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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명량해전 - 울돌목을 중심으로
    韓國史의理解- 지형을 통해 본 명량해전(鳴梁大捷) -학 과학 번학 년이 름E-mail담당교수XX大?校Ⅰ. 서론1998년 미국의 블리자드(Blizzard)사에서 발매된 스타크래프트(StarCraft)라는 실시간 전략 실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한국 게임산업의 르네상스라고도 불리며 게임방송과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확립시킨 이 게임에 왜 국민들이 열광했던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 “지형을 살린 다양한 전략” 이라는 요소를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내놓고 싶다. 게임 내에서 언덕, 섬, 좁은 지형, 장애물이 없는 넓은 평지, 갈림길 등 한 맵에 여러 지형이 형성되어 있는데 게이머가 이 지형적인 특성을 어떻게 살려 전투를 하는가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나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지형에 따른 전술과 병력 운용은 게임에서 비롯된게 아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 6.25전쟁 등 과거 여러 전투, 즉 역사 속에서 증명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지형과 기후의 특징을 가장 잘 이용한 전투가 가장 빈번한 전쟁 중 하나가 1592년 발발한 조선과 일본의 전쟁인 조ㆍ일전쟁(1592)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는 특히 조선의 해전영웅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지형을 이용한 전투들이 많은데, 필자는 그 중 12척의 함선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명량해전(1597.9.16)을 “울돌목”이라는 지형을 중심으로 하여 본 레포트에서 다루고자 한다.Ⅱ. 이순신은 왜 울돌목(명량)을 택했는가?1. 울돌목울돌목의 명칭은 10리나 20리 밖에서도 우는 소리를 듣는다 해서 울돌목 혹은 울두목이라 했는데, 이를 한문으로 표현하면 명량(鳴梁)이다.이 울돌목은 진도와 화원반도 사이의 해협으로, 수로의 길이가 약 2km에 달한다. 가장 좁은 목은 폭이 약 330m이고 수심은 얕은 곳이 약 1.9m에 불과하다. 암초가 많으며, 가장 좁은 목에서는 양안의 돌출된 암초 사이의 폭이 불과 120m 정도이다.조류의 속도는 1973년 대한민국 수로국에서 작성한 해도에 의하면 평균이 6.7노트(시속 약 12km)이며 가장 강한 곳이 남동류 일 때 11.6노트(시속 약 21.5km)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 대학 불패학과: 명량대첩 103쪽)※ 울돌목 지형적 특성1. 수로길이: 약 2km4. 조류: 평균 6.7노트2. 가장 좁은 목의 폭: 330m3. 수심의 약은 곳: 1.9m※ 울돌목의 가장좁은 목의 폭이 330m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 산술적인 계산을 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수군의 대형 전투함인 아타케부네가 전체 길이 37.2m, 전체 폭 10.6m, 전심 3.4m의 크기를 갖는다.이 경우 울돌목의 좁은 지형을 들어왔을때 (전체폭 10.6m + 함선 간격 15m[가정])이라 할 경우 한척의 배가 들어올 수 있는 폭은 25.6m이다. 이로 울돌목의 좁은 폭인 330m를 나누면 330/25.6 = 12.89 약 13척의 배가 된다. 이는 조선 수군이 보유하고 있단 함선의 수와 같은 수이다. 여기에 빠른 조류와(시속 약 12km, 가장 강한곳 21.5km) 함선의 밑바닥이 V자 형태를 갖은 일본 군함이 심하게 요동친다고 한다면 일자진을 펼친 조선수군에게는 단지 개미핡기에게 일렬로 돌진하는 개미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2. 명량해전이순신이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일본 수군과 대전했으나 다대포(多大浦)·칠천곡(漆川谷)에서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하였다. 원균의 패전으로 같은 해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기용하였다.이때 이순신은 패전 후 남은 12척(어떤 어부에 의한 1척 추가 13척)의 전선만 남아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133척의 왜선을 제압하는 전략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첫째는, 좁은 목을 가로 막아 적을 축차적으로 유입하는 것이다. 즉, 미리 울돌목을 점령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많은 적선이 좁은 목 때문에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하고 나누어 진입할 때 이들 소수 집단을 하나씩 각개로 격파하려는 것이다.둘째는, 충주전투의 신립 장군이 사용한 배수진과 마찬가지로 벼랑 끝 전술로 결사의 태세를 조성하는 것이다. “벼랑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는 옛말이 있다. 이처럼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젖먹던 힘까지 발휘하게 된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하게 될 때는 바로 이러한 결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두가지 측면 하에 이순신은 좁고 유속이 빠른 울돌목을 전투 지형으로 선정한 것이다.(이순신 대학 불패학과: 명량대첩 84쪽에서 85쪽)물론 이러한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순신은 이미 옥포, 사천, 한산도 등 수많은 해전을 치루면서 일본군의 특성, 전략을 꿰뚫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의 주력 함선의 밑바닥 모양이 V형(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으나, 빠른 유속에 매우 흔들리며 안정성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이 빠른 유속에 취약하다는 것을 이미 인지한 상태에서 내린 우연이 아닌 정확한 분석과 조사를 통한 전투였으며, 승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문/어학| 2015.03.14| 4페이지| 1,500원| 조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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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간의 조ㆍ일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 -
    韓國史의理解- 7년간의 조ㆍ일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 -학 과학 번학 년이 름E-mail제 출 일XX大?校《 目次 》Ⅰ. 임진왜란(壬辰倭亂)이란? 31.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배경과 원인1) 조선의 정세2) 일본의 정세Ⅱ. 왜군의 침략 4Ⅲ. 조선의 반격41. 수군1) 세계사에 빛나는 한산도 대첩2) 정유재란과 명량대첩※ 귀무덤의 유래3) 영웅의 죽음, 노량해전※ 이순신과 강강수월래2. 관군과 의병1) 권율의 행주대첩2) 진주성 전투와 논개※ 논개의 죽음과 진실Ⅳ. 조선의 병기 - 판옥선, 거북선101. 판옥선2. 거북선※ 참고문헌12Ⅰ. 임진왜란(壬辰倭亂)이란?임진왜란이란 병자호란과 더불어 나라의 흥망을 판가름하던 근세조선사상의 큰 전란이었다. 임진왜란은 1592~1598년(선조 25~31년) 의 전후 7년에 걸쳐 일본의 침략군에 대항하여 격퇴시킨 전란(戰亂)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임진왜란은 1592~1596년과 1597~1598년 양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조명연합군과 일본간의 7년 전쟁을 의미한다. 1592년(壬辰年) 4월에 침입한 왜군은 1596년에 일단 물러갔으나, 1597년(丁酉年) 1~2월에 다시 침입했다. 이에 따라 후자를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하여 구별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 하는 경우 정유재란을 포함해서 말한다.1.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배경과 원인1) 조선의 정세15세기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일본인의 무역요구가 더욱 늘어난 데 대하여 조선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자 중종 때의 3포왜란(1510)이나 명종 때의 을미왜변(1555)과 같은 소란이 자주 일어난다. 남해안 지방에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자 조선 조정은 국군기무를 장악하는 비변사라는 합좌기관을 설치하여 군사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배계급은 당파를 중심으로 분열하여 서로 반목질시함으로써 16세기 말에 이르러 국방력은 더욱 약화되고, 일본 정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통일이 이루어져 전국시대의 막을 내리게 되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야망과 그 정권 내의 대립ㆍ모순 등으로 대륙침략을 의도하고 있었다.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통일의 과정에서 야기된 재정적 곤란을 해결해야 했고, 유공무장들의 논공행상을 위해서는 일본의 영토로서는 부족했으며 또한 예하무장들을 대외침략 없이 통솔하기에는 너무나 막강했다. 더구나 그의 정권 내에는 고니시 유키나가 등의 이료파, 가토 기요마사 등의 무단파,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유력한 다이묘 들이 서로 정치적으로 대립ㆍ모순을 야기시키고 있었다.이와 같은 상황이 도요토미의 공명심과 부합하여 대륙침략이 결정된 것이다. 통일에 뒤따르는 내부불만세력을 조선의 공격을 통해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국시대에 양성된 제장의 힘을 해외로 방출시킴으로써 국내적인 통일과 안정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깃들여 있었다. 그는 대륙침략을 국내통일의 연장으로 생각한 것이며, 그 직접적인 목적이 여러 다이묘의 무력(내부 정복욕)을 해외에서 표출(소모)시키려 했던 것이다.또한 이에 대해 김희영(2006)의 『이야기 일본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배경을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병농분리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당했거나 그 일부를 빼앗긴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다이묘 가운데에도 해외의 영토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무역상들은 해외 무역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히데요시의 무력을 이용하여 해외에 진출하려는 강한 욕망마저 가지게 되었다.」라고 기술하였다. 따라서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배경을 첫 째, 병농분리 정책 실시와 유공무장들에 대한 토지 배분 문제로 발생한 토지부족 문제 해결, 둘째, 유력한 다이묘의 대립 해소 및 권력 강화로 크게 요약할 수 있다.Ⅱ. 왜군의 침략임진년인 1592년 4월 13일 마침내 “왜적의 배가 바다를 덮어 오는데 바라보니 끝이 없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 조선에선 신립이 충주에서 배수진을 치고 조총을 앞세운 왜군의 군사력에 맞섰으나 장렬히 전사하게 되었다.Ⅲ. 조선의 반격1. 수군당시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은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 부임한 이래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판옥선과 거북선 등의 전함을 만들고 무기를 정비하여 수군을 훈련시키고 군량을 저장해두었다. 전비를 갖춘 이순신은 왜의 함대가 다가온다는 보고를 받고 곧 출동하여 각처에서 적선을 격파하였다. 그는 80여척의 배를 거느리고 옥포에서의 첫 승리를 거둔 후, 이어 전라 우수영 및 경상 우수영의 함선과 합세하여 사천, 당포, 당항포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1)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도 대첩힌산도 대첩에서 일본군의 전력은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이끈 대소 70여척이며 조선 연합함대의 전력은 대선 59척과 소선 50척이었다고 한다(日本戰史 朝鮮役, 1924, 48p) 이를 보아 양측 함대의 세력을 비교하면 전투 능력을 갖춘 전함 수는 비슷하지만, 조선의 연합함대가 대선인 전선이 많았고 전체적인 전력 면에서도 약간 우세했던 것을 알 수 있다.한산도해전의 경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출항 이틀째인 7월 7일에는 동풍이 크게 불어 항해하지 못하다가, 저물 무렵 고성땅 당포에 이르러 머물렀다. 이 때 이 섬의 목동 김천손이 연합 함대로 와서 ‘일본 군선 70여 척이 오늘 오후 2시쯤 영등포 앞바다를 지나 고성과 거제도의 경계인 견내량을 머물고 있다’는 중요한 정부를 알려주었다.이 정보에 따라 연합함대는 7월 8일 아침 일찍 일본 함대가 있는 곳으로 출발하였다. 견내량 근처 바다에 이르렀을 때 일본의 척후선으로 보이는 대선 한 척과 중선 한 척이 우리 함대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본대가 있는 포구 쪽으로 들어갔다. 연합함대는 이들을 추격하여 일본 함대가 있는 곳에 도달하였는데, 첩보대로 대소 73척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일본 함대와 마주친 견내량의 해역 상황은 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아 대형 선박이 항해하기 어려운 긴 해협으로 최소 폭이 180미터, 최소 수병 등의 활약으로 연전연패하며 패색이 짙어지자, 패전을 외교로 보상받고자 명나라 사신에게 한반도 절반을 요구하는 등 어불성설의 강경한 7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3년 동안 진행되던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대군을 동원하여 조선으로 출병시켰다. 이를 정유재란이라 한다.당시 한산대첩 등으로 남해의 재해권을 장악하다 억울한 모함에 빠져 옥고를 치른 후 다시 백의종군하여 1597년 7월 삼군수군통제사로 재등용된 이순신은 급히 남은 병선을 거두어 전비를 다시 갖추었다.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1597.9.16)을 하루 앞둔 9월 15일에 작성된 『난중일기』에는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다진 글이 실려 있다. 즉 “적은 수의 해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진을 우수영(울들목) 앞바다로 옮기고 나서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이렇게 훈시 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生卽死 必死卽生)’고 하였다.이러한 전투의지로 이순신은 1597년 9월 16일 133척을 이끌고 침입한 왜 수군의 주력부대가 서해로 회향하려 하자 전라도 명량 해상에서 왜 수군과 백병전을 벌여 적선 30척을 격파하고 서쪽으로 침공하려는 왜군의 기세를 꺾고 다시 재해권을 차지했다. 조선 수군이 명량해전에서 전함 수 10배, 병력 8배가 넘는 왜군 함대를 맞아 승리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명량대첩(鳴梁大捷)” 이다※ 귀무덤의 유래교토의 귀무덤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1597년 정유재란을 도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이 이렇게 오래 간 것은 전라도민의 조직적인 반항이 심해서이다. 왜군은 전라도에 진격하여 일시에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고 명령했다.전라도에 대한 이러한 앙심을 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때 ‘코 베기’라는 천인공노할 참극을 벌였다. 도요토미는 “사람의 귀는 둘이고 코는 하나다. 죽은 사람의 조총을 발사해 앞에 섰던 우리 군사들이 쓰러지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펼쳐지게 되었다.이렇게 시작된 해전은 양쪽이 모두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결전의 양상으로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조ㆍ명 연합함대가 화공을 펴면서 전세가 일본 함대에게 크게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이 날의 화공은 겨울철에 부는 북서풍을 이용하여 풍상 쪽에 위치한 조ㆍ명 연합 함대가 풍하에 위치한 일본 함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술 이었다.조ㆍ명 연합함대의 화공에 큰 타격을 입은 일본 함대는 전투를 계속하면서 퇴로를 찾아 남해도 연안을 따라 관음포 쪽으로 함대를 이동하였다. 현재의 관음포는 간척사업의 결과로 포구가 그다지 깊지 않지만, 당시에는 입구에서 포구 안쪽까지의 거리가 매우 멀어 수평선과 지평선이 혼동될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 함대도 전투 중에 남해도를 돌아나가는 해로로 착각하고 포구 안으로 진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일 아침, 날이 밝자 관음포에 갇힌 상황을 인식하게 된 일본 함대는 일부 병력이 남해도로 상륙하여 도주하였으나, 나머지 함대 전체는 포구를 탈출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해전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해전사상 가장 격렬한 전투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격전 중에 이순신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결국 이 전투는 11월 19일 정오경에 화력과 군선 면에서 우세한 전력을 갖춘 조ㆍ명 연합함대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 해전에 대한 당시의 한 기록에 의하면 “낮도 되지 않아서 적의 배는 거의 다 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으며, 도망하여 벗어난 것은 겨우 50여 척이었다” 고 승전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이순신과 강강수월래강강수월래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순신(李舜臣)과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하여 아군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玉.
    인문/어학| 2015.03.14| 12페이지| 3,000원| 조회(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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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어학요론 - 언어와 생활
    日語?要論- 제 6장 언어와 사회 -학 과학 번학 년이 름연 락 처E-mail제 출 일XX大?校 日語日文《 目次 》Ⅰ. 대우법31. 대우표현의 정의2. 대우표현의 종류Ⅱ. 경어31. 경어의 정의2. 경어표현의 특징3. 경어 용어의 변천4. 경어선택의 요인5. 경어의 분류Ⅲ 위상어61. 위상어의 정의2. 성별 차에 따른 여성어 / 남성어3. 연령차에 따른 유아어 / 노인어4. 소속된 집단에 따른 집단어5. 생활하는 지역에 따른 방언Ⅳ. 일본어의 변화71. 문법형식의 혼란2. 발음상의 혼란3. 경어체계의 혼란※ 리포트 후기9※ 참고문헌9Ⅰ. 대우법1. 대우표현의 정의- 대우표현이란 인물평가에 관련되는 제반 사항에 근거하여 표현주체가 자신과 객체(표현 수용자)간의 상호관계를 고려하여, 그들간의 상하ㆍ친소 등에 관련된 표현주체의 태도를 상황에 따라 표명하는 언어행위이다. 대우표현을 일반적으로 분류하면 경어, 보통어, 경비어로 나눌 수 있다.2. 대우표현의 종류대표적인 대우표현으로는 우선 첫 번째로 경어를 들 수 있다. 경어라는 것은 어떤 표현을 할 때 표현의 주체가 대화를 구성하는 3요소인 화자와 청자 및 화제의 인물간의 상대적 상하관계 또는 사회적 친소관계 등을 고려하여 경의를 나타내는 언어형식을 사용하여 그 관계자를 대우하는 언어표현이다. (※경어를 논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표현뿐만 아니라, 자기를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표현도 경어라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보통어가 있다. 보통어란 대화 속 화자와 청자 혹은 화제의 인물이 대등한 입장일 경우 사용되는 말이다. ( 또래 말도 보통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대우표현으로는 비속어가 있다. 비속어는 우리나라에서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나쁜 말(욕 등), 즉 비속어를 사용하듯 일본도 마찬가지로 화자가 청자 혹은 화제의 인물에 대하여 가볍게 보거나 낮추어 보는 기분을 나타낼 때 비속어를 사용한다.Ⅱ. 경어1. 경어의 정의- 경어란 청자를 높이거나 화자를 낮추어 표현함으로써 청자를 가 많다.2. 경어표현의 특징청자를 높이거나 화자인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경어표현의 특징으로는, 화자가 대상에 대해 무언가를 고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 마음에 언어주체의 대상에 대한 어떠한 평가적 태도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 마음과 평가적인 태도에 근거하여 경어 표현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경어표현의 특징이다.3. 경어 용어의 변천- 일본어에서 『경어』라는 용어는 에도시대에 이미 쓰이고 있었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고대 일본어의 경어현대 일본어의 경어ㆍ경어의 사용은 본래 신이나 왕에 대한 공경 심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근본목적은 신분사회에 있어서 상위자를 높이기 위한 데에 있었음.ㆍ고대 경어는 높여야 할 대상인 화제의 인물이 뚜렷하여 그에 대한 경어사용은 존경어와 겸양어의 두 개의 경어형식만 필요했음.ㆍ현대어에 있어서의 경어사용은 대화의 상대자인 청자에 대한 배려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교경어의 단계에 와 있음ㆍ현대 일본어의 경어형식은 대표적인 존경어와 겸양어 이외에도 많은 경어의 요소가 존재함4. 경어선택의 요인- 경어를 선택하는 요인으로는 대화 당사자들이 주관적인 판단에 기인한 관계가 아니고 대화자들이 소속된 집단 또는 집단으로는 분류할 수 없는 일상 속의 관계를 의미하는 사회적 요인과, 대화 당사자들이 처해 있는 인간관계 또는 대화지 놓여있는 주위환경을 화자가 고려하는 상황적 요인,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화자가 내리는 지극히 주관적인 심리적 판단인 심리적 요인이 있다.① 사회적 요인ㆍ가족(혈연으로 맺어진 관계)ㆍ학교(교육이 이루어지는 곳)ㆍ직장(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근원이 되는 것)ㆍ일반(위의 셋을 제외한 일 상속에서의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② 상황적 요인ㆍ상하관계ㆍ친소관계ㆍ화제의 인물의 영역ㆍ은혜ㆍ역할관계ㆍ대이성 관계ㆍ대화 장면의 공ㆍ사ㆍ격식ㆍ비격식의 구분ㆍ대화 대상 인원수의 다소ㆍ대화 장면에 제3자의 개입ㆍ대화 매체에 의한 간접대화③ 심리적 요인ㆍ심리적 거리감- 상대방에 대한 친근감에 의한 친용하는경우를 말함5. 경어의 분류1) 존경어- 존경어란 화자가 청자의 동작ㆍ존재ㆍ상태ㆍ성질ㆍ소유물ㆍ소속된 집단 등에 대하여 높여서 대우하는 경어이다. (동사의 존경어는 그 문의 주어를 높이는 기능을 갖는다.) 존경어 표현으로는 「いらっしゃる、おっしゃる、なさる」 등과 같은 특정어형(特定語形), 접두사「おㆍご 」나 조동사 「れるㆍられる」, 형식동사, 보조동사 등 존경성분을 붙여 표현한다.위와 같은 표현법이 존경어의 일반적인 표현방법이나, 몇 가지 예외적인, 특수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존경어 사용의 주의할 경우는 다음과 같다.첫 번째로는, 복합동사를 존경어로 쓸 경우이다. 이 경우에 복합동사는 뒤에 있는 동사를 존경어로 표현한다. 두 번째로는 이중경어의 사용이다. 이중경어란 한 문장 안에서 경어 표현이 두 번, 즉 이중으로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社長がお求めになられたものです。」라는 문장에서 「お求めになる」와 「なられる」, 두 번의 경어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중표현의 발생이유로는 화자가 상대방을 과도하게 배려하려다 생기는 오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경어동사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존경의 의미는 없고 오히려 명령의 의미가 포함된 경우이다. 예를들면 교실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칠판을 보라고 할 때 「ごらんなさい」라는 말을 쓰는데 이 경우 칠판을 봐주세요라는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 수업에 집중해서 보라는 명령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는 주체가 물건이거나 동물일 경우에 존경어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다. 존경표현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화자인 나 보다 높이는 표현인데 미생물인 물건이나, 인간보다 하위 생물인 동물일 경우는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존경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2) 겸양어Ⅰ- 겸양어 중에서 행위자를 낮춤으로 인해, 그 행위에 의해 대우되는 화제의 인물을 높이는 경어이다. 겸양어Ⅰ은 소재가 되는 인물을 대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소재성 겸양어라고 칭하기도 하며, 전통적인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겸양어 , 「おㆍご?する、おㆍご?もうしあげる、おㆍご?いただく」의 형식동사 그리고 「お?ㆍご?」와 같은 접두사를 붙여 표현할 수 있다.3) 겸양어Ⅱ- 화제의 인물에 대한 겸양과는 관계없이, 주어나 주어에 관련된 사항을 낮춤으로 인해 청자를 높이이 대우하는 겸양어로, 청자에 대한 배려로 사용되기 때문에 대자성 겸양어라 칭하기도 한다. 겸양어Ⅱ의 표현으로는 「す、る、じる、いたす、おる」와 같은 겸양동사, 「?ておる、?てまいる」의 보조동사, 그리고 한자접두사인 「、、、、」가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낮춰 상대를 높이는 말인 겸양어도 존경어와 마찬가지로 몇 가지 주의해야할 사항이 있다. 첫째, 「申す。まいる。うかがう」등의 겸양표현을 존경어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이다. 둘째로, 「お-なる」를「お-する」로 사용하는 경우이며, 세 번째로, 나보다 (극명한)아랫사람에게 겸양어를 쓰는 경우이다. 네 번째로는, 허가를 구하는 경우 「させていただく」를 의문형이 아닌 종지형으로 쓰는 경우이다. 「させていただく」를 종지형으로 쓰게 되면 상대방의 허가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표현이 되기 때문에 겸양표현에 크게 어긋나 버린다. 마지막으로는 「さしあげる」 표현 보다는 「お-する」를 사용하는 편이 좀 더 겸양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さしあげる」는 내가 상대방에게 큰 인심을 써서 ~을 해준다는, 즉 너에게 베풀어 줄게 와 같은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피하는 편이 좋다.4) 정중어- 정중어는 청자에 대한 정중함을 나타내는 대자경어로, 「명사/형용사 + です/ございます」, 「동사 + ます」를 붙여 표현한다. 이는 한국어에서 「-입니다, -합니다.」의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격식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다.5) 미화어- 미화어란 소재내용에 대하여 품위 있는 말을 사용함으로 인해 화자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말로 일반적으로 해석된다.Ⅲ 위상어1. 위상어의 정의- 언어표현에서 언어 주체나 장면의 차이에 따라 언어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위상이라 한다. 즉, 같은 사항을 전달하는노인의』 소속된 집단을 기준으로 하여 『전문용어 / 은어 / 젊은이 말』, 생활하는 지역을 기준으로 방언으로 구분할 수 있다.2. 성별 차에 따른 여성의 / 남성의- 단어ㆍ문체ㆍ발음 등에 나타나는 남성 특유의 어투, 표현을 남성 어라 하며 여성 특유의 어투, 표현을 여성 어라 한다.남성 어와 여성 어는 인칭 대명사(「おれ、ぼく, きみ、おまえ」: 주로 남성, 「あたしㆍわたし,あなた、あんた」: 주로여성), 종조사(「ぞㆍぜ」: 남성, 「わよㆍわねㆍのよね」여성), 감동사(「おおㆍほお」:남성, 「あらㆍまあ」:여성)로 구분할 수 있다.3. 연령차에 따른 유아어 / 노인어- 유아어는 말을 익히는 만 1세경부터 발육단계에 있는 유아의 말이 대상이 되며, 노인어는 노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 대상이 된다.4. 소속된 집단에 따른 집단어- 어떤 특정한 전문가나 친구들 사이에서 하는 말, 표현 또는 전문 용어.외부에 비밀이 새지 않도록 하거나, 동료 의식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집단어는 기본적으로 은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집단어의 분류로는 특정한 직업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나 전문가들에 의하여 사용되는, 그 직업의 성격에 근거한 특수한 어휘나 용어인 전문어와 특정사회,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집단 안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말인 은어, 그리고 20대 전후(10대 후반~30대 초반)인 젊은이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속어·은어 등의 젊은이말(若者言葉)이 있다.5. 생활하는 지역에 따른 방언- 방언이란 동일한 언어가 나뉘어 발음, 문법, 어휘 등이 지역 간의 차이가 있는 경우 각각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체계로, 일본어의 방언은 크게 본토방언과 류큐방언으로 나뉘며, 본토방언은 다시 동부방언, 서부방언, 하치죠 방언, 규슈방언으로 나뉜다. 동부, 서부, 하치죠, 큐슈 안에서 다시 여러 가지 방언으로 나뉘는데 동일본의 대표적인 방언인 동경방언과, 서일본의 대표적인 방언인 오사카 방언 정도만 알아두면 된다. (방언은 음성, 어휘, 문법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네오방언- 네오방언이있다.
    인문/어학| 2015.03.13| 8페이지| 1,500원| 조회(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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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이되는 우리 먹거리 레포트
    20XX년 X학기 OCU생활 속의 사상체질의학 - 2마당과제 - 『약이 되는 우리 먹거리 2, 아카데미북, 2013』을 읽고Ⅰ. 앵두(櫻桃)Ⅱ. 옥수수(玉蜀黍)Ⅲ. 옻나무(漆)Ⅳ. 율무(薏苡)‘앵두ㆍ옥수수ㆍ옻나무ㆍ율무’ 4개의 내용을 정리하고 감상문적기소속대학학 과학 번학 년이 름E-mail___ 大學校Ⅰ. 앵두(櫻桃)앵두란? 앵두나무의 열매인 앵두는 상온에 보관하면 쉽게 물러지므로 가급적 빨리 먹어야 하고, 냉장 보관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다른 과일에 비해 일찍 먹을 수 있다는 면에서 예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앵두는 잎이 나오기 전인 음력 3월경에 꽃이 피므로 이때를‘앵두의 달’ 이라는 의미에서 앵월이라 한다. 앵두의 과육은 부드러워 주로 생식하지만, 과일주ㆍ과일즙ㆍ젤리ㆍ잼ㆍ정과ㆍ앵두편ㆍ화채 등으로도 이용된다.1. 앵두의 품성과 의미1) 종묘에 제물로 올리던 앵두고려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어 왔던 앵두는 다른 과일에 비해 일찍 익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앵두를 침묘(종묘)에 제물로 올린다고 하였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구체적으로 음력 5월에 앵두를 종묘에 올린다고 하였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이 과일은 모든 과일 가운데 가장 먼저 익는 것으로 반드시 가묘(집안의 사당)에 천신(새로운 것을 신위에 올림)한다. 좋은 종자를 골라 울타리 사이에 많이 심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다.2) 앵두의 의미앵두는 앵도ㆍ함도ㆍ형도ㆍ주수 등 매우 많은 이명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이명에 도(桃)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맹선(621-713)의 『본초』에서 말한 것은 앵두는 앵(櫻)이지 복숭아(桃)가 아니며, 단지 복숭아와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에‘도(桃)’가 이름에 들어간 거라 하였다.허신은 꾀꼬리가 앵두를 먹기 때문에 앵도라 하였다.『이아(爾雅)』에서 설(楔)은 형도(荊桃)라 하였는데, 손염의 주에 형도(荊桃)는 지금의 앵도라고 하였다. 그리고 형도 가운데 가장 크기가 크고 맛이 좋은 것을 애밀(崖蜜)이라고도 하였다.우리나라의 『동의보감』지를 좋게 한다고 하였다.3) 태양인에게 특히 더 좋은 앵두사상의학에서는 앵두가 발산 작용이 강하고 수렴 작용이 부족하기 쉬운 태양인에게 좋은 식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무유고』에서는 앵두를 태양인의 약인 간약(肝藥)으로 분류하고, 그 효능으로 ‘앵두는 감미(甘味)가 있으면서 열성(熱性)이 있다. 조중(調中)하고 익비(益脾: 허약한 비장을 보하여 튼튼하게 함)한다. 정신을 즐겁게 하며 안색을 좋게 한다. 수곡리를 그치게 한다. 라는 약성가로 적고 있다.사상의학에서 앵두는 수렴기운이 강하고 열이 많은 식품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열이 많거나 발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 앵두를 많이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나기 쉽다고 보았는데, 기존 의서에 서술된 앵두의 부작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1. 앵두는 미독하므로 많이 먹으면 토한다. 이는 열이 많거나 수렴 기운이 강한 사람이 앵두를 많이 먹고 토하는 것을 보고 독이 약간 있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2. 앵두를 많이 먹으면 근골이 상하게 된다. 이는 앵두가 수렴하면서도 열성이 있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으로 보인다.3. 앵두는 열성이 있어 익기(益氣: 기운을 북돋움)한다. 이는 열이 많은 사람이 앵두를 많이 먹어서 생긴 부작용으로 보인다.4. 앵두를 너무 많이 먹으면 폐옹(肺癰)과 폐위(肺?)로 사망할 수 있다.5. 앵두는 오행으로 보면 화에 속하면서 토의 기운이 있다. 성질은 대열하고 습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허열이 나고 가래가 나오게 된다.4) 앵두의 특징과 활용ㆍ앵두나무는 한 가지에 수십 개의 열매가 맺는다.ㆍ음력 3월 열매가 익을 때 앵두를 잘 보호해야 한다. (새가 다 먹어치우기 때문)※새가 앵두를 먹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두 개의 갈라진 대나무를 서루 부딪치게 하면 새가 그 소리를 듣고 사라진다.-그물망을 앵두나무 위에 걸어 놓아 새가 오지 못하게 한다.ㆍ앵두를 소금에 절이거나 꿀에 넣고 달이면 오래도록 먹을 수 있다.ㆍ맛있는 앵두를 오래도록 먹기 위하여 정과를 만들기도 하였다.5) 앵두나무 잎ㆍ뿌리ㆍ가지의른 지역에 비해 기후 조건이 맞는 중동 지역에서 옥수수 재배가 상대적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이를 중국의 회교도들이 중동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옥수수를 중국 감숙성 평량으로 처음 가져온 때를 1560년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 최초 옥수수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이 1578년 완성되어 1596년 출간한 『본초강목』으로 보고 있다.2)우리나라 최초의 옥수수 기록152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인 『훈몽자회』에서 혹촉서라는 단어가 율무의 속명으로 소개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훈몽자회』의 기록이 맞는다면 1500년대 초반 옥수수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도입년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어 정확한 시점을 단언할 순 없다.4. 옥수수에 대한 역대 기록1) 『조선왕조실록』의 옥수수선조 때의『조선왕조실록』에 들어있는 옥수수에 대한 기록을 미루어 보면 선조 당시에는 이미 옥수수가 대대적으로 재배되었으며, 구황식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2) 『역어유해』의 옥수수외국어 사전인『역어유해』에 ‘옥슈슈’라고 옥수수에 대한 한글표기가 보이는데 이에 대해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 옥수수의 이삭에는 열매가 없고 잎 사이에 뿔이 생기며, 뿔 밖에는 옥수수자루가 있다. 옥수수자루 위에는 수염이 있고 옥수수자루 속에는 구슬처럼 생긴 열매가 있는데 맛이 달아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이 담장 사이에 옥수수를 많이 심는데 줄기와 잎은 수수와 비슷하나 곡류는 아니다. 라고 하여 옥수수의 형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3) 옥수수에 대한 인식의 확대문헌기록을 통해 옥수수에 대한 인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옥수수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1500년대 초)에는 이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되지 않아 『훈몽자회』(1527)에 율무의 이명으로 기록되었다. 1594년 『조선왕조실록』에서 구황식품으로 옥수수가 거론된 것으로 미루어 1500년대 후반에는 옥수수가 널리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중국어사전인『역어유해』, 개인 문집인『성호선생사설』등에 나오던 옥수수가 17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증보산림경제』 같은 것이 섞여 나오는 임증)으로 인한 참기 어려운 통증 등을 치료하는데, 탕을 달여 자주 마신다’라고 하였다. 이는 옥수수 뿌리와 잎도 약용가능하며 밖으로 내뿜는 기운으로 인해 소변이 잘 나가게 한다는 기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3) 죽으로도 먹었던 옥수수서유구는 『행포지』에서 옥수수를 식량대용으로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이를 소홀히 생각한다고 하였다. 서호수와 성해응도 ‘옥수수는 잎이 수수와 비슷하지만 비후하고 키가 작다. 이를 면으로 만들어 식량으로 충당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쪄서 먹을 뿐이다.’라고 하여 옥수수 가루를 이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장에도 불구하고 옥수수가 옥수수에 다음 2가지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일반화가 늦어졌다.1. 옥수수 알의 단단한 껍질 때문에, 가공하여 먹을 때 그 단단한 껍질이 목에 걸려 매 우 불편했기 때문이다.2, 옥수수에는‘나이아신’이라는 비타민 B가 부족하기 때문에, 햇볕을 많이 쬐는 피부에 홍반이 생기며 가렵고 색소가 침착하여 피부가 벗겨지는 ‘펠라그라’라는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4) 소변을 시원하게 나가게 하는 옥수수수염옥수수 수염은 이뇨 작용이 매우 강하여 비뇨기 계통의 염증인 방광염ㆍ요도염 등을 치료하니 마치 불이 났을 때 물로 불을 끄는 것과 비슷하다. 옥수수수염은 소변을 정상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혈압을 내리는 작용이 있으므로 뚱뚱해지기 쉬운 태음인의 경우 체중 감소 효과도 볼 수가 있다. 또한 간장 질환으로 몸이 붓는 증상에도 효과가 좋다.5) 옥수수차의 효능옥수수는 초여름에 심어져 늦여름에 수확하기 때문에 여름의 기운이 있으며 팽창하는 성질이 있다. 옥수수차를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며 찌뿌듯한 몸이 풀어진다.보리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지나고 봄을 거쳐 이른 여름에 수확하기 때문에 사계절의 기운이 다 있으며 특히 겨울 기운인 냉성이 강해 몸을 시원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보리차를 마시면 몸이 시원해진다.따라서 몸이 냉한 소음인이나 몸이 찌뿌듯하고 위장 기능이 약한 태음인에게는 따뜻한 옥생긴 요통이나 산가 등을 건칠로 치료한다고 하였다.3) 적체와 어혈을 풀어준다.장원소는‘건칠은 오랜 세월 굳게 굳은 적체와 오랫동안 뭉쳐진 어혈을 없앤다.’라고 하여 오래된 적체와 어혈에 옻을 사용하였다.4) 만성피로에 사용『대명』에‘옻은 전시노를 치료하고 풍을 제거한다.’라고 하였는데, 전시노는 폐에 침입하여 전염되는 만성 소모성 질환으로 허로병인 노채를 의미한다. 따라서 옻은 만성피로에 응용될 수 있다.5) 무병장수를 가능하게 한다.『증류본초』에서 ‘생칠을 먹으면 장충(회충)을 제거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는다. 라고 하여 옻을 먹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6) 경맥불통을 다스린다.따뜻한 성질의 옻은 무월경 및 생리불순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증류본초』에 ‘옻은 삼충(회충ㆍ요충ㆍ조충)을 죽이며 여인의 경맥불통을 다스린다.’라고 하였다.7) 소음인의 위(胃)를 따뜻하게 한다『금궤비방』에 의하면 ‘여러가지 층이 있을 때, 소음인은 약성이 남을 정도로 불에 태운 건칠 1량을 닭의 뱃속에 넣고 푹 삶는다. 1명의 아이마다 1마리씩 공복에 복용한다.’라고 하여 소음인의 횟배에 건칠을 사용한다고 하였다.손발이 냉하기 쉬운 소음인이 술을 많이 먹으면 더욱 배가 냉해지기 쉬운데, 이때 소음이이 옻독에 걸리지 않는다면 권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닭에 옻을 넣어 끌이는 옻닭이다.8) 치료에 외용하였다.생칠(生漆)을 직접 외용하기도 하였다. 『주후비급방』에 의하면 ‘독병(나쁜 병)으로 하부에 부스럼이 났을 때 생칠을 직접 바르고 솜으로 긁어낸다고 하였다.※하지만 생옻을 직접 외용하는 것은 위험하니 전문 한의사와 상담한 뒤에 시행해야 한다.9) 옻나무의 잎ㆍ꽃ㆍ열매도 이용옻나무의 잎은 따뜻한 성질이 있으며 해독작용이 있어 식용으로 먹는다. 이시진은 옻나무 잎에 대해 ‘오시(폐에 침입하여 전염되는 전시로의 5가지 종류)와 노질(폐에 침입하여 전염되는 만성 소모성 질환으로 허로병을 의미함)을 치료하고 벌레를 죽인다. 햇볕에 말려 분말로 만든 다음 술에 (薏苡)
    독후감/창작| 2015.03.13| 17페이지| 3,000원| 조회(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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