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rchitect를 보고……My Architect 라는 영화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에 대한 이야기이다. 루이스칸에게는 3명의 부인이 있었다. 셋째 부인의 아들의 이름 나다니엘 칸 그는 루이스칸이 사망할 당시 11살이었다. 그의 사망으로부터 25년이 흘러 나다니엘이 36살이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그리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다니엘은 루이스 칸의 건축물과 그의 동료, 주변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아버지를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영화이다.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나다니엘이 되어 루이스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해준 영화이다. 또한 건축물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내가 어떤 건축가가 되어야 하는지 알게 해준 것 같다.이 영화 속에서 마음에 와 닿는 대사가 몇 가지 있었다. 그 대사들은 나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떠오른 말은 “ 영원히 남는 거니까. 평가는 그때 하는 거야” “티크자재의 색은 바랠지 몰라도 프로젝트의 정신만은 남아 시간의 시련을 견뎌낼 거야” 이 두 대사였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의사의 실수는 땅에 묻으면 되지만 건축가의 실수는 100년동안 남는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시간의 시련을 견디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나에게 또 생각을 안겨준 대사는 “그는 트렌톤의 콘크리트 목욕탕을 지으면서 자신을 알아봤어요” 이다. 화가는 그림에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표현한다. 작곡가는 이를 음악에 표현한다. 건축이라는 예술을 하는 건축가는 이를 건축에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을 표현하면서 알지 못했던 내면 깊숙한 곳의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건축이라 함은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의 예술이자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행위이다.이렇게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나는 건축가 루이스 칸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나다니엘 칸이 들려준 루이스칸의 3살때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3살 때 빛이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숯을 꺼내 앞치마에 담는 바람에 얼굴에 큰 흉터가 생겼다. 경찰들은 범인을 잡다가 생긴 상처를 영광스럽게 여긴다. 나는 그의 흉터가 이와 같은 맥락이지 않나 생각했다. 그의 얼굴의 흉터는 3살때부터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예술가의 흉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루이스 칸은 아들에게 인도와 코끼리이야기를 해주는 자상한 아버지이었지만 그리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의 2번째부인 앤팅의 “그는 항상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이런 말에서 어쩌면 루이스 칸은 4명과 사랑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그는 그 무엇보다 그의 일, 건축을 사랑했다. 어쩌면 그의 첫 번째 부인은 ‘에스더’가 아니라 건축이었을지도 모른다.사람마다 자신이 추구하고 하는 가치가 다르다. 루이스 칸이 추구한 가치는 돈도, 안정적 생활도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건축을 사랑했고 건축을 위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루이스칸보며 영원히 남을 건축을 위해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완벽주의를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루이스 칸 같은 건축가가 되어 그와 같은 삶을 살겠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건축과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것이고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 자상한 남편과 예쁜 아이들을 사랑할 것이고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그 행복을 건축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