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7가지 비밀HOW TO MAKE LUCK저자. 마크 마이어스행운이 삶에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결과는 행운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들 중에는 언제나 행운이 가득한 사람. 반면 불행의 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행운이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비밀에 대해 알아보자.저자 마크 마이어스는 뉴욕타임즈 기자로 시작해 편집국장까지 역임하며 스스로를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행운이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7가지 비밀이라는 책을 엮으며 자신과 주변에서 경험한 행운을 이끄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한다.책은 행운이라는 애매모호한 것.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한다. 그리고 누구나 행운을 갖고 있으며, 더 큰 행운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행운이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그들을 돕는 조력자가 있다. 조력자들은 선뜻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내 놓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행운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행운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책을 통해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운과 우연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중략...운은 다른 사람의 행동, 즉 다른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P7-운과 우연을 전혀 다르다. 저자는 운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원하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그리고 이를 깨달은 후에는 원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그 사람들에게 행운이 넘쳐보이는 사람으로 보인다면, 그들은 기꺼이 당신을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행운이라는 단어는 스스로의 궁지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되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행복을 행운이라고 부를 때 그 말은 질투심이나 죄책감이 주는 고통을 달래는 진통제가 된다. -p21-행운이라는 단어는 가장 간편하게 말할 수 있는 행운아가 되는 비법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행운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 받지 않는 방법인 것이다. 뒤에서는 힘들게 일을 하고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구지 다른 사람들에게 밝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노력하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 이는 다른 말로 노력하지 않아 너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게 되어버린다. 사람들의 시샘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행운을 건재지 않는다. 행운 있는 사람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이 이룬 결과물을 행운으로 돌리는 것인 것 같다.솜씨 있는 자기 홍보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과 자신의 업적을 적당하게 말해주어서 듣는 사람이 스스로 결론을 내리도록 한다. 만일 당신이 다 말해버려서 듣는 사람이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기 자랑이다. -p40-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스스로를 상품이라 생각하고 팔아가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나의 가치를 어떻게 매기느냐에 따라 급여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홍보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랑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인상을 갖게 만들지 못한다. 잘하는 것을 일일이 설명을 하는 순간 자기 자랑이 되어버리고 만다. 때문에 적당히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똑똑해서 상대방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때문에 이를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업적을 스스로 상상하여 알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나를 제대로 홍보하는 것이다. 광고를 할 때 상품의 모든 것을 알릴 필요는 없다. 몇몇 특징적 강점을 소개하고 소비자가 스스로 상상하여 상품의 필요성을 느끼고 구매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면, 사람들은 그가 다시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p50-소중한 것을 나누는 것이 진정으로 베푸는 일이다. 내게 필요 없는 것을 나누는 일은 진정으로 베푸는 일이라 할 수 없다. 막상 주변의 누군가가 본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필요로 할 때, 이를 내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소중한 것을 선뜻 누구에게나 내어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것을 내어주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행운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남을 위해 돕는 행동을 하고, 나의 시간을 사용하고, 나의 소중한 물건을 선뜻 건낼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운 좋은 사람들은 영리하게 일하고 모르는 척한다.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치 우연한 행운을 만난 것처럼 놀라고 당황해한다는 점이다.-p57-능청스러운 연기도 필요한 것 같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비법을 원하거나, 남들이 이뤄놓은 결과물을 손쉽게 얻는 것을 원한다.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행동한 여러 가지 일들이 하나로 모여서 행운, 우연과 만나서 좋은 결과물을 만든다. 그러나 나의 노력을 자랑하는 순간 앞서 말한 자기 홍보는 실패로 돌아가고, 아무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설령 본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만든 결과라 할지라도, 공적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리고 행운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땐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당신이 운이 좋아 보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도와주고 보호하고 싶어한다.-p60-사람들에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시샘을 만든다고 말했다. 허나, 행운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샘을 얻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으로 한 번 인식이 되면, 사람들은 행운아를 기꺼이 도우려한다. 자신의 주변에 운이 좋은 사람이 생기는 것이 자신에게도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또는 주변의 행운을 지키고 보호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운이 좋아 보이기 시작하면, 점점 운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용이하다.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곧 운이 좋은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가장 효과적인 칭찬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런 칭찬이야말로 개인적이고 진심 어린 것이기 때문에 환영받게 마련이다. -p70-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든다고 한다. 진심어린 칭찬, 인정으로 사람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 자신을 알아준다는 기분을 느끼면, 필요로 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준다. 때문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행동을 읽고 이를 부각 시켜 주면 된다. 학교나 직장, 가족들의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칭찬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본인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정에 목말라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당신은 칭찬이 가진 힘에 대해 보다 많이 알게 될 것이다.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동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낙관적인 사람으로 보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고, 따라서 원하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다. -p77-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일이 가장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어떤 일이든 낙관적으로 잘 대처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도와준다. 세상에 큰일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일 또한 지나고 나면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니다. 언제나 상대적으로 큰 문제는 생길 수 있다. 인생을 회의적으로 볼 필요는 없으나, 어차피 가진 것 없이 왔다가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생각하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낙관적이고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여유, 낙관, 긍정이 행운을 가질 자격이 아닐까? 그리고 이는 행복으로 이어가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동물농장』을 읽고,생각의 너비를 나누다조지오웰을 좋아한다. 계몽주의적 성격을 지닌 글을 쓴 그는, 최고의 글쓰기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이번 독후감을 통해, 『동물농장』이 갖는 한 구절이 지닌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재적 의미를 찾는 것만이 책을 통해 얻는 것은 아니다. 때론 작가의 의중과는 관계없는 한 줄의 글귀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를 사색하고 간직하고 기억하는 것. 이것이 글을 읽는 재미이자 즐거움이 아닐까.『동물농장』은 조지오웰의 3대 디스토피아 작품(『동물농장』, 『1984』, 『카탈로니아찬가』)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가히 최고의 명작이었다. 레닌 시대의 정치적 사상을 비판하고자 쓰여 졌지만, 책은 우화로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물농장』은 레닌의 독재가 펼쳐진 시대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역사서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또 책은 현대에서도 계속 회고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동물농장』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이를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나는 책이 지닌 굵직굵직한 의미보다는 책의 한 줄, 또는 한 단어가 주는 의미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했다. 때론 『동물농장』의 전체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기도 했으나,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단편 소설이 갖는 생각의 너비를 함께 나누길 바란다.“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달프고, 그리고 짧소. 우리는 태어나 몸뚱이에 숨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먹이만을 얻어먹고, 숨 쉴 수 있는 자들은 마지막 힘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 하오. 그러다가 이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겨지면 그날로 우리는 아주 참혹하게 도살당합니다.”먼저 나는 ‘현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고민했다.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삶엔 언제나 비참한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몸뚱이가 움직이는 한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해야 한다. 돈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에서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시기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길지 않다. 도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스스로 삶의 의미와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야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치 없는 것에 굉장히 차갑고 냉정하다.“동무,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 댕기라는 건 바로 노예의 표시야. 댕기보다 자유가 더 값지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자유에 대해 고민이 일어난 대목이었다.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일까?’, ‘자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아닌, 울타리 속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오늘날 세계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시민혁명을 일으키고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우리가 갖게 된 자유라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관점에서 나는 의문이 든다. 국가의 시스템, 국가 간 시스템, 문화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구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또 개인은 타자와의 관계라는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의 거취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발휘하기에 사회의 시스템이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개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에 나약한 것인지도 모른다.우리는 어설픈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서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설픈 자유는 피로사회를 선사한다. 자유엔 책임이 따르기 나름이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되 그 선택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개인이 스스로가 온전히 받아들여야한다. 이는 개인이 자유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때,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 받게 만든다. 물론 선조의 노력으로 오늘 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매우 값지다. 하지만 자유가 댕기머리보다 값진 것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동물농장』의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우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우유는 처음으로 동물이 개인의 이기심을 채우기 동물농장에서 혁명의 실패를 사라진 우유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유를 독점하려고 한 돼지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나는 지금도 우유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함께 나눌 우유를 독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라진 우유를 되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동물들을 비난해야할까?’ 이 또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잊고 있는 우유와 독점한 우유에 대해 삶에서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다.“아는 게 많았기 때문에 돼지들이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아는 것과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중대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 정보를 모으고 발생할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는 것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지도 역할이란 선택권을 갖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리가 소수 집단 또는 개인에게만 부여되면, 마치 우유를 돼지들이 독점한 것처럼 권리가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도 역할을 맡는다는 건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해야하는 막중한 의미를 지닌다. 지도 역할을 하는 사람을 선출할 때, 단순히 머리가 똑똑하고, 실무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 선출되어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생기는 것이 오히려 한 집단에 손해를 만들 수 있기에 신중해져야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돼지들이 권리를 갖는 것을 당연시 했다.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엉뚱한 사람이 나의 권리를 가져가는 것이다.“내가 더 열심히 할게!”책에서 육중한 근육을 자랑하는 말, ‘복서’가 자주하는 말이다. ‘내가 더 열심히 할게’라는 대사는 익숙하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 ‘열심히 살아’와 같은 말을 많이 듣고 자랐던 것 같다. 항상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배웠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바람직한고 쓸모없어진 그의 끝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내가 더 열심히 할게!’는 멋있는 말이다. 하지만 복서는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위해 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인간의 특징적인 표지는 그의 손이오. 손은 그가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도구입니다.”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손이다. 두발은 인간, 네발은 동물을 상징하고 손은 동물을 괴롭히는 주요 도구로 여긴다. 그만큼 손은 동물들에게 위협적인 것이다. 나는 책을 보는 내내,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배척하려한 동물들의 모습이 아쉬웠다. 과거의 아픔에 연연해 유용할 수 있는 손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대에게서 배울 것, 이용할 것이 있다면 설사 적대관계라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 못된 손을 자신들도 모두 갖게 되었다면, 동물들의 삶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동물들은 단순히 인간들의 지배가 아닌 자신들을 괴롭히는 인간의 손을 미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우유와 사과에는 돼지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동무들, 이건 과학적으로 밝혀진 일입니다.”사과와 우유가 돼지들을 위해서 이용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득방법으로 스퀼러가 말한 것이다. 여기선 ‘돼지 건강이 중요한 것’과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했다.모두의 건강은 중요하다. 하지만 돼지의 건강을 다른 동물보다 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또 과학이란 근거를 통해 결정을 정당화시켰다. 과학이란 진리에 가까운 답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은 맞다. 그렇지만 나는 과학이 진리는 아니다. 과학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처럼 계속해서 그 근간을 바꿔왔다. 과학을 활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과학만을 신봉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맹목적으로 과학을 신봉하는 행동이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용감한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아요. 스퀼러는 말을 계속했다. 충성과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국가에 맹세 글은 충성을 국민에게 요구한다. 이는 한번쯤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할 문제다. 국민이 있기에 국가가 존재하고, 국가가 있기에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 없는 국민의 설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의 뼈에 심어져 있다. 때문에 국가의 존립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의 존립만을 위한 맹목적인 충성과 복종이 옳지는 않다.국가는 ‘국민의’,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한’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국민이 먼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국민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 민족주의 아래 충성을 강요하는 것,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그는 또 지도자(요즘 들어 그는 나폴레옹을 지도자라 불렀다)가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돼지우리보다는 가옥에 거처하는 것이 훨씬 격에 맞다고 말했다.”지도자의 품위유지를 위해 가옥에 거처하는 것. 오늘 날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는 백악관이 있고, 서울엔 청와대가 있다. 그리고 각 나라 지도자의 거처는 품위유지를 위해 뛰어난다. 국가 원수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뛰어난 보안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4대 성인이라고 부르는 ‘공자’, ‘소크라데스’, ‘예수’, ‘부처’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몇 세기가 지났지만 최고의 지도자라 불려도 손색없는 성인들이다. 그들의 거처는 뛰어난 가옥이 아니었다. 안전하지도 않았다.“뭐든 잘못된 일이 있으면 “스노볼이 그랬다”가 되었다.“공동의 적을 만들어 하나로 뭉치는 모습이다. 사건의 진위 여부는 중요치 않다. 미워할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마녀사냥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나약한 사람들에겐 공동의 적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적이 이를 정당화 시켜준다.작중 스노볼이 잘못했다는 증거와 스노볼의 과거 행동을 왜곡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하지만 어느 동물도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의지로 행동하고 있다는 믿음이 진실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허상의 적을 필요로 했다.것이다.
독후감제목 : 싯다르타저자 : 헤르만헤세공자는 말했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그날 죽어도 괜찮다고. 삶은 도를 찾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길을 찾고 새로운 발돋움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 싯다르타가 살아가는 삶은 우리가 살아갈 삶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가 삶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하나의 가르침으로 다가올 것이다.싯다르타! 고타마 시타르타가 연상되는 이름으로 다분히 불교적인 분위기가 풍길 것으로 예상되는 책. 책을 덮을 때까지 책의 주인공인 싯다르타의 삶에 공감하기도, 또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책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저명한 작가로, 대표적으로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에서 등 저명한 책들을 남겼다. 그의 책들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누가 읽어도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싯다르타를 가장 좋아한다. 독일 저자가 쓴 인도 풍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퍽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책은 주인공 싯다르타의 삶을 시간 순으로 잘 그려뒀다. 처음 싯다르타는 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스님이 되어 배움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 삶속에서 다양한 깨달음을 얻어간다. 삶이란 길을 걸으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변해가는 것. 싯다르타에게 배울 것이 아닐까?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p27-짧은 구절이지만 심장이 떨렸다. 좋았다. 오직 하나의 목표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삶에서 많은 것들을 채워나가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좌절을 느끼지만 자신을 보다 몰아세우며 채워간다.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붓는다.반면 비우는 것은 점점 삶을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좀 더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 그 방법이 비워나가는 일인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살아간다. 지나간 과거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다. 싯다르타는 지금을 살기 위해 비우는 것이 아니였을까?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p98-글을 쓰는 것, 사색하는 것, 지혜로운 것, 참는 것.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글이란 사람의 생각을 보다 구체화하게 해준다. 정확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색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아는 지 다음에 사색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지혜로운 사람이 무엇일까? 혹자는 지혜는 스스로 검증한 지식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다가올 미래를 아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보다 대단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평정심을 유지하며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거야. 어린애 같은 사람들은 사랑을 할 수 있지. 그것이 바로 그들의 불가사의한 비밀이야. -p110-사랑은 없다.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만 사랑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어린애가 다시 되어야하는 이유다. 사람은 태어나 어린애가 된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사랑해 살아가기 위한 첫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 만물을 사랑하며 배워간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넣는다. 점차 시간이 지나가며 사랑하는 대상을 선별해 나간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버리면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때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자신의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가득채울 수 있다.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랑을 하고 있다면 아직은 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진실로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라면, 어떠한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법이다.-p162-책 싯다르타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는 도를 구하는 자이나 어떠한 가르침도 마냥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도라는 단어 하나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감히 도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내게 도를 묻는다면, 도는 깨달음을 위한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세상에 비슷하지만 각양각색의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모두가 달라서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세상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지라도 나의 길을 걷는 것이 도를 깨닫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주인공 싯다르다는 어떠한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진정으로 자신만의 도를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자의 도를 어깨 너머로 알 수 있으나 그 도가 자신의 도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사실 그는 여태껏 한 번도 어떤 다른 사람에게 홀딱 빠져서 자신을 몽땅 바칠 수가 없었으며, 자신을 망각할 수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수도 없었다.-p178-사랑은 자신을 망각하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사랑이라는 감정의 달콤함은 독배일지 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무식하게 만들기도 단순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몸을 지배하여 선택 폭을 줄인다. 사랑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자신을 잃고 상대 또한 잃는 소유론적 사랑. 자신과 상대의 존재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존재론적 사랑.하지만 존재론적 사랑은 사실상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않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달콤함 때문에 속세를 떠나고, 타자를 지옥으로 여기고, 만인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한다. 어리석은 것이 어떤 행동인지 알고 잇지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자신을 옥죄고 있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를 잃어가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하고 싶지 않다.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p203-구한다와 찾아낸다.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하는 일은 목표를 갖는 것이고, 찾는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 구체적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정도의 차이가 구한다와 찾아낸다의 차이가 아닐까.삶에서 갈구하며 원하는 어떤 것은 구하는 것이다. 살아갈 때 구해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먹고 살기위해 일하는 것처럼, 의식주에 관해서 구하여야 한다.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구함이란 것은 욕망과 연결되어 언제나 우리에게 쉽게 채워질 수 없다. 그리고 때론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저을 겪는다. 반면,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은 열린 마음이자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도,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것입니다. 열려 있어야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가끔은 나의 길에 도취되어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아갑니다. 허나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목적지를 찍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p206-전달될 수 있으면 지혜가 되지 않는다. 참말로 맞는 말이다. 지혜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지혜란 나라는 우주 속에서 발현된 하나의 고유한 결정체이니 말이다. 아무리 누군가에게 내가 깨달은 것들을 설명하여, 나의 지혜는 상대에게 온전하게 전달될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지혜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내가 깨닫게된 것과 네가 깨닫게 된 것을 결코 서로가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나는 글을 쓴다. 삶에서 소소하게 깨달은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보다 지혜를 통해 보다 나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돕고 싶다. 그러나 전다될 수 없음 또한 안다. 그리고 나의 지혜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도 같아서 세월과 함께 변화한다는 것을. 절대적인 것도 없고 전달될 수도 없는 지혜를 갈구하며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기에 퍽 슬퍼진다.
독후감제목 : 숨결이 바람 될 때저자 : 폴 칼라니티이 책을 처음 알게 되고, 내 손에 잡히기 까지, 그리고 책을 완독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우연아 아닐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는다면, 우습게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이다.내가 할 수 있는 답이라곤, ‘그냥 느낌이 그래요.’ 밖에...‘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의 제목만 보아서는 이 책이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었고 그다지 끌리는 제목도 아니었다. 이랬던 내가 책을 읽게 된 이유에는 특별함은 없었다. 어느 날, 그냥 내 손에 잡혀있었다.지인 중 하나가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에게 책 소개를 하긴 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책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추천으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이런 추천받은 책들을 모두 읽을 순 없다. 나에게는 한정된 시간에 비해, 소개받은 책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왠지 시간을 쪼개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와 만나게 되었다.책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렇다. 책의 저자인 폴은, 고된 레지던트 생활을 견디며 대학교수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유망한 젊은 레지던트 의사이다. 허나, 그는 고된 레지던트 생활이 끝날 무렵, 자신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검사를 통해, 그의 병은 암으로 밝혀진다. 이후, 암 환자가 된 그의 인생은, 그가 그려왔던 그림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폴은 자신의 병을 아내와 가족들에게 밝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아니 그와 그의 가족의 투병생활이 시작된다. 책에는 폴이 자신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 직접 죽음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심경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언제 생이 마감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빛이 난다. 아이를 가지게 된 폴은 자신의 딸과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진 채, 너무나도 긴 이별을 맞이하게 되며 책은 마무리 된다.나에게 있어 이 책은 크게 3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그것은 죽음, 사랑, 시작이다. 각기 다른 이 세 단어가 하나로 이어진 긴 연장선상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죽음. 이 책은 한 젊은 남자가 생을 마감하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그래서 책의 곳곳에는 죽음이 녹아 스며들어 있다. 아마도 불치병에 걸린 저자는 책을 쓰는 동안 죽음을 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 그가 죽음을 마주보고자 했던 노력들, 의사가 되고 나서 오히려 죽음에 익숙해지며 도덕적으로 퇴보하는 듯한 모습들, 병이 걸린 후 달라진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들 등 많은 것들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었다. 나는 그의 생각으로부터 동질감을 느꼈다.많은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멀리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땔 수 없다. 삶이 없다면 죽음이 존재할 수 없고, 죽음이 없다면 삶이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허나, 많은 사람들은 동전의 앞면인 삶만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이에 반해, 책의 저자인 폴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했고, 소명이라는 이름하에 신경과 의사가 된다. 이렇게 죽음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내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마주보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이를 마주보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나라도 ‘정말 죽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면,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는 것이 내 답이다. 아마 폴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까 싶다.그리고 두 번째, 죽음에 익숙해지며 도덕심이 퇴보하는 경험 또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애써 외면한 채, 오늘 무엇을 먹을 건지, 누구와 만날 건지, 어디로 갈 건지,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만을 떠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도덕적 퇴보는 지구반대편에 죽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꺼낼 필요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타자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말이다.올해 여름,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차례 타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나이, 성별, 사인은 다양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타인의 죽음에 무신경한지 깨닫게 되었다. 사실 사자는 내 부모도, 나의 자식도, 나의 친구도 아니다. 허나 나와 어떻게든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장례식에 관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죽음이란 것에 대해 너무도 객관적이 실체로 보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이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라는 측면에서 죽음을 대했다. “어쩌겠냐. 갈 사람은 가야지.” “그 나이에 가면 호상이지.” “그렇게 살아서 뭐하겠냐.” 등이 나의 반응이었다. 이런 말들이 내 입을 통해서 나갔다는 사실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나는 죽음을 직시하려 노력했고, 어느새 죽음에 대해 초연해지고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폴이, 가족이 사망한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때 이에 낀 초콜릿 칩을 떼어내며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마지막으로 세 번째, 암 진단을 받은 이후 폴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 변화는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그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몰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책_161)그는 죽음을 직시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죽음이 그에게 다가 왔을 땐, 그의 자각은 달라져 버렸다. 폴이 겪은 것처럼,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나는 최근에 좋지 않은 몸 상태 때문에 혈액 희석제를 섭취하고 있었다. 이때 주의할 점이 피를 흘리게 되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항응고제를 섭취하게 되면, 피가 묽게 되어 지혈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잠을 자기 전 머리를 너무나 강하게 벽에 부딪혔다. 머리에는 살짝 피가 나기 시작했고 피는 쉽게 응고 되지 않았다. 처음 벽에 부딪히며 밀려왔던 고통과 짜증은 금방 사라졌고, 불안이란 감정에 휩싸였다. 그리고는 한참을 누워서 혈액응고제와 관련된 뇌출혈에 관련된 검색을 했다. 막상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고, 갑자기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항상 죽음은 내가 마주해야할 대상이며,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어왔던 나로서는 대단히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나는 나의 죽음에 있어서만큼은 그리 당당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사랑.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 어떤 연애소설 보다도 강하게 느꼈다. 죽음과 사랑이 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모순적이기도 하며, 애잔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사랑이 더욱 크게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에는 부부애가 잘 들어나 있다. 폴의 아내인 루시는 이런 질문을 한다. 가장 무섭거나 슬픈 일이 뭐냐고. 그러자 폴은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가장 슬프다고 이야기하며, 이런 생각 한다. 아이를 가지는 것이, 그들 부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만약 일찍 죽는다면, 그의 아내가 혼자서 아이를 키워내야 할 상황은 만드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래서 폴은 아내가 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결정을 기다린다. 한편, 그의 아내 루시는 폴과의 대화에서 이런 질문들을 한다. “아기가 생기면 우리가 제대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아기와 헤어져야 한다면 죽음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녀는 마지막 까지 자신이 아닌, 남편을 먼저 생각했다. 폴이 죽고 난 뒤 아이를 키우는 문제가 아닌, 먼저 폴이 자신과 아이를 떠나게 될 때, 그의 아픔을 걱정했다. 폴 또한 자신이 죽게 된다면, 아내와 남게 되는 아이 걱정을 먼저 했다. 그들의 공기에는 죽음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사랑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의 연애를 했다. 과연 내가 이들의 상황이 왔을 때, 나도 이들처럼 행동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왠지 이때만큼은, 나는 죽어가는 폴이 부러워 보였다.
독후감제목 : 담론저자 : 신영복독후감을 쓰기 전에 담론이 과연 무슨 말인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겠습니다. 처음 담론이라는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담론이 어떤 단어인지, 무엇을 칭하는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어렴풋이 이런 뜻이겠지? 라는 추측만 있었죠. 그래서 저는 책을 읽기 전, 담론의 의미를 알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을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인 검색 결과는 이렇게 나왔죠.현재 담론은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의 모든 관계와 동시에 이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제목을 검색하는 것만으로는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쉬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고 신영복 선생께서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하려 했는가에 대한 의문점들로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담론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에는 역사를, 세계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내용과 신영복 선생의 경험담에서 나오는 인식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을 , 감히 요약해서 설명한다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감상보다는 책을 읽는 도중에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 위주로 설명해 나가 보려합니다. 그리고 이후, 책을 모두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소주제에 관해 말해볼까 합니다.담론이란 책 한권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참 많은 감정에 휘둘린 듯합니다.처음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참 대단한 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담론이란 거창한 이름에 걸 맞는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책에는 우리가 어떻게 독법 해야 하며 고전과 어떻게 만남을 가지는지에 대해 설명해 있었습니다.시의 중요성과 음악의 중요성에 서술한 2장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주옥같은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은 작가의 인식 틀을 빌려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여러 경험과 정보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정보를 토대로 각자 나름대로의 성을 만들죠.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만의 생각이 있고, 나만의 삶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고착화 되고, 나와 다른 인식의 틀은 멀리하려는 것을 깨달았죠.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내 입맛에 맞는 것만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그에 따라, 당연히 다른 인식 틀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책의 도입부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기쁨이라는 즐거운 감정이 솟아올랐습니다. 이것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이었죠.허나 책을 읽어가면서, 이러한 기쁨의 감정은 어느새 사그라들었습니다. 사실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기엔 저의 지식의 함량이 너무나 작았죠. 그리고 선생이 평생을 살며 깨우친 것들에 대한 담론을 머리로 읽어가며 나의 것이 되길 바라는 과욕이 있었습니다.책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소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짜증, 증오라는 감정이 먼저 올라오더군요. 처음엔 이 책이 과연 대중서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백가 사상과 더불어 노, 장자 사상 그리고 주역까지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동양고전에 대해서 빈약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에 대한 증오가 생기더군요. 이 책은 나보고 읽지 말라 만든 책이 아닌가란 생각이었습니다.이러한 생각을 가진 것도 잠시, 점차 부끄러움은 바뀌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개탄스러웠습니다. 담론에는 증오에 관한 부분도 서술되어있습니다. 선생이 감옥에 있었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이를 설명하고 있죠. 혹독한 상황 속에서 공공의 적을 표적으로 하고, 끊임없이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었죠. 저 또한 책을 이해 못하는 나의 잘못을 덮기 위해 증오의 대상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은 작가인 신영복 선생이었죠. 사실 이런 행동은 어린아이의 반찬투정에 불가한 것이었죠.즐거움과 기쁨, 증오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동안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책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과연 이 책을 내가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책을 읽는 것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발로 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엔, 머리에서 읽는 것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개중에 가슴으로 느낀 이야기 몇 가지를 말해 보려합니다.그 첫 번째는 관계의 중요성 입니다. 선생께서는 관계 속에서 존재가치를 찾습니다. 때문에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이는 존재론적 가치를 중시하는 현 시대와는 그 차이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선생이 말하길, 인식이라는 것은 애정과 관계에 의해 발생합니다. 나 스스로가 인식되기 위해서는 관계 속에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근대화와 함께 자본주의 사상의 확산은 개개인의 존재론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스스로의 발전에 힘쓸 때, 모두가 부유해 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 진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허나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내재되어 있고, 그런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로 쟁점에 놓여있는 것이 현 실태입니다. 물론 제가 개인의 존재론적 가치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개인의 존재에만 치중한 나머지 어느새 관계 속에서 개인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슬라보예 지젝 또한 이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사적공간의 확대로 인해 공적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신영복 선생께서 말한 관계론에 집중할 때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듭니다.두 번째는 돕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선생은 돕는 것을 비가 올 때, 우산을 함께 쓰는 것이 아닌 비를 함께 맞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가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느껴졌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자존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산을 씌어주는 행위는 동정이 될 수 있으며, 열등감과 우월감을 만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하다 보니, 우산을 함께 쓰는 것보다는 함께 비를 맞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과연 우산을 가지고서도 함께 비를 맞아줄 사람이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 하고요. 그리고 나는 과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요. 솔직히 말해, 지금은 이 질문에 어떠한 답을 내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부터 함께 비를 맞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