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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팀 켈러의 센터처치 요약 및 서평
    팀 켈러의 센터처치 요약 및 서평
    1. 요약팀 켈러의 『센터처치』는 복음과 도시, 교회 사역이라는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도시에서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밀하게 접근하면 Part3~5는 배경인 도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Part6~8에 교회는 어떠한 사역을 통해 활동해야 하는지를 다룬다.Part 3 [복음의 상황화: 복음이 현실에 다가서게 하라]에서는 상황화의 중요성과 바른 이해를 제시한다. 문화에 순응하는 상황화는 경계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상황화는 성경적이고 사역이 열매 맺기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Part 4 [도시 비전: 복음으로 도시를 품으라]에서는 센터처치의 무대가 되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시에서의 사역은 여러 도전이 있음에도 기회 또한 있다. 그 기회란 도시를 복음으로 옷 입히는 것인데, 그리스도인은 도시를 구속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목적인 섬김의 사회 구현을 목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Part 5 [문화 참여: 교회, 도시 문화를 이끌라]에서는 먼저 현대 문화와 교회의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교회가 문화에 참여하는 ‘변혁’, ‘적절성’, ‘반문화’, ‘두 왕국’의 4가지 모델을 비교하며 통합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의 제안은 문화를 전적으로 변혁할 수는 없으나, 문화를 떠나지도 지배하지도 않는 참여를 지향하는 것으로, 도시의 반응(사계절)에 따라 각 계절에 맞는 적절한 문화 참여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Part 6 [선교적 공동체: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다]에서는 선교적 교회 운동의 네 가지 흐름인 ‘전도(영혼구원)’, ‘성육신(접촉)’, ‘상황화(문화)’, ‘상호성(공동체)’을 살핀다. 넷의 공통점은 ‘교회는 주변부로 밀려났으나 문화를 마주하여 대조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세상의 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진정한 선교적 교회의 표지를 정의하고, 어떤 역동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한다.Part 7 [통합적 사역: 모든 사역을 통합하라]에서는 통합적이고 균형 잡힌 사역을 강조한다. 복음 이 교회가 역동적인 유기체로서 사역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제도와 운동 사이의 균형을 갖춘 교회는 ‘조직화된 유기체’이기에 존재와 사역은 역동화 되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교회 개척으로, 교회와 도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생명의 복음을 가진 교회는 도시를 구속하기 위해서 균형 있고 통합적인 사역으로 열매 맺기 위해 나아가야한다’이다. 저자는 바른 복음과 열매를 강조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회심하고, 문화와 도시가 구속된다. 그리고 그 열매를 위해 교회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과 강조가 책 전체에 녹아있다.2. 비평가. 장점 혹은 탁월함1) 충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복음과 교회 그리고 부흥팀 켈러는 본인의 사역 경험과 찰스 스펄전과 같은 인물들의 견해,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으로 성경의 말씀(요15장)을 근거로 열매 맺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강조점을 교회 사역의 핵심으로 짚는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와 설교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참된 말씀을 전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부흥한다는 사실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팀 켈러의 복음과 그 열매에 대한 견해는 성경의 말씀에 충실하고,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와 같은 개혁신학 목회자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누군가는 ‘충성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필 때,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시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할 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돌아오고,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과 섬김으로 나아가는 열매 맺음을 기뻐하심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팀 켈러의 “충성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은 자칫 ‘열매 없는 충성’으로 만족하고, 안주하며, ‘열매 없음’을 합리화 하는 오류와 나약함으로부터 마음을 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몰론 이에 대해서 강조하고 설명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팀 켈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바른 복음’ 안에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다. 또한 ‘부흥’에 대한 견해 역시 개인적 회심과 교회의 수적인 증가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복음’과 함께 ‘도시’에 대한 애정과 ‘교회의 역동적 사역’을 통한 도시의 구속과 문화의 변혁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는 다른 종교적인 요소, 인간적인 요소들을 사용함으로 인위적인 수적 성장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복음 그 자체의 힘과 능력을 신뢰함으로 부흥과 열매를 기대하는 태도이다.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나 자신이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전하는 것에는 집중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놀라운 선물의 특징인 생명력과 역동성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라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물론 ‘열매’와 ‘부흥’은 왜곡되기 쉽고,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이용하기 쉬운 주제이니만큼 적용에 있어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 『센터처치』는 분명 옳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곡에 영향을 주는 것은 책의 내용이나 성경의 증언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목회자 후보생 그리고 목회자 개개인의 죄성으로 인한 야망과 합리화일 것이다.2) 도시를 이해하고 사랑하라: 팀 켈러의 도시 신학복음과 신학, 그리고 교회와 부흥에 관한 저작들은 좋은 저작들이 많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팀 켈러의 『센터처치』에는 독특하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들도 등장한다. 그것은 팀 켈러의 ‘도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와 적용이다. 팀 켈러는 도시에 대해 설명하고, 도시를 사랑하게끔 하도록 강력하게 설득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도시’의 개념을 세밀하게 살피는 신학적 주해 작업은 물론이고, 학자들의 견해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도이해한다. 그는 이러한 ‘도시의 양면성’을 독자들에게 숨기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 역시 도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는 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같이 도시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들을 만나고 이해하되 독특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복음과 교회의 역동적 사역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도시의 도전을 기회로 삼아 영혼을 구원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문화를 변혁해야 한다는 점을 탁월하게 강조한다. 그는 교회와 도시의 관계를 설명할 때, 위대한 교회를 위해 도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통해 위대하고 발전된 도시, 즉 구속된 도시를 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팀 켈러가 도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분명히 신학적이고, 동시에 실천적이다.팀 켈러가 보여주는 도시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통찰력 있는 사유는 도시를 배척하는 ‘반문화주의적 모델’,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낙관적인 ‘변혁주의 모델’과 ‘적절성 모델’, 그리고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두 왕국 모델’이라는 네 가지 틀 중 하나를 택하지 않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도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가 어떻게 도시와 관계 맺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폭 넓은 시야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통합적이고 균형 있는 문화 참여의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도시에 대한 그의 신학은 복음에서 시작하여 역동적인 교회의 사역으로 이어지는 중간 다리가 된다. 복음의 능력이 향하는 도시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있기에 역동적인 교회 사역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방법론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팀 켈러의 ‘도시 신학’은 『센터처치』에서 드러나는 그의 사상이 유기적으로 역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나. 단점 혹은 아쉬움1) 한 영혼, 도시 밖의 목회자 후보생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이 책의 목적과 의도에서 벗어나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이 책은도시 속 교회를 위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의 우려스러운 점도 존재한다. 첫째는 한 영혼이 아닌 많은 영혼을 더 우선시하며 비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직 어디로 갈지 모르는 목회자 후보생들의 도시 선호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첫 번째 부분은 책에서도 직접적으로 예시로 들어 설명한 내용을 근거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팀 켈러는 그리스도인이 시골보다 도시를 추구해야 함에 대해 단순한 논리를 사용한다. ‘시골은 사람보다 자연이 많다. 도시는 자연보다 사람이 많다. 하나님은 자연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많은 도시를 추구해야한다’라는 논리이다. 논리적으로는 옳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칫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찾아오고 그 양을 찾았을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을 낳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특히 책의 흐름이 ‘그리스도인은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로 흘러가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결국 이러한 논리의 흐름은 위에서 자연과 도시를 비교하는 단순한 논리가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소할 수 있고 속 좁은 지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책에서 도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저 작은 논리 조각에서 확장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거대한 흐름의 중심이 되는 작은 논리가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람, 영혼의 밀도와 숫자를 근거로 중요성과 선호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논리는 우려되고 심지어 위험할 수 있는 논리다.이 지적은 참된 복음을 통한 부흥과 역동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열매 맺음은 하나님의 뜻이고, 많은 이가 돌아옴은 하나님의 기쁨이지만, 그러한 숫자로 측량할 수 없는 ‘한 영혼의 돌아옴에 기뻐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적 사랑을 축소하거나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안이라고 여긴다.두 번째 부분도 첫 번째 사안과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를 사랑하
    독후감/창작| 2024.04.15| 6페이지| 3,500원| 조회(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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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한국장로교회의 종말론(이상웅) 요약
    한국장로교회의 종말론(이상웅) 요약
    [한국 장로교회의 종말론] 요약1장: 들어가는 말이 책은 한국 장로교회 종말론의 발전사를 살핀다. 1884년 선교 역사가 시작된 이후 약 1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는 ‘분열’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을 건 교단의 숫자가 200이 넘는 현실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종말론 저술들과 논문 연구들도 양산되어 있지만, 책에서는 평신과 총신을 중심으로 한국 장로교회 종말론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그 사상들을 살핀다.2장: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종말론 전통1920년대를 초기 한국교회 시대로 본다면, 이 시기 신학은 사실상 선교사들의 신학을 의미한다. 한국인 교수들의 임용 이후에도 선교사 교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기에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 때문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신학을 규명하기 위한 첫걸음은 선교사들의 신학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장로교에 소개되고 교육된 종말론은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이었다. 초기 장로회신학교 종말론 교육과 연관된 인물들은 마포삼열, 기일, 배위량, 소안론, 이눌서 등이 있었다. 기일과 배위량, 소안론 선교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입장을 따르고, 마포삼열과 이눌서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배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전체적으로 선교사들의 종말론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가깝다. 이를 한국 교회에 도입해 가르쳤기에 개혁주의 신학의 종말론이 전천년설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가 많았다. 한국 교회의 역사 속에서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영향으로 전도와 선교를 향한 강한 동력이 되었고, 재림 신앙으로 인내를 발휘한 것은 인정해야 하는 공로다. 그럼에도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평양 장로회 신학교의 종말론을 비판할 수 있는 균형이 요구된다.3장: 해방 이전 한국 장로교 목사들의 종말론선교사들의 종말론이 전천년설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선교사 교수들의 교육을 받은 초기 한국 장로교 목회자들의 종말론도 전천년설이었다. 대표적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부흥회 사역으로 전국적 영향을 끼친 길선주 목사가 있었다. 길선주 목사는 1,300회의 부흥회 인도를 하며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쳤는데, 다룬 내용이 주로 종말론이었다. 그는 전천년주의와 다른 해석을 배격하며 세대주의 종말론에 따라 말세학을 전개한다. 내용적으로 특이사항이 있다면, 유대인 중심성의 약화와 만물 갱신설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함께 생각해볼 사람들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자인 주기철, 손양원, 주남선, 한상동과 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르는데, 그들의 신학과 신앙이 가진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동인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4장: 구례인 선교사의 종말론구례인 선교사는 한국 장로교 선교사 교수로서는 최초로 조직신학 교본을 저술 출간했다. 그의 저서 『조직신학』의 종말론 파트 4개의 항목은 이렇다. 사후 세계에 대한 논의, 그리스도의 재림, 일반 부활, 최후 심판과 최후 상태에 대한 논의이다. 내용을 분석해보면 미국 장로교 신학자들의 저술과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관여함을 알 수 있다. 살펴볼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는 2장에서 무천년설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무천년설 종말론을 한국 교회에 소개하며 무천년설도 기독교적인 삶에서 모범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개혁주의적인 세계 갱신설이 아니라, 세계 파괴설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 있다.5장: 죽산 박형룡과 구례인의 천년기론에 대한 연구죽산 박형룡은 『교의신학』 전집을 통해 역사적 전천년설을 예장합동의 신학적 표준이 되는 종말론 전통으로 제시했다. 그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비판했지만, 공정하게 해설하려고 했다. 구례인 선교사는 무천년설을 주장했다. 죽산에 비해 총신과 예장합동에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했으나, 역사적 전천년설이 강한 총신에서 무천년설을 주장했다는 점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6장: 죽산 박형룡 이후 총신 조직신학자들의 천년기론역사적 전천년설이 총신의 종말론적 전통이라고 천명한 죽산 박형룡은 172년 은퇴할 때까지 총신의 조직신학 교수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그 이후 죽산의 영향을 받고, 역사적 전천년설을 계승한 후배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아론, 김길성, 최홍석 등이다. 세 사람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면서도 스타일상의 차이점이 보인다. 박아론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강하게 주장하며, 김길성은 관용적 입장을 보이고, 최홍석은 세 가지 천년기론의 공통분모를 찾아 기독교적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게 죽산 이후에도 역사적 전천년설이 총신의 표준적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상근, 신성종, 정훈택, 신복윤, 서철원 등 무천년설로 변경했거나 지지한 학자들이 있었다. 그중 서철원 교수는 가장 명시적으로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교수였으며, 현재 총신의 조직신학 교수들 가운데 공개적으로 무천년설을 자신의 입장으로 공개한 학자는 저자인 이상원 교수와 정승원 교수다. 정리하면 죽산 이후의 분위기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강력하게 지지가 되지만, 무천년설도 공존한다. 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례는 없었다. 중요한 점은 공존하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교수들 모두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경계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세대주의는 종말론뿐 아니라 성경해석 전반에 걸쳐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다.
    독후감/창작| 2024.04.15| 3페이지| 3,0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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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창세기 다시 생각하기 (두안.A..가렛)
    창세기 다시 생각하기 (두안.A..가렛)
    창세기 다시 생각하기 요약두안. A. 가렛1. 서론개인적으로 구약학은 신학교에 입학해 가장 많이 충격을 받는 신학분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실한 마음으로 신학을 시작했지만, J, E, P 같은 알파벳을 통해 창세기를 조각내고, 그 이론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활용해 내용을 전개하는 신학 책들을 보다보면 ‘보수적인 견해로는 구약학을 할 수 없는 것인가?’하는 의문과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한다.이 책은 고등비평만이 유일한 구약학의 방법인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저자인 두안.A.가렛은 문서설로 대표되는 고등비평의 한계를 지적하며, 파편화된 책으로서의 창세기를 볼 때 생기는 문제를 명확하게 밝힌다. 두드러지는 문제는 창세기를 파편화된 문서의 모음으로 보기 때문에 하나의 중심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창세기를 본다면 창세기는 일관된 주제가 없고 내용적으로 혼란스러운 책이 된다. 내용의 혼란 뿐 아니라, 모세의 저작권 그리고 창세기의 역사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창세기가 일반적인 고대문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점 때문에 생기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명확한 하나의 흐름이나 주제 그리고 목적이 없고, 역사성까지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많은 것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고등비평의 방법과 해석들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대안적인 방법과 그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2. 구조책의 구조를 1부, 2부, 3부에 따라 설명하면 요약 내용의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저자는 문서설의 대표적인 주장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 주장들이 가지는 모순과 한계들을 소개하며 1부를 시작한다. 1부의 내용은 1-2장에서 문서설, 양식비평과 전승사에 대해 설명하고 그 한계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3장은 모세의 저작권과 역사적 신뢰성에 대한 문서설의 대표적인 주장에 관해 반박함으로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연다. 이 내용들은 앞으로의 책 전체의 흐름을 이끌기 위한 중요한 전제인데, 고등비평을 따르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3부에서는 저자가 문서설에 반박하고,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견해를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고 할 수 있다.3. 장별 요약- 1장: 문서설1장은 문서설에 대해 논의한다. 문서설은 전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진화론적 단선적 접근과 문서의 목적에 대해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록의 발전과 신학 혹은 사상에 따라 시기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보거나, 한 문서의 고유한 특징이 눈에 띄게 식별 가능하다고 생각 할 때 시도할 수 있는 접근법이기도 하다. 문서설의 접근법을 정당화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반복’이다. 창세기는 같은 혹은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그 예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의 아내-여동생 패턴이다. 이 비슷한 내용은 창세기에서만 3번이 등장한다. 문서설은 중복과 반복의 문제와 더불어 본문 내의 모순과 문체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고대 문학과 구약 성경에서 반복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기법이라고 본다. 문서설에서 주장하는 다른 근거들 역시 충분히 반박할 수 있거나, 주장의 근거가 희미하다.- 2장: 양식비평, 전승사, 창세기2장은 양식비평, 전승사가 창세기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검토하고 그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양식비평은 본문이 지키는 양식이나 형식에 따라 성경 본문의 단위를 구별하려는 시도, 전승사는 주어진 본문을 최초의 구전 단계에서 기록 단계, 그리고 마지막 현재의 편집된 본문으로 오기까지의 역사를 추적하려는 시도다. 창세기에 대한 20세기 비평적 연구는 양식비평과 전승사에 의존했기에 이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양식비평과 전승사 두 견해는 사실상 같은 것이며, 양식비평은 사용에 따라 유용한 수단이 되지만, 전승사의 경우 구전전승을 구별하는 일부터 본문 너머 삶의 정황을 재구성하는 일까지 사실상의 모든 작업이 가설과 추측의 영역이기에 사용하기 힘들다고 판’이다. 순서는 이렇다. 첫 단계에서 족장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회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동시에 자신이 가진 자료들을 전달했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이야기는 복합적 내러티브 구조로 편집되고, 기록 양식으로 보존됐을 것이며, 세 번째 단계에서 모세의 편집이 이루어졌을 것인데, 그 때 현재의 양식과 내용 대부분을 갖춰졌다. 때문에 모세 이후의 편집이 그의 저작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단계는 모세 이후의 편집으로 현재의 모양이 갖춰졌다. 이 과정은 가능성 있는 가설이지만, 저자는 이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자료들에 주목한다. 자료의 유형과 구조,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자료가 어떻게 전체의 구조를 형성하는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데 이 장에서는 ‘자료’를 ‘톨레돗’과 ‘내러티브’로 나누어 이에 대해 설명한다.- 5장: 창세기의 구조4장에서 구조를 형성하는 자료 ‘톨레돗’과 ‘내러티브’에 대해 살폈다. 5장은 그 자료들을 통해 구성되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한 발견이 심화됨으로 인해 구약의 문학적 구조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음을 인식한다. 저자는 고대 문학 장르인 ‘아트라하시스 신화’와 다른 고대 서사시의 구조와 비교를 통해 창세기의 구조를 설명하려 한다. 문서설 비평가는 창세기의 문서 자료에 너무 집착하여, 전체의 전반적인 구조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최종 편집이 매우 늦은 시기 이뤄졌다고 간주했기에, 고대 내러티브 기법의 표시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고대 문학 장르와의 비교를 통해 창세기 1-11장의 통일성에 대한 강력한 논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창세기의 구조를 ‘조상 서사시’로 부르는데 ‘조상서사시’에 대한 설명과 논증은 6장에서 이어진다.- 6장: 조상서사시저자는 6장에서 조상 서사시 문학으로서의 창세기라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창세기 연구에서 구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저자는 아트라하시스 신화와 고대 문헌의 연구를 통해 창세기 1-11장과 전체 본문에서 발견되는기의 중심인물임에도 그렇다. 아브라함이 창세기에서 중요한 인물이기에 그에 관한 자료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저자는 아브라함 내러티브에서 다른 원자료를 제거하고, 남아있는 자료를 조사할 때 답이 나올 것으로 본다. 만약 그 결과로 남은 것이 조각나고 혼란스러운 내러티브라면 문서설이 힘을 얻을 것이고, 반대로 통합된 내러티브가 남는다면 통일성 있는 아브라함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후자의 발견을 확신한다. 저자는 외부의 자료를 아브라함 사이클에서 제거할 때 남은 부분은 구조, 주제에서 네 섹션으로 통합된 부분으로 제시한다. 이 내용들은 교차대구로 배열되어 있다. 만약 문서설이 말하는 대로 남은 부분을 조각들과 이야기들의 모음집으로 본다면, 세 개별 문서에서 나온 네 개의 개별 본문이 구조적 통일성을 보인다는 과한 우연일 것이다. 저자는 이 아브라함 자료를 아브라함의 복음서라고 부르는데 신약 복음서와의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렇게 주장한다. 아브라함 복음서의 의도와 배경은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복음 케리그마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적 의존이 아닌, 정경적 맥락에서 희망에 대한 신학적 진술인 복음이다.- 9장: 요셉의 이주 서사시저자는 창세기 37-50장을 ‘요셉의 이주 서사시’로 본다. 문서설은 이 부분을 분석하기에는 일관성이 없지만, 이주 서사시로 본다면 하나의 장르, 구조를 볼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 자신이 발견하게 된 땅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보통의 이주 서사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이주와 관련된 이야기로 한 영웅적 인물이 서사시의 중심에 있는데, 이는 다른 이주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드’에도 들어맞고, 요셉 내러티브 역시 마찬가지다. 요셉 내러티브를 ‘이주 서사시’로 본다면 같은 장르의 ‘아에네이드’처럼 신화적 이주 서사시로 볼 여지를 준다. 그러나 저자는 요셉 내러티브가 신화적 이주 서사시에 대한 역사적 대응물인 것으장을 연결한다. 창세기 1장과 계시록 모두 인간 역사의 절정을 기대하면서 그 역사에 대한 하늘의 관점을 제시한다. 창세기 1장은 세상의 시작과 그 역사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1:1-2:3이 환상과 계시로 되어 있으며 구약의 최고 선지자인 모세는 이 자료의 직접적인 저자라고 제안한다.-11장 자료의 구두 전달자와 이스라엘의 제사장직11장에서는 모세 이전 톨레돗과 내러티브 자료의 특성과 발전을 조사한 후, 이 자료들이 창세기로 편집되기 전에 어떻게 보존됐고 전달됐는지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이 레위인들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확신한다. 레위인들의 문제는 구약의 해석에 어려움을 주는데 전통적으로 레위인들은 아론과 그의 가족은 제사장의 역할을 받았고, 다른 레위 부족들은 조력자가 됐다. 비-아론 자손들은 제사장에서 배제되었으며, 레위 가족들은 구약 시기의 끝까지 그들의 역할을 다소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시점은 금송아지사건으로 본다. 문제는 아론 자손들이 제사장 역할을 하는 내용과 모든 레위인이 제사장의 기능을 가지는 내용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문서설은 레위인의 문제를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로 삼았다. 문서설은 레위인과 아론 자손의 가설적인 갈등을 재구성했는데 이는 문서적 접근의 특징 때문이다. 그 특징은 이렇다 첫째, 모든 문서의 재구성은 문서설의 자료 가운데서 성경을 나누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역사적 연구를 수행. 둘째, 이스라엘의 지사장 계열 가운데 일종의 경쟁 관계가 제사장직의 역사와 관련된 많은 성경 내러티브 배후에 있다고 주장. 셋째, 제사장직의 역사에 대한 성경의 묘사가 절망적으로 혼란스럽고 근본적으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간주. 문서설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아론 자손과 레위인의 갈등이 비평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평적 모델과 전통적 모델 둘 다에 대한 대안이 존재하며 이 대안이 창세기 원 자료를 이집트에 거류하는 동안 전달하고 보존한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거라고 본다있다.
    독후감/창작| 2024.04.15| 7페이지| 3,000원| 조회(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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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종교개혁 역사연구(안인섭) 서평
    종교개혁 역사연구(안인섭) 서평
    1. 들어가며안인섭 교수님의 『종교개혁 역사 연구: 신앙의 개혁으로 근세를 열다』를 한 학기 수업과 퀴즈, 그리고 과제를 위해 자세히 읽을 수 있었다. 교회사는 어렵다. 수많은 인물의 이름이 등장한다. 또한 그 인물들은 일관성이 있지도 않다. 교회의 인물인 종교개혁자들과 국가의 인물인 왕과 귀족들이 함께 등장한다. 현대와는 다르게 국가와 교회의 인물, 신학과 정치의 사람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는 시대적 특징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자들이 등장하면 그들의 신학만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생애와 성장배경에서 신학적 특징이 형성되기에 그들 본인을 알고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고, 신학에 있어서는 복잡함과 모호성이 있으며, 심지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저작마저도 평범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과 당시 맞이했던 사건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반대로 종교개혁자가 아닌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이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세계사를 배우듯 광범위한 나라와 시대를 조망해야 하고, 한 나라의 인물은 타국의 인물과 상호작용하여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지도자들의 선택과 정책이 교회와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그들의 신학에 미친 영향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국가의 인물들은 로마 가톨릭이건 루터파 혹은 개혁교회이건 교회의 사람들이었고, 교회의 인물들은 국가의 인물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이 어려움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개혁사를 비롯한 교회사는 복잡해지기 쉽다. 특히 교회사에 관한 전문적인 훈련과 교육을 받지 못한 ‘입문자’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본서를 통해 이러한 복잡한 관계성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 같았다. 인물들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 어떤 사건이 또 다른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차근차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의 이러한 특징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 나름의 사유를 정리하며 본 서평의 내용을 전개하려고 한다.2. 본서에 관하여본서는 ‘종교 하나는 근대 초기 개혁주의의 확산 과정을 서술하면서 ‘네덜란드’의 역사를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그 역할과 영향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강조하여 균형 있게 내용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두 번째 특징이 인상 깊다. 이 두 번째 특징이 본서의 구조와 내용을 보다 더 선명하게 해준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본서가 가지는 두 가지 차별점 중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더욱 관심이 간다. 이는 단순히 본서에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조화롭게 다루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 전체의 구조를 형성하고, 내용으로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조화롭게 다루며, 더 나아가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을 가지고 교회사를 풀어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 국가와 교회‘국가와 교회의 관계’라는 키워드는 책 전체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관점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교회의 역사와 신학 논쟁, 교회사 인물들의 행적만 기록하지 않는다. 반대로 세계사와 다를 바 없는 일반 역사의 서술과 정치적인 흐름, 세속 군주들만의 이야기를 기록하지도 않는다. 본서에서는 교회와 국가, 국가 지도자들과 교회 지도자들, 신학과 신학 저술 그리고 그러한 저술들이 등장한 시대 배경 등의 요소들을 ‘국가와 교회의 관계성’ 아래에서 짜임새 있게 서술한다. 이러한 관점을 따라 본서를 읽다 보면 ‘종교개혁’과 ‘근세 초기 개혁교회의 역사’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종교개혁의 역사는 단순히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열정, 신학적인 탁월함으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군주들이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그들의 신학, 심지어 권면들과 상호작용한다. 반대로 교회가 국가에 종속되어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집단들과 다를 바 없는 역사를 형성한 것도 아니다. 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하여 저항하기도 하고, 함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과업을 수행한다. 교회사란 신앙과 정치, 교회와 국가, 종교개혁자와 세속 군주, 저항과 동행, 수많은’의 신학과도 접점을 가진다. 그렇기에 본서에서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주의하며 종교개혁사의 내용을 풀어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을 향한 애정과 확신을 가지고, 이를 중심으로 신학적 해석 혹은 신학적인 역사 서술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를 ‘개혁주의 신학’을 통해 종교개혁사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저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 어울릴 것이다.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인물인 칼빈의 ‘하나님 나라와 두 왕국 이론’의 설명과 해석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 ‘두 왕국 이론’에 관한 현대 학자들의 최신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의 이론이 가지는 장점과 한계들을 조망하고, ‘두 왕국 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관심은 칼빈의 신학에 관해서 설명하는 파트에서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칼빈의 하나님 나라와 두 왕국 이론이라는 분명한 신학적 관점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두 왕국 이론’은 단순한 신학적 진술이 아니라, 책 전체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핵심 키워드가 된다. 칼빈의 하나님 나라와 두 왕국 이론에 따르면 ‘국가와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영역이다. 다만 그 통치의 영역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상호 간의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의 깊게 강조한다. 본서는 이러한 균형감을 가지고 종교개혁과 근세 교회사의 영적이면서 정치적인 측면들을 함께 조명한다.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역사’와 ‘신학’이 균형을 이루는 것, 국가와 교회가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역사와 신학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교회사는 단순히 신학 없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고, 반대로 세속과 관련 없는 교회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교회사’란 ‘하나님 나라와 통치’라는 중심 주제를 가지고 역사와 신학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 즉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임을 배울 수 있었다.3. 적용이번에는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토대로 홀로 고민하고, 직도 국경과 시대를 넘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놀랐다.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현상에 관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실제로 확인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본서를 통해 고민하고, 또 배운 내용을 점검하며, 오늘날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찾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고민과 생각에도 제한은 필요하다. 그렇기에 『종교개혁 역사 연구: 신앙의 개혁으로 근세를 열다』의 특징과 관련하여 내용을 전개할 것이다.1) 종교개혁사는 현대에 적용이 가능한가?먼저 ‘종교개혁사는 현대에 적용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하나님 나라와 두 왕국 이론의 내용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가와 교회의 두 영역을 통치하심을 믿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시대의 간극’에서 오는 차이점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대와 중세의 체제가 다르고, 중세와 근세, 그리고 현대도 차이가 엄청나다. 심지어 같은 시간에 존재할지라도 세대의 차이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현대사회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면 과거의 지식 이상의 내용을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종교개혁사를 살필 때 군주들과 종교개혁자들의 관계는 가까워 보인다. 국가와 교회 두 그룹이 힘을 모아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때는 당연하고, 설령 군주와 종교개혁자의 신앙과 교파가 다를지라도 두 그룹은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계 맺는다. 관계 맺는다고 함은 협력, 대화, 긴장, 논쟁, 심지어 박해와 대립일지라도, 기독교 신앙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법과 질서, 믿음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국가와 세상은 교회를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도 않는 것 같다. 종교개혁사에서 국가와 교회는 크게 보면 로마 가 힘이 있었다. 또한 신앙을 가진 군주들을 통해 교회의 역사 또한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유럽 사회는 종교개혁과 근세 초기 여러 굴곡이 있었으나, ‘기독교 사회’라고 부를만한 사회였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세속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어울린다. 이러한 점을 기억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종교개혁사의 의미는 무엇일지, 오늘날에도 정말 적용이 가능한 통찰이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했던 교리적, 신학적, 신앙적 언어를 통해 세상에 대화하지 못한다. 우리의 언어는 폐쇄적인 언어가 되어버렸고, 공유하는 언어가 없기에 신학적 비전을 공유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본서를 통해 종교개혁사를 알아가며,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오늘날의 사회와 교회의 관계에 관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2)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며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된다. 만약 종교개혁자들이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들은 포기했을까? 그들은 공유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이 교회에 호의를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화를 해주지 않는 것 같다는 이유로 다른 길을 찾았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본서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잘 포착한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순풍에서 항해하는 배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어려움은 그들에게도 존재했다. 외부의 위협, 때로는 내부의 분열로 인해서 위기를 겪기도 한다. 군주들의 신앙과 성향에 따라 박해당했고, 루터파와 개혁파는 대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사는 종교개혁자들의 헌신과 세속 군주들과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전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진행된다.종교개혁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보게 된다. 그러나 꼭 오늘날에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하나님 자신의 주권과 신실하심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중세 시대에 묻힌 ‘진리’를 세상에서 드러나게 하셨다. 그 역사는 인간적인 의지와 열정만으로 해석할다.
    독후감/창작| 2024.04.15| 5페이지| 3,000원|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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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틸 조직신학 서론 아웃라인 요약
    제1장 조직신학의 개념과 가치1. 조직신학의 개념■ 조직신학: 하나님에 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대한 질서 있는 진술을 제공하려고 애쓰는 학문.■ 성경- 진실한 기독교는 참된 종교이기 위해서 그 객관적 지시(the objective reference)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우리가 알기 원하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기를 원하는 것 아님. -> 주로,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는 뜻.- 성경은 우주, 우리의 구원, 우리 자신을 말하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많이 말함 ?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사역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임을 기억해야 함.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제2위심을 생각할 때,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것.■ 조직신학과 신학 다른 분과들과의 관계- ‘조직신학’이란 명칭은 다른 신학분과들이 비조직적 작업을 한다는 의미가 아닌, 성경이 계시하는 대로의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전체적으로, 통일된 체계로 제공해 보려고 노력하는 학문이라는 의미.- 성경신학: 주해의 결과를 취해 그것들을 다양한 단위들로 조직화해서, 성경에 타나난 하나님의 게시를 역사적 발전에 따라서 추적해 나가는 학문.- 변증학: 성경적 진리의 체계를 잘못된 철학과 잘못된 과학에 대항하여 옹호.- 실천신학: 성경적 진리의 체계를 어떻게 선포하고 가르칠 것인지 고민.- 교회사: 진리의 체계를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가 추적.■ 조직신학과 변증학의 관계 (프린스톤 학파와 화란학파)- 월필드: 변증학은 하나님의 존재, 인간의 종교적 본성, 성경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의 진리성 문제와 같은 “조직신학의 전제들”을 수립하는데 바쳐져야 함. (조직신학의 전제들을 수립하는 이성의 역할을 강조)- 카이퍼: 변증학이 신학의 전제들을 수립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자연인이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이성에 있어 전적 타락의 신- 죄로 인해 초래된 문제의 복잡성이 있음.- 기독교인과 불신자의 차이를 무시하고 ‘이성일반’에 관해 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님.■ 인간의 식이 거쳐온 세 가지 상태(1) 아담적 의식: 또는 인간타락 이전에 존재하던 “사람의 이성”- 파생적 이성으로 철저하지 못해도 참된 것.- 하나님과 적대적이지 않고, 언약 가운데 있던 이성.- 주체-객체의 관계, 주체-주체의 관계가 정상.- 낙원에서의 인간의 지식은 자의식적으로 유비적.- 사람은 언약을 지켜야 하는 자로서 자신들의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우주 안의 여러 사실들을 알고자 했음.(2) 죄된 의식: 죄가 유입된 이후의 “인간 이성”- 중생하지 않은 의식- 죄의 허물로 죽은 자연인의 의식- 시공간 세계의 의미가 그 자체 안에 내재하고 있으며, 사람이 세상에 대한 궁극적 해석자라고 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임.- 자연인은 창조적으로 구성적이려고 함.- 불신자는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을 상당히 가지고 있음.- 궁극적인 관점에서 자연인은 그 어떤 것도 참되게 알지 못함.- 자연인은 하나님께서 자연과 사람 자신의 의식을 통해 당신의 임재를 사람이 주목하도록 하신다는 의미에서 참된 신 지식을 가짐.- 자연인은 그 자신 안과 밖에 있는 객관적 계시를 억누르려고 노력함.- 진리와 오류가 혼합되어 있는 상황 ?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알고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3) 아담의 의식에서 시작해서 중생하지 않은 의식을 고찰한 후에, 중생한 의식을 고찰해 보아야만 한다- 중생한 의식은 회복되고, 보강한, 그러나 오직 원칙상, 또는 그 지위에서만 회복되고 보강된 아담적 의식.- 회복한 아담적 의식: 의식은 다시 파생적 성격을 새롭게 인식.- 보강된 아담적 의식: 아담은 죄를 범할 수 있는 상태, 그러나 보강된 아담적 의식은 죄를 범할 수 없는 상태 (원칙상)■ 세 단계의 구별을 유의한 신학에 있어 이성의 위치 문제(1) 아담적 의식이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중생하지 않은 의식과 중생과 그 해석을 같이 다룬다는 점을 지적.- 합리론과 관념론에 대해 비판함 ? 바빙크는 그의 비판의 근거가 자존하시는 하나님이란 전제를 말하고 있지 않음.- 바빙크는 선험이 기독교 유신론적인 근거를 가지지 않으면, 참된 선험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줘야함.(2) 바빙크의 실재론- 바빙크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한 후에 실재론을 구성해 보려고 함.- 바빙크가 제시하는 실재론의 특성들은 기독교적 인식론과 비기독교적 인식론을 구별하지 못한 실수를 주목할 수 있음.- 바빙크는 모든 지식이 관찰에서 시작해야만 함을 강조.- 바빙크의 탐구는 극단적 실재론과 극단적 관념론을 거부하며 온건한 실재론을 낳음.- 바빙크의 온전한 실재론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존재라는 전제에 근거한 기독교적인 입장은 아님.(3)기독교적 확실성과 비기독교적 확실성을 구별하지 못한 바빙크의 잘못- 바빙크의 논의에서 가장 약한 부분은 그가 인간 지식의 확실성의 기독교적 근거와 비기독교적 근거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은 점.- 희랍인들은 지식의 확실성에 대한 근거를 무비판적으로 가정된 선험적 원리들에서 찾았고, 그 지식의 참된 확실성은 “영원한 원리”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 바빙크는 희랍인들이 인간 지식의 보편들에 대해 말한 부분에서 그들이 본질적으로 옳은 것처럼 말함.- 희랍인들은 “보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자존하며, 영원하고, 비인격적인 법칙들을 의미했음. (희랍 사상의 보편들은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것이 아니며, 창조주 하나님께 근거하지 않음.)- 희랍적인 “보편”은 기독교적인 용법으로 사용할 수 없음.- 바빙크는 우리의 확실성이 창조의 로고스에 근거한다고 말하면서도, 논의 과정에서는 로고스를 잊고, 선험적 원리들이 있다는 사실에 확실성이 있는 것처럼 말함.(4) 자연 이성에 대한 바빙크의 개념-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으로 바빙크는 자연 이성에 대한 부적절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것 제공. (우리의 이성은 그 자체로는 신적인 것이 아니나, 신적인 것에 참여한다)- 이성의 빛은 대상에 비추어 그로부터 문에 신자는 유비적으로 사유함.제 6장 기독교 유신론적 계시1. 계시의 전제들- 계시 개념에 분명한 의미를 주는 것은 절대적이며, 절대적으로 자의식적 존재이신 하나님 개념.- 계시의 다른 주요 전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2.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전우주(1)범신론에 반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피조된 우주 전체를 하나님의 계시로 생각.-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필요가 없었다고 믿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가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을 때, 그 창조계와 계시는 참된 의미를 가짐.(2)지식주의에 반하여- 계시는 지적으로 표현된 사상의 전달이 아님.- 성경은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함.- 성경 전체에서 온 세상은 하나의 단위.- 전피조계를 조심스럽게 분석하여 피조계 자체보다 좀더 구체적인 특별 형태의 계시를 필요로 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필요함.3. 계시의 다양한 영역들(1)자연에 관한 계시① 자연으로부터, 즉 물리학을 통해서- 자연으로부터 온 자연에 관한 계시 ? 물리학- 객체와 객체- 어떤 신학자들은 감각 경험의 대상들이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하고 경험론자의 접근을 선험적 접근으로 대치.- 삼위일체 개념에 근거한 감각을 활용할 수 있음.② 자아로부터, 즉 심리-물리학을 통해서- 자아로부터 온 자연에 대한 계시 ? 심리 물리학- 그리스도는 구속의 로고스이며 창조의 로고스.- 기독교적 선험과 비기독교적 선험의 구별이 중요.- 사람의 정신과 그 선험적 법칙들이 하나님에 의해 피조되고 통제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자연’의 사실들은 그 안에 지성을 지닌 것.③ 하나님으로부터, 즉 신학적 물리학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연에 대한 계시 ? 신학적 물리학- 기독교는 물리적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믿음.- 자연적이기보다는 적극적 계시. 자연적인 것보다는 초자연적.(2) 사람 자신에 대한 계시① 자연으로부터, 즉 물리-심리학을 통해서-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자신에 대해서 얻은 계시는 그관한 지식을 밀접히 연관시키며 시작.- 칼빈은 사람의 본성에 관해 사람에게서 시작하지 않고, 일반적, 선험적 입장에서 시작함.- 칼빈이 사람이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원형으로 자신을 파생적으로 여겨야 함을 충분히 인정.- 칼빈은 신의식을 논함에 있어 사람에게서 시작하지 않고, 계시적으로 이해.- 죄는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침.3.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에 대한 계시: 신학적 심리학-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자신에 관해 얻을 수 있는 계시에 관해서는 다음 요점들을 기억해야 함.1) 낙원에서 사람에게 그런 정보가 있었고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음은 사실.2) 이 계시는 원래 자연과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주신 계시를 보충하기 위해 주어진 것.- 내재주의적 원리가 더 무모하게 더 일관성있게 적용되는 현대에도 사람들은 우주 자체 안에서는 종국적 안식을 찾을 수 없음.- 사람은 하나님의 빛에서 자신을 연구하지 않는 한 희망이 없음.제9장 하나님에 관한 현재의 일반 계시- 자연과 사람에 대한 계시를 다시 포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함 -> 그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계시도 되는지를 보기 위해서- 하나님은 항상 당신 자신을 계시하심.- 자연신학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수립 가능,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은혜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있음.1. 자연으로부터의 하나님 계시: 자연신학- 사람은 원래 자연에 대해 유비적으로 생각했다는 사실과 유비적으로 생각하는 중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하신 만큼은 하나님을 참으로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 좋음.- 사람이 자연에 관해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을 당신이 존재하시는 자충족적이고 자존적인 합리적 존재로 생각한 것.- 하나님은 이런 존재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타락 이후에도 여전함.- 사람은 유비적으로 사유하기만 하면 자연으로부터 자연의 하나님을 추론할 수 있을 것.- 그러나 죄인은 은총에 의해 구원받기까지는 유비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일의적으로 사유함.- 자을 것.
    인문/어학| 2024.04.15| 18페이지| 2,500원| 조회(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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