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즈」영화 감상문: ‘모던 타임즈’는 정말로 ‘모던’한가?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산업사회의 예시로만 많이 봤던 「모던 타임즈」를 이제야 영화로 보게 되었다. 무성영화이고 제작된 지도 굉장히 오래된 영화라 마냥 지루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지금 배우고 있는 산업사회학과 연결하여 영화를 감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재미있었고 잘 만든 영화라고 느껴졌다.대한민국 학생들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듯이, 「모던 타임즈」는 굉장히 암울하였던 산업화 시대를 찰리 채플린 특유의 표현 방법으로 희화화하여 풍자한 슬랩스틱 코미디이다. 산업화로 인해 생산은 대폭 증가하고 삶의 질도 나아졌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고,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공장의 부속품이 되어 감시와 통제에 따라 비인격적인 삶을 살았다. 이 영화에서도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화장실에서까지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진다.또한 영화에서 한 장인이 찰리 채플린을 데리고 공장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은 산업사회학 시간에도 배웠듯이 과거에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산업사회를 거치며 대규모화된 공장 시스템에서는 단순노동을 하는 노동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준다. 이러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노동자들과 반대로 자본가들은 산업사회가 지속되면 될수록 부유해져 갔다.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인간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이전의 생각과는 다르게, 기술의 발전은 모순적이게도 노동자들을 공장과 기계의 부속품의 일부로 전락하게 만들어버렸다.찰리 채플린은 이러한 상황을 비꼬고 표출하고자 하였다. 그는 영화 초반부에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끊임없이 나오는 물건들의 나사를 조이는 노동자로 나온다. 사장은 그 모습을 항상 감시하면서 노동자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에 적응을 어느 정도 하면 기계의 생산속도를 증가시키고, 거기에 맞춰 노동자들은 더 빠르게 자신의 반복되는 노동을 한다. 이미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은 채, 눈앞의 나사 조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또한 공장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을 장난감처럼 실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채플린은 무엇이든지 조이려고 달려드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만다. 원래 이런 장면들을 보면 ‘영화니까 저 정도는 과장이 섞여있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이 영화는 ‘그래, 안 미치는 것이 비정상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몸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직업병에 시달리면서도 영화에서 그가 말한 것처럼 ‘먹고살기 위해’ 공장에 나와서 일을 하는 그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 당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잠도 못 자며 일하다 쓰러져 갔던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오늘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고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적인 노동 권리를 요구하며 분신했던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은 그 당시와 별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최근에도 이 사회의 기득권들은 우리를 하나의 노동 부속품으로서 개, 돼지로 비유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 통일의 일등 공신, 법가 이론의 대표자 : ‘한비자’에 대한 고찰1. 주제 선정 배경한비자는 전국시대 말기에 법가사상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수업을 들을 땐 잘 몰랐지만, 집에 와서 복습을 하는 과정에서 이 학자가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업이 아니더라도 한비자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마침 집에 그의 생애에 대한 책이 있어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도 많았다.그 중에서도 그가 언어장애를 앓고 있어 그로 인해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다가, 후에 그의 글을 읽은 진시황이 그를 적극적으로 등용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가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동안 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는 것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각 개인들이 전부 제각각으로 지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이 부족하든, 타고난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든 간에,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미숙해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못하는 것보단 자주 해보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예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그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한비자는 자신의 장애에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 보다 꾸준하게 몇 배, 몇 십 배의 노력을 하여 자신의 주요 학문인 ‘법치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이러한 학문적 발전에 대한 원동력은 결국 한비자 자신의 피나는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다면, 어느 분야든지 간에 한비자처럼 언젠간 빛을 발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위대한 업적들이 많지만 그 어떤 위대한 업적보다도 그의 이런 진취적이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에겐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또한 한비자에 관해 더 알아보던 중 「한비자에게 배우는 리더십 기술」이란 글을 접할 수 있었는데, 한비자와 비교하여 리더로서의 나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도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고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멘토 선생님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대일 접촉은 그나마 별 다른 힘든 점이 없었지만, 일대다수의 접촉이 있는 경우에는 사람들 앞에 서서 나의 의사를 조리 있게 전달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했고, 항상 그에 따른 엄청난 심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 섰던 시간과 경험이 많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교사’라는 장래희망에 있어서, 한비자의 사상과 이에 맞는 훌륭한 리더십은 “교육은 곧 교사” 라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교사가 되는 데에도 한 몫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또한 잘 알려진 대로, 진나라가 한비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나라의 토대를 튼튼하게 세우고 중국을 하나로 통일했던 것을 보면 비록 한비자의 사상이 아주 고전적인 사상이지만 세상에 그만큼 검증된 ‘리더십 이론’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그만큼 지금의 나에게 그에 대해 공부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다른 우수한 학자들을 제치고 나의 보고서 주제가 되었다.2. 한비자 사상에 대한 나의 평가한비자의 교육사상은 지식?도덕교육을 멀리하고 그 무엇보다 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학자들에게 비판 받고 있고, 나 또한 중간고사 때까진 거의 법가사상에 반대되는 사상만 배워서 그런지 한비자에 대한 생각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조금만 더 내 나름의 비판을 더해 보자면, 한비자의 사상을 지금 현재 세상에 대입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더 다양해지는 이 세상을 독단적이고 획일적인 사상과 기준을 가지고 통치하려 했던 점이 그의 사상에 가장 큰 한계인 것 같다. 실제로 현재의 교육은 용이성 때문에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위 말하는 주입식 교육방법은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환대받지 못하며 점차 없애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아무도 상대할 수 없어 보이던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뒤 불과 20여 년 만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한비자의 인생도 그렇게 쉽게 독약을 마시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변 사람들의 한비자에 대한 시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요약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멜레토스의 소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플라톤이 보고 쓴 책이다. 우선 이 책의 큰 구성은 유죄판결을 내리기 전과 그 이후 부분으로 나뉘며, 세부적으로는 최초의 고발자들에 대한 변명부분과 멜레토스가 고소한 내용에 대한 변명 부분, 그 밖에 재판과 관련하여 있을 수 있는 오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 형량 문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다룬 부분과 사형이 확정되고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연설 부분으로 나뉜다.소크라테스는 우선 최초의 고발자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 변명하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했다. 그는 그들을 옛날부터 다수의 고발자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군중일 뿐이기 때문에 어떠한 특정 대상이 아니므로 '오래된 고발자'에게 먼저 변론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발자들이 자신에게 반대를 하는 것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결코 지혜롭지 않음을 깨우쳐 준 것 이라고 하였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그들은 그들의 잘못됨을 알려주자 불쾌해 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를 따르던 젊은이들이 그가 하던 질문을 모방하여 고발자에게 하였으나 고발자들은 답하지 못하였고, 불쾌해진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까지 하였다.멜레토스가 고소한 내용에 대한 변명은 대화를 통해 하였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에 대해 젊은이들에 대한 멜레토스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자신의 행동에는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을 호소하며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를 법정에 끌고 온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는 신에 대한 불경죄에 대한 변명을 하였다. 그는 자신을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멜레토스에게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면서 신과 관련된 것을 인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며 멜라토스의 주장을 비판하였다.그 밖에 재판과 관련하여 있을 수 있는 오해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며 충고하고 공식적으로 국가에 대해 충고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가 만약 정치에 관여하였으면 그는 오래전에 생명을 잃었을 것이고, 좋은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이 두려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며 레온을 체포한 일화를 예로 들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타락된 사람 중 아무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은 점을 말하며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판결에 대해 동정을 거부하였고 재판 참여자들에게 모두에게 이로운 판결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하였다.판결 후 그는 형량문제를 언급했다. 또한 그는 구류는 노예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안하지 않았고, 벌금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제안하지 않았다. 다만 낼 수 있는 돈은 1므나 정도이므로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30므나를 지불하는 것에는 동의를 하였다. 추방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제안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차별에 관한 고찰 : 컬러퍼플 (The Color Purple)내가 『컬러퍼플』을 처음 접했던 건 영화가 아닌 책이었다. 때는 고등학교 입학을 막 앞두고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았을 때였는데,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이 너무 아까워 친한 친구와 책 많이 읽기 내기를 하다가 우연하게 접한 책이었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흑인문화와 동성애에 대한 지식으로는 거의 무(無)에 가까웠던 나로서는 책을 읽고 며칠 동안 계속 책에 서술된 묘사들이 생생하게 생각이 날만큼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이 책에 관해선 긍정적이라기 보단 부정적인 더러운 이미지만 가득한 책으로 나의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번 학기에 ‘◎◎’이라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 수업은 영화를 통해서 영미문학을 알아보는 수업이었는데, 첫 시간에 볼 영화가 내가 예전에 큰 충격을 받았던 그 『컬러퍼플』이었다. 책만 봤을 때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터라 이 책이 영화도 있는지, 감독인 누군지는 나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상업적인 영화를 찍기로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것에서 의외의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에 대한 찝찝함이 사라짐은 물론이요, 『컬러퍼플』에 대한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 디테일한 내용이 전부 다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책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감상해 보았고, 미국사회에서 약자의 입장인 흑인이면서도 남성 우월 의식 속에 피해자인 못생기고 가난한 여성으로써 비참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흑인 여성들을 중점을 두고 감상하였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 문제에 관해서도 살펴 볼 수 있었다.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인 셀리(Celie)는 사회적인 불평등과 억압들을 받으면서도 대항을 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자신의 주장은 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동생을 좋아하여 청혼하러 온 남자에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거의 팔려나가듯이 결혼을 하게 된다. 심지어 결혼한 집의 자식들도 셀리를 무시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셀리의 모습들이 어쩌면 대부분의 흑인 여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여동생인 네티(Nettie)가 있다. 그녀는 셀리에게 글을 가르쳐 줌으로써 셀리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발판을 만들어 주게 된다. 하지만 남편 앨버트(Albert)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의 희생자로 지내던 두 자매는 네티가 아프리카로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기고 셀리는 의지할 대상 없이 앨버트의 일방적인 횡포에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편, 앨버트의 아들 하포가 결혼 상대자로 데려온 소피아(Sofia)는 이때까지의 셀리와는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진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소피아는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앨버트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하포와 소피아는 결혼을 하게 된다. 또한 당당하고 굽히지 않는 성격을 가진 소피아를 하포는 어떻게 하면 얌전하고 복종하는 여자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셀리는 그녀를 때려주라고 한다. 이러한 셀리의 모습에서 억압과 복종에 길들여져 있던 그녀의 삶 속에는 어느새 폭력이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이에 대항하여 소피아가 아버지와 남자형제들에게 이때까지 받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은 성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그녀들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잘 표현해준다.또한 이 영화는 인종문제도 현실적으로 잘 다루고 있다. 소피아가 백인시장부인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결국엔 죄라고 할 수 도 없는 잘못으로 백인시장부인의 하녀가 된다. 이후로 오랫동안 그녀의 모습은 전에 있었던 당당함과 활기를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나는 이 영화가 그 당시에 흑인에 대해 이중적이었던 백인들의 모습을 잘 꼬집었다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셀리의 성(性) 정체성을 찾아가는 부분도 이 영화가 시사하고 싶은 큰 문제이다. 무조건적인 복종밖에 모르던 셀리가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셕(Shug)이라고 생각한다. 한 남자의 부인과 그의 애인이라는 민감하고 불편한 관계라 할 수 있는데도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공통적인 성향을 지니며 서로 가까워지고 공감한다. 더 나아가 셕은 셀리도 다른 여성과 다름없이 아름다운 여성이며, 그녀가 이 때 까지 알지 못했던 여자로써의 성적 쾌락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앨버트 때문에 볼 수 없었던 네티의 편지를 읽게 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그녀를 그녀의 억압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후에 셀리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바지가게를 운영하며 안정적인 노년기를 보내게 된다. 이는 앞으로 그녀의 삶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