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총, 균, 쇠와 동아시아의 미래와 역할)서양사람들의 인식과 세계이 책에서는 첨단기술과 구석기시대가 동시간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근거를 고찰하고 이야기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시작한 이 흥미로운 연구의 취지는 과거의 비밀을 탐구하고 현대의 뿌리를 밝히는 것에 있다. 서구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인종보다 유전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론은 이러한 관념을 깨지게 하였다.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과거의 비밀에 대한 단서를 찾으면서 각각의 문명은 독자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고 발전의 정도는 지리적 운에 따라 다르다는 ‘문화적 상대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이해와 현대 진보적인 나라의 이유를 찾아 현재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국가들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기대하는 생각이 보인다.인류의 시작과 농업사회이 연구의 시작은 30년전 다이아몬드가 파푸아뉴기니 방문으로 부터 시작한다. 과거 서구사람들은 인종에따라 힘이 결정되고 백인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파푸아뉴기니의 청년의 "왜 백인들은 짐이 많고 뉴기니인들은 짐이 적은걸까요?"라는 물음은 과거의 서구사람의 인식이라면 쉽게 대답을 할 수 있었지만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이러한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점점 오래전의 인류에 대하여서 연구하게 되었다. 모든 인류는 수렵 채집생활을 하였고 어떠한 이유에서 발전을 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요르단강 주변에서 곡물창고가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탄소연대측정법에 근거해 11000년전의 기록이고 곡물창고로 추정되는 것이 존재하여 최초로 농업활동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이러한 사실이 중요한 것은 수렵, 채집으로 음식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착하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 옆에서 음식을 자라게하고 수확하는 생활로 변화하여 농경사회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땅과 농작물을 선택하고 수확물의 알이 굵은 것을 선호하여15세기 신세계를 개척하고 농업을 늦게 시작한 미국은 영양가와 생산성이 풍부한 밀과 기계화된 농업기술 때문에 미국이 뉴기니보다 훨씬 진보할 수 있었다.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이유들로부터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다. 농업이 인류의 불평등을 기인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생산적인 농부가 되었고 그로인한 결과로 현재의 불평등의 시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작물의 종류는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고 생산적인 작물을 재배한 지역이 크게 발전 할 수 있었다. 인류의 발전에 지리적 요인이 큰 몫을 한 것이다.가축과 농업생산량약 9000년전 중동의 농사를 짓던 마을은 더욱 번성하고 커지게 되었다. 이는 밀과 보리를 토대로 한 생산성이 높아진 농업의 역할이 컸다. 또한 더욱 큰 식량공급원이 생겼는데 이는 가축을 기르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동물의 생활하는 장소, 식사와 번식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냥을 다니며 이곳 저곳을 다니지 않고 1년 내내 고기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기 뿐만아니라 영양가 높은 우유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털로는 따뜻한 옷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또한 가축은 농업과 하나의 패키지로써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수확을하고 남은 수확물을 가축이 먹고 배설을 하고 그 배설물이 비료역할을 하게 된다.이로써 가축은 인류발전의 필수 요소가 되어갔다.가축은 염소와 양이 처음으로 사육화 되었고 그 뒤를 이어 현재에도 존재하는 대형가축인 소, 말이 사육되었다. 이 가축들은 식용으로 키워졌지만 다른 용도로도 이용되었다. 특히 쟁기가 발명되면서 가축은 더욱 유용해졌다. 산업혁명전까지 짐을 나르고 끄는 것 같이 가축만큼 강력한 수단은 없었다. 말이나 소가 쟁기를 끌게되면서 농업적인 생산성이 증가하였고 더 많은 생산물을 수확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었다.하지만 뉴기니와 상당수의 지역들은 쟁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쟁기대다수가 사육된 적이 없다. 곤충과 설치류는 대부분 인간에게 유익한 이점을 주지 못하였고 일부 새와 물고기 파충류가 사육되었지만 농업에 동원되지 못했다. 결국 사육하기 좋은 것은 대형 초식동물이었다. 인간들은 모든 대형초식동물들을 사육하려하였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대표적인 예로 코끼리가 있는데 코끼리는 번식을 하기 위한 시간이 15년이란 시간이 필요한데 이것은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일 년에 새끼를 한 두마리를 낳아야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울타리에서 지내야하므로 사교성이 뛰어나야하고 서열이 존재해야지 우두머리를 통제 하였을때 쉽게 나머지들을 통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과 잘 어울려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동물들은 총14종이었다.이 가축들의 조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대부분의 가축은 중동지역이 원산지 이다. 이 지역은 주로 비옥한 '초승달지역'이라고 불리는데 최고의 지리적으로 축복을 받았고, 고대사회 최고의 곡물과 가축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결과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 밀재배 염소사육과 함께 시작된 문화가 인류의 첫 번째 문명을 끌어내고 있었다.요르단지역의 유적은 놀라울 정도의 기술력과 완벽한 도시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살던 몇 백명의 사람들은 경이로운 기술력으로 지어진 집에 살고 있었다. 마을이 커지면서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작물 생산량이 들어났다. 따라서 전문가를 부양할 수 있었고 이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결과적으로 석회석으로 회반죽을 만드는 기술을 발명하고 이것은 인류역사상 획기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이슈는 불을 다루는 기술로 개발하여 훗날 철이 발명되는 기반이 되었다.반면 뉴기니같은 곳에서는 첨단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농업을 시작하여 수세기동안 같은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부족들이 있었지만 왜 뉴기니인들은 금속연장을 발명해 내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 이유는 농업 생산량이 비교적 적어 전문가들을 지원할 잉여분의 작물을 기술자들에게을 대부분은 천년도 지나지 않아 버려지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영양가 높은 작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가 너무 건조하고 생태계가 너무 불안정했기에 영구적으로 머무를 수 없었다. 또한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물을 너무 많이 소비했다. 지나치게 환경을 파괴했고 불가피한 자연개발의 결과물이었다.하지만 이 지역은 유라시아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동, 서로 기후가 비슷하여서 이주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밀과 보리 여러 가축들은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가축과 농업기술, 이집트의 문명이 충돌하면서 급진적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파라오와 각종 엔지니어를 먹일 수 있는 곡물이 생겨나면서 피라미드건설에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문명에서도 고대 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예술과 문명, 군인들을 지원하게 된 것이었다.이렇듯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농업이 인류발전의 시작점이라 생각했다. 또한 농업발전의 배경에는 지리적 운과 기타 부수적인 사건이 필수적이었고 그 혜택을 받은 것이 온대지역의 유럽과 아시아였다고 말한다.스페인의 잉카제국 정복과 총, 균, 쇠스페인 정복자들은 금과 명성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주역들은 군인이 아니라 용병과 모험가들이었고 퇴역한 육군대위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피사로는 이미 중앙아메리카에서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였다. 그들은 안데스산맥을 오른 최초의 유럽인들이었고 지속적으로 남아메리카로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얼마나 위협적인 인물인지 모르고 있었다. 1530년대 거대한 문명을 형성하고 있던 잉카제국은 안데스산맥을 포함해 에콰도르까지 8000km까지 이륙했다. 스페인은 당시 유럽의 3분의 1을 다스리고 있었다.잉카인들은 감자와 토마토를 재배 할 정도로 발달된 농업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유럽보다는 다소 생산성이 떨어졌다. 또한 잉카인들은 대전부터 사육되어 왔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운송수단이었으며 여행도 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나라를 정복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소는 모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승마실력이 필수적이었다. 스페인 정복꾼들의 출신은 모두 작은 마을의 출신이었고 대부분 말을 쉽게 다룰 줄 알았기 때문에 승마실력을 정복하는데 자연스레 쓸 수 있게 되었다. 말에 대한 통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고원지대를 누빌 수 있었다.잉카제국의 황제인 ‘아타우알파’는 태양의 아들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소식을 듣고도 죽이지 않고 사자를 보냄으로 저절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도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탐꾼에게서 전달받기를 얼굴은 털로 뒤덮여서 라마나 ‘알파카’같은 모습이고 머리에는 냄비를 쓰고 다닌다고 정보를 받았기 때문에 정복자들을 우습게 본 것이다. 그래서 ‘아타우알파’는 이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잉카인들과 다르게 스페인 정복자들은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활자를 찍어낼 수 있는 기술도 있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지식을 문자로서 정확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잉카인들은 문자가 있긴 하였지만 실용화 되지 못하였고 때문에 언어 정보전달 방법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을 수 없었을 뿐더러 과거의 지식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기록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아타우알파가 스페인 정복자들의 정보를 들을 때 잘못된 정보를 듣고 과소평가하게 되어 잉카제국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스페인은 잉카제국 이외에도 여러 전쟁을 치르던 나라였다. 그래서 총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피해 졌을 것이다. 총은 아랍지역에서 개발되었지만 유럽인들에게 유입되면서 휴대성과 기능이 훨씬 발달했다. 잉카인들에게 위협적이긴 했지만 당시 화약기술은 유치한 수준이었다.그렇다면 어떻게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의 8만명의 대군을 이기고 남아메리카 지역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을까? 스페인 정복자의 힘은 바로 철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