨌든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것은 운명이다.”화자는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그 상처로 인해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글을 다시 쓸 거야. 꼭 써야 해.”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가진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막연한 것이었고 이렇다 할 해결책 또한 없었다.“죽고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죽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운명에 대한 대결 같은 거. 그것은 맞서는 대결이 아니라 한번 껴안아보려는 그런 대결이었는데, 말하자면 풍랑을 당한 배가 그 풍랑을 이기고 가는 유일한 방법은 그 풍랑을 타고 넘어가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대결……”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H의 말은 화자 뿐 아니라 지금 운명에 맞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길을 안내해 준다. 운명에 맞서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이것 역시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H와 화자가 말하는 운명과의 대결이다.위의 예문은 ‘나’가 한 말이다. 이는 앞의 예문에서 H가 한 말과 같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나’가 H를 통해 치유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의 고통의 H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통의 크기가 작고, ‘나’보다 고통의 크기가 큰 H가 고통을 이겨낸 것을 보고 ‘나’ 또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치유를 받게 된 것이다. 본인의 상처를 생각했을 때, 다른 고통 받은 이들과 자신의 상처를 비교하여 자신의 고통의 크기가 더 작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유가 가능하다. “저 사람들도 이겨냈으니, 나도 이겨낼 수 있어.”와 같이 말이다.화자의 운명의 고통에 대한 자세는 친구가 화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답을 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화자의 친구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어. 넌 왜 이책을 썼니? 프레모 레비가 아니라 너.”라는 문자메시지를 화자에게 보냈다. 이에 대한 화자의 답변은 이러하다.“나는 욕조의 미지근한 물속에서 벌거벗고 웅크린 채로 운명의 부름에 답하겠다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희망을 버리고 가보겠다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부르니까 내가 대답하겠다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잎이 지듯 그렇게 단순하고 단순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화자는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준비가 된 것이다. ‘나’에게 닥친 운명에 대해 모조리 털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에,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잎이 지듯 그렇게 단순하고 단순하게”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는 자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운명을 받아드린다는 것은 운명과의 대결에서 패했을 때의 패배자의 입장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모든 운명이 자신의 인생이라 여기고 그 운명을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포 가는 길」- 목차 -1. 서론2. 작가 소개3. 작품 분석(1) 인물 (영달, 정씨, 백화)(2) 묘사(3) 어휘4. 결론1. 서론「삼포 가는 길」은 1974년 9월에 출간한 『신동아』에 실린 황석영의 단편소설이다. 공사판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와 새로운 공사판을 찾아 정해진 목적지 없이 길을 나선 영달과 10여 년을 부랑자로 살다가 늘그막에 공향에라도 찾아가 보겠다고 길을 나선 정씨, 그리고 5만원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새벽길을 도망쳐 나온 창녀인 백화가 주인공이다. 영달은 공사판에서의 일이 끝나고 하는 일이 없어 다른 공사판에서의 일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리고 옥살이를 하며 목공, 용접, 구두수선 등 여러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고향인 삼포를 찾아 가기로 한, 함께 일하던 정씨와 같이 길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도망치던 창녀인 백화를 만나 함께 길을 가게 된다.황석영의 소설에는 유독 부랑자(혹은 뜨내기)에 관한 이야기라 많은데, 「삼포 가는 길」 또한 이러한 황석영 소설의 특징이 그대로 담겨있는 소설이다. 작품 속 인물들 역시 황석영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식처마저 잃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세 명이 우연히 만나 동행을 하게 된다.2. 작가소개작가 황석영은 1943년 1월 4일 만주 신경 출생으로, 경복고를 중퇴하였고 동국대학교 철학 학사를 취득했다. 그는 고교 재학시절인 1962년 1월에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석부근」이 입선되면서 등단하였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탑」이 당선되었다. 이 외에도 「객지」,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사의 꿈」,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 등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대하소설인 「장길산」을 1974년부터 10년간 쓰면서 민중작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황석영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근대화 과정 혹은 군대제도나 전쟁 등의 상황에 의한 인간성 상실 및 삶의 황폐화를 다룬 작품들로서, 소외된 인간들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탑」,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그러하다. 두 번째 유형은 개인을 물화시키고 인간미를 상실케 하는 조건에서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물들을 통해 훼손된 가치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객지」, 「돼지꿈」, 「몰개월의 새」 등이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앞서 언급했던 대하소설인 「장길산」과 같은 작품이다.3. 작품 분석(1) 인물 (영달, 정씨, 백화)영달은 매우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집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을 사는 그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나 누군가를 만나면 후의 이별이 두려워 선뜻 정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대하고 만다. 하지만 이런 영달의 모습은 오래가지 않아, 상대방에게 친밀성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통해 안정감을 갖게 된다. 그는 혼자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갈망하며, 이러한 욕망 때문에 아무하고나 관계를 맺고 쉽게 헤어지고 만다. 영달은 이런 쉬운 관계로 인한 거듭되는 이별에 고통 받고 사회적 관습을 위반하여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별 때문에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누군가와의 친밀성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영달은 자신이 머물던 공사판에서 하숙을 치는 천가의 부인과 정을 나누다 들키고 말아 예정보다 빠르게 공사판을 떠나 정처 없이 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정씨 역시 공사판을 전전하는 부랑자이다. 그는 ‘큰 집’에 다녀왔고 그 곳에서 배운 목공, 용접, 구두수선 등의 기술로 공사판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정씨와 영달이 같은 부랑자 신세인 것에 반해, 정씨에게는 안정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정씨에게 집이나 정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달에게는 없는 갈 곳, 목적지가 있는 것이다. 즉, 정씨에게는 그 목적지가 그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목적지는 바로 삼포라는 고향이다. 그는 10여 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고향인 삼포에 가려고 한다. 그에게 삼포는 최고의 풍경이 담긴 곳이며 세상 모든 풍파를 전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씨는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향인 삼포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삼포가 그 고유의 풍경을 잃고, 자신이 영달과 같이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영달과 정씨 이외에 또 한 명의 동행하는 사람은 바로 술집 작부 백화이다. 백화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었지만 열여덟에 가출해서, 쓰리게 당한 일이 많기 때문에 삼십이 훨씬 넘은 여자처럼 조로해”있는 “관록이 붙은” 술집 작부이다. 술집 작부로 일하기 위한 ‘백화’라는 이름 내면에 ‘점례’라는 본명을 묻어 두고 살아가는 그녀는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나 백화는 이래봬두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 포항 중앙 대학, 진해 칠구, 모두 겪은 년”이다. 그녀의 이런 삶은 그녀에게 누구 못지않은 악다구니를 갖게 해 그녀는 “국으루 가만 있다가 조용한 데 가서 한 콘 달라면 몰라두 치사하게 뚱보 돈 먹자구 나한테 공갈 때리면 너 죽구 나 죽는 거야.”라는 거친 표현에도 꿈쩍 않는 인물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그녀의 두려움, 공포 등을 이겨내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다. 그녀는 결국 극도의 우울과 고통 속에 살다가 고향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탈출을 감행하고 영달과 정씨와 동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짧은 동행 과정에서 영달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영달의 배려로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2) 묘사황석영 소설의 문체는 대부분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서사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정서를 환기함으로써 주제를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영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 ㉡새벽의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밝아오는 아침 햇빛 아래 헐벗은 들판이 드러났고, 바람소리가 먼데서부터 몰아쳐서 그가 섰는 창공을 베면서 기나갔다.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수십여 그루씩 들판가에서 바람에 흔들렸다.위의 예문에서 ㉠은 영달이라는 인물의 행동을 표현하였으며, ㉡은 영달이 처한 배경을 묘사하고 있다. ㉠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은 수식어가 많고 문장 자체도 ㉠에 비해 긴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은 문장이 영달이 처한 공간인 배경에 초점을 두어 이 공간에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은 영달의 행동에 초점을 두었고, ㉡은 배경의 나타내는 분위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을 보면 ‘매섭게, 밝아오는, 헐벗은’ 등의 부사어와 관형어들로 정서적 기능에 힘을 불어넣었으며, 이 같은 배경 묘사는 ㉠에서의 영달의 모습과 연관된다. 헐벗은 들판과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만 남은 나무들은 영달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에서 ‘잠깐’이라는 부사는 영달의 상황을 대변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영달은 항상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부랑자로서 항상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도록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형편에 따라 짧게 고민하고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이라는 부사어는 영달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세 사람은 감천가는 도중에 있는 마지막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어귀의 얼어붙은 개천 위로 물오리들이 종종 걸음을 치거나 주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마을의 골목길은 조용했고, 굴뚝에서 매케한 청솔 연기 냄새가 돌담을 휩싸고 있었는데 나직한 창호지의 들창 안에서는 사람들의 따뜻한 말소리들이 불투명하게 들려 왔다.위의 예문도 인물에 대해서는 별 다른 수식어가 없이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배경 묘사는 수식어가 많고 문장이 긴 것을 볼 수 있다. ⓐ는 행위의 변화를 서술하고 ⓑ, ⓒ는 배경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예문에서 ⓑ와 ⓒ는 앞의 예문과 마찬가지로 배경의 분위기에 초점을 두어 정서의 묘사의 초점이 맞춰진다. 얼어붙은 개천 위로 종종 걸음을 치는 물오리 떼는 생활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영달, 정씨, 백화 세 사람과 대응된다. 또한 ⓒ에서의 따뜻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는 추위에 떨며 걷고 있는 세 사람과 대조되면서 이들의 모습을 보다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길과 집, 추위와 따뜻함, 떠돎과 안주의 대비를 통해 부랑자들의 고단한 여정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다가오는 사람이 숲 그늘을 벗어났는데 신발 끝에 벌겋게 붙어올라온 진흙 뭉치가 걸을 때마다 뒤로 몇점씩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영달이 쪽을 보면서 왔다. 그는 키가 훌쩍 크고 영달이는 작달막했다. 그는 팽팽하게 불어오른 맹꽁이 배낭을 한쪽 어깨에 느슨히 걸쳐메고 머리에는 개털모자를 귀까지 가려쓰고 있었다.
역사주의적 연구방법과 분석주의적 연구방법※ 역사주의적 연구방법한 작품을 역사적 사건으로 취급하는 데에서 문학 연구의 역사적 방법은 시작된다. 역사주의적 연구방법에서는 사회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추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문학 작품은 어떤 특정의 시대에 특정한 상황 속에서 산출된다. 문학은 시대적인 조건과 역사적인 상황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주의적 연구방법의 핵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를 논하면서 비극과 희극의 기원을 전통적 관습에다 둔 것은 문학의 역사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예라고 할 수 있다.역사주의적 연구방법은 19세기 이후 문학의 연구에서 널리 적용되어 오고 있다. 작품을 통한 작가의 추정, 작품 활동의 무대가 되었던 시대에 대해 관찰하는 것과 가능한 한 당시의 시대를 재생하려는 노력 등이 역사주의적 연구방법에 활용된다. 역사주의적 문학관의 중요한 관점으로는 광범위한 자료 수집 및 정리, 민족성, 민족 이념 등 문학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찾는 것이다. 역사주의 방법은 문학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고, 그 형성 배경이 되는 작자와 사회 환경 등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연구 방법에서는 원전의 확정, 작자의 생애 연구, 시대상황 연구가 중점을 이룬다. 그리고 작품의 구조, 언어 표현 등의 것을 형식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작품 외적 요소인 치중하여 작품 자체의 미적 가치를 등한히 하고,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그 예로 이광수의 장편 소설 '무정'은 20세기 초반의 한국인들의 삶을 전반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그리고 한용운님의 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던 한국인들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분석주의적 연구방법분석주의는 러시아의 형식주의에서 유래된 것으로, 역사주의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된다. 형식주의적 방법이란, 작품을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여 작품 그 자체를 연구 방식이다. 이 연구방법은 문학 자체에 맞는 방법과 절차를 사용하여 연구하기 위해 노력한 방법이다. 러시아 형식주의 연구가들이 규명하고자 한 주제들은 일상 언어와 시적 언어의 관계, 시구의 음석학적 구성, 시행의 구성원리로서 억양의 문제, 시와 산문에 있어서 운율과 리듬, 문학연구의 방법, 옛날이야기의 형태학, 서사 형태의 구조 등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분석주의적 연구방법이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유래된 것으로 형식주의 연구가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어의 기능로만 야콥슨이 제시한 6가지의 언어의 기능으로는 지시적 기능, 감정적 기능, 환기적 기능, 메타언어적 기능, 교감적 기능, 시적 기능으로 분류되어 있다.먼저 지시적 기능으로는 다른 다섯 개의 기능들에 비하여 기술적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 상황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내용을 알려 주는 기능을 한다. 대상을 지시한다고 지시적 기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상황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화자가 청자에게 관련 상황의 정보, 사실,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의미한다.두 번째로 감정적 기능이다. 화자의 표현, 전달 의도 없이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예를 들어 감탄사를 들 수 있다. 이 기능은 화자를 강조하여 화자의 판단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한다. 즉, 화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느낌과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의 말투에서 그 사람의 성품을 판단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것도 감정적 기능에 포함될 수 있다.환기적 기능은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 떠나라고 명령한다든지, 밥을 달라고 부탁한다든지 할 때 나타난다. 말이란 말을 듣는 상대방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은 반드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이와 같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진 기능을 ‘환기적 기능’, ‘명령적 기능’ 또는 ‘욕구적 기능’이라고 한다.메타언어적 기능은 우리가 언어로써 세상의 사물이 아닌 언어 자체를 가리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언어가 언어를 설명하는 기능이다. 만약 새로운 어휘를 습득하고 외국어를 배우며 어떤 특정한 지식을 체계화하려 할 때 언어의 메타언어적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대단히 큰 불편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교감적 기능은 다른 말로 친교적 기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교류와 관계가 말로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말은 반드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사무적인 목적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언제고 필요하기만 한다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전제의 인식과도 같은 언어 행위가 있다. 날씨 이야기와 같은 말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말이 전달하는 의미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사실만을 귀중하게 여긴다. 이러한 언어적 기능은 말을 주고받는 사람끼리의 환경 및 의사소통의 경로를 열어 놓고 있는 것과 같다.
※ 이규보와 이인로의 문체이인로는 “나는 문을 닫고 들어앉아 황정견, 소식 두 사람의 문집을 읽은 뒤에 말이 굳세고 운이 맑은 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시 짓는 지혜를 얻었다”고 했는데, 이규보는 “나는 옛 사람을 답습하지 않고 신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이를 두고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이 들어간 문이 다르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문으로 들어가 다른 문으로 나왔다는 것이 최자의 생각이었다. 옛사람의 문장과 뜻을 읽고 배우는 것은 같지만 이인로는 옛사람의 문장과 문체를 갈고 닦아 자신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태를 지향했고, 이규보는 답습을 넘어 생경하더라도 새로운 뜻을 표현했다는 것이다.본래 한문학은 정해진 틀이 있는 규범적 문학이기 때문에 용사(用事) 없이는 시를 창작할 수 없다. 하지만 용사만으로 창작의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규범적 한시에서나 자유로운 현대시에서나 새로운 뜻의 표현, 새로운 의미의 발견은 시의 당연한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인로가 용사만이 아니라 신의(新意)를 말했고, 이규보가 신의만이 아니라 용사를 언급했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인로가 용사를 강조하고 이규보가 신의를 중시한 차이를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들어간 문이 아니라 나온 문이고, 나온 문의 차이야말로 그들의 정치적 위치나 세계관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문체이상의 문체 중 하나의 특징은 종지(終止)의 다양성이다. 종지의 원인은 주관적문장의 구사, 우리말 서법의 일반적 룰에 대한 의식적 반발, 비약어법을 자주 사용하는 문장습벽, 이상의 신경성 질환 등을 들 수 있다.※ 이항대립, 차연, 양가성- 이항대립 : 이항대립은 두 가지의 대립적인 요소가 한 짝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근대에 이르러 소쉬르는 이항대립을 통해 현대 언어학의 기본을 정립하였다. 또 이는 구조주의의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적 분석의 대개는 분석 대상이 갖는 이항대립을 추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속, 남/녀, 우리/타자 등의 구분을 통해 한 텍스트, 신화, 사회의 의미망과 상징적 질서가 구축된다는 것이다.- 차연 :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비평 용어로 그의 독자적인 비평작업인 해체비평의 관건이 되는 비평 용어이다. 차이(변별성)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연기 또는 지연이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차연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사전에서 단어의 정의를 찾는 원리로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떤 단어는 그것이 아닌 다른 단어에 의해, 즉 단어들간의 차이에 따라 정의되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의미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어는 그와 다른 단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데, 그 다른 단어 역시 또 그와 다른 단어로 이루어진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등 이런 식으로 끝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