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7
검색어 입력폼
  • 디자인사 정리 피피티
    디자인사 노트목 차 〮 미술공예운동 〮 아르누보양식 〮 바우하우스 〮 포스트 모던디자인전원도시 ( 田園都市 , garden city) 1898 년 영국의 도시계획가 에버니저 하워드 (Ebenezer Howard) 에 의해서 제시된 개념으로 근대도시화과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원자연환경을 쾌적하고 충분하게 조성한 소규모 자립도시 개혁운동윌리엄 모리스 (1834-96) 는 1853 년에서 55 년까지 옥스퍼드에서 공부했고 미술공예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미술 공예 개혁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 산업적인 대량 생산 반대 사회주의 신봉했지만 혁명가는 아님 미술공예 개혁운동 추진 미적으로 수준 높은 생활용품들을 수공예로 제작하자고 주장 최초의 참여적 환경 보호 운동가레드하우스 윌리엄 모리스는 19 세기 말 영국의 건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게 된 계기를 마련하며 건축에 디자인 개념을 확고하게 도입했다 . 윌리엄 모리스는 건축을 모든 예술의 토대이며 인간이 협력하여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그 것을 충족하는 건축 양식이 고딕 양식이라고 생각하였다 . 왜냐하면 바람직한 노동은 노동자에게 있어 자발적이며 노동의 즐거움을 동반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윌리엄 모리스는 그의 이상과 같은 삶을 살았던 노동자의 시대가 중세 고딕 건축양식의 시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고딕 건축물과 스테인드글라스와 중세시대의 장식물 등에 관심을 갖고 탐구를 시작하여 후에 그의 동료들과 함께 그의 신혼집 레드하우스 (Red House) 를 건축하게 된다 .Cray Textile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영국 (United Kingdom)William Morris window,Cattistock Church / William Morris design for Trellis wallpaper(1862)‘ 캠스콧 프레스 ’ 의 로고타입 . 윌리엄 모리스의 인쇄 공방 ' 캠스콧 프레스 ' 에서 제작된 존러스킨의 [ 고딕의 특성 ] 첫페이지 윌터 크레인 [ 개구리왕자 삽화 ]아르누보 , 국제적 운동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는 1890~1910 년 사이 유럽 각지와 미국 ,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양식이다 . 흔히 아르누보하면 덩굴식물 모티프와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 , 긴 실루엣의 여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아르누보의 일부에 불과하다 . 각국의 예술 중심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아르누보는 세기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일종의 예술운동이었다 . 그것은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하고자 한 당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도전이었다 . 영국 : ‘ 데코러티브 스타일 ‘ 벨기에 , 프랑스 : ‘ 아르누보 ’ 독일 : ‘ 유겐트슈틸 ‘ 이탈리아 : ‘ 스틸로 리베르티 ‘ 오스트리아 : ‘ 제체시온슈틸 ‘벨기에 빅토르 오르타 , ‘ 타셀 ’ 저택의 계단 , 브뤼셀 , 1893.앙리 반 데 벨데낭시 에밀 갈레 , 포도장식이 있는 꽃병 에밀 갈레 , 유리 잔 : 개구리가 있는 달빛 문양파리 엑토르 기마르 , 파리 지하철 입구 , 1900 년경안토니오 가우디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토니오 가우디 , 카사 바트요 미술과 산업 사이의 아르누보카를로 부가티 , 가구 및 의자찰스 레니 ‘ 매킨토시 의자 ’, 1897 1900 년대 전후의 빈오토 바그너 , 빈 우체국 은행의 창구가 있는 홀 오토 바그너 , 빈 우체국 은행에 있는 팔걸이 의자독일공작연맹 ( Deutscher Werkbund ), 1914 년 쾰른 전시회 포스터 독일공작연맹칼 아르놀드 (Karl Arnold), “ 공작연맹 전시회에 대해 (Von der Werkbund-Ausstellung )“, 1914 년 잡지 심플리시시무스 에 실은 삽화 . 그림 아래에 (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 반 드 벨드는 개인주의 의자를 창조한다 – 무테지우스는 전형 ( 적인 ) 의자를 . – 그리고에게 독일의 현대 미술은 막스 베크만 , 프란츠 마르크 , 루드비히 키르히너 , 그리고 에밀놀데가 구사한 표현주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 독일의 건축은 멘델스존이 구상한 유선형의 부드러운 아인슈타인 타워가 대명사가 된 반면에 비네스의 ‘ 캘리가리 박사의 캐비닛 ’ 은 표현주의 양식을 영화에 전달했다 . 제 1 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 표현주의 경향이 우세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바우하우스로 알려진 미술 학교가 ‘ 근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디자인의 근대적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한 세계에서 유일한 학교 ’ 가 된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과정과 방법 바우하우스의 교육과정은 두 단계로 나뉘어진다 . 첫 단계는 조각 , 목수일 , 금속 , 도기 제조 , 스테인드글라스 , 벽화 , 그리고 직조와 같은 분야에서부터 작업장의 교육과 공예를 포함한 것이다 . 두 번째 단계는 관찰과 자연학습 , 그리고 물질 분석을 포함하는 형태 문제에 관한 교육이다 . 묘사적 기하학 , 건설 기술 , 평면 드로잉 , 모델 구축을 포함한 것도 형태문제의 표현에 포함되어 있다 . 이와 같은 형태 문제에서는 공간 , 색채 , 그리고 디자인의 이론도 다루어졌다 . 이 같은 교육과정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코스는 ‘ 기초 과정 ’ 코스였다 . 학생들은 처음 6 개월간의 시험적인 기간에 입학하여 이 기간 동안 이와 같은 기초 과정을 듣게 되었다 . 이 코스는 학생들에게 물질을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의 창조력을 자유롭게 만들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 교수는 이 코스를 토대로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결정했다 . 촉감과 물질계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연과 자연 물질을 그리는 자연계 드로잉의 학습에 이어 일상적인 물건의 구성 연습이 있었다 . 그밖에도 서로 대조적인 재료들을 이용한 드로잉 연습이 수반되기도 했다 .바우하우스의 영향 1932 년에 권력을 장악한 나치 정권은 바우하우스를 폐교시켰고 교직원들도 흩어졌다 . 그 결스는 이제 기초 디자인 코스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 이와 같이 고도로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방법들과 도우와 로스가 한 세기 전에 고안해 낸 방법들을 서로 대조시켜 보는 것은 이들의 특성을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 도우와 로스가 고안해 낸 이 초기의 교육안과 바우하우스의 교육안이 공유했던 것은 디자인의 요소가 모든 미술의 기본 요소를 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디자인이 미술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신념이었다 . 도우에게 있어서 디자인 학습의 목표는 미술 전공 학생들에게 미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입장에서 보면 도우의 미의 견해는 다소 감상적인 것으로 19 세기 낭만주의의 각색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우하우스에 대한 비평 바우하우스의 교육 프로그램은 이전의 모든 미술 양식들을 부정하려는 일종의 시도였다 .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양식 그 자체에도 반대했다 . 미술 작품은 그 기능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였으며 거기에 디자이너가 형태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 비록 바우하우스의 교수법이 과거 미술의 유산에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전통의 부정과 기능주의자의 편견은 또 하나의 인습을 강요했다 . 비록 이텐은 디자인을 사회적으로 형성된 요구에 대해 예술가가 이룩한 직관적이고 상상적인 반응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교사들은 디자인의 문제에 대해 표준화한 접근을 시도했다 . 그 결과 대부분의 산업 디자인은 동일한 디자인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날의 전자렌지는 한결같이 tv 세트처럼 만들어졌다 .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바우하우스 건축의 기능주의적 미는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부정하는 비인간적인 효율성을 특징으로 하는 도시 환경을 창조해냈다 . 비록 바우하우스의 양식이 이제는 그 선호도가 다소 주춤하고 있기는 하나 그 양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바우하우스의 성공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팝 문화와 유토피아 격렬하게 비판받았던 기능주의에 대한 광고 등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웨슬만 또는 워홀 등의 그림을 통해 예술로 동시에 소비 사회의 패러디로 전환되었다 . 청년문화가 끼친 미적 영향들 외에도 특히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들과 우주 여행 , 공상 과학 영화의 경험들이 강한 자극을 불러 일으켰다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컬트 영화 2001 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는 디자이너들에게 미래적인 주거 세계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안티 디자인의 급진적 운동들은 1960 년대 말 대중 매체를 통해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 대부분이 이렇다 할 소득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여전히 해마다 ‘ 연방 정부의 굿 포름 상 ’ 을 수여했다 . 저항 운동이 보여 준 유토피아는 산업 사회의 구조들에 비해 나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 개인의 다양한 취향과 기능주의의 정서 결핍 , 그리고 사물이 갖는 기능의 다양성에 대한 자각으로 1970 년대 들어 건축에서부터 모던에 대항하는 경향들이 생겨났다 . 이는 모던의 문제들을 제기했던 급진적 운동들보다 정치적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성공적 이었다 . 포스트 모던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이 개념은 1980 년대에 과열된 논쟁에서 확대 해석되었을 뿐 아니라 지엽적으로 이용되거나 논박을 위해 사용되었다 . 포스트모던에서 가장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양식의 인용과 그 조합은 이러한 논쟁에서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주요 쟁점이었다 .포스트 모던디자인 포스트모던 개념은 건축에서 디자인으로 옮겨 갔으나 가구나 역사적 건축물 형태를 인용한 제품들로 한정되었다 . 그러나 실제로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본질은 매우 다양한 요인들로 이루어졌다 . 그 중에서도 특히 그동안 기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강한 색채의 기호적인 표면 디자인 , 오브제의 사용과 관련된 외관의 재해석 , 역사적인 요소들의 인용과 조합 , 거기에서 기능주의 원칙과 완전히 상반되는 사치스런 장식과 미니멀한 형태 , 고급 재료와 키치 등이 함께 how}
    예체능| 2017.03.09| 29페이지| 7,000원| 조회(637)
    미리보기
  • 이집트미술 정리, 요약
    이집트 미술영혼불멸에 대한 이집트인의 집착을 보면 이집트 미술이 3000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것도 없다. 그들의 맹목적인 관심사는 살아있는 신으로 간주되었던 그들 지배자의 사후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이집트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은 지배자인 파라오 영혼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존재했다.이집트인들은 그 밖에도 문학, 의학, 고등 수학을 발달시켜 인류 문명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다른 지역에서 크고 작은 문명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의 정기적인 범람에 힘입어 3000년 동안을 통일된 왕조 아래에서, 정체되어 있기는 했지만 역사상 최초의 장대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우리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들을 무덤에서 출품된 유물을 통해 얻었다. 영혼불멸을 믿은 집트인들은 지상에서의 행복을 죽은 후에도 누릴수 있도록 무덤에 온갖 사치품들을 함께 묻었다. 따라서 무덤의 벽면에 그려진 벽화와 상형문자들도 죽은 자의 생전의 일상생활을 세세히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그리고 미라로 만든 육신이 부패했을 경우 영혼이 대신 머무를 곳으로 초상 조각을 만들었다.[초상조각]초상화와 조각상의 인체는 엄격한 공식에 따라 묘사되었다. 눈과 어깨는 정면을 향하고 있고, 머리와 팔, 다리들은 측면으로 그려졌다. 또한 벽화의 표현은 수평의 선으로 구분되는데 마르고 어깨가 넓으며 엉덩이가 작은 인물들이 머리 장식을 하고 치마 모양의 옷을 입은 채 한쪽 다리를 내밀고 있다. 인물의 크기는 신분에 따라 달라지며 파라오는 거인처럼 묘사되어 있는 반면, 시종들은 난쟁이 같이 그리고 있다.초상 조각들은 영원불멸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그 재료가 화강암이나 섬록암과 같은 단단한 소재다. 입상이거나 좌상이거나 이 초상 조각들은 부서질 만한 돌출 부위를 최소한으로 해 만들었다. 자세는 언제나 정면이고 좌우대칭이며 팔을 몸통에 근접해 조각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해부학적으로 정확하도록 만들었다.그림 1 기원전 2610년경, 이집트 박물관 그림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오래전부터 그의 왕묘가 존재하리라 믿고 6년 동안 왕의 계곡을 뒤졌는데 왕묘의 입구에서 2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두 번이나 탐색하기도 했다. 1922년 마침내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투탕카멘 왕묘는 3000년의 먼지 속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카터가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그었을 때 그의 주위는 온통 황금 더미로 둘러싸여 있었다. 파라오의 장례 절차에 대한 지식은 모두 투탕카멘 무덤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무덤 속의 부장품은 과일 바구니와 빛바랜 꽃다발, 접을 수 있는 아영 침구와 장난감 상자에서부터 금으로 뒤덮힌 전차 4기에 달한다. 주요 장ㅅ힉 재료는 황금이었는데 황금 의자, 금으로 된 왕관, 금박 입힌 벽면, 금으로 만든 관, 그리고 3개의 포개진 관 속에서 가장 안쪽에 있던 왕의 미라를 감싼 그 유명한 황금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금 제품이 부장되어 있었다.무덤을 발굴하는 데 관여한 20여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해 ‘파라오의 저주’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도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 세게의 박물관에 순회 전시할 때 단일 전시로는 역사상 최대해의 관람객이 모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그림 4 기원전 1352년경 이집트 박물관[기하학적인 규칙과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의 결합]어떤 사물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이집트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름다움에 앞서 완전함이었다. 그림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것을 엄격하게 정한 규칙에 따라 그리고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미술가의 과업이었다.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나무들의 생김새와 특징은 측면에서 본 것처럼 연못은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연못 속에 있는 물고기와 새들은 옆모습으로 그림으로써 모든 사물의 특징이 잘 나타날 수 있는 각도에서 그렸다.그림 5 테베의 고분벽화 기원전 1400년경,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은 이러한 관념이 인체의 표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머리는 측면이 가장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어깨 위에 올리고 있다. 한편 황금 공처럼 표현된 태양신 아크나톤 시대처럼 또 다시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듯 많은 손을 뻗치고 있다.그림 7 중 후네페르의 심판, BC1285년경, 런던 대영박물관고위 관리 후네페르와 아내인 네샤는 기원전 1300년경 신왕국 시대에 테베에서 살았다. 왕실 가축 감독관, 세티 1세의 집사, 왕실 서기, 신성 공물 담당 서기를 두루 지냈던 후네페르는 주요 인사였을 뿐 아니라 왕과도 친밀했다. 그의 높은 지위는 생전에 의뢰한 의 높은 수준과 개성에서 잘 드러난다. 이 파피루스는 지금은 위치를 알 수 없는 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보존 상태가 뛰어난 이 의 도움으로 이집트 학자들은 제19왕조의 종교 사상들과 일상생활에 대한 가치 있는 정보들을 짜 맞출 수 있었다. 주문 125번에 상세히 담긴 이 이야기는 이집트 장례 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자. 에서 가장 중요한 주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느 파피루스에서나 첫 부분에 자리한다. 이집트인들은 심장이 개인의 감정과 지성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심장이 그만큼 중요했기에 의 여러 주문들은 심장이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또 혹시 불행한 사건이 생긴다해도 빠르고 안전하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은 ‘심장의 무게를 다는’의식을 보여준다. 죽은 이가 두아트(지하세계)에서 사후세계로 여행을 계속할 만한 인물인지 판단하기 위해 그의 심장을 저울 위 ‘진실의 깃털’ 반대편에 놓아 무게를 가늠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한 상징적 심판이었다. 만약 심장이 깃털보다 가볍거나 양쪽 저울눈이 같다면 그 사람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다음 세계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심장이 깃털보다 무겁다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악어 머리에 하마의 하체를 가진 괴물 암미트에게 잡아먹혔다.이 그림에서 아누비스(사자와 그의 무덤을 보호하는 신)가 후네페르를 마아트의 저울로 데려온다. 아누비스는 진실의 깃털과 함께 후네페르 심장의 무게를 재고, 그동안 따오기 머리의 표현되었다. 태양신 라(Ra)가 주신이며, 국왕을 태양의 화신으로 신봉하였고, 국가는 신전을 만들어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특히 사자에 대한 제사의식과 내세에 대한 신앙은 이집트 종교의 기본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영혼 카(Ka)의 체내복귀사상과 영혼불멸의 관념은 사체를 미라로 만들어서 영구히 묘에 보존하도록 하였고, 이 묘들은 사자의 영구한 주거로서 내구성이 있는 석재를 사용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집트 석조건축문화를 대성하게 만들었다.그들이 형성한 국가는 파라오(Pharaoh)라고 칭하는 국왕이 통치하는 극단한 군주전제체제로 형성되었다. 왕은 태양신 라(Ra)의 후손이라는 신앙으로 말미암아서 신과 같이 존숭되었고, 정치상의 주권자이며 종교상의 원수였다. 당시 사회는 승려·귀족·무인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승려는 학술상의 최고 권위자로서 상형문자를 해석하며, 종교의식을 주관하고 일체의 기록을 만들어서 보존하였다.이집트 사람들은 예술감정이 풍부하였을 뿐 아니라, 건축가와 예술가를 이해하고 존중하였으므로 이집트의 건축과 조형예술에 많은 발전을 성취하게 되었다. 제 3 왕조에는 건축가 임호테프(Imhotep)에 의하여 제세르(Zoser)왕의 분묘신전인 거대한 사카라(Sakkara)의 피라미드(pyramid)가 건설되었고, 제 4 왕조에는 기자(Giza)의 대피라미드가 건설되었다.이집트인은 단순하고 원시적이긴 하였으나 채석하는 법에 능통하였으며, 기계 없이 거석을 다루는 기묘한 법을 알고 있었다. 이집트 왕국의 석조건축은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었던 노동력과 세심히 준비된 조직적 건축활동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전쟁 포로와 농부들이 주로 동원되었으며, 이들의 공사중 장기간의 숙식을 위하여 공사장 부근에 큰 도시를 건설하는 수가 많았다.국왕은 이 노동자들을 절대적인 권력으로 지배하였으나, 그들에 대한 임금과 대우는 매우 좋았으며, 유능한 건축가와 기능자를 양성하는 기구가 있었을 뿐 아니라,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존경을 받는 이집트 사회에서 훌륭한 설계와 아름다운 장식으원성을 대조적으로 표현하는 4차원적인 조형물들이며, 그들이 갖고 있었던 종교적인 내세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건축형태들이 갖고 있는 기하학적인 명료성과 육중한 매스(mass)로 된 단순성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경이감을 느끼게 만든다.역사적으로 보면 피라미드라는 건조물의 완성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확립되었다는 증거다. 이집트는 다른 고대 문명들과 비교해서 특이한 발달을 해왔다. 그것은 사막과 홍해와 지중해로 둘러싸인 지형이 자연적인 요새의 기능을 했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대피라미드의 놀라운 점들세계 7대 불가사의, 대피라미드그림 11 제세르왕의 단형 피라미드(B.C. 2650, 사카라)대피라미드의 미스터리는 왕의 묘실에서 시작된다. 대피라미드는 도굴 방지를 위해 입구를 돌로 막아 오랫동안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었는데, 818년 이집트의 왕 알 마문이 쿠푸 왕의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왕의 묘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묘실에 있는 석관은 텅 비어 보물은 물론이고, 왕의 미라도 발견할 수 없었다. 왕의 유해는 보통 엄청난 부장품과 함께 매장되는데, 도굴범이 주로 노리는 것은 부장품이지 유해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발견한 방은 외관뿐이고 왕의 묘를 설치한 방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설, 또 하나는 대피라미드는 묘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피라미드의 무게 중심에는 우주의 에너지가 모이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이집트 피라미드의 경우 파라오의 미라가 놓이는 무덤은 정확히 무게 중심 지점과 일치한다. 놀랍게도 피라미드의 무게 중심에 녹슨 면도날을 놓으면 녹이 지워진다고 해 피라미드의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제 3 왕조의 제세르(Zoser)왕은 사카라(Saqqara)에다 마스타바를 자기 생존중에 만들고 사기(死期)까지 그 규모를 크게 하여 마스타바를 몇 단으로 겹쳐지게 하여서 이른바 단형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각 층의 높이는 7~12m로서 전체의
    학교| 2017.03.09| 16페이지| 5,000원| 조회(253)
    미리보기
  • 미술 수업지도안 <수채화>
    교수 학습 계획안프로그램명:수채화로 표현하기미술과 교수 학습계획안1. 주제주제매체와 표현의 확장-평면으로 표현하기장소교실 (중학년)일시영역표현영역장르회화시간1~2차시(100분)2. 주제 활동 개관수채화의 재료를 이해하고 재료의 특성을 이해한다. 그리고 학습했던 수채화재료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학습 효과를 높인다.3. 학습목표와 학습문제심동적 영역수채화를 활용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학습문제인지적 영역수채화 기법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수채화에는 어떤 기법이 있을까?정물수채화란 무엇일까?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정의적 영역표현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한다.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차시학습내용1차시수채화 재료를 이해하고 탐구해본다. 그리고 수채화의 다양한 기법을 탐구해본다.2차시수채화의 표현기법으로 정물수채화를 제작해 본다.4. 주제활동 지도 계획5. 수업준비물교 사학 생사진자료, 활동지수채화물감, 종이, 붓, 물통6. 교수-학습 과정안1~2차시단계학습요소교수-학습 활동시간자료 및 유의점교사학습자도입문제인식● 동기유발출석체크인사하고 빈자리나 학생 수를 확인한다.교사에게 집중한다.2동기유발◆수채화 관련 그림을 예시로 보여주어 주의를 집중시킨다.◆관련 동영상을 보여준다.◆준비물을 잘 챙겨왔는지 확인한다.◆교사에게 집중한다.◆자신이 수채화를 해보았던 경험을 서로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수채화의 다양한 기법에 대해 생각해본다.◆미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7전개설명 및 시범학습목표1) 이해① 수채화와 양식의 의미를 기술할 수 있다.② 독특한 표현양식을 가진 대표적인 예술가의 예를 발표할 수 있다.③ 수채화로 자신만의 표현 양식을 발견할 수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2) 기능① 한 대상을 여러 가지 수채화 표현 방법으로 그릴 수 있다.② 수채화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표현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③ 발견한 자신의 표현 방법을 확장하고 응용할 수 있다.3) 태도① 다양한 표현기법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태도를 가진다.② 급우들의 작품과 비교 감상하고 장단점을 찾는 적극적인 태도를 기를 수 있다.◆학습목표를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든다.5학습문제◆수채화에는 어떤 기법이 있을까?◆정물수채화란 무엇일까?◆수채화의 기법과 특징에 대해 알 수 있다.1(이론적 설명)◆수채화 개념수채 물감은 맑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재료로 물의 양에 따라 명도를 조절 할 수 있습니다. 수채화의 채색 기법에는 밑 색이 비쳐 보이도록 투명하게 겹쳐칠하는 기법, 번지기나 흘리기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웨트 인 웨트 기법이미 젖어 있는 종이에 색을 칠해 자연스럽게 번지도록 하는 기법이 웨트 인 웨트 기법입니다. 앞서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이나 깨끗한 물로 종이를 적신 후 새로운 색을 칠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물감이 물기를 따라 번지면서 자연스럽고 신비로운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 종이의 넓은 면을 적실 때는 커다란 평붓이나 부드러운 스펀지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물이 종이에 스미지 못해 고여 있을 경우에는 색이 자연스럽게 번지지 않고 물기를 따라 엉기듯 흐르기 때문에 물이 종이에 완전히 스민 다음 웨트 인 웨트를 시도해야 합니다. 물이 스민 후 얼마 동안은 물기로 인해 종이가 번들거리는데, 보통은 그 번들거림이 사라진 직후까지가 새로운 색을 칠하는 적절한 타이밍이지요. 그때를 넘기면 색이 부드럽게 번지지 않고 불규칙한 경계를 남기며 얼룩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웨트 인 웨트를 하면 물감이 물기를 따라 번지면서 농도가 흐려지는 경향이 있으니 물감을 생각보다 진하게 써야 합니다. 단, 지나치게 진하면 색이 잘 번지지 않으므로 경험을 통해 감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웨트 온 드라이 기법웨트 온 드라이(wet-on-dry ≒ 겹쳐 칠하기)는 영어 의미 그대로 마른 종이 위나 이미 칠해진 마른 색 위에 겹쳐 채색하는 기법입니다. 웨트 인 웨트와 달리 우연적으로 번지지 않고 붓을 움직인 대로만 색이 칠해지므로 결과를 예상하기가 쉽지요. 웨트 온 드라이를 반복해서 적용하면 선명한 붓 자국과 겹쳐진 흔적이 채색의 밀도감을 높여 줍니다. 단, 너무 여러 번 겹쳐 칠하면 색이 탁해지므로 3번 이상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웨트 인 웨트 기법은 어느 정도의 노련미를 필요로 하지만 웨트 온 드라이는 비교적 쉬운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마를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지요. 웨트 인 웨트가 자유로운 표현에 적합하다면, 웨트 온 드라이 기법은 칠해지는 모양을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으므로 묘사 위주로 그릴 때 적합합니다.◆갈필 기법갈필은 물기가 거의 없는 붓에 물감을 묻혀 칠하는 기법입니다. 물론 종이도 마른 상태여야 하지요. 붓과 종이에 물기가 적으면 물감이 종이에 고르게 퍼지지 못하고 종이의 질감과 반응하며 거칠게 묻기 때문에 나뭇가지나 풀숲, 낡은 벽 등 거친 느낌을 표현할 때 유용합니다. 하지만 남용하면 그림이 투박해지고 미숙해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웨트 인 웨트’로 칠해진 곳에 부분적으로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입니다.◆닦아 내기, 긁어내기 기법닦아 내기는 이미 칠해진 색을 문질러 닦아 내는 기법으로, 칠한 색이 마르기 전에 화장지나 스펀지로 찍듯이 닦아 냄으로써 독특한 질감 효과를 얻는 방법입니다. 칠한 색이 다 마른 다음 물 묻힌 붓이나 스펀지, 면봉 등으로 닦아 내기도 하지요. 원래는 잘못 칠한 것을 수정하는 방법이지만 날카로운 경계를 부드럽게 만들거나 은은한 하이라이트를 만들 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넓은 면을 닦아 낼 때는 스펀지를, 작은 면에는 붓을, 아주 세밀한 부분일 경우 면봉을 사용합니다. 특히 물기를 최대한 빼면 붓이 빳빳해지는데 그 끝으로 종이를 문지르듯 부비면 색이 날카롭게 닦여 멋진 하이라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긁어내기는 붓대 끝이나 칼, 또는 사포로 칠해진 물감을 긁어내는 기법입니다. 붓대 끝은 채 마르지 않은 물감을 긁어낼 때 사용하며 이런 용도를 위해 붓대 끝이 뾰족하게 처리된 붓도 있습니다. 물감이 다 마른 다음에는 칼로 긁어내는데, 칼을 이용하면 물감뿐 아니라 종이까지 긁어내기 때문에 매우 거친 느낌이 나지요. 넓은 부분은 사포로 문질러 칠해진 물감을 긁어낼 수 있습니다.◆물 자국 만들기 기법물감을 칠할 때 붓에 물기가 많으면 붓이 종이에서 떨어지는 지점에 물이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기가 마르면서 자연스러운 물 자국이 만들어지지요. 이런 현상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면 수채화의 멋을 한껏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물 자국을 인위적으로 만들 때는 먼저 칠한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물기를 많이 머금은 붓으로 덧칠을 합니다. 그러면 물이 이미 칠해진 물감을 밀어내면서 자국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이때 가장 좋은 타이밍은 종이에서 물기의 번들거림이 사라진 직후입니다. 물기가 너무 많은 상태에서 시도하면 물이 골고루 퍼져 자국이 만들어지지 않고, 너무 마른 후에 시도하면 변화가 없거나 부자연스러운 얼룩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확한 타이밍은 종이의 성질이나 습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요.◆흘리기와 뿌리기 기법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기법은 수채화의 멋을 살리는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물감에 물을 충분히 섞은 다음 붓에 듬뿍 묻혀 종이 위에서 흘리거나 흔들어 뿌리면 방울방울 떨어진 물감의 흔적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주게 됩니다. 붓의 털 부분을 잡아 튕기거나 칫솔이나 망사를 이용해 뿌리는 방법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좀 더 고운 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지요. 이 기법은 거친 사물의 재질감이나 잘게 부서지는 물방울 등을 표현할 때 효과적이며 지나치게 뚜렷한 경계를 자연스레 허물고자 할 경우에도 유용한 방법입니다.
    예체능| 2017.03.09| 9페이지| 5,000원| 조회(406)
    미리보기
  • 정물화 정리 ppt
    정물화정물화란 ? 정물화의 의미와 역사 정물화 = ‘nature morte ’ = ‘dead nature’( 죽은 자연 ) 17 세기 프랑스에서 회화를 그 주제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성격을 규정할 때 붙여진 것 . 그러나 정물화를 주제에 따른 엄격한 질서내에서 규정하는 것은 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회화가 지니고 있는 복잡한 관념고리 및 파생되는 또 다른 의미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반 고흐 , 양파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Onions) 1889, oil on canvas, 64 x 50 cm)Zeuxis , B.C. 5 세기 경 이 시대의 정물화들은 대체로 사실적인 경향을 가짐 . 대부분 신에게 바칠 공물을 묘사한 것이나 역사적인 사건 , 영웅담 등의 배경을 이루는 장식의 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 독립적인 정물화라는 개념 형성되지 않음 .플레말레의 화가 , 메로데의 재단화 , 1425 플랑드르 회화 특징 - 상징성이 뛰어난 사실성과 공존성 – 구체적인 표현얀 반 에이크의 성 예로니모 Jan van Eyck, St Jerome, 1442, Oil on parchment on oak panel, 20x12.5cm Detroit Institute of Art, Detroit카라바지오 , 과일바구니 , 1598~1599 경 , 캔버스에 유채 ,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회화관 소장17, 18 세기의 정물화 17 세기 홀란드에서 전성기를 맞이함 . 정물화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 정물화의 제작 수가 많아짐 . 신교를 믿고 있었으며 다른 유럽지역보다 귀족 , 성직자들의 기반이 약한 대신 중산층이 두터운 계층을 가짐 . 실내를 장식하며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정물화 , 풍경화 , 초상화를 선호 . 자신들의 부를 기술적으로 반영하는 데에 큰 기쁨을 느낌 .Pieter Aertsen , Christ in the House of Mary and Martha , 1552, 101.5 x 60 cm (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Willem heda , 아침식사 , 1648Follower of Jan van Huysum , Vase of Flowers , 18 세기 , oil on canvas렘브란트 , 가죽을 벗긴 소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가오리」 1725~1726 년경이형록 (1808~?) 책가문방도 8 폭병풍 19 세기 , 종이에 채색 , 139.5 x 421.2cm 장한종 , 책가문방 8 폭도 , 종이에 색 , 경기도 박물관Odilon Redon Bouquet de fleurs 1908-1910 81 x 100 cm. (31 ⅞ x 39 ⅜ in.) Oil on canvas Odilon Redon Bouquet of anemones pastel, paper 현대미술과 정물화세잔 , 병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 1890-1894 년 , 캔버스에 유채 ,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https://youtu.be/AK8WemfwjGY https://youtu.be/_Dok43YBDDI피카소 (Pablo Picasso)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Chair-Caning) 1912 캔버스에 유포와 유채 , 로프 액자 (oil and oilcloth on canvas, with rope frame), 27 x 35 cm 프랑스 파리의 피카소 뮤지엄 ( Musee Picasso, Paris, France)제스퍼 존스 , 채색된 청동 , 1964 년 , 실제 맥주 깡통 크기 , 브론즈 , 바젤 쿤스트 미술관 . 앤디 워홀 , ‘ 브릴로 박스 ( Brillo Box·1964 년 )’{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17.03.09| 17페이지| 4,000원| 조회(394)
    미리보기
  • 조각가 권진규 정리
    1.권진규의 학창시절1922년 4월 7일 함흥에서 천재 조각가가 탄생하였다. 함흥의 큰 부자인 권정주의 아들 권진규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아이였다. 함흥은 조선을 개창한 태조대왕 이성계의 고향이므로 왕실과 관련된 유적이 상당하였고 권진규는 이곳을 즐겨 찾으며 전설과 민담에 깊이 빠졌다. 그는 13세에 늑막염에 걸려 학교를 늦게 진학하였으나 미술에 대한 열정은 전혀 뒤처지지 않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시대적인 압박으로 인해 ‘곤도 다케마사’로 개명을 하게 된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중인 형을 따라 도쿄로 건너가 사설 미술 강습소를 나가며 미술을 배웠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하고 태평양 전쟁으로 인하여 비행기 제조공장에 징용되지만 몇 년 후에 탈출하여 조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징용을 강제하는 시기였기에 그는 교외에 동굴을 파고 세 계절을 보내며 암울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 시기를 거치며 우울하고 과묵한 인간형으로 바뀌게 되었다.1945년 해방이 되고 1951년 권진규가족은 월남하여 성북동에 자리를 잡는다. 권진규는 이쾌대가 운영하는 성북회화연구소에 들어가 미술공부를 하며 재능을 키워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1947년 속리산 법주사 안에 서 있는 33미터의 미륵대불 마무리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온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타계할 때 까지 거의 완성된 상태였지만 마무리는 하지 못한 상태였다. 김복진의 제자인 윤효중과 사마카 미시게루, 그리고 권진규가 6개월 동안 작업을 하게 된다. 권진규는 이 시기에 작업을 하면서 조각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게 된다.2. 일본 유학시기조각의 꿈을 키우고 있던 사이 도쿄에 있는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 도쿄로 밀항하지만 형은 끝내 죽고 만다. 권진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조각의 꿈을 키워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그 당시 조소예술을 담당한 시미즈 다카시에게 조각을 배우며 꿈을 키운다. 시미즈 다카시는 부르델의 제자였고 부르델은 로댕의 제자이다. 부르델은 거칠고 현란한 신화와 견고한 수직의 장엄을 향해 나아간 작가로 로댕의 형식을 반대하여 자신의 세계를 이룩한 작가이다. 그러나 시미즈는 부르델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온화한 세계를 지향했다. 권진규 역시 시미즈의 형식을 따르지 않으려고 시미즈가 수업시간에 들어오면 자신의 작품에 검은 천을 덮어두고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1953년 아홉 살 연하인 서양화과에 다니는 오기노 도모와 사랑을 나누어 둘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권진규의 아버지는 결혼사실에 분노했고 생활비를 끊어버리고 말았다.둘은 살림집 유지를 위해 마네킹제작회사에서 일했다. 권진규는 마네킹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서 영화 제작소에 들어가서 세트장을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1953년 무사시노를 졸업한 권진규는 이과회 공모전에서,로 특선에 올랐다. 수상자에겐 프랑스 유학을 보내주었지만 권진규는 일본인이 아니어서 프랑스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권진규는 뜨거운 열정으로 재료와 기법, 소재 등을 단일하게 하지 않고 테라코타까지 넓혀나갔다. 소재로는 말과 짐승을 주로 골랐다.는 적막한 기분을 한껏 이끌어 낸 작품으로 아득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두 마리의 말이 짓고 있는 표정은 꿈틀대는 움직임을 포기한 모습이다. 마치 무덤에 앉아 암흑을 응시하는 고요한 느낌을 준다. 이 돌에는 적막과 긴장의 영원성이 자리 잡고 있다.권진규의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는 석고를 사용한 누드입상으로 자연스러운 동세를 바탕으로 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양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스적 균형과 조화를 이룬 조각이 아닌 동양의 리얼리즘적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오기노 도모는 권진규의 첫사랑으로 라는 작품이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권진규가 도모를 많이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1959년 도모와 권진규는 권진규가 한국에 돌아감으로써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권진규는 도모를 평생 그리워하였다. 도모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둘은 끝까지 맺어질 수 없었다. 석고로 만든 의 모습은 권진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얼굴을 묘사한 것으로 실제 도모의 얼굴과 흡사하다고 할 수 는 없다. 도모는 권진규가 죽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권진규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도모가 권진규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3. 조각 동물상, 인물상도모와의 인연을 뒤로하고 권진규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돌아온다. 돌아온 뒤 자신의 아틀리에를 직접 만들고 테라코타를 위해 불가마도 만들며 작업 활동을 한다. 권진규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꼭 어머니 뿐만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성공을 기대하고 돌아온 것이지만 한국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한국에선 인상파는 이미 고전이었고 추상파가 주도하는 흐름이었다. 앵포르멜, 추상표현파를 열렬히 숭배하는 풍조가 팽배했고 권진규가 자리 잡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권진규는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는 테라코타와 건칠기법을 이용해 두상조각과 흉상을 만들고 다양한 동물 조각도 만든다. 건칠기법은 얇은 삼베 천에 옻칠을 덧입혀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1963년 이성계를 떠올리며 을 제작한다. 은 닭머리를 닮은 모양으로 활발함이 느껴지고 치솟아 오르는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고향에 두고 온 추억과 기쁜 세월이 담겨져 있다. 권진규가 테라코타를 지향한 이유는 잘 썩지 않고, 불로 구울 때 발생하는 우연성과 마지막과정을 자신이 모두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마무리는 작가의 손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이념으로 작업을 한 것이다. 테라코타를 이용하여과을 만들며 삼각의 몸통에 숭고함의 경지를 담는다.은 특히 유명하다. 이 조각은 안고 싶은 몸이 아닌 순결한 이상을 상징하는 것 이다. 이 조각에서 사람의 얼굴은 내면의 영혼이 피어오른 꽃일 뿐 대화를 나눌 속세의 사람이 아니다. 또한 무거운 침묵을 통해 내면의 빛을 조용히 드러내는 경건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지원은 권진규의 홍익대 제자 장지원의 모습을 표현 한 것으로 이상적인 세계를 넘보면서 그리움을 갈망하는 깊고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잔잔한 슬픔에 엷은 미소가 어울려 있다. 미소까지 진행되지 않은 슬픔을 감춘 미소다.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욕망의 허망한, 생의 무상함이 엿보인다. 그의 작품은 전통 미를 서양식 조각방식을 통한 발현으로 함축된다. 뿌리는 전통에 박고 있지만 모던하다. 단순화시킨 선에서 절제미와 단아함이 느껴진다.1970년대 초에 에서 그는 검정과 붉은색의 기이한 조화를 일으키며 자신이 도달한 이상주의 세계관의 절정을 보여준다. 삭발한 민머리에 붉은 가사를 걸친 채 저 먼 곳을 응시하는 장엄한 인격의 고독이 시선을 압도하고 있다. 어깨에서 내려와 한쪽 가슴을 덮은 붉은 가사는 세속과의 견고한 단절을 암시한다. 표정의 담담함은 욕망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사사로운 삶의 고통을 넘어서서 절대의 숭고함, 혹은 달관의 평화에 가 닿은 자의 내면을 드러낸다. 아마도 그것은 일본인 아내와 타의에 의해 이혼하고, 한국 화단의 냉담과 몰이해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던 권진규의 불우함을 내면화한 데서 빚어진 고독일 것이며, 삶에 대한 그윽한 통찰에서 나온 슬픈 결론일 것이다. 그는 꿋꿋하게 그 고독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것을 넘어가고자 했다. 그리고 현실을 초월하여 영원의 길을 향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불교의 상징인 이 작품은 불멸의 세계 그 자체이다. 불멸은 권진규가 지향하는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권진규는 여동생에게 자식을 키워봤자 죽지 않느냐며 자신들의 작품은 죽지 않는 다고 하며 불멸성에 대한 이상을 표출 하곤 했다.권진규는 불상도 많이 제작하였다. 는 몸과 팔을 두텁게 하여 육중함을 더하고 얼굴 또한 둥글고 도톰한 맛을 강조하였으되 코는 오똑하게 표현하고 오무린 입과 턱을 뒤로 빼서 납렵한 인상을 살렸다. 옷주름이 왼쪽 어깨로부터 사선으로 내려와 온몸을 감싸도록 하였는데 그 속도감이 전체 분위기를 생동하게 이끌어준다. 눈을 감은 채 사색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모습이 인자함과 온화함을 더해주고 있지만 배와 가슴사이를 띠로 묶은 듯 굴곡을 강화하고 양쪽 팔뚝이 꺾어지는 위치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강한 동세를 부각 시켰다. 유연함과 중후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체능| 2017.03.09| 4페이지| 4,000원| 조회(145)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7
7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5
  • A좋아요
    2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4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20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