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본 도서의 저자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선호의 일관성을 가진다.’라는 부동의 가정을 전제로 시작하는 고전경제학의 의사결정 프레임을 심리학 기반의 실증적 연구들을 통해 제대로 반박함으로써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기보다는 통계적 사고는 무시한 채 정보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이를 단순화한 휴리스틱에 의존함으로써 판단에 있어서 시스템적 오류라고 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편향을 가진다고 한다. 인간의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사고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시스템 1의 자동적 활동과 시스템 2의 통제적 활동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 두 시스템이 각자의 역할 수행하거나 상호 협력을 하는 동안 각 시스템의 특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휴리스틱이 존재하게 되고, 이는 합리적이라기보다는 편향적인 판단과 선택으로 의사결정을 이끈다고 한다.시스템 1은 인상, 직관, 의도, 느낌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하며 자동적으로 작동하나, 이러한 자동적 활동으로 인해 성급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교하여 시스템 2는 어려움에 빠진 시스템 1의 지원요청에 의해 가동되며 자제력을 바탕으로 인지적 노력을 기울여서 시스템 1의 결정을 지지하거나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통제적 활동으로 인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스템 2는 매우 게으르게 판단에 간여하는 특성을 가지게 되므로, 대부분의 판단과 선택은 시스템 1에 의해 자동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다고 한다.이러한 시스템 1의 작동방식과 특성으로 인해 휴리스틱이 의존하게 되는데, 연상적 활성화라고 할 수 있는 점화효과, 인지적 편안함에 대한 감정적 반응, 확신에 대한 편향, 후광효과, 내 눈앞에 보이는 정보에만 의존하는 가용성 휴리스틱, 일반적인 통계에 기반하는 기저율 무시, 프레이밍 효과, 어려운 질문을 쉬운 질문으로 대체하는 등의 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착각이 이에 해당한다.무엇보다 인상적인 내용은 자연이나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이나 현상은 평균으로 회귀하는 근본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에 대한 과신, 극단적 예측을 옹호하고 맹신하는 직관의 편향으로 인해 평균보다 훨씬 낮은 예측률과 성공률을 가진 의사결정이 유발된다는 점이다. 차라리 직관에 기반해서는 어떠한 의사결정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높은 예측율을 달성한다는 실증적 자료들을 보면서 직관에 의한 결정이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의 대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보나 이야기의 정합성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의견에 주관적인 확신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정당성의 착각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당성의 착각은 외부관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부관점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거나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더욱 편향적이 된다. 또한, 이러한 정당성의 착각이 가져다주는 낮은 성과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데이터를 접하는 경우에도 인간은 바로 자신의 사고를 수정하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한 많은 연구사례에서는 이러한 정보나 데이터가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인간의 사고체계가 가지는 편향과 인지적 착각이 매우 강력하고 수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따라서, 이러한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 기반한 인간의 판단과 선택은 합리성과 일관성을 가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합리적인 의사결정 주체로 인간을 가정하는 경제학에서의 인간상인 ‘이콘’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콘을 믿음과 선호가 일관되고 그에 기반한 판단과 선택도 일관된 것으로 가정하는데, 이 때 그들이 의미하는 일관성은 내적 일관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와 아모스가 오랜 세월 연구한 실증적 연구결과들은 기존의 이러한 가정과 불일치한 인간 사고의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다.결국 저자와 아모스는 이러한 실증적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전망이론을 제안하고, 기존의 베르누이 이론과 고전경제학의 선호와 선택이론의 오류와 한계를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전망이론의 핵심은 베르누이의 주장과 달리 기준점이 존재하며, 인간은 기준점에 따라 현재 동일한 소득을 가지더라도 전혀 다른 효용을 느낀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민감도 체감성에서 손해가 그만큼의 이득보다 더 크게 느껴지므로 고전경제학에서 주장하는 무차별곡선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인간이 가지는 위험회피와 위험추구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점에 따라 달라지고, 손실은 항상 비용보다 더 크게 인식되며 결정에 있어서 가중치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이와 더불어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 사물 등에 대한 표현이 인간의 믿음과 선호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프레이밍 효과도 인간의 선호의 일관성을 저해한다고 한다. 감정프레이밍이나 매몰비용, 심리계좌 등과 같은 나쁜 프레이밍은 합리적 기준에서의 의사결정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그리스/로마 신화는 일상생활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자주 튀어나온다. 단편적으로는 우리의 단군신화만큼이나 친근하다. 제우스, 프로메테우스, 시지푸스, 오이디푸스, 에로스,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라, 디오니소스, 나르시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환웅과 웅녀 못지않게 귀에 익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빈도수에 비해 신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등장인물이나 등장인물끼리의 관계파악조차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 내용의 질, 그러니까 철학적 깊이나 상징성에 제대로 접근하기란 더욱 어렵다. 친근한 듯하지만 솔직히 그리스/로마 신화는, 적어도 내게는 우리와 떨어져 있는 지리적인 거리 이상으로 먼 이야기였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문학, 철학, 심리학, 심지어 천문학의 별자리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용은 도처에 너무나 많고, 그것도 무의식과 성의 상징성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커서 나로서는 그때마다 신화를 하나의 개념이 덜 잡힌 추상명사로서만 대할 수밖에 없었고 반쯤 지워진 문장을 읽듯 그것이려니 짐작만하며 지나간 갔었다.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여 속독으로 다시 읽게 되었지만, 처음 이 책을 마주한 그 당시 받은 감동이랄까, 배움이랄까, 정신적 성숙이랄까, 그 충격에 가까운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화를 안내하는 다른 작품과는 격이 다른 이 책의 문학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문학적 향기가 그리스/로마신화에 얹혀 신화를 읽는다기보다 하나의 소설이나 철학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장면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관련 그림이나 조각, 관련 장소의 사진을 친절하게 덧붙여주어 현장에 있는 듯, 신화를 읽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듯,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신화를 바라보는 사색의 깊이에 읽는 내내 한눈팔기 힘들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다.책을 읽으며 그리스/로마 신화 그 자체에 반했다기보다는, 저자가 신화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향과 깊이, 성찰력에 탄복하였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이렇게 서두가 길어진 것은 그만큼 신화 자체보다는 이윤기라는 작가의 역량과 노고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당시그리스에 거주했던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하여 그리스의 관련 장소에 여러 번 답습하며 이 글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책은 아무나 펴내서는 안 되는 거구나.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할 정도의 지적, 철학적, 예술적, 심리학적, 문학적 역량이 있고, 독자를 위한 사명감과 사회적 성실함 등을 갖춘 사람만이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한 책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 차원의 신화 소개서가 그만큼 서점에 많기 때문일 것이다.이야기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크레타 섬의 미궁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겐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로 더 유명한 곳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잡고 나오듯이, 독자들도 상상력이라는 실타래를 갖고 신화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한다. 신화는 애초에 상상력으로 지어진 것이니 상상력의 실타래로 밖에 풀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독자에게 일침을 가한다.‘신화는 미궁과 같아서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독자는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라. 일단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아라. 필자가 뒤에서 짐받이를 잡고 따라가겠다.’ 저자의 자신감 있는 안내를 받으며 독자는 12꼭지의 글로 들어간다.신발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영웅 이아손의 모노산달로스(monosandalos, 하나의 샌들)이야기로 시작하여 테세우스의 신표, 신데렐라와 콩쥐의 유리구두와 꽃신, 반갑게 뛰어 맞이하는 ‘버선발’, 이별의 관용구가 되어버린 ‘신발 거꾸로 신기’ 등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대지와 사람 사이의 얇은 고무밑창 하나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신발은 어쩌면 문제의 시작점이자 출구점이기도 하다는 말을 저자는 하고 싶은 것 같다.‘신화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인지도 모른다.’는 말로 저자는 신화가 우리의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열쇠, 즉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남겨놓는 것 같다. 신화를 통해 인간 존재를 발견해가라는 의미로 들린다.이어서 신들이 열어가는 처음 세상, 그 카오스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세상은 막막한 혼돈, 여기에 자연이라는 신이 나타나 혼돈상태에 마침표를 찍는다. 카오스에게서 그윽한 어둠의 신 에레보스. 밤의 여신 닉스가 태어난다. 닉스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 녹턴(야상곡)과 어원이 같은 말이다. 두 신이 결혼하여 낮의 신 헤메라가, 대기의 여신 아이테르를 낳는다. 자연은 하늘에서 땅을 떼어놓고, 땅에서 물을 떼어놓고, 뗄 수 있는 것은 모두 떼어놓고, 각기 다른 자리, 다른 이름을 주고... 이 대목을 읽으며 성경의 천지창조처럼 웅장한, 우주적 크기의 대서사시를 읽는 듯한, 신이 되어 그 창조과정을 보는 듯한, 환상에 잠시 젖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신들의 전쟁이야기, 다시 카오스뿐인 듯 숨이 가쁘고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인간세계보다 더 잔혹한 세계가 전개된다.
에밀 1, 2루소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에밀』이 먼저가 아니다. tv에선가 루소의 사상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부터다. 그의 저서 『인간불평등기원론』에 담긴 그의 철학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막연하나마 참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다른 철학자나 철학이야기에 비해 어렵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한 편의 긴 수필을 소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쉽게 동감이 갔다. 분명 강사의 설명이 훌륭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불공평함에 나 자신도 부대끼기 시작하던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왜 저런 논리를 펴지 못했을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과 세상을 설득해보려는 집요함이 느껴졌다. 누구나 갖고 있었어야 하는 당연한 논리를 왜 놓치고 살았는지 안타깝기도 했다.『인간불평등기원론』강의를 들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생뚱맞은 위로였다. 울림이 컸다. 상처 입은 많은 영혼들이 그의 저서에서 나처럼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그런 그가 교육에 대한 책을 썼다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생각해보면, 루소에게서 위로를 받은 게 불평등기원에 관한 그 강의에서가 처음은 아니었다. 누구나 외우듯이 배운, 루소,하면 떠오르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은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경쟁에 치이고, 회색빛에 치인 사람들에겐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캄캄한 밤바다에서 방황하는 인류에게 한 줄기 등대빛이 되어왔을 것임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는 루소의 이름만 알던 청소년 시절에도 너무나 당연한 이 말을 늘 격언처럼 마음에서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암튼 난 루소를 이렇게 만났고, 그래서 『에밀』도 읽게 되었다. 교육철학서의 제목이라기엔 무척 정겨운 제목이다. 철학서라기엔 교육서 같고 교육서라 하기엔 문학서 같다. 철학이 어려운 나의 입장에서는 문학서 같은 교육서에 가까워보였다.『에밀』은 ‘-교육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다.에밀은 5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이의 심신발달과정을 몇 개의 단계, 시기로 구별한다. 어린아이부터 청년까지 5단계로 구분 짓고, 각 단계별로 1편씩 5편으로 구성하고 있다.순수한 감각의 1단계, 감각적인 이성에 의해 적부를 판단하는 시기를 2단계, 지적이성이 발달하게 되어 행불행과 선악을 식별하는 시기를 다시 셋으로 나누어, 총 5단계로 구분한다. 감각교육, 사물교육, 육체교육이 가장 상세하게 설명된 곳은 2편으로써, 3세에서 12세까지의 시기이다, 라는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법, 느끼는 법, 생각하는 법이 잘 나타나 있다. 문학가와 심리학자다운 루소의 일면이 최대한 드러나 있다. 3편은 사춘기 직전, 4편엔 15세에서 20세까지의 제2의 탄생에 해당하는 청년기, 5편은 소피아와의 결혼에 이르는 단계를 다룬다.『에밀』은 사회계약론과 함께 집필되었고, 사회 계약에 의한 이상사회에 만족시키는 시민이 될 기초를 구축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루소가 교육론을 펴기 위해 선정한 이라는 등장인물은 사교계라는 극도로 인위적인 환경에 있으며 악습에 둘러싸여있는 귀족의 자제로서 고아 학생이다. 청순한 자연 즉 전원 속에서 교육하는 교사로서 그 학생과 완전히 신뢰 관계에 있는 교사, 이상적인 교사로 루소의 자신의 분신을 배치한다.루소는 『에밀』을 통해 좋은 교육이란 나쁜 감화를 미치는 교육과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 유래되는 일체의 것을 물리치고, 인간 단계 중 가장 순수한 자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아이에게 그 본연의 자유를 자연에 귀의하게끔 해줘야한다고 말한다. 소극적인 교육을 주장한다.이 책속엔 잠언 풍의 말이 수없이 나온다. 『에밀』의 머리말의 시작은 이렇다. 여기서 어머니는 루소에게 이 교육론을 의뢰한 귀족인 슈농조 부인일 것이다. 루소는 그들 귀족의 자제들이야말로 이 소극적 교육이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루소는 다시 말한다. 루소가 얼마나 겸손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는지가 보인다.제 1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에밀(Emile)」은 이렇게 중대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루소에게 선택된 가상의 학생이다.
미학 오디세이‘미학’이라는 용어에 지금보다 조금 더 낯설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 아직도 낯설지만 말이다. 다행인 것은 제목이 주는 묵직함에 비해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집 책꽂이에 꽂혀있는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귀엽고 작은 책이지만 촛불을 바라보는 몽상적인 세계에 , 시적인 세계에 어렴풋이나마 잠겨 들어갔던 것 같다. 어려운 용어도 많이 나왔지만 건너뛰며 읽을 만했다. 한 사람의 몽상가가 고독한 불꽃을 응시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혼자 타오르면서 혼자 꿈꾸는 것, 소박하면서도 면밀하고 광적이기도 한 것, 불꽃의 많은 이미지 중 하나로 기억된다. 불꽃의 촉촉한 소리라던가, 불꽃의 수직성이라든가, 촛불의 시적 연주라든가 아주 아름다운 표현도 나왔다. 어려운 용어 속에서도 빛나는 시적 언어들이 가득했다. 촛불 하나 갖고도 책 한 권을 써낼 정도로 깊숙한 내면의 생각을 써내려간 바슐라르의 책을 읽게 된 건 행운이었다. 이것이 막연하나마 미학이라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내면을 바라보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과 내면, 본질과 본질의 교류를 응시하고...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해석할 수 없더라도 우리의 안과 밖에 확실히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사색, 이게 미학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렇게 해서 미학오디세이도 반갑게, 겁이 없이 읽게 된 거 같다.이 책의 겉표지를 펼치면, 두 장의 붉은 빈 페이지가 지나간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 나오기 전에 한 장의 하얀 빈 페이지가 더 나온다. 이 하얀 페이지 상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짧은 문장이 적혀있다. 마치 텅 빈 사막의 지평선 위로 가느다란 구름 한 점 떠 있듯이.-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내가 생각하는 미학 책다운 아이디어다.-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아름다움이 있었다.이렇게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깊게 캐묻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과정, 예술이 주술에서 분리되는 과정, 미학이라는 개념의 등장, 미학이 예술이나 철학 사이에서 자리잡아가는 과정 등의 이야기를 관련 그림들과 함께 안내한 책으로 보인다. 가상과 현실을 애매하게 잇는 에셔의 모호한 그림으로 단락을 구분하여 전개하는 방식도 독특하다.가상도 현실도 아닌 것 같은 에셔의 그림은 이미 독자를 몽롱한 세계에 빠뜨려, 독자로 하여금 경직되지 않은 시선으로 예술을 들여다보게 하고, 저자의 설명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도록 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셔의 그림은 무에서 유, 신에서 인간, 죽음에서 삶으로 무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최소한 내게는 어려운 미학 이야기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음악처럼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그러나 철학용어는 아직 내게 어렵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며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책, 서두에 부치는 말에서 저자는 새로운 미학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미학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것은 첫째, 미학을 예술철학에서 감각론으로 새로 정립하는 것. 둘째, 미학과 윤리학 사이에 존재하는 근원적 연관을 다시 화복하는 존재미학의 구상, 셋째, 자연을 대화의 주제로 바라보는 생태미학이란다. 이 세 가지를 유기적으로 구상하는 현대미학을 구상하고 싶다고 한다. 어렵다. 조금은 알아들을 듯 모르겠다. 그러나 철학용어만 빠지면 미학도 제법 흥미로워 진다.이야기는 별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한다. 고대엔 철학자가 윤리학자였고, 천문학자였고, 수학자였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저자는 과거 고대인의 순수한 감성을 먼저 부르고 싶어 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별 이야기야말로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순수의 세계이다. 하물며 고대인이 바라보는 하늘 이야기야말로 순수와 경외,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순수와 경외감, 두려움은 예술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저 먼 우주의 어디엔가 나의 병을 앓고 있는 별이 있다.’ 저자는 어느 시인의 이런 멋진 싯귀절로 우리를 안내한다. 병을 앍고 있는 별, 이 거짓말이 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이 질문으로 독자를 사색하게 한다. 멋지다. 이렇게 미학이야기는 시작한다.인류 최초의 그림인 알타미라 벽화가 소개된다. 그러나 알타미라동굴의 상처 입은 들소 그림의 생생한 묘사가 너무 훌륭하여 그 묘사력에 의문이 간다고 하면서, 고대인들이 보이는 대로 그렸기 때문일 거라고 추정한다. 뭔 얘기인가 하면, 사냥을 하면서 들소의 모든 것을 잘 알게 된 고대인의 들소에 대한 정보는 대단했을 것이며, 고대인은 유희로서가 아니라 주술의 신비한 효과든, 정보 전달이든 간에 예술의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는 상태로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추정을 한다. 개념적 사유를 잘 못하는 원시인들이었기 때문에 ‘벌거벗은 눈’, 그야말로 보이는 그대로의 눈으로 그렸기 때문에 묘사가 훌륭해졌다는 이야기엔 왠지 비약이 있어 보였지만 이런 가설도 세워봤다는 게 더 대단해보였고 이 가설을 확신하는 문장에선 위험함도 보였다.-‘원시인들이 가장 경탄스럽게 바라다 본 건 아마도 다시 찾아온 봄이었으리라.’라는 저자의 말은 미학자들만이 불러낼 수 있는 원시의 기억일 것이다.내일 아침에 해가 뜰 것이라는 확신도 없던 시절, 주술이 삶의 큰 부분이 되고, 인간은 신의 자리 가까이에 인간을 모셔두게 된다. 저자는 이런 주술에서 예술은 분리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들이 알지는 못했지만 주술의 효과였든, 지식의 저장이었든, 정보전달의 수단이었든, 뭔가를 그려냄은 고달픈 삶의 위로였을 것이라고 한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세상에는 경제학은 모르지만 누구보다 투철한 경제적 마인드와 사고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저자들은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저자들은 인간이 비록 수요와 공급법칙, 한계혁명, 매몰비용 등 어려운 경제학 용어와 원리를 배운 적이 없어도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이론들에 기반하여 그들의 의사를 결정하고 환경을 조성해왔음을 강조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인문학을 통해서 증명하고 설명함으로써 경제학을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해법을 제시하는 일상생활을 반영한 학문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또한, 경제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독자들에게 경제학에 대한 흥미를 쉽게 이끌어내기 위해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제학 용어와 원리들을 신화, 역사, 소설 들과 엮으면서 이해히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북유럽신화의 주인공이 오딘이 눈을 잃은 설화를 기회비용으로 설명하고,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찾아 떠나는 지하세계 여행이야기를 매몰비용으로 엮었으며, 헤라클레스의 능력을 절대우위와 비교우위 관점에서 비교하여 헤라클레스는 외양간 청소부보다는 영웅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회비용이 낮다고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또한, 함무라비 법전의 50%를 넘는 경제 조항들과 가격통제 내용을 통해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수천년 전에도 존재한 매우 인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최근,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고 있으며, 글로벌 무역에 의존이 큰 우리 나라의 경제는 풍전등화와 같은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이러한 글로벌 불균형으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은 수백년 전에도 아편전쟁을 불러왔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 당시 지금 미국의 지위를 누리는 영국은 막대한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은 지금의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전쟁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실제 중국과 미국간의 글로벌 불균형으로 인해 중국이 막대한 수익으로 미국의 채권을 사들이고, 이로 인해 유동성이 풍부해진 미국은 금리하락으로 인한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버블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불균형의 문제로 인한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것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3년전 이미 정확하게 예언하였다고 볼 때, 지금 미국의 무역전쟁은 또 다른 위기를 막기 위한 나름의 이유있는 전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근본적인 원인을 프랑스 왕실의 재정에 대한 분식회계 때문이라는 해석은 매우 인상적이다. 프랑스 왕실은 만성적인 적자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스위스의 성공한 은행가 네케르를 고용하고, 그의 분식회계 덕분에 더욱 사치스런 재정지출을 지속하다가 결국에는 민중혁명이라는 큰 대가를 치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 있어서 화폐의 출현(물품화폐-금속화폐-지폐화폐)과 화폐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화폐의 가치 저장 기능으로 인해 신분제(계급)사회가 등장하고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며,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화폐의 가치 저장 기능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인식하는 대목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신용화폐의 등장이 결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공황을 이끄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최초의 시장경제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언제일까? 사유재산제도와 주식회사 등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시장경제는 로마시대에 구축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유재산은 프리바투스라는 라틴어로 나누었다와 약탈하다라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사유재산이 전쟁에서의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났음을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주식회사는 로마시대 퍼블리카나라는 조직이 파르테스라는 오늘날 주식에 해당하는 소유권을 나누어 가졌던 형태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비록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그들이 향유한 시장경제시스템은 로마법을 통해 오늘날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어느 시점에서 최적으로 보였던 의사결정(행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최적이 아닌 현상을 시간비일관성이라 하며, 200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키들랜드와 프레스콧이 발표한 이론이다. 저자는 이 이론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적용하여 하루 하루 단위에서 베르테르에게는 로테를 찾아가는 것이 최적의 행동이나 결국 장기적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르테르에게는 로테를 찾아가는 것을 결코 최적의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을 통해 키들랜드와 프레스콧이 주장하는 중앙은행의 경기침체 부흥을 위한 재량 정책이 시간비일관성에 해당하며, 비록 하루 하루 단위해서는 희생이 따르더라도 특정한 규칙에 근거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통해 가격차별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는데, 의뢰인의 재산상태에 따른 지불용의금액에 따라 사례금을 차별적으로 요구한 셜록 홈즈는 기업으로 가장 이윤을 극대화하는 가격차별 1급을 실천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영국 경제학자인 피구가 만든 이론으로 가장 강력한 가격차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양에 따른 차별이 2급 차별, 수요의 가격탄력성에 따라 소비자를 차별하는 3급 차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아울러, 많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론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포획이론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규제기관이 피규제기관에 포획을 당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되는 현상으로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스티글러가 주장한 이론이며, 그는 규제경제학의 창시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포획이론을 해리포터 소설에 적용하여 악한마법사를 규제해야하는 마법부과 오히려 그들과 결탁하여 휘둘리는 모습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그리고, 시카고대학교 행동경제학자로서 유명한 리처드 탈러의 넛지이론을 레미제라블을 통해 설명하는데, 대주교가 장발장에게 건넨 은촛대가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즉 리처드 탈러가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즉 넛지)으로 엮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