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아 노’1. 영화 ‘피아노’처음 ‘피아노’라는 영화를 분석하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다소 당혹스러웠다. 과연 이 영화가 지금까지 배운 민담과 어떤 비슷한 점들이 있을지 판단하고 분석하는게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다른 민담들을 떠올려 보니, 생각보다 비슷한 구조와 형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였다. 전체 영화의 구조는 신데렐라와도 유사하다. 신데렐라에서는, 어머니가 죽자 신데렐라는 계모를 맞이하게 되고,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된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겪지만 조력자에 의해 이를 해결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영화 ‘피아노’의 구성은 아직 불완전한 모습을 띄고 있는 주인공이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차츰 변화해 나가게 된다. 결국은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존재로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이렇듯 영화 ‘피아노’를 지난 수업 시간동안 배웠던 민담들과 비교를 하면서 감상을 하니 몇 가지 비슷한 측면들도 눈에 띄었고 논의해 볼 만한 요소들이 발견되었다. 첫 번째는, 불완전성이다. 영화의 주인공이나 그녀가 접하게 되는 새로운 환경은 미지의 세계이며 신비함이 감도는 곳이다. 두 번째는, 성과 사랑이다. 주인공 ‘에이다’가 자아의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장 큰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성과 사랑이었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 속에서 에이다는 이전과는 점차 달라져 간다. 마지막으로 다룰 것은, 극복의 과정이다. 베인스와의 관계를 스튜어트가 알게 되고, 스튜어트는 에이다를 감금한다. 나중에는 에이다의 손가락을 도끼로 내려찍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한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오히려 에이다의 의지는 분명해져만 가고, 스튜어트는 마침내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크게 3가지 측면들을 뒷장에서 차례차례 다뤄보도록 하자.2. 불완전성신체나 정신 등 다양한 요소의 불완전함은 다양한 민담의 모티프가 되어왔다. 신데렐라를 비롯한 다양한 민담에서 역시 이러한 불완전함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부터 나타나는 일종의 신화적 모티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영화 ‘피아노’에서도 곳곳에 나타난다.먼저 주인공 ‘에이다’를 살펴보자. 그녀는 6살 때부터 말을 해본 적이 없는 벙어리이다. 일단 벙어리라는 측면에서부터 결핍의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에이다는, 대신에 피아노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해 나간다. 그녀가 치는 피아노의 선율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느껴진다. 그녀의 피아노 소리에는, 그녀의 감정들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에이다에게 있어서, 피아노는 그녀의 결핍을 보완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신체의 일부분과도 같다. 그녀가 처음에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토록 피아노에 집착했던 요인은 바로 이 점에 있을 것이다. 피아노는 그녀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였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굴레가 되었다. 에이다의 피아노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주변과 그녀를 단절시켜왔다. 스튜어트는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정신병이 아닌 지까지 의심을 품기까지 하게 된다. 피아노는 에이다의 입이 되어주었지만, 동시에 에이다가 그녀만의 갇힌 세계에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분명 에이다는 선천적인 벙어리는 아니었으므로, 노력을 하게 된다면 직접 말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녀는 그럴 의도는 전혀 가지지 않는다. 피아노라는 매개체는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것을 막으며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피아노와 더불어 에이다를 보완했던 요소는 그녀의 딸인 플로라이다. 플로라는 수화를 알고 있으므로, 주변 사람들과 그녀의 엄마 사이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줄 수가 있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플로라 역시 결핍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다. 플로라는 그녀의 엄마인 에이다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 낯선 섬에서도, 에이다가 있기에 그녀는 명랑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에이다가 점차 베인스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그녀는 일종의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는지 엿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엄마한테 심한 말들을 퍼붓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의 절정 부근에서는, 에이다가 베인스에게 전달한 메시지를 스튜어트에게 보여주게 되고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아직 꼬마에 불과한 플로라가 남녀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알 리는 없으며, 그녀 역시 스튜어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스튜어트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준 이유를 윤리적인 판단에서라고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엄마를 빼앗기기 싫었을 것이다.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엄마인 에이다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에게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점들이 나타난다.또 한 가지 요소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이다. 온통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고립된 뉴질랜드의 자그마한 섬에서 모든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 곳 역시 매우 불완전한 속성을 띄고 있다. 아직까지 개척이 제대로 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며, 원주민과 소수의 백인들이 공존하고 있다. 근대와 미지의 세계가 혼합된 공간에서 다양한 가치관들이 공존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푸른 수염’ 연극을 보다가 이를 실제와 혼동을 하고 푸른 수염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를 때려 죽이려 든다. 이를 단순히 미개하고 덜 발달된 사람들이라고 봤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시각보다는 이 섬의 원주민들은 매우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화 중간을 보면, 원주민 꼬마들과 플로라가 나무에 대고 애무행위와 비스무리한 행동을 하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이를 본 스튜어트는 플로라를 크게 꾸짖지만, 원주민들은 크게 굴하지 않는 표정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에이다가 살던 유럽 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변화의 배경이 형성되고 있던 것이다.3. 성과 사랑영화 ‘피아노’는 19세기 말 영국의 상황을 기본 배경으로 깔고 있다. 당시의 영국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전 세계를 주름잡으며 대영제국이라 불리고 있던 시대였다. 대영제국을 만들어왔던 원동력은 그들의 청교도 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의 소명을 받아들여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근면,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청교도들의 기본 윤리일 것이다. 에이다가 입고 있는 옷은 이러한 청교도 사상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온통 검정색 투성이인 옷에, 발 끝까지 가리고 있는 치마 등을 보면 청교도의 엄격한 생활 윤리적 요소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청교도적 윤리는 여성들에게 상당히 억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남자의 우월적 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화 ‘피아노’는 남성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남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성의 모습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위에서 영화의 배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원주민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속성을 말했었다. 이것은 의복에 있어서도 곧바로 나타난다. 에이다와 플로라를 비롯한 영국의 여성들은 온통 검정색으로 칭칭 감아맨 의상을 입고 있지만, 원주민 여성들은 매우 편하고 실용적인 옷들을 입고 있다. 영국인들의 눈에는 원주민들의 미개하게 보였을 테지만, 반대로 원주민들에게는 오히려 영국인들이 갑갑하게 보였을 것이다.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굳이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부터 성적으로도 보수적인 이들의 가치관은 원주민들에겐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렇게 ‘성’에 관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원주민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시선을 보이는 반면, 스튜어트를 비롯한 영국인들은 보수적인 고립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선 에이다의 침묵을 또다른 요소로 판단할 수 있다. 바로 남성이나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저항적 행동이다. 영화 처음에, 나레이션을 통해 에이다는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은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다고, 그녀는 벙어리가 아니라 단지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다. 스튜어트는 이러한 그녀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 그는 에이다를 이상한 시선으로만 바라본다. 아마 그 모습은 에이다가 어렸을 적부터 쭉 봐오던 모습들일 것이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아버지는 악마의 재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부터, 거기다 미혼모가 된 에이다는 이름도 모르는 남편에게 보내지게 된다. 그러나 그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이기에 에이다는 별다른 애정을 주지 않는다.이 때, 등장한 인물이 스튜어트의 친구인 베인스이다. 그는 스튜어트와는 사뭇 대조적인 이미지를 보인다. 스튜어트가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베인스는 그 얼굴에 있는 표식에서부터 원주민에 가까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처음에 베인스가 에이다를 사모하고 피아노를 대상으로 협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베인스는 에이다를 매우 진지하게 사랑했던 것 같다. 영화 중간에 보면, 베인스가 자신의 옷으로 피아노를 닦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게 어떤 의미를 보이는 것일지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나름대로 자신의 에이다에 대한 순수하고 진지한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베인스의 진솔한 마음에 에이다는 점차 빨려 들어간다. 베인스는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에이다의 두터운 옷들을 벗겨 내려가며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남성의 억압과 굴레로 상징되는 옷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둘은 겉 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6차 십자군에 대한 고찰-프리드리히 2세를 중심으로1. 들어가며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의해 십자군이 선언된 이후, 대략 200여년동안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한 원정은 계속되었다. 1차 십자군은 성지를 탈환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냈다. 그러나 십자군은 성지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을 빼앗기게 된다.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수차례 원정이 계속되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다시 성지를 수복한 것은 6차 십자군에 이르러서였다. 6차 십자군은 결과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며 성공을 한 듯 싶으나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첫 번째는, 교황에게 파문을 당한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주축이 되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프리드리히가 이슬람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을 제한적으로 받아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획득하긴 하였으나, 이슬람 교도들의 성역을 보장해 주어야했고, 방어를 위한 성채를 비워두어야 했다. 협상의 사실을 알게 된 기독교도들은 분노하였고, 6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음에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사실 협상 자체의 내용에 대해선 많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6차 십자군에 대한 평가가 나쁜 것은 십자군의 주체가 되었던 프리드리히 2세 때문일 것이다. 6차 십자군은 이전의 십자군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전에는 왕과 귀족을 비롯하여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며 이들 십자군의 동기나 특성을 파악하기 매우 힘든 측면을 보인다. 그러나 6차 십자군은 프리드리히의 십자군이라 일컬을만큼 그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다른 십자군 세력들은 파문을 당한 황제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그런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이슬람과의 외교와 협상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처럼 6차 십자군에서는 프리드리히 2세가 매우 중요한 주체로 등장한다. 따라서 6차 십자군의 동기나 특성들을 올바르게 분석해보기 위해선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본 글에구사하고, 이슬람 문명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프리드리히에 대해서 큰 호감을 가졌다. 그는 오히려 프리드리히가 교황과 서구의 야만성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서술한다. 프리드리히의 이슬람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는 이슬람 세력에겐 호의적으로 보이며 협상을 이끌어가게 해주었다. 반면, 기독교 세계에선 그의 이러한 태도가 반기독교적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그가 이러한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의 생애를 살펴보아야 한다.프리드리히 2세는 바르바로사의 뒤를 이은 독일 황제 하인리히 6세와 나폴리&시칠리아 왕국의 루제로 2세의 딸 콘스탄차 사이에서 태어났다. 콘스탄차는 시칠리아 왕국의 유일한 상속인이었으므로, 프리드리히 2세는 독일, 부르고뉴, 북부 이탈리아, 나폴리&시칠리아의 왕을 겸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가 3살에 불과할 때, 하인리히 6세가 급사하면서 왕권쟁탈전이 벌어진다. 그의 어머니 콘스탄차는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를 믿고 의지하며, 죽기 직전에 교황을 섭정으로 삼는다. 이처럼 프리드리히 2세의 유년기는 왕국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의 연속이었다. 교황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었다. 이노켄티우스 3세는 1208년 프리드리히의 숙부 독일 왕 필립이 암살을 당하자, 프리드리히가 왕위를 잇지 못하도록, 독일 왕 선거에 개입해 필립과 대립하던 오토를 왕으로서 인정한다. 이처럼 교황은 독일 정치 곳곳에 간섭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확보해 나갔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프리드리히는 교황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져왔고, 이후 그의 행동들을 통해서 이는 잘 나타나고 있다. 교황과의 대립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프리드리히의 생애를 통해서 특징적인 점들을 정리 해 보자.그가 지냈던 시칠리아 왕국의 팔레르모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전에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이슬람의 정신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여기에 비잔틴 라틴 문화가 혼합되어 있었다. 이렇듯 여러 개의 문화가 혼합되어 공존하던 공간은 프리드리히가 여키는 교황의 모습을 보며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3.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과의 대립중세 시대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계속해서 이탈리아를 노렸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살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종교적 이유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교황에게 황제의 관을 받기 위해서는 이탈리아로 가야만 했다. 황제 대관식은 실질적인 이득은 미미했지만, 기독교 세계의 수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두 번째는 경제적 이유였다. 신성로마제국은 이름만 거창했지 실질적으로는 형식상의 제국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제국을 다스렸지만, 실제 다스린 구역은 왕령지 뿐이었다. 황제라고 해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하에서 제후들에게 조세를 거두어 들였던 것이 아니라, 제후들의 견제 속에서 왕령지의 경영을 통해 재정을 충당해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탈리아 주변은 황제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건데,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에게 프리드리히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만일 그가 독일, 부르고뉴, 북부 이탈리아, 나폴리아&시칠리아에 이르는 거대한 왕국을 이루게 된 이후엔, 이탈리아에 개입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교황은 이를 막기 위해 시칠리아 왕국과 독일의 결합을 반대해 나갔다. 이를 막기 위해서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1209년 오토 4세를 황제로서 인정한다. 그러나, 오토 4세가 내정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하고 다시 이탈리아에 눈독을 들이자, 교황은 그를 파문하고 폐위시킨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2세를 독일 황제로서 추대한다. 대신에, 제국과 시칠리아를 명확하게 분리시키기 위해서 프리드리히의 시칠리아 왕위를 그의 아들에게 양도하도록 했다. 또한 대관식을 거행하면서, 프리드리히에게 십자군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그러나,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가 죽은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본색을 드러낸다. 시칠리아 국왕인 아들 하인리히를 공동 통치자로서 국왕에 임명하고, 그에게 독일 통치를 맡긴 후 제후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에게 많은 특권을 양보해나갔다. 1220년 ‘성스러운 제후와의 협약’을 통해서 독일의 성직자들의 교회 영지 영역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고 제후로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로써, 독일 내부의 대주교와 주교들은 영지의 합법적인 조세 수입을 통해서 교황청과는 거의 독립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1231년에는 ‘제후의 이익을 위한 협정’을 통해 세습을 포함 봉토에 대한 완전한 권리, 도시에 대한 지배권, 주교 선출 자유, 조세권, 축성권 등 국왕의 특권들을 제후들에게 넘긴다. 그 결과, 독일은 국왕은 봉건적 상위 주군으로서의 지위만 유지하고 제후들이 사실상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분권화된 국가로 변모하게 된다.프리드리히 2세는 이렇게 성속제후들의 다양한 특권을 인정해 주며, 독일 내부를 안정시켜나간다. 그리고 그는 시칠리아로 넘어가 이탈리아 문제에 전념한다. 호노리우스 다음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9세는 프리드리히에게 가차 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프리드리히가 십자군 원정을 계속해서 미루기만 하자, 파문을 하겠다며 위협을 한다. 프리드리히는 1225년 예루살렘 왕의 딸인 이자벨과 혼례를 하며, 자신이 예루살렘의 왕임을 선언하였고, 1226년에는 이슬람 지도자 알 카밀과의 협상으로 예루살렘 왕국을 넘겨 받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이번에는 십자군에 나설 실질적 이유가 있게 된다. 1227년 십자군은 브린디시에 집결을 한다. 그러나 갑작스레 역병이 돌아서 프리드리히는 건강이 쇠약해지고 다시 한번 십자군을 물리게 된다. 그러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그가 꾀병을 부린다 생각하여, 황제를 파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알 카밀과의 협상 타결을 위하여 교황의 경고에도 십자군 출정을 공식 발표한다.위에서 보았듯이 교황과 황제는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복잡한 독일 내부 정치에 개입하기보다는, 일단은 이탈리아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기반을 쌓아 두려고 하였다. 프리드리히는 더 나아가 독일과 시칠리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 혼란한 상태였으며, 교황이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6차 십자군에 있는 동안 로마에서 그레고리우스 9세는 프리드리히의 영토를 여러 차례 공격하였다. 파문 역시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찾아 볼 수 있다. 교황이 황제보다 우위에 있을 때 파문은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를 명분으로 삼아, 독일 내부에서 봉기가 일어나거나 교황이 군대를 소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이것을 막기 위해, 독일 내부의 성속 제후들에게 많은 권한을 양도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번의 파문을 당했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항해 나갈 수 있었다. 오히려 나중에는 교황을 탄압하고 고립시키기에 이른다. 이렇듯 프리드리히는 제위동안 끊임없이 교황과 갈등을 일으켰으며, 6차 십자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4. 프리드리히 2세의 십자군프리드리히는 파문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왕국과 알 카밀과의 협상을 위해 십자군에 나선다. 교황은 프리드리히의 십자군이 도착하기 전에 예루살렘 총대주교 제라르와 여러 종교 기사단장들에게 파문을 당한 자에게 결코 협조하지 말라는 서한을 보낸다. 1228년 프리드리히가 아크레에 입성하였지만, 반응은 냉랭하였고, 십자군은 둘로 양분되었다. 황제의 봉신들과 튜튼 기사단은 황제의 편이었지만, 구호기사단, 성전기사단, 총대주교와 성직자 등은 프리드리히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황제와 교황 간의 대립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그대로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이미 원정을 떠나기 전에, 알 카밀과의 거래를 약속했으므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드리히가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는 것이 늦어지며, 그동안 이슬람의 정세가 변해 알 카밀이 머뭇거리자, 프리드리히는 재빨리 타협안을 모색했다. 이 조약은 프리드리히에게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나사렛, 그리고 성지로 통하는 통로를 주는 대신에, 예루살렘 안의 주요 이슬람 성지들은 무슬림들에게 보장하고, 예루
진정한 ‘행복’에 관하여몇 일전, 힐링캠프라는 TV 프로그램에 가수 박진영이 나왔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치고는 많은 철학적 이야기들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박진영은 인간의 삶 자체가 너무나 신기하고 놀랍다고 말하였다. 우리 몸을 이루는 100조개의 세포들이 어떻게 작용을 하며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지, 심장과 허파는 어떻게 끊임없이 움직이는지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삶 자체도 온전히 자기 능력 때문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모든 현상을 보면서, 어떤 절대자의 존재를 생각해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인간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절대자에게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보고삶을 왜 그리 어렵게 사나 질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지’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만한 의문들이다. 물론 정해진 답은 없지만, 이전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의문들을 품고 나름의 답을 내보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선 18C 유럽에 계몽의 빛을 밝혔던 철학자 ‘볼테르’의 생각을 살펴 볼 것이다. 그가 쓴 ‘캉디드’라는 소설을 통하여, 그의 세상과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알아보자.‘캉디드’는 분명 소설이지만 보통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각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에 대한 묘사는 매우 간략하게만 나타나있다. 우연적인 상황 속에서 우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다시 우연적인 사건들을 겪게 된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들이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위에서 언급했던 철학적 의문들을 조금씩 풀어나간다. 주인공 ‘캉디드’는 여행을 하며 이러한 다양한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생각을 정립해 나가게 된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의 스승인 팡글로스라는 철학자이다. 그는 매우 낙관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두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돌들은 성을 쌓기 위해,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상황들은 신에 의해 최선의 상태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라이프니츠의 철학 개념인 ‘충족 이유’를 사용하여 모든 것이 원인을 지녔음을 설명한다. 어떤 안 좋은 일을 겪게 되도, 그 일에는 어떤 궁극적인 원인이 존재하며, 그래도 이것이 최선의 상황이라 말한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그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면 된다. 악으로 보이는 일들까지도 사실은 최선의 행동들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볼테르는 팡글로스의 극단적인 낙관주의를 끊임없이 풍자하며 비판해 나간다. 팡글로스는 지금 이 세상이 최선의 세계라 말하지만, 소설에 묘사되고 있는 세상은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다. 캉디드는 난데없이 불가리아 군인들에게 잡혀 몽둥이질을 당하고, 그의 스승 팡글로스는 이단으로 몰려서 교수형을 당한다. 전쟁터에서 여성들은 겁탈을 당하고 배가 갈린 채로 죽어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 이곳저곳 끌려다닌다. 불쌍해 보이는 자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들은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 빼앗을 지 궁리를 한다. 이처럼 캉디드에 묘사된 세상은 낙관적일 수가 없다. 온통 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이렇듯 냉혹한 현실에서 맹목적으로 낙관적 사고를 하는 이들을 비판해 나간다. 특히 뭔가 부적절한 상황에서 ‘충족이유’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는 캉디드의 모습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전장 한 복판에서 총과 무기를 보면서, 자신이 살았던 남작의 집에 불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이 고난을 겪으면서 철학 개념을 떠올린다. 뭔가 부적절한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들을 하는 팡글로스나 캉디드의 모습을 통해서, 볼테르는 맹목적인 낙관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 나간다.팡글로스가 낙관주의자들을 대변한다면, 캉디드가 남미에서 만난 마르틴은 비관주의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선과 악의 이원론적 관점에서 인간을 파악하고 있는 마니교도이다. 신은 악을 행하는 몇몇 존재에게 지구를 내맡겨서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하다. 이웃 도시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 도시는 없으며, 약자는 강자 앞에서 떨고, 강자는 약자를 자기 마음대로 다룬다. 매들이 언제나 비둘기를 잡아 먹는 성정을 지니고 있듯이, 인간들은 모두 악을 행하는 정념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혼란한 세상 속에서, 그는 영혼의 해방을 꿈꾸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캉디드가 베네치아에서 만난 포코쿠란테 상원의원도 세상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견해들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호메로스, 키케로를 비롯한 학자들의 책들을 권태롭다거나 지루하다며 비판한다. 학술원 총서들도 그에겐 헛된 것으로만 보인다. 포코쿠란테는 수천 편의 희곡 작품도, 유명 작가들의 책들, 그 외의 모든 자신의 소유물들에 대한 혐오를 보인다. 이러한 비관주의자들은 냉혹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며 낙관주의자들을 철저히 조롱하고 비판해 나간다. 캉디드는 비관주의자들 같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조금씩 생각을 바꿔나간다. 그럼 이제부터 캉디드의 변화를 살펴나가보자.캉디드는 남작의 성에 추방당하기 전까지는 이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했다. 그에게는 이 성이 최선의 세계였다. 그는 스승 팡글로스의 낙관론에 따라서, 남작은 최고의 남작이며, 남작의 딸 퀴네콩드는 가장 아름답고 최고의 여성으로 생각하며 지내왔다. 자신 주변이 모두 최선의 상태라 생각하니, 여기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행복’이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성에서 쫓겨나게 되고, 얼마 안 가 불가리아 병사들이 쳐들어왔다. 캉디드가 최선이라 생각했던 남작, 퀴네콩드, 팡글로스, 그리고 그 자신의 삶까지 모두 파멸해 나갔다. 이러한 ‘최선’의 세계가 무너지면서 캉디드는 끊임없이 고뇌하게 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과연 무엇이 행복일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여정을 하며 많은 불행한 사람과 잔혹한 현실을 마주치며 스승에게 배운 것처럼 이 세상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캉디드가 수리남에서 흑인 노예들을 보고 카캄보가 낙관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알아 볼 수가 있다. 그 질문에 대해 캉디드는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라고 답해준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서 그는 남작의 성에서 지녔던 맹목적인 낙관주의에서 탈피해 점차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캉디드는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엘도라도’라는 매우 완벽한 이상향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곳에서는 금과 보석들이 돌멩이들처럼 굴러다닌다. 엘도라도의 주민들은 결코 부족한 것이 없으므로, 범죄나 갈등이 일어나지가 않는다. 이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므로 절대로 신에게 기도하지 않고 그저 감사만 드릴 뿐이다. 캉디드는 이 곳이 그동안 꿈으로만 꾸어왔던 이상향이란 것을 알았다. 엘도라도는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지만, 캉디드에게 큰 행복은 주지 못한다. 그는 엘도라도의 부유함을 보고 놀라움을 가지지만, 그 부를 가지고 떠날 생각만을 한다. 부족함이 없다보니 이 곳의 삶이 권태롭기 느껴졌기 때문이다. 행복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엘도라도는 이 원하는 바들이 항상 구비되어 있는 곳이기에, 무언가를 원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아마 이 점 때문에 캉디드는 엘도라도에서 권태감을 느꼇을 것이다. 그리고 엘도라도에서 유일하게 원하고 충족할 수 없는 퀴네콩드를 재회하는 것이 그에겐 더 큰 행복으로 느껴졌다. 따라서 캉디드는 엘도라도를 떠나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중세의 세계관과 그 변화- 모어와 베이컨의 이상 사회를 중심으로1. 중세의 지도누구나 한 번은 중세의 T-O 지도를 접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 볼 때는, 이게 과연 지도인지 싶고, 이런 지도를 진짜로 믿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에게 이러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지도라는 것의 개념 차이 때문이다. 오늘 날 우리에게 지도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지리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게 기본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서 지도는 현재 지도의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 물론 중세의 지도 역시 지리 정보를 표시하고는 있지만, 중세의 지도에는 중세인들이 생각했던 지명과 장소들이 나타난다. 오늘 날의 지도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반면, 중세의 지도는 사회적인 관념이 담겨 있는 셈이다. 중세인들은 지도에 이러한 관념들을 담아 그들의 세계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반영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세계관은 콜럼버스에게서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콜럼버스는 철처히 중세의 세계관에 입각해 항해를 했던 인물이다. 오늘 날, 콜럼버스는 영웅화 되어 근대의 선구자적인 이미지로서 나타나고 있지만, 사실은 이와 좀 다르다. 일단, 콜럼버스의 항해를 통해서 중세 세계관의 모습에 대해서 이해해보자. 그리고 이러한 중세적 배경에서 이상 사회에 대한 담론을 펴낸 토마스 모어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각을 알아보도록 하자.2. 콜럼버스의 항해콜럼버스가 과연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지는, 그가 항해를 하며 참고 했던 문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우선 피에르 다이이(Pierre D'Ailly)의 이마고 문디(Imago mundi)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하여 그는 지구의 7분의 6이 육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근거해서, ‘인도’와 유럽 사이의 바다를 실제보다도 훨씬 작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두 번 째로 그가 유심히 보았던 책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었다. 그의 항해일지를 보면, 그가 대칸의 제국을 언급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항해었다. 당시의 중국은 원나라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던 당시에는 상황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책을 그대로 수용하며 고정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설명한 이러한 책들은 철저히 기독교적인 중세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었던 책들이었다. 그가 항해 중에 참고했던 지도 역시 전형적인 중세 지도였다. 콜럼버스는 철저하게 중세적인 인간이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광신적인 종교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항해 계획이 퇴짜를 맞은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콜럼버스는 위원회에서 그는 주로 성경의 암시를 근거로 서쪽으로의 항해가 가능하다며 학자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는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을 하면서 위원회 신학자들의 경계를 받았었다. 항해 중에도 이런 그의 성격은 잘 나타난다. 항해 중, 몇일동안 바람이 잠잠하자 선원들이 불만이 커져갔다. 어느 날, 바람이 잔잔한 데도 파도가 일자 이것을 하느님이 일으키신 징후라고 판단을 한다. 이것 이외에도, 새로운 섬을 발견된다거나,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구절에서 콜럼버스는 이를 하느님의 징후라고 해석을 하는 부분들이 곳곳에 나타난다.이처럼 콜럼버스는 철저하다 못해 광신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아메리카의 섬들에서 금을 찾아다니던 이유도 그의 종교관과 연관지어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다. 그는 성경에 따라서 세계가 곧 멸망할 것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종말론을 믿고 있었다. 따라서, 빨리 전 세계에 기독교를 전파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당시 유럽의 상황을 보자. 성지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빼앗겼으며, 동방으로 가는 통로도 점령당했다. 큰 부를 벌 수 있던 통로가 막히게 되자,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 세력에 저항하기 점점 힘들어져 갔다. 이런 배경 하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항로 개척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보면서, 동방에 있는 엄청난 금을 가져오고 싶었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다시 기까지, 이를 진실이라 믿었었다.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은 중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그들의 지도에 나타나 있는 것도 바로 기독교적 관념들이다. T-O 지도에서 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아시아이며, 성경에 따르면 셈 족의 후예들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주요 지역들은 모두 동방에 위치해 있었으며, 낙원도 분명 동방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여서 중세인들은 이 지역을 중요시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관념이 지도에도 나타나 있다.지금까지 지도와 콜럼버스의 항해에 관해 살펴보면서, 중세인들이 어떠한 세계관을 가졌었는지 파악해 보았다. 이제부터 살펴볼 내용은 이런 중세 세계관에서 토마스 모어와 프랜시스 베이컨이 꿈꾸었던 사회의 모습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중세의 세계관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큰 차이점들이 나타나고 있다.3. ‘유토피아’와 ‘새로운 아틀란티스’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사회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물론 유토피아에서 주민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유일신 전통을 지닌 종교를 믿고 있으며 사랑과 같은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기독교적 사회로 판단할 수도 있다. 이는 모어가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일부러 구분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 대해선 뒤에서 언급할 것이다. 또다른 공통점은 두 사회는 공동체 중심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유토피아에서는 공동식사와 같은 관습이 존재하며 공무원들이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비슷하게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왕국의 정신적 지도자인 솔로몬 학술원 회원들이 ‘아버지’라 불린다. 국가는 결국 하나의 큰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찾아보자면, 두 사회 모두 학자들이 우대받는 사회라는 것이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솔로몬 학술원의 구성원들은 오늘 날로 치자면 일종의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화려한 치장을 할 수 있고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다.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이 사회에서 행복은 적극적인 욕망이나 쾌락의 충족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뛰어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노동력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만큼의 물자를 공급 할 수가 있다. 그들은 다양한 배양토를 통하여 많은 과즙과 음료수를 생산하고 씨앗 없이 토양만으로도 식물을 성장시킬 수 있다. 또한 동물 실험을 통하여 생명과 죽음에 관한 지식을 얻었으며, 자유자재로 동물들의 피부색, 모양 등을 바꾸고 심지어 새로운 종의 동물을 얻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관점에서 이 사회를 바라보면 의문이 들 수가 있다. 우리에게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분명 벤살렘 왕국은 기독교 왕국인데 어떻게 이 둘이 양립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힌트는 ‘이성’이라는 능력에 있다. 작품에 이성에 대해 설명한 구절들을 몇 개 살펴보자.‘하늘과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우리 백성들에게 당신은 은총을 보여주셨습니다. 창조와 창조의 비밀을 이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손 대대로 이어지면서 인간이 신성한 기적과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중략)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당신은 은총을 보여 주셨습니다.(중략) 이 기적을 보내신 데는 당신의 숨겨진 약속이 있을 것입니다.’이 구절은 책 초반부에, 솔로몬 회원이 신의 계시를 받으며 기독교 경전을 받는 장면이다. 그는 신이 인간에게 창조의 비밀을 알려 주고 있으며, 인간은 그러한 신의 뜻에 따라 자연 법칙을 이해하고 잘 활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은 인간에게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으니, 그 능력을 통해 우리는 신의 뜻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이는 솔로몬 학술원에 ‘6일 작업 대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과도 연관이 깊다. 하느님이 세상을 6일 동안에 만든 것처럼 인간은 신이 주신 ‘이성’이라는 능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값지게 이용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 받은 존재이기에, 다른 피조물과는 끊임없이 낙원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동방 어딘가에 이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만 있었을 뿐이다. 인간의 원죄는, 중세인들에게 불행의 시작이었으며, 끊임없이 낙원의 결핍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베이컨은 그 해법으로서, 과학기술을 통한 제 2의 낙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베이컨의 이상 사회가 과학 기술을 통해서 무한한 욕망의 충족을 이룰 수 있는 지상 낙원이었다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어떨까. 유토피아 역시 인간의 쾌락의 충족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유토피아 사회의 철학자들은 행복에 대한 논의를 하며, 행복은 주로 쾌락에 달려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묘사된다. 여기서 쾌락이란 단순한 쾌락이 아니다. 유토피아에서 추구하는 참된 쾌락이란, 크게 정신적, 육체적인 것으로 나뉘어 진다. 정신적 쾌락은 진리의 관조에서 얻어지는 기쁨을 뜻하며, 육체적 쾌락은 감각의 자극을 통해 느껴지는 즐거움과 고요하고 조화로운 건강한 육체의 상태를 뜻한다. 이 중 최우선시 되는 것은 정신적 쾌락이며, 육체적인 쾌락 중에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또한 그들은 고통과 짝을 이루는 쾌락은 저급한 것으로 바라본다. 포만감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포만감은 한 순간이지만, 굶주림이라는 고통은 훨씬 오래 지속된다. 이처럼 고통은 그것과 짝을 이루는 쾌락과 비대칭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런 쾌락을 좇는 자는 항상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이들은 이런 쾌락들은 생명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서 판단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에게 명예나 사치는 쾌락 축에도 못 든다. 지금까지 서술한 쾌락에 대한 이성적인 철학의 사유는 종교적 원리와 결합하게 된다.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논의하는 데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종교적 원리는 크게 두 가지를 담고 있다. 첫 째는, 인간의 영혼은 영혼 불멸하기 때문에, 이승의 삶에서 선과 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인간 영혼은 신의 은총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도록 창조되었다는’이다.
과 오페라 를 통해 본 사랑의 행태1. 서론어느 날, LOVE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사랑에 관한 설명이 나온 것들 중에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다. 라는 글귀였다. 좋아하고 믿으며 소중히 여기고, 영원한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 날, 남녀 간의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바로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가 아껴주고, 믿어주고, 언제나 함께 있어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흔히 꿈꾸는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과거에도 사랑의 의미가 이와 같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사랑의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었다. 중세의 사랑은,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보다는 신과 우리가 맺고 있는 아가페적 사랑을 강조해 왔다. 근대 초까지도, 이러한 사랑의 개념은 오래토록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개인 간의 사랑의 개념은 만들어 진 지가 오래지 않았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희곡 과 모차르트의 오페라 를 통하여,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어떠한 사랑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먼저 각각의 인물들의 사랑의 행태를 살펴보며 분석을 해 볼것이며, 주인공에 대해 몰리나와 모차르트가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생각해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러한 희곡이나 오페라 작품을 접하던 당대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랑을 떠올리고 있었을지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겠다.2. 각 작품에 나타난 사랑의 행태이번 장에서 살펴볼 것은, 작품에 나타나는 각 인물들의 사랑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특히 인물들이 지닌 욕망과 사랑과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서 볼 것이다.우선, 주인공 돈 후안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의 사랑은 매우 육체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희곡에서 나타나는 그는 여성을 육체적으로 정복하고 싶어하고, 그의 목적을 달성하면 바로 떠나 가 버린다. 그는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사벨라의 경우는 옥타비오 공작으로 변장을, 티스베아에게는 거짓 맹세를, 도냐 아나에게는 모타 후작으로 변장을, 아민타에게는 거짓말을 한다. 후안의 사랑을 더 살펴보도록 하자.(a) 돈 후안 : 저 아가씨가 예뻐 미칠 지경이다. 내 오늘 밤 그녀를 꼭 품으리라.(b) 돈 후안 : 그렇게 예쁜 여자인가? 오, 하느님. 그렇다면 언제 한 번 볼 수 있겠지?모타: 왕의 눈을 감동시킨 그 아름다움을 어찌 안 보여 줄 수 있겠는가.돈 후안 : 그처럼 아릅답다면 더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c) 돈 후안 : (중략) 내 안에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다름 아닌 모든 여자를 유혹하고 수치스 럽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내 삶의 의미...(a)는 배가 난파되고 어촌의 처녀 티스베아를 만난 후 돈 후안이 카탈리논에게 한 말이다. 티스베아가 너무도 예뻐서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돈 후안이 가장 중요시 하는 점은 ‘아름다움’이다. 그에게 사랑의 대상은 권력이나 명예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아름다운 여성을 가지길 원하고 있다. (b)는 모타 후작이 돈 후안에게 도냐 아나에 대해서 말하자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에서도 역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돈 후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c)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그가 원하는 사랑은, 아름다운 여성을 정복하고 파멸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극 중 중간에, 돈 후안과 돈 디에고의 대화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서 돈 후안은 ‘여기서 거기까지는 긴 여정이지요.’라는 말을 한다. 삶과 죽음 사이의 기간은 아직 자신에게 머나먼 것이니, 신의 징계 따위는 두렵지 않으며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의미가 표현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돈 후안의 사랑은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아름다운 여성들을 차지하고 파멸시킨다는 것이다.다음으로는 옥타비오 공작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는 돈 후안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인물이다. 옥타비오의 사랑은 중세의 기사도적인 사랑을 연상시킨다. 그는 명예와 충절을 중시하며 고결한 사랑을 생각하는 듯하다. 이는 그의 하인 리피오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옥타비오가 이사벨 귀족 간의 사랑은 상놈들과의 결혼과는 다르다며 화를 낸다. 돈 후안의 사랑은 매우 육체적이고 직설적이었다면, 옥타비오는 명예와 고결함을 추구하며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진정으로 이사벨라를 사랑했다면 미련을 가질 만도 한데, 그는 왕이 명망 있는 가문의 도냐 안나를 소개시켜 주자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사실 옥타비오의 사랑은 가문과 아름다움만 충족되면 누구나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이사벨라가 특별한 여성이었다기보다는 단지 아름답고 가문이 좋았기에 그는 사랑을 했던 것이다. 이사벨라 역시 옥타비오와 비슷한 사랑의 유형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돈 후안과의 일이 있은 후에, 옥타비오를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했으며, 전말이 밝혀지자 돈 후안과 결혼하기 위해 떠난다. 남편이 옥타비오에서 돈 후안으로 바뀌었지만, 그녀는 이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하인의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돈 후안 역시 명문 가문이기에 결혼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옥타비오와 이사벨라 이 두 귀족들은 사랑에 있어서, 가문과 명예의 요소를 굉장히 중요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또다른 귀족 여성 도냐 아나는 이들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다른 인물과는 달리 모타 후작 자체를 사랑하고 있었다. 옥타비오와 약혼이 성사되었지만 그녀는, 모타에 대한 사랑을 지워버리지 못한다. 그녀에겐 명예나 가문보다도 순수한 사랑 그 자체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타 후작 역시 도냐 아나와의 사랑 사이에서는 순수한 사랑을 생각하고 있었다.이제 평민들의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자. 극 중 평민 여성들도 나온 티스베아와 아민타는 모두 같은 형태의 사랑을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요소는 외모와 가문이었다. 돈 후안은 이 점을 간파하고, 자신의 지위에서 오는 명예나 권력을 통해 여성들을 유혹했다. 결국 두 명의 여성 모두 그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반면, 극 중에 나오는 어부들이나 아민타의 원래 남편 바트라시오는 다른 욕망이 있었다기보다는 순수한 르트의 오페라 이다. 과 의 전체적인 내용은 매우 유사하지만, 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며 다른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돈나 엘비라와 같은 여성은 다른 귀족의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돈조반니는 카탈로그의 노래와 같은 아리아를 통해서 끊임없이 돈나 엘비라를 농락하고, 수치를 준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분노나 질투를 느끼면서 미묘한 감정들을 드러낸다. 그래도 결국, 돈조반니에 대한 사랑을 지지 못하고 그에게 회개할 것을 설득하며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요청한다. 그녀는 돈조반니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돈조반니의 사랑은 위에서 살펴 본 돈 후안의 사랑의 형태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사랑은 아름다운 여성을 정복하고 파멸시키는 것. 이미 정복한 여성은 더 이상 그에게 사랑의 대상으로서 다가오지가 않는다.또다른 독특한 인물은, 일반 평민인 마제토와 그의 배우자 체를리나이다. 체를리나는 돈조반니의 외모와 명예에 넘어갈 뻔하지만, 다시 마제토의 순수한 사랑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제토는 돈조반니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친구들과 함께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 에서 돈 후안에게 여성을 빼앗긴 평민 남성들은, 그의 권위 앞에서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에 비교해 보면, 마제토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는 모차르트의 계몽주의적인 사상들이 오페라에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각자의 자유에 문제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지며, 다양한 모습들을 통하여 자유에 대한 표현은 끊임없이 오페라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제토는 계몽된 평민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3. 돈 후안 , 돈 조반니에 대한 저자들의 판단희곡 과 오페라 는 결과적으로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여성들을 파멸시키던 주인공은 신에 의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석상’이다. 에서는 도냐 아나의 아버지이자 명망 있는 기사단장이며, 에서는 돈나 안나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에서는면 하나 같이 도덕적인 문제점들을 다들 지니고 있다. 돈 곤살로만은 고결한 기사로서 등장을 하고 있다. 그러한 곤살로를 돈 후안이 죽이게 되고 선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 그는 석상으로 부활한다. 신의 대리자로서 지상에 선을 실현하기 위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죽음과 하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를 심판하기 위해 초대를 하게 된다. 에서는 그는 화염 속에서 사라지게 되고, 오페라에서는 연기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여기서 주목해 볼 점은, 심판을 앞 둔 주인공의 태도이다. 돈 후안은 막상 죽을 때가 다가오자 회개를 하고자 한다. 그래도 진심어린 회개라기보다는, 죽기 싫어 마지못해 하는 말처럼 들린다. 돈 조반니의 경우는 더 심하다. 그는 끝까지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신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앞세우며 서서히 멀어져 간다. 저자들은 표면적으로는 무절제한 사랑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사랑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며,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돈 후안과 돈 조반니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4. 당대 사회의 사랑에 대한 인식위에서 봤던 두 작품은 결국, 방탕한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게 되었다. 표면적인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생각해 보게 되는 점은, 당대인들은 이 작품들을 접하면서 어떠한 생각을 했을 것인가이다. 이 작품을 접하던 시기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의 자유로운 연애와는 거리가 멀다. 아직은 부모나 가문 등 주변에 의한 혼인이 이루어졌으며 종교적인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라보면, 위 두 작품의 결말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을 쓴 티르소 데 몰리나는 민감한 소재들을 작품에 사용함으로 인해, 종교적인 압박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들은 신의 심판이 나타나는 구조로 완결이 나고 있다. 모차르트 역시 아직은 완전히 이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기였다. 따라서, 작가가 진정으로 생각하던 바가 무엇이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남게 된다. 작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