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통일신라시대의 배경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먼저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고구려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 내었다. 그 후 당이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하자 신라는 한반도 일부지역에서 당과 전쟁을 벌였다. 결국 신라는 당의 군대를 몰아내고 한반도 일부지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확립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신라가 당의 침략을 물리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지배 야욕을 저지함으로써 민족적 위기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한민족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그런데 삼국을 통일한 후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넓은 영토와 많은 국민을 지배하게 된 신라는 이에 상응하는 국가 기관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이었던 국학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설립되었던 것이다. 신라의 교육제도인 국학이 처음으로 성립한 것은 진덕여왕시절이며, 국학이라는 명칭으로 정식 교육제도로 발족한 것은 삼국사기의 기사 그대로 신문왕 2년(682)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국학은 몇명의 박사와 조교, 2명씩이 대사와 사로 이루어졌으며 당의 국자감삼부과제를 모방하였고, 다른점은 국학은 2개의 학관에서 유교경전과 기술교육을 병합적으로 실시하였고 의학, 천문학 등은 국학의 기술교육과는 별도로 이루어졌다.(참고문헌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1)천문학누각박사와 천문박사를 임명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이들 교수직 밑에 류각생, 천문생을 두는 천문제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 교재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산경심서 중의 하나이며 동양천문학자들의 필독서인 ‘주비산경’이 당연히 기본교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1) 물시계고구려나 백제가 시계를 가졌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정밀한 일식관측기록으로 미루어 누각 제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누각 제도를 둔 것은 통일신라 이후로 중앙 관청의 근무교대나 왕실에서 행하는 여러 제사 행사 때의 시각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음이 분명하다. 누각이 천문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처음 제도가 생긴 후로 31년이 지난 경덕왕 때의 일이다.(2) 해시계해시계에 비해 물시계는 날씨나 낮밤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이용에 편리하나 음양의 조화라는 사상, 물시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해시계가 같이 사용되었다.현재 경주 박물관에는 음각된 통일신라 이후의 것이라 믿어지는 해시계의 단편이 있다. 원형은 33.4cm인 원형의 화강암이며 그중 1/4 가량이 남아 있다. 그것을 복원하여 보면, 이 해시계의 표면에는 두개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고, 그 중의 소원을 24등분한 각 분점에는 방향에 따라, 십이지, 십간을 나타내는 한자가 음각되어 있다. 대원의 바깥 쪽에는 역의 8궤가 새겨져 있다. 원을 24등분한 셈인데 0.5도 내외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하루 한 차례의 표준시를 맞추는 정도의 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대단히 정교한 장치가 나타나고, 궤?십간?십이지 같은 방위표상이 사라지고 단순 기호만 남는다.(3)천문제도와 역법통일신라에서 천문박사를 두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것이 천문관서가 있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정원이 1명뿐인 천문박사는 전문기사로서 일하였고, 천문역생의 도제교육으로 이루어졌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 초기부터 태복감 등의 기구가 갖추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말기에 당제를 모방한 천문관서가 제도화되어 거기서 천문관리를 정식으로 양성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역법에 관해서는 송의 하승천이 편찬한 원가력을 사용하였다. 당에서는 역산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여러차례의 역법 개혁이 있었으나 그 사이에 신라의 말기에 선명역으로 개혁한 것 외에 변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신라의 보수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4)첨성대첨성대는 그 독특한 구조로 인해 실제로 천문관측이 행해지는 건물이었는지, 천문학적인 건물인지, 점성학적인 건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첨성대와 같이 상방하원형의 건축구조는 후대의 고려, 이조의 천문대 건축양식과도 전혀 다르다. 첨성대만이 지니는 이 특이한 형태는 무엇보다도 우선 동양적 우주관이 축조양식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첨성대의 기단부의 원형과 정사각형은 주비산경에 있는 방원도를 본 뜬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돌로 쌓아 올린 27개의 동심원의 맨 꼭대기에 정자형의 돌로얹은 것은 28개의 성수의 운행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칠형도-1년 중의 태양의 운행을 가리키는 중국전통의 천문도식-에 대응한다. 즉 27층의 석군과 정상의 정자석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첨성대는 이십팔수를 상징하도록 계획적으로 구조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2)의학신라는 5세기 초 의사를 파견하여, 일본 윤공제의 불치병을 고칠 만큼 전통의학이 발달했다. 7세기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당 군진의학과 직접 교류하면서, 신라 군진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는 종전 후 통일신라 의학이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전쟁 기간 동안 군대에서 의료인력이 다수 양성되었는데, 이러한 인력을 기반으로 하여 효소왕(4대왕) 692년에 최초의 국립 의과 대학인 ‘의학’이 설립될 수 있었다. 특히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위주, 저장과 복용이 간편한 알약과 가루약, 약물이 필요 없는 침이나 뜸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치료법 중심의 군진의학은 종전 후 민간에서 사용하기 쉬운 구급방 또는 간이방 위주의 대중 의학이 발달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유학한 고승들에 의해 불법을 숭배하는 통일신라에 인도의 의설도 영향을 미쳐 신라의 의학은 전통의방과 중국의 것, 그리고 불교와 함께 전래된 인도의학의 영향이 모두 섞여 있다. 우리는 신라시대의 의서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고 한다.(참고문헌:몸, 질병, 권력:통일전쟁기 신라의 군진의학-이현숙,p36)3)미술고유의 전통문화에 당나라 문화를 흡수, 소화하여 우리나라 미술사상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불교는 신라의 호국사상과 일치되어 불교중심의 미술이 발달하였고 섬세하고, 화려하며, 독자적인 정교한 양식을 확립했다.(1)조소석굴암 본존불상 : 높이가 3m이고, 우리나라 석조불상 중 으뜸가는 것으로 세계의 자랑거리이다. 극히 우아하고 날카로우며 알맞은 양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조화된 신라 문화의 대표적인 미술품이고 중국의 윈깡석불의 영향을 받아서 화강암으로 축조되었다.십일면 관음상 : 석굴암 본존상의 뒤편에 있는 부처 조각석굴암 인왕상 : 석굴암 좌우에 서있는 고부조의 입상(2)공예상원사종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성덕 대왕 신종 : 봉덕사종, 에밀레종 등으로 불리움와전 : 화려하고 섬세한 무늬를 새긴 벽돌(연꽃무늬, 보상화무늬, 인동무늬등의 식 물무늬와 도깨비얼굴무늬, 봉황무늬등의 동물무늬가 새겨짐)(3)토기화장이 성행하여 뼈를 단지에 담아 묻는 방법이 성행유약 바른 뼈 단지, 탑 모양 뼈 단지, 도장 무늬 뼈 단지 등(4)화가오늘날 전해지는 그림은 없고 오직 삼국사기에 전해지는 “전채서”라는 그림을 다루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을 뿐이다. 유명한 화가로는, 당나라에서 활약한 화가로 김충의가 있고, 성덕왕 때의 김생은 유명한 명필로서 예, 행, 초서에 능하였으며, 경주창립비, 낭공대사비를 썻다. 정화, 홍계는 신라 경명왕때의 중으로 불화의 쌍벽을 이루었으며, 김인문은 문무왕때의 예서에 뛰어난 명필이었다.(참고문헌 : http://soeast.com.ne.kr/art15-1.htm)4)건축삼국통일 후 많은 불교건축이 세워져 불국사가 창건되고 석굴암, 동궁(임해전-안압지)이 조영됬다.?불국사 : 완성까지 25년이 걸려 751년 완공. 원래 2000칸이 넘는 큰 가람으로 청운교, 백운교의 아름다운 구름다리 층계와 쌍탑의 조화등 세련된 통일신라 의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석굴암 : 인공석굴사원으로 우리민족문화를 대변할 정도의 시공을 초월한 세계적 걸작, 40여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조각 숲이라 할 수 있다.감은사지 3층석탑 : 석조 쌍탑으로는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됨. 문무왕 수중릉과 관련 동해입구에 건립되었다.?다보탑 : 직선과 곡선을 적절히 살린 독특한 형태미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적인 탑?석가탑 : 간결하면서 직선적인 탑이면서 비례와 균형감각에서 조형의 극치를 이룬다. 한국 석탑의 대표적인 표준이 되는 탑, 이 탑에서 나온 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판 인쇄물임이 판명되었다.?화엄사 4사자 3층석탑 : 지리산 화엄사탑으로 다보탑의 아름다움과 견줄 수 있는 매우 독창적인 탑?진전사지 3층석탑 : 비례가 정연하고 탑신에 새겨진 조각수법이 매우 우수하다.?송림사5층전탑 : 금동제 상륜부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벽돌탑이밖에 우리나라 전국에는 석탑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약 900여기의 통일신라석탑이 산재한다.?부도 : 승려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염거화상 부도, 쌍봉사 철감선사탑, 연곡사 동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