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 속 캐서린의 여성주의적 분석Ⅰ. 서론나는 사실 청소년 시절에 문학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의 두께가 조금씩 두꺼워지고 종이 한 장에 검은 글자가 더 빽빽하게 들어설 때 즈음, 마치 먹기 싫은 음식처럼 책 읽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 전의 어린 나는 수업시간에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조금 더 컸을 때는 혼자 글을 쓰기도 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러했던 나의 모습을 10년 넘게 지켜보신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책에 대한 나의 변심이 의아하셨고 한편으로는 걱정하셨다. 그래서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몇 권의 명작들을 사와 나에게 권하셨다. 그 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였다. 중학생의 내가 그들의 감정이나 행동의 당위성을 물론 완벽히 받아드리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섬세한 감수성을 가졌던 그 시절의 나의 관심을, 제인 오스틴의 글이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했다. 나에게는 그저 순정만화 같던 그 소설을 통해 나는 다시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이런 추억에서 비롯된 제인 오스틴에 대한 막연한 흥미가 올해 그녀의 초기 작품인 ‘노생거 사원’을 읽어보게 만들었다. ‘노생거 사원’은 그녀가 집필한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과는 다른 모습을 띈다. 특히 그 주인공 캐서린은 다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순수하고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나에게 책을 읽는 재미를 선사했다. ‘노생거 사원’이라는 이 소설 자체는 이전보다는 조금 이해도가 성장한 나의 시선으로 바라 봤을 때 여태 가지고 있던 작가에 대한 막연한 호의적 흥미와는 다른 비평적 시선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을 집필했던 그녀의 글 속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이 어떤 부분에서는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보수적이고 이런 것들이 나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노생거 사원’의 주인공인 캐서린을 현대의 여성주의적 시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노생거 사원설은 “캐서린 몰랜드의 어릴 적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녀가 소설의 여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노생거 사원 1)라며 시작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그녀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신데렐라 스토리에 완벽히 부합하는 억척스러운 성격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소녀들이 즐기는 미술, 음악에는 소질도 관심은 없고 소년들이 즐기는 놀이를 좋아했으며 아둔하고, 외적으로도 예쁘지 않은 축에 속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설명을 통해서 캐서린은 기존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유약하고 자기희생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을 뒤집는 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김선희 7).그녀의 평범한 태생이 강조되는 것은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캐서린을 통해 기존의 소설들 속 남성우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여주인공 전형을 타파하려고 노력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확실히 ‘노생거 사원’이 쓰인 시기에서는 진보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캐서린의 완벽한 평범함은 그녀가 15살이 되기 이전까지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캐서린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소년들이 즐기는 게임보다는 소녀들이 즐기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반면, 캐서린의 외모가 나아지고 심지어 예뻐졌다는 서술은 평범한 여주인공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차근차근 여주인공이 되기 위해 희생적 모습의 여성이 등장하는 책을 읽고 미술, 음악을 배우는 등의 노력을 했다는 것도 결국은 성공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갖췄다는 의미이다. 그 시대의 여주인공이 로맨스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어쩌면 필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가 우선적으로 캐서린은 다른 여주인공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확신한 것에 반해 캐서린이 여주인공으로 서기 위해서 외적, 내적으로 평범함을 어느 정도 탈피하였다는 점이 서술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점이 오히려 관습적 신붓감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할 수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마차를 세우기를 존에게 요청하지만 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마차를 몬다. 빠르게 움직이는 마차를 혼자서는 멈출 수 없는 캐서린은 그저 포기한다. 이 상황에서 존 소프는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의 표본이다. 마차를 몰고 있는 존 소프라는 남성에 의해 유약하게 순종할 수밖에 없는 캐서린이라는 여성이 그 시대의 남성 중심적인 풍토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김국하 28). 작가는 이 모습을 통해서 남성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향해 권력을 휘두르는 부당함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처음에 캐서린은 존 소프의 행위에 굴복하며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존 소프가 두 번째로 이런 행위를 했을 때, 그녀의 태도에서는 변화가 나타난다.존 소프와 이사벨라는 캐서린에게 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캐서린은 이미 틸니 남매와 산책 약속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존 소프는 무작정 캐서린에게 산책 약속을 미루고 여행을 가자고 요구했고 캐서린은 거절하지만 그는 또다시 무례한 짓을 저지른다. 헨리 틸니의 여동생에게 가서 자신들과의 약속이 선약이었다고 거짓을 말한 뒤 틸니 남매와의 약속을 미룬 것이다. 이 역시 존이라는 가부장적인 남성이 캐서린을 향해 일방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굴복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한 것을 보여준다. 캐서린은 이 상황에서 이전처럼 자신의 입장 피력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소프 씨는 그런 말을 만들어낼 권리가 없어요”(노생거 사원 91)라고 말하며 그의 행동을 묵과하지 않고 강하게 잘못을 질책한다. 또한 그가 저지른 무례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로 걸어서 틸니 남매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데 마차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걸어감으로써 캐서린이 가부장적인 강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강조한다(김국하 28). 이렇게 그녀가 남성의 강압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모습에서 그녀가 유약하고 남성에게 희생하는 온실 속 화초숨겨야 한다”(노생거 사원 100)라고 서술한다. 소설의 서두부터 캐서린이라는 캐릭터는 절대 총명하지 않다고 설명되어 있다. 캐서린은 미술에도 역시 전혀 소질이 없고 관심이 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틸니 남매가 미술 작품을 보며 나누는 대화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식이 풍부한 헨리 틸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비춰졌다는 것이다. 틸니가 미술에 대해 무지한 그녀에게 강의를 하는 동안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캐서린과 헨리에게는 이 상황이 매우 로맨틱한 상황이었겠지만 여성의 무지함이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여성이 남성의 지적인 능력을 떠받들어야만 한다는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캐서린의 무지함과 그에 의한 지적인 부분에서의 수동성을 풍자하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캐서린이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명백하게 헨리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그들이 결혼으로 가는 계기 중 하나였다. 장면 속에는 지속적으로 그녀의 무지함이 헨리를 매혹시켰다고 강조되어 있으며 그것이 명백한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여주인공의 무지함이 남주인공이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한 요소였다는 것은 마치 여성이 교육을 받아 지적 수준이 높더라도 남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숨겨야 여주인공의 대열에 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다. 결국 그녀의 무지함이 작가에 의해 조롱당하고, 실제로 작가가 여성들의 무지함이 강요당하는 것을 배척하려고 하려는 의도였더라도 캐서린의 가장 큰 매력은 그 무지함이었다는 것에서 아이러니한 것이다.그녀의 무지함, 순수함이 매력이 될 수 있었던 큰 요인은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기지 않고 순수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점이 작가가 캐서린이라는 캐릭터가 기존의 남성에게 주로 사랑을 받던 여주인공들에 비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캐서린과 헨리가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캐서린은 헨리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 사벨라가 캐서린의 오빠인 제임스와 여러 번 춤을 추는 것을 꺼리는 것과 대비된다. 이사벨라 역시 제임스를 좋아했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그의 요청에 투덜대기 때문이다. 또 캐서린이 아주 의도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헨리 틸니의 여동생을 처음 만났을 때 끊임없이 헨리가 그곳을 떠난 것이 아닌지, 그와 이전에 춤 춘 자신 이외의 여성에 대해 물어본다던지, 그들이 무도회에 참석할 것인지에 관한 것들을 물어봄으로써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해 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행동들을 통해 헨리의 여동생은 그녀의 애정을 눈치 챘음에 틀림없다. 이런 적극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캐서린의 모습은 순수함도 비춰지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마치 그 감정이 새어나가는 것이 부끄럽고 조신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수동적 여성상에 반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캐서린이 존 소프에 의해 처음으로 틸니 남매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었을 때에도 그녀의 솔직함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그들과의 산책 약속이 존 소프의 거짓말로 인해 무산되고 난 후에 헨리를 만나게 되어 사과를 하려고 하던 상황에서 그가 그녀를 향해 보이는 너무나도 쌀쌀 맞은 모습에도 그녀는 창피해하거나 좌절하거나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적극적으로 사과를 할 기회를 찾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프 씨에게 마차를 세워달라고 열심히 부탁했어요. 마차를 세우기만 했다면 당장 뛰어내려서 당신들에게 달려갔을 거예요”(노생거 사원 85)라고 말하며 틸니 남매가 그녀 없이 간 산책이 즐겁기를 빌어주지 않았다고 당돌하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서 “이런 선언에 무감각할 수 있는 헨리가 어디 있겠느냐?”(노생거 사원 85)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캐서린의 솔직하고 순수한 태도가 헨리 틸니의 마음을 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캐서린의 순수한 마음이 그녀가 그녀의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함으로써 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습이 분이다.
숙명여자대학교중국차와 아편전쟁목차Ⅰ. 서론Ⅱ. 본론중국차에 관하여-중국차의 역사-중국의 10대 명차-중국차와 우리나라중국차와 아편전쟁-영국의 차 유행과 아편전쟁-아편전쟁의 의의Ⅲ. 결론Ⅰ. 서론중학교 재학 시절, 중국으로 출장 다녀오셨던 외삼촌께서 우리 가족을 위해 자스민 차를 선물하신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한자가 잔뜩 적혀진 그 차를 보고 과연 맛이 있을까 우려하다가 등교할 때 어머니가 텀블러에 담아주신 따뜻한 차를 학교에서 마셨다. 처음엔 녹차와 비슷한 그저 맹맹한 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먹다 보니 향기가 좋고 깔끔한 뒷맛이 차에 대해 좋은 인상이 남게 된 시작이었다. 그때 외삼촌은 자스민 차 이외에도 몇 가지의 선물을 사오셨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기억 속에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담백한 그 맛이다. 매우 어릴 때부터 이미 마셔왔던 녹차 역시 사실 어린 나의 입에는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으나, 추운 날이면 입을 깔끔하게 만들어 줄 그것이 가끔씩 생각나고는 한다. 한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얼그레이’ 홍차에 빠져 쉬는 시간마다 나누어 마신 적도 있었다. 사실 ‘중국 역사의 진실’ 수업을 수강하기 전, 나는 중국에 대해 아무 것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과 나의 연결점을 찾아보고자 고민한 끝에 나의 기억 속에 ‘차’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살짝 잊고 있던 나의 추억까지도 기억해냈다. 그리고 학창시절 배웠던 중국사 속에 가장 인상 깊었던 ‘아편 전쟁’ 역시 차와 얽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따라서 나는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차를 조사해 보고 이와 엮어 중국사를 바라보아 ‘차’에 기인하여 발생한 아편전쟁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중국차에 관하여-중국차의 역사중국차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전설 속 중국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 전설 속 삼황 중 한명인 신농씨가 차를 발명한 주인공이다. 물론 신농씨는 전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이찻잎이었다. 신농이 저술하였다고 전해지는 식경(食經)에서는 ‘차는 오래 마시면 힘이 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적혀 있는데 이것에 따라 기원전 2737년 신농 황제의 집권 무렵 인류가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육우(陸羽, 727~808)의 다경(茶經)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한(漢)나라 이전에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록도 아직은 불명확하기 때문에 학술적인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의 자료들은 다소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가장 정확한 기록을 보자면 기원전 59년까지 되돌아와야 한다. 왕포(王褒)라는 선비가 전한(前漢)의 선제(宣帝) 때 쓴 동약이라는 문서에 왕포가 자신의 종들에게 지시하는 업무로 차를 사오는 일과 차를 대접하는 일을 포함시켰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차의 기원은 아니지만 전한 시대에는 차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초기의 차는 문인과 선비들이 즐기는 것이었다. 차는 사치스러움에 반하는 상징물이며 청렴결백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식용된 차는 약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에 언급했듯이 차의 해독능력이 가장 강조되어 인류들에게 이용되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이 물에 달여 먹지 않고 생으로 씹어 먹었다. 그러나 진한 시대 부터는 물에 달여 먹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즈음부터 차는 기호 식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서한 시대부터는 궁중 전체에 보급되었다. 중국에서 차는 술을 대신할 중요한 음료가 되었다. 명대에 들어서면서는 중국차가 더욱 일반화되어 다른 나라에까지 퍼지게 된다. 청대에는 이미 지금의 우리가 즐기는 차의 모습과 비슷할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자스민과 같은 화차(化茶)가 유행하고 홍차가 등장했다. 기타 명차들도 엄청나게 생산되었으며 그 종류가 100 가지가 넘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차는 중국사람 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중국의 10대 명차중국에는 10대 명차가 존재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라고 할 그 기준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명차라는 것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까다로운 기준을 모두 통과한, 흔히 분류되는 중국의 전통 명차 10가지를 소개해 보겠다.ⅰ. 서호용정(西湖龍正) : 서호용정의 서호는 절강성의 유명한 호수 이며 용정은 그것에 가까운 산이며 지명이라고 한다. 녹차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차이다. 비타민 C가 많이 함유되어 있고 황제에게 바치던 차로 지금도 선물용으로는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용정차는 현재 중국에서도 잘나가고, 해외에서도 역시 많이 찾는 중국차이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이것은 산지에 따라 서호 근처의 서호용정, 매가오 부근의 매오용정, 그리고 사봉산의 사봉용정으로 크게 나누기도 한다.ⅱ.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 : 동정벽라춘의 동정은 강소성 동정산에서 따온 명칭으로 이곳에서 흔히 생산되어 붙었다. 맛과 향이 굉장히 좋아 청나라의 강희 황제가 굉장히 좋아해 벽라춘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 이름을 받기 전에는 하살인향(煞人香茶, 사람을 죽이는 향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과일과 함께 자라는 차나무이기 때문에 벽라춘에는 꽃향과 과일향이 난다.ⅲ. 군산은침(群山銀針) : 군산은침의 군산은 소남성의 동정호라는 호수의 간운데 군산(君山)이라는 섬에서 따온 것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군산은침은 그 모양이 뽀족하여 바늘같아 이름이 군산은침이 되었다. 차를 우리면 찻잎이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ⅳ. 육안과편(六安瓜片) : 안휘성 육안과 금채 양현에서 생산되는 차로 찻잎 모양이 해바라기 씨를 닮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이름이 과자편(瓜子片)이였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보급된 것은 100년도 되지 않는다.ⅴ. 황산모봉(黃山毛峰) : 안휘성 황산시에서 생산되는 차로 찻잎에는 은백색 털이 나 있다. 그 모습이 산과 비슷하여 모봉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ⅵ. 태평후괴(太平魁) : 안휘성의 태평 호숫가 일대에서 생산되는 차로 꽃향이 나는 . 여러번 우려 먹어도 그 향이 변하지 않는다.ⅸ. 기문홍차 (祁門紅茶) : 안휘성 기문현에서 생산되는 차로 벌꿀, 사과 같은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차는 오래 되기도 하였고, 영국 귀족들이 즐겨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ⅹ. 봉황단총 (鳳凰單叢) : 광동성의 봉황산에서 생산되는 청차이다. 광동 우롱차 중에 가장 품질이 좋고 꽃향이 난다. 그 맛이 감질맛이 나서 처음에는 떫으나 그 후에 단맛이 돌아 계속 마시고 싶어진다.이렇게 10대 중국 명차를 간략히 소개해 보았는데, 설명만으로도 그 향긋한 향기가 맡아지는 것 같고, 입이 텁텁한 요즘 가을, 겨울 날씨에 따뜻하게 목을 축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중국의 국토가 넓은 만큼 각지에서 생산되는 10대 명차의 특징이 두드러져 그 종류가 다양해진 것도 중국차가 이렇게 성행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중국차와 우리나라중국차에 대해서 조사할 수 록 어떻게 이 차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오래 전의 이야기라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차 전래 설들은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가야국의 수로왕의 인도 출신 왕비 허황옥(許黃玉)에 의한 것이다. 허황옥은 중국 사천(四川) 보주(普州)에서 정착하였다가 혼수품들을 싣고 수로왕에게 시집을 왔는데 그때 그녀가 가지고 온 혼수품에 차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가야의 문서 가락국기에 가야 왕들이 제사를 지낼 때 그 상에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가야에 차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 다른 설로는 신라 사신 대렴(大廉)에 의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당나라 사신으로 당에 방문했던 대렴공이 차 씨를 가지고 신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는 차가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때 이미 신라에 있었다고 서술해 이 시기에 차가 우리나라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 들어온 차는 모두 중국을 통한 중국차였으며, 그 향과 맛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즐겼다. 한 예로 우리가 모두 잘 아는 등도 굉장한 유명세를 탔지만 그 중 으뜸은 역시 중국차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러, 폐쇄적이던 세계가 모두 개방됨에 따라 중국의 차 수출은 중국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지고 오는 것처럼 보였으나, 중국 역사에 있어 엄청난 전쟁을 일으키는 주원인이 되었다.-영국의 차 유행과 아편전쟁아편전쟁은 1840~1842년 사이에 청나라와 영국에서 발발한 것이다. 18세기,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청과의 무역을 시작했다. 청은 영국에게 비단과 홍차를 수출했고 영국은 소량의 향료와 모직물을 수출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서양의 모직물이나 향료는 크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는 전적으로 청에 이득이었던 거래였다. 그런데 18세기 말 영국 정부가 차에 대한 수입세를 내리면서 영국인들의 차 마시는 풍습은 거의 유행처럼 번졌다. 따라서 영국의 홍차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중국에 대한 수입초과현상, 그리고 영국의 은이 대량 중국으로 유입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태를 영국에서 가만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당연히 영국은 청으로 대량 유출되는 은을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해 방법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위기에 몰린 영국이 생각해 낸 것이 아편이었다. 아편은 인도에서 생산되는 마약으로, 영국은 청의 은을 되찾아 오기 위해 청에 아편을 대량 밀수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 당시 청에 대한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동인도회사는 청에 아편을 밀수출하는데, 아편이 마약인 만큼 많은 중국인들이 이것에 중독되어 아편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고위층, 혹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되어 있었다. 심각성을 느낀 중국정부는 여러 번 금지령을 내렸으나, 그 중독이 심한만큼 금지령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일이 더욱 심각해지자 1839년 청 정부에서는 강력한 아편 금지론자인 임칙서를 앞세운다.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의 아편 밀수입 장소에 가서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시키지만 지켜지지 않자 가지고 온 아편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 이것.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의 분석과 안데르센 동화의 특징목차Ⅰ. 서론Ⅱ. 본론1.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과 그의 분석2. 안데르센 작품의 특징. 안데르센의 삶. 안데르센의 삶이 반영된 작품. 안데르센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작품. 그림형제와의 비교를 통한 안데르센 작품의 특징Ⅲ. 결론Ⅰ. 서론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은 탄생과 동시에 많은 이야기책과 동화를 접하게 된다. 동화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길러주며 그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장한 성인들도 그 환상을 어느 정도 품은 채 살아가기도 한다. 동화라는 인간이 어쩌면 가장 먼저 접하는 문학의 장르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교훈이나 지혜 등을 얻는 중요한 매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어린 시절 동화를 통해 받는 감동이나 여운은 오래도록 그들의 가슴 속에 남아 평생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어린 시절의 동반자와 같은 동화를 떠올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생각해 내는 것에 분명 안데르센의 작품이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성인들에게 동화작가를 묻는다면 필시 대다수의 사람은 안데르센을 말한다. 이처럼 안데르센의 동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안데르센 그 자신은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들 역시 사랑하는 작가이다. 안데르센의 대표작품으로는 잘 알려져 있는 ‘인어공주’나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그리고 ‘눈의 여왕’ 등이 있다.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 역시 그의 작품 중 하나인데, 앞서 말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다른 동화만큼 작품성이 좋으며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므로 이 작품을 분석해보기로 하였다. 또한 그의 작품은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다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작가에 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평생을 함께 할 여운을 남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Ⅱ. 본론1.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과 그의 분석‘늪을 다스 신부는 족장들과 머무르다가 ‘헬가’를 마주치게 되거, 인간인 헬가는 성미가 난폭하여 이 신부를 죽이려고 시도한다. 신부는 헬가에게 성수를 뿌리면서 악령은 물러나고 은총을 받으라고 명령하며 그녀가 마법에 걸렸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그녀의 마법을 풀어주기 위해 성 안스가르에게 데려가기로 한다. 그러나 신부와 헬가가 성 안스가르에게 향하는 도중 산적을 마주치게 되고 신부는 죽게 된다. 죽은 신부는 무덤에 묻히게 되었는데, 그 순간 그의 무덤 위에 나무로 된 십자가가 피어나고 그 무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는 순간 헬가의 마법은 풀리게 된다. 그때 불꽃 속에 신부가 나타나 헬가가 늪의 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헬가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자신이 떠올랐던 늪으로 향하게 되고, 그녀가 늪에 얼굴을 비추는 순간 자신과 똑같이 닮은 여인의 얼굴을 본다. 그녀는 바로 헬가의 어머니로 이집트의 공주였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헬가를 족장 부부에게 데려다 준 황새는 이집트의 공주가 늪에 왔을 때 함께 가지고 왔다가 버려진 백조의 옷 두 벌을 모녀에게 전달해 주고, 모녀는 이집트로 돌아가게 된다. 왕의 병을 낫게 할 꽃을 가지고 간 모녀는 좋은 대접을 받았는데, 헬가는 성 안에서도 자신을 사랑으로 길러주었던 바이킹 족장 부부를 잊지 못하였다. 행복하지만 허전한 일상을 보내던 헬가는 아라비아의 젊은 왕자와 결혼을 하기로 하였는데, 결혼식 날 그녀가 천국에 한번만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 진 것인지 잠시 동안 황홀한 세계를 경험하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 그 모습은 그녀가 알던 그 세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순간 헬가는 그녀가 천국을 경험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황새를 다시 만나고 말을 걸지만, 그 황새는 그녀가 대화하던 것이 아니었다. 황새가 말하길 헬가의 이야기는 그 황새의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이며, 헬가는 결혼식 당일 날 사라진 여인이라고 알려준다. 그녀가 천국을 경험한 시간은 체감 또한 시작과 끝에 황새들이 허구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삽입하여 이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구분하지 않고 몰입하지만, 이야기가 끝이 난 후에 아빠 황새의 대사가 작품의 허구성을 다시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은 다른 동화에 비해서 확연히 긴 길이로 구성되어 있지만 다른 동화들과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내용과 안데르센의 가치관 등을 잘 반영하고 있다.2. 안데르센 작품의 특징안데르센의 작품 중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덜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았는데, 위와 같이 안데르센의 작품에는 안데르센의 많은 가치관들이 반영되어 있다. 그림 형제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림 형제는 어문 학도로서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 구비문학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자 노력하였다면 안데르센은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보였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 확연히 반영되었다. 즉 그림형제의 작품은 신화, 전설 등에서 차용되었다면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현실세계가 주가 된 창작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였고 구비문학이나 구전된 요소를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있는 그대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판타지적 요소나 환상적 세계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가끔씩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작품을 탄생시켜 비판을 받게 하기도 하였다. 그는 어린이만을 염두 하여 동화를 창작하지 않았고 따라서 후에 다시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작품은 언제나 작가의 삶이나 가치관을 투영하지만 안데르센의 작품에서는 특히 그러한 특징이 잘 관찰된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같은 분야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그림 형제와도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삶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삶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그의 기독교적 종교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의 창작물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재혼하게 되는데 이 남자 역시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난다. 그 후 안데르센과 그의 어머니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다. 이렇게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한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은 후에 그의 작품에도 많이 영향을 미친다. 그는 15세의 나이에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홀로 코펜하겐으로 간다. 그러나 무용수, 합창단원, 목수 견습생을 전전해도 아무런 결과물을 낳지 못해 큰 시름에 빠진다. 그러나 그 당시 유망한 정치가였던 요나스 콜린이 안데르센이 17세였던 시절 그의 희곡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라틴어 학교에 진학시킨다. 그 후 대학에 합격하지만 진학하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 ‘즉흥 시인’을 발간해 호평을 받고 약간의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그의 첫 번째 소설이며 그에게 있어 가장 유명한 소설 작품이기도 하다. 같은 해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집’을 내지만 모국인 덴마크에서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시작으로 1872년까지 150편이 넘는 동화를 창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는 어린이가 읽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평이 따라다녔으며, ‘즉흥 시인’을 쓸 정도의 작가가 어린이들을 속이는 동화를 만든다며 혹평 받았다.전반적인 인생 뿐 아니라 안데르센의 사랑은 평생 동안 빛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콜린가의 막내딸 루이즈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인이였다. 이러한 상황에 안데르센은 많은 비난을 샀다. 그는 후에 제니 린트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애인으로는 발전하지 않고 친구로 그쳤는데 이러한 상황이 안데르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안데르센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일생을 여행하는 것에 투자했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상황도 안데르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분명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불우한 그된 것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안데르센은 이 작품으로 상도 탔으며, 자국민들에게도 인정받고 많은 상류층 인사들과도 교제할 수 있게 된다. 그 중 하나로 당대의 유명 작가였던 찰스 디킨스가 있다. 그러나 ‘미운 오리 새끼’는 안데르센의 우울한 과거를 반영한 작품이었다. 그의 불운한 어린 시절의 모습과 사회에 나와서도 출신 때문에 괄시받는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운 오리 새끼가 후에는 백조가 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것 역시 안데르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는 ‘미운 오리 새끼’의 성공으로 상류층 인사들과도 스스럼없이 교제하는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성냥팔이 소녀’ 역시 그의 삶이 주축이 되어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경우에는 자신의 가난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인데, 한 평생을 구걸하던 그녀의 모습이 성냥팔이 소녀와 겹친다. ‘성냥팔이 소녀’ 속 소녀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라나, 추운 겨울 밖을 전전하며 성냥을 팔다가 추위 속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이러한 소녀의 모습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안데르센의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그는 어머니의 불행한 삶에 연민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명 원망의 감정도 느꼈을 것이다. 동화 속 소녀의 죽음은 어쩌면 이런 감정의 표출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안데르센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작품또한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자주 드러난다. 전반부에 소개했던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에서 헬가가 빛이 되어 하느님의 곁으로 가는 장면이나, 하느님의 힘에 겁 없이 맞서다 벌을 받은 타조의 전설 등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화에서도 이러한 안데르센의 가치관을 볼 수 있다. 교회에 갈 때 신을 검은 구두를 사라고 한 할머니의 말을 어기고 빨간 구두를 산 소녀의 이야기 ‘빨간 구두’에도 그것이 드러난다. 동화 속 소녀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가는데 갑자기 구두를 신은 다리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