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상의 이해 REPORT유학의 입장에서정도전과 정몽주에 대한 고찰과목명한국사상의 이해담당 교수님제출 날짜학번학과이름차 례제1장 서론 …………………………………………………………………………………………… 2제2장 고려유학의 사회적 배경 ……………………………………………………………… 2제1절 고려유학의 사회적 배경 ……………………………………………………………… 2제2절 성리학의 특성 …………………………………………………………………………… 4제3장 정도전 ………………………………………………………………………………………… 5제1절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정도전 …………………………………………………………… 5제2절 군주관과 재상정치론 ……………………………………………………………………… 6제4장 정몽주…………………………………………………………………………………………… 6제1절 정몽주의 성리학에 대한 이해…………………………………………………………… 7제2절 정몽주의 개혁사상 ………………………………………………………………………… 8제5장 결론 ……………………………………………………………………………………………… 9-참고 문헌제 1장 서론정몽주와 정도전은 초기 성리학자이다. 이 두 사람은 온건이든 진보든 간에 개혁세력임에는 틀림없는 인물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 사람은 진보적 입장, 한 사람은 온건적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은 사림에게, 한 사람은 훈구파적 사상을 남겼다.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웠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에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심으려다 이씨 나라의 존속을 염려한 이방원에 의해 제거된다.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고 시작하는 단심가로 유명하며,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의 표상이 되었다.유교 도덕의 기본이 되는 3가지 강령과 사람이 항상 행해야 할 5가지 실천 덕목으로 삼강오륜이 있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는데, 각각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암흑기라 불리워질만한 사회적 환경이었다.그 후 고종 만년에 몽고와 화친조약을 맺은 다음부터 고려는 점점 평화적 안정을 얻게 되어 문교(文敎)방면에 힘쓸 수 있었으며 몽고와의 관계가 밀접하여져서는 원(元)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특히 유학에 있어서 원(元)으로부터 주자학(朱子學)을 받아들이게 되고 공민왕 때 과거제가 부활하면서 대게 중소지주였던 지방 향리출신인 신진유학자(新進儒學者)들이 과거를 통해서 관리로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고려 말 농장 확대로 국가 재정이 궁핍해졌다. 이들 신진 관료는 그들이 받아야할 전지(田地)등 도 제대로 받지 못하자 그런 사태를 초래한 원인인 권문세가나 사원, 승려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들은 먼저 온 사원, 승려 세력과 이에 따른 폐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러한 주자학의 이념을 계승하는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분열의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각기 처한 다른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주자학 자체가 지닌 양면성이 자아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수기(修己) ?치인(治人)의 학문으로서의 주자학도 한편으로는 인륜, 특히 군신간의 의리를 절대시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치인(治人) 즉 경세(經世)의 실효를 거두는 일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그러므로 고려말의 학자, 관료들 중에는 그들이 몸담았던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하려는 자와 고려 왕조의 사회질서를 비판하고 부정하며 새로운 유교 왕국의 건설에 적극 참여하게 된 자의 대립이 있게 된다. 즉 ,정몽주(鄭夢周)가 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정도전(鄭道傳)이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여말(麗末)의 성리학자들은 주자학을 배경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신유학(新儒學)를 숭상한 점은 다 같지만,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유교의 새로운 해석과 그들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여말에 있어서 사회의 변동에 따라 그들의 역사관 내지 현실에 대한 견해는 분열하여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다시 말해 여말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 기강의 문란, 그리고 국민 경제그 입장을 달리하여 상술한 바와 같이 가치관의 대립을 찾아볼 수 있다. 성리학을 국가 경영의 최고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는 실리적 업적보다는 사대부의 절개가 오히려 높이 평가받았다.정주학 계통의 성리학은 처음에는 불교의 비인륜성을 비판하였고 나중에는 육상산·왕양명 계통의 심학을 이단시하면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일부 소론(少論) 계통의 학자들이 양명학에 개방적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처럼 발전할 수 없었다.성리학은 사물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라봐 조선시대가 고려시대보다 한층 합리적이고 민본적인 학문이어서 좀 더 과학적인 사회 문화를 열 수 있었다. 성리학은 삼강오륜의 명분질서와 가부장적 종법질서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예(禮)를 중시하였다.즉,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의 삼강의 관계를 상하주종의 관계로 파악(양천과 반상의 구분, 신분에 따른 직역의 법제화, 지주와 전호, 주인과 종의 관계)하고,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길 수 없음)이란 명제에 매달리는 것이 주자학의 명분론이다. 삼강 가운데 효는 모든 행위의 근원이고, 효의 확대가 그대로 충이 되며, 충효는 한 덩어리로 일컬어졌다.제3장 정도전제1절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정도전조선의 건국 및 태조 집권기에 정도전의 역할이 컸었다. 『태조실록』에 나타난 정도전의 역할은 크게 네 가지이다.첫째, 이성계를 보좌하여 조선의 국왕이 되게 하는 역할이다. ,에 실려 있는 이성계와 관련된 그의 경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왕과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옹립한 일(1389년 봄)과, 전제개혁으로 비방과 참소에 휘말린 상태에서 고향(함흥)으로 은퇴하려는 이성계를 만류해 위기를 넘긴 일(1391년 5월), 정몽주 등이 이성계의 낙마(落馬)를 계기로 이성계 세력을 탄핵하여 정도전 자신이 남은 등과 귀양 가 죽을 뻔한 일(1392년 4월), 그리고 조준, 남은 등과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한 일(1392년 7월)등이 그것이다.둘째, 그는 조선왕조의 개창을 정당화하는 한편 정치체제를 정비했다. 개혁하는 등 그야말로 ‘왕조의 청사진’을 제공했다.제2절 군주관과 재상정치론정도전은 유학자로서 유교적 이상군주를 지향했다. 그는 왕조국가에서 군주는 천명의 대행자이고 최고의 통치자이며 천하의 인민과 토지를 소유하는 최고의 권력자로 보았다.그는 주자의 견해를 참고하면서 새로운 왕조의 군주상을 제시했다. 그는 왕조국가가 가지는 특성 곧 혈연적 세습에 의하여 왕위 계승을 인정했다. 군주는 자연인으로서 재상 정치를 통하여 이상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한편 그는 世子(세자) 교육을 중시했다. 혈연적으로 세습되는 국왕의 불완전성을 만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어릴 때부터의 세자의 교육을 통해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쌓도록 한다는 것이다. 세자는 천하 국가의 근본으로서, 세자의 교양이 부족하면 덕업이 성취되지 않아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노석한 학자와 덕행이 높은 현인을 택하여 세자의 사부를 삼고 단정한 사람과 정직한 선비를 세자의 요속으로 삼아 조석으로 강학해야 한다는 것이다.군주의 불완전성을 인정한 정도전은 재상정치론을 전개했다. 그는 군주의 직책은 재상을 선택하는데 있다고 하고, 재상은 군주를 바르게 하는 일을 직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천명의 대행자이고 중앙집권체제를 이글어가는 최고 책임자인 군주는 상징적인 의미만 갖고 실질적 통치를 재상에게 위임해야 한다고 했다.이때 그는 유교경전이나 중국 역대 왕조의 정치론을 참고했는데 특히 주자의 견해를 활용했다. 그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재상이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최고의 실권을 가지고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정치운영의 주체여야 한다고 했다. 군주는 단지 재상을 논하는데 있고 재상은 군주의 옳은 일을 적극 봉행하고 옳지 않은 일을 끝까지 막음으로써 왕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했다.정도전이 참고한 주자의 정치사상은 재상정치론이 그 핵심이다. 주자는 군주의 절대성을 자연의 질서로서 존중했다. 그러나 군주 일인이 권력을 장악하여 정치를 주도하기보다는 대다수 사신들의 공론을수설을 말하는 것이다.이일분수설은 기본적으로 근원에 있어서는 이치가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그 현상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특수성으로 분화되어 나뉜다는 것이다. 포은은 성리학에서 중요한 이론적 측면을 보여주는 이일분수설을 언급하고 있다.포은이 언급하는 이일분수론에서 이일과 분수의 내용은 바로 유학의 보편적 도덕원리로서 인과 함께 충의, 자효와 같은 인륜도덕임을 알 수 있다.또한 포은은 바로 生生하는 현상세계 그 자체가 바로 이치가 특수하고 다양하게 드러나는 세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포은은 바로 인간의 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바로 궁리와 함께 성리학적 수양이 완성된 단계에서 자연의 모든 현상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진리[理]의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포은의 학문은 이처럼 성리학의 핵심적 원리에 대한 인식을 충실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은이 성리학의 비조로 평가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풍부한 이론적 탐구를 행한 것보다 성리학의 핵심을 꿰뚫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강한 지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제2절 정몽주의 개혁사상정몽주는 고려 인종 때의 명신 정습명의 후손이며, 그 후 가세가 몰락하여 제지사족의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그의 정치적 능력은 對明 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국이 친원(親元) 보수 세력의 주도로 넘어가게 되고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라 친명반원 외교를 주장하던 정몽주를 비롯한 신진 개혁 세력들은 중앙정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정몽주 또한 유배당하여 관직에서 축출되지만 대명외교의 능력을 인정받아 정치일선에 복귀하게 된다.정몽주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과의 관계는 순탄치 않고 결국 요동정벌을 주장이 나오면서 고려 정치는 커다란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무리한 정벌 계획은 드디어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몰고 와 정국은 변혁의 시기를 맞게 되니 개혁세력의 중심으로 친명반원 외교를 주장하던 정몽주의 위상도 드높아지게 된다.우선 정치면에 있어서 형법의 정비, 지방통치의 정비 강화 이러한
동양사상의 이해장자 「소요유(逍遙遊)」의미학과목명동양사상의 이해담당 교수님황갑연 교수님제출 날짜2014. 12. 15학번201318789학과영어영문학과이름유솜이차 례제1장 서론 …………………………………………………………………………………………………… 1제2장 장자의 시대적 배경 및 생애 ………………………………………………………………… 1제1절 장자의 시대적 배경 ……………………………………………………………………………… 1제2절 장자의 생애 ………………………………………………………………………………………… 3제3장 소요유 ……………………………………………………………………………………………… 4제1절 소요유의 정의 …………………………………………………………………………………… 4제2절 절대자유의 경지 ………………………………………………………………………………… 6제3절 소요유 우화에 대한 이해……………………………………………………………………… 7제4장 결론 ……………………………………………………………………………………………… 9-참고 문헌제 1장 서론어느 시대에나 사회는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 장자가 살던 시대는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백가가 출현해 혼란스러운 사회를 안정시키고 중국을 통일하기 위한 각양각색의 견해를 제시했다.제자백가 중에서 공자의 사상이 가장 주도적이었는데 공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등의 덕목을 내세우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자 했다. 그러나 장자가 생각하기에 공자가 주장한 사상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한 공자의 사상도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며,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규범이나 덕목들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오히려 본래적인 삶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비판한다.유한한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무한한 정신 공간에서의 자유를 중시했던 장자는 그의 저서 에서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 주인 없는 세상에서 저마다 천하의 주인이 되어보겠다는 투쟁을 유발시켰다. 이런 것들은 결국 포악한 무력에 의해 결판이 났다. 이러한 쟁탈 속에서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계층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힘없는 백성들이다. 이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했을 뿐 아니라 이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해야 했으며 지배층의 물질적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조세와 노역을 감당해야 했다.춘추말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상은 도적들의 창궐이다. 도적들 중에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물질의 분배가 잘못되고 사회적 비리가 횡행하는데 항거하는 수단으로 도적질을 하는 자도 있었지만, 사회 풍조에 편승하여 분수없는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도적질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현상은 버젓이 통용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쉽게 출세하며 권력을 더욱 교활하게 휘두를 수 있었다.또한 이런 사회적 혼란을 금지하기 위해 법령(法令)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법령은 또 다른 법령을 만들고 다른 것들을 규제하기 위해 계속해서 법령이 생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산다는 것이 모두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범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법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회적 악순환의 한 고리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장자는 이러한 시대에 살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장자가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낮은 직책으로 인해 가난한 생활을 하며 하층민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장자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초월하여 무위자연에서 유유히 소요하라고 했다. 하지만 장자가 깊은 산과 골짜기에서만 세상을 피해 숨어 살 것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생활을 인정했다고 한다.전국(戰國)시대는 군주들의 광적인 전쟁과 잔혹한 통치의 행위로 더 이상 삶의 터전에서 평화로이 노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이 전반적인 시대였다. 각종 규범과 윤리를 비롯한 법질서들 역시 인간의 자유와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장자를 볼 때 장자는 인정도 없는 비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자는 각자가 가진 명을 알고 생각할 줄 아는 현자였다. 그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것에 자기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장자는 자신의 죽음에도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관조하였던 사생을 달관한 철학자였던 것이다.장자가 살던 시대는 전쟁과 살육이 소용돌이치는 불안과 절망의 시대였다. 또한 송(宋)나라는 약소국으로 이곳만큼 자주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도 드물다. 그리고 제자백가들은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시비의 연속이었으며 그들의 인간은 이론에게 갖가지 언행을 꾸미게 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본래의 성품인 순수성을 잃게 하였다.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사고했다. 진흙투성이의 현실과 고투하면서 자유 없는 상황 속의 자유, 부자유의 자유를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그리고 장자는 생명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며 존중했다. 그의 철학은 생명 있는 것을 그대로 있도록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장자는 인간이 만일 생명의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삼을 경우, 살아있는 혼돈을 진정시킬 필요가 없으며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고 한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도 생명 있는 무질서의 존중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장자가 소요유를 말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자 장자의 시대적 배경과 생애를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사회 정치적 측면을 배제하고 소요유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에 대해 뒷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제3장 소요유제1절 소요유의 정의장자 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소요자적(逍遙自適)하는 소요정신은 자유의 경지를 추구한다. 소요(逍遙)란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경지의 삶을 뜻한다. ‘소요유(逍遙遊)’란 마음속의 무궁한 우주에서 날아다니며 노니는 것이다.‘逍遙遊’란 말에는 ‘자유롭게 노닌다.’ 는 의미가 있다. ‘逍遙’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보면, ‘逍遙’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풀이된다. ‘①한가롭한다.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식량을 모아 준비해야 한다. 그 런데 두 마리의 작은 벌레가 어찌 그러한 사실을 알겠는가!”이것은 장자 편의 첫 이야기로서 이른바 ‘곤붕변화(鯤鵬變化)’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고기 ‘곤(鯤)’이 ‘붕(鵬)’이라는 새로 변화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힘차게 날아오른 붕새는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한다. 붕새에 대해서 자그만 매미와 작은 참새가 비웃으며 그 큰 스케일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고 묻는다는 이야기는 보통사람의 ‘식견(識見)’이 좁은데 대하여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자그만 매미와 작은 참새가 비유된 바는 한 고을의 관장이나 한 작은 나라의 군주의 좁은 소견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제2절 절대자유의 경지『장자』에서는 '개별적 주체의 자유'를 찾기 위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장자는 ‘소요유’편에서 단편적인 것, 소소한 것에 머무르며 집착하는 우리의 시각을 우주적 시각으로 확대시켜 우리를 억제하는 가치 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소요유』편의 첫 구절에서 이성적 인식 체계를 확장하기 위해 그는 과장법을 사용한다.장자는 전체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작은 나무와 작은 돌이 산에 있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장자가 생각하기엔 인간이란 드넓은 전체 세계에 비하면 “작은 돌”이나 “작은 나무”처럼 미미한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작고 힘없는 존재인 인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의 광활함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이 보고, 느끼는 세계가 전부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장자는 가치 질서에 갇혀 시공간의 한계로 인해 드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속박은 외물(外物)에 집착한 나머지 마음이 외물을 향할 때 생겨나는 감정에 의한 것이므로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것을 보고, 마음에 틀 안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탈피하면,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향이 있다. 장자는 자신의 생명을 명예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얻는 데 소비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내면의 세계를 넓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장자는 가장 충실한 유(遊)의 상태를 소요유(逍遙遊)라 일컫는데, 소요유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없는 상태이다. 즉 이것은 자기중심적 판단 의식을 버리고 자기의 정신이 육신과 같은 형체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정신적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어떠한 인위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경지를 추구하라는 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의 철학이다.제3절 소요유 우화에 대한 이해무위자연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무한한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소요(逍遙)하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장자는 그의 저서 장자(莊子)내편의 제 1편을 ‘소요유(逍遙遊)’라고 이름 지었다. ‘소요유’란 슬슬 거닐며 노닌다는 의미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청나라 사람의 시에서 연원한다.「소요유」는 총 6개의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6개의 우화는 ‘대붕의 남행(南行)이야기, 요(堯)와 선양 이야기, 견오와 연숙의 대화, 송나라 상인과 요(堯)임금 이야기, 혜자와 장자의 큰 박 이야기 및 혜자와 장자의 가죽나무 이야기’이다. 여기서 장자가 말하고자 하는 소요유는 단순히 한가로이 노닌다는 의미 뿐 만 아니라 대립하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닌다는 의미를 가진다.첫 우화는 대붕(大鵬)의 남행(南行)이야기이다. 장자는 소요유(逍遙遊)편에서 일상생활을 대표하는 메추라기등과 자유세계를 대표하는 대붕을 등장시켜 자유가 없는 구속된 생활과 진정한 자유가 존재하는 영역을 잘 비교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소요하는 자를 세속의 작은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음을 매미나 비둘기가 대붕(大鵬)의 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둘째 우화는 요(堯)와 허유(許由)의 선양(禪讓)이야기이다. 천하를 맡아달라는 요의 요청에 허유는 “나는 천하를 가지고 할 일이 없다”며 거절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