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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하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하여- 루소 이전 사회계약 사상과의 ‘자연상태’ 정의 비교를 중심으로 -Ⅰ. 서 론『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대표적 저술 가운데 하나로, 그의 또 다른 명저『에밀 (Emile)』과 함께 1761년에 간행되었다. 책을 통해 루소는 인류가 자연상태에서 사회로 진화하는 조건, 다시 말해 사회나 국가를 성립시키는 조건으로서 사회계약, 인민, 일반의지와 그 표현, 즉 법률의 기본원칙 등을 역설한다.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은 루소가 처음으로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루소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로부터 움터왔으며, 루소는 이를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다.그렇다면 루소는 그의 저서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근거와 논지로 사회계약 사상을 주장하고 있는가? 또 그의 사상이 이전 시대의 철학자,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 사상과 비교해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이제 나는 본론을 통해 『사회계약론』에 나타나는 루소의 사회계약 사상을 자세히 알아보고 그의 사상이 홉스와 로크로 대표되는 이전의 사회계약 사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 지, 그 중에서도 ‘자연상태’에 대한 정의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를 중점적으로 비교해보고자 한다.Ⅱ. 『사회계약론』을 통해 본 루소의 사상1) 자연상태루소가 정의하는 자연상태란 문명화된 상태나 사회상태에 대한 상대개념이다. 루소 이전의 여러 철학자들이 자연상태에 대해 연구하고 정의했지만 루소가 정의하는 자연상태는 조금 다르다.우선 문명화된 삶과 대조되는 자연상태란 인간이 그의 동포와 떨어져 홀로 사는 상태를 말한다. 이 문명 이전의 상태에선, 협업, 분업, 교역, 산업 없이 인간이 홀로 삶을 꾸려가는 만큼, 그의 삶의 조건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시민사회와 상반된 이 상태에선 사람들은 자연적 동종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연관 이외의 그 어떠한 도덕적 정신적 유대도 맺고 있지 않으며, 사람을 사람에 매는 모든 종류의 협약 역시 부 종, 통치자나 신민의 자리에 있지 않으며, 그래서 사람은 서로 간에 평등한 것이다.루소가 정의한 자연상태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룰 ‘이전의 사회계약 사상과의 비교’ 부분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2) 사회계약과 일반의지루소는 진정한 사회계약의 목적을 공동의 힘으로 사회 구성원의 신체와 재산을 지켜주고 막아주는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공동체의 역할은 인간 개개인의 도덕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적 자유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었을 때 누리게 되는 진정한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 개인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공동체를 어떻게 설립할 것인가? 루소는 그러한 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해 진정한 사회계약의 체결을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진정한 사회계약은 어떻게 체결하는 것인가? 계약의 당사자는 누구이며, 계약의 내용은 무엇이며, 계약의 체결 시점은 언제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루소가 주장한 사회계약의 핵심은 ‘일반의지(volonte generale)’를 성립시키는 것이었다. 루소는 개개인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남김없이 공동체 전체에 양도하면 공동체 전체의 의사인 일반의지가 확립된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만약 개개인에게 약간의 권리라도 남아 있게 되면 개개인 사이에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공동의 권위가 없을 것이므로, 개인은 어느 부분에서는 자기 자신의 재판관이 되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이 같은 행세를 하려고 들게 되면서, 이로 인해 ‘자연상태’가 여전히 존속하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시기, 즉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은 자연상태에서 사회를 형성하는 시점에 체결되는 것인가, 아니면 ‘거짓 사회계약’으로 체결된 기존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다시 모여 새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루소는 책을 통해 “정치체나 주권자는 신성한 사회계약에 의해서만 비로소 생기는 것”임을 밝혔다. 이것은 루소가 말하는 진정한 사회계약이 사회를 형성하는 시점에서 체결되었음을 의미인 특수의지에 억눌리게 되면 침묵하게 되고 결국은 정의를 실천하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루소는 개인이나 공중 모두에게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개개인의 의지를 이성과 통합하도록 하며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줄 입법자를 말이다.루소는 입법자의 주도 하에 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질 때 사회는 경제적 사회적 억압 없이 잘 작동하리라고 보았다. 입법자의 도움으로 제정된 법에 따라 올바른 정부가 결성되며, 이 경우 개인들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게 될 것이라는 그 논지이다. 루소에게서 입법자는 행정관도, 주권자도 아니다. 입법자의 임무는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며 입법이라는 직무는 국가 조직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루소는 인간을 지배하는 자가 법률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하에 법률을 지배하는 자가 인간을 지배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루소는 사회계약으로 성립되는 사회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유능한 입법자가 등장해야 한다는 점 외에도 입법 대상인 인민들이 그 법을 잘 준수할 수 있는 준비된 인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훌륭한 입법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민이 그의 입법을 따르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이상적인 인민은, 혈연이나 이해관계 또는 계약 등에 달려 있지만 아직 참된 법률이라는 속박을 받아 보지 않았고, 습관이나 미신에도 깊이 뿌리박지 않았으며, 갑자기 습격을 받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웃 나라의 분쟁에도 개입하지 않으며 자기들의 힘만으로 어떤 이웃 나라와도 대항할 수 있어야 하며, 또는 한 나라를 도와 다른 나라를 격퇴할 수 있는 인민이어야 한다. 또한 각자가 서로 알 수 있어야 하며 누구나 그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부담 이상의 것을 강요받지 않으며 남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 않으며 자급자족할 수 있으며, 옛날 인민의 견실성과 새로운 인민의 순응성을 겸비한 인민이어야 인 모습으로도 묘사된다. 로크에게 있어 자연상태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이미 자연법에 따른 의무사항들이 있다. 그렇기에 시민사회에 들어와 제정되는 법의 목적도 자연법을 비준하고 자연법에 따른 의무사항들을 공고히 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그렇다면 루소의 계약론과 자연상태에 대한 그의 구상에는 어떤 상호관계가 있을까? 루소의 경우 이성과 도덕성은 국가 생활 덕분에 비로소 개발되고 실제성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루소는 자연인에게 이성은 단지 잠재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의 동류와는 어떠한 도덕적 관계도 맺지 않고 살아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앞서 말했듯 홉스는 자연상태를 폭력 상태, 전쟁 상태로 규정했다. 이와 반대로 로크는 자연상태를 평화와 상호원조의 상태로 규정한다. 루소는 로크와 같이 자연상태가 평화 상태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루소는 홉스 이론과 로크 이론을 모두 반박하는데, 이들의 견해가 비록 상반된 것이기는 하지만 루소의 입장에서 이들은 방법상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소는 이전 학설들을 비판하며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자연인 또는 원시인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데에 있어 다른 철학자와 차별화된 루소의 추론 원칙은 자연인은 홀로 떨어져 살아간다는 것이다. 홉스나 로크가 말했던 것처럼 자연상태가 전쟁상태이거나 평화상태라면 이미 어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형태의 사회관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루소는 특히 홉스를 비판했는데 그의 이론이 논리적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소는 홉스가 설명한 자연상태는, 자연상태가 아니라 사회상태에 들어와서 타락해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인간을 그린 것이라고 보았다. 만일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우다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한들 이를 가지고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둘은 서로 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루소가 생각하기에 전쟁다운 전쟁이 있으려면, 첫째로 적대관계가 일정 기간 지속되어야 하며, 둘째로 서로 피해에 대한 보상을 얻을 목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없는 곳에서는 정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홉스의 전제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보는 관점에서 루소와 홉스는 차이가 있다. 홉스는 자유를 단지 ‘외부적 방해’의 부재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신민(臣民)의 자유는 법이 침묵하는 곳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주권자가 아무 법칙을 제정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신민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자유를 지닌다. 홉스에게 정의란 단지 법에 복종하는 것이며, 법은 곧 주권자의 의지나 명령인 것이다. 하지만 루소에게 있어 자유란, 스스로 세운 법에 복종하는 ‘도덕적 자유’에서 근거하는 것이다. 루소는 자연상태를 극복하여 정당하고 규범적인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동체가 인민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홉스의 정치공동체 구성의 당위가 ‘생존’의 중심이라면 루소의 정치공동체 구성의 당위는 ‘자유’의 확보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루소가 홉스와 달라지는 점, 그리고 루소가 근대 계약론의 이론적 전제들을 급진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전면적 양도’ 개념의 혁신이다. 이 개념은 홉스로부터 유래한 것이지만 루소는 이에 대한 사고를 전환시킨다. 홉스가 말하는 전면적 양도는 자연상태에서 각 개인들이 그들에 대해 외재적 주권자, 즉 ‘리바이어던’을 건설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루소에게 전면적 양도는 ‘인민의 인민 자신과의 관계로서의 주권’이다. 이는 인민이 ‘초월적 권위’에 호소하지 않고 인민 스스로가 정치적 구성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루소가 생각하기에 인민들이 자신의 생존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군주에게 절대복종해야한다는 주장은 자박에 불과하다. 애초에 전쟁상태에서 위협받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홉스의 사회계약이 역설적이게도 절대군주제의 옹호로 귀결되고 만다. 홉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민들은 그들의 모든 권리를 군주에게 양도한 뒤 ‘주권자로서의 군주’에게 절대복종해야하지만, 군주의 자의적 지배가 언제나 인민의 생명다.
    인문/어학| 2015.01.04| 4페이지| 1,000원| 조회(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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