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이석영] 독후감책을 읽으면서 "우주는 팽창하는데 왜 지구와 달은 멀어지지 않을까?", "우주가 137억 년 전에 생겨난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인류의 고향인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밝히지 못한 우주의 비밀은 무엇인지 자세히는 아니지만 하나씩 알아 가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고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특별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16번째 강의 ‘하나의 별이 탄생해 사라지기까지’를 부분이다.별은 무엇이며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강의를 통해 타원 은하는 대부분 100억년 이상의 오래된 별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별 생성에 필수적인 저온 기체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 탄생과정을 연구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나선 은하인 우리 은하의 경우 매년 두세 개의 별을 은하 원반에서 만드는데 그것은 하나의 별이 탄생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1억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별은 은하 원반의 기체 구름에서 탄생하지만 많은 기체가 있어도 기체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별 탄생이 불가능한데 거대 타원 은하에서는 100만도 이상의 고온 기체가 엄청많다고 한다. 100만라는 온도는 얼마나 뜨거운 것일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고온 때문에 우주 초기에 별이 탄생할 수 없었다고 한다.‘태양질량의 100만배’정도 되는 기체가 모여 분자 구름을 만드는데 별이 그 분자 구름에서 탄생한다고 한다.그래서 태양의 질량이 궁금해져서 태양의 질량을 찾아보았더니 태양과 지구의 질량차이는 오백원짜리 동전을 태양이라고 하면 동전 속 연도를 나타내는 글씨 보다 더 작았다. 태양은 지구질량의 33만배 더 무거웠다. 이러한 차이속에서 100만배, 33만배 라는 수치가 도저히 나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뿐아니라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숫자의 크기로만 인식되었고 실제 질량의 크기로는 상상할 수 가 없었다.허블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7000광년 떨어진 독수리 성운의 사진은 환상 그 자체였다.모양이 독수리와 유사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성운 내부에는 항성 형성이 활동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가스와 먼지가 있으며, 그 중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창조의 기둥은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7000년을 달려가야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진속 모습은 거대한 분자 구름기둥에서 별들이 우수죽순으로 탄생하고, 별 탄생으로 인해 뿜어지는 막대한 복사에너지가 주변의 기체를 증발시켜 버리는 모습이였다. 이렇게 멋지고 웅장한 우주가 있다니 정말로 아름답고 신비로웠다.별의 진화 과정과 운명은 탄생 당시의 별의 질량에 따라 결정되며 별의 질량이 태양의 10배 보다 작은 별의 일생은 비교적 평온하다고 한다. 태양의 경우 태어나서 죽기까지 100억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100년도 못사는 인간에게는 100억년은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별이 만들어 지는 과정은 분자 구름의 한 영역에서 기체가 많이 밀집되고 그곳에서 별이 태어나는데 이론적으로 볼 때 기체가 중심부로 몰려들 때 원반을 형성하게 된다고 추측 한다. 큰 기체 덩어리가 원반의 형태를 유지하며 점점 수축하면서 회전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것은 마치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한자리에서 회전할 때 팔을 오므릴수록 회전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표현을 보니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연산군과 사도세자’에 대한자율 탐구 보고서탐구 동기 :1.연산군은 누구인가?연산군(燕山君,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20일 (음력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왕이다. 성은 이(李), 휘는 융(?: ?+隆), 본관은 전주(全州).[1] 성종의 장자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王妃)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루던 훈구파와도 절연하여, 사림파를 적대세력으로 훈구파를 비호감세력으로 만들어 독단정치에 접어들었다.그 뒤로 사림파의 간쟁을 일절 무시하고 훈구파의 공적을 과거로 치부해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였다. 왕권 견제기관 이였던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예문관 등을 대폭 축소하거나 감원하고, 유가와 불가의 대표적인 기관인 성균관과 원각사 (圓覺寺)를 기생 양성소와 유흥장으로 만들어 국초(國初)의 여러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국가의 초석을 쌓으려 하였다. 그 밖에 여성들을 많이 불러들였다는 것으로 비난을 받았으나 이는 중앙집권국가가 되는것을 막기위한 중국과 골수유학자들의 변명거리라고 보인다. 실제 당시의 타국 국왕들에 비해 방탕하다고 보기 어렵다. 종친을 두고도 파격적인 언행을 일삼아 생모 폐비 윤씨의 사사에 관여된 성종의 후궁들을 제거한 뒤 무덤 줄만 못한다 하여 그 시체를 들판에 짐승의 먹이로 내다버리게 하였으며, 인수대비의 초상 때는 인수대비가 3년상을 받을 사람이 못 된다 하여 3년상 대신 25일로 장례를 마쳐 유학자들의 비난을 초래했다.사림파의 증폭되는 불만(不滿)과 훈구파의 부당(不當)하다는 여론 끝에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와 외숙 윤구(尹?)를 석방한다. 즉위 이듬해부터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후(王后)로 복권시키는 일을 추진한다. 그러나 사림에서는 '사후 백년간 폐비 윤씨 문제는 논외에 부친다'는 선왕의 유지(성종의 유언)를 이유로 들며 폐비 복권을 반대하였다. 이 때문에 감정이 악화된 연산군은 사림파의 제거를 추진했다.4) 폐위와 유배 생활1506년 음력 9월 2일 성희안, 유순정, 박원종, 신윤무 등은 사전에 준비한 사병들로 거병하여, 신수근, 임사홍등 연산군의 측근들을 살해하고 궁을 장악하여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했다. 연산군은 폐위(廢位)되어 민가에 숨어있다가 체포되어 경기도 김포군 교동(喬桐)에 추방되었다. 이때 장녹수 등 그의 후궁들은 한성부 종로, 남대문 등에서 투석사형당하였으며 연산군의 어린 아들들도 반정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정현왕후는 처음에 주저하는 듯 하다가 바로 반정군의 요청을 수용한다.음력 9월 2일 새벽, 궁궐의 방화를 틈타 민간복으로 변복한뒤 말을 타고 궁궐을 빠져나온 연산군은 한성부 근처의 한 민가에 숨었으나 그를 추격한 박원종의 사병에 의해 체포되었다. 체포 즉시 압송되어 폐위(廢位)당하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유배된 뒤 유배지의 별감과 상궁들은 그를 조롱했으나 그는 이를 묵묵히 참고 인내했다. 그러나 유배 직후 열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고생하게 된다. 뒤이어 강화도 근처 교동도로 배소가 옮겨진다.5) 최후연산군이 강화도로 유배되자 그를 독살하려는 시도가 셀 수 없이 많았으나 한때 그를 동정했던 당시 강화 부사의 노력으로 독살을 모면했다. 함께 유배되었던 그의 왕자들도 사사, 처형당했다. 중종은 조카들의 나이가 어리고 형세가 고단한 점을 들어 처벌을 반대했지만, 대신들의 강력한 요청을 수용하고 말았다. 공신들은 훗날 누군가 이들 왕자들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세력이 결집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강화도에 유배되었고 교동도로 이배되었다가, 강화군 교동도에 유배된 지 2개월 뒤인 그해 음력 11월에 교동도 주도했던 두 후궁은 정씨 소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시켜 때려 죽이고, 그 시신으로 젓갈을 담그어 산야에 버리고 아무에게도 매장하지 말라고 명하기도 했다. 또 안양군과 봉안군은 유배를 보냈다가 이듬해 죽였고, 정씨 소생의 정혜옹주와 엄씨 소생의 공신옹주는 폐서인하고 유배했다(두 사람은 중종 즉위 후 복권되었다).당시 연산군은 인수대비(仁粹大妃)와도 크게 다투었고, 훗날 폐비 윤씨를 복위하는 문제로 재차 다투다가 당시 병으로 누워 있던 인수대비를 강하게 밀쳤고(들이받았다고도 한다), 그 후유증으로 인수대비는 사망했다. 연산군은 인수대비의 초상 때에도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 또는 역월지제(易月之制),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하여 삼년상 대신 25일상을 치름)라는 단상제(短喪制)를 단행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3) 폐비윤씨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 6월 1일)[1][2]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 또는 윤기무, 尹起畝)[3]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남편인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위되었다.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윤관의 11대손이다.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되어 사사되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다.남편 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연산군은 자신의 모친이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지 해야 했다. 영조 31년(1755)에 소론이 일으킨 나주 벽서 사건 옥사 확대에 반대하다 노론의 미움을 산다. 1758년에는 세자폐위 전교가 내려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 폐위는 전교는 당시 도승지였던 남인 채제공이 끝까지 만류하여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로부터 4년 뒤인 1761년 봄 석 달에 걸친 평안도 여행이 빌미가 되어 사도세자는 다음해에 부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끝내 노론의 역습(임오화변)을 당해 1762년(영조 39) 28세를 일기로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사망한다. 훗날 장헌세자와 장조로 추존된다.2) 임오화변사건은 한 달 전 나경언이 역적모의를 고발하는 고변의 형식을 빌려 영조에게 세자의 비행 10여 조를 올린 데서 비롯되었다. “영조실록”에 있는 내용은 5~6가지이다. 세자의 아들인 인을 낳은 첩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 여승을 궁으로 불러들였다는 것, 시전 상인의 재물을 빌려 쓰고 갚지 않았다는 것, 북성으로 나가 유람했다는 것, 평안도로 여행을 갔다는 것 등이다. 그밖에 신하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지만, 영조는 그 점에 관해서는 대단치 않은 충고라고 일축해버렸다.3) 사도세자 뒤주 피살 사건의 진실(음모)1762년 영조의 탕평책에 따라 다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인과 노론, 명분 속에 미약한 권력을 유지하여 온 소론 등이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사도세자는 소론 측이었다.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집안은 노론이었고 사도세자가 소론 측에 서게 된 것은 나주벽서 사건과 토영격과 투서사건으로 소론측이 연이어 죽어나가자 노론측이 심하게 권력을 남용한다는 생각에 노론 측에 불만을 가지고 소론을 옹호했기 때문이다.영조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고 멀지 않아 사도세자가 즉위해 소론측이 득세할 것을 염려한 노론 측 김한구 · 홍계희 등이 세자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나경언을 사주하여 숙의 문 씨에게 장헌세자의 난행(亂行)을 고발하게 아내다가 실수로 촛대를 넘어뜨려 불이 났다. 영조는 이 일로 다시 사도세자를 추궁했고 사도세자는 자신이 일부로 저지른 일이라 거짓으로 고했다.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 씨와 그녀의 오빠인 문성국이 영조의 옆에서 사도세자의 대한 소문과 사건들을 고자질 했다. 그리고 인원왕후의 상이 끝난 뒤에 사도세자가 인원왕후의 내인 중 한명을 데려가 취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러한 일들이 영조의 마음속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미움을 부추겼다. 사도세자는 억울함과 영조에 대한 두려움으로 화증이 생기고 그것이 악화되어 정신병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사도세자는 내사의 일을 느리게 처리했단 이유로 내사차지와 내인, 내관들을 죽인다. 여승과 기생을 데려다가 궁중에 두었다. 경모궁은 자신이 사는 곳은 빈소 모양으로 침소는 시체를 안치하는 영침 형상으로 해놓고 그 속에서 잤다. 잔치를 벌이고 맹인들에게 점을 보게 했다. 맹인이 점괘를 잘 못 말하면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었다.그러던 중 나경언이 여승과 기생을 궁에 들이고 북?서로 여행 갔던 일 등 사도세자의 죄 10가지를 영조에게 아뢰는 사건이 있었다. 영조는 나경언을 죽이고 사도세자는 폐하여 서인으로 만든 뒤 뒤주에 가두어 죽인다.이 사건에 대해 혜경궁 홍씨와 그녀의 아버지인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죽음은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나 나라를 위해서는 옳은 일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6. 사도세자와 연산군은 사이코패스인가?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임오화변(壬午禍變)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역사적 인물이다.아버지에 의해 귀주에 갇혀죽었다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도세자가 저지른 범죄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다.사도세자의 살인 행각은 조선왕조실록과 아내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에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무고한 나인과 내관 등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거나 목을 베는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심지어 내관의 머리를 잘라 궁내를 돌아다녔고, 혜경궁 홍씨에게 직접 보여줬다는 기록도 있다.숫자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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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 대한 통합적 관점’에대한 탐구 보고서1)로봇의 시간적 관점로봇, 어떻게 발전해 왔나?로봇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자면 기원전 1세기까지도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로봇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자동화 기구’라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대가 흘러 산업 혁명이 일어난 18~19세기, 프랑스의 기술자 자크드 보캉송이 만든 자동악기와 자동인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자동화 기계들이 개발된 것이 본격적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로봇은 과학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한 1940년대 후반에서야 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로봇은 작업 속도나 정확도에서 사람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지만, 사람의 손과 발을 대신하는 수준에 제한된 1세대 로봇이었다. 1세대 로봇은 대부분 산업용 로봇을 말하며 그 예로는 용접 로봇이나 물품 이송 로봇, 조립 로봇 등을 들 수 있다.뒤이어 최초의 대형 전자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출현하면서 2세대인 지능형 로봇이 탄생했다. 최초의 지능형 로봇인 ‘거북 로봇’은 여러 가지 센서를 통해 주변 상황을 인지함으로써 오류나 불필요한 작업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2세대 로봇의 예로는 적외선센서로 라인을 구분해 움직이는 라인트레이서 로봇, 초음파 센서와 적외선 센서로 벽을 감지해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마이크로마우스 로봇 등이 있다. 지능형 로봇은 점점 더 발전했고, 마침내 최초의 로봇제조 회사인 유니메이션(Unimation)이 등장했다.그림 1 최초의 인간형 로봇현재의 로봇 모습은?지능형 로봇의 등장 이후 많은 나라가 로봇 개발에 열을 올렸고 관련 산업 또한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일본은 로봇 개발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나라로 그중에서도 직립보행 로봇인 3세대 로봇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일본은 E시리즈와 P 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면서 점점 몸통과 팔, 머리, 가슴 등을 추가해 좀 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했다. 결국, 1986년에는 인간처럼 직립 보행이 가능찾아낼 수 있다거나 하는 기능을 계속해서 추가하며 발전하고 있다. 일본이 휴머노이드 개발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이자 UCLA 기계공학과 교수 인데니스 홍 박사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를 “일상 속에 있는 계단, 문 등 모든 물건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의 환경 속에서 로봇이 사람을 도우려면 인간을 닮아야 하고, 로봇과 함께 생활할 인간의 감성까지 생각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인간형 로봇 개발에 관심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KAIST의 오준호박사 팀의 ‘휴보’나 삼성의 ‘로보 레이’, KIST의 ‘마루’, ‘아라’등이 있다. 이 로봇들도 아시모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미래에는 어떤 로봇이 등장할까?최근에는 인간형 로봇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과학적인호기심을 자극하고, 인간에게 친숙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집 안의 모든 가전제품이 모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 만큼 로봇만 달라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또한, 종교적인이유로 인해 미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 중에서 휴머노이드 개발을 꺼리는 곳도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생체 모방로봇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하라 사막 개미를 닮은 내비게이션 로봇, 열대 우림의 열대어를 닮은 물고기 로봇, 치타의 움직임을 분석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제작한MIT의 치타 로봇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생체 모방 로봇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로봇으로 재난상황이나 여러 가지극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로봇 산업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로봇의 형태는 꾸준히 변해 왔고, 앞으로는 더욱 혁신적인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2)로봇의 사회적 관점로봇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일자리가 사라진다.”가 아닐까 싶다.그만큼 로봇의 대두와 이로 인한 새로운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전 세계를 뒤덮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작금의 상황에서 다소 과장된 공포가 아닌가 싶다.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부의 불균형을 초래하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은 시간의 노동으로 생산성은 더욱 좋아지게 될 것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에 따른 화이트컬러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줄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이런 경향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바뀐 것일까?중요한 것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이?현재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는 주범이?아니라는 점이다.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200년 전에는 90% 이상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했고, 100년 전에는 40%가 공장에서 제조업에 종사했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80% 이상을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면서 업종이 바뀌었듯이 거대한 산업구조의 재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변화의 본질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건설이나 제조업 자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는 것은 동일한 현상이다. 이런 전체적인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통찰 없이 로봇과 인공지능을 탓하는 것은 과거 산업혁명 시절 방직공장에서 산업용 기계들을 때려 부수던 러다이트(Rudite) 운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앞으로?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산업구조의 재편도 빨라질 것이므로,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역할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물론 잘못일 것이다. 아마도 향후 20~30년 정도의 미래와 산업구조는 어느 정도로 변할 것인지 사실 예측하기도 힘들다. 병원에서는 로봇들이 수술과 진료를 담당하면서 과거보다 의료비용이 저렴하고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고, 택시와 트럭운전을 로봇들이 대신하면서 물류유통과 교통비용 등은 감소할 것이며, 법률소송과 회계처리를 담당하는 인공지능 로봇 에이전트 등에 의해 전문직들도 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줄똑똑하다면 굳이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교육이 중요하다는?동기부여가 가능할까?로봇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인류에겐 인간과 외모가 비슷하고 인간처럼?움직이고 말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아직?없다.인간의 존재감을 재현하기 위해선 인간에?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더 깊어야 한다. 우리를?편하게 해주고, 신뢰를 주는 신호와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언젠가 우리가 하는?일들을 직관적으로 해내는 기계 두뇌, 즉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낼지도 모른다.?하지만 왜 인공 지능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것일까? 이시구로는 우리가 교류하고, 서로 믿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봇의 외관을 인간과?비슷하게 만들수록 함께 살기 쉬울 거라고 믿는다.?그래서 이시구로의 연구소에서는 인간과 로봇의?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다.인간-로봇 상호작용은 공학, AI, 사회 심리학,?인지 과학이 합쳐진 분야다. 우리와 로봇의 관계는?점점 진화할 것이다. 그것을 분석하고 이끄는 것이?목표다. 인간-로봇 상호작용은 우리가 기계와 언제?그리고 왜 교류하려 하는지, 심지어 왜 애정까지?느끼려 하는지 이해하려 한다. 그는 안드로이드를?새로 만들 때마다 목표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믿는다. 지능로봇연구소에서는 안드로이드를 따로?관리하고 있다. 빛을 차단하기 위한 커튼, 얇은 카펫,?케이블과 모니터와 가발이 잔뜩 놓인 선반이 있는?방에 이시구로가 만든 성인 여성 안드로이드들을 집합시켰다. ‘제미노이드 F 시리즈’다. 라틴어로?쌍둥이를 의미하는 제미너스 Geminus에서?힌트를 얻은 이름이다. 실존하는 인물을 모방해?만든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이다.‘인간의 감정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위적으로도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우리는 스스로를 아주 복잡한 존재라고?생각하지만 인간관계의 기반은 아주 빈약할 때가?많다.만약 문자를 주고받는 친구가 로봇으로?대체된다 해도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할 사람이?대부분이다. 인간이에?공감하도록 설계되어 나무 조각마저도 기꺼이?인간화한다는 것이다. 코미디처럼 웃긴 동물적?본능이자 무서울 정도의 취약함이다.그림 5 히로시 이시구로 그림 6 첫 안드로이드-2002안드로이드의 외모가 인간과 가까워지면서?이야기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인간과 비슷한?존재를 두려워하는 현상이 생기고, 익숙하지만?어쩐지 다른 존재를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되면 공감도가 크게 떨어진다. 제미노이드 F 첫?세대를 만든 이시구로와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대학교는 공감과 관련된 뉴런에 대한 논문을 냈다.?이들은 20~30대 20명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뇌를?fMRI로 스캔했다.첫 번째는 이시구로가 만든 여성?안드로이드 영상, 두 번째는 같은 안드로이드지만?기계 장치가 몸 밖으로 드러난 안드로이드의 영상,?마지막은 안드로이드의 모델이 된 살아 있는 인간의?영상이었다. 참가자들은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끄덕이고, 종이 한 장을 집어 올리기도 하고,?테이블을 천으로 닦는 안드로이드의 영상을 보았다.?세 영상 중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을 볼?때 두정엽 피질이 가장 활성화되었다. 이곳은 신체?움직임 감지와 공감 뉴런을 연결하는 곳이다.? 실험을 마친 이시구로는 연구소로 돌아와?안드로이드의 사소한 움직임을 강화했다. 턱을 살짝?기울이는 동작, 고개를 돌리는 움직임, 웃음을 참는?표정 등 작지만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동작이다.3)로봇의 공간적 관점미래의 로봇은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공간을 초월하게 된다.원격지에서 VR헤드 마운트를 착용하고 로봇의 팔을 실시간으로 조작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원격지에서 실시간으로 동작을 제어하는 기술이다.?로봇의 조종자는 복수의 센서를 장착한 재킷과 장갑, 그리고 오큘러스의 VR헤드 마운트를 착용하고 로봇을 제어한다. 로봇 팔이?거의 동시에 조종자의 동작을 따라한다.?조종자는 로봇 주변의 시각 정보를 착용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달받으며, 특히 로봇 손에서 발생하는 힘을 측정해 조종자가 착용한 장갑을 통해 진동으로 전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