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종합병원」속에 나타난 알레고리목 차I. 서론II. 본론2-1 작가소개2-2 60년대 시대적 상황 및 특징2-3 작품 내 알레고리 파악 및 분석III. 결론I. 서론홍성원의 초기 대표작인「종합병원」은 1966년 학술지 『자유공론』에서 발표되었다. 이 소설의 특징은 비유, 상징적 요소들이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이 발표된 1960년대는 군부정권의 집권 후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놓인 시기이다. 본 소설에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급격한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한 거대한 관료조직사회를 종합병원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나타내었다. 사진작가인 주인공 ‘나’의 오진을 비롯한 각 인물들의 상황 역시도 각각의 상징성을 지닌다.본고에서는 이러한 알레고리들을 찾아내어 분석해보고, 60년도 당대의 시대적상황과 연결지어 설명해보고자 한다.II. 본론2-1. 작가소개작가 홍성원은 1964년에 단편 ?빙점시대?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8월 ?기관차와 송아지?가 『세대』 창간 1주년기념 문예공모에, 12월 장편 ?디데이의 병촌?이 『동아일보』 장편소설공모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프로방스의 이발사?(1965), ?타인의 광장?(1965), ?동행?(1966), ?종합병원?(1966) 등 그의 60년대 소설은 주로 현대 조직사회의 메커니즘에 빠진 인간에 대한 알레고리적인 작품이다. 홍성원이 다루어온 세계는 초기의 군대와 전쟁문제로부터 도시적 삶의 고통과 좌절, 조직과 폭력의 문제를 거쳐, 최근의 역사문제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방대하다. 또한 그의 소설문체는 수식어를 배제하고 대화와 행위에 대한 묘사가 압도적이며 주로 현재형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2-2. 60년대 시대적 상황 및 특징1960년대는 4.19 혁명 이후 군부정권의 집권 등 급격한 사회변화현상이 발생하였다. 5.16 군사 정변이후 실시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새마을운동)으로 정부주도형 성장을 실시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정부의존적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의 관료화를 야기 시켰으며 효율적인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현상 역시 발생하였다.2-3. 작품 내 알레고리 파악 및 분석소설 「종합병원」은 단순한 서사가 아닌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자 소설의 제목인 ‘종합병원’에서부터 알레고리를 찾을 수 있다. 종합병원은 단순한 병원의 의미를 떠나 관료주의 사회의 축소판이자 급격한 경제개발의 그늘로 볼 수 있다.우선, 주인공 '나'의 사진가라는 직업과 그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어느 언론사의 사진가이며 그가 입원하게 된 것은 '사진기의 조리개가 문제인지, 눈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리개를 통해 보는 자신의 눈에 무언가의 문제가 생긴 것 같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사진기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찍어내는 도구이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은 사회에 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시각에 문제 생겼기에 당연히 찍는 사진에는 왜곡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기존의 판단력이 흐려져 경제개발의 그늘과 같은 사회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도피적인 태도도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이제 작품 인용을 통해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중략) 사실 병원은 규모가 매우 컸고 시설과 설비도 퍽 현대적이고 우수했다.…(중략) 내 침구로 말하면 병원에서 지급받은 무색의 이불로서 배면 여러곳에 쇠의 붉은 녹물이 얼룩진 흡사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싸 주는 우윳빛 유지처럼 몹시 지저분한 것이었다.위 주인공 ‘나’의 상반된 서술에서 환자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하는 병원에서 그저 표면적인 시설만을 우선시 한 채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환자의 상태나 여건은 중요시 하지 않은 채 병원과 직결된 실적이나 평가만 중요시 여기는 관료주의의 한 예로 볼 수 있다.…(중략) “김 간호.” 하고 조수는 간호원을 돌아보았다. “이거 아직 카드를 정리하지 못했군?” “글쎄요. 전 잘 모르겠어요.” 하고 간호원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이 병실 담당은 박 간호원이예요.” …(중략) “내일 관청에서 높은 사람이 오신대잖아요.”이 부분 역시 관료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김 간호의 태도를 보면 자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관청에서 높은 사람이 오고 있는 것만을 의식하고 있다.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관료주의의 폐해만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대화에서는 의사로서의 윤리의식은 저버린 채 병원의 일개 구성원으로서 조직의 존속에만 목매는 모습을 볼 수 있다.…(중략) “그럼요, 여긴 종합병원이에요.” 하고 간호원은 상냥하게 말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의사와 우리들은 이 병원의 고용인에 불과해요.” …(중략) “네, 페이를 받고 일을 하는 고용인이죠.”…(중략) 그는 간호원의 말대로 이 병원의 고용인에 불과하며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 한 개의 퍽 왜소한 나사못에 불과한 것이다.…(중략)“병원도 역시 직장이니까…….”…(중략)“일요일은 안 됩니다.” 조수는 곧은 자세로 머리를 흔들었다. “휴일이라 퇴원 수속이 불가능합니다.”…“506호실에 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안경을 쓴 간호원 한 분이 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쉿, 조용히 해주세요.” “네?” “지금 옆방에서 원장님이 브리핑을 하고 계세요.”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중략) 이번에는 키가 큰 조수가 내게로 다가왔다. “무슨 환잡니까, 그 사람?” …(중략) “그럼 저하고 같이 가 봅시다.” “의사는 없습니까?” “지금 의사선생님은 한 분도 없습니다. 모두 옆방에 모여 브리핑을 청취하고 계십니다.”‘종합병원’이라는 회사에서 일개 직원으로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나’에 대한 오진에 사과나 설명보다 자신도 고용원임만을 강조하는 무책임함으로 응수한다. 퇴원의사를 밝히는 여대생에게는 일정의 설명 없이 휴일업무를 회피하고자 억지를 부린다.또한 각혈을 일으키는 응급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장의 브리핑만 신경 쓴다. 이 장면은 소설의 절정부분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환자들은 의사가 살려야할 사명의 존재가 아닌, 단지 조직에 존속하기 위한 명분을 내세워주는 존재임을 보여준다.…(중략) “결국.” 하고 여대생은 말을 이었다. “ 우린 이미 환자가 갖는 권리를 빼앗겼어요.” “권리보다도 의사를 빼앗긴 게 아닐까?” “의사를요?” “우리와 늘 같이 있어주는 의사 말이오.” “그럼 그 의사를 누가 빼앗아 갔죠?” “ 바루 이 종합병원이 빼앗아 간 셈이지.” “ 그래요. 의사의 권리를 모두 빼앗겼군요.” … “우린 의사보다도 병원 시설에 끌려서 여기루 왔어요. 허지만 병을 고치는 건 시설이 아니구 의사였어요.” “결국 모든 물건들이 우릴 속이고 있군.” “ 제도와 집단들이 개인을 속이는 거예요.” “내일쯤에는 나도 집으로 가야겠소.”작품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룬 부분이다. 응급환자에 대한 종합병원과 의사 및 직원들의 태도에 당황한 두 인물은 이 조직(종합병원)에 대한 불만을 서로 직설적으로 이야기 한다. 제도와 집단이 개인을 속인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결말에선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고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회피하는 태도는 위에서 언급한바와 마찬가지로 작품 전반부에 나타난 주인공의 직업과 병원에 온 이유와 연결이 가능하다.이렇듯 조금 더 확대된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시대적 상황을 언급하자면 60년대는 군부정권이 집권하여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한 힘을 기반으로 하여 추진한 것이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환자)의 의사의 표현에 대한 권리는 묵살되었고 이것을 대변해야 할 고위층 관료들(의사) 역시 국가(종합병원)가 소유해 버린 것이다. 제도와 집단은 경제개발5개년과 정부를 의미하며 속인다는 것은 그 속에서 개인의 희생을 암묵적으로 당연시 여긴다는 것이다. 시설에 끌렸다는 것은 당시 계획의 목표였던 사회자본 확충을 통한 경제계발토대형성 등을 통해 국가의 발전과 국민에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다는 순수한 계획의 의도자체는 좋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좋은 계획을 세워 놓고도 그것을 추진해 나아가야하는 관료들은, 국민들의 권리는 무시한 채 자신들과 국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국가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권리신장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을 성장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다. 경제계발 5개년의 목표를 살펴보면 '노동력의 최대한 활용을 통한 자본화'라고 명시되어있다. 이는 애초부터 '국가>국민'이라는 조건을 성립시켰다는 것이며, 암묵적으로 국민 권리의 보장 보다는 국민을 하나의 부속품 정도로 여겼다는 것에 더 가깝다. 이렇게 국민의 권리는 보장이 되지 않는데 정부와 관료들은 국가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찬기파랑가」속에 나타난 한국적 이미지-작품 내 ‘멋’을 중심으로-목 차I. 서론II. 본론2-1 한국적 ‘멋’의 정의2-2 찬기파랑가 속에 나타난 한국적 이미지III. 결론I. 서론「찬기파랑가」는 『삼국유사』 권 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에 실려 있는 10구체 향가이다. 특히 작품 내 사용된 표현과 세밀한 감정묘사로「제망매가」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향가 중 서정성과 문학성을 가장 잘 드러낸 향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다른 작품에 비해 난맥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기록문 역시 별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작품의 높은 문학성이 완전하게 평가 받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찬기파랑가」형식은 향가의 형태에서 완성형으로 볼 수 있는 10구체로 되어 있다. 시가를 이루는 한 단어 한 단어 시어에서 느끼는 미감과 상징은 물론이고, 시사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차원 높은 고도의 화두가 숨겨진 작품으로 14수의 신라 향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다. 기파랑의 인품을 열거하거나 모습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비유와 상징으로 세련되게 표현하여 향가의 문학성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 주는 작품이다.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작품 내 사용되는 표현법이나 감정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작품의 중심적인 소재들을 통해 막연히 정신적으로 느끼는 미의식을 왜 그렇게 느끼는지 형식적 측면에서 파악해보고 한국적인 이미지를, 특히 ‘멋’을 통해 문학성을 더욱 강조하고자 한다.II. 본론2-1 한국적 ‘멋’의 정의작품분석에 앞서 우선 한국적 ‘멋’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멋’은 본질적으로는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다. 한국적 ‘멋’이라 함은 영어의 'beautiful(뷰티풀)‘과 비슷하면서도 상이하다. 아름답다는 표면적인 개념은 비슷할 수 있으나 그 내면에 담고 있는 미적의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보다는 좀 더 특수적인 표현으로 한국인만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멋을 설명할 수 있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다음은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因緣)』에 수록되어있는 시「맛과 멋」이다.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맛은 얕고 멋은 깊다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도 모른다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맛과 멋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이 있고맛이 없더라고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멋’을 정의함에 있어서 피천득의 시「맛과 멋」은 빼놓을 수 없다. 피천득은 본디 멋은 정서적이며, 은근하고, 교양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깊고 여운이 있는, 파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였다. 한국적 아름다움이란 ‘멋’과 함께 ‘고움’이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아름다움의 개념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한 표현이다. 오로지 한국인만이 공통적 정서를 통한 공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정서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본고에서는 ‘멋’이라 설명하고 이것을 찬기파랑가의 표현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이해가 되어야한다. 서론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으로, 다시 말하면 멋은 먼저 형식상의 격식을 바탕으로 한다. 일정의 ‘격’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격식에 맞지 않는 멋은 멋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찬기파랑가는 이렇게 격식에 잘 부합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멋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2-2 찬기파랑가 속에 나타난 미의식흐느끼며 바라보매이슬 밝힌 달이흰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모래 가른 물가에기랑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일오(逸烏)내 자갈 벌에서낭의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좇고 있노라.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김완진 해독)咽嗚爾處米,露曉邪隱月羅理,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沙是八陵隱汀理也中,耆郞矣?史是史藪邪,逸烏川理叱?惡希,郞也持以支如賜烏隱,心未際叱?逐內良齊,阿耶, 栢史叱枝次高支好,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찬기파랑가」는 작자 충담사가 냇가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서 달빛으로 냇가의 수풀과 이슬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모습을 보고 기파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용에 표면적으로 한국적인 미라고 명확하게 생각 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없다. 하지만 사용된 소재들에서 느끼는 정서들이 한국인만이 공감 할 수 있는 것이다.‘이슬 밝힌 달’이라 함에서는 우선 달의 존재에 집중한다. 달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는 존재다. 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인 달은 태양과 함께 절대적인 존재이다. 찬양의 효과를 더욱 드높이기 위해서는 태양을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어땠을 지 싶지만 기파랑에 대한 품성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군주의 힘과 밝음을 주로 상징하는 태양보다 달이 느낌상 적합하다. 결국 달은 기파랑의 고결한 자태를 표현한 것으로 독자는 밤하늘에 홀로 떠 밝게 빛나는 달에서 느끼는 멋을 통해 그 고결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 존재로서가 아닌 자신의 우상으로 본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정의 격을 지키는 동시에 파한 파격의 멋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피천득이 언급한 파격의 멋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달이 흰 구름을 따라 떠간 언저리라는 표현에서 깊은 여운의 상당한 운치를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인의 공통적인 정서에서 느끼는 공감에서 비롯되는 ‘멋’이다.‘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잣나무란 불변하는 구원성을 표현한 것이다. 더욱 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서리라는 매체를 등장시켜 기파랑의 굳센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생명의 영원성을 암시한 표현 기교라고 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상록수의 한 종류인 잣나무를 바라보면서 기파랑의 고귀한 마음을 닮고자하는 바램이 들어있다 하겠다. 바램의 상징으로서 잣나무를 우러러 보면서 기파랑이 남긴 자취나 교훈을 되새기고 자신들도 기파랑의 마음을 좇고자 한 것이다. 이런 점은 생명으로 가득 찬 자연의 세력을 추상하여 관념화한 우리시가의 특질 중 하나이며 동시에 한국적 ‘미’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