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윤리적 삶1) 생존방식으로서의 윤리 - 윤리적으로 살아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윤리적 삶은?윤리를 탐구하는 Ethics는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윤리에 관한 인간들의 논의가 아주 예전부터 지속되었단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유아기부터 윤리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관념으로서의 윤리는 초, 중, 고 시절의 교과서와 지금 수강하는 본 강의로 내게 다가왔다.화요일 오전 11시, 인간과 윤리적 삶 수업을 들으러 등교한다. 그 와중에 이름 모를 잡초와 꽃들을 지나친다. 내가 모른다고 이들의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 내가 채 외우지 못할 만큼 다양한 이름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식물들이 제각기 다른 생존방식을 갖고 섭취 시 다양한 작용들을 하듯, 우리 역시 인간이란 이름으로 천차만별의 삶을 살고 있다.각기 다르다고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회란 울타리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살고 있지 않은가. 다만, 어떤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윤리’가 필요하다. 한 공동체에서, 한 사회 내에서 통용되는 윤리는 그 곳을 영위하기 위한 티켓이라 볼 수 있다. 이 티켓을 스스로 뜯은 자는 법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리스크를 받게 된다. 이미 개인적 경험과 뉴스 등을 통해 느껴보았을 것이다.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타인과 함께 사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필요한 형용 모순적 윤리가 인류의 역사 동안 함께해왔다.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는 건 상대를 생각함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윤리적 삶은 다름 아닌 공감의 삶인 것 같다. 공감은 무엇일까, 대화 도중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주는 것 정도를 쉽게 생각할 수 있다. compathy는 공감을 뜻한다. 이 영단어는 함께의 com과 고통이란 뜻의 pathos가 합쳐져 있다. 즉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모두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속에서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고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윤리적 삶이다.2) 생각하라! 그리고 의심하라! - 윤리적 삶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윤리적 삶을 위해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부터 말하고 싶다. 이를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레 필요한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또한 말하기도 쉽다. 윤리적 삶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양식 등이 도움을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윤리가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칙’이라면 이기적 행동과 탐욕 등은 ‘반칙’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심판이 반칙에 따라 경고나 옐로카드를 준다면,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내면의 감시자로서 상기 태도들을 경계해야 한다.앞서 내가 생각하는 윤리적 삶이란 공감하는 태도라 말했다. 공감이란 나의 경험에 비춰 타인의 경험을 생각해보고, 일정부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쉽지 않다. 퍼즐 맞추듯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윤리적 삶을, 그러니까 공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의심이다. 타인의 호의를 음흉하게 생각하는 의심이 아니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들을 뒤돌아보며 타인의 경험과 공통점을 찾는 의미의 의심이다.누가 더 생각을 많이 하나, 에 대해 측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다. 홀로 있는 시간이 적지 않아 일기장에 내 생각을 하염없이 적기도 한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타인에 비해 낮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개인은 살아가며 개인적 경험에 비춰 자신의 행동에 선택을 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이때 일어나는 독선적인 태도는 불가피하다. 선험적 경험 역시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이런 독선을 뿌리치는 데에 있어서 의심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란 의심을 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한다면,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도움을 줄 것이다.3) 人 그리고 間 - 윤리적 삶을 위해 사회가 갖춰야 할 것은?2011년 IBM발표에서는 지난 2년간 세계에서 만들어진 자료가 인류 역사상 생산되었던 자료들의 양보다 많다고 한다. 우리는 정보사회의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은 알려주기 위한 정보, 즉 정보를 위한 정보들일 뿐이다.서점에 난립한 자기계발서적들이 인문학서가를 대체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인문학의 위기라며 기업과 사회는 경고하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학과 통폐합과 실용학풍으로 인문학을 고사시키고 있다. 물질주의에 기반 한 사람들의 의식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1. 우리사회에서 섹슈얼리티 관련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강간, 간통, 성매매에 대해 사회 인식, 규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이 세 가지 범죄에 대한 규제 정도, 형법으로 처벌이 필요한지 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논하라.강간과 간통, 그리고 성매매는 모두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범죄이다. 이들의 형태는 각기 상이하지만, 한 가지 방향을 공유한다. 바로 지켜야할 ‘성’을 말한다는 점이다. 범죄의 모습을 한 이 세 가지 행위는 신문과 방송에서, 언제나 지켜야할 여성의 성이 위협당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들의 섹슈얼리티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방식이 아닌, 수동적이고 항상 조심해야하는 성질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본인은 강간, 간통, 성매매에 관해 순차적으로 문제를 분석할 것이다. 이 의식의 방향은 개인적 경험과 생각에서부터 유추해보는 사회인식, 그리고 규범을 향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법제 현황으로 보는 세 가지 범죄의 현황과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제시하겠다.나에게 있어 강간이란 단어는, 남자의 폭력성만을 상상케 한다. 미디어를 비롯한 매체에서 보도되는 강간은 언제나 남성이 여자에게 행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접한 포르노그래피에서도 언제나 남성의 왜곡된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수단으로서 강간물이 존재했다.한국의 현행법에서는 강간의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폭행 또는 협박 따위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간음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강간의 범죄자 역시 형범 제297조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한 자’로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객체는 일부개정(2012.12.18 개정, 2013.6.19 시행)으로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됐다. 이미 판례가 인정한 바 있지만 이제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입법적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강간의 규정 외에도, 그 형태의 문제 역시 존재한다. 강간은 남성의 성기(음경)가 여성의 성기(질)으로 보도했다. 또한 수사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내야해기에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결과, 무고 피의자 여성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즉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기관에서 조차 여성이 일방적인 피해자란 점과, 그 피해가 단순히 남성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닌, 여성에게서 원인을 찾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내가 사는 고향에서는 몇몇 열녀비를 볼 수 있다.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된 여성이 정조를 지키는 것을 기린 열녀비는, 한국이 전근대 사회 때부터 여성의 정절을 강조해왔단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제 다뤄볼 ‘간통’은 비단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관계에서 나오는 관계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 여성과 남성에 대한 차별은 두드러진다.특히 미디어는 간통에 관한 그릇된 인식의 확산에 일조한다. 내가 드라마를 딱히 보진 않지만, 간통이 연속극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통에 있어 남녀차별은 극대화된다. 허나 이러한 드라마에서는 한 가지 이상한 점들이 발견된다. 불륜을 저지른 남자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수상한 가정부’에서 불륜으로 아내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남편 은상철(이성재 분)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는 박복녀(최지우 분)와의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결혼의 여신’에서는 조강지처를 버린 노승수(장현성 분)가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결국 아내 권은희(장영남 분)에게 용서를 받고, ‘울랄라 부부’의 고수남(신현준 분)은 아내 나여옥(김정은 분)에게, ‘밥줘’에서 정선우(김성민 분)는 아내 조영란(하희라 분)에게 용서를 받는다. 반면, 남자와 같이 불륜을 저지른 여자는 대개 파국으로 치닫는다. ‘수상한 가정부’의 불륜녀 윤송화(왕지혜 분)는 결국 버림을 받고, ‘울랄라부부’의 불륜녀 빅토리아는 극에서 미지근한 퇴장 당했으며, ‘밥줘’의 불륜녀 차화진(최수린 분)은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이렇게 극단적인 미디어의 서사는 대중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확산시키기도 하지만. 이런 내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보면, 성매매는 젊은 남성들에게 있어 ‘진짜 남자’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인식되는 듯하다. ‘처음’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영역으로의 이동을 말해준다. 한국은 남성의 첫 성경험이 성매매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주간지 한겨레21 제888호에서는 2010년 성매수 실태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남성의 성매매를 분석했다. 이때 평생 동안 1회 이상 성매매를 했다고 답한 사람은 절반(49%)이고, 많은 남성들이 첫 경험을 성매매를 통해 이룬다고 기사는 말한다.첫 성경험은 남녀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앞서 말했듯 일종의 통과의례, 남성성의 취득으로서 성경험이 남자들에게 인식되는 반면, 여성들의 첫 경험은 처녀막의 파괴, 즉 순결의 상실 등으로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매매는 남성들에게 비공식적이고 불법이지만 권장되고, 또 함께 즐기는 음성적 문화로 발달해온 것이다.강간은 뚜렷하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 주장을 바탕으로 남성의 신체적 우위와 본능을 통해 일어나는 강간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는 생물학적, 운명론적 결정론으로도 해석되어 여성의 약자로서의 위치를 고착시킨다. 간통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관계에서 성에 관련 없이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이를 대우하는 사회와 미디어의 방식이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이다. 불법으로 규정된 성매매 역시 우리 사회에서 알음알음 비공식적으로 모든 남성들이 교육받고, 권장하는 실정이지만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모두 모두 남성과 여성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실태이다.강간죄는 철저하게 가해자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에 대한 신원보호가 시급하다. 하지만 꽃뱀, 금전적 이유를 목적으로 남성을 모함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이미 수사기관에도 교육되어, 피해자 여성이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조건적인 여성보호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중심, 남성만을 위하는 현재의 사회규범이 문제된다는 점은 분명하어나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집창촌만 하더라도 당장 법원과 변호사사무실이 몰려있는 단지에 조성되어 있다. 엄연히 불법으로 규정된 성매매가 이런 공권력의 테두리 안에서 성행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이다. 또한 이를 자랑스레 여기며 성매매를 친구에게, 동료에게 권장하는 남성들의 태도도 옳지 않다.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 여성의 권리는 더욱 더 낮아지고, 남성에게 있어 도구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하루 빨리 성매매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음지의 성매매 현실과 여성종사자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이상 강간과 간통, 그리고 성매매에 관한 사회인식과 내 생각, 그리고 처벌에 관한 의견을 적었다. 이 세 가지 행위는 모두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일탈행위라 볼 수 있다. 조금씩 상이한 형태로 여성을 침해하거나 그릇된 성 관념의 표출을 추구하지만, 세 가지 모두 여성과 남성의 이중 잣대가 녹아들어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성차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2. 성문화연구 수강 전 자신이 생각했던 우리사회 성문화, 정책 등에 대한 관점이 수강 후 변화된 부분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부분이, 왜 변했는지, 변하지 않았다면 왜 그러한지 등에 대해 수업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설명(*이론적 관점 포함)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하라.토론 동아리에서 1년여 간 활동하면서, 활동 기수의 토론 사회는 필수였다. 각자가 평소에 학우들과 대화하고픈 주제로 다양한 토론 주제를 선정해왔지만 성 관련 주제는 언제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개인의 호기심은 집단의 눈치에 비해 작은 이유였을까, 대부분의 토론들에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 바빴다. 대담한 사회자의 진행이 있던 몇몇 토론을 제외하면 정말 지리멸렬했단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모임이었다. 왜 그들은, 아니 나를 포함한 우리는 입을 닫았을까. 토론에서 성적 담론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곧 자신의 성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이었다. 성경험을 포함하는 건 물론이다.젊은 대학생들이 모여 활동하는 동아리라 하더라도, 결국 한국 사회의 공부, 공부를 위한 공부였을 뿐이다.그리고 4학년의 끝자락, 성문화연구를 듣게 되었다. 일단 여성사회학이라는 이름보단 성문화에 관한 광범위한 토론과 내용이 주될 것이란 판단을 했다. 다른 전공과목들이 개설되어 있음에도 불구, 이번에도 이 수업을 택한 이유는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성의식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내가 이전에 갖고 있던 한국의 성문화, 그리고 정책 등에 대한 관점은 일단 굉장히 남녀 평등적이었다. 좀 더 나아가 설명하면 오히려 역차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는 여성에게 관대해보였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왜곡하는 근시안적 사고였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시작되어 어느덧 현실세계로 넘어오려는 왜곡된 성 관념을 먼저 이야기해보겠다.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김치녀’라는 신조어가 전파되고 있다. 영어권에선 Gold Digger(돈을 목적으로 남자와 사귀거나 결혼하는 여자)로 대응되는 이 단어는 소수의 여성의 행동을 과도하게 해석해 모든 여성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모조리 비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성 혐오’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런 사회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 비하 문화는 SNS등을 통해 전파되어 아이들에게도 노출된다. 대인관계의 시작과 합리성을 배우는 중요한 사회화시기에 말이다.본인도 SNS에 올라오는, 이른바 김치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며 굉장히 놀랍고, 설마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면서도 일반 여성들에 관한 왜곡된 시선을 키우고 있었다. 내 여자친구도, 혹은 내 누나도 이럴 수 있다는 시선은 곧 다양한 여성성이 오로지 남성을 이용하기만 하는 여성으로 환원될 수 있었다.그런데 이 김치녀 논쟁의 중심에는 소수 여성들의 비상식적 행동보다, 남성의 권력문제가 숨어있는걸 알게 되었다. 한 공동체 사회 속에서 지배적 집단은 타 집단을 통제하고, 계속 낮은 지위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피지배 집단에 대한 속성을 한가지로만 만들고 개발한다. 이때 본연의 가치들은 평가절하 되고 사회문화적 헤게모니를 얻지 못하는 피지배 집단은 지배집단.
‘책 읽어주는 남자’1) 두 작품의 이야기(내용)상 중요한 차이는 무엇인가?두 작품의 제목은 모두 ‘책 읽어주는 남자’ 이다. 그렇지만 책을 듣는 여자, ‘한나‘가 가장 큰 비중을 갖고 있다. 그녀는 영화와 소설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내가 소설에서 읽은 중요한 장면이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 바로 한나가 미하엘에게 가죽벨트를 휘두르는 대목이 영화에선 없어진 것이다.책에 쓰인 가죽벨트 씬은 두 사람이 자전거 여행을 떠났을 때, 한나가 식사를 차리려던 미하엘을 오해해 가죽벨트로 상처를 준 내용이다. 이때 나는 한나의 폭력성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숨겨진 폭력성 등이 사실 나치에 가담했고, 만행을 저질렀단 사실을 일정부분 예고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영화에서는 성당의 성가대의 찬송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한나만이 보인다. 이런 흐름은 바로 한나가 정직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탓에, 유대인 여성들을 죽인 범인으로 몰렸다는 느낌을 내게 줬다. 즉 소설에선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 한나란 캐릭터가 영화에선 단순한 인물로 변한 것이다. 이 단순화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해석되는 위험도 가져다준다. 정리하자면, 두 작품의 중요한 차이는 소설과 영화 모두 상황에 대한 다른 해석을 유도하며, 그 해석의 대상은 바로 한나에 집중되어있단 점이다.2) 한나는 왜 책읽기(듣기)를 즐겨하였을까?우리가 책을 읽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최근엔 취직과 성적을 위해 등의 이유가 많이 들리지만, 본질적으로 독서는 재밌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의 책 읽기 방식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그녀의 책 읽기는 타인이 글을 읽으면 이를 듣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한나는 문맹이기 때문이다. 한나는 매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의 말을 듣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이야기’를 원했다. 자신이 문맹이기 때문에 남이 글을 읽어줘야 한다는 수치심조차 잊을 정도로 소설은 재밌었고, 따라서 그녀는 책 듣기에 더욱 빠지지 않았을까?3) 미하엘(마이클)은 재판과정에서 왜 한나의 문맹을 증언하지 않았을까?질문과 같은 행동을 한 미하엘은 자신에게 평생의 짐을 얹었다. 그 당시 미하엘의 고뇌와 충격은 영화에서 잘 표현된다. 한나와의 만남 도중 있었던 책 읽기와, 글에 관련된 일들이 하나 둘 뇌리에 스친 것이다.미하엘에게 그녀의 행동은 ‘문맹’이란 이유로 이해가 되었지만, 증언을 함으로써 벌어질 일들은 자신의 이해 밖이었다. 그녀가 평생 동안 지켜온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미하엘은 증언하지 않았다.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 간단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하엘은 ‘그 것을 증언했을 때 다가올 책임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 것 이다.영화에서 교수와의 대담으로 교체된 소설 속 아버지와의 대화는 이런 미하엘의 생각을 표현한다. 즉, 다가올 일들에 대한 무기력함이 미하엘의 증언을 가로막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4) 한나는 왜 출소 직전에 죽음을 택했을까?한나는 문맹이란 사실을 감추기 위해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교도소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홀로 지내던 그녀는 미하엘이 보낸 녹음테이프를 받고 과거와 같이, 소설을 듣는다. 이때부터 한나는 문맹을 탈출하려 한다. 정서적 문맹과 실제의 문맹 모두 말이다.꾸불꾸불한 글씨로 미하엘에게 보내는 한 문장의 편지는 내게 영화의 명장면으로 다가온다. 열심히 편지를 쓰고, 테이프를 받는 한나는 오랜 시간의 이별을 넘어 미하엘과 재회한다. 미하엘과, 그를 여전히 꼬마라고 부르는 한나 사이의 공기는 소설, 영화 모두 심상치 않다. 소설에서는 미하엘이 한나를 포옹하며 환영하지만, 이내 긴장이 감돈다. 그에 비해 영화는 만남 전반에서 미하엘의 냉소적 태도가 눈에 띈다.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세상을 마주보려는 한나는 문맹을 탈출했다. 하지만 이를 얻기 위해 감수한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출소 직전, 그녀는 정서적 문맹을 탈피하고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택한다. 특히 영화에서 자신이 읽고, 들었던 책들을 하나, 하나 쌓아 그 위에 올라서는 장면은, 한나가 자신을 일깨워준 책을 사용해 자살을 함으로써 참회를 마무리 짓는 것을 보여준다.5) 이 작품이 말하는 '문맹'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은 '책을 읽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한나는 문맹으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여기서 문맹은 도구적 의미와 본질적 의미로 나눠 볼 수 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수치심에 그녀는 유수의 공업회사 ‘지멘스’의 승진제의를 뿌리쳤다. 이어 들어간 나치에서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일조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법정에 가는 등, 문맹은 더 리더의 서사 전반을 꿰뚫는 도구로서 사용된다.
1) 소설 와 영화 의 비교에 있어 주요한 차이와 그 차이의 이유(혹은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원작이 존재하는 영화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기반을 둔 대상에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이때 2차 생산자는 창작적 한계가 오히려 자신의 재량을 표현 할 좋은 수단이 되도록 노력할 수 있다.조 라이트 역시 원전의 재해석을 통해 영상매체로서의 ‘어톤먼트’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낸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원작 ‘속죄’와 ‘어톤먼트’의 가장 큰 차이는 ‘선택과 집중‘이다. ’어톤먼트‘에서는 다수의 전개내용이 해석에 의존한다. 영화 전개 상 내레이션을 통한 설명은 유용할 수 있으나, 모든 정황과 관계가 내레이션으로만 전개된다면 몰입도가 매우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톤먼트‘를 보는 관객들은 여러 가지 상징과 구도 그리고 편집으로 인해 영화의 해석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소설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1부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묘사가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주로 표정과 그들의 연기, 즉 ‘해석’에 중점을 둔다.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 역시 ‘어톤먼트’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에 무게를 두었다. 특히 한 개인이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이유가 타인의 ‘왜곡된 이해’에 기초를 둔 것이라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이에 반해 작가와, 그가 쓰는 소설의 관점에서 구성된 ‘속죄’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상황 등을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상세히 풀어나가고 있다. ‘속죄‘에는 여러 관계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이 개인에 따라 어찌 투영되고 기억되는지에 대한 물음과, 거대한 사건 속의 사람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기억을 갖게 되고 수용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주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2) 주인공 브리오니의 글쓰기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한 개인의 성장에 따라 신체기관이 발달하고 쇠퇴하는 것처럼 글쓰기의 행위와 목적 또한 같은 궤적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글짓기에 대한 브리오니의 목적은 자신만의 세상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었다. 창작활동을 통해 브리오니는 따분한 현실을 회피하고, 자신이 쓴 ‘아라벨라의 시련‘처럼 언젠가 낭만적 로맨스를 즐기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키워갔다. 창작에서 그녀는 헤어 나오지 못하고, 로비에 대한 일그러진 표상이 자신에게 맺히는 데에 이른다. 사촌의 성폭행 현장을 목격한 브리오니의 거짓증언에 따라 로비는 징병되어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다. 이에 언니 세실리아는 전장을 전전하는 간호사로 로비를 찾아다니게 된다. 이때 브리오니의 글짓기는 어린 시절의 이기적 글짓기에서 벗어나, 속죄행위로서의 글짓기로 변화한다. 작품의 종반부, 노년기의 브리오니가 행하는 글짓기는 참회에서 또 다른 세상의 창조로까지 변하여 이전 어린 시절의 글짓기와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다만 참회와 속죄의 의미가 곁들어진 것이 소녀시절과 다른 점이다.‘속죄’와 ‘어톤먼트’에서 보이는 글짓기를 분류해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소설에서의 글짓기는 때로 작가주의적 시점에서 브리오니의 생각, 나아가 작가의 생각도 은연중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소설의 전개 내내 감정에 대한 분석과 관계의 설명 등을 묘사하는 기제로서 작용한다.영화 ‘어톤먼트’에서 글짓기는 음향적 효과로써의 타이프라이터 소리로 상징된다. 서사 도중 오해가 극대화 될 때, 타자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브리오니의 생각이 비틀어짐을 표현한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타이프라이터 소리와, 종반에 나오는 노년기 브리오니의 소설에 관한 인터뷰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의미로서의 글짓기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3) 이야기의 후반부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전쟁은 죽음을 수반한다. 동시에 죽음을 맞는 이들에게 불가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전쟁에서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에 대한 비극의 상처이기도 하다. 왜 자연재해와 다른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벌어지는 인위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재해와 차이가 있다.브리오니는 자신의 거짓증언으로 언니의 연인이자, 자신의 가족과 같았던 로비를 감옥으로 보낸다. 이후 로비가 갈 수 밖에 없었던 전쟁터는 야만 그 자체다. 쭉 탈레스가의 후원으로 - 내면에선 폭풍이 일었을지언정 -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던 로비는 영화에서 나오는 그의 대사 ‘늑대 굴’과 다름없는 전장에서 오랜 시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로비가 겪는 개인적 경험인 전쟁을 넘어, 역사적 의미의 전쟁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거대한 힘들의 충돌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하찮다. 이런 무력武力 속의 무력無力한 상황이 2부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으로 그려진다. 문명을 지탱해온 여러 가치가 한 번에 무너지고 혼란과 불균형이 지배하는 해변의 참상을 5분간의 ‘롱 테이크‘로 담아내며,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난 작가와 감독은 전쟁을 경험한 자신의 아버지 세대들에게 일종의 속죄를 표현하는 듯하다.4) 소설 읽기와 영화 보기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이 두 작품 감상의 예를 통해)소설과 영화는 모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모두 현실재현의 욕망의 발현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활자와 영상들을 통해 나오고, 반대로 이들이 우리의 상상력에 대한 지평을 제시하기도 한다.나는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가급적 먼저 원작을 보고 난 후에 영화를 감상한다. 내가 펼친 상상력이 감독과 연출자에게 어떠한 식으로 반영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큰 재미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순서로 보다보면, 영화에서 보던 모습이 소설의 서사 속에 계속 생각나 몰입이 어려울 때도 있다. 이처럼 텍스트의 특징인 확장성이 영화에서는 때로 훼손된다. 그러나 이런 확장성을 포기하는 대신 영화는 서사의 일관성을 추구하려 노력한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사랑, 오해, 작가주의, 전쟁의 참혹함 등 여러 갈래로 나눠진 ‘속죄’의 구성에서 ‘어톤먼트’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안타까운 로맨스에 주목한다. 이 로맨스를 구성하는 배우들의 연기, 음향 등 시각적 요소 외 효과들은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해준다. 이처럼 어톤먼트는 122분의 제한된 러닝타임에서 ‘속죄’의 창조적 해체로 성공적인 재구성을 꾀한다.
목 차1. 문제제기 - 우리 사회의 포르노그래피2. 이론적 배경과 분석 - 포르노그래피와 여성3. 사례분석 Ⅰ - 인터넷, 그 안에서 여성의 모습4. 사례분석 Ⅱ - 새로운 표현의 장, 웹툰에서의 성5. 결론 - 정리하며6. 토론과 질의 정리1. 문제제기 - 우리 사회의 포르노그래피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공식적 담론은 한정되어 있지만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있다. 현실 속 다양한 광고수단과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해 포르노그래피는 사방에 투영되어있다. 때로 포르노그래피는 금기의 상징으로, 문학이나 표현의 이름으로 우리의 욕망과 환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담음과 동시에 여성비하적인 주제를 표현수단으로 삼고 있다.우리 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보이는 포르노그래피의 역사성과, 정보사회에 이르러 두드러지는 포르노그래피의 특성 그리고 웹툰 등의 미디어콘텐츠에서 말하는 새로운 성 담론을 본 보고서와 발표에서 다룰 것이다.포르노그래피의 정의여성학자 안드레아 드워킨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매춘부가 비속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최하층의 매춘부, 즉 포르네이아만이 비속하게 여겨졌다. 따라서 포르노그래피가 성적표현, 섹스의 묘사로 인식된다는 사실은 포르노그래피에서 묘사되는 여자의 성욕이 일반적으로 여성의 성욕으로 인식되고, 음란하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지식정보 사회에서의 포르노그래피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 혁명에 기술적 토대를 둔 지식 정보 사회로 접어들면서 포르노그래피(이하 포르노)와 성관련 산업은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현대인의 일상과 문화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소비 되는 대표 영역이 되었다.한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전 세계 웹사이트의 12%가 포르노였고,전체 검색엔진의 4분의 l 이 성에 관련된 주제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또한 AV가 일반화된 일본에서 매달 발매되는 AV 신작은 2000-2500편이며, 전체 시장규모는 4000억-5000억엔 규모로 파악된다고 한는 여성비하적 함의앞서 문제제기에서 설명한 포르노그래피의 정의는 고대 그리스시대의 최하층 매춘부 ‘포르네이아’에서 기원했다. 그렇기에 단순히 섹스에 대한 묘사, 성적 표현이 아닌 여성비하적 의미를 내포한 성적 표현물로써의 포르노그래피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여성학자 안드레아 드워킨에 의하면, 포르노그래피에서 불러일으키는 ‘음란하고 더러운’ 생각은 현실세계의 여성의 성욕과 성적 행위 그리고 생식기를 비롯한 신체적 특성 또한 ‘더럽다’는 확신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즉 포르노그래피는 일반적인 여성들이 더럽다는 생각을 팔고, 그 생각을 확산시키는 것이다.이런 포르노그래피에서 보여지는 특성은 바로 ‘외설성’이다. 외설은 정숙과 반대되는 행위와 요소를 일컫는 말로서, 성적인 성질의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며 정숙함을 침해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외설성으로 가득찬 포르노그래피는 그 자체적 정의에서부터 여성비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의도를 내뱉는 것이다.포르노의 주요한 내러티브포르노그래피의 중심 내러티브는 특별한 관계는 아닌데 친밀하거나(누나/동생, 친구누나/동생, 여자친구, 비서 등), 전혀 모르는(버스나 지하철, 택시,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 사람과 우연하게 만나게 되면서 (혹은 우연히 그들의 몸을 보거나 자위행위, 섹스장면 등을 목격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그 여성들은 모두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난처해하지만 곧(성기삽입후) 흥분하게 되고 격렬한 섹스를 나누게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의 포르노그래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가 담고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1. 주변의 모든 여성은 잠재적 섹스 대상자이거나 적어도 훔쳐보기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 즉 모든 여성은 섹스상대로서 의미를 가지며, 여성의 의사는 의미가 없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2. 모든 여성은 자신과의 섹스를 결국 '즐기게 된다'고 가정하게 된다. - 여성의 반대나 반발은 으레 그러는 것이므로 폭력을 통해서라도 시작만 하면 된다는 뒤틀린 생각을 낳는다.3. 섹스에서 상대방이 스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4.섹스의 모든 것은 삽입에 달려있다고 가정한다. - 오로지 목적은 삽입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여성을 궁극적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포르노그래피의 표현적 특징과 영향- 여성의 몸 : 매우 부자연스러운 포즈, 과장된 표정, 특정부위 과장- 특정부위(유방, 성기 허벅지 등) 클로즈 업- 가학행위 여성의 성기에 이물질 삽입, 결박 등- 성관계 : 성기 중심적 성관계, 한 여성과 여러 남성의 성관계, (여성의 성적도구화 등)- 성폭력장면 : 성희롱, 성추행, 강간 등상기 묘사의 대부분은 여성이 흥분하는 과정, 여성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대목을 중심으로 과격한 폭력도 불사하는 남성의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축소되어 나오는 반면에 여성의 묘사와 표현은 과장되고 확대되어 생산된다.남성들이 접하게 되는 성적 표현물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당연한 표현이겠지만, ‘남성적이다.’ 남성적 시선과 욕망을 내포한다. 포르노그래피는 관음증적 시선과 페티시즘, 성기중심적인 관계들의 묘사, 강간, 근친상간 등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폭력성, 남근중심성, 관음증인데, 이런 것들이 다시 남성 개개인의 성적 판타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포르노그래피의 부작용은 실제 현실 속의 남성들에게도 영향이 매우 크다. 포르노에 탐닉하다 보면 실제 성관계에 홍미를 잃고 점점 더 자극적인 포르노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성의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음란물 중독의 가장 큰 폐해는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성 교수는 “음란물 중독 사이클은 가속도가 붙는다. 점점 더 자극적인 내용을 찾게 되므로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는 불감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음란물에 중독되면 부부관계를 거부한 채 음란물로만 만족을 얻으려고 하거나, 부인에게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요구 한다".포르노그래피의 여성지배적 이데올로기1.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포르노는 생식기관과 성행위에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포르노는 남성지배의 틀 속에서 성행위를 구성하고 여성을 대상화함으로써 성에 대한 왜곡적 신념 강화시킨다. 즉, 특정신체의 여성을 바람직한 것으로 정형화화고 포르노에서 묘사된 대로 여성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2.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인격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현실세계에서도 여성을 그렇게 보도록 부추기며 성희롱, 성폭력을 비롯한 행위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3. 포르노그래피는 대개 남성의 쾌락을 중점으로. 여성에게 고통이 되는 특정행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남성적 욕망을 강화한다. 남성들에게 여성을 비하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성적 욕망을 갖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4. 여성의 행위는 남성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성의 성에 대해 남성이 통제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포르노그래피의 히스테리적 특성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해 ‘남성 히스테리의 마지막 회화적 진전’이라 말한 바 있다. 달리 말하면, 포르노 주체는 히스테리적이고 도착적인 남성이며 여성은 그 대상으로서 언제나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자극을 재현한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또한 여성학자 안드레아 드워킨은 포르노그래피 속의 여성에 대해 ‘여성들은 포르노 필름 속에 붙잡혀 있으며, 그 필름이 또 다른 여성에게 사용되고 있으며, 남성이 그 필름을 갖고 있는 동안 여성은 계속해서 감금된 것이다.’ 라고 말하며 스크린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의 여성들이 성적인 프레임 속에 감금되어 착취당하고 있음을 주장한다.이처럼 포르노란 단순히 섹스라든가 관능적인 행위에 관한 글, 나체의 묘사, 성의 표현을 의미하지 않는다.오늘날 '외설적인 성적 표현이나 섹스의 묘사로서의 포르노'라는 인식의 배후에는 포르노에서 묘사되는 여자의 성욕이 곧 일반적 여성의 성욕이며, 그런 여성의 성욕은 본질적으로 음란하다는 왜곡된 인식이 기초된다. 즉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것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에 가까운 성묘사가 대부분이다. 포르노터넷, 그 안에서 여성의 모습인터넷의 미디어적 특징과 포르노그래피인터넷은 포르노그래피 제공자 측면에서 진입장벽이 거의 없어 시장 입출입이 자유롭다. 또한 웹상의 표현과 영향력 등은 비조직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규제가 어렵고, 웹공간에서는 기존의 생산 유통방식보다 적은 비용으로 유통시켜 더 많은 이윤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인터넷의 미디어적 특징이다. 인터넷의 확대와 스마트폰 등의 폭발적인 확산은 결국 포르노그래피의 성장도 가져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실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할 수 있는 플랫폼 ‘구글 플레이’에서 ‘sex’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낯뜨거운 이미지와 함께 음란물이 담긴 애플리케이션(앱) 검색되며, 이들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예로 ‘sxx xxxxx’라는 앱은 성관계를 할 때 나눈 대화나 음성을 들려주고 여성의 속옷, 나체 사진 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상술한 구글 플레이 뿐만 아니라, 대표적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어플리케이션 시장에서도 성적 내용의 콘텐츠가 들어간 포르노적 어플리케이션은 범람하고 있다. 실제로 다운로드를 받는 과정까지 검색과 버튼 한번으로 아주 간결화 되어 있으며, 미성년자들까지 생년월일을 속이고 이를 받을 수 있어 더욱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SNS와 포르노그래피 - Facebook오늘날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SNS ‘Facebook’은 게시물의 ‘좋아요’버튼만 누르면 자신의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에게 확산 가능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은 원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정보를 접하게 된다. 디지털 매체의 특성 상 단속 및 제재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SNS를 통한 미성년자의 포르노그래피 소비 역시 적지 않은 양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 검색 창에 19, 남자, 라는 키워드만 쳐도 여러 페이지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런 Facebook상의 포르노그래피 관련 페이지들은 모두 좋아요와 댓글 수에 따라 수익을 내기에 더욱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포르노그래피 관련 콘텐츠들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