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21년의 짧은 인생을 되돌아 볼 때 “왜 사는가?” 에 대한 생각을 크게 두 번 정도 해본 것 같다.한번은 중학교 사춘기시절 부모님이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시는 모습이 부끄러워 집을 나와 고생하며 후회한 경험이 있다. 어떤 단순한 감정에 휩쓸려 무모한 짓을 벌인 것이다. 동네를 배회하며 ‘왜 살지?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며 깊은 생각을 하다가 제 풀에 죽어 집에 돌아온 경험이 있다. 지금이야 그 때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다는 게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는 굉장히 괴로웠던 추억으로 기억된다.다른 한번은 작년 수능 날 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비해 재수를 실패 했을 때의 좌절감은 더욱 컸다. 특히 나를 응원 해 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허탈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자책감에 내 자신을 질책하며 사람들 앞에 떳떳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실망감을 감춘 가족들의 위로에 가족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 속에서 펑펑 울었다. 이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죽을 구실을 찾기 위해 사는 이유를 생각해 본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이러한 경험들로 미루어 볼 때 나는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삶이 무기력할 때 사는 이유에 대한 고찰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봤다. 정답은 바로 타인의 시선이었다. 나의 과거를 되짚어보니, 나는 항상 내 자신의 주관보다는 타인의 유무에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즉 나는 자존감이 부족하고, 나의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타인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온 것이었다.십대에는 그런 삶을 보냈지만 이제 이십대가 되어선 어느 정도 나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십대에 겪은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하는 구차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자신의 권리나 목표의식을 찾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이십대의 위치에서 내 개인적인 생각에, 삶의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나름대로의 목표를 설계해 하나하나 해내는 자기만족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어떤 일이든 부딪치고 저지르고 싶다. 물론 나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앞으로 끝없는 실패와 절망을 경험 할 것이다. 하지만 이십대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아픈 시련을 견디고 이를 잘 극복하고 견뎌내어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