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지구인이 알아야 할 인류 문화 이야기’ 를 읽고이 책은 인류학이라는 어쩌면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를 내부인인 인간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자 외부인인 외계인의 시각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헌책방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외계인이 작성한 종이 뭉치를 발견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 책에서는 인류학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연구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인류 문화의 전반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문화, 문화의 교류와 변화, 성의 역할, 결혼과 가족, 놀이와 축제, 종교와 사회, 정치와 권력, 경제, 자연과 인간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화자인 외계인의 독특한 호기심은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지하게 인류 문화의 본질을 꿰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외계인의 생각과 자세는 글쓴이가 원하는 우리가 가져야할 수용적인 자세와 생각이 아닐까?이 책에서는 인류와 문화,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와 세계라는 세 개의 큰 주제를 정해놓고 이 안에서 다시 세분화해서 인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서 특히나 흥미로웠던 몇 가지 파트에 대해 설명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려한다. 가장 먼저 흥미로웠던 파트는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글이었다. 문화상대주의는 중고등학교 사회시간, 사회문화시간을 비롯해서 현재 수업을 듣고 있는 문화인류학 시간에서 까지 문화와 관련 된 학문에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어쩌면 가장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기도하다. 그 동안 문화상대주의를 배우면서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이 장례풍습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그래, 어떤 풍습이라도 그 문화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이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화장, 매장이 익숙한 문화권에서 살아왔기에 장례풍습과 관련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하지만 이 파트에서는 티베트의 조장 풍습의 유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기에 이를 통해 장례풍습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티베트를 여행한 서양 사람들 또는 무력으로 티베트를 장악한 중국은 티베트의 조장풍습을 야만적이라 여겼다. 또한 중국의 문화 혁명기(1966~1976)에 티베트로 간 중국의 군대는 조장을 금지시키기 까지 했다. 이를 어기면 혹독한 벌을 주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를 시체를 모욕하는 행위라고 여기고 야만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외부인의 생각일 뿐이다. 왜 조장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섣부르게 자기들의 관습과 문화에 비추어 야만적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사람들의 죽은 사람의 몸을 땅에 묻는 이유, 즉 매장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은 몸이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죽는 것을 ‘흙으로 돌아간다.’고도 표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티베트는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처럼 죽은 사람의 시체를 땅에 묻는다면 시신이 오랫동안 썩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할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이야 말로 죽은 사람에 대한 모욕이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조장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문화적 바탕을 잣대로 가지고 타문화를 평가하면 타문화를 온전히 이해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문화를 이해할 때 그 문화가 생겨난 원인이나 그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를 해야 제대로 된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 흥미 있게 읽었던 부분은 성과 문화에 관한 부분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차별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어디서나 많이 접한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뒤로 한 장 넘겼을 때 소주제를 보고 ‘새로운 글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주제는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였다.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히 생물학적으로 다른 신체를 갖고 태어나지만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가 하는 일도 달라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처음으로 명쾌한 답을 내놓은 사람은 여성인류학자 마거릿 미드(1901~1978)다. 미드는 남태평양 세 부족을 오랫동안 관찰하고서 쓴 세 부족 사회의 성과 기질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은 그 사회가 놓인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세 부족은 아라페시족, 먼두구모르족, 챔블리족이다. 먼저 아라페시족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를 배려하는 성격을 가졌으며 또 그런 사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결혼상대자로도 또한 부드럽고 순한 사람이 인기가 많았다. 반면 먼두구모르족은 남성과 여성 모두 공격적이고 강한 성향을 띠었다. 부드럽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나약한 것으로 보고 독립적이고 강하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결혼상대 역시 이런 사람을 선택했다. 그런데 챔블리족은 위의 두 부족과는 달랐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다. 여성은 일 처리를 남성에 비해 더 잘하기 때문에 사회를 지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고, 남성은 의존적이며 책임감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챔블리족의 남성들은 화려하게 치장해서 여성들의 눈길을 끌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이런 생각은 현재의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세 부족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성격이 각각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 부족사회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각각 다른 문화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렇게 됐기 때문이다. 미드의 오랜 관찰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이 그 사회의 생각과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해, 남성과 여성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문화화 또는 사회화를 거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자라나는 것이다.나는 여성이다. 나의 이러한 행동과 모습들은 사회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일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정신분석학적 자아와 철학적 주체’라는 과목에서 철학자 라캉을 배우고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가 원하는 모든 것은 주체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자라고 규정되어지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욕구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나의 여성적인 요구들은 사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나의 요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할 수 있다. 당연히 내가 여성이기에 나의 안의 여성성에서 나온 줄 알았던 요구와 욕구들이 사실은 타자 즉, 사회와 환경에 의해 규정되어진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세 번째로 흥미롭게 읽었던 파트는 종교와 관련된 부분이다. 현재 지구에는 4대 종교라고 불리는 종교가 있다. 여기서 4대 종교는 종교의 규모를 얘기하는 것이며 이 종교의 규모란 종교의 신자 수를 얘기하는 것이다. 4대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다. 그런데 이들 종교 중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불교와 힌두교는 서로 사촌지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가깝다. 기독교의 유래는 구약 성격을 신봉하는 유대교다. 유대교 신자인 유대인들은 기독교의 모태인 신약 성경의 주인공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유대인과 예수 모두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유대인이 살았던 팔레스타인에서 멀지 않은 아라비아에서 태동했는데, 이들의 조상 또한 아브라함이다. 그러니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아브라함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한편 이런 관계는 불교와 힌두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불교와 힌두교 모두 인도에서 기원했다. 두 종교가 있기 전에는 애초에 브라만교가 있었다. 브라만교는 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한 계급 종교였다. 따라서 브라만교에서 보통사람들은 배제되었다.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난 것이 불교였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계급 철폐와 평등을 주장했으며 보통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전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브라만교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이어서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브라만교의 교리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우주의 질서보다는 생활에 중심을 두는 종교로 탈바꿈했다. 그것이 힌두교다. 두 종교 모두 공통된 우주관을 지니고 있고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지향점이 같다. 이렇듯 4대 종교가 둘씩 짝을 이루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과 모두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인종주의는 본성인가’를 읽고‘중요하지만 생각하기를 꺼려하는 주제’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 책의 저자인 알리 라탄시는 ‘인종주의’ 라고 말한다. 인종주의는 정말 본성인 걸까? 이 질문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확한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본성보다는 후천성에 가깝다는 주장이 다수라고 말한다. 과거의 이집트, 로마제국, 그리스의 경우 인종적 차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인종 구분이라는 개념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를 차별의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로마제국의 경우 초상화로 미루어보아, 흑인계통의 황제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인간은 낯선이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호기심을 더욱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사실 인종주의는 백인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이라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인종주의의 주체가 백인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차별 또한 유색인종의 유색인종 차별 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종주의라는 단어는 어디서 유래했으며 또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인종주의라는 단어는 사실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인종의 구분만큼 오래 되었을 것만 같은 이 단어는 사실 1930년대 이후 등장한 단어이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청소 프로젝트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도입된 것이 인종주의다. 인종이라는 단어는 인종주의보다는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사용된 말은 아니다. 영어의 경우에서. 인종(race)이 현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는 것은 16세기 중반부터라고 한다. 16세기는 발견의 시대였다. 대륙을 발견함과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팽창과 식민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동시에 대륙에서 발견한 원주민들에 대한 대우가 화두로 떠올랐다. 동등한 대우를 할 것인가 혹은 미개한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그 문제는 17세기 노예무역이 활성화되면서 그들을 미개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널리 퍼지면서 해결 아닌 해결이 되었다. 원주민들을 이성을 가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18세기 계몽철학자 칸트와 흄조차‘어떤 사람이 피부색이 새카맣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19세기에 등장한 과학적 인종주의는 유색인종이 열등한 인종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러한 증명을 바탕으로 시민권을 제한하고 정치적 차별을 정당화 하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우생학자들은 인류 발전을 위해 열등인종의 출생률은 낮추고 우등인종의 수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최악의 인종주의가 나치의 유대인 청소이다. 나치의 유대인 청소프로젝트는 잘못된 것이며 아주 과도한 것이나 반유대주의의 역사 자체가 뿌리 깊지 않느냐는 질문은 또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반유대주의라는 용어조차도 1870년대 후반에야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선동가 빌헬름 마르가 반유대연맹이란 단체를 만들고 유대인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쓰기 시작한 게 기원이다.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인종주의의 역사는 아주 짧다. 과학적 인종주의 또한 인종주의의 정당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 유전학에 따르면 인류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집단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전자의 패턴이 다르고 그 형질이 차이가 난다고 해서 인종의 분리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종에 대한 과학적 견해다. 즉, 실제로는 인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이 책의 서두에서는 이와 관련해 나치즘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얘기한다. 유대인 학살에 있어서 실제 인종의 구분이 모호했다는 것이다. 나치 독일에서는 조부모 4명 중 3명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규정하는 명료한 법을 가지고 있었고, 4분의 1 혹은 2분의 1 유대계 혈통인 사람들은 유대교를 믿지 않거나 유대계 혹은 부분적 유대계 혈통과 결혼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독일 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에 유대교 신앙 같은 문화적 관행이 인종적인 표지로 기능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의 차이를 전제로 인종 간 차별을 하며 이를 정당화 하려하는 인종주의는 근거 없는 잘못된 것일 뿐이다.영국의 경우 1965년 최초로 ‘인종관계법(Race Relations Acts)’이라는 법을 만들었다. 이는 인종주의를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인데도 불구하고 인종의 정의는 핵심 이슈가 되었다. ‘인종’이라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개념임을 인정할 때. ‘인종적 차별’을 금하는 법을 만든다고 할 때의 그 ‘인종’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 그 문제이다. 일단 여기서는 인종적 정의를 둘러 싼 유명한 사건 하나를 예시로 들고 있다. 1978년 한 시크교도가 제기한 소송이 바로 그 예시다. 시크교도인 한 소년이 사용하는 터번이 학교 유니폼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학생의 입학을 거부한 학교는 이 소년에 의해 소송 당했고, 법원은 소년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은 ‘인종적 집단’의 정의를 정리해놓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고 한다. 시크교도들은 자신들끼리 공유해온 긴 역사와 고유한 문화적 전통, 공통의 지리적 기원, 공통의 언어, 공통의 문학, 공통의 종교를 갖고 있으며, 소수이든 다수이든 커다란 공동체(영국 사회)에 속해 있는 하위 집단이라는 점에서 ‘인종적 집단’이라 할 수 있다고 판결문에서 명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인종적 집단의 일원이라고 느낀다면 그렇다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이 인종적 집단을 판가름하면서 피부색 같은 표현형질이 아닌 ‘문화적 기준’을 일차적인 잣대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결정은 때로는 독단적으로 남용될 수도 있는 자발적인 자기 정의의 개념까지도 인종의 판단 기준에 포함시켰다. 나는 이 기준이 대체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 예로 들어보자면, 실제로 주위에 피부색이 평균보다 어두운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를 타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조상 중에 아시아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타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이 기준에 힘을 실어준다. 동남아에서 온 한 사람의 피부색이 그들 나라의 평균보다 좀 더 밝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타민족으로 생각한다. 피부색은 사실 중요한 기준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또 그 사람의 자발적 정의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