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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양명언과삶의지혜 과제] 영어로 된 명어 및 속담 50가지
    1.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2. Think of the end before you begin.시작하기 전에 끝을 생각하라.3. No man can call again yesterday.어제를 다시 불러 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4. The more, the better많을수록 좋다.5. Easy come, easy go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6. Faithfulness makes all things possible.성실함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7. The life is only once.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다.8. Try your best rather than be the best.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자.9. Have fun this time,because it will never come again.현재 이 순간을 즐겨라,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니!10. If you don't walk today, you will have to run tomorrow.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할 것이다.11. The real effort never betrays me .진정한 노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12. Never put off for tomorrow what you can do today!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13. A good medicine tastes bitter.좋은 약은 입에 쓰다.14. When the well is full, it will run over.우물도 차면 넘친다.15. 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16. To see is to believe.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17. No news, good news.무시식이 희소식이다.18. Effort is the best way to realizing your dreams.노력은 꿈을 실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19.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20. As ones sows so shall he reap.뿌린 만큼 거둔다.21. Do today what you could do tomorrow.내일 할 수 있는 것을 오늘 하라.22. Rome is not built in a day.로마는 하룻밤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23.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24. Strike while the iron is hot.쇠뿔도 단김에 빼라.25. Practice makes perfect.연습이 최고를 만든다.26. Everything will be done if you try hard.열심히 노력한다면, 모든 것은 성취될 것이다.27. The word 'impossible' is not in my dictionary.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28. Slow and steady win the race.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이긴다.29. Impossible, it is a excuse, who does not endeavor.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30. No sweat, no sweet.땀 없이는, 달콤함도 없다.31. A Bold Attempt is half Sucess.과감한 시도는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32. Who dares, wins.도전하는 자가, 승리한다.33. The first step is always the hardest.언제나 처음 시작이 가장 어렵다.34. Better late than never.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하는 게 낫다.35.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36. Think like a man of action and act like man of thought.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37. Better the last smile than the first laughter.처음의 큰 웃음보다 마지막의 미소가 더 좋다.38. Weak things united become strong.약한 것도 합치면 강해진다.39. The world is a beautiful book, but of little use to him who cannot read it.세상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40.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쓰러진다.41. Who knows much believes the less.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적게 믿는다.42. In giving advice, seek to help, not to please, your friend.친구에게 충고할 때는 즐겁게 하지 말고, 도움이 되도록 하라.43. Our patience will achieve more than our force.우리의 인내는 우리의 힘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44. If I sleep now I will have a dream, but if I study now I will make my dream come true.만일 지금 잠을 잔다면 꿈을 꾸겠지만, 만일 지금 공부를 한다면 꿈을 이룰 것이다.45. Even on this moment your enemies are turning their pages.지금 이 순간에도 너의 적들은 책장을 넘기고 있다.46. Man is his own worst enemy.
    인문/어학| 2017.11.29| 4페이지| 1,000원| 조회(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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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강 <동북아역사와문화 과제> 한반도 역사를 중국 역사에 대비하여 간략하게 논하라 평가B괜찮아요
    한반도의 역사와 중국 역사-삼국 시대372년 전진의 황제 부견으로부터 승려 순도가 고구려에 와서 불상과 경문을 전함으로써 최초로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374년에는 아도가 전진에서 건너와 불도를 고구려에 전하였다. 소수림왕은 375년에 초문사를 창건하고 순도를 머물게 하고,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아도를 머물게 하여 불교의 수용 및 보급 정책을 취하여, 전진과 평화적 관계를 수립하고, 호국사상으로 삼았다. 중국에서 비롯한 유교 사상은 이미 삼국시대에 오경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정치이념이 되었으며, 국민을 교육하는 원리가 되었다. 백제는 양을 비롯한 중국 남조의 각국과 활발하게 문화를 교류했다. 양나라에는 사신을 보내어 불교 등의 경서와 모시박사·공장·화사를 청하는 등 문화수용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신라의 교역은 주로 상업이나 외교 활동과 관계가 있었다. 676년의 삼국 통일 후 평화가 계속되며 생산이 늘었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당나라는 신라의 주 교역 상대였다. 신라는 당나라에 비단, 마포, 금, 은, 인삼, 약재, 말, 모피, 공예를 수출했고, 비단, 약재, 공예, 서적을 수입했다.-조선과 명나라, 청나라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의 하나로는 중국의 왕조에 대해서 사대정책을 취하는 것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이전부터 친명정책을 표방하였으며, 개국하게 되어서는 즉시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새 왕조의 승인을 청하고 국호도 화령·조선의 둘을 지어 보내서, 조선이란 국호를 선택받아 사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명나라에 대해서는 여전히 “권지고려국사”란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명나라로부터 “조선국왕”의 금인을 받아 정식으로 왕에 책봉된 것은 1401년(태종 1)에 이르러서였다. 그 뒤로 국왕의 즉위에는 반드시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죽었을 때에는 이를 알려서 시호를 받았으며, 또 종속의 상징으로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는 한편 성절사·천추사·정조사·동지사 등 정기적인 사행 및 그 때 그 때의 필요에 따라 사신을 명나라에 보내어 형식적으로 정치적인 종속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정치의 간섭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와 실질적으로 유대를 맺게 되는 것은 조공과 회사의 형식을 통한 양국 간의 접촉에서였다. 관무역 외에 사신이 서로 내왕할 때마다 북경에서는 회동관, 서울에서는 태평관에서 두 나라 사이의 사무역이 행해졌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는 원병을 보내어 일본군을 격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청이 청일 전쟁에 져서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확인하기에 이르자 정치적인 종속관계는 없어지게 되었다.-임진왜란 및 병자호란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는 원병을 보내어 주었는데 이는 현재에 와서 밝혀진바 중국의 원병은 조선을 도와주지 않고 일본, 조선 두나라의 전쟁상황을 중국이 개입하여 일본에 대한 견제를 하기 위함이였고 중국의 군대는 원병의 업적을 조작하기 위해 조선 민간인을 학살하고 수급을 걷어 들였다. 그당시 명나라는 내부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국려의 약화로 인해 만주 지방에서는 누루하치가 나라를 세워 국호를 후금이라 하고 명나라의 변경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에 광해군은 명나라의 원병 요청을 받고 군대를 보냈으나 명나라의 주력부대와 함께 싸움에 지고 말았다. 이때도 도원수 강홍립은 전군을 이끌고 후금에 항복하여 조선이 부득이 원병을 보내게 된 사실을 말하여 두 나라 사이에 별 일은 없었다.그 뒤 후금은 더욱더 세력을 떨치게 되었는데도 국내에선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을 쓰자, 후금은 명을 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하여 군대를 내어 쳐들어오니 이를 정묘호란이라 한다. 이에 조선에서는 마지못해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 뒤 후금의 태종은 더욱 국력을 확장시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청으로 고쳤으며, 조선에 대해서는 군신의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였다.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청 태종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강화도를 함락시키니, 인조는 굴욕적인 항복을 하여 군신의 관계를 맺고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으며 청에 대해서 해마다 막대한 세공을 보내기로 하니, 이를 병자호란이라 일컫는다.-청일 전쟁 이전조선은 병자호란에서 대패한 이후에도 청을 종주국으로 삼는 문제에 대해서 국론이 일치하지 않다가 청이 명을 멸하고 중국 대륙을 지배하게 되자 표면상으로는 사대정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명을 추모한 반면, 청에 대한 멸시와 적개심은 군신 간에 여러 차례의 북벌계획이 논의되었을 정도로 깊었다. 이러한 속에서도 사신의 내왕은 빈번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고도로 발달한 청나라의 문화와 청나라에 들어온 서양 문물이 한국에도 전래되어 실학사상을 일으키게 하였고, 두 나라 학자들 사이에는 활발한 문화적 교류도 있게 되었다.임오군란이 일어나 일본을 배후에 두고 있던 민씨 일족이 몰락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하자, 청나라는 종주국으로서 속방을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이 기회에 일본에 빼앗겼던 조선에 대한 우월한 기득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청나라는, 마침 임오군란 당일인 지방으로 도망갔던 명성황후와 그 일족이 개화파 관료 김윤식, 어윤중을 청나라로 보내 청나라에게 원조를 요청한 것을 핑계로, 음력 6월 27일에 마건충이 이끄는 육군 4,500명이 육로로, 8월 20일 청나라 해군 제독 오장경이 정여창, 김윤식을 대동하여 남양만으로 상륙해 조선에 진주하였다. 오장경은 흥선대원군을 병영으로 초청하였다가 군란 선동의 배후자라 하여 톈진으로 납치한다. 대원군 납치 후 다시 민씨 정권이 부활하였고, 청군은 8월 29일 왕십리와 이태원 일대를 공격하여 170여 명을 체포하고 11명을 사형시키는 등 군란 진압에 나섰다. 한편 일본으로 피신했던 하나부사 요시모토 공사가 군변의 사실을 일본 정부에 보고하자 일본은 곧 군함 4척과 보병 1개 대대를 조선에 파견하였으나 청의 신속한 군사행동과 병력 차이로 인해 대항하지는 못했다. 외세를 빌려 군란을 진압한 민씨 정권은 결국 자주성을 잃고, 정권 유지를 위해 청나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대가로 청나라의 숱한 간섭을 받게 되었다. 곧, 위안스카이가 지휘하는 군대를 조선에 상주시켜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고, 마건상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깊이 간여하였다. 또, 조선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규정하고, 경제적 침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때 유입된 청나라 상인들이 바로 재한중국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후원한 갑신정변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일본은 청일전쟁 때까지 청나라의 독주를 지켜봐야 했다.
    사회과학| 2017.04.06| 3페이지| 1,000원| 조회(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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