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베이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열거하시오.설문조사[survey]는 관찰하려는 사항에 대해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전문가가 설문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결과를 통합하여 조사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통해 표준화시켜 결과를 조사하는 것이다.총 조사 오차[total error]는 표본을 사용한 모든 형태의 조사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이유는 표본을 바탕으로 한 조사 결과물인 통계치에는 모두 오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이 오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히 요구된다.우선 오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4가지 경우로 볼 수가 있다. 첫 번째, 측정시점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경우. 측정시점에 따라 측정 대상자의 상태가 변화하여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상자의 기분, 피로도, 건강상태는 시점에 따라 항상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가 있다.두 번째는 측정이 이루어지는 환경적 요인이다. 서베이가 이루어지는 환경이 시끄럽거나 산만한 경우에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측정 방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로서 자료 수집 방법이나 설문지의 내용 등 측정도구가 불완전하여 조사자의 의도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고 측정 대상자마다 다르게 해석되어 결과가 왜곡되는 경우가 세 번째 오차발생이유이다.마지막 발생이유로는 측정자가 속하는데, 이는 측정자와 대상자간의 상호작용으로 측정하는 사람의 신분, 태도 등에 따라 대상자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면대면 설문 진행 경우에 측정자의 친절도에 답변이 영향을 받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일반적으로 총조사 오차는 coverage error, sampling error, non-response error, measurement error 로 구성되어 있다.커버리지 오차는 실제 조사에서 표본이 추출되는 sample과 관심 모집단 사이의 불일치에서 일어난다. 커버리지 오차는 비포함율로 표본에 포함되어야 할 개체가 포함되지 않은 문제점된다. 일단 일정한 정확성이 확보되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표본의 규모를 증대시킴으로써 얻는 편익이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표본크기를 확대시키는 것은 불필요하다. 또 모집단으로부터 표집되는 표본의 크기는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대체로 모집단 크기와 관련 없이 표본의 크기 자체로 정확성을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집단이 7천만명인 경우와 6천만명인 경우 정확성의 수준별로 표본 규모가 거의 유사하다. 따라서 샘플링 에러의 경우는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며 비용 면에서는 다른 곳에 더 투자를 하여 다른 오류를 줄이고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천한다. 또한, 표본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표본추출방법을 잘 선택하는 것이 표본오차를 줄이기 위한 한 가지 방안이다.무응답 오차는 실제 조사에서 응답자 모두에게 응답을 얻지 못해 발생하는 bias를 말한다. 무응답은 조사에서 오차로 정의되어진다. 무응답을 포함한 불완전자료는 모집단의 특성을 다양한 통계적 방법을 통해 정확한 추론을 하기 어렵다. 더욱이 무응답자들의 응답이 응답자들과 체계적 차이를 나타낸다면 이로부터 bias가 생겨나고 무응답의 명확한 이유 또한 밝혀지지 않아 편향을 제거하기 어려워진다. 무응답에는 부재, 이사등으로 인한 접근 불가, 조사 거부와 같은 이유로 응답자를 만나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그 이외로는 비록 조사에 참여하더라도 소득이나 판매액, 성적등과 같은 개인적이며 민감한 내용에 불응하거나 고의로 답하지 않는 경우 역시 해당된다. 조사에서 무응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응답이 발생되는 원인을 파악하여 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사자의 숙련은 조사 응답률을 가장 크게 좌우 할 것이다. 따라서 표준화된 방법에 따라 철저히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과거 경험자를 우선 채용하고 지도원을 두어 조사원을 지휘, 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부재, 응답을 거부한 가구를 몇 차례 방문하나 가설에 의해서 결정된다.설문지의 질문들은 사실에 관한 질문, 행태에 관한 질문, 의견이나 태도에 관한 질문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에 관한 질문은 응답자의 배경, 환경, 습관 등의 객관적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 성별이나 연령 같은 인구 통계학적 질문, 교육수준, 직업과 같은 사회 경제적 질문, 부모의 학력, 소득 등의 사회 경제적 배경에 관한 질문이 속한다.행태에 관련한 것은 응답자의 현재나 과거의 행동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다. 의견이나 태도에 관한 질문은 응답자의 현재나 과거의 행동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다.그리고 질문은 개방형, 폐쇄형, 부수적 질문으로 질문 형태를 분류할 수가 있다. 예를들어 앞으로 충남대학교 취업률은 어떠할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처럼 주어진 객관식 응답 항목 없이 응답자가 답을 적는 형태를 개방형 질문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경우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응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 도출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답하기 때문에 응답자들의 응답을 비교, 분석하기가 어렵다. 또한 표현능력이 부족한 응답자들에게는 부적절하며 무응답 비율이 높다.폐쇄형 질문이란 응답자들에게 그들의 견해와 비슷한 응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한 세트의 질문을 제시하는 형태로 응답자가 답하기도 쉬우며 분석이 간단한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응답자의 입장이나 견해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답에 응답하도록 강요될 수 있다.부수적 질문은 특정한 주제와 관련된 일부 응답자만을 대상으로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번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들에게만 1-1번 질문을 묻는 형태를 말한다.자 그렇다면 설문 문항은 어떻게 작성하여야 할까? 설문지의 질문들은 연구의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성되어야 한다.첫 번째, 표준어를 사용하여 알기 쉽게 작성해야 할 것. 설문조사서를 작성할 때는 다수의 사람들이 질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표준어를 사용하여 작성하고 비속어나 전문용어, 대중이 알지 못하는 어휘는 사용하지 은 경우는 ‘매우 만족’, ‘만족’, ‘조금 만족’, ‘보통’, ‘조금 불만족’, ‘불만족’, ‘매우 불만족’처럼 세부적으로 나누는 경우 개선방안이나 문제점 도출이 더 쉽고 응답자의 요구를 이해할 수 있다.여섯 번째, 특정한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에 주의해야 한다. “당신은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결정한 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합니까?” 라고 하는 것은 응답자에게 연구자가 어떤 특정한 답변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질문을 뜻한다.일곱 번째로는 속어나 전문 용어, 약어의 사용을 피해야 한다. 질문지에 사용되는 용어는 항상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 응답자의 입장에서 알기 쉽고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그리고 질문 배열에 있어서 일반적 결혼여부나 연령 같은 일반적 사항처럼 답변이 용이한 경우를 앞에 배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어렵고 지루한 설명은 어느 정도 응답한 상태에서 계속 응답할 수 있도록 가운데에 배열하도록 한다. 그리고 민감하거나 개방형 질문은 가능한 후반부에 배열시킨다. 성적 질문이나 정치적 성향을 묻는 등 민감한 문제나 개방형 질문의 경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반부에 배치할 경우 계속 응답한 노력이나 시간 때문에 계속 응답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동일한 척도 항목들은 모아서 배열하여 척도에 대한 설명을 단번에 끝낼 수 있도록 한다. 설문지 작성 후에는 예비 조사를 통해서 설문지를 꼼꼼히 검정하는 것 역시 필요한 단계이다.폐쇄형 질문 응답란 선택항목 구성 방법은 “그렇다 / 아니다”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 리커트 척도에서와 같이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사이에 4~7개의 항목을 주고 가장 자신의 의견과 유사한 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여러 가지 항목 가운데서 2개 이상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선택항목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도록 하는 방법. 의견이나 태도를 묻는 폐쇄형 질문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의견이 없거나 중립적 의견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이다. 무응답 오차를 줄이 효과를 줄 경우 각각의 크기가 왜곡되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입체적 효과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꺾은선 그래프나 막대 그래프의 경우 x축, y축의 눈금 값에 따라서 똑같은 자료지만 다른 결과로 나타나 질 수가 있다. 이렇게 x축, y축으로 구성된 그래프들은 눈금의 값을 올바른 폭으로 설정하여 조사의 결과대로 나타내는 것이 가장 필수적이다.4.유의도검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통계적 유의성은 모집단에 대한 가설이 가지는 통계적 의미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실험 결과 자료를 두고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라고 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봐서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실험 결과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가설 검정에서 통계값과 연구자가 설정한 수준(유의수준)을 비교·판단하여 영가설을 기각할 때, 연구가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라고 한다.?그렇다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 두 집단이 있다. 키 큰 부족과 키 작은 부족이다. 단순히 평균만 취해서 비교해 보면 쉽게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평균을 취해서 비교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만약 한 사람을 잡았는데 이 사람이 키 큰 부족인지 키 작은 부족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해보면 그렇다면 평균 키만으론 되지 않는다. 키 작은 부족에서 키가 가장 큰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키 큰 부족 중에서 키가 가장 작은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즉 10명을 잡아서 평균을 취한 키는 그 부족 전체 평균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명의 키만 가지고는 이 사람이 어느 부족인지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유의도 검정이란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여 모집단의 상황을 추론을 하고자 할 때, 그 추론이 어느 정도나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률적 추론이다. 통계적 가설검정이나 신뢰구간 설정에 의하여 얻어진 통계치들이 어느 정도나 오류의 가능성을 타낸다.
*처음만나는 역사학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대표적인 인종주의 사례이다. 인종주의 그것은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간을 생물학적 특징에 따라 민족사이의 불평 등한 억압을 합리화하는 사고방식 또는 이러한 욕망을 인종주의라고 말한다. 인종주의는 이미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근대적 형태는 프랑스의 고비노가 1850년대에 집필한 인종 불평등론은 그 적형적인 실례이며 그는 세계문명의 발전은 세계 문명의 발전은 백색인종이 창조한 것이며, 열등인종과의 혼혈에 따른 인종적 퇴폐로 문명은 몰락한다 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H.S.체임벌린의 아리안 인종론과 함께 나치스 독일의 세계관의 기초를 이루었고, 20세기의 파시즘 사상으로 이어진다.생물학상의 특징이 지능, 도덕, 능력의 차이와 유관하여 출생하면서부터 유색인은 열등하고 백인은 우수하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백인의 지배와 유색인의 예속, 권리박탈 등 인종차별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이론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인도, 중국, 아랍의 고대 문명은 동시대의 유럽 문화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즉, 인류 역사는 결코 백인 우수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능검사에서도 경제생활이나 교육정도에서 상대적으로 유복한 유색인이 유복하지 못한 백인보다 고득점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인종주의에는 근거가 없었다. 인종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홀로코스트 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등이 있지만 코이코이족의 사르키 바트만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인종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예로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사르키 바트만의 일대기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사라 바트만 그녀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아 사라 바트만(Sarah Sartijie Bartman)이라는 세례명을 얻고 ‘사르트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는 1789년에 아프리카 남단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이스턴 케이프에서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공동체의 하나인 코이코이 족의 한사람으로 태어났다. 십대 후반 감투스 강가에서 약혼식 축제를 벌이던 밤, 백인 정찰대에게 납치되어 케이프타운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노예와 같은 시종노릇을 하다 약간의 자유를 맛보며 선술집에서 노래하여 술꾼들을 사로잡는가 하면, 어느 군악대원과 결혼해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그러나 스무 살 즈음 아기가 죽고 남편도 어디론가 사라진 뒤, 고용주 세자르는 상관 알렉산더 던룸의 계획대로 그녀를 꼬드겨 함께 유럽으로 밀향한다. 1810년 영국에서 사르키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소개되며 뛰어난 춤과 노래, 육감적인 몸매로 무대 위에서 큰 인기를 얻는다. 런돕 일당은 그녀의 큰 엉덩이를 강조하여 아프리카 모피외투를 걸치게 하고 사르키를 무대에 세웠다. 여기서 호텐토트란 말은 유럽인들이 코이코이족을 가르키는 말로 당시 유럽인들은 코이코이 부족이 성욕이 과잉되었기 때문에 엉덩이가 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럽사람들은 코이코이 부족을 열등하다는 뜻의 네덜란드어로 호텐토트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유럽인들이 인류학자, 여행가의 이름으로 빈번히 남아프리카를 왕래했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던 코이코이 부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가장 ‘우수한 원숭이’ 쯤으로 생각하고 특히 이들의 생식기관에 관심을 가졌다. 신체 특정부위를 과장되게 묘사하여 유럽 사회에 퍼뜨림으로써 사람들에게 성적 관심을 부추겼다. 큰 엉덩이는 아프리카 인종이 ‘인간 원숭이’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세간에 떠들던 긴 음순에 관한 소문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1810년 당시 당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명사와 지식인들에게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제목의 초대장이 날라들었을 때, 당시 런던에서는 주로 태생적인 기형이나 일부러 신체를 훼손한 기이한 사람들을 전시하기도 했었다. 호텐토트라는 말은 이상하고 불안정한 것,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 성적으로 과도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고 ‘비너스’는 잘 알다시피 순수함을 상징한다. 이 두 단어가 합쳐지면서 순수함과 음탕함,야수적 육욕과 초월적 여신을 하나로 포괄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이름이 탄생한다. 무대 의상은 그녀의 기이한 몸매가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어 졌다. 나체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몸에 착 달라 붙는 타이즈로 온 몸을 감싸고 화려한 장신구들로 엉덩이 주변을 감싸 둔부를 더욱 크게 돋보이도록 하였다. 진주알로 수놓아 갈무리한 치마를 앞에 두르고, 모피 털, 장식물들이 주렁주렁 달리게 해 마치 그녀의 긴 음순을 가리기 위함처럼 보이게 했다. 그들의 전시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첫 공연 직후 사르키를 주제로 한 시와 노래, 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린 캐치커쳐, 신문기사 등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노점상과 호객꾼들은 사르키와 호텐토트를 외쳐댔다. 그러나 이상한 쇼들 중 당연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명성이 커질수록 그녀의 상처는 커져갔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정의 대상이 되어 눈요기거리가 되어갈수록 그녀는 활력을 잃어갔다. 왜, 무엇을 위해 자신이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치도 않는 춤을 춰야 하는 것이 고문이었으며 때로는 옷을 벗기려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그녀를 지치게 만든 것이다. 결국 그녀는 담배, 술, 마약에 의지하게 되어서 더 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쇼의 주관자 던롭마저 죽자 세자르는 사르키를 데리고 프랑스로 숨어들어 프랑스 자연사박물관과의 밀거래로 먹고살던 박제사이자 거간꾼 레오에게 팔아넘긴다. 1815년 파리에서 실물 모델이 되어서 실험실에 서게 된 그녀는 옷을 벗지 않으려 몸부림 쳤지만 결국 무너졌으며 이 날 그녀의 비참한 모습은 보고서와 세밀하게 기록되어 오늘까지 전해진다. 이 관찰 실험의 주동자 퀴비에는 그녀가 죽어서까지도 쉬지 못하게 했는데, 바로 그 시신을 해부학 실험실로 가져간 것이다. 이후 과학의 이름으로 20c 후반까지 그녀의 뇌와 성기는 유리병에 담궈져 있었고 나머지는 박제가 된 채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다. 2002년 남아공의 국가적 노력에 힘입어 그녀의 사체는 고국으로 돌아오고 과거 식민주의 시절의 수난을 상징하는 인물로 오늘날 다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죽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던 그녀 . 그저 평범한 한 여성이 생김새와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욕정의 대상이 되며 놀이거리로 전락할 수 있는가. 후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녀는 200여년 만에 고향땅으로 되돌아 왔지만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녀가 유럽 땅에서 겪었던 수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인종적 계급적 성적 모순은 모두 그녀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나고 만델라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면서 그녀의 유해 반환 운동이 추진되어 2002년 마침내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2002년 남아공에 안장되어 남아공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그녀는 현재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로 남는 것이 인류의 이런 과오를 잊지 않고 늘 반성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르키 바트만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인류들이 인종주의의 피해자로 남아 있고 우리는 심각함을 느낀다. 이러한 인종주의의 병폐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많이들 알다시피 단종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24년에는 단종법이 제정되었으며, 1967년까지 그 효능이 유지되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신체?정신 장애자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인 불임 수술을 받아야 했다. 우생학자들은 유전자가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결정하며 더 나아가 인간의 행동도 결정한다고 보았다. 우생학자들은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불임은 수백만 달러를 절약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 주장하며, 각 주의 의원들에게 불임을 합법화하는 로비를 전개하였다. 1925년 버지니아의 벅과 벨(Buck v. Bell)의 재판에서 불임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진 이후 1935년까지 30개 주에서 불임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깨끗한 피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미국 전역에서 6만 명에 이르는 저능아, 정신병자, 지체 부자유자, 간질환자 등이 집단 수용되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았다. 또한 이들 생물학적 부적자(不適者)들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수년간 병원에 감금되거나, 수용소에 격리되어 강제 노동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자유와 평등, 인권을 가장 귀중한 가치관으로 여겨온 미국에서조차도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위가 발생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 글을 쓰는 요지는 현대에서의 신 인종주의 발생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들을 때 경악하는 사람들 역시 현대 사회에서 다문화 인종을 무시하거나 거리를 두는 현상이 있다. 이러한 신 인종주의가 발생하는 이 시대에 과거의 인종주의의 문제점과 병폐를 알면서도 이러한 일을 다시 부추기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뜻이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생긴 이 글로벌한 시대에 인종차별과 무시는 모순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지구가 하나의 마을이 되었듯이 우리는 인종 간의 차별의 시선을 없애고 하나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유럽의 건축양식왜 여행객들은 유럽여행을 선호할까? 따뜻한 햇살, 맛있고 다양한 음식, 풍부한 예술, 그리고 바로 아름다운 경치이다. 이 아름다운 경치에 한 몫하는 것은 유럽의 다양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이 있다. 에펠탑의 가치는 무려 617조여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은 프랑스의 교량 기술자 A.G. 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에펠탑은 완공 당시에는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의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최고의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에펠탑의 건설은 파리의 경치를 해한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그대로 남아 무전탑으로서 이용되기도 하고 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 송신탑으로 이용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탈리의 피사의 탑과 콜로세움이 있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이가 ‘낙하의 법칙’을 실험했다는 흰 대리석 탑으로, 본래 피사 대성당에 부속된 종탑으로 탑의 높이는 북쪽 55.2m, 남쪽으로 54.5m로 남쪽으로 5.5도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1174년 착공할 때부터 탑의 한쪽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3층까지 건축했던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360년경 8층으로 겨우 완성되었는데 매년 1mm씩 기울어진 탑의 기울기가 1990년 한계치에 가까운 4.5m를 넘으면서 붕괴위험에 가까워진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에 대해 보수 작업을 시작했고 장장 11년 동안이나 계속 되던 보수 작업은 2001년 끝이 났다. 그리고 그 해 12월부터 관광객 출입이 허용되었지만, 정부는 탑의 훼손을 우려해 하루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사탑 안으로 들어가려면 미리 예약해야 하며 반드시 가이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이라고 한다. 콜로세움은 현 가치는 130여조원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서 그의 아들 티투스황제 때 완공되었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살레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글라디아토르의 시합과 맹수연기 등이 시행되었고,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피지배계층의 관점이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접근했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영국의 성 베드로 성당이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은 산피에트로성당이라고도 불린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성지이다. 성 베드로 성당의 역사의 기원을 거슬러 가면,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앞에서 제시한 많은 대표적인 유럽의 건축물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유럽에는 워낙 많은 성당과 위대한 건축물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유럽의 건축사를 알아보기로 한다. 유럽 건축사의 초기작품들은 거의 그리스와 로마에 몰려 있다. 고대 건축은 그 방대함에 비해 현재 관광지로서 남아있는 부분이 적다. 우선 고대 양식으로는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이 있다. 도리아 양식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이나 그 양식상의 특징을 말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시작되어 그리스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전파되었다. 굵은 기둥을 사용하며, 윗부분이 가늘어지면서 엔타시스라는 불룩한 부분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간결하고 힘찬 느낌의 양식이며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파에스툼의 포세이돈 신전이 대표적이다. 이오니아 양식은 에게해 연안 이오니아인에서 시작되어서 그리스 전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여성적인 우아함과 경쾌한 모습이 특징이다. 날씬한 기둥에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으로 대들보를 장식하며 흔히 도리아 양식은 남성에, 이오니아 양식은 여성에 비유되곤 한다. 코린트 양식은 고대 건축 양식 중 하나로 무성한 아칸서스 잎을 묶은 듯한 유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돋보이는 양식으로 로마인들에게 계승되어 로마에 있는 포로 로마노 유적지에서도 이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중세 건축은 초기 기독교 로마 양식에서 시작하여 비잔틴, 로마네스크 그리고 고딕양식으로 이어진다. 기독교로마 양식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적 건축양식으로 고대 로마시대에 재판정 등으로 사용하였던 바실리카를 교회 건물로 사용하면서 교회, 세례당 등 기독교 관련 건축물들이 발달하였다. 비잔틴 양식은 비잔틴 문화를 형성한 동로마 지역에서 전개된 건축양식이다. 동로마 제국의 세력권에서 발생한 양식으로 둥근 돔 지붕의 형식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이는 동방의 무덤 형태를 모방한 것으로 동방 교회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로마건축에 동양의 사라센 건축양식이 가미된 양식으로 대표적인 건물은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이며, 베네치아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도 이에 해당된다. 다음 로마네스크 양식은 로마 시대의 건축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반원 아치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양식과 고딕 양식 사이의 과도적인 양식으로 구조적 토대가 고대 로마의 건축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네스크라 불려졌다. 종탑 등을 첨가한 것이 특징이며 외관은 단순하나 내부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프레스코 벽화 등으로 장식하여 종교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피사의 두우모와 사탑이 있다. 10세기 말 유럽에 급속하게 전파되어 12세기 전성기를 맞았다. 고딕 양식은 중세 교회 건축의 완성기에 절정을 이루던 형태로 합리적인 구조체계가 특징이다. 또한 종교적인 위압감을 위해 건물의 수직성을 강조하여 매우 웅장해 보이며 크고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채광으로 종교적 신비감을 더해준다. 건물 모양이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이 되었으며 외양은 하늘을 찌를 듯 수직적으로 높아지고 길고 큰 창을 많이 내어 개방감이 드는 건축 양식이다. 대표작으로는 파리의 노틀담 성당, 런던의 웨스트민스턴 사원, 국회의사당, 빈의 슈테판 성당, 프라하 틴성당, 성 비타 성당, 부다페스트의 마차시 성당, 밀라노 대성당, 피렌체 산타크로체성당 등이 있다.르네상스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15~16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양식이 바로 르네상스 양식이다. 르네상스 양식은 그리스 로마의 건축을 본보기로 하고 있다. 고딕을 대신한 양식으로 기둥과 원통형 볼트, 반원형의 아치, 둥근 돔이 다시 적용되었다. 즉, 과거의 로마적인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 고전 건축의 형식미와 수학적으로 완벽한 균형미를 추구한다. 대표작으로는 르네상스의 꽃이라고 불리는 피렌체의 두우모,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성 등이 있다. 그리고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기초를 확립한 건축 양식인 팔라디오 양식이 있는데, 그는 ‘건축은 고대의 원칙과 합리성에 입각해야 한다’고 했으며, 고전적 형태의 장식 등을 사용하여 그 시대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바로크 양식은 고전주의로 회귀한 르네상스 건축이 200년간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반향이 불기 시작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엄격한 합리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해 반감을 표출하여 비대칭과 과장성을 통해 감성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바로크 양식은 로마에서 발생하여서 유럽은 물론 라틴 아메리카까지 전파되었다. 바로크의 지지자였던 루이 14세 등의 절대 군주들에게 선호도가 높아 국가와 왕의 무한한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화려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바로 파리 근교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며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일부, 뮌헨의 님펜부르크 궁전, 프라하의 성 미콜라스 성당, 로마의 스페인 계단, 트레비 분수, 빈의 쉔브룬 궁전 등이다. 바로크 양식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섬세하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 로코코 양식이다. 루이 14세 시대의 바로크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궁전이나 교회 등 대규모 건축물에 많이 적용 되었던 바로크와는 달리 개인의 소규모 공간을 장식하는데 더 주력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독일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과 베르사이유 궁전의 유리방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또 다시 이러한 화려함에 대한 반감이 시작된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회귀로 나타났다. 이 양식의 특징은 위엄있고 웅장한 절제미에 있으며 대표적인 건물로는 런던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개선문,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의 쁘띠 뜨리아농, 뮌헨 시청사, 로마의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등이 있다. 이후에도 유럽의 건축은 고딕양식으로의 회귀로 나타난 낭만주의, 그리고 과거의 모든 양식들을 혼합, 선택한 절충주의 등을 거쳐 현대 건축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토록 다양한 양식이 존재했기 때문에 유럽의 건물에서 한층 깊은 낭만이 묻어나는 것은 아닐까? 유럽의 건물은 유럽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 난다. 다른 나라의 단순한 건축물에 비해 유럽의 건축물은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파헤칠 수록 다양하며 다른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유럽의 건물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방문한다면 제일 먼저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고 싶다.
오늘날 우리는 버스로 이동중에 신문이 없이도 mp3없이도 tv없이도 핸드폰 하나로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다. 즉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또한 방송과 통신융합으로통신과 방송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즉, 방송콘텐츠를 더 이상 tv나 라디오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나 개인휴대단말기로 방송콘텐츠를 접할수 있다. 또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방송과 달리 방송을 보는 도중에도 정보검색이나 e메일 사용을 하는 등 쌍방향 통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용자는 시간, 장소 측면에서도 스마트화, 개인화, 모바일화나 클라우드컴퓨팅, N스크린 TV나 PC,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하나의 콘텐츠를 장소의 이동과 관계없이 끊김이 없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 구글TV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미디어환경의 폭발적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세 번째로 다채널 다매체 시대. 채널 및 프로그램 수준이 다양해지고 수용자가 프로그램을 선택하는데 있어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이런 사회에서 c세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c세대란 프로슈머 개념으로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을 볼 때 미디어는 점점 더 개인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는 개인화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소비양상이 공존하고 있다. 홀리즘적인 사용과 미이즘적 사용이 공존하는 것을 통해 알아보겠다.우선 홀리즘은 holos에서 유래하여 집단주의, 전체주의를 뜻하는 단어이다. 이것을 미디어 소비 관점에서 보면 집단적 가치, 정보, 느낌 등이 매스미디어를 타고 널리 전파되는 것을 의미한다.즉,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미디어 소비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미이즘은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여피족들의 철저한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뜻하는 단어이다. 미이즘 적인 미디어 사용은 개인적인 소비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라는 생각으로 개인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홀리즘의 사례로는 유행을 쫓는 소비와 미디어 소비를 통한 집단 형성을 예로 들 수 있다.첫 번째의 경우는 쉽게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로 볼 수 있다.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넝쿨째 굴러온 당신등이 있다. 두 번째로는 미디어 소비를 통한 집단 형성인데, 다양한 목적으로 구성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집단적 소비행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드라마 팬카페라던지 디씨 축구 갤러리등이 있다.개인적인 미디어 소비로는 일단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세분화하여 구성된 채널들이 있다. 패션과 미용이라는 주제의 채널 온 스타일과 게임 채널 온 게임넷, 낚시 티비, 스포츠 채널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과거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단순히 수용했던 수동적 소비를 했다면, 점차 매체를 선택하는 형태를 거쳐 콘텐츠를 보는 iptv의 경우 역시 개인적인 미디어 소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영상을 원하는 시간에 제공해주는 맞춤영상정보 서비스인 vod 역시 개인적인 미디어 소비에 속한다.
우리는 세상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울며 슬퍼하고 분노할 줄 아는 평범한 국민이다. 동시에 바쁜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오는 평범한 현대인이다. 가을하늘은 아무일 없는 듯 맑으며 낙엽은 빨갛고, 노랗게 물들었다. 낙엽 뿐 아니라 아직 거리는 노란 리본으로 추모의 물결이 더해지고 있다.너무 끔찍해서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2014년 4월 16일 진도앞 바다. 처음엔 금방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를 보면서 다치는 사람이 없기만을 빌었다. 죽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사망자 수는 늘어갔고,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사망자 수에 대한 경마식 보도와 진실 규명과 동떨어진 논점에 대해 이야기 하는 언론, 소통하지 않는 정부,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반드시 살아있을 거라는 한 줄기 희망뿐이었다.200일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세월호 희생자 특별법 제정” 이번은 이것이 문제이다. 왜 논란은 계속 되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까?‘세월호 특별법’ 얘기만 많이 들어봤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제이다.일단 유가족들이 정부에 세월호와 관련된 것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하는 게 ‘세월호 특별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특별법에 반감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 등의 과한 특혜를 준다는 내용이 있어서라고 판단한다. 이런 내용으로 유가족들은 더 이상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다.‘세월호 특별법’은 크게 가족대책위의 ‘4.16특별법’, ‘새 정치 민주연합 세월호 특별법’, 그리고 ‘새누리당 세월호 특별법’으로 나누어져있다. 이 중에서 유가족에 대한 특혜(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 세금 혜택 등) 내용이 있는 것은 ‘새누리당, 새정치연합의 세월호 특별법’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수사권, 기소권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다.그런데 여기서 대중들은 ‘유가족들이 뭘안다고 수사,기소한다고 하지?’라는 반응들도 있다.제4조(위원회 구성) ① 위원회는 위원장 1명,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한 16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② 위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자 중에서 국회가 추천하는 8인(상임위원 2명 포함), 4?16 참사 피해자 단체가 추천하는 8인(위원장 및 상임위원 1명 포함)을 대통령이 임명한다.1. 공인된 대학에서 전임교수 이상의 직에 10년 이상 재직한 자2.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재직한 자3. 3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공무원의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자4. 재해 관련 연구?활동에 10년 이상 종사한 자5. 종교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또는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자6. 위원회 활동에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는 것으로 인정되는 자③ 대통령은 4?16 참사 피해자 단체의 추천 의견을 존중하여 위원장을 위촉한다.④ 위원장 및 상임위원은 정무직으로 보한다.유가족에게 수사권 기소권을 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추천하는 인원 8명을 꾸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지 일반인인 자신들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위원장 및 상임위원은 각호에 따른 자에게 준다고 명시되어 있다.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반대하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삼권분립에 위배된다, 사법체계가 흔들린다,대통령이 유가족한테 권한을 위임하면 권력남용이 된다, 사법체계에 문제가 생길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권영국 변호사라는 분의 반박을 인용하겠다."권 변호사는 또한 이들이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기소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국가소추가 아닌 사인소추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이도 완전 ‘엉터리’에 불과하다면서, 진상조사위에 들어가는 위원들이 정무직 혹은 별정직 공무원의 지휘를 갖는 만큼 국가소추가 맞다고 반박했다.그는 새누리당과 정부가 진상조사위가 수사권·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력구제 금치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조사 및 수사과정은 형벌권을 행사하기 위한 이전단계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인 만큼, 이는 자력구제와는 전혀 상관없다면서 논리적으로도 매우 몰상식하다고 질타했다.또한 새누리당과 정부는 기소독점주의에 비추어볼 때, 검찰청에 있는 검사 외의 사람에게 기소권을 주는 것이 사법체계를 흔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세월호특별법의 검사지휘를 맡는 사람은 실제 판·검사 출신으로 최소 10년 이상 법조계에서 근무한 법률 전문가인 만큼, 어떻게 사법체계를 뒤흔든다는 주장을 하는지 정말로 치욕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힐난했다."세월호 유족들이 '대학 특례와 의사자지정' 의 내용을 담고 있는 새민련의 특별법 제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니냐는 언론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