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에 들리는 현대식 한옥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현대식 한옥을 답사를 하기위해 안국역에 갔다.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어떤 한 현대식 한옥의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안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여전히 현대식 한옥은 전통 한옥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집의 형태는 중부지방의 특징인 ㄱ·ㄴ·ㄷ의 형태로 되어있으며, 여기서 집의 형태는 ㄱ·ㄴ·ㄷ·ㅁ의 형태로 나누어진다. ㄱ·ㄴ·ㄷ의 형태는 중부지방의 형태이고, ㅁ자의 형태는 영·호남 지방의 형태이다. 대문을 통과하고 마당에 들어서면 기단과 마루의 모습이 보인다. 기단은 딱 보면 ‘별로’ 라는 느낌이 들겠지만, 은근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루와 온돌을 설치하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과 분리되면서 습도 조절을 하면서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통한옥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마루는 여름 같은 더운 날에 앉아 있으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또한 딱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마루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의 대표적인 특징 하나인 온돌이라는 것이 있다. 온돌은 마루와 반대로 겨울철에 꼭 필요한 것이다. 온돌은 부엌에 있는 아궁이로 이용 하는 것 인데, 아궁이에서 불을 데운다. 그러면 불로 뗀 열기가 방 밑의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그 열기가 방 안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온돌로 인해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입식이 아닌 좌식을 하게 되었다. 또한 더위와 추의를 동시에 해결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건축 형식이 생겨났다. 안의 모습은 한지로 벽을 도배를 하였다. 한지는 식물성 기름을 첨가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방수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비와 같은 것을 막는데 효과적이다.위의 사진들은 첫 번째로 들린 현대식 한옥(거의 전통한옥 인 듯)?2. 두 번째에 들리는 현대식 한옥이제는 또 다른 현대식 한옥에 들어갔다. 그 현대식 한옥은 카페이다. 그 카페의 모습은 맨 처음에 들어갔던 곳보다 더 현대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우선 대문이 없고, 일반 건물과 같은 입구가 있다, 벽은 벽돌로 지어지고, 지붕은 기와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안의 모습은 전통한옥과 같이 한지로 벽을 도배됨으로써, 방수의 기능을 한다. 창문은 나무로 만들어진 한옥의 고유의 멋인 창이다. 그리고 안의 시설들은 현대에 쓰이는 시설들을 설치를 놓여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한옥과 양옥이 합쳐져 독특한 방식이 생긴 것 같기도 하면서, 순간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되었다.위의 사진들은 두 번째로 들린 현대식 한옥(카페)?3. 느낌점이렇게 북촌 한옥마을을 조사 다니면서, 많을 것을 느꼈다. 나는 솔직히 북촌 한옥마을에 가기 전에 ‘얼마나 한옥이 많기에 한옥마을이라고 붙여 졌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갔다. 허나 나의 기대감을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한옥은 그렇게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며, 북촌 한옥마을을 조사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남의 집이라 쉽게 한옥의 안의 모습을 볼수가 없어서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수행평가를 위해 억지로 다니가서 조사를 하였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시라는 것에 부딪치면서 공부에 몰두되었다. 하지만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방황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한옥과 같은 소중한 것을 잊게 되었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아무런 압박 없이 10년전에 느꼈던 초등학교시절 때의 신남과 친구들과 같이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느끼고, 우리나라의 한옥의 우수성을 느끼었다. 느껴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솔직히 한옥 마을이라기에 한옥이 엄청나게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환상적으로 깨뜨렸다. 차녀서 한옥과 양옥이 합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의 모습은 전통한옥과 지어와 동시에 마루와 온돌중 하나로 있대식 한옥은 조상님의 지혜를 빌려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역시 우리나라의 한옥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집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식 한옥의 어떤 한 집안의 모습은 전통한옥과의 방 안과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집 대문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한옥의 대표적 특징 중의 하나인 마루가 있었다. 더운 날에 마루에 누워있으면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을 정도로 시원해진다. 그리고 방안에 들어가 보면 내부의 벽과 창문에는 한지로 도배되어있다. 그러면 한지로 도배 된 벽은 방수가 된다. 현대식 한옥 안에 있는 가구는 현대에 쓰는 해준다. 방 안에 현대식 가구들이 놓여있다. 그런 가구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한옥은 과학적인 사실로 가득차고 있었다.벽은 한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창문은 전통한옥의 창문을 설치함으로써, 그로인해 약간 타임머신을 타고 잇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저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냥 일반 나도 놀랐습니다. 제가 놀란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한옥이 많을 줄을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촌
이번 답사를 다녀온 건축물 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 동에 있는 김용미 설계자가 지은 한성 백제 박물관있었 다. 몽촌토성역에서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오니 세계평화 의 문을 시작으로 올림픽 공원과 이어지는데 중간에 소마 미술관이 위치하면서 한성백제박물관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 되어있었다. 딱 도착해서 보니 오래 시간동안 심사숙해서 공간의 아름다움과 품격과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답게 비정형 외관 모습에 뛰어난 내부공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BIM을 적용하여 경사면의 층별 공간을 구성한 것 같다. 비정형 평면이기 때문에 경사면을 따라 이루어져서 도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면도 많은 것 같았다. 솔직히 전시된 평면을 봐도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진입을 했을 때 건물 외부로 경사면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 외관의 모습을 했다. 비정형 모습이었기 때문에 왠지 시공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한성백제박물관이 위치한 대지는 원래 소나무가 심어진 작고 야트막한 둔덕이었다고 한다. 몽촌토성을 마주하고 선 그 둔덕은 올림픽공원에서 볼 때 둥글게 굴곡진 땅의 형상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었고 가장 높은 부분이 주변보다 13미터정도 높아서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몽촌토성을 조망하기가 좋았기 때문에 박물관 건물을 자연지형 속에 묻어서 건물이 둔덕이 되고 공원이 되며 산책로가 된다면 이상적일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백제의 토성을 생각했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대표적 유적지로서 고구려가 한강 맞은편 아차산에 쌓은 아차산성이나 신라의 산성과는 확연히 다른 축조방식을 보여주었다. 신라나 고구려의 것은 돌로 쌓은 석성인 반면 백제의 것은 흙을 한층 한층 다져서 쌓아올린 토성이었다. 토성의 단면을 보면 흙다짐 층이 수평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흙벽의 판축 된 수평층위가 드러나는 토성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한성백제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건축적 모티브였다. 우리는 박물관에 그 형태가 둔덕이 되기도 하고 토성이 되기도 하는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전시실을 토성 형태로 하여 대지에 있던 둔덕을 둥글게 둘러싸고, 둔덕의 높이는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아래 땅 속 공간을 비워 박물관의 로비를 배치했다. 전시공간을 땅 속에 넣은 것은 건물이 둔덕처럼 자연스런 지형의 연장이 되도록 한 의도 외에도 한성백제의 실체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땅 속에서 발견하는 백제’라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INTERVIEW김용미 설계자가‘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은 고구려나 신라와 확연히 다른 축조방식을 보여주는데, 신라나 고구려는 돌로 쌓는 반면 백제는 흙을 한층 한층 다져서 쌓아 올린 토성”이라며 “흙 다짐 층이 수평으로 켜켜이 쌓아 올라가는 모습 자체가 한성백제를 표현하는 가장 훌륭한 건축적 모티브라고 생각했다” 말씀하셨다. (출처 C.NEWS 홈 > 뉴스 > VIEW > 문화 최지희기자)옥상은,백제 시대의 토성과 둔덕처럼 사람들이 오를 수 있게 되어있다. 토성 형태의 전시실 지붕을 사람들이 산책하며 오를 수 있도록 경사진 형태로 만들어서 단순히 건물의 옥상을 올라간다는 느낌보다는 성곽을 오르고 올림픽공원의 한 부분을 그냥 산책 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산책길의 끝에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둔덕과 같은 높이로서 데크가 있는데 그곳에 서면 바로 건너편에 몽촌토성이 마주 보인다.-건물 중간 중간 삼각형의 창들은 건물 지하까지 햇빛이 들어오게 하는 구조로 에너지절약과 조형물을 좀더 다양하게 연출하도록 돕는다.-옥상의 가장 높은곳에 쉴수 있는 공간과 망원경들이 배치되었는데 바로 이장소가 몽촌토성이 보이는 곳이다.박물관은 대지의 가장 낮은 쪽으로 진입했다. 토성형태의 전시실 아래로 진입하기 위해서인데 박물관 출입구는 두 개 층에 걸쳐 있었다.전시관으로 들어가 중앙을 보면 토성의 실물 모형이 있는데 과감하게 세 개의 층을 이용해서 강한 느낌을 받았고 모형과 공간이 잘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를 보면 자연스럽게 햇빛이 들어오도록 한 것이 다양한 공간을 형성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하1F에서 눈에 띄는곳이 있었는데 그 곳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곳의 모습은 경사면인 지하공간을 이용해서 주차장에서 바로 지하 전시관을 진입할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밑에 비워져있는 공간을 활용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물론 이동간의 편리함에 만들어 졌겠지만 우리는 긴 원통들이 지하에서부터 옥상까지 뻗어나가는 모습에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들이 이 박물관을 구경하면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자연스럽게 중앙 을 중심으로 외부를 감아 올라가면서 전시관을 관람하는 형태로 되어 있으면서 다 관람하게 되면 박물관의 옥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축적 동선이 우리에게는 놀라웠다. 이렇게 한성백제 박물관을 답사하게 되었는데, 평소 많은 건축물을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에 많이 후회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리 건축물을 조사해보고 탐방하면서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공부하는 것이 단순히 건축물 하나가 아닌 구조적 조형적 환경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이번 한성백제문화재는 옛 백제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모티브로 김용미 설계자의 손에 재탄생하게 된 건축물인데, 이렇게 옛날 건축양식과 현대의 건축양식이 만남으로써 향토적이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을 줄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건축물 답사 분석 한성백제 박물관차례 건축개요 건립목적 건축적 특징 - 외관 - 내부개요 위치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88-20 설계자 : 김용미 ( 금성 건축 ) 구조 : 철근콘크리트 구조층수 : 지하 3 층 지상 2 층 대지면적 :14,894㎡ 연면적 :19,423㎡ 주용도 : 문화 및 집회시설 설계사 :( 주 )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감리사 :( 주 ) 정림 건축 ,( 주 ) 신화 ENG,( 주 ) 고라 ENG 시공자 : 건축 , 토목 , 기계 , 조경 : ( 주 ) 포스코 건설 , ( 주 ) 고덕종합건설 전기 : 화성전력 , 현성 ENC 통신 : ( 주 ) 만호건립 목적 서울은 2000 여 년 전 한강 유역에 도읍하였던 한성백제의 수도로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 문화 도시이다 . 그런데 , 중국의 동북공정 ,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등 동아시아 역사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한국 고대사 전문 박물관 건립의 필요가 대두 되었다 . 그렇기 때문에 , 역사적 사료 및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며 홍보 및 교육을 담당하는데 그 중심적 역할을 하고자 하여 건립 되었다 .건축적 특징 / 외관 오른쪽의 사진은 해양국가 한성백제를 상징하는 배모양으로 디자인 한 것인데 , 건물이 비스듬한 것은 떠있는 배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승강기는 돛을 나타낸 것이다 . 한성 백제 박물관은 몽촌토성 모양을 빗대어 나타내었는데 그 모양이 정연하지 않고 튀어 나온 곳이 있으며 토성을 오르듯 경사진 형태의 모습이다 . 실제로 , 김용미 설계자는 “백제의 흙을 한층 한층 다져서 쌓아 올라가는 모습자체를 가장 훌륭한 건축적 모티브로 잡았다고 ” 설명 하였다 .건축적 특징 / 외관 2 공원은 경사면을 따라서 다양한 조경공간을 구성해서 주변의 올림픽 공원을 조망하는 시원스런 전망의 외부공간을 만들었다 . 경사면을 따라서 내부의 천장이 특징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건축적 특징 / 내부 1 1F 2 F Model 3F( 공원 )1. 중앙에는 토성의 실물 모형이 있는데 과감하게 세 개의 층을 이용해서 모형을 둠으로써 강한 느낌을 주며 다양한 공간을 형성 하였다 . 그리고 위를 보면 지하층까지 자연스럽게 햇빛이 들어오도록 함으로써 , 에너지를 절약하고 전시물에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 2. 중앙 홀을 중심으로 외부를 감아 올라가면서 전시관을 관람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 2. 1. 건축적 특징 / 내부 2건축적 특징 / 내부 3 승강기가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음으로 좀더 관람동선에 편안함을 주었다 . 경사면인 지하공간을 이용해서 주차장에서 바로 지하 전시관을 진입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 그리고 그 옆에는 밑에 비워져 있는 공간을 활용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다{nameOfApplication=Show}
실용문 작성법사형제도 (Death Penalty) • 사형제도란 무엇일까 ?? 사형 ( 死刑 , Death Penalty) 은 범죄자 혹 은 범죄자라고 주장되는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 키는 형벌이다 .사형제도 국가 사형 완전 폐지 사형 대부분 폐지 사형을 10 년간 미집행 사형제도 실시사형제도는 과연 옳은 것일까 ?첫 번째로 생명권을 존중해줘야 한다 . 사형수는 엄연히 생명을 가진 인간이고 , 다른 사람들처럼 인권이 있다 .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주면서 평범한 인간으로 대해주면 , 그들도 스스 로 자신이 어떠한 잘못 을 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범죄 예방율이 미미하다 . 국내에서 1997 년 살인사건이 789 건 발생하여 23 명이 처형되었지만 , 1998 년 살인 사건은 966 건으로 오히려 증가하였다 . 캐나다의 범죄율세 번째로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 . 수사와 재판에 임하는 검사나 판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선입관 , 편견 등에 의해 판단을 그르침으로써 , 억울하게 죽어갈지 모르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 그리고 아무리 흉악범이라 도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거둘 수는 없다 .네 번째로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있다 . 사형은 지배자가 자기의 정적이나 반대자를 단숨에 침묵시키고 제거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 1. 인혁단 사건 2. 진보당사건우리들의 결론 악용 , 오판의 가능성을 가진 비인간적인 사형제도를 전 세계적으로 폐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 당신은 사형제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nameOfApplication=Show}
REPORT?교 과 명 : 한옥과 건축디자인의 이해?담당교수 : 한재수 교수님?학 과 : 건축학부?학 번 :?이 름 :1. 창덕궁의 답사이번에 이렇게 북촌 한옥마을을 다시 가게 되었고, 북촌 한옥마을 근처에 있는 창덕궁을 가게 되었다. 아마도 지난번에 우리들이 북촌 한옥마을을 갖다 와서 쓴 답사문이 마음에 안 들어 셨는지 교수님이 다시 기말고사 숙제를 내주셨다. 솔직히 처음에 간 그날은 뭔가 좀 아쉬웠다. 그리고 그 때에는 시험기간이라‘대충 빨리하고, 집에 가서 시험공부하자’라는 생각에 소홀히 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읽어 내셨는지 다시 북촌 한옥마을에 갖다오라고 하셨다. 이렇게 다시 북촌마을을 다시 갖다 와서 그 날의 아쉬움을 날 릴 수 있었으며 교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지난 번에 갔을 때보다 더 열심히 답사를 하였다. 우선 북촌 한옥마을과 부촌 8경을 돌기 전에 창덕궁에 들렀다. 창덕궁에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문이 있다. 그 문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다.돈화문(敦化門)은 조선시대의 하나인 창덕궁의 정 문이다.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린 창덕궁을 광해군 즉위할 때 다시 지어지면서 돈화문도 함께 지어졌 다. 규모는 앞면 5칸 · 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 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 장식하여 짜여진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 5칸 가운데 3칸은 2짝씩 문짝을 달았지만 양쪽 끝 칸은 모두 벽을 쳐서 실제로 3칸만 이용할 수 있다. 돈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함께 조선시대 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세운 문루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그렇게 돈화문을 지나서 면 두 가지의 길이 생기게 된다. 조금만 앞으로 걸어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금천교가 나온다.금천교(錦川橋)는 나쁜 기운이 이 개울을 건너지 못 하게 하여 보호하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풍수적으 로 궁궐 마당의 시냇물과 뒤의 산이 짝을 이루어 배 산임수의 모습을 갖추어져있다. 산예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 이 금천교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산예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어떤 동물이라도 마주치기만 하면 두려워 도망친다고 하는 백수의 왕이다. 그러나 산예의 표정은 무섭지 않고 귀엽다. 다리 아레오 개울물에 잠길 듯 한 곳에는 사자와 거북이가 지키고 있고, 다리의 중간쯤 높이에는 귀면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잡귀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이렇게 금천교를 보면서 약간 아쉬웠다. 왜냐하면 시냇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인공으로라도 물길을 조선하여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금천교를 지나게 되면 창덕궁의 중문인 진선문이 나오게 된다.진선문(進善問)은 앞서 말했듯이 창덕궁의 중문이 다. 돈화문과 인정문 사이에 중대문을 만들어 놓는 것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 인 것 같다.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되며 1908년에 인정전 개수 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착한 말을 올리다.’란 뜻의 진선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억울한 일을 당해 임금님께 직접 자신의 처지를 알려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신무고가 놓였기 때문에 받은 이름이다. 진선문에 들어서면, 멀리 앞쪽으로는 숙장문이 보이고 왼쪽으로 난 인정문을 들어서면 인정전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진선문 안쪽에는 어도가 깔려 있는 넓은 마당이 보였다. 옛날 이 마당에서는 왕의 즉위식이나 각종 큰 행사나 재판을 진행하던 곳이고, 왕이 살았던 시절에는 번잡하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고 한다. 잘 생각해보면 이 마당은 사람이 많았을 때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쓸쓸한 빈 공간이 되었을 것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진선문 오른쪽의 행각은 왕궁을 지키던 군사들 이 있던 곳인 옛 관청인 호위청과, 왕실의 행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던 관청인 상서원이 있다. 이 곳 역시 일제시대때 헐려 나간 것을 1996년부 터 시작된 공사로 복원하였으나 예전의 활기를 잃 고 지금은 창덕궁에서 가장 조용빈 행각만 복원하고 현판만으로 그 자리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이 어도를 지나면 숙장문이 보인다.숙장문(肅章問)은 진선문과 대칭을 이루며 인정문 동쪽에 서있는 문이다. 숙장문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어도가 있다. 이 어도는 중앙부와 양측부로 나누어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부를 양측부 보다 높 여 두 단으로 구성하였다. 이문을 지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이 빈청이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들이 회의실로 쓰던 아주 격이 높은 건물이가고 한다. 그러나 일제시대때‘어차고’로 바뀌어 각종 가마와 자동차를 전시해 놓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빈청을 지나 쭉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낙선재가 나오게 된다.낙선재(樂善齋)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고, 누마루가 깔려 있고, 모두 17칸 반의 규모이다. 장대석 위에 초석을 놓고, 네 기둥을 세웠 다. 기둥은 모기둥이며,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 며, 익공을 끼웠다. 누마루 아래에는 아궁이를 내기 위하여 단을 높였고, 아궁이의 벽에는 작은 돌을 불규칙적으로 붙여놓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다. 또한 정면 6칸, 측면 2칸의 석복헌과 이어져 있다. 석복헌은 낙선재와 수강재를 연이이어져있는 공간이다. 이 곳은 궁 안의 다른 전각들은 주칠, 붉은 색으로 기둥과 주 부재들이 칠해져 있고, 단청도 화려한 반면에, 낙선재는 칠을 하지 않아 사대부 한옥의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색도 없고 단청도 없어서 심심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내부는 어느 전각과는 다른 소소한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소박한 건물로 헌종의 집무실 겸 침전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낙선재를 들어서기 전에 장락문이 있었다.이 장락문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글이며 ‘오래 즐 거움이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장락문을 지나 낙선 재를 보면, 평 소에 선진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헌종의 면모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낙선재의 모습이었다. 누마루 아래에는 깨진 얼음 문양인 빙렬문양으로 장식해 두었는데, 이것은 아궁이에서 의미를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분위기이지만 섬세한 장식을 통해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특히 다양한 창살 문양은 빛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기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과학적임을 느꼈다.낙선재의 안의 내부를 보면 온돌방과 누마루사이에 동그라한 모양 인 원형창의 모습이 보인다. 이 원형창은 창의 역할인 동시에 통 로, 즉 문의 역할도 같이 함으로써 공간을 나뉘는 역할을 하였다. 안 에서 밖으로 나와 담장을 보았다. 담장에는 거 북이 등 껍질 문양인 귀갑문양으로 장식을 하 였다. 난 이것을 불고 장수를 귀원하기위해 이 문양을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이렇게 낙선재까지 보고 나니 교수님이 왜 창덩궁 안에 있는 낙선재를 보고 오라고 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낙선재를 보고 나니 우리나라의 한옥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낙선재에 들어섰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들에게 다가오시면서 낙선재에 대해 알려 주셨다. 알려주신 것 중에 하나가 이 낙선재 안에 있는 원형창은 우리나라에 없는 문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청나라에 들어온 문화라고하시면서, 이 낙선재는 청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조화스럽게 지은 한옥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는‘ 역시 교수님이 낙선재를 보고 오라고 하신 이유가 다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2. 북촌한옥마을의 답사그렇게 우리들은 창덕궁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갔다. 조금만 걸어가 보니 북촌 한옥마을이아 는 표지판이 보였다. 전에 갔을 때는 이것을 발견하니 나는 이번 답사는 제대로 다녀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 리들은 15분 정도 걸어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걸어갔다. 그 길은 지난번에 왔던 길이었다. 그 길을 다시 걸어가다가 무심코 아래를 보았다. 아래의 바닥에는 북촌 1경이 적혀 있었다. 나는 놀랐다. 여기가 북촌 1경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난번에 이 길을 그냥 무시하고 그냥 지나 쳤었는데... 나는 북촌 1경이 적혀있는 자리에 서서습이 보였다. 내가 옛날에 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냥 지나치고 갔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북촌 1경을 발견하면서 한옥마을을 조사하러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앞을 걸어가다가 한옥으로 만들어진 카페를 발견 하였다. 카페의 모습은 네모나 벽돌로 지어져있었다. 그리 고 창문은 우리나라 한옥의 창문을 만들고, 지붕은 창덕궁 같은 곡선의 지붕의 모습은 아니지만 세모난 모양으로 기 왓장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현대의 집 같은 분위기가 드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한옥의 분윅기가 물씬 나왔다. 나는 이것을 보고 현대식 한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안의 내부를 보았다. 안의 내부모습은 정말로 대단했다. 안이 모습은 하얀 한지로 벽을 도배를 하였다. 매우 세련되어 보이면서 우리나라 한옥의 느낌이 났다. 하얀 한지로 벽을 도배를 한 이유는 비를 박기 위해서 이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집을 지으고, 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하얀 한지로 벽을 도배를 하였다. 나는 이런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너무나도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이렇게 훌륭한 지혜를 가진 조상님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안에는 식탁과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식탁과 의자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식탁과 의자를 보고, 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부엌의 모습을 보았다. 부엌은 보통 집처럼 싱크대, 전자레인지와 가스레인지 있었다. 그 것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참 신기했다. 이렇게 한옥 답사를 하고 나니 우리나라의 한옥은 소박하면서 세련된 모습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한옥의 위대함과 과학적인 사실을 알고나니, 나는 우리나라 한옥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한옥이 지금보다 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외국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집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나는 이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건축과 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