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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소논문) 현대사회에 필요한 목회상담의 요소
    (소논문) 현대사회에 필요한 목회상담의 요소
    현대사회에 필요한 목회상담의 요소담당교수 O O OOOO대학교목회상담O O O현대사회에 필요한 목회상담의 요소Ⅰ. 서론 ------------------------------------------------------------------- 11. 연구동기 및 목적 ------------------------------------------------------ 12. 연구방법 및 범위 ------------------------------------------------------ 1Ⅱ. 현대사회의 현실 ----------------------------------------------------- 21. 엄마를 찾는 사람들 --------------------------------------------------- 22. 저문 빈들에 있는 사람들 ---------------------------------------------- 33. 용서가 어려운 사람들 ------------------------------------------------- 4Ⅲ. 현대인을 위한 목회상담 --------------------------------------------- 61. 낯선 이를 환대하라 --------------------------------------------------- 62. 상실과 애도를 경험하라 ----------------------------------------------- 83. 해석에서 공감으로 나아가라 ------------------------------------------ 9Ⅳ. 결론 ----------------------------------------------------------------- 10손운산, 「따뜻한 경험 흐뭇한 이야기」 (KMC, 2013)홍영택, 「가족 목회」 (KMC, 2015)안석모, 「욥을 위한 변명」 (두란노서원, 2014)Ⅰ. 서 론1. 연구동기 및 목적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영혼 돌봄과 영혼 치서 과거 엄마와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 치료에서 과거의 엄마를 다시 경험하기 위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퇴행(退行)이 일어난다. 퇴행의 자리에서 좋은 엄마를 찾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려고 한다. 따뜻한 경험, 좋은 경험을 다시 하기 위해서다.왜 초라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는가? 초라함을 느끼지 않도록 따뜻하고 소중하게 대우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따뜻한 엄마를 만나는 곳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엄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잘못하면 무섭게 혼내는 아버지와 같다. 엄마의 돌봄이 그리워서 찾아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 안에 신과 접촉할 수 있는 내적 구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을 찾지 못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신적 경험을 줄 대상을 만들거나 찾고 그것에 매달린다. 그들은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하고 도박에 중독된다. 신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을 향하고, 바라보고, 신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존재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은 엄마 경험에 달려 있다. 나를 품어 주고 사랑해 주었던 좋은 엄마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영원자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목회자는 교회를 따뜻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목회자는 엄마처럼 따듯한 집을 만드는 사람이다. 교회가 따뜻한 집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찾으러 교회로 올 것이다. 돌봄은커녕 학대받고 거절당한 아이들, 따뜻한 경험이 없어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아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교회를 찾아올 것이다. 희망과 용기를 잃은 젊은이들,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낙오된 장년들, 여생을 홀로 가기에는 그 길이 너무 멀고 외롭게 느껴지는 어르신들이 찾아올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먼 나라에서 이 땅을 찾아온 이주민들이 따뜻함이 그리워서 교회를 찾아올 것이다. 교회에서 따뜻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거친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갈 것이다. 그들은 영원람들, 절망하는 사람들, 쉼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예수님은 저문 빈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고 용기와 힘을 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과 소통하셨다. 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싸주셨다. 그 때 그들은 여전히 상황은 암울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다시 희망을 가져 보자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목회자의 역할은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라기보다 먼저 그 사람의 절망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절망하는 사람은 아직도 무엇에 대한 희망은 보이지 않지만 목회자와 함께 다시 희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3. 용서가 어려운 사람들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피해 입은 사람의 삶은 송두리째 망가진다. 피해자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 망가진 모습으로 인한 수치심 등으로 힘들어한다. 억울한 피해로 생긴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관계, 직업 선택, 신앙생활 등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가 너무 커서 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처로 인한 고통은 쉽게 잊어지지 않는다. 설령 잊어버린다고 해도 언제든지 불쑥불쑥 기억나서 고통스럽다. 또 피해를 입은 사람은 보복하려고 한다. 피해 입을 당시에는 힘이 없어서 당했지만, 힘을 키워 보복할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보복은 피해에 대한 해결이 되지 못한다. 보복은 다른 보복을 낳음으로 보복이 악순환 되기 때문이다. 망각과 보복은 피해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 아니다. 용서는 망각이나 보복과는 다른 방식의 대응이다. 그러나 피해로 망가진 자신을 회복시키고, 증오심과 복수심을 다스리고, 가해자에 대한 보복을 포기해야 하는 용서는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피해자를 도와주는 사회 문화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용서를 실천하기 어렵고 피해자가 고통가운데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교회나 사회 피해자는 그런 분위기에 떠밀려 용서를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원한 감정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용서도 하지 못하는 죄인이 되는 심정이 된다. 뿐만 아니라 힘이 없어 피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용서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깊은 좌절감에 빠질 수 있다.용서와 화해의 공동체인 교회가 용서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회가 용서에 대하여 말할 때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용서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 피해 입은 사람은 자신의 아픔과 억울함을 돌볼 겨를도 없이 용서하라는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피해자는 아직 용서하고 싶지 않고 또 용서할 힘도 없는데 용서까지 강요받게 되면 혼돈에 빠진다.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은 여전히 남아 있고, 용서를 하려고 해도 용서가 되지 않는 자신이 믿음 없는 사람으로 느껴져 더더욱 고통스러워진다. 그래서 때론 용서하지 않았으면서도 용서한 척하기도 한다.용서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돌보고 피해자의 상처가 치료되도록 도와야 한다. 피해자에게 용서할 마음과 능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피해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용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부터 치료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도 우선 피해자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의 상처가 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Ⅲ. 현대인을 위한 목회상담1. 낯선 이를 환대하라성서에는 낯선 이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아담과 이브는 정든 에덴동산을 떠나 살았다. 가인은 놋 땅을 배회하며 살았다. 족장들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 족장들은 낯선 이, 나그네, 혹은 떠돌이였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이로 살아갔지만, 하나님의 은 살고만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교회에 가면 더 춥고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왠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나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상담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밝은 얼굴로 저를 맞이해 주시고,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상담이 끝나면 다음 주에 만나자고 손 흔들어 주셨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꽁꽁 얼어붙은 부분이 조금씩 녹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만나자는 약속이 그렇게도 정겹게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기다려 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일주일 동안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보다 더 진하고 아픈 눈물이 납니다. 왜일까요?환대는 어둡고 추운 곳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과 같다. 상처가 환대의 햇살을 받으면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고, 억눌렸던 서러움이 눈물로 바뀐다. 이때 비로소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환대받은 사람은 환대에 힘입어 자신의 삶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다. 환대받은 사람은 환대를 오래 오래 기억하면서 나그네 길을 계속 갈 수 있다. 환대는 환대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도 축복이고 은총이다. 환대는 상대를 변화시키면서 우리를 변화시킨다.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우리는 타자를 환대함으로써 주체가 된다”고 보았다. 주체는 사유나 결단이 아니라 타자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찾아온 타자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얼굴은 신체 부분 중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쉬운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가릴 수 있어도 얼굴은 가리지 못한다. 타자는 벌거벗은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레비나스는 그 얼굴이 우리에게 호소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타자의 얼굴의 호소를 듣고 응답할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낯선 이를 환대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얼굴의 호소에 응답할 때 낯선 이는 더 이상 낯선 이가 아니라 우리를 찾아온 귀한 손님이 된다. 그리고 우리
    교육학| 2016.03.16| 12페이지| 2,000원| 조회(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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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데미안 [독후감,서평]
    데미안 [독후감,서평]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그는 동네 놀이 집단에 끼기 위해 도둑질을 했다는 허풍을 프란츠 크로머에게 떨게 된다. 이 부분은 순수함이란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 같다. 나도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도둑질을 한 적이 있었다. 동생과 함께 골목상점 앞을 지나다가 100원짜리 딱지를 사려는데 주머니에는 100원밖에 없었다. 그걸로 딱지 하나를 사고 나니 동생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딱지 하나를 훔쳤다(훔쳤다기보다는 대놓고 가져갔다). 그것을 본 주인아저씨는 다음부터는 이런 짓 하지 말라는 한마디와 함께 딱지를 그냥 가져가게 해주셨다. 그 당시에는 동생을 위한답시고 당당히 한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 다시 떠올리니 굉장히 부끄럽다. 왜 부끄럽게 느껴질까?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 그랬듯이 아마도 이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하나님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어두운 생활을 하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새로운 해석으로 선과 악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데미안이 말한 카인과 아벨은 성경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데미안의 말에 따르면 카인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아벨은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다. 나름대로 말이 되는 것 같다. 카인은 아벨을 죽일 생각을 했던 만큼 용감했다. 또한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반문할 만큼 지혜로웠다(기 보다는 용감했다). 싱클레어가 이 말에 반한 이유는 무엇일까? 뒷골목의 어두운 모습으로 빠져들게 되는 싱클레어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발견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데미안이 말했던 카인과 같이 정당한 방법으로 죄를 행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벨을 죽인 것은 분명히 죄지만 그 죄는 용감함과 지혜로움으로 포장된다. 마찬가지로 싱클레어 또한 금지된 구역에 들어섰다는 용감함으로 죄를 포장하고 싶었을 것이다.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왜 점점 데미안을 닮아갔을까? 정신이 육체를 이기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싱클레어에게 힘이 된 것은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데미안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싱클레어가 얼마나 데미안을 의지했는가를 알 수 있다. 나라면 이런 육체적 환란 속에서 누구를 의지 했을까... 예수님 한분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나의 친구들이나 교회 목사님들 또한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정말로 힘들 때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독후감/창작| 2014.03.26| 1페이지| 1,000원| 조회(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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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에 나타난 그리스의 신학관 [감상문]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에 나타난 그리스의 신학관 [감상문]
    율리시즈라는 영화를 통해 그리스인들이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 내가 인상 깊게 본 몇 가지가 있다.1. 율리시즈가 트로이를 점령하고 그 성의 신관에게 저주를 받는 장면-이 장면에서는 인간이 신의 대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정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신이 직접 움직이기 보다는 인간을 통해 저주를 내리고 축복을 내린다.2. 저주를 받고나서 웅성거리는 장면-모두가 신의 저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듣는 장면을 보니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누구나 믿는 보편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저주를 두려워하는 병사들과 아랑곳하지 않는 율리시즈의 모습은 서로 대조된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는 하지만 그 힘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3. 넵튠(신)의 자식이 등장하는 장면-그리스인들은 신과 인간이 관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것은 그리스로마신화의 헤라클레스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신은 인간과 같은 모습을 지녔으며 번식도 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4. 율리시즈가 넵튠의 자식인 외눈박이 거인과 맞서려고 할 때 그의 부하중 하나가 넵튠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라며 두려워하는 장면-이 장면에서는 신의 힘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정반대의 모습인 신의 힘과 맞서려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인간보다 힘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대적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5. 항해 중에 파도가 치니까 넵튠신이 분노했다고 외치는 장면-자연을 움직이는 존재가 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농사가 풍년이면 신의 축복이라 여기고 가뭄이나 산사태,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신의 분노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자연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4.03.26| 1페이지| 1,000원| 조회(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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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히파티아의 관점에서 본 아고라  [감상문]
    히파티아의 관점에서 본 아고라 [감상문]
    히파티아의 관점으로 본 아고라오전 수업에서 중력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듣는 학생은 별로 없어 보였다. 하나같이 물체에 집중할 뿐 지구의 중심에 대해 궁금해 하는 녀석들은 없는 것 같다.수업이 끝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책을 보려하는데 제자인 오레스테스가 나에게 대쉬했다. 무식한 녀석 같으니라고... 내가 손만 내밀면 넘어갈 줄 아는가보다. 나는 그에게 여자보다는 음악에 더욱 집중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둘러대고 도서관을 나왔다.도서관을 나오는데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에게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드리며 같이 걸었다.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무척 재밌어 하셨다.집에 도착해서 아버지에게 평소 궁금했던 문제들을 물어봤다. 어떻게 227이 16이 될까? 목욕을 하면서도 계속 고민했다.아버지께서는 잠깐 아고라 광장에 가봐야겠다고 하시며 나가셨다. 나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의 도움이 없으니 더 힘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고민하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보니 어느새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불태웠다며 집안에 있는 기독교를 믿는 종들에게 화를 내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를 말려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채찍을 꺼내 드셨다. 나는 차마 볼 수가 없어 자리를 피했다.나는 아까 매를 맞은 종 다보스가 걱정이 되어 약을 들고 내려갔다. 다보스의 등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약을 다 발라주고 떠나려는데 기이하게 생긴 조형물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 처럼 생겼다. 다보스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를 본 따 만든 조형물이었다. 세상에!! 내 몸종에게 이런 놀라운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다. 내일 당장 나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 다보스가 직접 만든 것이라 하면 제자들에게도 도전이 되겠지?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새로운 조형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내가 원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분쟁만 일으키는 꼴이 되었다. 얘들이 정말 다보스만큼 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오후에는 공연을 봤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오레스테스가 나오더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개적인 구애를 했다. 너무 창피했다. 나중에 이에 대해서 확실하게 못박아줘야겠다.다음 수업시간이 되기 전에 나는 미리 나의 생리혈을 손수건에 받아 놓았다. 이정도면 오레스테스에게 확답이 되겠지?수업시간이 되고 나는 준비하였던 손수건을 오레스테스에게 건네며 내 입장을 밝혔다. 오레스테스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분노하며 교실을 떠났다. 약간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다시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올림피오스가 나를 찾는다고 긴급하게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나는 서둘러서 세라피움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올림피오스는 높은 곳에 서서 기독교의 폭동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기독교와의 전쟁을 선언하는 발언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를 부른 이유가 이것인가? 전쟁에 동조하라고? 이래서는 안 된다. 도대체 왜 전쟁을 원하는 거지? 그깟 조롱을 참지 못하고 전쟁이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알면서도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 당장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그때 올림피오스가 옆에 서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다. 자세히 보니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대가를 치러야죠.” 세상에.... 아버지마저도 전쟁을 원하시다니....나는 우리 제자들만큼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스승된 도리로서 제자들만은 지켜야한다. 그래서 다보스가 칼을 집으려는 것을 말렸다. 하지만 아까 나갔던 오레스테스가 칼을 집는 것은 막지 못했다. 내가 너무 심했던 것인가? 왠지 모르게 나에게 반감을 가지고 칼을 집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때 아버지께서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셨다. 어찌된 일이냐 물으니 기독교도들이 한 짓이라고 한다. 나는 어서 아버지를 치료해드렸다.얼마 되지 않아서 기독교도들이 때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 잠갔다. 올림피오스는 기독교도들을 모두 옥에 가두라 명령했다. 인질로 삼으려는 것 같다. 문제는 내 제자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제자들이 갇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제자를 가두려거든 나부터 가두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오레스테스가 다가왔다.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이어 그의 말을 듣고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누구라도 내 형제를 다치게 하면 절대로 가만 안 둬!” 내가 가르친 것들이 전부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레스테스에게는 고맙다고 말해주었다.그렇게 도서관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 아버지께 가보니 주사위 점을 치고 계셨다. 계속 해서 재앙의 징조라며 중얼거리시는 아버지에게 주사위 점 좀 그만치라고 말씀드렸다. 저런 주사위에 운명을 맡기시는 아버지가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졌다. 예전보다 많이 허약해지신 것 같다.밤이 되어서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있는데 오레스테스가 질문해왔다. “제가 그리 무모한가요?” 그때 무언가 떠올랐다. 주전원이고 부전원이고를 떠나 별들의 움직임은 단순해야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말해봤다. “별들은 단순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랬더니 성벽위에 앉아계시던 분이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이야기 하셨다. 그래. 사실은 지구가 움직이고 있는 걸지도 몰라. 다시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반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봤더니 다보스였다. 그는 만약 지구가 돌고 있다면 우리가 옆으로 쏠릴 것이고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다보스는 종의 신분이긴 하지만 매우 명석한 아이인 것 같다. 이제는 나도 어떤 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다음날 아침이 되니 장관이 와서 모든 폭도들을 사면한다는 황제의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도서관과 세라피움을 개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모두 파괴하고 불태울 것이 뻔하다. 나는 어서 가서 중요한 서적들을 챙겼다. 그렇게 서둘러 챙겨서 나오는데 다보스가 무기를 꺼내들고 반대편으로 가는 것을 목격했다. 다보스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나는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가서 붙잡아 끌고 오고 싶었지만 오레스테스의 손에 끌려 어쩔 수 없이 서둘러서 빠져나왔다.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불태워졌다. 저 중요한 지식들이 모두 불태워지다니...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다음날 서적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보스가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일어났는데 손을 보니 칼을 들고 있었다.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보스는 나를 덮치려 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다보스가 이런 짓을 하다니... 꼼짝없이 당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다보스가 흐느꼈다. 죄책감을 느낀 것 같다. 나는 다보스에게 큰 실망을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그런 일들이 있은 후 나는 더욱더 지식에 매진했고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오레스테스는 장관이 되었다. 나는 최근 들어서 태양이 중심이라는 것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에서 그 증거를 찾아냈다. 그것을 오레스테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배위로 불렀다. 배는 움직이지만 그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는 항상 같은 위치에 떨어진다. 놀라운 일이지만 오레스테스는 시큰둥해 했다. 하긴... 그는 학구파는 아니었지... 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별의 밝기가 어떻게 해서 달라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양이 중심이라면 지구는 항상 원을 그리며 이동할 텐데 어째서 별의 밝기가 달라지는 것이지? 주전원을 그려야 하나? 그러면 프톨레마이오스와 뭐가 다르지? 아... 머릿속이 복잡하다.다음날.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잠 하는가 싶던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의 싸움이 다시 벌어졌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또다시 생겨났다. 아...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오레스테스를 찾아가 이야기 해봐야겠다.
    독후감/창작| 2014.03.26| 3페이지| 1,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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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체스코 [독후감,서평]
    레오 의 대사 중 “하느님을 찾지만 않는다면 지금쯤 마냥 노닥거리면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텐데······.” 에서 나는 어떤지 생각해보게 됐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믿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무언가 그리스도인으로써 꺼림칙한 일들을 맡게 될 때 마다 났다.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의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또한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레오 의 하나님을 찾는 방식을 읽게 된 나는 기겁했다. “제가 하느님을 찾는 방식은 태만입니다.” 태만이 하나님을 찾는 길이 될 수 있다니······. 이렇게 생각하며 뒷부분을 읽는데, 깨닫게 된 바가 있었다. 너무나도 게으른 나머지 할 일 다 미루고 누워만 있다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레오 의 황당한 설명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도 바빠서 생각하며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 반면 레오 는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상반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 생각하기를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가끔씩 게을러지는 것도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모든 사람에겐, 하물며 무신론자일지라도 그들의 살과 비곗덩어리 안에는 저마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을 겁니다. 그 살과 비계를 헤치고 나오는 것은 바로 당신을 오라고 했던 그 신일 것입니다." 레오 가 프란체스코에게 해준 말들 중 하나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모든 사람들안에는 하나님이 계실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죄책감 또한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해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에 아무거리낌 없이……. 내가 먼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다.프란체스코가 꿈을 꾸고 나서 찾은 첫 성당에서 클라라를 만난다. 밤마다 당신의 노랫소리를 들었다는 클라라의 말에 프란체스코는 더 이상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클라라가 왜냐고 물으니 다른 창밑에서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누구의 창 밑이냐고 물으니 하느님의 창 아래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내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사랑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만을 사랑하는 태도다. 프란체스코는 더 이상 클라라를 위해 노래 부를 수가 없었다. 더욱 사랑하는 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면 세상을 향하던 내 노랫소리는 하나님을 향하게 될 것이다.아시시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프란체스코는 레오에게 같이 가자고 말한다. 레오는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뛰어내리러!" 간다고 답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날개가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다. 그것을 깨닫고 뛰어 내릴 줄 아는 믿음이 프란체스코에게는 있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셨음을 깨닫고, 뛰어내리는 믿음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시간이 갈수록 프란체스코에게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조건 없이 모두를 품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의 손길로 모두를 어루만지셨던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 믿는 사람 모두에게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아름다웠던 그의 삶에 비해, 그가 가르치려던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다. 그 스스로를 사자의 발톱에 잡혀 빠져나올 수 없는 토끼의 모습에 비유 했듯이 그는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산을 내려온 그에게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와는 정 반대였다. 고기에 굶주린 늑대들처럼 구원에 굶주린 사람들은 짐승과도 같았다. 도대체 그들은 구원을 무엇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너무나도 한심한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또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축복에 눈이 멀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만 바라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정말로 날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신데 그 사랑을 몰라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프란체스코는 그저 구원을 위한 소유물일 뿐이었다. "그는 우리 것이오! 우리의 것! 우리 소유란 말이오!" 라 외치는 한 군중의 모습에서 가슴 아픔을 느꼈다.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배 하는 자리에 앉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군중의 모습에 비춰져 보였다. 평생 동안 사랑을 외치며 살아왔던 프란체스코의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너무나도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독후감/창작| 2014.03.26| 2페이지| 1,000원| 조회(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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