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서평- 실존주의적 상상력 -Ⅰ. ‘상상력의 위치’ - 이미지의 현상학, 순간의 형이상학Ⅱ. 공간으로 보는 상상력 - 집, 장롱, 구석, 새장, 조개껍질Ⅲ. 상상력의 체계 - 내밀함, 세미화, 원형성Ⅳ. 실존주의적 상상력Ⅰ. ‘상상력의 위치’ - 이미지의 현상학, 순간의 형이상학서양철학 역사에서 이미지와 상상이란 감각을 통해 지각된 것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의식의 산물 정도로 여겨져 왔다. 의식의 산물로서 이미지와 상상은 또한 사유의 재료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럽고 독자적인 현상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의 배경 위에서 객관성에 개입하는 방해물 정도로 여겨져 더욱 그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다. 바슐라르는 먼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했던 학자로 자연과학적 실증주의와 객관성의 절대화라는 영역의 고고한 벽 밖에서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인간의 꿈과 상상력의 존재의 그 깊이와 힘을 발견하고 매료된다. 그는 과학자답게, 과학과 객관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상상력의 영역에 상상력의 형식을 분석하는 작업을 택했다. 상상력의 독자적인 체계와 원리를 정립하고자 그는 먼저 문학작품들을 폭넓게 접하면서 물, 불, 공기, 흙 4원소로 대표되는 물질적 상상력론을 전개한다. 원소로 대표되는 물질의 이미지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으로 상상력을 파헤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상상력의 체계에 대해 주장할 수 있었지만 정신분석학적 방식으로 기억, 경험에 기반을 두어서는 이미 과거와의 인과성과 객관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고, 경험-기억과 상상력 사이의 복합체를 해체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시적 이미지를 온전히 살려내기 위해 몽상과 추억의 뒤섞임을 풀어 해체하고 인과성과 객관성의 종속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상상력’의 체계, 바슐라르는 에 이르러 그 독자성과 원리를 첨예하게 구체화해나간다.“시는 순간을 탐구한다. 시는 순간만이 필요하다. 시는 순간을 창조한다.순간 밖에는 단지 산문과 노래가 있을 뿐이다.“-『순간의 미학』“성속에서도 조개껍질과 같은 아늑함을 찾아내는 것이현상학적 작업이다.“-『공간의 시학』에서 바슐라르는 시를 정의하기에 ‘이미지의 현상학’, ‘순간의 형이상학’ 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오직 시적 이미지를 읽는 순간에 이미지의 현전해야할 따름‘ 이라고 강조한 것이 바로 있는 것 그대로, 보이는 바에 집중하겠다는 현상학적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과학자, 철학자로서 가졌던 연구 습관마저도 상상력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달라져야한다는 의지와 각오를 담은 표현이기도 했다. 시적 이미지를 탐구함에 있어서 기존 학문들의 객관성과 경험과의 인과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태도는 ’이미지의 새로움에서 오는 법열 그 자체 가운데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시적 이미지의 체험은 경험과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울림‘, 바슐라르의 표현에 의하면 ’갑작스러운 정신의 융기’로 이루어진다. 융기란 돌출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작가의 경험이나 세상과의 경험에 의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독자적인 상상력의 소산으로서의 상상력은 그 자체의 존재와 힘을 가지는 것이며 ‘그 자체’로 파악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이에 바슐라르는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존재론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이미지를 대상으로 보는 대신 그것의 특수한 현실을 파악하려는 현상학적 태도를 도입한 것이다.‘순간의 형이상학’ 이라는 표현은 이미지가 창작자에게 종속되는 체계를 부정하고 독자가 시를 만나는 그 순간에, 시를 매개로 자기초월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독자의 감상은 창작자와는 분리되어있으며 시와 독자만이 존재하는 그 시간은 상식의 물리적 시간이 아닌 시의 우주와 독자의 존재가 상통하게 되는 초월적인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영원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시적 이미지의 주관성을 복원하고 객관성으로 가려져있던 상상력의 빛을 내도록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Ⅱ. 공간으로 보는 상상력 - 집, 장롱, 구석, 새집, 조개껍질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정리해보면 핵심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상상력의 독자적인 작용이 어떻게 외계의 대상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가, 이 원리는 먼저 집필했던 여러 권의 물질적 상상력론에서 나타나며, 두 번째는 상상력의 독자적 작용 자체를 밝히는 이미지의 현상학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상상력의 궁극성을 밝히는 원형론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에 이르러 구체적으로 정립되었다.공간의 시학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6장에서는 집, 집과 세계, 장롱과 상자와 서랍, 구석, 새장, 조개껍질의 이미지를 다양한 시를 인용하여 풍부하게 해설하고 있고 뒷부분의 7-10장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우리 의식 안에 떠오르게 하는 원리와 원초적인 상상력의 궁극을 세미화, 내밀함, 안과 밖의 변증법 그리고 원형성을 통해 설명한다.의 1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을 공간의 요소에 대한 분석과 그 기저가 되는 원리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고 각 장의 내용을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하는 상상력의 원리를 중심으로 요약해보았다.- 집, 집과 세계집은 흩어져있는 이미지들과 동시에 하나의 총체로 이미지의 통합체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수직적 존재로서 지붕-지하실로 대표되는 합리와 비합리의 대립의 공간이며, 동시에 몽상가를 지켜주는 꿈꿀 수 있는 장소이다. 이런 ‘보호하는 집’에게 위협이 되는 외부 세계는 모순되는 상황들로 서로 반대되는 몽상을 충돌시켜 역설적으로 서로간의 생동성을 부각시킨다. 집이라는 공간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기하학적, 물질적 공간의 의미를 초월하게 된다.- 서랍과 상자와 장롱작은 상자 속에는 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과거가 구현되어있다. 그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응집되어있어 기억을 넘어서는 기억으로 담겨있다. 누구에게나 열리지 않는 비밀스러운 내밀함의 공간으로, 열려있을 때보다 닫혀있을 때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사실을 확인하려 들면 이미지들은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새집새집은 허약하지만 인간의 내부로부터 안전과 안락의 몽상을 촉발시키는 감수성의 역설을 일으키는 공간이다. 인간의 집보다도 새집이 은신처의 원초성을 강렬히 일으키는 것은 거주기능의 자연적 장소인 동물적인 은신처이기 때문이다.-조개껍질조개껍질은 자유로운 존재와 속박되어 있는 존재의 변증법을 작용시킨다. 제 껍질을 빠져나오는 달팽이의 모습은 힘찬 공격과 난폭함의 표징을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명백한 역동성은 숨김과 드러냄의 변증법 가운데서 나타난다.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나옴을 마련하기 때문이다.-구석구석은 삶을 거부하고 제한하고 숨기는 것을 표상한다. 이때의 구석은 세계의 부정이며, 우리에게 존재의 최초의 가치인 하나의 부동성을 확보해 주는 은신처이다. 우리들이 스스로를 응집시켜 웅크리고 들어앉고 싶은 구석진 공간인 것이다. 광의로서 집은 세계의 구석이 된다.Ⅲ. 상상력의 체계 - 내밀함, 세미화, 원형성이미지의 현상학에 있어서 우리는 크고 작음과 숨김과 드러냄과 평온함과 공격적임과 맥없음과 기운참의 변증법을 강조했다. 상상력이 얼마나 큰 자유로써 공간과 시간과 힘에 작용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공간이 가지는 이미지들을 분석해보면, 그 기저에는 몇가지 원리가 있다. 세미화, 내밀의 무한, 원형성이 그것이다.-세미화(細微畵)세미화의 역동성은 작은 것 속에 있는 큰 것을 체험하는 것에서 나온다. 논리를 넘어서는 이 역동성을 통해 우리는 사과가 우주가 되고 씨앗이 우주의 태양이 되는 가치의 응집과 풍요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한 사물의 세부는 한 새로운 세계의 위대한 속성들을 맞닿게해준다. 세미화는 형이상학적 신선함을 얻기 위한 훈련이며 머물러있던 세계 밖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수많은 몽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미세함과 광대함의 조화로움으로 시인은 언제나 작음속에서 큼을 큼에서 작음을 읽어내며 모든 감각을 움직이게 한다.-내밀(內密)의 무한무한은 우리들 내부에 있는 것이다. 조용한 몽상의 역동적 성격 중 하나로, 무한함의 현상학은 존재의 숨겨져있는 웅대함과 강렬함을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인간 내부의 무한함으로 인해 예술작품이란 상상하는 존재의 실존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명백해진다. 하나의 대상에 그것의 시적 공간을 준다는 것은 , 객관적으로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공간을 그것에게 준다는 것이다.-안과 밖의 변증법안과 밖은 분단의 변증법을 이룬다. 안을 구체적인 것으로, 밖을 드넓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상상력의 원초적 작업인 듯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임과 드넓음 사이의 대립은 뚜렷하지 못하다. 안과 밖은 둘 다 내밀하며 언제라도 상호가 도치 될 수 있다. 과장됨을 연장함으로써 안과 밖은 환원될 수 있다. 밀실과 광장을 나란히 붙여 놓는 것은 내부의 무한을 연장하여 외부의 현기증을 끌어들일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또한 ‘문’은 원초적 이미지로서 그 존재를 열고 싶은 유혹, 응답 없는 존재를 정복하고 싶은 욕망이 쌓이는 몽상의 시원 자체이다.-원의 현상학‘존재는 둥글다’ 라는 표현은 그것의 이미지이 원초성을 알아보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가득 찬 둥긂의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최초의 구성이 되며 우리 존재 내부가 내밀해지는데에 도움을 준다. 그 이미지들은 세계를 지워버리고 과거를 가지지 않는다. 어떤 앞선 경험에서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둥글다는 것은 둥긂 속에 있는 것이 존재 전체임을 뜻한다. 존재는 안으로부터, 외부가 없는 것으로 살아질 때, 둥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