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살아간다는 것-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를 읽고 ?과목명 : 담당교수: 손윤권 교수님경제학부 1학년제출자 : 20131766김명선제출일 : 2013. 6. 19. 수2013. 03. 27. 수요일오늘 글쓰기 시간에 교수님이 우리 보러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라는 과제를 주셨다. 아. 책. 걱정스럽다. 책을 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조별과제도 많이 있고 주말에 있는 MT, 그리고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선배들과의 약속도 있는데 과제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솔직히 짜증난다. 오늘까지 자서전을 열심히 써서 냈는데, 또 과제라니. 교수님께서 열두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익숙한 제목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내가 정말 책을 안 읽고 살았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다. 다른 동기들이 빌려가기 전에 얼른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야겠다.2013. 03. 28. 목요일교수님이 주신 열두 권의 권장 도서 중 나는 점선뎐을 빌렸다. 시, 공간을 왔다 갔다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심오한 내용과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지만, 한국어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멘붕이었다. 우석이가 임윤택이 쓴 에세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라는 책이 읽기도 쉽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고 했다. 도서관에 가보니 이미 책을 다 빌려가서 없었다. 나는 결국 중앙 서점에 가서 임윤택의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를 샀다. 슈퍼스타 K를 열심히 봤던 나는 임윤택이라는 사람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슈퍼스타 K에서 그룹 미션 때 살아남기 급급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양보하는 미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사회의 형태인 서바이벌식의 프로그램에서 그의 배려를 보며 나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도 서로를 견제하며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며 조금씩 맞춰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임윤택이라는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궁금해졌다. 나는 임윤택의 책을 망설임 없이 샀다.책은 자신의 어렸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쉽게 여섯 개의 소재로 나누어 풀어 나갔다. 어제 바로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법을 배운 터라 흥미로웠다. 오늘 그가 말하는 그의 춤에 대한 열정과 노래에 대해 읽었다. 그의 열정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솔직히 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잘 와 닿지 않았다. 내가 그처럼 열정적인 분야가 없기 때문일까? 아님 그처럼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해서일까? 부럽긴 하였지만, 공감되는 부분은 없어 좀 아쉬웠다.하지만 노래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많이 공감하였다. 노래하는 것을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노래와 춤을 결합시켰을 때의 시너지를 생각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임윤택을 보며 나는 고등학교 때에 수학을 잘 하지 못해 만날 수학문제를 푸느라 정신없었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똑같은 수업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해 몇 번이고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서 물어봤었던 나는 결국 끈질긴 싸움 끝에 A라는 점수를 받았고 그때의 기쁨을 잠시 회상했다. 나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기쁨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나는 임윤택의 에세이를 보며 공감했다. 같은 상황, 같은 시간에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한 것이다.이 책 참 매력 있다. 재밌지만, 다른 과제가 나를 또 기다리고 있다. 내일 마저 읽어야 되겠다.2013. 03. 29. 금요일학회 모임이 끝나고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임윤택의 에세이를 마저 다 읽었다. 어제는 재밌었던 책이 오늘은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주제는 바뀌지만 그의 경험담이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큰 굴곡이나 깨달음을 준 순간은 몇 번 없을 텐데, 그것을 사십 개의 소주제로 나누려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좋은 책인 것 같은데 좀 아쉽다.하지만 오늘 읽었던 부분은 정말 좋은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그가 Love, 즉 그의 인연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인간관계의 필요한 기본적 소양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어떤 인간관계가 좋은 관계인가, 또 그 관계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다. 나랑 정말로 똑같이 생각한 부분은, 사람과 사람은 소통이 있어야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나고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눠야 더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왜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이루어진다. 그 사람의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좋은 인간관계의 바탕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그것을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한다. 내가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려야 그 사람도 나를 이해해 주고 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 수 있다. 나 혼자 “나 잘났소.” 라는 식으로 뻣뻣하게 있으면, 다가올 사람들은 드물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 이야기를 하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비로소 좋은 인간관계의 시작이다.비슷한 생각도 있었지만, 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멘토에 대한 부분이었다. 임윤택은 이외수 선생님과 같은 그의 멘토께 조언을 듣는다고 한다. 나는 멘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디선가 읽었던 기사 때문에 멘토를 삼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 기사는 롤 모델, 혹은 멘토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고 그 때문에 그들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롤 모델을 정하는 것은 자신을 그 모델에 맞추어 너무 한정짓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나는 무조건 성공한 사람만이 멘토의 자격이 주어진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는 구지 성공한 사람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멘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서평마르기 위한 다이어트- 『다이어트의 여왕』을 읽고 ?과목명 : 담당교수: 손윤권 교수님경제학부 1학년제출자 : 20131766김 명 선제출일 : 2013. 6. 19. 수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가 시급하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는 여름에만 시급한 것은 아니다. 새해가 되면 거의 모든 여자들은 다이어트를 제 1의 목표로 삼는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다이어트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닌 꼭 필요한 존재로 우리 삶에 자리 잡고 있다. 뚱뚱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분명 게을러서 뚱뚱 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아무리 마른 사람이라도 옆구리에 살이 붙으면 ‘내가 요즘 자기 관리를 못했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보기에 비정상적으로 마른 사람들까지도 “나 살 빼야 돼”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다. 뚱뚱하면 죄가 되는 현대 사회에서 작가 백영옥은 “과연 살을 빼고 예쁜 몸매를 갖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이어트의 여왕』을 통해 묻고 있다.작가는 다이어트라는 소재로 현대인들의 성공해야한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행복한가를 얼마나 간과하여 사는지를 꼬집고 있다. 다이어트의 강박관념을 느끼는 현대여성과는 다른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뚱뚱한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정연두’가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방송작가인 친구 인경의 설득과 권유로 서바이벌 형식의 다이어트를 하는 ‘다이어트의 여왕’에 출연하게 된 정연두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해간다. 연두의 시점에서 ‘다이어트의 여왕’에서 일어난 일들을 풀어가고, 그녀의 과거 일들을 이야기 중간 중간에 집어넣음으로써 주인공의 행동과 선택을 독자들이 납득하기 쉽고 이해할 수 있었다.또한 ‘다이어트의 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내는 데에서 끝내지 않고 그 후의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더 많은 주제를 전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는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많이 겪는 고충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여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다이어트라는 소재에서 더 나아가 거식증이라는 강박에 의해 생기는 병을 다룸으로써 성공에 대한 심한 압박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여유를 가져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소설이 인터넷에서 연재 되었다가 책으로 엮였기 때문인지 빠르게 변하는 시점들을 한권의 책으로 읽었을 때에는 혼란이 오는 상황도 있었다. 한 챕터 안에서도 대 여섯 번의 시점이 바뀌고 친구 시후를 만나러 가다가 갑자기 옛 남자 친구였던 정민과의 과거를 생각하다가 한참 지나 장이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시후를 다시 만나는 등의 전개 방식이 다소 따라가기 어려웠다. 이러한 부분은 ‘다이어트의 여왕’에서 나온 이후에 연두가 혼자 생각할 시간이 길어진 후인 책 후반부에 더 나타났다. 때문에 책에서 너무 여러 소재를 벌려 놓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구두나 고양이 안나의 같은 소재는 충분히 신선하고 독자의 시선을 끌기 좋았지만 소재를 풀어나가는 면에 있어서 다소 긴 감이 있었다. 백영옥 작가가 로맨스 소설로 유명한 만큼 최 피디와의 관계 또한 연인으로 발전 할 거 같은 복선을 여러 군데 써 놓아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시켰지만 그저 출연자를 끔찍이 챙기는 피디에서 그쳤다는 점에서 너무 급하게 마무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 피디라고 저장되어 있던 이름을 최준영으로 바꾸면서 끝내기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좀 더 진지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요즘같이 거의 모든 분야의 서바이벌 형식의 티비 쇼가 제작 될 때, 다이어트의 여왕은 비단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그런 서바이벌 쇼에 나왔던 사람들의 그 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할 때는 10장까지 밖에 없었지만, 책으로 펴내면서 더한 11장에서 밝혔던 충격적인 결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인간의 이중성을 전하고 있다. “어쩌면 나 역시 그들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혹독한 실패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처참한 실패가 깊은 위로가 되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중략) 나 역시 내가 저지른 악행을 어딘가에 매장시키고 조용히 덮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다이어트의 여왕’에 참가 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 극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악이 존재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악의 원인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자서전내 손톱은 자랄 사이가 없었다과목명 : 담당교수: 손윤권 교수님경제학부 1학년제출자 : 20131766김명선제출일 : 2013. 6. 19. 수나는 손톱을 먹는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오독오독 씹히는 손톱은 최고의 간식이다. 여섯 살 때부터 나는 손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금은 습관적으로 손톱을 뜯는다. 손톱을 먹으면 오는 효과는 두 가지이다. 불안할 때 평화와 안식을 주는 것이 그 첫째요, 가끔가다 피가 나면 내가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그 둘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불안할 때, 겁이 날 때, 생각이 많아질 때, 무언가에 불만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항상 손톱을 물어뜯었다.내가 제일 처음 기억하는 손톱 맛은 여섯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아빠 모두 일하셨던 그 당시, 나는 영어 학원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접했다. 비록 세 살 때부터 놀이방이라는 사회생활을 하였지만, 직접적으로 공부를 가르치는 학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키가 크고 눈이 파랗고 머리가 빨간 영어 선생님은 내가 알 수 없는 말을 하였고, 큰 그림과 카세트테이프로 들을 수 있었던 교재에도 알 수 없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입에다 갖다 댔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손톱을 만난 날이었다. 낯선 공간과 알 수 없는 언어 사이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내 자신 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었다. 영어로 파란 눈의 빨간 머리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 졌을 때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는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서 이사를 하여 새로운 동네에 가게 되었다. 유치원 졸업식이 며칠 안 남은 상태에서 이사를 한 나는 다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하였다. 유치원 버스를 탔는데 전혀 모르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유치원 버스를 타는 것이 무서웠다. 예전에 내가 함께 버스를 타고 다녔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어서 빨리 유치원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그날 집에 와서 유치원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울었지만, 일하시느라 바빴던 부모님은 그다음날도, 그다음날에도 버스에 태웠다. 처음으로 맘에 들지 않는 일도 해야 된 다는 것을 배운 순간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지만 선택에 여지가 없었던 나는 버스로 통학을 하였고, 그때부터 나의 입에는 항상 손톱이 물려있었다.열두 살 여름, 나는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처음 타 보는 장시간 비행기와 기내식, 공짜로 주는 음료수와 간식은 나에게 설레는 기분이 들게 하였지만,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 간다는 것은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뉴질랜드에 가서 가디언이 딱히 집안일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혹여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책잡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나는 뉴질랜드라는 나라에서도 나만의 소소한 재미를 찾았다. 뉴질랜드에 사는 교포들이 하는 한국말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서너 살 때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산 교포들은 나랑 나이가 같은 친구들 이었지만,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나는 항상 그들의 어눌한 발음을 따라 하면서 그들을 놀리곤 했다. 그들 역시 나의 어눌한 콩글리시 발음을 따라 하며 언제쯤 뉴질랜드인이 될 거냐며 놀리곤 하였다. 그렇게 나는 뉴질랜드에 적응해 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글렌모건이라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처음엔 추운 겨울이었지만 금방 여름이 된 뉴질랜드의 날씨는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날씨였다. 간식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이 어울려 운동장에 나가 공놀이를 하였다. 여자아이들은 교실에서 수다를 떨고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는 한국 초등학교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기분 좋은 설렘을 주었고, 이를 통해 나는 여자고 남자고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처음 체험한 일이었던 거 같다.익숙해질법한 뉴질랜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내가 뉴질랜드라는 환상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모두 초등학교의 최고학년인 6학년이 될 준비를 마쳤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나의 6학년 때의 기억은 희미하다. 내가 기억하는 6학년 우리 반은 변태, 싸이코 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50대 중반 정도 되신 남자 선생님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선생님은 남자아이들이 하는 짓궂은 장난에도 웃으며 넘어가셨던 것 같다. 우리 반이 변태, 싸이코 반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이런 선생님의 안이한 태도에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야한 농담들도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은 서슴지 않고 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심한 장난은 한 여자아이의 가방을 뒤져서 여성용품을 가져가, 이건 뭐할 때 쓰는 것이냐며 짓궂게 놀린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여성용품을 뜯어서 어떻게 하는 거냐며 시범을 보였고, 가방의 주인인 여자아이가 울어서 비로소 그 장난은 멈추었던 기억이 있다. 남자아이들은 그저 성에 대한 호기심을 표출하고 있었는데 나와 다른 여자 친구들은 그 상황을 웃으며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상황이 싫으면서도 한 번도 선생님께 건의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려서였을까. 아님 선생님이 남자였기 때문일까. 내 편 같지 않았던 선생님께는 이러한 건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터무니없는 장난을 치는 남자 아이들이 싫었고, 지켜보고도 웃어넘기시는 선생님도 싫었고, 아무 말도 못하는 여자아이들, 내 자신도 싫었다. 그때도 계속 손톱을 뜯어 먹었다.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가 끝났을 무렵, 나는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민. 필리핀이라는 생각 한 번 해보지 못한 나라로 우리가족이 이민을 가게 되었다. 부모님은 미국 드라마에서만 보던 멋지고 큰 학교의 사진이 담긴 카탈로그를 내 눈앞에 보여주며 여기가 내가 다닐 학교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뻤다. 그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활동적인 성격이라 새로운 곳에 곧잘 적응 하였고, 뉴질랜드에 다녀온 경험이 있었기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조차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어리석었던 것 같다. 앞으로 닥칠 고난과 역경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2학년 기말고사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과 나는 이제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즐거움으로만 가득 차 처음으로 손톱을 길렀다. 많이는 아니지만, 분홍색 살 위에 하얀색 손톱이 보일 정도였다. 내 생에 처음으로 길러본 손톱이었다. 언제나 다시 중학교 친구들과 연락해서 그 때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언제나 내가 부르면 다시 모여앉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필리핀에 간 지 2주일 만에 나는 나의 손톱들을 모조리 뜯어 먹어버렸다. 들어가려던 학교는 인원이 꽉 차서 대기번호 8번이라는 큰 숫자만 받을 수 있는 상태였고, 한국처럼 교통이 편하지도, 인터넷이 빠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집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내 맘대로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 근처에 친구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인터넷 전화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처음 전화하였을 때만큼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 친구들에게 섭섭함과 배신감을 느꼈다. 필리핀이 싫었다. 내게서 모든 익숙한 것들을 빼앗아 간 것 같은 필리핀은 강도 4의 태풍으로 그나마 있던 전기와 수도마저 끊어 놓았다. 3일 동안 물과 전기가 먹통이었고, 아껴 먹으려고 사 두었던 냉면은 냉장고가 안 되는 탓에 3일 동안 삼시세끼 먹었고, 내 둘째 동생은 아직도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변에 또래친구가 없었던 그 당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해본 시기였던 것 같다. 아무런 전자기기가 통하지 않아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고, 두서가 있는 글이라기보다는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두었다. 한시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불안했던 한국생활을 접고, 나 혼자서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들이는 법을 이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짧은 손톱을 더 짧게 만들며 뜯어먹던 우기가 지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지 대기번호의 기간이 6개월이 지났다. 마침내 2007년 1월, 8학년 2학기로 Brent International School Manila의 학생으로 당당히 입학하였다.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첫날 사귄 같은 반 친구 지원이와는 죽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 음식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취향이 비슷했다. 일주일 만에 우리는 단짝친구가 되었고 나는 학교에 익숙해 져갔다. 지원이와 금방 친해지고 다른 반에 있는 한국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나는 유학생들이 어울려 다니는 것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었는데 내가 막상 유학을 가보니 말이 통하고 생각이 비슷한 한국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게 되었다. 또한 공부도 상위 5%는 모두 한국인인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한국인이 우수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모두 공부를 잘하니 나도 자연히 그들을 따라 숙제도 하고 시험도 공부했다. 조금씩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익숙해 졌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서 길거리에 있는 깡통처럼 곧게 서있는 곳이 간이 남성용 화장실이라는 충격에서 나는 조금씩 벗어났다. 손톱이 자랄 틈이 생긴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