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상 , 하의 집필 동기와 내용 상 -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전달하기위해서 개인의 성장과 신변활동에 관하여 하 - 50 년간의 기록을 거울삼아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임시정부와 주면인물 관해 상세히 기록上 .1 출생과 성장 (1 세 ~17 세 ) 1876 년 출생 . 이름 김창암 집안사람들이 갓을 못쓰게 된 사연을 듣고 공부를 결심 과거 낙방과 함께 매관매직의 타락을 목격하고 ‘ 관상 ’ 을 공부함 “ 마음 좋은 사람 ” 이 되기로 결심上 .2 동학의 세계 (18 세 ~19 세 ) 포동 오옹선과의 만남 . 동학 입도 이름 ‘ 김창수 ’ 로 개명 ‘ 아기접주 ’ 동학농민군 2 차 봉기에 참여함 . ‘ 팔봉접주 ’ 로 선봉에 섰으나 실패上 .3 스승 고능선 (20 세 )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에 몸을 의탁 고능선을 만남 . 가르침을 받음 ( 서양을 배척 ) 고능선의 제안으로 청국기행을 함 . 김형진과 만남 청국 기행 후 고능선의 장손녀와 약혼하나 파혼됨 .上 .4 인천감옥 (21 세 ~23 세 초 )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길에 단발령과 삼남의병의 소식을 들음 빙산에 갇혀 죽을뻔함 치하포에서 일본인 쓰치다를 살해 몇개월 후 인천감옥으로 투옥 고문속에서도 일본을 비난하고 관리들을 꾸짖음 독서 ( 서양에 관하여 호의적이 됨 ) 장티푸스 , 교수형上 .5 승려가 되다 (23 세 ~24 세 ) 탈옥과 도피생활 늦가을에 마곡사에서 중이 된다 . 법명 원종 24 세 봄 금강산으로 공부하러 감 부모님과의 재회 . 귀향 . 고능선 선생과의 논쟁 아버지가 돌아가심上 .6 기독교와 교육 활동 (27 세 ~34 세 ) 여옥과 맞선을 보고 약혼하나 , 1 년 후 병사 최준례와 결혼 기독교 입문 , 종교와 교육활동에 매진하게 됨 학교설립 , 구국운동 전개 등 활동 후 신교육 추진 황해도 각 군을 순회하며 계몽운동 전개하는 등 교육실천 1909 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 관련하여 1 달간 체포上 .7 또 한번의 감옥생활 (35 세 ~40 세 ) 안중근의 사촌 안명근 백범을 찾아옴 안명근이 체포됨에 따라 함께 체포됨 5 년간의 형살이 인천감옥 김구 ( 金龜 )- 김구 ( 金九 ), 연하를 백범으로 고침 백범 - 백성들의 애국심 백범의 백은 백정이라는 뜻이고 범은 범부라는 뜻이죠 . 백정은 소돼지를 잡는 일을 하는 천한 사람들을 말하고 범부는 가난하고 힘이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말하죠 . 김구선생은 백정같이 천하고 범부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기만큼 애국심과 지식을 갖게 해야 한국이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먼저 자신의 호부터 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인 백범으로 정한 거죠上 .8 상해로 망명 (44 세 ) 1919 상해로 망명 상해 임시정부의 경무구강이 됨下 .1 상해 임시정부 1919 국내외 일치 - 사상이 복잡해지고 갈등발생 상하이 임시정부 위기 1923. 국민대표대회 in 상해 . ‘ 잡종회 ’ 창조파 vs 개조파 vs 현상유지파 무정부상태 편지정책 - 미국 . 하와이 , 멕시코 , 쿠바의 동포들에게 성금 요청下 .2 이봉창과 유봉길 의거 (1932) 1931 한인애국단 이봉창 - 두 개의 폭탄 . 일본천황 사살 실패 그러나 세계 전파 따라 금전적 지원 광범위 - 중 . 일간의 감정 악화 계기 중국 신문 ‘ 불행히도 일본 국왕이 ..’ - 상하이참변 - 기념식 : 홍구공원 윤봉길 - 홍구공원에서 쾌거 (4.29 사건 )-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 김구 현상금下 .3 피신과 유랑 상해에서 탈출 . 1 년간 유랑 임시정부 상해에서 항주로 옮김下 .4 민족운동 전선으로 복귀 5 당통합 ( 의열단 , 신한독당 , 조선혁명당 , 한국독립당 , 미주대한인독립단 )- 조선 민족 혁명단 김구의 한국 국민당 조직 ( 임시정부의 배경위해 ) 고액의 현상금 - 남경에서 근신(가명 ) 9 년만에 남경에서 어머니와 재회 상해 장사로 이동 ( 본명 ), 가슴에 박힌 총탄下 .5 중경 임시정부와 광복군 중경으로 임시정부 이주 . 중격에서의 7 년 1939 어머니 돌아가심 1940‘ 광복군 ’ 창설 ( 중국의 원조 받은 한국 국군 ) 5 당중 이념차이로 2 당 탈퇴 , 3 당 통합으로 ‘ 한국독립당 ’ 결성 광복군의 OSS 국내 침투훈련 ( 한반도 상륙작전 1945.8.29) but 일본의 조기 항복 (1945.8.15) 임시정부 개인 자격으로 입국 고국을 떠난지 27 년만에 조국으로 귀환 1949 년 6 월 26 일 일요일 오전 안두희의 총에 맞아 서거 (74 세 )추가지식 - 대한독립의 한계 1943 카이로회담 - 미 . 영 . 중의 한국 독립 약속 1945 세계 대전에서 미 . 소 중심의 연합국 승리 , 일보 항복 - 광복 - 미 . 소군의 38 도선을 경계로 남북 분할 점령 미군정 임시정부 인정하지 않음나의 소원 김구의 정치 이념을 밝힌 논문 민족 국가 . 자유의 정치이념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나라나의 소원 네 소원이 무엇이냐 ? 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 하면 , 나는 또 우리나라 독립이오 할 것이요 ,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가 되기를 원하고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 의 힘 이다 .느낀점 고등학교 수업에서 들었던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백범 선생의 내력 자신이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지 . 정신력 조상들의 피땀으로 지켜낸 나라임에도 너무 편안한 현대생활에서 애국심을 잊게되는 것에 대한 반성{nameOfApplication=Show}
궤짝 속의 두루마리파트로스의 낙타지기 소년파트로스의 시험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면, 실패가 결코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베들레헴의 마굿간과 빛나는 별금화와 두루마리를 받고 떠나다첫 번째 두루마리의 교훈을 따른다버는 돈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항상 나누어준다두루마리의 지혜는 단 한 사람에게만 전한다회의감, 불안감, 자신감의 상실창문으로 들어온 참새 한 마리시험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면, 실패가 결코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첫 번째 두루마리를 펼치다
수의 역사‘수학’ 이라는 학문은 어려운 수식과 기호를 연상시켜 일반인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듣기만 해도 어려워 보이는 공식들의 이름과 증명은 우리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거의 본능과 같이 수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를 세는 것’은 수학이다. 덧셈, 뺄셈, 곱셈 그리고 나눗셈도 역시 수학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해오고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오기 까지 수학은 가장 큰 주춧돌 중 하나로 자리 메김 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이룩한 지금의 문명 또한 수학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생각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사칙 연산이나 셈, 확률계산 등의 수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 쉽게 보이지 않는 수학의 연결 고리들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원이 된 수학은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EBS다큐프라임 ‘문명과 수학’ 1부:수의 기원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처음 수학이라 불려질만한 것의 시작은 람세스 2세의 신전, 라메세움에서 나온 파피루스 한 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 거대한 나일강과 함께 거대 문명을 이루고 아직도 세계의 불가사의라 여겨지는 거대한 건축물이 있는 나라, 바로 이곳이 수학의 시작인 것이다. 그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나일강은 일정 시기 마다 범람하였다가 줄어들었고 그 때마다 땅의 경계선이 무너졌다. 해마다 강이 넘치고 난 후면 관리들은 토지조사를 나갔다. 세금을 거두려면 정확한 토지조사가 기본이여서 농사는 훨씬 오래 전부터 지었지만 이때 수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위 관직자들은 세금징수를 위해 수학을 알아야 했고 그들을 위한 문제들이 정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기원전 1650년경의 파피루스이다. 여기에 기록되어있는 것들은 무려 2000년 전부터 전해내려 오는 것으로 이들이 어떻게 수를 다뤘는지 알 수 있다.이들은 오늘날과 현저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넓이를 구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곱셈부터가 매우 독특하다. 예를들어 가로 4, 세로 5의 길이를 갖는 직사각형의 면적을 구하고자 한다면 돌맹이를 이용한다. 4개의 흰 돌과 1개의 검은돌을 각각 나열한다. 그 다음 줄에는 먼저 놓았던 돌들의 2배씩 하여 8개의 흰 돌과 2개의 검은 돌을 나열한다. 이런 식으로 검은돌이 총 5가 되도록 한다. 이 같은 경우에는 3번째줄에 검은 돌이 4개가 모임으로 2번째줄을 제거하면 첫 번째 줄과 합치어 5개의 검은 돌이 된다. 이 때 짝으로 있던 흰 돌의 개수인 20이 이 사각형의 넓이가 된다. 4*5=20. 현대의 방법과도 맞아떨어지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원은 어떨까? 파이(π)의 개념이 없었던 그들은 원의 넓이를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풀었다. 파피루스의 문제 50번, ‘지름이 9케트인 원의 넓이를 구하라’가 그것을 보여준다. 9케트는 사람 900명의 구부린 팔 길이를 이어붙인 아주 긴 길이이다. 이집트인들은 일단 이 길이를 9등분한다. 이 중 1개를 버리고 난 후 남은 8개등분을 한 변으로 하는 직사각형의 넓이를 구한다. 즉, 이 50번 문제에선 (8케트)^2=64 가 되는 것이다. 파이(π)를 이용하여 계산하면 63.59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하고 곱하고 나누는 문제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하다. 갓 태어난 연산은 이렇게 투박한 모습을 지녔지만 점점 문제를 해결하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이집트에서 발생한 수의 시작은 단지 넓이구하는 덧셈 곱셈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수학을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넓이를 가늠하고, 길이를 재고 양과 높이를 짐작해본다. 수를 세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주 옜날 유목민 이였을 때부터 인간은 수를 세기 시작했다. 포식자들을 경계하며 일정한 거리에서 양을 지켜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였고 보는 것 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어 수를 세기 시작했다. 인간은 돌멩이를 항아리에 넣어 양의 가치를 보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돌멩이를 넣을 때마다 항아리 위에 표식을 하였는데 이 표식과 돌멩이가 의미하는 바가 같다는 것을 이때는 알 수 없었다. 이 만큼 셈은 어려운 것이다. 이제 그들은 표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는데 수 만년이 걸렸다. 수학의 처음 시작은 이렇게도 도뎠다. 이집트인은 이제 숫자 상형문자를 사용했다. 1은 나무막대기 하나, 10은 말발굽, 100은 밧줄 그리고 1000은 연꽃을 그려 숫자를 상징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이 숫자를 어린아이때부터 배운다. 숫자가 나왔으니 이제 그들은 빠른 성장을 하게 된다.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장엄한 건축물이다. 4500년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 건축물을 만드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고 그 시대에 이것을 어떻게 건설했는지조차 아직 풀리지 않은 수학문제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수학문제는 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다. 거대 피라미드 옆에는 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인 노동자들의 마을이 발견되는데 이곳에서의 생활 흔적은 피라미드를 만들던 사람들이 노예가 아닌 계약된 노동자임을 알게 해 준다. 이들은 월급을 받는 정식 노동자이다. 화폐가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빵이 급료였다. 그런데, 급료를 받을 노동자는 10명인데 빵은 9개 밖에 없다면 어떡해야하는 것인가? 이것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어있는 문제이다. 공평함을 깨지 않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숫자를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분수이다. 다만 이 당시에는 분자가 1인 분수만 사용했으며 이유는 모르지만 예외로 2/3를 사용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9개의 빵을 2/3씩 나눠서 10사람에게 나눠준다. 그 다음 10개를 만들 수 있는 분수를 찾는다. 1/5, 그리고 또 남은 1/3의 1/30. 한 사람앞에 2/3+1/5+30/1+9/10 만큼의 빵이 골평하게 돌아갔다. 빵 9조각으로 10명의 사람들이 만족스럽게 나눠가진 것이다. 이것이 수학이다. 우리는 이 힘을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간다.영상 끝에서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비밀스러운 모든 지식으로 들어가는 입구, 그것은 수’ 이라고. 수학은 물난리가 난 땅 위에서 비로소 시작되어 땅을 재고 세금을 매기면서 수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수학의 계보는 새로운 문명, 그리스에서 다시 시작된다.‘수학과 문명’의 2부 부제는 ‘원론’이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당시 왕이 배웠던 수학책이다. 이 책에는 지금도 너무나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가 담겨있다. 당시 그리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사물의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원리를 찾는 것이 대유행 이었다. 피타고라스 또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년 넘게 이집트와 바빌론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고향 사모스 섬에 돌아왔다. 그가 20년간 타지를 돌며 발견한 것은 그리스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그가 이집트에서 본 것은 웅장한 피라미드였다. 하지만 그리스인 답게 이집트인들이 관심없었던 무언갈 보게된다. 거대한 피라미드는 두 개의 직각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지각 삼각형은 자신이 땅에 그린 작은 직각 삼각형과 같은 것이였다. 이집트인들은 직각 삼각형의 비가 3:4:5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바빌론에서 본 것은 더욱 놀라운 것이였다. 그것은 숫자를 쓴 석판 이였는데 그 위에는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숫자가 굉장히 많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있는데 어떤 수는 되고 어떤 수는 안되는 것일까? 피타고라스의 이러한 의문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풀게 된다. 그가 영감을 얻게 된 것은 대장간의 소리였다. 평소와 달리 듣기 좋았던 대장간 방망이질 소리에 의문을 가졌고 곧 그 비밀은 쇠의 길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쇠의 길이 비는 2:3이였고 3과 2의 길이는 도와 솔의 완전 5도를 이루는 소리였다. 피타고라스는 이에 더 나아가 어떤 선분과 그 2/3가 되는 선분, 또 다시 그 선분과 2/3이 되는 선분은 화음을 이뤘다. 이 원리를 적용해 피타고라스는 조화로운 소리를 계속 찾아냈고 어떤 길이의 3/2씩 되는 화음을 계속 찾아본 다음 재배열하여 비율을 유지한 채 길이를 늘려보았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7음계다. 피타고라스는 비로소 조화를 이루는 것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정수의 비로 이루어져있다(비록 히파수스에 의해 정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이 밝혀지지만). 피타고라스는 또한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보았던 숫자들의 관계도 알게 된다. 직각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관계, 이것을 우리는 피타고라스 정리라 부른다. a^2+b^2=c^2, 즉 한 변의 길이가 a인 정사각형의 넓이와 b인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이 한 변이 c인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직각 삼각형은 이 공식을 만족시킨다. 이집트와 바빌론 사람들도 직각 삼각형의 비율을 알고 있었지만, 피타고라스만이 그것을 증명하고 법칙으로 만들었다. 이 법칙의 영광스런 이름은 피타고라스임이 당연했고 이 피타고라스의 증명과 법칙으로 인해 수학은 드디어 정신을 얻게 된다. 단순 수의 계산이 아닌 진정한 ‘수학(數學)’의 시작인 셈이다.피타고라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훌륭한 수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수의 세계를 증명으로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증명의 힘이다. 그리스 인들은 논쟁하는 것을 좋아했다. 말 뿐인 논쟁을 넘어서 그들은 증명을 하기 시작했고 증명을 위해서는 정의와 공리가 필요했다.모든 기하는 점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점은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점은 작게 보면 점이지만 확대해서 보자면 면적을 가진 원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관하여 여러 그리스 학자들의 의견이 나왔다. 위치가 있는 단자, 쪼갤 수 없는 선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이러한 모든 의견을 반영해 유클리드의 원론에 실리게 된 점의 정의는 ‘점은 쪼갤 수 없는 것이다’이다. 이것은 원론의 첫 번째 문장으로, 유클리드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 그리스 전역의 의견이였다. 원론은 그와같은 23가지의 정의로 책을 시작하고 있으며 유클리드는 이를 이용해 증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의언어프로이드가 말하기를, 인간에 대한 세 가지 모욕이 있는데 첫 번째가 지동설, 두 번째가 진화론, 세 번째가 정신분석학(프로이드 자신의 이론)이라 하였다. 첫 번째 지동설은 당시의 종교계와 큰 마찰을 일으켰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가톨릭교회의 탄압으로 법정에서 지동설이 옳지 않다고 증언하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두 번째 진화론은 현재까지 과학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혁신적인 이론이며, 현대 과학의 중심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진화론이 과학계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만큼 종교로부터 받은 비판과 비난 또한 거셌다. 진화론이 ‘하나님이 태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라는 성경의 말씀과 대립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종교와 과학은 마치 양립할 수 없는 대립인자처럼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고 갈등을 증폭시켜왔다. 하지만, 현제 전 세계 기독교 인구수는 약 22억만 명으로, 세계인구 60억만 명의 3분의 1가량이 전부 과학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발견에 감탄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종교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단지 과학과 종교를 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역사상 최초로 시작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완성시킨 프랜시스 S.콜린스이 쓴 책 가 이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기독교인으로서 종교를 무시하는 과학자들에게, 과학을 거짓이라 치부하는 종교인들에게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고자 한다.이러한 프랜시스 콜린도 처음에는 “적극적 묵인”을 행하는 불가지론자였다. 불가지론이란 단어는 19세기 과학자 토마스 헉슬리가 사용했던 단어로, 단순히 신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만든 말이다. 신의 증거를 열심히 분석하다가 불가지론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느 편에 자리 잡아 머리 아픈 논쟁에 끼어들기 싫기 때문에 불가지론자라는 “만물을 통제하는 힘이 우주 밖에 존재한다면 우주 안에 있는 어떤 실체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으니 우리 내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우리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 내부에서 발견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의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루이스의 주장이며 콜린을 무신론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결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한없이 높은 기준의 도덕법은 신이 신성하고 정의로운 신임을 알려준다. 이러한 자애롭고도 편안한 깨달음은 콜린으로 하여금 신이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점차적으로 일으켰다. 그런 콜린에게 든 생각은, 신이 우주 밖에 있다면 과학으로 신을 증명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는 것 이였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했고 최종결론은 증거가 아니라 믿음을 기초로 하게 될 것이다. 무신론자에서 벗어난 콜린은 자신이 품었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의심에 대하여 반박하고자 한다.신성한 존재에 대한 갈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탐나는 것이며, 만족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 경이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번뜩이며 감미로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느끼며 그 어떤 물질적인 충족감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 무신론자들은 그런 갈망이 초자연적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외감을 신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하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경외감을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좌우되는 것으로 환원시키기도 했다.그러나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완전히 뒤집어진 주장이 나온다. 인간특유의 보편적인 특유의 갈망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애초에 왜 존재 하겠는가? 루이스가 말하길 “만약 세상 어떤 경험으로도 충족할 수 없는 욕구를 내 안에서 발견한다면, 나는 다른 세계에서 살도록 만들어졌다는 말이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이 된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이 보편적인 갈망이 희망사항이 아니라 우리 너머의 무언가를 가리키는 바늘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번에는 위와 모른다. 과학이 밝힌 바에 따르면, 우주와 우리 행성의 삶 그 자체가 진화 과정에 개입한다. 신이 물리적 힘을 통하여 인간을 창조하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고통적인 결과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신은 이러한 역경을 통해 아타나기도 한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맺는 관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신과의 관계라면 고통은 인간의 인생을 새로운 양상을 띠게 하는 것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은 것을 깨달게 해주며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역설적이게도 신을 느끼는 크나큰 위안의 원천이 된다. 실제로, 종교와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다가, 고통을 겪고 나서 눈물을 가득 흘리며 종교인이 되고 물질적인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되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이성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기적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요즘같이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하는 때에, 기적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개념이다. ‘기적’이라는 단어는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 기적에 관한 토론은 초자연적인 것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리라는 가능성을 고려할 것인가, 고려하지 않을 것인가에 관한 토론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콜린은 기적의 존재 가능성을 믿지만 그 시전확률이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연법칙을 신뢰하는 과학을 따르는 자들은 기적이 자연계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실로 기적이 가져올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나 기적은 정말 드물게 일어난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인 것이다. 덧붙여, 자연계 자체가 이미 신의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기적을 자연법칙에 대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기적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깊이 이해 할 때 그것을 신뢰할 수 있게된다.지금까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물론적 회의주의자들은 초자연적인 도덕법과 신에 대한 인간 본연의 갈망을 거부하며 기적을 들먹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자연 법칙으로 설명이 된다. 는 붕괴했을 것이며 100만분의 1만큼이라도 컸다면 별과 행성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놀랍고도 경이로운 아슬아슬한 우연들이 과연 신이 아니고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현대의 이론으로 예측할 수 없는 물리 상수는 15개에 이르는데 이 모든 상수가 적절한 값을 취해 안정된 상태가 된 비율은 극히 낮다. 그런데 우리의 우주는 실제로 그러하고 그로 인하여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인류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일반적 결론을 ‘인류 지향적 원칙’이라 부르며 다시 말해 우리 우주는 인류를 탄생시키기에 알맞도록 설계되었다는 원칙이다.세상을 구성하는 복잡성은 우주의 시작과 지구의 생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구 위에서의 생명체 그 자체에도 경이로운 신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암석을 조사하니 지구는 처음 5억년동안 황폐한 곳 이였다. 1억 5000만년이 지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미생물이 존재했음을 관찰할 수 있었고 아마 이 단세포 유기체들은 DNA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이 있었을 것이며 자기복제를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최초의 자기복제 유기체는 대체 어떻게 생겨났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생물이 발생할 수 없는 환경 이였던 지구에서 고작 1억 5000만 년 동안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제대로 설명할 만한 가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생명의 기초 화합물만을 지닌 기초적 생물이 우주에서 날아든 운석에서 발견되었고 이로써 우주의 자연적 변화에도 그러한 복잡한 유기 분자가 생겨날 수 있다는 주장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그런데 이 선까지가 과학의 한계였다. DNA의 상상을 초월하는 복잡함은 ‘우연히’ 생성 되었다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DNA에는 자기복제 수단이 내재된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이에 관해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가설들을 내세웠지만 아무도 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이러한 복잡한 DNA는 놀라운 정보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데 이는 다윈의 ‘성이의 장이다. 이러한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과학과 종교는 위에서 보았다시피 언제나 조화로울 수 있다. 과거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종교계와 과학계의 거센 싸움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359년 후 교황 바오르가 정식으로 갈릴레오에 대한 정식 사과문을 밝힘으로 두 무리는 조화롭게 손을 잡았으며 이제 거의 모든 종교인들은 지동설을 당연하게 여긴다. 진화론은 지금 종교계의 심장부에 도달해있다. 그렇다면 진화론도 지동설처럼 종교계화의 조화로 분란을 끝낼 수 있을까?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는 사실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감각과 이성과 지성을 부여한 바로 그 하느님이 우리가 그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게 하셨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이 훈계를 마음에 담고 올바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네 가지 선택이 있다. 무신론 혹은 불가지론, 창조론, 지적설계론 그리고 바이오로고스이다.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은 과학을 이용해 종교를 공격한다. 하지만 콜린은 세계적인 일신교들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데 과학이 이용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수백년간의 역사를 지닌 종교는 뿌리깊은 도덕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이타주의가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기반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를 부정하려 하는 과학은 과학적 오만의 극치라는 것이다. 두 가지 진실은 사실상 모순되지 않지만 두 진실의 불화는 흔히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조화가 필요한 곳이 바로 이 두 지실이며 이곳에 주목해야할 필요성이 있다.창조론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신앙이 과학을 이겼을 때 피어오를 수 있는 태도이다. 특히 극단적인 것은 ‘젊은지구창조론’이다. 이들은 대개 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종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진화’는 인정하지만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대진화’는 믿지 않는다. 이들은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물론 신약성서 상당 부분을 포함하여 성경에는 역사적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