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커피 장인을 알아보다1. 서론한국의 커피 관련 시장은 2013년 기준 6조 1650억 수준을 넘어섰다. 이는 2011년 3조원을 넘었을 때와 비교하여 2년 만에 2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한국의 커피가 수입되던 초기에는 가볍게 타서 즐기기 쉬운, 한국인에 입맛에 맞춰서 설탕을 많이 가미한 인스턴트 커피로 시작하였지만, 이후 외국의 카페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며 전문 바리스타 라는 직종과, 그들이 내린 고급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커피전문 프렌차이즈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1997년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가 생겨난 것을 계기로 현재는 전국적으로 20000여곳 이상의 프렌차이즈 카페들이 생겨났다.전국 번화가 거리 곳곳에 커피 프렌차이즈 가게가 일주일에 한두개 꼴로 생겨나고 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그것을 증명 하듯 프렌차이즈 커피를 하나씩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커피시장의 거대한 성장과 함께 10년 이상 커피시장을 이끌어 왔던 수많은 장인들이 존재해왔다. 커피를 자주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커피 시장의 스포트라이트가 프렌차이즈 커피숍에 맞춰져 있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알지 못하리라 생각 한다.이번 레포트를 통해 커피 장인들의 커피숍을 소개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2.본론1. 커피명가 안명규 대표대구에서 시작된 커피명가의 안명규 대표는 2000년대 초반 거의 태우다 싶이 볶은 커피가 좋은 커피로 통하던 시절에도 연하게 볶은 커피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쳐온 커피명가의 대표이다. 2006년부터 커피명가의 프렌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는데, 직영점 3곳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26개의 점포를 거느리고 있는 크기로 성장하였다. 1990년 7월 23일 커피명가는 경북대 뒤편 인적이 드문 곳에서 처음 시작을 했으며, 당시 대부분의 커피숍이 지하에 있었던 반면 커피명가는 2층으로 올라갔고, 금연 카페를 실현했다. 당시 병원 응급실에서도 흡연을 하던 시절에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이를 통해 커피명가의 우아한 분위기를 다시 살려냈고, 드립 방식의 커피를 고수함으로써 더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또한 안명규 장인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나가 2001년부터 커피 산지에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이 수입한 생두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커피 볶는 기계를 직접 만들어 가면서 커피 볶기에 주력했고, 생콩의 중요성을 남들보다 일찍 눈을 떴다. 세계적으로 커피 볶는 사람들이 생두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2005년 즈음임을 감안했을 때 그가 얼마나 앞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카페명가 커피는 커피 생산자와 한국 소비자를 만나게 하는 다리가 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의 카페에선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아메리카노 커피의 가격을 1000원으로 측정한다. 손님들은 기부함에 돈을 넣고 커피를 받아 가는데, 안명규 대표는 그 기부함을 농민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지속가능 커피를 위한 커피명가의 이벤트이다. 또한 과테말라와 콜롬비아의 학교 운영 자금으로도 지원하고 있다. 이것을 안명규 대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돕는 “아주 좋은 그림이 될 것” 이라고 말한다.2. 클럽 에스프레소 마은식 대표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클럽 에스프레소는 정통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으로 서울에서만 20년 이상 버티며 성장해온 유일한 곳이다. 클럽 에스프레소 주변은 인왕산과 환기미술관을 찾는 사람정도만 있을 뿐 시끌벅적 한 동네와는 거리가 먼 한적한 동네 분위기를 띄고 있다. 하지만 그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클럽 에스프레소는 항상 손님들로 가득차있기 마련이다.클럽 에스프레소는 2010년 기준으로 창립 20년을 넘어선 굉장히 전통있는 스페셜티 카페인데, 1990년 대학로에서 당시 스물세살의 마은식 대표가 가게 문을 열었다. 젊은이가 창업한 스페셜티 전문점은 당시로써 굉장히 새롭고 특이하게 비춰졌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로운 환경에서 나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고 말하는 마은식 대표는 한적한 부암동에서 카페 에스프레소를 처음부터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그가 가장 강조하는 점은 “좋은 커피를 상식적으로 팔아야 한다.” 는 점이다. 그는 좋은 물건을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하는 것이 제조업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강조하며,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해 2배이상 비싼 커피값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마은식 대표는 커피 자체보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과 조직에 올인하며, 조직과 구성원의 질이 곧 제품의 질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클럽 에스프레소에서는 손님이 왕이 아닌 직원이 왕이다. 커피를 전문화 해야 국제 커피 업계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그리고 대구 커피명가와 더불어 클럽 에스프레소는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의 커피 농장을 방문해 생산 환경을 직접 살핀 후 커피를 들여오는 곳 중 하나이다. 커피 농장을 누비며 산지 재배환경을 보면서 농부들과 대화하고 직거래를 하니, 특정 커피가 가진 성질들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마은식 대표는 “원두커피를 마셔야 선진국이 된다.” 라고 말하며, 원두커피를 즐기는 삶의 여유를 강조한다.< 사진-4 부암동 클럽 에스프레소 >3. 왈츠와 닥터만 박종만 대표커피를 기반으로 한 고급 레스토랑 왈츠와 닥터만을 운영하는 박종만 대표는, 커피 전문가로써 그 명성이 자자하다. 또한 그는 2006년 커피 박물관을 열고 박물관장의 위치에 있으며, 커피 박물관을 통해 커피 연구와 더불어 한국 및 세계 커피의 연원을 따지며 연구하는데 힘쓰고 있다. 세계의 커피 생산지를 돌아다니며 커피를 직접 선택해 들여오거나, 유럽, 일본 등 좋은 커피 전문점을 찾아 경험하고 배우며, 왈츠와 닥터만을 커피업계의 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랬던 박종만 대표가 스스로 박물관 장이 된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커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왈츠와 닥터만은 음악회와 박물관등 악, 문화, 아름다운 풍경 등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박종만 대표는 일본 출장을 가서 우연히 들린 70년 역사를 가진 커피회사 왈츠의 공장을 방문하게 되는데, 나이 지긋한 직원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며 커피를 볶고 있는 풍경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하며, 예순이 넘은 공장장이 직접 커피를 볶으면서, ‘아직도 커피에 대해 잘 모르겠다.’ 고 한 모습에 인생에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일본을 드나들며 왈츠의 가다키리 사장에게서 배운 노하우를 이용해 홍익대 앞에 ‘왈츠’ 라는 커피점을 열었다. 1993년 까지 체인점 70개를 거느릴 정도로 뻗어나갔지만, 이후 프랑스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글을 쓰며 토론하던 카페 ‘레 드 마고 Les Deux Magots'에서 그 자리에 앉아보려 하루 종일 줄서있는 사람들의 광경을 본 뒤, 100년 가는 커피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졌다고 한다. 그는 커피를 알게 되며,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커피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한국의 커피 역사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커피회사 대표가 아닌 박물관장 으로써 자신의 지향점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커피 볶는 이들이 자기 기준을 가지고 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 커피 산지에서 생산하는 주민들이 내는 커피의 이상적인 맛, 그것에 다가가려 노력해야 한다.”그리고 그는 커피를 “매일 만나는 변치 않는 오랜 친구.” 라고 말하며, 그 친구를 위해 친구를 이용하여 문화예술 왕국을 건설 중이다. 왈츠와 닥터만은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페셜티 커피와 함께 수준높은 요리와 문화 예술을 동시에 즐길수 있다. 커피가 비싼대신(하우스 블렌드 1만원) 무한 리필 할 수 있으며, 커피 박물관에서 각종 커피 체험을 할 수 있다.4. 칼디 커피 서덕식 대표2003년 홍익대 앞에서 칼디 커피를 시작한 이후, 2009년에는 파주시 헤이리 마을에 2호점을 열었다. 칼디 커피는 국내 최초로 참숯을 이용해 커피를 로스팅 한 것“일본에서 숯불로 볶은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 우리 입맛에 맞다고 느꼈다. 가마솥 누룽지로 만든 숭늉 맛, 바로 그 고소한 맛이었다.” 라고 말했다. 숯불로 볶는 커피는 고소한 숭늉맛 이외에도 여러모로 좋은점이 많다. 열원에서 나쁜 세균이 나오지 않기도 하고, 보통 불에는 없는 원적외선이 나온다. 열원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은 커피콩의 내부를 가열해 겉과 속을 균일하게 볶아낸다고 한다. 하지만 숯불로 로스팅을 하는 것은 매우 정교하고 어려운 과정인데, 열을 차단해야 하는 순간을 맞추지 못하면 생콩을 까맣게 태우기 쉽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서덕식 대표는 “도자기 가마에 도자기를 넣고 잠시 잠깐이라도 잘못하면 다 망가뜨리는 것처럼, 참숯으로 커피를 볶는 것은 참 어려운 길” 이라고 말했다. 서덕식 대표는 1981년 사회인으로써 커피에 처음 입문했다. 일본의 유명한 커피회사 UCC의 원두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커피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고, 그가 본격적으로 공장을 열어 커피를 볶기 시작 한 것은 1991년에 이르러서 였다고 한다. 그것이 고급커피 전문점 칼디 커피로 이어졌다.또한, 서덕식 대표는 커피 대중화를 위한 방편으로 커피 교실을 운영해 그동안 제자만 5천여 명을 배출했다. 그는 무엇보다 커피는 기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3년은 배워야 조금은 알게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5. 커피 보헤미안 박이추 대표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커피 보헤미안은 사람들이 쉽사리 찾아오기 힘든 바닷가 오지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 보헤미안이 성행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 주인이 ‘박이추’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1세대 커피 장인으로 불리며, 최고참 현역인 까닭에, 후배들에게는 존경과 더불어 극복의 대상으로 꼽힌다. 또한 그는 요즘 100개가 넘는 훨씬 넘는 각종 커피 전문가 과정 중 그 효시로 꼽히는 2000년 단국대 사회교육원의 커피전문가 과정 담당교수로 초빙되었다. 이처럼 그는 한국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아이콘으로 꼽혔다. 그가 운영하는 커피 보헤미안은 안암동에 본점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