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사례 보고서- 나의 설득 메시지 -학과 : 언론정보학과학번 : 2009104677이름 : 서 민우담당 교수 : 강태완 교수님제출일 : 2014.06.09Ⅰ. 서론1. 설득의 주제와 그 대상2. 관련 문헌 분석Ⅱ. 본론1. 설득 과정 일지 및 사용된 수사학 기법2. 설득 과정 시 사용된 조작적 정의Ⅲ. 결론1. 설득 과정에 따른 결과2. 내가 개발한 ‘설득 메시지’3. 활동의 함의 / 외적 타당성에 대한 분석4. 한계점에 대한 고찰Ⅰ. 서론1. 설득의 주제와 그 대상1) 설득의 주제설득을 진행 할 주제는 바로 종교와 과학에 관한 것이다. “신학자(종교인)에게 진화론을 하나의 ‘이론’으로 인정하게 할 수 있을까.” 라는 발상에서 이 보고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종교와 과학간의 갈등을 수사학적 기법을 통해 해결 할 방법이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수사학 기법을 통해 개인의 과학과 종교의 양립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이 설득과정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실제로 수사학적 기법은 아니지만 실험적인 연구를 통해 신학 대학교 학생들의 인식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변화시킨 선례가 있었기에 불가능 하지는 않을 듯싶었다.2) 설득 대상 및 선정 이유설득 대상으로 선정된 인물은, 나의 친구 장요셉 군이다.(이하 장요셉 혹은 요셉) 장요셉은 서울시 소재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에 3학년 재학 중인 학생이다. 처음 설득을 할 대상을 물색하다가, 설득의 용이성을 위해 접촉 편의성이 보장된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기엔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대상을 택하는 것이 설득의 전 과정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또 설득대상인 장요셉이 모태신앙이라는 점, 그리고 기독교 중에서도 과학에 대한 태도가 보수적인 장로교에 해당하는 신학대인 총신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점도 주제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설득을 진행하면서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종교의 특수성에 주목해야만 했다. 종교가 개인의 가치관 내지 신념과 직결되는 특태신앙이며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에 대한 회의감을 단 한 번도 가 진적이 없다. 특히 지난여름 기독교 캠프 참여 경험을 통해 실제로 신의 존재에 대해 느낀 적이 있다. 난 성실한 교인이라 자부한다.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들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 나. 설명해 달라.요셉 : 솔직히 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 생각한다. 믿지 않는 것 또한 구원해 야할 대상들이라 생각한다.나 :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 이런 논쟁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된다. 당신의 입장은 어떠한가요셉 : 진화론은 신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한 모욕이라 본 다.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논리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한다.나 :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류에게 번영을 준 것은 과학과 문명인 점은 당신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읽고 있는 성경책도 인쇄술이라는 큰 범주의 과학기술 아닌가.요셉 : 하지만 인간에게 정신적 차원의 진보를 이루게 한 것은 종교라 본다.나: 그렇다면 생명공학의 발달로 게놈프로젝트 등이 실행됨에 따라 종교계의 주 장은 점차 소설 같아 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 가?요셉 : 진화론에 근거한 과학자 및 생물학자들의 말대로라면 인류를 비롯한 모 든 생명은 끝없이 진화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세기 때부터 인류는 원죄를 지고 태어난 존재이고, 끝없이 반복되는 원죄와 회개의 반복만이 있을 뿐 진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인류에게 특별 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진화가 아닌 단순한 ‘변화’일 뿐이다.나 : 잘 알겠다. 당신은 그럼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원과 그의 연구에 기반 하 여 생명공학기술을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학자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셉 : 의료기술 등 인류에게 실천적인 도움을 주는 기술 자체는 또 다른 의미 의 복음전파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진화론적 입장은 인류를 실험실의 쥐 정도로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매우 불경한 주장이라지 못하다.” 라는 최종 설득 단계이전의 전초적인 문장을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이게 하기 위해,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보았다. 그 당시 상황은 아래와 같다.2회차< 교란작전 >나 : 지난번에 무례하게 당신을 몰아붙인 점 사과한다.요셉 : 괜찮다. 나도 신념에 관련된 사항이라 다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나 : 그렇다면 오늘은 가볍게 종교와 과학이 그 동안 어떠한 관계들을 가졌는지 역사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요셉 : 종교의 역사에 관해서는 우리 학교에서도 꾸준히 강의를 들어, 흥미로울 듯하다.나 : 종교와 과학의 최초의 본격적 충돌은 17세기로, 학계에서 잠정적 결론 내 린 것을 알고 있나? 지금과 같이 생명공학과의 갈등이 아니고 그 당시에는 우주론을 둘러싼 갈등이었다.요셉 : 기억이 난다. 코페르니쿠스였나 그랬던 듯하다.나 : 맞다. 1543년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혁명적인 의미를 함축하 고 있었으나 교회의 신임이 두터웠던 코페르니쿠스였기에 별 탈 없이 넘어 갔다. 후에 갈릴레오가 2000년 동안 끄떡없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 틀렸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게 된다. 처음엔 가톨릭교회도 그의 발견을 환영 했었다. 하지만 하급 성직자들에게서 지구가 돈다는 것은 성서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의가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배운 적이 있는가?요셉 : 그 사실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하다.나 : 그 후 갈릴레오는 성서는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고 발을 당했고, 종교재판에 회부되게 된다. 이 사건은 사실 '계몽적인 이성‘ 과 맹목적 신앙의 단순한 대결만은 아니었다.요셉 : 그렇다면 어떠한 대결이었나?나 : 사실적으로 당시 교황이던 우르바누스 8세가 프로테스탄트들에게 고한 간 접적인 경고의 성격이 더 강한 경우였다.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파 에 대한 일종의 견제가 필요했던 것이다.요셉 : 종교의 역사에 대해 배울 때 학교에서는 흐름에 초점을 두는데, 그 이면 에 깔렸던 의도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준 적은 없다.나 : 계속하겠다. 그 후에 일어난도착한 리뷰를 통해 이번의 만남은 첫 만남 때보다는 유연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생략삼단 논법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진화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역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해서 상대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이어버리는 일종의 ‘교란전’을 펼쳐서 생략삼단논법의 효과가 배가된 것 같았다. 위의 대화 내용 중 내가 사용한 생략삼단논법의 형식은 아래와 같다.“종교계는 과거에 정치적 목적으로 지동설을 탄압했다.” -> 대전제“지동설과 진화론은 종류는 다르지만 결국은 과학이다” -> 소전제“그렇기에 진화론에 대한 종교계의 비판은 옳지 못하다.” -> 결론위의 삼단논법 형식 중 소전제를 생략하여, 대전제와 결론을 직접 연결 지었다. ‘종교계는 과거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을 비판한 경력이 있기에, 진화론의 무조건적인 비판은 옳지 못하다.’ 라는 당위적인 생략삼단논법이 예상대로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상 종교의 진화론에 대한 비판에 정치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는 근거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동설과 진화론은 종류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과학이다.’ 라는 소전제 또한 논리적 비약이 존재하였지만, 상대방은 논리적 형식을 취한 위의 말에 어느 정도 설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설득을 준비할 때는 본격적인 나의 설득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해 설득 메시지 구성을 위한 전략을 활용해 보아야겠다.3) 세 번째 설득 과정 (2014.05.19)계획 했던 설득과정 중 마지막 만남의 날이다. 이번 만남의 최종 목표는 비록 3회차 라는 제한적인 횟수 안에, 수사학적 기법을 통해 ‘개인의 과학과 종교의 양립가능성 발견을 이루어 내는 것’이었다. 앞서 진행했던 두 번의 과정을 통해 장요셉은 어느 정도 이 모임에 호의적 태도를 가진 듯 했다. 따라서 마지막 설득을 위해 준비했던 것은 로고스적 기법을 지속적으로 취하면서 상대의 ‘태도변화’를 의도해 보았다.fishbein의 모델에 따르면 행위에 앞서 생각한다.나 : 잘 파악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이 아닌 순수과학 종류)의 대부 분은 서구에서 동양으로 전파된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즉 인격신의 확립으 로 인해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고, 이는 근대적 과학의 발전을 가 능하게 했다는 말이다.요셉 : 그렇다면 인격신의 개념이 자연법칙을 만들었고, 그는 곧 이성적이고 합 리적인 철학을 만들었고, 또 연장선에서 보면 그런 합리주의적 태도들 이 근대과학을 창조했다는 것인가?나 :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과학에 대한 종교계의 태도는 일부 보수 주의를 제외하곤 대체로 호의적이다.요셉 : 그 말에는 동의한다.나 :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양립 가능한 학문적 입장에서 논의 되어야한다. 어 느 것도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 원인을 야기한 다른 원인이 있게 되어있다. 세상은 이어져 있다. 생각하 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종교는 과학을 비판할 수 없으며, 과학 또 한 무조건적으로 종교를 비판해서는 아니 된다 생각한다.요셉 : 맞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들을 볼 때 마다 같은 교 인으로서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이 모임을 통해 나 또한 생각하고 느 끼는 바가 많았다. 느낀 점들을 정리해서 지난번처럼 메일로 보내주겠 다.다소 생략된 내용들이 많으나 핵심적으로 오고 간 대화 내용들은 위와 같다. 마지막으로 준비해간 자료들을 보면서,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대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선 메시지 구성에 있어서 진술부 같은 경우는 다음과 같다. 과학의 발달에 종교의 역할이 분명하게 존재한 다는 점을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사법적 영역에서의 2분할 구조’를 참고하여, 과학이 종교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들이 없음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오히려 상호배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각 영역들의 발전을 돕는 상호공생적인 관계였음을 제시하면서 주장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했다.다음으로 증명부 같은 경우는 로고스적 영역이었기에 오히려 다.
노동 분야에 활용되는사회심리 이론목 차Ⅰ. 서론Ⅱ. 고용주 입장에서 설명될 수 있는 이론과, 그 사례(1) 게임이론(2) X Y Z 이론Ⅲ.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설명될 수 있는 이론과, 그 사례(1) 균형 이론 - 인지부조화 이론(2) 갈등 이론(3) 비교 이론 - 상대적 박탈감Ⅳ. 결론(1)대한민국 사회의 노사갈등(2)협력적 노사관계의 모범사례: 도요타(3)노사갈등의 해결기법Ⅰ. 서론노동운동이라 하면 우리들은 흔히 ‘시위’와 ‘투쟁’ 그리고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이 키워드들은 노동운동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며, 노동운동이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라는 본성을 가지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운동은 노사문제가 심화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사회현상인데, 그 시초는 19세기 초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경제 불황으로 인한 고용감소와 실업자 증가로 임금의 체불이 성행하였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치솟았다. 노동자들은 실업과 생활고의 원인을 기계의 탓으로 돌리고 기계 파괴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를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한다. 두산백과, 러다이트 운동 이 폭력적인 운동은 단순히 공장 자동화 기계의 출현에 반대한 산업 노동자들의 섣부른 폭력 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혁신' 논리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당시 산업 노동자들은 가족을 해체하고 여성과 아동을 공장에 내몰고 전통적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관계에 분노하여 결집하였고, 저항하였던 것이다.최근 우리사회에선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폭력적인 운동, 러다이트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스톡옵션의 가치와 기업의 사탕발림을 믿고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다 길거리에 나앉은 실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사내 전산망의 파괴와 회사자료 파괴로 이어졌고 기업들은 외부에서 침입해오는 해커가 아니라 사내의 적들을 단속하기 위해 전산망을 감시하는 기현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신 경제의 정체가 지속되면서 무차별 피고용인의 입장을 나누어, 사회심리학적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Ⅱ. 고용주 입장에서 설명될 수 있는 이론과, 그 사례(1) 게임이론이 이론은 한 개인의 전략적 상황(자신의 의사결정에 의한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적인 상황)에서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협조적 게임 vs 비협조적 게임: 만약 게임 참여자들이 구속력 있는 약속을 맺을 수 있다면 그 게임을 협조적이라 한다. 예를 들어 법적 규제가 참여자들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경우다. 비협조적 게임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 협조적 게임에서는 종종 참여자 간의 의사소통이 허용된다. 그러나 비협조적 게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기업인 ‘삼성’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비협조적 게임의 한 예이다. 삼성의 기업시스템은 어느 기업보다도 수직적이기 때문이다. 국군 지휘체계에서 쓰이는 사단장 지시사항과 같은 수직적인 보고체계를, 삼성에서도 그대로 차용해서 사용 할 정도이다.-제로섬 게임 vs 넌 제로섬 게임: 제로섬 게임은 두 사람이 경쟁을 통한 게임을 할 때 한 사람이 게임에 이겨서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넌 제로섬 게임이란, 말 그대로 합이 0이 되지 않는 게임을 이야기 한다. 위에서 말한 제로섬 게임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논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수많은 노사분규의 원인은 결국 제한된 재화라는 것에서 귀인한다. 임금인상 투쟁 같은 경우도 한정된 재화를 얼마나 어떠한 방식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노사가 서로 상이하기에 생기는 제로섬 게임이라 볼 수 있다.-대칭적 게임 vs 비대칭적 게임: 대칭적 게임이란 특정 전략에 대한 보수가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닌 다른 전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대칭적 게임에서는 참가자의 위치를 바꿨을 때 전략에 대한 보수가 바뀌지 않는다. 죄수의 딜레마, 치킨 게임 등은 대칭적 게임의 대표적인 예이다. 대대의 전략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의 전략 역시 바꿀 유인이 없는 균형상태를 말한다. 오늘날 정치적 협상이나 경제 분야에서 전략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내쉬 균형을 이루는 예는 죄수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가 대표적이다.(2) X Y Z 이론-X 이론 (맥그리거) ->고용주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이론원래 인간은 일하는 것을 싫어하여 될 수 있으면 일은 안하려고 생각하고, 따라서 대다수의 인간은 강제되거나 명령을 받거나 혹은 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요되지 않으면 조직이나 기업의 목적달성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며, 보통 대다수의 인간은 남에게서 명령받기를 좋아하고 그다지 야심도 없으며 책임은 회피하여 일신의 안전 내지 안정만을 희구한다는 것이다.ㄱ.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피하려고 노력한다.ㄴ. 종업원들은 통제받고 지시받기를 선호한다.ㄷ. 종업원들은 책임보다 안정성을 원한다.ㄹ. 경영진이 강요해야 종업원들은 일한다ㅁ. 종업원들은 금전적 보상에 의해 동기부여 된다.수직적, 위계적 노사관계를 보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 관료제 사회를 X 이론의 예로 들 수 있다.-Y 이론 (맥그리거)일이란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고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는 즐거움과 만족의 원천이 될 수도 있으며 인간은 자기 스스로 통제하고 또한 책임질 줄도 안다는 가설이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고자 하고, 인간은 또한 타인에 의해 강제된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ㄱ. 종업원들은 일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ㄴ. 종업원들은 제한된 통제와 지시를 선호한다.ㄷ. 종업원들은 적당한 상황에서는 책임을 추구한다.ㄹ. 종업원들은 위협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ㅁ. 종업원들은 여러 가지 욕구에 의해 동기부여 된다.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중시하고 회사를 캠퍼스화 하는 등 종업원들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구글’과 같은 기업을 Y 이론의 예로 들 수 있다.-Z 이론 (윌리엄 오우치)X ,Y 이론의 Ⅲ.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설명될 수 있는 이론과, 그 사례(1) 균형 이론 - 인지부조화 이론사회심리학적인 균형 이론들은 태도와 인지적 구조에 대한 하이더(F. Heider)의 균형이론(balance theory)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는 이후 페스팅거(L. A Festinger)에 의한 인지 부조화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으로 발전하였다.하이더는 균형이론에서 사람이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들과의 그리고 그의 주변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지적 상태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P)과 다른 사람(O), 그리고 객체(X)의 관계에 의해서 개인의 인식적인 구조는 균형 또는 불균형 상태로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이더의 균형이론에 따르면 P, O, X의 세 가지 구성 요소가 모두 긍정적 관계일 때나 이 중 두 개의 요소가 부정적이고 한 개의 요소가 긍정적 관계일 때 균형 상태가 이루어진다.페스팅거(L. A Festinger)에 따르면 균형 상태가 아닐 때 인간에게는 인지부조화 상태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부조화의 효과에 대하여 두 가지 기본적인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첫째, 인지적 부조화는 심리적으로 긴장을 느끼는 것으로,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부조화를 감소시키고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동기를 유발시킨다.둘째, 사람이 부조화를 느끼면 부조화를 심화시키는 상황이나 정보를 회피한다.이러한 부조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전략은 다음과 같다.첫째, 기존의 인지를 수정한다.둘째, 선택적 지각을 행한다. 즉, 기존의 인지와 일치하는 정보만을 수용한다.셋째, 새로운 인지를 부정하고 기존의 인지를 강화한다.이와 같은 인지부조화 현상은 다양한 조직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부여받은 업무처리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자신의 지향성이나 가치관의 불일치에 따른 갈등이 일어날 때, 다시 말해 조직에서 표현해야하는 규범적 감정표현과 업무수행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내면의 실제 감정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보장하도록 제도나 규칙을 정비, 제정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보다는 지배 집단의 강압에 의하여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란 지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불과하다.셋째, 국가기구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대변하기보다는 지배계급에 의하여 통제되고 조종되는 억압의 기구이다. 기존 체제에서 혜택을 누리는 소수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법률 제정과 집행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에 국가기구는 결코 중립적 기구일 수 없다.갈등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최근 자사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공영방송 KBS 기자협회의 뉴스 파행, PD들의 제작 거부 선언이 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제대로 된 뉴스를 마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뒤에 돌아가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에 언론학자들이 발표한 입장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은 정권의 언론통제 중단 및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즉 피고용주인 KBS 기자들이 그들의 신념을 고취하기 위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상을 갈등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3) 비교 이론 - 상대적 박탈감상대적 박탈감이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들의 현재 상태가 과거에 그들이 처해 있던 상태보다 나쁘다고 느끼거나, 현시점에서 다른 집단이나 타인과 비교해 보았을 때 자신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다고 느껴질 때 생기는 심리적 빈곤과 불안을 뜻한다. 이는 사회발전 과정 중 전환기에 있는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개인적인 소외감과 불만감을 가중시키고 사회체계적인 좌절을 유발시켜 사회의 통합성을 저해하는 등 그 영향력이 광범위하다.사회적 박탈감을 야기하는 두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첫째, 기대욕구는 변하지 않았으나 상황적, 심리적 요인이 이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둘째, 실제로 달성 가능한 욕구수준은 변하지 않았으나 사회 요인이 기대욕구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혁명이 절대적노사갈등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관하여2009104677언론정보학과서민우1. 조지오웰의 스토리텔링과 서사적인 특징‘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펴 보았을 때 드는 단편적인 첫 느낌은 바로 ‘소설’같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묘사력이 뛰어난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저널리즘 장르의 글들은 ‘사건’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얼마나 기민하게 팩트들을 조합하는가에만 열을 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지오웰의 서사 방식은 앞서 말한 타성에 젖어있는 일부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외침으로도 작용 할 수 있을 듯하다. 마치 독자 자신이 한 세계관 내에서의 주인공이 되어 현장을 바라보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 사용하는 묘사기법들을 차용한 이 책은 특유의 서사적인 특징들이 존재한다. 이 같은 특징들은 내러티브 저널리즘적인 글쓰기의 방식들과 일치한다.먼저 오웰은 자신 스스로 탄광노동자들과 숙식을 같이 해결하며 그들의 삶속으로 녹아들고자 했다. 부르커 부부의 하숙집에서 시작하는 탄광노동자들의 고된 인생 이야기들을 진행하는 오웰은 마치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듯이 자신이 ‘직접’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했던 노동자, 실업자 등의 사람들을 기술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저널리즘 기법을 사용했더라면 당시 영국의 탄광노동에 관한 기사내지 보도물들은 석탄의 채광 과정과 유통구조 같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전통적 글들은 형식마저도 역 피라미드 구조 등의 정형화된 방식을 고수 할 것이다. 그러나 오웰은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ㅡ직접 노동을 진행하지는 않았을지언정ㅡ 체험한 뒤 그 인물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탄광에서의 노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단순한 다큐멘터리적인 이미지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번 주 집세를 걱정하며 맛없고 비위생적인 음식을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섭취해야만 하는 비참한 도시빈민의 삶에 대한 실재적인 이미지를 추구하였다.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도 언뜻언뜻 ‘이게 정말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인가에서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적극적 참여자로서의 전환이 의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공공저널리즘의 성격이 강한 탐사보도 글쓰기는 민주적 시민 공동체 형성의 초석을 마련하는 언론의 순기능적인 측면 또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Glasser, 1999 ; Haas, 2007 ; Merritt, 1998 ; Rosen, 1996,2001 )다음으로 구조적인 특징에 관한 것을 논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오웰의 작업들은 ‘소설 같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이 ‘소설 같다’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내러티브 저널리즘적인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한겨레 신문의 안수찬 기자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소설의 포맷, 즉 플롯구조를 가진 글의 흐름이야 말로 읽는 사람에게 더 친근한 방식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으며, 한 사건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어진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일종의 관음적인 욕구(이때 관음적인 욕구란 ‘관객성 이론’에서 말하는 영화적 장치와의 ‘동일시’에 가까운 의미이다.)까지 충족시킬 수 있다. 이 같은 플롯구조는 오웰의 작업에서 어떻게 한 탄광노동자 혹은 도시빈민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승전결의 구성을 가져 기술되었다. 또 탄광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관찰로서 글이 끝나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핵심을 파고들자 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였고 수개월이 넘는 참여관찰식의 과정을 통한 그의 글은 결론적으로 사회구조적에 관한 담론으로까지 의미를 확대했다.정리하자면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 활용되는 내러티브적인 기법들은 미시적인 인물들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묘사를 하고 그 같은 묘사들을 일정한 소설적인 기법이 사용된 플롯구조 위에 얹음으로서, 총체적인 상황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이 반영된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이 때 이러한 서사 방식의 기본 전제로는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과, 그 자체로 스타일과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한 이야기로서의 역사 교육법부터, 철학적인 담론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이 내러티브 스타일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내러티브적인 ‘저널리즘’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통상적으로 저널리스트들은 앞서 말했듯이 역 피라미드적인 글의 구성을 가장 가치가 있는 방식이라고 논한다. 분명 역 피라미드의 가치는 존재한다. 마감이라는 현실적인 요소에 쫓기듯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대부분의 기자들은 일정한 공식에 따라 기사를 작성할 수 있으며 에디터 또한 기자와의 상의를 생략 한 채 기사의 말미부분 등을 잘라낼 수 있다. 기사를 읽는 독자들 또한 짧은 단락 내에 압축되어 있는 정보들을 경제적으로 읽을 수 있으며 요점을 파악하는 것 또한 용이할 것이다.그러나 위와 같은 ‘효율적인’ 공식에서 스스로 탈피한 내러티브 스타일의 저널리즘은 그만의 독보적인 장점과 성취요소가 존재한다. 역 피라미드 구조는 정보를 주고받는 시간적인 효용성 부분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일종의 재난으로서 반동이 올 수 있다. 지루하게 사실위주의 정보가 나열된 역 피라미드 구조를 취한 기사들은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안에 대한 아무런 성찰 없이 정보가 병렬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형화된 공식들은 개인의 선호도가 첨예하게 세분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면이 많다. 하지만 내러티브 스타일은 인물의 말과 행동을 모티브로 삼아 사안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글쓰기 방식을 채택한다. 마치 재미난 단편, 혹은 장편 소설을 읽는 듯 한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글쓰기 방식은 탈정형화가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의 시조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전통 신문의 위상이 날로 추락해가는 시점에서 지인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새로운 글쓰기 기법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로도,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대안 저널리즘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주관성이 철저히 배재된 건조한 글 대신 기사 작성자의 성찰이 녹아드는 글이 오히려 독자에게 매력적으성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독립적인 작업의 경우 어떠한 형식도 없는 이른바 ‘무정형 스타일’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기사나 방송기사와 같이 일정한 조직 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으로서의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다소의 형식화가 불가피하다. 내러티브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지만 그 또한 독자들을 끌기위한 마케팅적 요소가 존재하고 그럼으로써 제한적인 규칙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스트레이트 기사들이 역 피라미드 구조를 가졌다면, 신문기사에서의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글쓰기는 리드로 시작하여 환유하고자 하는 사례로 내용을 전환시킨 후 연대기적 서술로 이어지는 ‘모래시계형’의 구조를 취한다.또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형식은 스트레이트 뉴스 보다는 심층취재인 피쳐 뉴스에 더 적합하다. 이는 하루에도 수십, 수 백 가지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는 뉴스제작 환경에서 시의성을 맞출 수 없다는 한계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 사건을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필요하다면 기자 스스로가 그 환경에 뛰어들어 몇 달이고 탐사를 직접 해야 하는 특징을 가지는 내러티브 저널리즘 영역에서는, 신속한 상황전달을 이루기에는 부적합 할 수밖에 없다.3.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실천 할 수 있는 특정 사례의 기획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피쳐 뉴스 외에도, 다큐멘터리나 시사고발 프로그램 같은 PD저널리즘의 영역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조지 오웰이 시행했던 일련의 작업들과 가장 맥락적으로 유사한 주제를 기획하기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한국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곤 하는 PD저널리즘의 결과물들은 대부분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인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KBS1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영되는 ‘생명의 최전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위중한 응급환자들이 1분 1초를 가르며 생사가 판명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들의 풍경을 그리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지닌 다큐멘터리이다.나는 이 프로그램이 촬영된일주일에서 열흘정도 촬영을 한 그들은 방송을 내었다. 촬영 내내 의사 옷을 입은 촬영 팀들의 모습에서 프로의 모습은 엿볼 수 있었지만 그 진정성은 다소 의심되었다. 앞서 말한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형식은 취하고자 했으나 그 본질적인 가치는 추구하지 못한 듯 했다. 의사 옷을 입고 잠입취재를 한 그들의 의도는 상황에 녹아들고자 하는 열정보다는, 그들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환자들의 촬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방송된 영상을 모니터링하자니 그러한 실망감이 더욱 크게 밀려왔다. 가식적인 인터뷰를 하는 의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치열한 응급실의 분위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촬영당시 의사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 연상되자 이것이 과연 진정한 저널리즘의 지향점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만약 내가 직접 이와 관련된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상을 기획/제작 하거나 탐사보도를 진행 할 경우 다른 접근방법을 취하고 싶다. 직접 6개월간 응급실 소속으로 현장에 몸을 담았던 경험은 분명히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방식의 가능성을 나에게 던져주었다. 바로 세분화이다. 응급실을 구성하는 인원에는 의사와 간호사 이 둘뿐만이 아니다. 이미 대중에게 친근할 정도로 잘 알려진 의사와 간호사 외에도 밤새 술에 취한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원무과 직원부터, 피 뭍은 수술도구 등을 세척/소독 해주는 비정규직 여사님, 1분이라도 환자를 빨리 옮기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송 팀, 밤새 영국 황실의 근위병처럼 부동자세를 취한 채 끊임없이 위험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보안 팀 등 응급실이라는 복합적인 공간에는 이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내가 만약 실제로 위와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진행한다면, 이렇게 다양한 이들 중 하나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것이다. 이 같은 작업을 위해서는 함께 직접 일을 같이 해보고 점차 임계거리를 좁혀나가는 등 조금 더 심층적인 참여관찰이 필수적으로 수반 될 것이다. 응급실이라는 긴박한 공간 다.
사진이미지에 대한 고찰- 의도성과 주관적 수용을 중심으로-2009104677언론정보학과서민우1. 들어가며최근 I.S(Islamic States)의 외신 기자 참수영상이 동영상 포털사이트인 유튜브에 공개되어 세계적인 파문이 일었다. 그 동영상은 단시간에 전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스마트 기기 등을 이용해 그 적나라한 장면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현상을 통해 영상이 촬영되었을 시 의도되었던 I.S의 목표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점점 더 첨예해지는 촬영기법과 카메라 기기 성능의 발전덕분에 우리는 그러한 이미지들을 더욱 더 쉽고 실감나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이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어느 것을 취사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의식은 점차 흐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표현된 프레임 속 피사체들을 보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찌 보면 그러한 현대인들에게 이미지 속 내재된 의도성을 파악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피곤한 작업일 수 있다.위처럼 동영상과 같은 양식을 통해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들이 도처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이미지 재현 양신인 ‘사진’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잔 손택은 다양한 이미지 형식들 가운데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며 단시간에 단순화된 형태로 기억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녀가 그와 같이 말한 이유는 아마도, 수잔손택 - 타인의 고통 44쪽동영상이 1초에 약 30프레임에 달하는 연속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을지언정, 그 각각의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진이 가지는 많은 특성 중, 재현된 이미지에 개입된 의도성과 주관적 수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2. 사진의 의도성과 그에 따른 의미의 작용 (개입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데이비드 그리피스의 영화 ‘국가의 탄생’에는 감독이 드러내고자 했던 이데올로기가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극단적인 화면구성. 이 모든 것들이 집합되어 영화말미에는 심지어 극우적 성향의 인종차별주의 단체인 KKK(Ku Klux Klan)단이 영웅적으로 묘사된다. 이 미국영화사 최초의 장편영화를 평론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불편한 감정을 내비친다. 현대사회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이처럼 이미지에는 제작자의 의도성이 필연적으로 개입되며 수용자에게 그 의도성이 전달된다. Bazin 1967 , 13쪽이는 ‘사진은 자연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나 눈송이와 같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을 그대로 느끼도록 한다.’ 며 필름 위에 있는 그대로 기계적인 전사과정에만 초점을 두었던 앙드레 바쟁(Andre Bazin) 의 주장과는 전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바쟁의 사진에 관한 생각은 현대로 오면서 더욱 의미가 희미해진다. 수잔손택 - 타인의 고통 74쪽손택의 말처럼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고, 구도를 잡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배재하거나 포함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미 구도를 잡은 순간 이미지를 재현하는 당사자의 의도성이 직접적으로 반영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즉 사진과 같은 이미지들은 제작자의 주관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구성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사진 이미지는 제한적인 범위의 사실을 ‘재현’하는 하나의 창작물이 될 수 있다. 아래 첫 번째 사진을 보면 그러한 개입된 이데올로기의 특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 당시 종군기자였던 래리버로우즈가 찍은 사진이다. 이미지 속 미군병사는 시퍼런 날이 서 있는 군용대검으로 앳된 얼굴의 베트남 포로를 협박하고 있다. 래리버로우즈는 전쟁의 당사자 양 측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던 종군기자로 평가된다고 한다. 그러한 평가를 반영하듯이, 그가 찍은 이 사진을 보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이 진실이며 또 어디까지 거짓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우리의 어릴 적 어른들의 무용담 속 베트콩들은 짐승의 형태로 곧잘 묘사되곤 했다. 극단적으로 배타적 객체가 될 수밖 모습은, 명시적 타자가 되어 이항대립 되기까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 사진을 접한 순간 우리의 의식은 이내 혼란을 겪는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고 기억된 미군의 모습이 오히려 어린 시절 참전용사들의 무용담 속 ‘짐승’으로 드러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은 모호한 것이라는 일종의 반전주의적 메시지를 녹여낸 버로우즈의 의도성을 수용자들은 엿볼 수 있다.이처럼 이미지 자체가 보여주는 장면 이면에는 그 이미지를 재현해 낸 사진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아래의 흑백사진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사진 같은 경우, 세계 2차 대전 시 추축국 측의 이탈리아가 패전한 후의 모습을 로버트 카파가 찍은 것이다. 사진 속 여인들은 전쟁으로 자신의 아들을 잃고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어머니들이다. 카파는 시칠리아의 어머니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으면서, 연합국의 아름다운 승리와 정의의 수호로 포장되었던 많은 사실들에 대한 전면적인 의문을 던지게 한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이미지의 복제성을 우려하며 “예술의 다른 실천적 기반은 ‘정치’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진의 프로파간다적 기능은 전쟁상황에서 수도 없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수도 없이 많은 가슴 벅찬 프로파간다의 이미지들 뒤, 비탄에 잠긴 어머니들의 짤막한 하나의 이미지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전쟁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사진가가 이미 셔터를 누른 순간 사진 이미지는 단순한 현장기록의 기능을 넘어서 특정한 의미들이 발생한다. ‘이 세계’가 기록되어 ‘저 세계’로 변환되는 순간 새로운 상징적인 상호작용을 거쳐 수용자에게 다가간다. 정리하자면 이미지들은 기존과는 다른 의미를 새롭게 ‘파생’시킬 수 있으며, 또 이 파생된 의미들은 기존의 지배적으로 공유된 의미들을 달리 해석할 가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3. 사진 이미지의 주관적인 수용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개별적 주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실체로서의 몸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과 몸이 분법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모든 지식과 진리가 단순히 사물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 경험에서 나온다는 현상학(phenomenology)의 입장이다. 이러한 현상학적 입장을 중심으로 사진이미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우선 위 흑백사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담은 찰나의 순간이 우리에게 주는 강렬한 인상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 사진은 AP통신의 에디 아담스가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남부 베트남의 경찰국장인 구엔곡 로안 장군이 베트콩 용의자를 현장에서 즉결처분하는 순간을 담아낸 것이다. 이 하나의 이미지로 인해 미국 국민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고, 전쟁의 흐름이 바뀌기 까지 했다. 이 단편적인 이미지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은 윤리와 보편타당한 가치가 혼재한 전쟁 상황 시 비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이 사진에서 처형당하는 베트콩 용의자는 양민을 학살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실제로 정작 이 사진으로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에디 아담스는 사진속 로안 장군이 병으로 사망한 뒤 “살인범을 처단한 영웅의 죽음을 애도해야한다.”라는 말까지 남겼다고 한다.위의 항목에서 말했듯이 사진 이미지가 주는 힘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의도성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에디 아담스는 이 사진을 촬영하면서 양민학살의 주범이라는 극악무도한 인물을 처형하는 정의로운 로안장군의 모습 기록하기 위해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사실 저널리스트로서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은 면이 더 강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미지는 베트남전이 국지 게릴라전의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전쟁 자체에 회의적인 여론이 조성되던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법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개인의 판단으로 즉결처분을 하는 비윤리성에 미국사회는 분노했다. 이 단면적인 이미지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미지 뒤에 의도적으로 재현된 사실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양 저 인물은 오히려 잔혹한 전쟁의 희생자로 그려진다. 에디 아담스의 의도성과는 정반대로, 범죄자(남베트남과 미군의 입장에서)였던 베트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반전의 아이콘으로 도상화 되어 반전 여론에 일조한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한 장으로 함축되어진 급박했던 상황은 결국 반대의 효과를 보고 말았다.위 사례를 통해 한 가지 의문점을 제시할 수 있다. 과연 사진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은 비판적인 해석능력을 통해 그것을 읽어내는 작업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앞서 말한 현상학적 개념을 견지할 때 이미지의 의미작용을 논할 경우, 이미지 수용자들의 주관적 해석, 또는 상상 그리고 경험에 중심을 둘 수 있다. 사진이 재현한 이미지를 보고 느끼는 일련의 감정들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굶주림에 괴로워하는 유기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미지가 수용자들에게 보여 졌을 때 애견인의 경우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애완동물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김형곤 (2004.04, 77쪽)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회화작품들은 그 작품을 제작한 사람의 의도성을 중심으로 '수동적인 수용'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사진은 통념적으로 사실 그대로를 기계적으로 재현하기 때문에 그 근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지 제작자의 주관보다는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주관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롤랑바르트 - 밝은 방롤랑바르트의 생각을 빌어 말하자면 이 주관성은 ‘푼크툼’(punctum)이라고 볼 수 있다. 바르트의 푼크툼과 사진의 이미지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한 이미지를 지각할 때, 주관적인 내재적 시각에 의지해 그 이미지를 감지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푼크툼’은 실재적인 현상이 아닌 불특정하고 불확실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미지는 언제나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사진영역에서) 그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수용자들의 관점에 따라 문맥적으로 달리 있다.
언론정보학과 2009104677 서민우- 인스턴트 가득한 식탁에 던져진 찌개 같은 영화. (4.0점 ★★★★☆) -습한 날씨에 축축해져 버린 셔츠, 쉴 새 없이 흐르는 땀. 이러한 한여름의 불쾌감은 쾌청한 태양아래 시원하게 울어재끼는 매미소리마저도 소음으로 다가오곤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그런 후텁지근한 여름날에 벌어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물들의 인생을 담담하게 다룬 영화이다. 전체적으로 긴 호흡, 프레임의 구도 사용은 주로 L.S(Long Shot). 게다가 한 Take의 길이마저도 답답할 정도로 길어, 헐리우드식 영화에 익숙해져 버린 20대인 나에게는 영화가주는 감동을 받기도 전에 지루함으로 느껴져 버렸다. 하룻밤을 새고 이 영화를 봤다면 몰입을 하기도 전에 잠들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10년도 넘은 이 지루하디 지루한 영화가 여전히 흡입력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꾸준히 케이블 TV 등에서 종종 방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의 해답은 영화가 전개되면서 하나 둘 씩 찾아나갈 수 있었다.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이 영화의 장르를 굳이 구분 짓자면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멜로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해피엔딩이 아닌 결국 남자와 여자는 이어질 수 없다는 슬픈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사람들이 코믹스럽고 가슴 뻥 뚫리는 영화들을 차치하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픈 영화를 찾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그런 영화들이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있다. 애상감 내지 비애감을 뜻하는 용어인 ‘페이소스’가 극의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 연민을 보내는 것이라면, 카타르시스는 그러한 ‘연민의 과정’을 통해 관중들의 마음속에 쌓여있던 불안감 내지 긴장감이 해소되는 것을 지칭한다.그런데 위에서 말한 카타르시스를 의도적으로 자아내게 하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상업적인 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영화들의 경우, 관중을 억지 슬픔으로 몰아넣어 인스턴트식 카타르시스를 찍어내곤 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울적해지고 싶은 날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슬픈 영화이니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서 당신들 마음의 응어리를 함께 분출하시고 지불하신 영화티켓비가 아깝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식의 영화들 말이다.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위와 같은 영화들과 다른 매력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대놓고 비상업 영화임을 표방하는 이 영화는, 한눈에 봐도 저예산 영화임을 알 수 있고, 보는 사람의 지루함을 염두 하기는커녕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일상 속 슬픈 나날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소음과 빛을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등의 방식은, 심지어 영화를 보는 중간에 순간 다큐멘터리로 착각할 정도이다.) 이와 같은 기법을 통해 감독은 마치 실제로 누군가는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라는 상상을 우리에게 하게 만든다. 주인공 정원이 다가오는 죽음의 운명에 순응하고 하나 둘 준비해 나가는 과정과 담담하게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별의 과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이 추억속의 사랑이 아닌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사람이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는 정원의 마지막 나레이션에, 관중들은 지루하리만큼 약한 강도로 증진되던 카타르시스가 기분 좋을 정도의 슬픔으로 터져 나오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