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관련 책 독후감- 박정희 스타일 -< 나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 >리더십 관련 책을 고르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처음엔 세상을 바꾼 글로벌 리더 50인의 특강을 읽을 계획이었지만 책을 찾기 위해 그 영역으로 가보니 수 많은 리더십 책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 박정희 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나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 ‘경제 발전에만 몰두하느라 문화재를 모두 망친 사람’ 이라는 이미지가 컸다. 중학교 국사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후로 케이블 티비 프로그램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생각한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와는 다른 면모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진정한 리더가 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거닐었던 다른 리더들의 면모들의 볼 필요가 있다. 또 한강의 기적을 실현해준 리더의 시야는 분명 우리와 다를 것이고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박정희 스타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시련과 실패, 꿈의 먹잇감 >박정희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함 속에서 배고픔과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도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 하는 일에 열중하고 꿈을 키웠던 것에는 그의 강한 자존심이 한 몫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 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안좋은 환경에서도 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고 이것을 유지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자존심은 성공할 리더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존심을 가진 박정희는 어른이 되어 직장을 가진 후에도 여전히 가난했다. 선생님을 하던 시절에도, 그 후 군인이 된 후에도, 결혼을 한 후 에도 지긋지긋한 가난에 고통을 받아야 했다. 물론 군인이 되고 별을 달고서 풍족하게 살 길이 있었지만 부정축재를 하지 않았고 수십년을 가난속에서 자라 검소함을 몸에 달고 다녔다. 박정희는 종종 공식적인 자리의 연설에서 “가난은 나의 스승이다” 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은 버는만큼 씀씀이가 커지기 마련이고 커진 씀씀이는 다시 자기 의지로 작게 하기 힘들다. 씀씀이가 큰 사람보다 검소한 사람이 더 많이 감사하고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생각한다. 박정희가 성공한 이유에는 검소함이 몸에 배었기 때문도 있다. 나는 지금 취업 준비 생으로서 언제나 나의 모자람을 탓하고 있다. 그 모자람 중에는 나의 집안은 왜 부유하지 못할까하는 못난 생각도 있었다. 성공한 사람은 돈이 많다는 정의가 옳다고 해서 돈이 많은 사람은 성공한다 라는 역이 성립하지는 않는 것인데,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모자람은 부유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못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에서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당신은 자신의 단점을 숨기고 부끄러워만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최고의 약점이 최대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라는 구절이 잊혀지지 않았다.박정희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도중 한번 큰 시련에 부딪혔다. 과거 남로당에 가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군 수사팀에 체포된 일이다. 박정희는 모진 전기 고문을 받으며 취조를 받았고 고민 끝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자술서를 적었다. 박정희 인생에 아주 큰 위기였다. 박정희는 이미 무너진 자신의 커리어와 인생에도 이렇게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은 생각에 수사책임자를 만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며 선처를 해달라고 인간적으로 호소 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육군으로부터 파면 통보를 받고 대장이 되겠다던 꿈에서도 한참을 멀어지게 되었다. 그는 비공식 문관으로라도 군에 남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시련을 겪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집념이야 말로 리더가 꼭 갖추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박정희가 순탄한 인생을 살다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진짜 한강의 기적을 맛 볼수 있었을까. 꿈은 시련과 고난, 역경, 실패 등을 먹으며 자라난다.<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높게>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후, 지독한 가난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알고 있는 그는 나라가 잘 살아야 무시당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존심과 우리 민족의 진정한 정신을 다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수출 100억이라는 모두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저 높은 자리에서 명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를 주고 세세히 나누어 진짜로 실현이 가능하게 이끌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이것이 진정한 리더로서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저 터무니 없는 목표만 세울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자세한 미션들을 하나씩 달성하게 함으로서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사람들의 내재적 동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해 국민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고, 희망을 안겨준 것 역시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주체가 국민임을 알고 진정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모습이었다.왜 어른들이 아직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를 찾는지, 가끔은 그리워하기도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박정희는 그저 경제에만 몰두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을 이끌 수 있었던 리더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물론 경제 발전에 집중하면서 다른 부분에 있어서 소홀히 하고 지금은 그 영향이 별로 좋지 않은 부분도 있으나 우리나라를 업그레이드 시키도록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 박정희의 집념, 자존심, 의지, 인간미, 검소함, 지적 능력과 끊임 없는 노력, 이것이야 말로 지금 내가 가장 잘 배워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싶다.
성의 담론과 이해 중간 레포트평소 성에 대해 나름대로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자부했기 때문에 ‘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을 읽고 싶다면 킨제이와 20C성연구를 보라’고 추천해 주신 교수님의 말을 듣고 지체없이 책을 빌렸다. 교수님의 책 소개 덕분인지 학교 도서관에는 이미 도서예약이 8번째까지는 채워진 상태였다. 어렵게 빌린 킨제이와 20C 성연구는 놀라운 첫인상을 남겨 주었다. 책을 열기도 전에 책의 두께에 한번 놀라고 책을 열자마자 여기저기에 보이는 섹스라는 단어에 한번 더 설레움에 가까운 놀라움을 느꼈다.킨제이와 20C 성연구는 킨제이 성장 배경과 성격, 그의 학문에 대해 약 150page가량을 소개한 끝에 성연구를 시작한 계기를 시작으로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사실 책도 두껍고 ‘성에 관련된 책’이라는 것에서 오는 기대감 때문에 앞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롭지도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었다. 금욕, 금연, 금주의 엄격한 생활을 했던 킨제이가 성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계기, 그리고 배우자 맥과 신혼여행을 가서 섹스를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사이즈의 차이 외에 방법을 몰랐다는 점은 놀라웠다. 남자는 당연히 본능적으로 섹스 하는 법을 알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놀란 것 같다. 물론 나도 중학생인 시절 영화를 보고서 그 행위와 방법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뭔가 남자들은 당연히 본능적으로 잘 알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에 킨제이가 아무리 금욕생활을 했다 할지라도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킨제이는 배우자 맥과의 섹스 실패로 인해 성 의료 상담을 하던 중 성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산부인과 전문의인 로버트 디킨스 박사의 일천쌍의 부부라는 자위, 성교, 감정, 욕망, 두려움 등을 기록한 책을 읽으며 그 관심은 증폭되었다. 1930년에 들어서면서 성에 대한 대중의 공공연한 관심이 상승했고 성을 억압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킨제이 자신의 과거처럼 고통받지 않길 바랬다. 킨제이는 아버지에 의한, 어릴적 종교에 의한 성적럼 많이 자유롭지는 않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성관계를 당연하게 맺는 부부가 있는데도 저런 것들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었다면 그 당시 사람들은 성관계가 얼마나 재미 없었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킨제이는 성격상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대화를 한다거나 들음으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 당장에 많은 공부를 시작하여 결국 방대한 지식을 쌓고야 마는 성격이였다. 킨제이의 이런 집착스러운 성격 덕분에 금기되는 것이 많았던 성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킨제이의 성연구가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많은 기대를 했었다. 뭔가 나도 배울만한 많은 성 지식이 잔뜩 쓰여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하지만 킨제이의 성연구 과정에 대해 쓰인 부분은 대부분이 동성애였고, 심지어 동물과 어린 아이들과의 성관계까지 나왔다. 내가 처음 ‘성’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남자와 여자 이성애였기 때문에 킨제이의 연구들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고 내가 원하는 지식들이 없는 것에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기가 무섭게 킨제이와 연구자들의 개방적인 모습과 가치관에 너무 놀라웠다. 나는 동성애를 인정해. 라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맥과 결혼을 한 킨제이가 동성애연구와 그를 위한 성역사 수집을 위해 다른 여러 남자들과, 동료들과 잠자리를 하는 것을 보고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사실은 나 자신이 동성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킨제이를 통해 깨달았다. 1940년대 공중목욕탕이 동성애자들의 오픈된 섹스 장소였다는 것, 킨제이가 연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혹은 함께 일하는 연구자들과 섹스한 사실을 와이프 맥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한 것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성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상적일 수 있는 양성애자라는 점은 와이프에게는 받아들이기 버거운 일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보았을 때 섹스를 낭만적인 사랑의 가정하에만 있을 수 있도록 매우 제한을 두고 억압을 시켜놓았는데 남편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기만해도 미칠꼈다. 그러면서 잠시동안 내 주변의 모든 남자들을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가 저번 성의 담론과 이해 시간에 성의 금기, 윤리에 대해 토론을 했을 당시 의심의 여지 없지 안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동물이나 어린 아이들과의 성교는 당연히 금지 되어야만 하고 세상에 없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금기라고 받아들여진 실존하는 행위였다. 킨제이가 성역사를 듣기위해 만난 그린이라는 사람은 사춘기 이전의 소년 600명, 사춘기 이전의 소녀 200명, 많은 성인 남녀와 여러 종류의 동물들과도 성행위를 했다. 정확히 책 265쪽 마지막 문단에 위치한 이 글을 읽고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친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는 그 당시가 언젠지 모르겠지만 못배워서 아무나, 아무 동물이랑 막 한 것아니냐며 무지에서 온 무식한 성교라는 표현을 했다. 하지만 나는 1940년, 1950년대는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니며 다양한 학문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성에 대한 학문이 부재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지식 수준이 떨어진 것이 이유가 되어 아무나, 아무것과 한다는 생각에는 완전 반대했다. 킨제이와 20C 성연구 책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양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성애와 동성애 중 이성애가 더 교육되고 입력되어 사람들이 그런 성향을 고집하고 이끌어 낸 것처럼 아이와 동물과는 성교를 하면 안되는 것 역시 배우고 학습되어 온 것이라는 쪽에 더 동의 했다. 물론 아이와 동물과 성교를 하면 안되는 것에는 생물학적, 의학적인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킨제이의 연구에는 섹스와 사랑을 별개로 보는 관점이 더 만연했다. 그래서 킨제이의 가치관, 혹은 연구자로서의 마인드라면 혹시 한국 연예인 중 청소년을 꼬득여 성관계를 맺은 고영욱이나 이수의 상황 역시 이해할 수 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그런 시각에서라면 애인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과 섹스를 하는 것, 가족들과 하는 것 등의 모든 것들이 당연시 되는 것 같았다. 문뜩 저번에 성의 윤리에 대해 토론하던 시마저도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이런 단순한 현상들만 보았을 때 강제성만 없다면 어린 아이들과 섹스를 한다고 해서 범죄가 되는 것은 말이 안되며 우리의 생각에선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당한다는 이미지만 떠올리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이라는 것이 참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새삼 느꼈다.킨제이는 반평생 동안을 연구하는 데에 몰두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도 자신의 성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약간의 용기나 동기부여, 분위기들을 요하는 데, 그 당시 섹스의 섹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던 사람들에게 성에 관련한 결혼 강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성경험을 물어보고 모르는 사람들과 여러 집단에게 그 이야기를 이끌어 낸 것은 엄청난 노력과 집념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킨제이의 수업을 듣는 이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상상이 되었다. 현재 우리 학교에도 성의 담론과 이해나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섹스라는 단어정도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지만 사실 킨제이의 결혼 강의 같은 것을 접할 수가 없다. 성기의 사진을 확대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열정적으로 성생활을 강연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얼굴이 뜨거워졌을까. 얼굴이 뜨거워진다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음지에서만 그것을 다루기 때문이지 않을까. 차라리 우리도 킨제이의 수업처럼 적나라하게 그것을 양지로 올려 지식인에게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서 아주 적절한 성교육을 하는 것이 옳지는 않을까. 킨제이의 수업이 너무 듣고 싶었다. 당대 사람들과 가치관과 태도의 차이가 너무나 컸던 킨제이는 학생회장이나 여러 집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앞서가는 모든 이들은 욕을 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킨제이보다 거의 80년뒤에 살고 있는 나도 킨제이가 연구에 필요하다 할 지라도 와이프와 동료를 섹스하게 하고 그 장면을 관찰하거나 동영상을 찍는 것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고 심지어 미친놈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킨제이는 아빠나 남편, 친구이기 전에 그냥 오롯이 연구자였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기에 매력적이었지만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하루 18시간을 일하면서도 뚜렷한 목표를 위해 지치지 않았으며 조언을 구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적극적으로 편지를 쓰고 상담을 해주는 소통하는 학자였다는 점은 인상깊었다.킨제이와 20C 성연구는 읽기 전부터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역시나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책이였다. 하지만 다음 기회에 킨제이 보고서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든 책이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생각의 한계에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으며 많은 것을 다시 보게 해준 책이기도 했다. 친구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이상한 가치관을 갖게 될 것같다고 책이 사람을 버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표현한 느낀점들이 그에게 적잖이 충격적인 모양이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상담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러 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다. 조언이나 고민상담에는 성에 관련된 것이 매우 많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고 그래서 더 많이 개방적인 마인드이고 싶어했다. 그런 나에게 킨제이와 20C 성연구는 다양한 성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사람마다 성에 관한 판타지, 성감대 등이 다르듯 그냥 그 모습이 다를 뿐 여러가지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물론 이것들이 지금 시대에 당장 모두가 용인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할만한 것이 아님은 알고 있다. 킨제이도 연구를 하기전에 사랑이라는 감정과 윤리의식 등을 배재시켰고 나는 그것을 아주 잘 고려하여 받아들였다. 나의 성생활을 위해 킨제이처럼 노력을 해야한단 생각도 들었다. 상대방도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기 위해선 내가 나 자신부터 잘알아야만 한다. 나는 나에 대해 아직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신의 성에 관심없어 보이는 것이 나로 하여금 나를 알게 하는 데에 동기부여하는 것을 억제시켰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성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인생을 위해서 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알기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나의 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