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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과 한국의 건국신화 비교 분석 평가A+최고예요
    일본과 한국의 건국신화 비교 분석-영화 에서 나타난건국신화를 중심으로-건국신화란 국가의 기원을 설명한 신화로, 국가의 삶의 근거이자 규범으로 작동한다. 건국신화는 나라마다 다른 형태로 존재하며 국가의 성립과 맞물려 신화를 만들어내어 지배자를 신성화하는 것이다. 일본의 건국 신화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신화 속의 존재가 현재와 이어지는 연결고리로서 종교적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된다. 또한 영화 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바탕이 되는 일본 신화와 한국의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 중 하나인 연오랑 세오녀의 연관성으로 보아 일본의 건국신화와 한국의 건국신화는 유사점이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레포트에서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일본과 한국의 건국신화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며 분석한다.본 레포트의 진행은 일본의 건국신화를 알아본 후 일본의 건국신화의 특징을 파악하고 한국의 건국신화를 고조선, 고구려, 신라로 나누어 알아본 후 한국의 건국신화의 특징을 파악한다. 그 후 일본과 한국의 건국신화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서술하였다.Ⅰ. 일본의 건국신화태초에는 광활한 혼돈의 바다만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천상계에서는 이 혼돈의 바다를 살펴보던 신들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남매를 비롯한 남신과 여신을 만들어 냈다. 신들은 이자나기에게 세상을 창조하라며 창을 주었는데, 이자나기가 그 창을 혼돈의 바다에 넣고 휘저었다 꺼내자, 창 끝에 바닷물이 몇 방울이 응결되어 다시 떨어져 오오야시마(大八州)가 되어 현재의 일본 열도가 되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혼슈우(本州)·시코쿠(四?)·큐우슈우(九州) 등의 다른 섬들을 낳고 이후 여러 신들을 낳게 되는데 그 중 불의 신을 낳다가 이자나미는 죽게 된다. 이자나미는 죽어서 황천국(요미노구니(黃泉?))에 가게 되는데 이자나기는 이자나미가 그리워 황천국에 찾아 가게 된다. 이자나미를 만난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데리고 지상으로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황천국을 빠져나갈 때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이자나미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황천국을 빠져나오기 전에 이자나기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흉측한 모습의 이자나미가 있었고, 이자나기는 놀라서 얼른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부정한 몸을 씻기 위해 목욕을 하였는데, 왼쪽 눈을 씻자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는 태양의 여신이 나왔고, 오른쪽 눈을 씻자 ‘쓰쿠요미노 미코토’라는 달의여신이, 마지막으로 코를 씻자 ‘스사노오노 미코토’라는 바다의 남신이 나왔다. 스사노오노 미코토는 맡겨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도 않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기만 하여 이자나기에게 쫓겨난 뒤 누나인 아마테라스를 찾아가 난동을 부리다가 지상계로 추방되었다. 스사노오는 이즈모로 내려가 머리가 여덟 개 달린 큰 뱀을 죽이고 나라를 세웠다. 그 직계 후손인 오쿠니누시 노가미는 야가미 히메와 결혼하여 다른 형제들이 물려준 나라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한편 천상계에서는 지상 세계를 천상계 신의 자식이 다스려야 한다고 하여, 오쿠니누시의 아들에게 지상계를 이양할 것을 요구하며 니니기노 미코토를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니니기는 옥과 거울 그리고 검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와 국토 이양을 하고 그 후에 여러 신을 낳았는데, 그의 직계 증손자 중에 와카미게누노 미코토가 일본 초대 천황인 진무가 되었다.Ⅱ. 일본 건국신화의 특징일본의 건국신화의 특징은 첫째로 천손신화(天孫神話) 즉, 하늘을 통치했던 절대자의 후손이 내려와 건국했다는 이야기의 신화이다. 신들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를 만들어내고 이자나기가 목욕을 하면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더불어 다른 여러 신들이 탄생하였고 이들은 하늘의 자손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신본주의 사상이다. 천손신화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보다 하늘의 신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근본이 됨을 인정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취한다. 마지막으로는 삼종신기이다. 아카테라스는 자신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에게 세 가지 종류의 신기를 주어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데 이때 세 가지 종류의 신기는 옥구슬과 신검, 거울이다. 옥구슬은 풍요를 상징하고 신검은 강한 무력을 상징하며 거울은 종교의례에 사용된다.Ⅲ. 한국의 건국신화(1) 고조선의 건국신화옛날에 환인의 아들 가운데 환웅이 있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구했다. 환인은 환웅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하여 천부인 세 개 즉,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을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고 여러 신들과 세상을 다스렸다. 이 때 곰 한마리와 호랑이 한마리가 같은 굴에 살았는데 이들은 사람이 되고싶어 하여 환웅이 쑥 한심지와 마늘 스무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의 모습을 얻으리라"고 했다. 그러나 참을성 많은 곰만이 삼칠일을 견뎌 사람이 되었고 범은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는 혼인할 자리가 없었으므로 늘 단수 밑에서 아기를 배게 해달라고 빌었고 이에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했다. 단군이 평양에 도읍하여 이를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고 그 후 도읍을 아사달로 옮겨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2) 고구려의 건국신화시조 동명성왕의 성은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이다. 이에 앞서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지내 후사를 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금빛 개구리 모양을 한 아이를 만나게 되고 왕이 기뻐하며 곧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고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그 뒤에 재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요전날 천제께서 제게 내려와 이르시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 나라를 세우고자 하니 너희는 이곳을 피해 가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오곡을 기르기에 적당하니 나라를 세울 만한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고는, 왕에게 권해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그 옛 도읍지에는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가 그곳에 와 나라를 세웠다.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하백의 딸 유화였다. 유화는 해모수가 자기를 유인해 사통하고 가버렸고 부모는 허락없이 결혼한 것을 꾸짖고 귀양살이를 보냈다고 하였다. 금와가 이상하게 여겨 방 안에 가두었는데 햇빛이 그녀를 비추는지라, 그녀가 몸을 끌어 피하면 햇빛이 다시 쫓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인해 태기가 있더니 알 하나를 낳았는데 왕이 알을 버려 개?돼지에게 주었더니 짐승들이 먹지 않았고, 다시 길 가운데 버렸더니 소나 말이 피해 밟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들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이 알을 쪼개려 했으나 깨뜨릴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머니가 알을 감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남자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주몽은 재능이 남달리 뛰어났는데 특히 활쏘기에 능하였다. '주몽'이라는 이름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금와왕에게는 일곱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주몽보다 능력이 뒤떨어졌다. 주몽이 왕좌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한 큰아들이 금와왕에게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 불길하다며 주몽을 죽이라고 아뢰었고 이에 주몽은 위협을 느껴 오이?마리?협보 등 세 사람과 함께 벗을 삼아 엄시수에 이르러 물을 건너려 했으나, 다리가 없었다. 주몽은 뒤쫓아오는 군사들에게 붙잡힐까 두려워 하였는데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어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져 버려 쫓아오던 기병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후에 주몽은 부하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고구려를 건국하였다.(3) 신라의 건국신화어느 날 고허촌의 촌장 소별공은 양산 기슭의 나정 옆 숲 사이에서 백마가 꿇어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에 그곳으로 다가가자 말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고 큰 알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이 알을 깨뜨리자 남자아이가 다나왔는데 그 용모와 풍채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이 아이를 동천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키자 아이의 온 몸에서 빛이 나고 온갖 날짐승들이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사람들은 '천자(天子)'가 내려왔다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남자아이가 태어난 알이 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성을 박씨로 하였고 이름은 혁거세라고 지어 세상을 빛으로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다.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는 10여 세가 되자 보통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품성과 재주를 보였다. 이에 진한의 6부 촌장과 백성들이 그를 높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박혁거세왕이 세운 신라는 처음에는 서라벌, 서나벌 혹은 사라, 사로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Ⅳ. 한국 건국신화의 특징고조선 건국신화의 특징은 첫째로 천손신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환인이 환웅에게 인간세계를 살피라 명하여 지상계로 내려와 다스리게 하였다. 두 번째로는 삼종신기이다. 환웅은 천부인 세 개(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를 가지고 지상세계에 내려오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곰과 호랑이는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며 쑥과 마늘을 먹게 되는데 이는 결국 동물보다 인간이 뛰어나며 다른 존재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뜻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5.07.20| 5페이지| 2,000원| 조회(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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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근대골목투어 소감문
    대구 근대골목투어 소감문답사 일시 : 2015년 4월 10일답 사 지 :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지난 2015년 4월 10일, 대구 근대골목투어를 다녀왔다. 2코스 근대문화골목은 동산청라언덕-3.1만세운동길-전통문화체험당-계산성당-이상화, 서상돈 고택-뽕나무골목-에코 한방 웰빙 체험관-제일교회-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영남대로-종로-진골목-화교협회의 코스로 구성되어있다.동산청라언덕에 먼저 도착하면 언덕 위로 선교사 스윗츠, 챔니스, 블레어의 주택이 보인다. 선교사 주택은 정해진 관람시간에 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박물관 내부에는 전시품들과 선교사들이 실제로 잠을 잤던 곳이 있으며 과거의 교실 등이 재구성되어 있었다. 동산 선교사 주택 양식은 그 시대상에 맞추어 보았을때 굉장히 서구적이었는데 지붕은 기와로 되어있어 동양과 서양의 모습이 멋스럽게 어우러져있었다.선교사 주택 옆에는 제일교회가 있는데 제일교회는 대구 최초의 기독교회이다. 그러나 이곳에 위치한 제일교회는 신식으로 새로 지어진 신제일교회로, 구 제일교회는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신제일교회와 선교사 주택 사이의 길로 내려가면 3.1만세운동길 90계단이 나온다. 내려오는 길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며 왼쪽 벽면에는 근대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3.1만세운동길을 내려와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전통문화체험관이 나온다. 현재의 전통문화체험관은 예전 구암서원인데, 구암서원은 달성 서씨의 문중서원으로 조선 현종6년에 서침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현 대구초등학교의 서남쪽 언덕인 연구산에 숭현사를 세우고 선생을 제향하였다. 숙종 44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가 주변 일대가 도시화되면서 서원 내의 숭현사와 묘정비, 비각 등은 북구 산격동의 연암공원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의 전통문화체험관에는 서원의 출입문인 경양문과 강당, 제수청 건물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전통문화체험관은 내부에는 활쏘기 등 각종 체험시설을 할 수 있고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영이 되는데 시내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숙박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다음으로 계산성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가톨릭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의 현대식의 건축물들과는 달리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지만 성당에서 보이는 세월의 흔적이 예스러운 느낌을 전해주며 아름다움을 느꼈다. 미사시간이 아니어서 아름다운 성당의 내부를 관찰할 수 있었지만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어 오래 둘러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계산성당을 나와 항일문학가 이상화 고택으로 향했다. 근대골목을 투어하기 전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읽고 갔는데 고택으로 가는 길에 시들이 적혀있어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다. 이상화 고택은 매우 소박한 모습이었으며 일제시대의 집이라 그런지 내부는 일본식 주택과 비슷한 형태로 되어있었다. 고택의 내부에는 이상화 시인이 사용했던 생활용품들과 책들이 보존되어있었고 내부 전경을 통해 소박한 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이상화 시인의 고택 바로 옆에는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가 위치해있다. 계산예가에서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대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전시해놓은 전시관도 있다. 전시관에서는 해방 직후 대구에서 발견된 문예지, 잡지 등과 대구의 수많은 문학가와 음악가들을 알 수 있었는데 이상화, 박태준, 현제명 등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되어 새로웠고 기억에 새겼다.영상관의 정면에는 서상돈 고택이 위치한다. 서상돈은 1907년 대구가 가장 기념하는 사건인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인물이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찾고자 나라 빚을 갚자는 모금활동인 국채보상운동은 합의적 운동으로 중심인물인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였다. 그 시절 서상돈은 엘리트, 여론 주도층이었음에도 애국심이 뛰어났으며 기업가들이 서상돈의 정신을 이어받아 상공회의소에서 서상돈을 기념한다. 서상돈 고택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이상화 고택보다 더 소박하고 아담한 모습이었다. 이상화, 서상돈 고택을 둘러보며 두 인물의 그 형태는 달랐으나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인물들의 모습이 엿보여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뽕나무 골목을 지나 에코 웰빙 한방 체험관으로 향하면 에코전시실, 체험관 등이 있고 체질검사 등 다양한 구경거리가 전시되어 있으며 3000원을 내고 전통차를 마시면 안마 체험 티켓을 주기도 한다. 전통차를 마시는 찻집 바로 앞에는 대구 구 교남 YMCA회관이 위치한다. 이 건물은 근대골목투어 코스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은 일제 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의 공간이었으며,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서 사용된 역사적 장소이다.다음으로 제일교회는 대구 최초의 기독교회로, 동산청라언덕에 위치했던 제일교회의 원래 건물로 1908년 처음 건물이 지어졌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내부를 개방한다고 하는데 평일에 가서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신제일교회에 비해 건물이 전통적이고 분위기가 멋스러웠다. 제일교회의 바로 옆에는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이 붙어있었고 박물관에서는 약령시의 과거의 모습부터 현재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박물관을 나와 조금 걷다보면 현대백화점 건물 뒤에 영남대로가 있다.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한양까지 이어져있는 도로로, 영남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까지 가는 과거길로 유명했다고 한다. 영남대로를 지나면 종로가 나오는데 종로는 대구에 읍성이 있었을 때 읍성 중앙을 지나는 거리였고 조선시대 때 대구의 최대의 번화가였다. 현재는 다양한 음식점, 술집 등이 자리하여 과거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자기를 파는 가게나 한복집을 보면 전통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과학| 2015.07.20| 4페이지| 1,000원| 조회(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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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양동마을 답사 보고서
    경주 양동마을 답사 보고서답사 일시 : 2015년 5월 3일답 사 지 : 경주 양동마을한국의 역사마을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씨족마을로, 조선시대 초기의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세계유산이다. 두 마을은 세대를 걸쳐 내려오는 전적과 고문서, 문집 보관과 더불어 역사적인 건축물이 존재하며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무형유산이 세대를 이어 전승하고 유교사회에 기반한 전통 씨족마을의 고유한 공간 구성을 완전하게 보전하며 풍수 조건에 잘 맞게 입지한 이상적인 마을이라는 종합적인 가치들로 인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특히나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씨족의 집성촌으로 외형적 요소만 유지되고 이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문화나 생활양식, 유교전통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양동마을은 마을 자체로써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경주의 유서깊은 반촌마을이다.2015년 5월 3일, 역사 깊은 양동마을의 답사를 실시하였는데, 양동마을의 탐방길은 총 7길로 구성되어있으며 양동마을은 마을 내부가 넓어 한 코스 당 짧으면 20분에서 긴 코스는 2시간이 걸리기도 하므로 몇 개의 탐방길만 둘러보기로 하였다. 양동마을 탐방길의 구성은, 먼저 탐방 1길은 하촌 방면인 안락정 → 이향정 → 강학정 → 심수정의 길, 탐방 2길은 물봉골 방면인 무첨당 → 대성헌 → 물봉 고개 → 물봉 동산 → 영귀정 → 설천 정사의 길, 탐방 3길은 수졸당 방면으로 경산 서당 → 육위정 → 내곡 동산 → 수졸당 → 양졸정의 길, 탐방 4길은 내곡 방면으로 근암 고택 → 상춘헌 → 사호당 → 서백당 → 낙선당 → 창은 정사 → 내곡정의 길, 탐방 5길은 두곡 방면으로 두곡 고택 → 영당 → 동호정의 길 → 탐방 6길은 향단 방면으로 정충비각 → 향단 → 관가정 → 수운정의 길, 탐방 7길은 대표 가옥으로 서백당 → 무첨당 → 향단 → 관가정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답사 일정은 처음 양동마을에 들어서서 6길인 정총비각 → 향단 → 관가정 → 수운서의 내용은 답사지의 자료들과 발표에서 준비한 자료들 및 문헌 등을 참고하여 서술하였다.본 보고서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양동마을을 살펴보자면, 양동(良洞)마을은 한국 최대 규모의 조선 시대 동성 마을로 경주 손(孫)씨와 여강 이(李)씨 두 가문이 50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온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1984년 12월 24일에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0년 7월 31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역사를 인정받았다. 마을 안에는 국보 1점, 보물 4점, 중요민속문화재 12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점, 기념물 1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1점 등 모두 22점의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가 있다.양동마을은 앞서 말했듯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월성 손씨는 양민공 손소가 처가마을에 살면서부터 현재의 양동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때 당시에는 유교 질서보다 혈연 관계를 중시하던 시기로 처가살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손소의 외동딸에게 이번이 장가를 들어 마찬가지로 처가살이를 시작하며 그의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여기서 이 둘째아들이 바로 회재 이언적이다. 이러한 연유로 양동마을은 손소의 후예인 월성 손씨의 가문과 이언적의 후예인 여강 이씨 가문이 집성촌인 씨족마을이 되었다.양동마을의 주요인물인 손중돈과 이언적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조선 중기의 문신인 경절공 우재 손중돈은 김종직의 제자이며 1489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 봉교를 거쳐 관리를 감찰하는 여러 관직을 지낸 사람이다. 1506년 중종반정 후 강직한 성품과 뛰어난 학문으로 왕에게 신임을 얻었고 상주 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로 승정원 좌승지, 사헌부 대사헌, 경상·전라·충청·함경도 관찰사, 공조·예조참판, 공조·이조판서, 의정부 우참잔 등을 지냈다. 중종 때 청백리로 뽑혔고 경주 동강서원과 상주 속수서원에 모셔졌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은 12살 때부터 외삼촌인 손중돈의 근시대, 근대, 현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조선시대인 15세기에 양동마을에는 오씨와 장씨가 살았다고 전해졌는데 양민공 손소가 처가살이를 하면서부터 현재의 양동마을이 되었다. 그 후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인 16세기부터 구한말까지는 손소와 손중돈이 주요 관직을 지내면서 이언적이 사망한 뒤 종묘에 모셔졌고 공자의 문묘에 모셔지는 영예를 얻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이병장 손엽, 병자호란 때의 순절한 손종로 등의 인물이 배출되며 양동마을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근대시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는 일제로 인해 강제 동원과 해방 이후에는 양반과 노비 사이의 사상 갈등, 6.25 전쟁 등으로 쇠퇴기에 접어 들게 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는 농촌 공동화로 인해 양동마을의 주민들도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 189호로 지정하였으나 이로 인한 많은 제약으로 인구는 줄어들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마을 경관 복원을 위해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이후 주차시설, 안내소를 설치하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고 제방 공사와 민가 정비 등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7월 31일에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정충비각 양동마을의 탐방 6길은 정충비각으로 시작된다. 입구에서 따라 올라가면 정충비각이 바로 나타나는데 정충비각은 조선 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당시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 바쳐 싸우다 죽은 손종로와 그의 충성스런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비각 안에 있는 비문은 대사헌을 지낸 양한당 이정규가 지었고 글씨는 정충필이 썼다. 이 비각은 마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양동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초가집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다. 이 비각의 형태는 앞과 옆의 지붕이 팔작지붕의 형태여서 옆의 다. 향단의 구조는 사랑채의 주문을 열면 안채가 하나 더 숨어있는 형태이다. 사랑채가 하나인 다른 집들과는 달리 향단은 사랑채가 두 채나 있으며 그곳에서 부터 이어진 안채는 어머니의 방이다. 이처럼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여 동생이 어머니를 돌보기 편하게 하였고 외부의 시선을 피해 즐길 수 있는 별도의 대청 등을 설치하여 어머니를 위하여 집을 설계했음을 알 수 있다. 관가정 향단에서 조금 내려오면 바로 관가정이 위치해있다. 관가정은 보물 제 442호로, 마을 초입의 물봉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관가정은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 손중돈의 옛집이다. 관가정의 뜻은 '농사짓는 광경을 내려다 보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누마루가 있는 정자이다. 보통 집들의 대문과 행랑채가 연결된 것과는 달리 이 집은 특이하게도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관가정의 구조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고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다. 집의 배치는 중문을 중앙에 두고 서쪽에 사랑채, 동쪽과 북쪽에 안채를 두었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장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막아, 집의 앞쪽을 탁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관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러나 1981년에 보수하면서 전면에도 담장을 쌓고 일각 대문을 내어 본래의 조망이 많이 가려졌다. 관가정의 계단을 올라가면 태극문양 두 개가 그려져있는 문이 보인다. 답사를 갈 당시에는 문이 닫혀있어 문 안쪽까지 구경을 하지는 못했으나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였으며 정충비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정충비각의 지붕 특색이 확연히 보인다. 수운정 탐방 6길의 마지막 코스인 수운정은 정충비각, 향단, 관가정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관가정에서 왼쪽 방면으로 걸어가면 수운정이 위치한다. 수운정은 중요민속자료 제 80호로, 우재 손중돈의 증손자 청허재 손엽이 세운 정자로 이름은 '수청운허(水淸雲虛: 물처럼 맑고 구름처럼 허무하다)'에서 따서 붙물을 지은 기법과 배치 방법들이 독특하여 조선 전기의 살림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서백당의 구조는 ㅡ자 모양 대문채 안에 ㅁ자 모양 안채가 있고 사랑채 뒷쪽 높은 곳에는 신문과 사당이 있다.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덞 八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人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사랑방은 침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ㄱ자 모양으로 놓여 있는 사랑채 뒤편 정원에는 수백 년 묵은 향나무가 있다. 대개 사랑방은 큰 사랑방 대청 건너편에 작은 사랑방을 두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집은 작은 사랑방을 모서리 한쪽으로 두어 방과 방이 마주하지 않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대청 끝에서 작은 사랑방까지 툇마루를 두어 일종의 마루 통로로 쓴 점 역시 특이하다. 무첨당 무첨당은 서백당에서 내곡을 앞으로 넘어오면 육위정 앞에 위치한다. 무첨당은 보물 제 411호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 종택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이 건물은 회재 선생의 큰 제사(대제)를 지내는 큰 마루(제청)로 이용되고 있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로 지어졌으며 제청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이다. 무첨당의 구조는 평면은 ㄱ자 모양이고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였다. 앞면 5칸, 옆면 2칸인데 건물 내부의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의 앞면 기둥 사이와 누마루의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고, 누마루의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양동마을은 위의 주요 건축물 이외에도 다양한 주요 건축물들과 기타 건축물들이 있는데 다음의 심수정, 낙선당, 수졸당, 경산서당, 근암고택, 두곡고택, 사호당고택, 상춘헌고택이다.심수정은 중요민속문화재 제 81호로 여강 이씨 문중에서 세운 정지아디. 조선 명종 15년쯤에 처음 지었다고 알려진 심수정은 현재 양동마을 내에 있는 정자는 철종 때 화재로 행랑채를 빼고 다 타버려 191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심수정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다.
    사회과학| 2015.07.20| 9페이지| 2,000원| 조회(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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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적 분석 영화 서평 (미디어심리학)
    1. 영화 ‘에비에이터’ (2004)‘에비에이터’는 실존인물인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의 첫 부분은 하워드의 어머니가 하워드를 씻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하워드의 어머니는 하워드에게 깨끗함을 세뇌시키고 이를 통해서 하워드의 강박, 결벽증의 시작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이 후, 하워드는 손을 씻은 후 늘 수건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옷에 묻은 먼지를 떼어주고는 자신의 손수건을 버리는 등의 결벽 증세를 드러냄으로써 하워드에게 강박장애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하워드의 강박장애는 미친 듯이 손을 씻거나 병실에서 주스를 만드는 것을 직접 보는 등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세가 더욱 심해지는데, 이는 하워드의 영화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과 비행기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하워드에게서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자 하워드의 정신적인 충격이 깊어져갔고 이 때문에 하워드의 강박 증세 또한 악화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후반부로 치닫으면서 결국 하워드는 세상과 단절하며 살아가려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박 행동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그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2. 영화 ‘싸이코’ (1960)‘마리온’은 어느 낡은 모텔로 들어갔다가 샤워 도중 괴한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마리온의 언니인 ‘라일리’와 마리온의 연인 ‘샘’, 사립 탐정인 ‘아보가스트’ 세 사람은 행방불명된 마리온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보가스트는 같은 모텔에서 노파에게 살해당한다. 라일리와 샘 또한 노파에게 습격당하고, 두려움에 떨던 라일리가 피해 들어간 다락방에서 노파의 시신을 발견한다. 결국 노먼은 경찰에게 잡혀가고 노먼이 다중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 마리온을 살해한 괴한, 아보가스트를 살해하고 라일리와 샘을 습격한 노파는 모두 동일인물인 노먼이였다. 이처럼 노먼은 자신이 살해한 어머니를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정체성에 혼란을 만들어냈다. 노먼에게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 다른 말로 다중 인격성 장애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 두 가지 이상의 인격,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범행을 저지를 때에 노파의 모습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이 아님을 부정하는 노먼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노먼의 웃음은 본인의 완전한 인격이 아닌 살인을 저지른 또 다른 인격의 웃음으로 내비춰진다.3. 영화 ‘세븐파운즈’ (2008)‘팀 토마스’는 자신이 낸 사고로 인해 죽은 7명의 사망자들을 위해 훗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벤 토마스’로 위장하여 7명의 삶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팀은 7명에게 새 삶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던 중 ‘에밀리’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에밀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팀의 계획은 에밀리에 의해 흔들렸지만 곧 에밀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결심을 하게 되고 결국 모든 준비를 끝낸 후 자살을 하게 된다. 팀의 자살은 7명의 사망자들에게 대해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한 행위를 뜻하기도 하지만, 죄책감으로 인한 자신의 우울장애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팀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팀에게는 장애 증상이 명확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영화 도입부에서 전화를 끊고 괴로워하는 팀의 모습에서 정신 분열증과 우울 증세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에서 정신 병리현상의 일부분을 관찰할 수 있다.4.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1989)‘닐’은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꿈인 학생이다. 그러나 닐의 아버지는 닐이 의사가 되기를 원했고, 닐은 아버지의 권위에 억눌려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키팅’ 선생이 학교에 새로 부임하게 되고 창조적인 교육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키팅 선생에게 영향을 받은 닐은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연극을 준비하는데 닐의 아버지가 연극을 보고 간 후, 아버지는 또 다시 닐에게 연극을 반대한다. 그 후,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느낀 닐은 아버지의 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닐의 자살은 본인 내부의 원인 보다는 외부의 원인, 즉 자신을 억압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사회적인 원인에서 오는 좌절감이라고 볼 수 있다. 키팅 선생으로부터 받은 용기와 부모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감이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무참히 짓밟혔고 이로 인한 절망, 공허함, 스트레스, 좌절감 등이 모두 맞물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따라서 닐의 자살은 외부적 원인에서 비롯된 현실에 부딪힌 좌절감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5.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모스’는 우연히 총격전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현장을 보고 그 속에서 200만 달러를 발견하게 된다. 그 후 모스는 그 돈을 찾으려는 살인마 ‘안톤 시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시거는 모스를 쫓는 도중 만나는 사람 모두를 이유 없이 살해한다. 시거에게 살인이라는 것은 우리가 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인을 저지른다. 이처럼 시거는 공감능력이 부족하며 양심, 죄책감 등이 결여되어 있고 사회의 법규에 순응하지 않는 반사회적 성향을 띄고 있다. 또한 슈퍼마켓 주인과 시거의 대화에서 시거는 주인과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시거가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에 섞일 수 없는, 사회에 결여되어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를 통해 시거는 B군 성격장애 중 하나인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지니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간성이 결여된 정신 병질자의 특성도 함께 볼 수 있다.6. 영화 ‘레이’ (2004)‘레이’는 어린 나이에 시각장애인이 되어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며 세상에 맞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타고난 음악적 감각으로 그는 훗날 천재적인 가수가 되었고 레이의 삶은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레이는 눈앞의 이익을 좇으며 세상에 찌들어갔고 동료를 따라 마약을 접하게 된다. 레이는 마약을 통해 어릴 적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자신의 트라우마와 앞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면서 점점 마약에 중독되어 갔다. 결국 레이는 가정을 꾸린 후에도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내인 ‘델라’와의 충돌하고, 자신 때문에 마약을 시작하게 된 애인인 ‘마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의 약물 중독자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혹은 주어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게 되고 결국에는 약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레이 또한 트라우마와 암흑이라는 공포, 외로움이라는 현실에 약물에 중독되었지만 마지의 죽음과 자신의 음악을 위해 현실을 깨닫고 극복하게 된다.7. 뷰티풀 마인드 (2001)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수학 분야에서 천재인 ‘존 내쉬가’ 암호해독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소련의 스파이들에게 피습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해 정신분열을 나타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러한 존 내쉬의 모습에서는 편집성 정신분열증을 볼 수 있는데 소련의 스파이들이 자신을 미행한다는 망상을 통해 피해형 망상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찰스’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환각증세 또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에게 나타나는 정신분열은 아마 본인의 천재성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처럼 천재적인 두뇌는 필요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정신분열을 일으킨다고 생각된다. 또, 내쉬의 정신분열의 원인은 내쉬가 암호해독 임무에 대해 단순한 일이 아닌 막중한 업무라고 생각하여, 내쉬가 암호해독 임무에 대한 과대망상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독후감/창작| 2014.03.30| 4페이지| 1,500원| 조회(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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