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양화된 사업신발산업에 대하여..목차(1)부산에서 신발 산업의 성장 배경(2)신발산업의 사양화(3)사양화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4)부산 신발산업의 현재상황 및 전망1.부산에서 신발 산업의 성장 배경60~80년대 한국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부산의 신발 산업. 신발산업 1세대 인맥은 한국전쟁 이후인 50년대 부산에서 시작됐다.국제화학과 태화고무, 삼화고무, 동양고무, 보생고무 등 이른바 1세대 회사들이 창업됐는데 6.25전쟁 직후 피란민 등으로 풍부해진 부산지역 노동력이 산업 기반이 됐다.신발산업에 가장 적합한 기후조건과 일본이 생산기지를 한국으로 넘겨준 것도 신발입지의 최적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이들 1세대에 이어 경영수업을 쌓은 후배들은 60~70년대 들어 본격적 인 부산신발의 중흥기를 준비한다.월남전쟁 당시 국내 미8군에 납품하면서 신발산업은 비로소 수출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외화획득이 가능한 산업으로 인정돼 정부에서 갖가지 특혜를 받게 된다.한국신발은 60년대부터 싼 임금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의 신발선진국인 일본과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또 한가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일본의 종합상사의 역할이다.그 시기에 한국에 오더를 준 회사들은 상당수가 일본의 종합상사였다. 해외 소싱을 책임지고 미국의 유통업체로부터 오더를 받아서 한국에 생산을 하고 이것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삼각무역의 중심에 생산기지로서의 부산신발산업이 있었던 것이다.70년대 신발 물량이 대폭 증가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라인을 늘리고 공장을 확장했다.기술적으로나 생산량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엄청난 수용에 의해서 원자재 대체도 활발히 이루어져 70년대를 거치면서 신발 관련 모든 소재와 원자재는 한국에서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이 기계설비 , 접착제 , 고무재료, 미드솔 재료, 섬유, 합성피혁, 인조피혁 등인데 기본 기술이 일본에서 전수되었지만 이것을 신발용으로, 또 대량 생산용으로 전환 시키는 작업이 70년대를 거쳐 80년대의 90%이상으로, 신발류는 1958년에 시 전체 수출액의 10.5%, 1975년에는 13.4%, 1982년에는 24.2%를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1987년에는 무려 35.8%에 이른다. 고용면에 있어서나 생산액에 있어 화학공업은 1980년 이후 부산공업의 주된 공업부문이며 신발류가 이 역활을 했다.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합쳐져 부산에서의 신발 산업은 부흥하게 된다.2.신발산업의 사양화부산의 신발산업은 80년대 말 불어닥친 노동쟁의와 90년대초 '신발산업 합리화' 조치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수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고말았다.87년 7월 8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부산 신발 산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삼화고무를 비롯한 초기 회사들은 이 시기에 대거 문을 닫았으며 수 많은 크고 작은 회사들이 경쟁력을 잃었다. 신발업의 생산기지로서의 가이드라인이 300불인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임금이 300불을 넘기 시작하고 급속히 신발 제조 코스트가 올라가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발기업이나 정부도 신발은 이미 어려운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산업구조 조정을 시작했고, 바이어도 높은 가격의 신발을 더 이상 사갈 수 없어 저가는 다른 생산기지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 시기에 중국이 개방정책을 취하면서 가능성 있는 지역으로 등장을 하였다.문제는 이 시기의 신발 업체와 정부의 대응이다. “업체는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지는 업체와 “해외에 나가서까지 신발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업체로 양분되었다. 그리고 정부도 신발산업의 급속한 이전을 우려하여 나라별 5개사 이내의 해외투자만을 인정하는 투자지침을 만들고 그 나라 내에서도 지역이 분산되도록 만들었다.당시 중국의 경우는 청도, 천진, 대련, 상해 등으로 신발 업체들이 각각 지역거점을 만드는 형태로 진출하였고 이들 업체들은 초기 시행착오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1987년부터 1992년에 이르는 5년동안의 기간이 부산 신발산업을 몰락하게 만든 주된 시기였고 , 그 핵심은 정부와 업체의 전략의 부재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않을 것이다.한국 업체 경영진의 전략과 해외투자경험의 부재로 방향을 상실했을 때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전략과 해외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던 대만 업체는 90년 초반부터 승승 장구 하기 시작한다. 대만이 가지지 못했던 대량생산 체제를 해외공장, 대부분 중국에서 이루어내고 특히 신발의 경우는, 중국 광주와 동관을 거점으로 신발 산업 지역 클러스터를 형성한 것이다.가격 경쟁력이나 원자재 수급에 있어서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경쟁력 있는 산업구조를 실현함으로써 대만이 신발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이러한 현상으로인해서부산신발은 1980년대 중반 부터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냈다.최고 생산실적을 보였던 1986년에 국제상사가 1만5700명의 종업원을 보유한 것을 비롯해 동양고무 1만2650명, 삼화 9200명, 태화 8600명, 진양고무 7000명 등 5대업체가 모두 5만4000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지만80년대 후반기에 노동운동과 임금인상 압력 파고를 넘지 못하고 메이저급 회사들의 도산이 잇따르게 된다. 80년대 말 부터 90년대 초까지 삼화, 진양, 태화, 동양 등 대규모 회사들이 도산했으며 국제상사도 라인을 대폭 줄일 수 밖에 없었다.게다가 1992년 정부로부터 발표된 신발합리화 정책은 부산의 신발산업을 정리의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그 이후 탈 부산 러시를 이룬 부산신발은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생산기지를 대거 이전했다. 이렇게 부산의 신발산업은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사진출저: 변현석 칼럼연재2편 부산신발산업 어떤사업인가?당시 회사들의 해외이전에 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3.사양화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1990년대 중반, 부산신발산업의 전환계기를 찾고 있었는데 이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루어 졌다.하나는 기술혁신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장 집중화라는 것으로 대별된다.이것의 핵심은 CAD/CAM 몰드 기술과 특수화 시장으로 대별되는 것이다. 기술혁신의 한 축인 몰드 기술은 나이키 공장으로부터 출발했는데 95년에 이미 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철수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아디다스나 리복의 경우는 이미 철수를 거의 완료한 상태였다. 이때 나이키 공장이 살아갈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던 중 기술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태광실업은 몰드 개발에 사운을 걸고 투자를 시작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모하다 라고 느낄 만큼 신발 몰드에 투자를 하고, 특히 기존 기술을 넘어서 전자나 자동차에 있는 기술들을 신발 몰드 기술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번 있었던 대만계 나이키 공장과의 경쟁에서 기술적인 우위를 보였고 나이키도 단순한 신발에서 차별화 된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확실한 기술적 차별성을 인정하여 나이키 본사의 절대적인 신임과 더불어 기술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확실히 구축한 것이다.이것은 비단 한 회사가 비즈니스를 계속한다는 차원을 넘어 나이키 관련 모든 공장에 비즈니스를 연속하게 만들고 다른 기업들도 기술투자만이 살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투자를 유도했다.또 하나의 시도는 특수화로 시장집중화가 이루어 진 경우인데 이미 가격경쟁에서 단순한 신발의 경우는 부가가치를 얻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이것을 가장 가치 있는 신발을 만들어서 시도를 한다면 가격에 상관없이 생산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관점에서 이런 시도가 이루어졌다.이 때까지는 특수화를 주로 만들던 이태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이태리의 경우는 등산화나 자전거화, 스키화, 인라인 스케이트화 등등 특수화 카테고리의 신발을 높은 가격에 만들고 있었다. 한국의 임금수준이나 기술수준이 이태리와 비교하여 비슷하다면 이태리가 만들고 있는 제품 카테고리는 한국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기본 생각이었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긴 업체가 성호실업과 우연과 같은 기업이다.이들 기업의 기술적 기반은 신발제조 기술과 더불어 사출 기술과 사출물 접착 기술이었다. 우연의 경우는 자체 사출설비로, 성호실업의 경우는 부산 경남에서 가장 큰 사출업체를 파트너로 기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이런 두 가지의 시도의 성공은 신발산업이 다른 산업과 시너지 효과가 있다면 보다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한국의 경우 생각외로 기반 기반 기술이 잘 갖추어진 나라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는 삼성과 LG를 제외 하고는 없지만 생산기반 산업 즉 중간재 산업에서는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부품과 소재 산업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이런 시도가 있기 전에는 신발산업은 신발산업으로만 존재를 했지만 이런 시도들이 성공하면서 다른 산업에 있는 기업들이 신발이 가지고 있는 부품이나 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개발과 투자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IMF를 거치면서 명확히 나타나는데 IMF는 신발 산업이 어느 정도의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다른 산업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신발산업이 가지는 이익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어떻게 그런 산업이 아직도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 할 정도로 신발산업에는 아직 부가가치와 로스가 많다.로스를 줄인다면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만일 제대로 된 개선과 사업방향을 정립한다면 보다 많은 가능성을 보인다.4.부산 신발산업의 현재상황 및 전망참고자료:한경신문 2011-2-11일자 경제면 참조최근의 부산신발산업의 생산액과 수출구조변화 그래프신발산업은 1980년대까지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으로 고용과 성장의 주역이었으나 1990년대부터 경쟁력을 상실. 1980년대 제조업 중 신발산업의 고용 비중은 2000년대의 자동차산업 수준. 신발산업의 수출 비중은 1977년 5.0% → 1990년 6.6% → 2008년 0.1%로 변화 했다. 하지만..한국의 신발산업은 2005년을 기점으로 재도약했다. 1990년대 초반 생산규모가 4조 원대였던 한국의 신발산업은 제조거점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수출물량 감소로 2005년 생산규모가 1.7조 원으로 축소. 신발 수출(억 달러): 4.9(‘77) → 43.7(’90) → 4.8('05). 2005년 이후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