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두바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말 그대로 쿠바의 도시 아바나의 이야기이다. 쿠바는 러시아 원조에 의한 매우 의존적인 나라였다. 그러다가 전쟁이후 러시아의 봉쇄로 인한 원조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된다. 2년 만에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수출을 하려고 하는 상품의 생산량 또한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도시 농업을 계획한다. 도시 농업으로 인해 자급의 생활이 만족되고 경제적, 환경적으로 여유로워 진다. (글로는 다 설명 할 수 없지만 수치상으로 기적과 같은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이것을 일일이 말하는 것 보다 내 느낀 점의 비중을 위해 여기까지만 말한다.) 이제는 후진 개발도상국이라는 인상과는 정반대로 세계에서도 가장 앞선 농업 기술을 갖춘 나라가 된 것이다.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농업이라는 것이 생소하다. 농업? 이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농촌 지역이나 도심 외곽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도시 농업은 팔방미인과도 같았다. 식료품 생산, 환경개선, 고용창출 그리고 삶의 보람 찾기와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삭막하던 아바나에게 활력을 주는 역할 또한 도시 농업이 했다. 우리나라가 남북 전쟁이후 한강의 기적과도 같은 수식어를 달만큼 활력을 얻은 것이 쿠바는 도시농업을 통해 그것을 이루어냈다. 이것을 보고 많은 환경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중동의 뉴욕이라고 불리는 두바이의 시민, 정부 할 것 없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바이는 다른 산유국과 달리 석유 매장량이 조금 부족했다. 일찍이 석유를 팔아서 번 돈으로 호텔, 관광, 쇼핑과 같은 관광지의 인프라를 갖추고 그것으로 이윤 창출을 하게 된다. 돈을 엄청나게 끌어 모이게 되자 고층 빌딩과 같은 사치스러운 건물을 짓고 환경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분별한 개발을 하게 된다. 쿠바와 마찬가지로 의존적인 이윤 창출인 것이다. 머지않아 금융 위기, 경제 위기가 오자 두바이는 곧바로 무너져버린다. 쿠바가 러시아의 원조를 받고 수출 의존적인 경제 방식을 취하다가 러시아가 봉쇄되자 곧바로 무너져버리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다. 그러나 두바이와 쿠바의 차이점은 쿠바는 정부가 나서서 도시 농업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두바이는 그저 아무런 대책이 없다. 두바이는 경제가 다시 좋아지면 그저 같은 무분별한 개발을 하게 된다. 더구나 사막지역인 곳에서 그런 개발을 한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회의를 하는데 말이다. 두바이 뿐 만아니라 많은 여러 나라가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을 한다. 쿠바의 도시 농업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요즈음 나는 ‘과학 기술로 읽는 세상’이라는 교양을 듣고 있다. 이 교양에서 현대 과학의 특징은 점점 기술의 양이 팽창하고 전문화, 세분화 한다고 한다. 거기에다 거대과학이 출현하고 과학의 주체 까지 변한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과학은 날로 급격하게 변한다. 내가 사는 작은 도시 양산을 봐도 한 달 정도 지나면 많은 건물들이 생기고 이것이 양산이 맞는지 의아해 할 정도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봐도 얼마나 기술이라는 것이 빠르게 발전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생태도사 아바나의 탄생은 발전이라기보다 아날로그의 온고지신을 깨우치는 것 같다. 무분별한 개발 속에서 농업을 도시에 접목시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무작정 개발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대를 거슬러 가자는 생각이 든다.더 나아가 도시 농업이 가난한 개발도상국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우리나라는 도시 농업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쿠바는 자급을 하기 위해, 식량을 위해 농업을 한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도시 농업은 선진국과 후진국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도시 농업의 메리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1학기 조경학의 이해 시간에 배운 ‘지속가능한 개발’이 딱 도시 농업으로 해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속 가능한 도시’ 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도시 농업은 큰 주목을 받을 만 한 것이다. 그리고 농업을 도시에서 하게 되면 수송에서의 엄청난 탄소 배출량을 줄이게 해서 지구 온난화와 같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도시농업에는 식량 생산만이 아니라 고용창출과 커뮤니티 활성화 등 다면적인 기능이 있다.이러한 많은 도움이 되는 도시농업을 하게 되기까지에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야채에는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신체에 좋다거나 어떻게 요리하고 먹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농가 입장에서 소비자를 교육하는 것과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받쳐주는 두터운 연구원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농사 경험과 지식이 없었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고 풍부한 자금이 없는 가운데 유치원부터 대학 등록금이 모두 무료로 제공하는 정부의 지원에서 인재를 육성함으로써 어떤 벽지에서도 곧바로 적용 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낼 수 있었다. 또한 전 시민이 1천2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것은 엄청난 수치이며 그 작은 나라에서 몇 년 동안 해낼 수 없는 일이였다. 아바나의 도시민들은 나무의 소중함을 느꼈고 나무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자연이란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여기며 마음과 정성을 들이였기 때문이다. 도시민의 노력 뿐 만 아니라 정부의 법규제와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동기부여와 도덕성 향상을 위해 벌칙 제도를 만들고 땅을 빌려주는 많은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나는 책을 읽을 때 줄을 긋는 습관이 있는데, ‘오래된 미래’ 라는 책은 페이지 마다 많은 문장을 줄을 그을 정도로 강하게 내 머리 속에 남게 하는 것이 많았다. 배울 점이 너무 많은 책인 것 같다.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래된 미래가 무엇인지, 이것을 통해서 뭘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라다크 사람들에게는 따듯한 마음과 풍요로움이 보였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 사용된 용어를 쓰자면 자립정신, 검약정신, 조화, 환경적 지속성, 그리고 내면적인 풍요로움 같은 실제적인 것들이다. 검약이란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다는 것이다.라다크 사람들은 “내일 낮에 찾아올게.” 혹은 “저녁쯤 찾아올게” 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시간에 대해 넉넉한 여유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쯤’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에서 6시쯤에 보자.” 는 말을 자주 쓴다. 휴대폰과 같은 기기 발달로 인해 상대방과 연락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쯤’이 아니라 몇 분 단위 까지 포함하는 약속 시간을 잡았다. 이런 기술의 발달로 ‘쯤’을 사용하는 우리와는 정반대로 시간에 대한 넉넉한 여유 때문에 ‘쯤’을 사용한 라다크 사람들을 보면 같은 방법이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이 배울 점이 많다는 말이다. 이것을 보면서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학의 기술로 인해 편리해졌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더 시간에 쫒기는 그런 느낌이 든다.조경학과에 입학 한 후 ‘생태’ 에 관련 된 것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라다크 사람이야 말로그 생태에 적합한 것 같다. 책 내용 중 “땅에 풀이 자라는 동안에는 이야기를 즐겨서는 안 된다.” 와 같은 대목을 보더라도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는지 그것에 대한 소중함이 남다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이것만 보더라도 그 어떠한 것도 라다크 사람들의 평온한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 같았다. 라다크 사람들은 숲에 비유 한다면 ‘환경 생태학’ 시간에 배운 원시림과 같았다.하지만 이런 라다크 사람들에게 엄청난 반전, 변화가 일어났고, 나는 너무 놀라서 책에 더욱 더 몰입하게 되었다. 라다크 사람들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국립공원에 자연적인 발화가 아닌 인위적인 산불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는지 생각이 들면서 점점 더 책을 읽는 속도는 빨라졌다.라다크 사람들이 서양 문화에 노출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라다크 사람들의 그 고유의 온화한 정서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는 않다는 건가요?”는 마음을 가진 라다크 사람들이 아는 사람에게 물건의 값을 일부러 깎아내리며 연대라는 것은 찾아 볼 수도 없는 인정이 메마른 사람이 되었다. 마치 모두가 정서적 바이러스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라다크 사람들은 서구 문화가 성공적으로 보인다고 느낀다.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측면들 스트레스 과다, 고독감, 환경파괴와 같은 것들은 보지 못한 채 그저 뒷면이 아닌 보이는 부분만 본다.그리고 갑자기 자신들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지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상대적 가난함까지 느낀다.“ 이곳에 가난이라는 건 없어요. -체왕 팔조르, 1975년 ”“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체왕 팔조르, 1983년 ”이 말을 보고 난 충격에 빠졌다. 고작 8년 만에 라다크 사람들은 변한 것이다. 정작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평화나 가정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저 서양과 비교하면 자신들의 문화는 정말 한심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전적으로 지양하고 새로운 문화를 지향 하는 것 같았다. 서양 문화는 고유의 환경을 무시하고 똑같은 옷을 입으라고 가르침으로써 라다크 사람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개성이라고 할 것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이로 인해 연계가 점점 더 약화되었다. 빈부 격차 또한 심해진다. 교육을 받은 전문가 무리와 글을 알지 못하는 농부들 사이의 이질감까지 생긴다. 이것은 마치 인문학과 과학의 양상을 나타내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문이과를 확연하게 나눔으로써 벽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우리 야채가 이 지역에서 난 것들보다 더 좋아요. 우리 것에는 화학 성분이 일곱 가지나 들어 있거든요.” 는 대목에서 서양 문화를 얼마나 빨리 수용했으면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갔을 때 그것이 좋은 말인지 아닌지 모르고 쓰는 것과 같은 정보의 무지가 나올 수 있는지 놀라웠다. 또한 모르고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책에서는 이러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반개발’ 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많이 들어 봤어도 ‘반개발’ 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반개발’ 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미래에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해결책을 통해 시급히 문제점을 해결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라다크 사람들의 태도인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서양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지혜로운 수용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고유의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라다크 사람들의 고유의 문화에 대한 합당한 권위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조심스러운 소비..‘녹색 시민 구보씨의 하루’는 일상용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여러 면모들을 합쳐서 새롭게 그려낸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현재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대안적 소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상품 안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경제 활동과 자원이 어떤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녹색 시민 구보씨의 하루’를 읽으면서 작은 커피 하나, 티셔츠, 콜라 이렇게 일생적인 것에 많은 환경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다니 무척 놀라워 감탄했다. 이것과 같이 평소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지는 것 같다.고등학교 시절 자주 가던 중국집이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곳을 자주 찾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 쥐가 나온다.” “주방이 더럽다.” 는 말을 들은 후부터 가지 않게 되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는 상품의 비밀스런 삶을 알게 되면 조심스러워지는 것과 상통하는 것 같은 것 같다. 결국 우리가 무지의 소비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반쪽자리 면을 보지 못하고 그저 가시적인 면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실을 깨닫는 순간 그것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소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조심스러운 소비를 하기를 권하려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고 많은 소비자들이 알게 되면 많은 무분별한 소비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이번 창원에서 열린 unccd 사막화 방지 협약에 참가 했었다. 그 곳 파빌리온에서 일상생활에 자주 접할 수 있는 콜라, 우유, 물을 비교하며 실험을 하는 체험 부스가 있었다. 흥미를 느끼며 그 부스 앞을 앉았는데, 그 담당자 분께서 세 가지의 DO(산소 용존량) ph(산성도)를 비교하며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DO와 ph를 측정하는 작은 기기가 있었는데 동그란 버튼을 누르게 되면 저절로 측정해주었다. 측정된 결과를 비교해보니 알지 못했던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콜라가 산성이라는 것은 대부분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DO의 값은 조금 놀라웠는데, 어떤 생태적인 기준표에 의하면 생물이 살 수 없는 정도였다. “콜라가 몸에 좋지 않다.” “이를 상하게 한다.” “살을 찌개 한다.” 등 이러한 평소 생각 했던 부분이 아닌 뒷면의 악영향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커피에 대해 카페인, 맛, 종류에만 생각하고 그것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어떻게 생산하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갑자기 커피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일을 거치는지에 대해 깨달은 기분이 든다. 상품의 생산이나 원산과정 뿐만 아니라 이런 비밀스런 악영향 또한 많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콜라 체험을 통해 이런 작은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이처럼 숨어 있던 진실을 알게 됨으로 환경에 대해 부정적인 기분이 들며 자신에게 묻게 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소비가 지구 전체의 환경에 끼치는 나쁜 영향들을 대부분 소비하는 사람 즉, 소비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비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고 무관심인 것 같다. 하지만 소비의 문제는 전 세계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적인 문제인 것 같다.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소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비슷한 예로 기숙사에서 급식을 하게 되면 자율 배식을 하게 된다. 자기가 먹을 만큼만 배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더 많이 담게 된다. 혹시나 어쩌지 모자라면 어쩌지 하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에서 다루는 이야기처럼 말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내가 먹을 만큼만 배식하지 않으면 우선 음식물 쓰레기가 나올 것이고 이것을 처리하는 비용 또한 들것이다. 거기에다가 처리하는데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급식소에서 예상한 만큼의 양보다 자꾸 더 많이 필요하게 되면 재료값이 더 들고 그로 인해 급식비는 오를 것이다. 그 재료 중에 채소나 야채가 있다고 치면 그것이 만약 유기농이 아니라면 거기에 대해 농약을 칠 것이다. 농약을 치게 되면 식물들의 내성이 생겨서 재배하기가 점점 힘들어 질 것이고 그 농약을 우리가 먹게 될 것이다. 거기에 대한 환경문제 또한 심각 할 것이다. 반대로 내가 그 양을 조절한다면 이러한 많은 인력, 음식물 쓰레기, 환경 문제 또한 조금이나 해결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전에는 소비하였던 것이 소비하지 않게 되므로 물질적이나 많은 요소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아프리카에 기부를 하든 더 아끼든 그것은 나중의 문제이지만 어쨌든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소비에 대한 나의 소비 습관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평소에는 지나 쳤던 급식소 테이블 위에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의 사진이 어떤 의도였는지 알게 되었다. 당연한 것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배식을 할 때 꼭 남기는 법이 없이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필요 없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다른 면을 보게 될 수 있었다. 그저 생각 없이 소비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그런 부분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책이지만 지금은 일생생활 속에서 환경 생태학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내가 이 소설에서 느낀 것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풍요롭고 아무런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부족함’이란 단어를 찾아 볼 수도 없는 한 치즈 창고에서 그들은 서서히 변하고 있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지 의식하지 않고 민감하게 생각 하지 않아 인식하지 못했다. 갑자기 내 치즈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났는데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긴다. 내 치즈가 사라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노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인식을 하는 것이다. 문제 인식을 잘한다면 갑자기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퍼즐같이 한 조각 한 조각 사라지는 것을 보고 상황을 파악할 것 이다. 이 소설은 이런 깨달음을 줄 수 있었다.그래서 변화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인 치즈를 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큰 목표인 큰 치즈가 아니라 작은 치즈 부스러기를 위해서도 달라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에는 사소한 것부터 변화를 거부하고 회피하는 여러 관성이 있다. 과제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한다든지, 침대에 생각 없이 계속 누워있는데 머릿속으로는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생각만 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다 모두가 느끼는 변화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기에 똑같은 일과 잦은 후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고 그것을 고쳐 나가려고 노력한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 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소설에서 작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그래서 무작정 노트를 꺼내 변하고 싶은 것이 뭐가 있는지 적어보았다. 30분 일찍 일어나기, 용돈 아끼기, 신문 읽기, 과제 미리 하기 등 어떻게 보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어떤 결과가 생길까? 매일 30분 일찍 일어난다면 지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용돈을 아끼는 습관이 있다면 나중에는 용돈이 아닌 큰 돈을 모아 집을 살 수 도 있을 것이다. 신문을 읽는 다면 많은 지식들이 쌓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몇 년 후 나의 모습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문제를 잘 인식 하고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문제를 인식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 해봤다. 똑바로 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 아닐까? 자신이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 할 때 비로소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가능한 오랫동안 문제를 모르는 척 덮어두고 숨기는 것 같다. 이것이 단지 금방 지나가 버리는 일시적인 문제 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혹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 할 수 도 있다.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것 같다. 내 문제를 솔직히 인정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력해야겠다. 어쩌면 문제를 다 고칠 수 없고 변화 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문제점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벌써부터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
나무를 심은 사람엘제아르 부피에 라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저 고독하기 좋아하고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모르게 많은 일을 했다. 희망이 없었던 황폐지를 푸른 초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곳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곳이 되었다. 다 죽어가는 마을을 고친 셈이나 다름없다. 그가 황폐지를 바뀌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 같이 희망의 도토리를 심는 끈기와 노력도 있었겠지만 당장 현재를 보지 않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더욱 빛을 바랬던 것 같다.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와 달리 우리는 항상 현재만 생각하는 것 같다. “원인과 결과를 잘 생각 하지 않고 당장의 일이니깐” 는 만행을 일으킨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난 항상 방학이 되면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해서 스펙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친구들과 놀고 사고 싶은 것을 살 것인가, 지금까지의 방학을 돌이켜보면 아르바이트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부를 하는 것이 미래를 봤을 때 더 도움 된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즈음 부산대에서는 부경대와의 통합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부산대, 부경대 통합 안’은 부산대학교 총장님께서 일방적으로 안건을 넘겼다고 한다.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학교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두 관계에 벽이 생기게 된다. 점점 더 서로 이기적으로 변하고 서로가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가 될 것이다. 결국에는 “학교가 아닌 취업 알선 장소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이 아닌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는 알지만 당장 생기는 이점이나 이익에 눈이 멀어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현재만 생각하는 ‘좁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생각은 하지 않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과를 마치고 다시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그러기에 엘제아르 부피에를 보면서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한다.” 는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을 행동 할 수 있어야 된다는 ‘마음 가짐’이 생겼다. 그리고 여태껏 좁은 생각을 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우리는 살면서 미래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고 그러한 생각을 많이 글로 쓰게 된다. 학교 수업 시간, 대학입시 면접 등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난 부산대 조경학과 수시 면접에서도 이러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앞으로의 20년 동안 인생 미래 설계를 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럴 듯하게 잘 포장한 생각으로 일시적인 대답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진정으로 내가 그렇게 살고 있나?” 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표면적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안목이나 생각을 표현의 ‘수단’으로 여겼지만 진정으로 내가 살아가기 위한 ‘나침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땅에 희망의 도토리를 심는 것은 하나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나 또한 자신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해 ‘좁은 생각’이 아닌 ‘넓은 생각’을 하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앞으로 넓은 생각을 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