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작가 소개-마셜 맥루한 (Marshall McLuhan) 맥루한은 1911년 캐나다에서 출생해 1980년 그의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영문학자, 사회사상가, 문예비평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부분에서 맥루한 열풍을 일으키며 활약했다. 1936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로 돌아와 토론토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술 활동도 활발했다. 매체와 매체의 의미에 관해 기존과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미디어 비평계의 초석을 다룬 사람이기도 하다. 1964년 《미디어의 이해》라는 저서를 통해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견해를 밝혀 현대 미디어 이론에서 사용하는 ‘미디어’라는 단어와 가장 근접한 개념을 제시했다. 1967년에는 미디어가 인간의 촉각을 자극할 것이라는 견해를 담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출간했다. 특히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유명한 표현은 그가 만들어낸 말이다. 미디어의 발전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연구해 근대의 인쇄 혁명과 TV로 대표되는 전자미디어가 서구 문명에 끼칠 영향을 예견해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Ⅱ. 작품 소개작품 전반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간략히 설명하는 글이 있어 가져왔습니다.<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언론학 "미디아를 감각기관의 확장으로 봐"
1존재와 시간1. 작가 소개-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1889년 9월 26일 독일 동남부 슈바르츠발트의 한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가톨릭 교회지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190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 입학한다. 그러나 2년 후 심장에 관련된 질병으로 인해 그토록 열망하던 신학공부를 포기한 채 철학 연구에 전념한 뒤, 그는 불과 2년 만인 1913년 슈나이더 리케르트 교수의 지도하에 『심리주의의 판단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또한 1915년에는『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으로 교수자격을 획득한다. 그러고는 1923년부터 1928년까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뒤, 마침내 그는 1928년 에드문트 후설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모교인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정교수로 초빙된다.그러나 비교적 순탄하던 그의 삶도 그가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에 취임함으로써 명암이 엇갈린다. 비록 그가 1934년 총장직에서 스스로 사임하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치에 동조하였다는 의혹에 시달린다. 급기야 그는 1945년부터 1951년까지는 독일을 점령한 프랑스군에 의해 자신이 몸담던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강제 해직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그는 구금이 풀린 이후에도 대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채, 연구와 강연으로 말년을 보낸 뒤 1976년 5월 26일 고향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1976년 5월 28일 그곳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2. 책 소개하이데거는 세계 속에 현재 존재하는 인간을 ‘현존재’라 하고, 현존재가 존재하는 그 자체를 실존이라고 하였다. 현존재가 어떻게 실존하는가는 미리 예정된 인간의 보편적 본질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때그때 현존재가 실존하는 바로 그 자체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즉 현존재의 본질은 그 실존에 있는 것으로 된다.현존재를 이러한 각도에서 분석하는 것이 실존론적 분석이고 그 분석을 통하여 실존의 비본래성과 본래성이 구별된다. '비본래적인 실존'이란 본래의그때그때 현재에 분산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이에 대해 과거로부터의 자기를 되찾아 장래를 향하여 앞서가면서, 순간을 두고 결의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본래적인 실존'이며 이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을 원형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의 하이데거는, 인간이 존재 그 자체의 밝음 쪽으로 나가는 것이 실존이며 『존재와 시간』에서의 본래적 실존에 나타나는 비극적·영웅적 색채는 사라졌으므로, 종래의 실존 대신 개존(開存;Ek―sistenz)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3. 줄거리1)존재의 의미: 하이데거 이전의 철학자들은 존재(sein)의 ‘의미’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기서의 존재는 우리말로 따지면 ‘있다’정도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철학자들은 연필, 사과 등과 같은 존재자에만 집중하고 이 존재자들이 ‘있다’는 것의 의미는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존재(있다)’는 당연히 있는 것인 ‘보편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존재’는 그저 내용 없는 개념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존재하는 것(존재자)에 대한 것에 대한 기존에 탐구이외에도 존재의 ‘의미’(있다)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존재의 의미를 묻는 것을 ‘존재 물음’이라고 부른다.2)현존재: 존재 물음은 탐구하는 것이다. 이 탐구의 방식을 구조화 하면 ‘물어지는 것’과 ‘물음의 걸리는 것’으로 도식화 할 수 있다. 물어지는 것은 존재(있다), 즉 존재의 의미 이고 물음이 걸리는 존재자이다. 즉 존재자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 존재 물음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이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묻고 탐구할 수 없는 물체들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존재 물음을 할 수 있는 존재자를 골라서 ‘현존재(das Dasein)’라고 불렀다.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존재자들 중에서 우위를 가진다고 하는데 이를 ‘존재론적 우위’라 한다.존재에 관한 물을 때 이 물음은 자기의 존재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재는 존재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존재는 자기 이해를 할 수 있는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4)존재를 탐구하는 방법론(현상학): 하이데거가 존재를 탐구하는 방법으로는 ‘현상학’을 택했다. 현상학은 ‘현상(phainomenon)’과 ‘로고스(logos)’를 합한 말로, 현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그 자신으로부터 드러나는 그대로를 보이게 하여 존재를 탐구하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기존의 철학에서의 현상학과 다르게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해석학적 현상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현존재의 존재구조, 존재양식 등을 현상으로 받아들여서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제 Ⅰ편.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기초분석→존재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 먼저 현존재를 분석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현존재를 구조 전체 속에서 말할 때 하이데거는 ‘세계 내 존재(in-der-welf-sein)’라고 한다. ‘내가 이 세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하이데거는 존재자를 인간에 해당하는 현존재와 그 외의 존재자들로 나누었다. 인간 외의 존재자들은 ‘용재자’와 ‘전재자’로 나누는데 이 두 종류가 나뉘는 기준은 존재자를 다루는 현존재의 태도에 따라 나뉜다. 현존재가 존재자를 도구로서 이용하면 용재자 이고 관찰의 대상으로 삼으면 전재자가 되는 것이다.현존재는 인간 각자를 가리킴과 동시에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현존재는 존재에 대해 묻는 존재이자 물음이 걸린 존재 모두에 해당한다. 현존재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말하기도 하므로 이를 ‘현존재의 각자성’이라고 한다. 현존재 분석이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성찰하고 분석해나가는 존재론을 말한다.현존재의 근본 틀인 ‘세계-내-존재’는 다시 ‘내-존재(In-sein)’로 쪼개어 볼 수 있다. 내-존재의 ‘내’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범주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론적 해석이‘innan’에서 유래하며 ‘(어디에)산다’, ‘거주 한다’, ‘체재 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현존재는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자들을 ‘배려’ 한다. 따라서 현존재의 존재 구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존재가 세계내부의 존재들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상호작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현존재의 일상성을 드러내고, 그 일상성을 통해 존재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현존재는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세계를 정의해야 한다. 보통 세계를 의미할 때 1. 세계내부존재자들의 총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2. 세계내부존재자들의 존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 3. 혹은 현존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세계는 주위 세계이다. 4. 마지막으로 세계성이라는 존재론적-실존론적 개념을 지칭할 수 있다. 세계성은 현존재의 배려와 세계내부존재의 관계에 따라 여러 형태의 세계들로 변양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세계라는 용어를 3의 의미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한다. 1, 2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존재의 이해를 드러내는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존재자에 초점을 맞출 경우는 세계와 구분하여 “세계”라고 표현한다.하이데거의 세계를 해석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현존재, 즉 세계-내-존재를 뒤따라가야 한다. 하이데거의 세계는 현존재가 머무르는 곳이며, 현존재가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 맺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했다시피 현존재의 일상성에서 출발해야 한다.제 Ⅱ편. 현존재와 시간성(제가 적는 글보다 이걸 읽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해하기 발췌 해왔어요)제 1편의 주제는 현존재의 예비적 기초분석이다. 현존재의 구조전체는 세계-내-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그 구성요소인 세계, 세계-내-존재는 누구인가, 내-존재로 나누어서 분석했다. 모든 분석된 전체를 통일적으로 개념화하면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의 존재는 세계 내부적으로 만나는 존재자에 몰입해 있음으로서 자기를 앞질러 이미 내에 있음이다. 이것은 현존재의 존재로서의 마재가 아니라 비본래적 존재이다. 이 비본래적 존재를 본래적 존재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불안이라는 근본 정상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의 견해를 전통적인 것과 구별해서 선명하게 보여주는 주제로서 실재성과 진리의 문제를 여론으로 덧붙였다.현존재의 존재가 근원적이려면 현존재의 전체성과 본래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분석은 현존재를 일상적 존재자로서 비본래적이거나 무차별적 실존에서 분석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으로는 근원성에 대한 요구를 제고할 수 없다. 현존재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파악하려면 첫째, 현존재가 그 전체성에서 포착되어야 하고 둘째, 그 현존재의 본래성이 증거되어야 한다. 즉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 존재 가능’이 제시되어야 한다. 현존재의 전체성은 현존재의 끝인 ‘죽음’이 보중하고, 본래성은 ‘양심’이 증거한다.죽음과 양심을 통해 현존재의 전체성과 본래성이 확보되면 현존재의 존재의미를 근원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충분한 현상적 지반이 획득된다. 이를 위해 하이데거는 먼저 기투(실존)에서 죽음에 대해 검토한다. 현존재의 전ㄴ체 존재는 죽음이 보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으면 현존재가 아니다. 즉 죽음에는 ‘아직 아님’이라는 미제가 남아있어야 한다. 현존재는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다. 죽음은 현존재의 가장 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확실하고,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인데, 이런 가능성을 본래적으로 내 것으로 하는 것을 죽음에로의 선구라 한다.현존재의 본래성은 양심이 증거한다. 양심의 부름은 현존재가 본질적 피투적으로 책을 지고 있음을 근거로 해서 자기 자신을 소리 없이 내면으로부터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불러일으켜진 현존재는 자기의 본래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다.기투와 피투성의 두 방면에서, 즉 죽음과 양심의 분석을 통해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성, 즉 선구적 결의성이 확보된다. 이 ‘선구적 결의성’이 현존재의 ‘존래적 전체 존재 가능’을 보증한다는 전제 아래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즉 마음씀의 의미가 곧 시간성이라
오디세이아Odysseia호메로스(Homeros)Ⅰ. 작가소개작가호메로스 (Homeros/Homer)활동시기B.C.800? ~ B.C.700? (기원전 8세기경으로 추정)출생지카오스섬?, 밀레투스? (그리스 도시 국가 중 하나로 추정)작품, 특징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시인(1) 호메로스는 누구인가?→이름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출생 시기나 출생지조차도 알 수 없어 호메로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없다. 실재의 인물이 아니라는 이들도 많았으나, 19세기 이후에는 실존 인물이며, 서사시 와 의 저자라는 의견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1795년 독일의 고전학자 볼프(F. A. Wolf)와 라흐만(K. Lachmann)이 "호메로스는 수많은 편력음유시인(遍歷吟遊詩人)의 한 유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 때문에 그의 실재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나 바우라(C. M. Bowra) 등에 의해 호메로스는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유력한 편이다.(2) 작가를 둘러싼 일화와 속설①호메로스는 앞을 못 보는 장님이다?‘이윽고 하인이 유명한 음유시인 데모도코스를 데리고 왔다. 시신(詩神) 뮤즈는 그를 끔찍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에게 행운과 불행을 함께 주었다. 그래서 그는 신통한 노래의 재간을 타고 난 반면에 앞을 보지 못하는 가엾은 장님이었다.’‘식사 후 뮤즈에게 영감을 얻은 데모도코스는 영웅들의 공적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제 8장에 등장하는 음유시인 ‘데모도코스’처럼 호메로스 또한 장님이었다는 속설이 있다. 데모도코스가 저자 호메로스의 모습을 반영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여러 도시를 편력하며 구걸하던 장님 노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가 장님이었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그 당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기억력이 비상해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②호메로스는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다?→호메로스가 남긴 두 개의 서사시를 두고 호메로스가 여러 명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두 서사시 안에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은 한 사최고의 소설로 추앙받고 있다.Ⅲ. 줄거리제 1장. 아테네 신의 이타케 방문트로이 전쟁은 끝났지만 오디세우스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대부분의 신들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포세이돈은 아직도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그를 괴롭혔다. 포세이돈이 잔치를 초대받아 이디오피아에 갔을 때 다른 신들은 올림포스 궁전에서 회의를 한다. 아테네는 회의에서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돌려보낼 것을 건의하고 자신이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보내도록 명령하고 텔레마코스에게는 용기를 북돋아 어머니 페넬로페를 괴롭히는 청혼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다. 그 후 바로 오디세우스의 궁궐로 간 아테네는 타포스 섬의 영주 멘테스의 분장을 하고 텔레마코스와 만난다. 텔레마코스는 아테네를 낮선 손님으로 알고 대접을 한 뒤 아버지의 소식을 묻는다. 아테네는 아버지가 곧 돌아오실 것이라고 하며 청혼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들을 방법을 알려준 뒤 하늘로 사라진다. 손님이 신이였다는 것을 깨달은 텔레마코스는 용기를 얻어 청혼자들의 앞에서 그들이 무례한 행동을 그만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제 2장. 텔레마코스의 결의아침이 되자 텔레마코스는 아테네의 힘을 입어 아버지의 상좌에 앉았다. 아이깁토스의 첫 발언으로 용기를 얻은 텔레마코스는 청혼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한다. 안티노스의 반대하는 발언에도 의견을 굽히지 않고 제우스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복수할 것이라고 하자 제우스신이 보낸 독수리가 나타나 무서운 형벌을 예고하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뜻을 굽히지 않으려하자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하고 배와 선원을 부탁한다. 멘토르로 변장한 아테네는 배와 선원을 모아오겠다고 하고 텔레마코스는 청혼자들의 조롱 속을 떠나 유모에게 좋은 술을 항아리에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또한 자신이 스파르타와 필로스로 떠나는 것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테네는 멘토르의 모습으로 배와 선원을 모은 뒤 텔레마코스를 불러 항해를 준비한다. 배가 출항그녀는 오디세우스를 가두어 두는 것을 그만두고 그가 뗏목을 만들어 바다를 항해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에게 노여움이 남아있어 강풍과 파도를 만들어 그의 항해를 방해한다. 위기에 처한 그가 가여웠던 바다의 여신 이오는 오디세우스에게 스카프를 주며 육지에 닿을 수 있도록 돕고 결국 제우스의 예언대로 파이아키아인 나라의 강 하구에 도착해 근처 숲속에서 편안히 잠에 든다제 6장. 공주 나우시카의 도움오디세우스가 자는 동안 아테네는 파이아키아인의 왕인 알키노스의 궁궐에 가서 그의 딸 나우시카 공주를 만난다. 공주의 단짝 친구로 변한 아테네는 그녀의 꿈으로 들어가 빨래터에서 옷을 세탁할 것을 조언한다. 잠에서 깬 공주는 아테네의 말대로 시녀들과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세탁 후에는 다함께 공놀이를 한다. 이때 아테네의 계획에 따라 공이 빗나가 깊은 물에 빠지고 공주와 시녀들은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이 소리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도움이 시급했던 그는 소리를 따라가 공주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이를 승낙한 공주는 벌거벗은 오디세우스에게 빨랫감 속 옷 한 벌을 입힌다. 또한 함께 궁궐에 가면 의심과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오디세우스가 혼자 궁궐에 들어와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하도록 한다. 오디세우스는 궁궐에 가던 중 아테네 여신의 성림 앞에서 기도를 한다.제 7장. 오디세우스를 영접하는 알키노스 왕→나우시카 공주가 궁궐로 간뒤 오디세우스는 지나가던 소녀에게 길을 묻는다. 그 소녀는 아테네가 소녀의 모습으로 변장한 것이기 때문에 오디세우스에게 길 안내와 조언을 한 후 사라진다. 궁궐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왕과 왕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들의 승낙을 얻은 후에 대접을 받는다. 왕과 오디세우스의 부탁을 받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흩어진 후 왕은 자신의 가문 옷을 입고 있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에 대해 묻고 오디세우스는 이를 해명한다. 이후 왕은 오디세우스의 사정을 이해하여 자신이 사위가 되도 좋고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끝까지 돕겠다이레시아스의 예언도 듣고 어머니와 대화도 한다. 오디세우스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마치자 알키노스 왕은 이후의 이야기를 더 요청하고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등 오디세우스의 영웅 친구들의 혼을 만난 이야기를 시작으로 모험담은 이어진다.제 12장. 사이렌스의 노래와 괴물 스킬라, 카리브디스와 태양신의 노여움이야기의 내용: 다시 키르케가 사는 아이아이아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부하 엘페노르 혼의 요청대로 그의 장례를 치른 뒤 키르케의 조언을 듣는다. 키르케는 사이렌스에 닿으면 유혹의 노랫소리를 듣지 말고 두 갈래 길에 가서 스킬라가 있는 에레보스 쪽을 향한 길로 가라고 충고한다. 그곳을 지나면 헬리오스의 섬이 있는데 헬리오스의 소유인 그곳의 소와 양을 절대 해치지 말아야만 고향에 갈 수 있다고 한다.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항해를 한 오디세우스는 헬리오스의 섬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되지만 계속되는 굶주림 때문에 부하들이 소를 잡아 제물과 식량으로 사용하면서 키르케의 조언을 어기게 된다. 자신의 제물을 맘대로 사용한 것에 화가 난 헬리오스의 뜻에 따라 제우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폭풍과 벼락으로 벌을 내려 항해도중 부하들은 모두 죽고 오디세우스는 혼자 바다를 떠돌다가 칼립소가 사는 곳에 도착한다.제 13장. 이타케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오디세우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 그에게 선물을 주고 항해를 돕는다. 이타케 섬의 포르키스 항구에 도착한 파이아키아 인들은 잠든 오디세우스와 재물들을 놓고 돌아간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허락을 받은 후 돌아가는 파이아키아 사람들의 배를 돌로 만들어 버린다. 잠에서 깬 오디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을 만나 가족들에게 돌아갈 방책을 의논한다. 아테네는 오디세우스를 거지 행색을 한 노인으로 만들어 아무도 못 알아보게 한 다음 돼지지기에게 가도록 하고 자신은 텔레마코스를 데리러 라케다이몬으로 간다.제 14장. 거지로 변한 오디세우스자신의 옛 하인인 돼지지기(에우마이오스)에게 간 오디세우스는 낮선 손님으로서 길에 제단 옆에서 만난 멜란티오스에게 모욕을 듣기도하고 대궐 앞에서 오디세우스의 개 아르고스를 보기도 한다. 주인을 본 아르고스는 기뻐한 뒤 곧 죽음을 맞이한다. 에우마이오스가 먼저 청혼자들이 있는 대청으로 들어가자 텔레마코스는 그에게 오딧세우스에게 바구니를 주고 청혼자들에게 구걸을 하게 하라고 말한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아테네가 구걸하면서 청혼자들 중 착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해두라고 조언한다. 안티노스는 구걸하는 노인 오디세우스를 보며 돼지지기에게 거지를 끌고 왔다고 화낸다. 몇몇의 청혼자들은 빵과 고기를 주자 오디세우스는 안티노스에게 구걸 했지만 안티노스는 끝까지 화를 내며 거절한다. 이 모습을 본 페넬로페는 구걸하는 노인이 불쌍해서 그가 자신을 찾아오도록 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청혼자들 때문에 지나갈 수가 없으니 저녁때 만나서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페넬로페에게 전해준 에우마이오스는 텔레마코스에게 농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뒤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간다.제 18장.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의 곤욕심술궂고 술주정뱅이인 거지 이로스(아르나이오스)는 대궐에 나타나 오디세우스에게 나가라고 위협한다.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하자 안티노스와 사람들은 둘 중 이긴 사람에게 저녁식사인 염소 순대를 나누어 주기로 한다. 아테네는 오디세우스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고 이로스는 두려움에 떨며 싸움에서 진다. 아테네 여신은 페넬로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청혼자들 앞에 서게 하고 텔레마코스의 행실을 꾸짖어 모두를 동요케 한다. 또한 페넬로페는 청혼자들에게 관습과 예절대로 선물을 가져오라고 하여 진귀한 것들을 받고 2층 내실로 들어간다. 청혼자들은 대청에서 노래와 춤을 추느라 하녀들에게 그 옆에서 횃불로 비추고 라고 하는데 오디세우스가 이를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다. 하녀 중에 조롱하는 자가 있었지만 화를 내고 횃불을 들고 있는데 아테네가 그의 복수심을 더 불태우기 위해 에우리마코스가 오디세우스를 모욕하도록 한다. 둘 사이에 다툼이 더해지며 대청이 시끄다.
1율리시스1. 작가 소개 - 제임스 조이스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1882년 2월 2일 출생, 아일랜드인▶대표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스』『피네간의 경야』▶1904년 6월 16일 노라 바나클(Nora Barnacle)과의 만남→율리시스의 시간적 배경인 블룸스데이(Bloomsday)▶망명 작가▶1941년 1월 13일 59세의 나이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2.작품 배경-아일랜드의 역사아일랜드가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침탈과 내란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문학 속에 민족주의가 들끓던, 이런 신조조차도 비판하고 자유를 추구하던 지간에 조국의 아픈 역사의 한 조각을 표현하려던 그들만의 독특한 문학은 세계가 인정하고 사랑할 만하다.이처럼 아일랜드의 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역사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일랜드는 내란이 많은 국가이다. 최근까지도 영국과의 대립으로 잦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걸 보면 분쟁의 아픔이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현재의 아일랜드는 영토의 일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북아일랜드는 현재도 영국령에 속하고 그 외의 지역은 1921년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일랜드공화국으로 굳어졌다.영국의 침탈은 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1534년에 영국의 헨리 8세가 아일랜드를 침략하면서 아일랜드는 약 400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헨리 8세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를 영국인들의 믿는 성공회로 개종시키기 위해 영국의 성공회 신자들을 북아일랜드로 이주시켰다. 이 일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내에서 신교도(성공회)와 구교도(가톨릭)간의 분쟁이 시작되며 영국의 지배와 아일랜드의 독립의 문제로까지 번졌고 결국 끊임없는 남북 간의 분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신교도와 구교도 간의 대립은 1845년 일명 아일랜드의 ‘감자기근’에 의해 더욱 깊어졌다. 당시 아일랜드는 병충해 때문에 감자의 수확이 크게 줄어 대기근이 발생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영국 에는 주인공 스티븐 더덜러스와 의대생 벅 멀리건, 민담을 연구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온 옥스퍼드 대학생 헤인즈가 함께 산다. 스티븐에게 종교(가톨릭)는 질서이면서 세속의 짐이다. 그는 어머니가 임종 직전에 기도하기를 원했으나 끝내 거절하여 큰 죄의식을 가졌는데 멀리건은 이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괴롭힌다. 멀리건과 스티븐, 헤인즈가 함께 아침을 먹는 중, 우유를 배달하는 노파가 방문한다. 노파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긍정하는 민담에서 따온 인물이지만 여기서는 주눅 들고 줏대 없는 인물로 표현되어 과거에 의존하는 문예부흥운동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면모를 볼 수 있다. 세 사람은 탑을 떠났고 헤인즈와 스티븐은 이야기를 나눈다. 헤인즈는 반유대주의를 내세우는 파시슴적인 정치색을 띠며 영국이 아일랜드를 침탈한 사실을 정당화하는 인물이다. 결국 스티븐은 아일랜드의 약탈자인 영국에 해당하는 헤인즈와 폭군에 해당하는 멀리건이라는 정복자들의 압력에 의해 자신이 세를 내는 집 열쇠를 내주고 달키 학교로 향한다. 스티븐의 마지막 모습은 어머니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사람들의 행패에 떠밀려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텔레마코스와 대응해 볼 수 있다.2장. 네스토르: 달키의 초등학교, 오전 10시달키 학교에서 스티븐은 수업이 파하여 학생들이 하키 연습을 떠나자 뒤쳐진 학생 사전트를 돕는다. 그는 부족한 아이여도 감싸 안았을 사전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스티븐은 학교 교장인 가레트 디지에게서 월급을 받고 일간신문의 편집자에게 소의 아구창에 관한 편지를 전해 줄 것을 부탁받는다.여기서 디지씨는 오디세이아의 네스토르 장군과 비교할 수 있다. 네스토르는 오디세우스의 친한 동료이자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렸던 장군이다. 그러나 텔레마코스에게는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행방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주지는 못한다. 디지씨 역시 부하들 대신 아이들을 거느리는 교장이다. 아구창에 걸린 소를 치료하려는 모습은 민족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일랜드 세입에 손실을 주는 수입 금지를 막으려는 의도일 뿐’기법이 잘 드러난다. 고정된 사고의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경험의 이미지, 유년 시절의 모습, 옛 노래, 학교, 파리에서의 대화의 단편들이 뒤엉켜 나타나는 것이 프로테우스의 변신과 같다. 또한 프로테우스의 변화를 견딘 메넬라오스가 오디세우스의 정보를 얻었듯 이장의 끝부분에서 스티븐이 어깨 너머의 보트를 바라보는 것은 율리시즈의 밝은 주제를 예고한다.4장. 칼립소: 이클레스가 7번지, 오전 8시리오폴드 블룸은 아침에 아내를 위하여 식사를 마련한다. 블룸은 자신이 아침거리를 위하여 모퉁이를 돌아 돼지콩팥을 사 가지고 돌아와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딸 밀리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다. 그는 아내 몰리와 내통하는 보일런이 오후에 아내를 방문해 올 것을 알게 된다. 오전에 그는 아내에게서 벗어나 대중탕을 갔다가 옛날 친구인 패디 디그넘의 장례식에 참여할 예정이다. 블룸은 집 밖 화장실을 사용하며 근처의 조지 성당에서 들려오는 8시 45분의 종소리를 듣는다.율리시스의 오디세우스 격인 블룸은 오디세우스가 요정 칼립소에게 7년 동안 포로로 사로잡혀 살듯이 아내에게 잡혀 살고 있다. 아침은 몰리의 기호에 맞추어 까다롭게 준비하고 아내의 불륜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결국 블룸은 스티븐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에 봉착해 있다. 마치 스티븐이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심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5장. 로터스-이터즈: 목욕탕, 오전 10시로터스-이터스라는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로터스 열매를 먹고 귀향하려는 현실을 잊어버린다. 블룸또한 마찬가지다. 이 장 내내 거리를 거니는 블룸은 여러 생각의 단편들을 통해 마치 약에 취한 듯 나른한 느낌을 자아낸다.블룸은 마사라는 타이피스트와 염문을 교환하고 있으며 그녀에게는 헨리 플라우어라는 익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목욕탕에 가기 전 우체국에서 마사의 편지를 읽는다. 그와 정신적 애인인 마사와의 편지는 고독한 블룸의 모습을 옅볼 수 있으며, 이는 곧 현대인의 고독을 의미하기도 한다. 블룸은 목욕탕에 다 사라진다. 특히 이 장에서는 그가 동료들로부터의 구박 때문에 철저한 외톨이로 그려지지만, 여전히 마음의 평정은 유지하고 있다.7장. 아이올로스: 신문사, 정오블룸과 스티븐은 서로 반대편에 있었지만, 정오가 될 즈음에는 둘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디그넘의 입관 후 블룸은 프리먼즈 저널지의 편집장과 알렉산더 키즈를 위한 광고 갱신에 관하여 의논한다. 같은 사무실에서 스티븐은 디지의 편지를 전한다. 여기서 블룸과 스티븐은 서로 대조된다. 스티븐은 디지씨의 편지를 게재하는 것을 약속받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블룸은 광고 갱신에 실패하고 동료들로부터 소외당하며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블룸의 모습은 아이올로스를 만났던 오디세이아와 유사하다. 오디세이아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에게 바람을 선물 받아 안전하게 귀향할 수 있었지만, 호기심 많은 부하가 바람 자루를 열어 아이올로스 섬으로 행로가 되돌아갔다. 블룸 또한 초반에는 좋았으나 결국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대응된다.8장. 레스트리고니언즈: 더블린 한복판, 오후 1시블룸이 도서관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 그는 거리에서 YMCA청년으로부터 한 선교사의 방문을 알리는 전단을 받으며 길가의 여러 모습들을 예리하게 관찰해 나간다. 도서관이 가까워지자 버튼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할 생각을 하나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는 손님들을 보니 불결하여 데이비 번이라는 깨끗한 식당으로 간다. 이 장면이 레스트리고니언즈라는 장의 이름과 걸맞는다고 할 수 있다. 레스트리고니언즈는 오디세우스가 귀향 도중 잡아먹힐 뻔했던 식인 괴물로 이 괴물과 상통하는 버튼 식당의 손님들은 정떨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블룸은 장님 소년이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고 도서관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 보일런을 목격한다. 거리를 관찰하면서도 끊임없이 아내와 보일런과의 정사를 생각해온 그는 보일런과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국립박물관으로 급히 들어간다.9장. 스킬라와 카립디스: 국립도서관, 오후 2시스티븐은 신문사에서 나와 국립도서관에서 몇몇 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조이스 소설의 소우주, 율리시스의 축소판 대장정에 해당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소설 전반에 걸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큰 사건들은 아니다.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첫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첫째 장면은 스티븐이 다녔던 초등학교인 콜론고우즈 우드의 전 교장인 존 콘미 신부의 행로가 시작된다. 마지막 장면은 도시의 남부에서 개최되는 바자에 참가하기 위한 아일랜드 총독의 마차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위의 두 인물은 아일랜드를 속박하고 있는 핵심적 외부 세력인 로마 가톨릭 교회와 영국을 상징한다.11장. 세이렌: 오먼드 주점, 오후 4시블룸은 정신적 애인인 마사에게 답장을 쓰기로 결심한다. 문방구에서 필기구를 사고 있는 동안 보일런을 보자 블룸은 그를 뒤따르기로 마음먹지만 오먼드 주점에서 스티븐의 숙부인 리치 고울딩을 만나 간이식사를 하기 위하여 그곳에 남아 그를 더 이상 추적하지 않는다. 그는 바로 곁의 주점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곳에는 스티븐의 부친인 사이먼 더덜러스가 그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와 있다. 이 장이 거의 끝날 무렵 그는 보일런이 자기의 아내인 몰리에게 거의 도착한 것을 의식하고 몹시 불안해하며 그곳을 떠난다. 그는 법원과 또 다른 주점에서 몇몇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갖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오늘 오전에 장례를 치른 상가를 방문할 참이다. 블룸은 이 장에서 그의 아내의 정사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하지만, 그의 초기의 결심에 따라 이 일에 간섭하려 들지 않는다.이 장에서는 오디세이아와 조응관계가 내용 전반에 걸쳐 퍼져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세이렌에 해당하는 노래를 듣는 블룸이 실제로 이 장이 진행되는 동안 보일런에게 아내를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블룸의 딱한 처지를 반영하기도 한다.12장. 키클롭스: 바니 키어넌 주점, 오후 5시블룸은 디그넘의 상가에 동행할 커닝엄과 파우어를.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용한 뉴스 콘텐츠 사례 분석-방송사 서브 페이스북 페이지의 서사 구조를 중심으로1. 문제제기대중 매체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TV가 불과 몇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20세기 인류의 발명품인 것을 보면, 인류사 전체에서의 대중 매체는 인간이 아주 최근에서야 발명해낸 신제품이다. 그러나 대중 매체는 고도의 과학기술의 발전과 결합하며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TV나 라디오,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조차도 올드미디어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최신 발명품인 뉴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뉴미디어 환경이 시작되자 미디어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인터넷 이용의 보편화,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같은 모바일 미디어의 등장, 그리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으로 미디어소비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정재민·박종구, 2012). 특히 한국언론연감(2017)에 따르면, 2017년 11월 기준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4,852만 852명을 기록하며 국민 10명 중 9명 수준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는 미디어 이용 행태가 뉴미디어인 모바일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의 경우 2013년 기준 하루 접속자 수가 6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된 것을(황유선, 2014) 보면, 모바일 디바이스의 증가로 SNS의 영향력이 현대 미디어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뉴미디어 시대는 저널리즘 환경 또한 뉴미디어화 시켰다. 언론수용자 의식조사(2017)에 따르면, 모바일 인터넷을 통한 뉴스 이용률이 2014년 59.6%에서 2016년 73.2%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데, 이는 뉴스 플랫폼으로 모바일 디바이스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서 종이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대중교통 어디에서도 종이 신문을.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이 자사의 전통적인 보도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그대로 게시하거나 하이퍼링크를 게시한 뒤, 이용자가 클릭하면 해당 보도 영상이나 글로 접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전략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기사의 노출 수위를 높여 자사 뉴스들을 이용하도록 하려는 전략으로 포털에 언론사 홈페이지에 있는 뉴스 콘텐츠를 그대로 제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전통적인 뉴스 기사들을 그대로 소셜 미디어라는 플랫폼에 노출만 시키는 전략인 셈이다.SBS와 JTBC의 페이스북 페이지 활용 방식은 대부분의 언론사들과는 조금 다르다. 두 방송사는 자사의 전통적인 뉴스 콘텐츠를 소셜 미디어 이용자에게 그대로 노출시키는 기본 페이스북 페이지도 소유하고 있으면서 소셜 미디어를 위한 개별 뉴스 콘텐츠를 새로 창작하여 게시하는 서브 페이스북 페이지도 가지고 있다. SBS는 ‘스브스 뉴스’와 ‘비디오 머그’, JTBC는 ‘소셜 스토리’와 ‘트리거’라는 서브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위한 새로운 뉴스 콘텐츠가 게시되며 서브 페이지임에도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페이지 내 각각의 뉴스 콘텐츠들은 언론사가 보도하던 방송과는 별개로 취재 및 제작되고, 기존 뉴스의 형식을 탈피한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내용과 구성 방식을 지녔다. 분명 ‘뉴스’페이지에 게시되는 엄연한 ‘뉴스 콘텐츠’라지만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내용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해당 서브 페이스북의 뉴스 콘텐츠들은 크리에이터 같은 사람들이 취재와 제작을 담당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뉴스에서는 등장하지 않을 법한 ‘인간적 흥미’(이종혁·길우영·강성민·최윤정 ,2013)를 핵심으로 다룬 경우도 많다. 이처럼 최근 SBS와 JTBC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여 새로운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동향은 기존의 미디어 기업들의 브랜드 명성보다 개별 콘텐츠의 형에 대해 깊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특히 연구 대상의 모든 특성과 양상을 분석하다보면 대상의 특징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기 때문에 각 방송사 페이스북 페이지 속 뉴스 콘텐츠들의 ‘서사성’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구하며 기존 저널리즘의 양상과 서사적 측면에서 어떤 부분이 다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탐구할 것이다. 따라서 문헌 검토에서는 뉴미디어와 뉴스 콘텐츠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며 연구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 이외에도 ‘서사’의 개념을 정리하여 연이 연구가 다루고자하는 ‘서사’란 무엇인지 이해하여 뉴스 콘텐츠의 서사성에 관해 연구가 필요한 이유와 뉴스 서사 연구가 함의하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1) 뉴미디어 뉴스의 현황연구에 앞서 뉴미디어 뉴스의 현황에 대해 기존 문헌들을 조사하며 보편적으로 뉴미디어 뉴스가 갖는 특성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페이스북 페이지 또한 뉴미디어의 일종이기 때문에 뉴미디어의 특성을 통해 페이스북 페이지의 일반적인 특징을 선행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관련 연구들은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뉴미디어 뉴스 환경의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뉴미디어는 뉴스 이용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지며 기자의 전문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Shoemaker & Reese, 2010). 예컨대 김경희(2012)에서는 이용자의 뉴스 소비로 ‘공감성’과 ‘이면성’, ‘인간적 흥미성’의 뉴스가치가 부각되었다. 이용자들은 뉴스 읽기 행위를 통해 미디어의 의제설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었으며, 기사를 작성해 인터넷 상에 출판함으로써 직접적으로도 미디어의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뉴스 이용자들이 능동성이 그만큼 강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강진숙과 김지연(2013)은 웹2.0 시대에 스마트폰과 결합한 SNS에서는 스마트폰과 정보 생산과 분배의 주체가 이용자 개인이 되거나 능동적 참여자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만큼 이용자들의 역할은 증가하였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단독으로 연구한 경우가 많지는 않았지만, SBS의 페이스북 뉴스 페이지 두 가지를 단독으로 분석한 기존 연구(윤행석·김경수, 2017)가 있었다. 이 연구는 지상파 방송사 뉴스 가운데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SBS뉴스의 서브 페이지인 ‘비디오머그’와 ‘스브스뉴스’의 상위 포스팅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용자들의 복합적인 감정표현은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분석한 연구이다. 물론 이 연구가 SBS의 ‘비디오 머그’와 ‘스브스 뉴스’ 이용자의 감정 표현에 대해 분석했기 때문에 뉴스 콘텐츠 자체의 분석이 아니라는 점과 통계적 수치를 도출해 내는 양적 연구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보다 콘텐츠 자체의 심층적 분석을 시도하는 이 연구와는 차이점이 있으나, 연구 대상이 같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대상의 특성들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본 연구들 중 하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는 정치, 사회, 국제, 스포츠등 대주제의 포스팅 범위가 폭넓은 편이었다. ‘스브스뉴스’는 사회 대주제의 포스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한 ‘비디오머그’는 정치, 국제, 사회 대주제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만, ‘스브스뉴스’는 사회 대주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페이지인지와 관련 없이 사건 관련 콘텐츠에서는 이용자들의 부정적인 감정 표출이 많고, 인물 관련 콘텐츠에서는 긍정적인 감정 표현(감동)들이 많다는 결과를 보도했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의 기본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페이스북의 서브 페이지에 관한 연구는 아니었지만 YTN의 이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뉴스의 변화하는 서사전략을 조사한 연구(조영권·나미수, 2007)도 있었다. 이 연구는 텔레비전 뉴스를 하나의 서사물로 보고 새로운 뉴스 형식으로 평가되고 있는 YTN 의 서사전략을 분석하여 새로운 뉴스미디어가 어떠한 정치현실 구성에 기여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그 결과 현대 사회의 뉴스는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방식, 즉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고 구성하는 비서사 장르처럼 보일지라도 서사는 늘 존재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뉴스 콘텐츠도 서사가 존재하는 하나의 ‘서사물’이다. 다만 서사성이 크게 강조가 되었는지 또는 잘 드러나지 않았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뉴미디어의 뉴스는 사적이고 스토리텔링이 많다는 점에서 서사성이 더욱 짙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서사를 보통 ‘일련의 사건들’이라고 정의하기는 하지만 서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프리퀄(prequel)’과 같이 시작이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며 서사가 끝나지 않고 계속될 수도 있고, ‘서스펜스(Suspense)’와 같이 ‘종결의 결핍’으로 인해 전개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서사 종류도 있다(H. Porter Abbott, 2002). 이러한 서사들의 특성은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뉴스 콘텐츠들도 하나의 서사물이자 서사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서사 전략들을 면밀히 조사하면 문학 장르들의 서사 구조들과 유사한 점이나 새로운 서사구조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표면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의 뉴스 콘텐츠들을 보더라도 기존 저널리즘과는 다르지만 독특한 서사 구조가 보일 때가 있다. 일반적인 뉴스라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육하원칙에 따라 제공한 뒤 종결하겠지만 페이스북의 뉴스 콘텐츠는 뉴스 말미에 종결이 없고 마치 추리 소설처럼 뉴스를 구성하며 ‘서스펜스’와 유사한 서사 구조를 보인다거나, ‘자취방 구하기’와 같은 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시리즈가 구성되면서 방을 구하기 이전의 상황을 나중에 속편으로 보여주는 등 ‘프리퀄’과 유사한 서사 구성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뉴스를 표면적으로 파악했을 때 알 수 있는 것들이고, 심층적으로 자료를 분석하다보면 새로운 서사 구성이나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3. 연구문제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문제를 설정한 결과 다음과 같다.연구문제1 SBS와 JTBC의 페이스북 페이지 속 뉴스 콘텐
이모티콘 기호에 대한 연구Ⅰ. 서론1. 연구 배경2. 연구 목적 및 범위Ⅱ. 선행 연구1. 이모티콘의 정의와 유래2. ‘이모티콘’ 용어에 대한 논의Ⅲ. 이모티콘의 과거와 현재1. 과거 양상2. 현재 양상Ⅳ. 이모티콘의 특징1. 다양성에 따른 비경제성2. 자의성3. 유희성4. 상업성5. 유행성Ⅴ. 결론-이모티콘의 발전 방향Ⅰ. 서론1. 연구 배경21세기 디지털 사회로 도래하기 전, 세계는 지금에 비하면 아날로그 적이었다. 근대 사회가 산업 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회가 많이 변했다 해도 여전히 현대 사회만큼 공간을 초월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주장하는 ‘내파(implosion)’의 시대가 시작된 21세기에는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의 마을과 같은 형태의 ‘지구촌(global village)’이 형성되어 인류는 지구라는 넒은 공간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지구촌 사회가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통신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전화의 발명과 더불어 휴대폰, 현대의 스마트 폰에 이르기까지, 통신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아날로그 사회의 면대면(face-to-face) 소통방식을 공간을 초월한 전지구적인 규모의 소통으로 탈바꿈 시켰다. 과거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직접 서로가 만나야 했다. 따라서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간의 위치가 이동 가능한 곳이어야 했고 이동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통신 기술이 발달한 현재는 다르다. 소규모 소통을 탈피한 현대 사회는 소통 대상의 위치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 국가, 심지어 지구를 넘어선 위치에 있어도 연결될 수 있게 되어 꼭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서로간에 소통이 가능해졌다. 결국 한 사람당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한하게 늘어날 수 있게 되어 그만큼 인류의 삶에 소통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소통의 증가로 통신 도구는 더욱 더 그 활용성이 증가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듬기와 유사한 ‘터치’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통신이 더욱 편리해진 인류는 사교 관계망을 더욱 넓혀주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카오톡, 라인, 페이스 북, 인스타크램 등이 이에 해당한다.sns의 시작은 엄청난 소통의 시대를 이끌며 이모티콘을 글자의 소통을 돕는 보조적 개념에서 중심적인 소통 도구로 만들었다. 부드러운 터치로 모든 것이 입력 가능해진 간편함 속에서 인류는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표현들은 여러 번 터치해서 글자 하나하나를 입력해야 하는 기호 보다는 한번의 터치로 여러 표현을 해낼 수 있는 이모티콘이 급부상했다.과거 한때에는 음성인식 기술의 발달로 문자소통 보다는 음성소통이 발달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문자소통은 카카오톡, 라인 등을 통해 끊임없이 발달하였고 보조적 소통방식이었던 이모티콘은 현재 소통방식에서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소통 방식이 되었다. 따라서 글자만큼 발달한 이모티콘이라는 기호는 언어와는 별개로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2. 연구 목적 및 범위언어 기호만큼 소통의 중요한 방식으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이라는 이유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모티콘의 연구를 통하여 이모티콘의 특성과 현재 모바일 소통방식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통해 기호라는 것이 언어 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배워볼 것이다.이모티콘은 각 나라나 소통하는 앱, 사이트에 따라 사용법이나 특성이 매우 다양하다. 이모티콘은 언어에 비하면 비교적 작은 단위로 묶여서 공용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연구의 범위를 언어처럼 넓게 잡거나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연구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모티콘의 전반적인 조사는 필수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본격적인 이모티콘의 특성과 같은 조사에 있어서는 그 범위를 우리나라, 특히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카톡과 네이버 정도로 범위를 좁혀 그 안에서 통용되는 그림 형태의 이모티콘을 집중적으등장하였기 때문에 의미를 모르면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초반의 이모티콘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문자를 활용하여 이모티콘을 만들었기 때문에 각 언어마다 이모티콘의 차이도 컸다. 따라서 같은 언어를 쓰는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주로 이용되었으며 그들만의 소통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때문에 과도한 이모티콘의 사용은 우리말 우리 글을 파괴한다는 비판적인 시선도 많았다.2. ‘이모티콘’ 용어에 대한 논의‘이모티콘(Emoticon)’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주로 가로로 기울어진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동양에서는 주로 세로로 된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그래서 일본만 보아도 동양에서 쓰이는 세로 형 이모티콘을 얼굴 글자라는 의미를 일본어 ‘가오모지(顔文字, かおもじ)’라 부른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모티콘의 순화어인 ‘그림말’이라는 단어가 2005년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 자료집에 등장했다. ‘그림말’은 메타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으로, 문자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감정을 나타내는 기호들을 일컫는다.이모티콘이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라는 것을 달리 해석하면 이모티콘은 감정만을 표현하는 아이콘이라는 의미다. 이모티콘이라는 용어가 생성 된 과거에는 분명 감정 표현을 목적으로 두고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는 이모티콘이 감정표현을 주된 목적으로 두고 사용되지 않는다. 해외는 어떤 실정인지까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의 이모티콘은 문자를 기반으로 하지도 않고 그림 위주로 다양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모티콘이라는 용어가 너무도 대중화 되어서 사실 용어를 수정한다는 것이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사용 실태를 보아서는 그림위주의 의사표현 언어로서 ‘그림말’이라는 순화어가 적당한 것 같다.Ⅲ. 이모티콘의 과거와 현재1. 과거 양상이모티콘은 문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이모티콘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정 이외에도 다양한 표정을 그려넣어 이용되고 있다.2. 현재 양상초기의 이모티콘 양상은 현재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자 뒤 간단한 ‘^^’표기와 같은 경우는 좀 더 부드러운 언어 표현을 위해 자주 이용된다. 특히 키보드든 자판기든 어디에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연령층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림으로 발전한 노란 이모티콘들도 아이폰의 기본 이모티콘으로 삽입될 만큼 전세계 공용 이모티콘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이러한 초기 이모티콘 외에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이모티콘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카카오와 네이버(라인)를 보면 초기 이모티콘의 사용보다는 각 앱과 사이트에서 출시한 이모티콘들이 크게 인기를 얻으며 급부상하고 있다.다음과 같은 이모티콘들은 사용자들끼리의 소통과정에서 이용하기도 하지만 캐릭터 산업으로 번지기도 하여 인형이나 문구류로 출시하기도 하며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현재 이모티콘들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림 위주로 이루어 진다. 기존의 노란 이모티콘에서 더 나아가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와 예쁜 색감이 더해진 그림들이 이모티콘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 그림들이 워낙 다양한 모양새로 등장하면서 감정(emotion)표현 이상의 것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기쁘고 슬픈 기본적 감정 이외에 ‘배고픔’, ‘보고 싶음’이나 의미 없는 말장난, 질문, 요청 등 좀 더 복잡한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언어가 없어도 이모티콘만 있다면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따라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그림 이모티콘의 사용이 거의 고정화되면서 아무리 새롭고 다양한 이모티콘이 사용되어도 서로간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다양한 이모티콘들이 생겨남에 따라 카카오톡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모티콘을 모으는 사람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쁘고 귀여운 이모티콘이 새로 출시되면 구매하여 대화에서 사용하는 것을 취미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이모티콘은 상업적 용도로서도 꽤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이모티콘의 수도 증가하게 되고 비슷한 이모티콘 형태들도 넘쳐나게 되면서 경제성은 떨어지게 된다.카카오톡의 슬픔을 나타내는 이모티콘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매우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예시 이외에도 카카오톡에만 있는 우는 모양새의 이모티콘은 수 백 가지가 넘어간다. 심지어 같은 캐릭터 이모티콘 내에서 표현하는 의미가 같은 이모티콘도 보인다. 이는 카카오톡 외에도 라인과 같은 곳의 이모티콘들 또한 마찬가지이다.현재 이모티콘은 경제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보통의 언어라면 동일한 의미를 가진 말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몇 가지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모티콘은 같은 의미의 이모티콘이 많아지는 것과 관계없이 무한하게 늘어난다. 이는 이모티콘이 가지는 매우 모순적인 특성이다. 분명 이모티콘은 글로 표현하기엔 길고 복잡한 내용들을 간결하게 축약시켜 한번에 표현해주는 특성이 있다. 특히나 그림 이모티콘이 등장하면서 복잡한 인간의 대화를 이모티콘 한 개의 클릭 한번으로 표현하게 해준다는 점은 매우 간결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 이모티콘이 언어와 같은 소통을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없이 무한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는 경제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매우 모순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2. 자의성자의성이란 언어에서 소리와 의미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은 특성을 말한다. 즉 언어의 대표적 특성에 해당한다. 우리가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애플’ 일어로는 ‘링고’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비언어적인 이모티콘이 이러한 언어의 특성인 자의성을 가진다는 것이 낯설게 들릴 수 있으나 현대사회의 이모티콘의 상황을 보면 자의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신 이모티콘은 소리와는 관련성이 적다는 점에서 자의성이라는 특성의 정의가 수정되어야 한다. 이모티콘의 자의성이란 이모티콘의 그림과 의미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모티콘이 폭발적으로 다양화 되면서 사용자들이 선택.
수업자홍길동일시yyyy.mm.dd대상자고등 전 학년장소ㅇㅇ학교단원명단문과 복문학습목표?단문과 복문을 구분할 수 있다.?복문의 종류와 특징을 말할 수 있다.학습자료판서, 활동지학습단계교수?학습 활동교사학생도입인사인사 및 학습 분위기 조성인사 및 학습 준비단원명 확인단원명 확인단원명 확인동기유발▶판서된 문장을 통해 수업에 대한 흥미 유발1. 영희가 책을 읽는다.2. 철수는 밥을 먹고 영희는 책을 읽는다.-각각의 문장들은 주어와 서술어가 몇 개씩 있는가?▶판서된 문장을 보고 질문에 답하며 수업에 대해 흥미 갖기-첫 번째 문장은 주어, 서술어가 모두 한 개씩 있고, 두 번째 문장은 주어, 서술어가 각각 2개씩 있어요.학습내용안내▶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몇 번 나타나느냐에 따라 문장을 나눈 단문과 복문에 대해 학습할 것임을 안내▶학습 내용 확인학습목표제시▶학습 목표 제시▶학습 목표 확인전개단문과 복문개념▶동기유발에서 사용했던 문장을 상기시키며 단문과 복문 개념 소개-단문은 주술관계가 한 번 나타나는 문장이다.-복문은 주술관계가 두 번 이상 나타나는 문장이다.▶단문과 복문 개념 정리 및 확인국어 문법 교안 (학습 지도 계획)학습단계교수?학습 활동교사학생▶단문과 복문의 개념을 확실히 학습하기 위해 질문-‘아이들의 웃음이 선생님을 기쁘게 했다.’는 단문인가 복문인가?-그 이유는 무엇인가?▶개념을 완벽히 정리-단문과 복문을 따질 때의 주술관계는 의미상의 주술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인 주술관계를 말하는 것이다.▶교사의 질문에 답하기-단문일 것 같아요-‘아이들의 웃음’ 때문에 주술관계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관형어가 체언을 꾸미는 것이기 때문이에요.▶단문과 복문의 개념을 완벽히 학습복문의 종류문장→단문→복문→문장 속의 문장(:명사절, 서술절,관형절, 부사절, 인용절)→이어진 문장(:대등접속, 종속접속)▶복문의 종류를 판서를 통해 정리하고 각각의 종류를 설명▶복문의 종류를 학습문장속의 문장▶이질감이 있는 절을 고르도록 하여 절 표지를 설명-문장 속의 문장에서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느 것인가?-이유는 무엇인가?▶문장 속의 문장을 예문을 만들도록 하여 절 표지를 구분하도록 지도-명사절: -(으)ㅁ, -기/-느냐, -는지-서술절: 절 표지가 없음-관형절: -(으)s, -(으)ㄹ, -는, -던-부사절: -이,-게,-듯이-인용절: -고, -라고, 하고▶질문에 답하며 절 표지에 대해 학습-서술절과 인용절이 이질적이에요-서술절은 명사절의 -(으)과 같이 절을 나타내는 표식이 없고 인용절은 종결어미 다음에 절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기 때문이에요.▶예문을 만들어 보며 문장속의 문장의 절 표지를 확인학습단계교수?학습 활동교사학생▶질문과 설명을 통해 각 절의 특징을 설명-명사절의 ‘-(으)ㅁ’,과 ‘?기’의 차이는 무엇인가?-서술절을 절이 아니라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1.지금 밥 먹을 사람은 1층으로 오세요.→사람이 밥을 먹다2.나는 영희가 왔던 기억이 없다.→X-1번 문장은 관계관형절, 2번 문장은 동격관형절인데 이 두 관형절의 차이는 무엇인가?-‘-이’에 이끌리는 부사절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질문에 답하며 각 절의 특징을 학습-‘-(으)ㅁ’은 과거와 관련한 기정을 나타내고 ‘?기’는 미래와 관련하여 미정을 나타내요.-서술절은 서술어 기능 외에 다른 기능이 없고 절의 표지가 없어서 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어요.-관계관형절은 수식받는 체언이 수식하는 관형절의 한 성분이 될 수 있지만 동격관형절은 수식하는 문장의 한 성분이 될 수 없어요.-‘-이’는 부사화 접미사로 품사를 바꾸어 주므로 절이 될 수 없는데 부사절로 보는 문제점이 있어요.이어진 문장▶예문을 통해 대등과 종속 접속을 구분하도록 지도1.나는 학교에 가고 동생은 유치원에 간다.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과 양극화(Polarization)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 TED 강연의 ‘필터버블(Filter bubble)’과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는 최근 미디어 환경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용자들의 정보 선택의 폭이 증가(H Lee & KS Hahn, 2018)했음에도 불구하고, SNS의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에 의해 이용자가 원하는 내용으로만 필터링 된 정보를 접하게 되어 필터버블에 갇히는 현상은 결국에는 한쪽 의견으로 치우친 양극화(Polarization)를 초래하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Pariser, 2011; Sunstein, 2017; Michael A, Myiah J & Jay D, 2018). 물론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은 SNS의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타의적 노출 때문만은 아니다. 페스팅거(Festinger, 1957)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에 따르면 미디어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인지 부조화 상태를 줄이기 위해 선택적 노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Stroud, 2014), 정보의 홍수를 이루는 온라인 환경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인지 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선택적 노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더불어 그간 많은 학자들이 인터넷 매개 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할 수 있는 선택적 노출의 결과의 한 유형으로 양극화의 한 유형인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에 주목해온 것을 보면(노정규?민영, 2012),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는 디지털 매체 환경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이라 생각한다.이렇듯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는 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많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적 노출 연구의 결과가 곧 양극화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원인과 결과라는 일 방향적인 인과관계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게 이루위한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일반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선택적 노출이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전제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아야 하며, 양극화가 선택적 노출을 야기한다는 역 인과관계(Reverse causal direction) 또한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어느 방향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스트라우드(Stroud, 2010)의 연구가 진행되었다.연구는 2004년 미국 대선을 바탕으로 한 NAES의 설문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했으며, 자료는 2004년 6월~11월까지의 횡단면(Cross-sectional)적인 데이터와 선거 기간 동안의 4가지의 패널조사(Panel survey)로 나뉘었다. 이러한 데이터는 회귀분석(Regression)을 통해 정파적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 사이의 횡단면적 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고, 시간에 따른 회기분석을 통해 선택적 노출이 양극화를 야기하는지, 또는 그 반대의 인과관계를 가지는지를 각각 확인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는 선택적 노출은 양극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연구 결과는 기존 연구들에서 당연시 여겨왔던 ‘선택적 노출이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제를 지지하는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문헌들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변칙 사항을 찾았다거나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은 아니다. 극화가 미디어 노출이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효과의 유형(노정규?민영, 2012)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함의를 가진다. 결과만 따지고 보면 동질적인 정치 성향의 집단과 정치적 양극화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시 여기며 증거가 불충분 한 채로 논의되어 왔던 부분을 짚어보고 확인함으로써 이론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선택적 노출에 대한 측정을 다양한 매체(신문, 라디오, 케이블, 인터넷)를 기반으로 진행했다는 점, 그리고 패널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선택적화를 확인한 연구가 있다. 물론 양극화 현상을 결론으로 도출한 연구들은 많겠지만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Michael W, 2019)는 미국 대선의 소셜 미디어의 양극화현상을 확인하려 했다는 점, 그리고 시점 별로 양극화 현상을 확인한 것이 이후 소개할 논문과 매우 유사한데 전혀 다른 결과(양극화 vs 탈극화)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논문은 트럼프와 힐러리가 출마했던 2016년 미국 대선을 바탕으로 두 시기(2016년 6월, 11월)의 트위터 계정 데이터를 모아서 편향적, 또는 비편향적인 유저들의 네트워크를 분석하였는데 정치적으로 편향된 유저들의 동질화가 강화되고 결국 이들의 네트워크가 각자의 편향된 방향으로 양극화 되는 현상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생각해온 가장 당연하고 일반적인 결과로 쉽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흥미롭게도 같은 국가에서 비슷한 방식의 연구를 진행했어도 위의 보편적 논의와 전혀 반대의 결과를 얻기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했다.RSM 모델(reinforcing spirals model)은 선택적 노출이 양극화 외의 다른 태도적 결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해주며 (선택적 노출)이론의 확장과 발전을 이룩 했다. RSM 모델에 따른 선택적 노출은 양극화 이외에도 비양극화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으며 때로는 항상성(Homeostasis)의 결과도 초래하기도 한다고 주장(Michael A, Myiah J & Jay D, 2018)하는데, 이와 관련한 연구들은 선택적 노출에 따른 탈극화적인 결과를 주로 설명하며 현대 미디어 환경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복합적인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대표적 연구로 RSM 모델을 활용하여 2016년 미국 대선의 페이스북 태도 양극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Michael A, Myiah J & Jay D, 2018)를 살펴보면, 페이스북 뉴스가 태도 양극화를 초래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Depolarization) 시점별로 확인하고, 페이스북 뉴스에 대한 태도에 따들을 노드(node)로 연결된 하나의 연결망 세트로 보고, 이 세트들의 정파성 변화를 세 지점(2010년 9월, 2011년 6월, 2012년 3월)에 걸쳐서 추출하였는데, 의원들을 팔로잉한 트위터 유저들의 설문조사 데이터뿐만 아니라 트위터 API를 이용한 파이썬(Python) 코드로도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추출한 데이터는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결론과 함의를 보여주었지만,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MDS 방법론을 활용하여 도출한 결과였다. 그 모형은 다음과 같다.위의 결과는 보수적(Conservative) 의원과 진보적(Liberal) 의원을 팔로잉한 트위터 이용자들의 양극화 정도를 확인 할 수 있다. 2010년에는 보수적 성향을 지닌 의원은 주로 보수적 성향의 팔로워가 팔로잉하였고,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의원은 주로 진보적 성향의 팔로워가 팔로잉하며 MDS 수치가 거의 양 극단에 존재하였다. 즉 정치 성향의 양극화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양극화의 정도는 극명하게 줄어들었다. 보수와 진보의 각 수치가 겹치는 부분(overlapping region)이 2012년에 이르면 매우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수치가 겹치는 부분은 팔로워들이 보수와 진보 의원을 모두 팔로잉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위터는 매우 비양극화(depolarization)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2010년에서 2012년 까지 꾸준히 증가한 트위터 이용자 수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트위터에 늦게 진입한 사람들(New comers)은 아무래도 덜 당파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트위터의 이용자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그만큼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팔로잉을 하기보다는 당 초월적인 팔로잉을 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연구는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의 일반화가 어렵고, 트과를 확인하는 연구에서 나아가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들이 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이처럼 양극화이냐 탈극화이냐에 대한 문제는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어떤 시점에서, 어느 채널을 어떻게 연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어떤 이슈가 플랫폼에서 강하게 떠오르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 플랫폼별, 국가별 등의 좀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3. 결론이상의 연구들을 통해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의 인과관계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서 양극화라는 결과에 대한 의문점까지 확인해보았다. 즉 선택적 노출이 양극화보다 선행하는 것이 맞는지, 맞다면 선택적 노출이 초래하는 결과가 시간에 따라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 문헌조사를 통해 내가 진행할 연구는 선택적 노출이 양극화를 초래하는지를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확인하고, 인과관계가 성립될 경우 시간에 따라 양극화의 추이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리고 플랫폼 별로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에 대한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이번 문헌 조사를 통해 고민해본 지점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논의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첫 번째로 연구들이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를 일정 기간이나 시점을 두고 연구한 경우가 많은데, 보다 긴 흐름을 알 수 있는 종단적(Longitudinal)를 해보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살펴본 연구들이 패널들의 설문조사를 한 경우도 있었지만, 더 긴 시간을 추적하여 선택적 노출과 양극화, 비양극화의 관계가 보다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추이를 확인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큰 범주의 시간 속에서 연구를 하다보면 어느 이슈가 선택적 노출을 강화하고, 나아가 (비)양극화를 초래했으며, 어느 시점부터 양극화가 완화 되었는지와 같은 추이를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 방법은 깊이 고찰해보고 정교하게 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0. 진리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이 현실 세계를 넘어선 것들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이다. 현실 너머의 세계를 탐구할 때는 ‘진리’를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이 진리를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는 것을 뜻하고 보편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고, 불변한다는 것은 모양이나 성질이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즉 진리란 이러한 성질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현실세계에 명확히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런 진리에 대한 태도를 분류하면 총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단일한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절대주의와 단일한 진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진리 자체를 모두 부정하거나 다양한 진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상대주의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진리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태도는 불가지론이라 하고, 마지막으로 존재가 있든 없든 그것은 나에게 유용할 때에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가 있다.진리의 태도는 4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진리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인간이 자연에 지배당하던 원시 시대에는 ‘자연신’이 , 고대 시대에는 인간적이고 불완전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과 같은 ‘신화’가 ,그리고 중세 시대에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유일신이 절대, 보편, 불변의 속성을 모두 만족하는 진리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파트에서도 말했듯 부르주아의 성장으로 근대에는 이성이 진리로 떠오르게 되었고 이때의 이성이었던 수학, 물리학, 철학은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며 ‘근대 합리성’을 일으켰다. 결국 이 합리성도 근대에 끝나가며 한계에 부딪친다. 먼저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인간 이성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고(외부적 요인), 내부적으로는 이성에 대한 한계를 증명하면서 이성을 부정하기의 철학을 본받아 절대주의를 더욱 발전시켰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절대적, 보편적, 불변의 세계를 주장하며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고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의 스승들의 의견에 반대했다.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인 것들에 대한 것 보다는 현실 자체에 대한 탐구를 더 중요시 하며 현실세계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현실의 개체를 질료와 형상으로 나누었다. 질료는 ‘가능태’라고 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며 이 질료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 ‘현실태’라고 부르는 형상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에 관심을 두며 현실세계를 중시한다. 그러나 가장 최초의 질료는 인간의 머리에만 존재하는 ‘제일질료’, 최고의 형상은 ‘순수형상’이라 하는 신으로 규정한 걸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도 스승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질료가 형상으로 향해가는 과정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경험주의 철학의 기원이 된다.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가 타 문화권에서 비판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 이성적 이론의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등장한 교부철학으로 시작된다. 교부철학은 신플라톤학파의 영향으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차용했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유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후 그리스도교의 철학을 증명하고 좀 더 세밀화 하기 위해 스콜라 철학이 발생했다. 스콜라 철학은 현실에 대한 분석을 중요시 여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적 흐름을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각각 등장하며 서로 충돌하게 되는데 이를 ‘보편논쟁’이라 한다. 보편논쟁은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보편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주의의 실재론과 보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유명론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절충하는 아벨라르의 의견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논쟁의 배경이 유일신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회의주의 수가 없지만 대부분의 사고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가 동일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합리론과 경험론자들의 문제점을 극복하여 진리를 경험이나 나의 이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주체 판단형식’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철학의 역사 속에서 회의주의 또한 지속되었다. 니체가 회의주의 사조에서 대표적인데 그는 그리스도교 전통을 기반으로 한 윤리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주인과 노예로 나누어 주인의 도덕은 건강하고 좋지만 노예의 도덕은 원한의 도덕으로 올바르지 못한데 그리스도교가 이 도덕을 근본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즉 억눌려서 금욕적이고 희생하는 모습의 유럽이 병들었다고 판단한다.현대 철학에 이르면 하이데거가 철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이데거는 기존에 존재자에게만 관심이 있던 철학을 비판하며 존재 자체, 즉 ‘있다’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존재는 비은폐성이 있으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알레테이아’라고 했다. 그리하여 하이데거는 존재자인 ‘현존재’를 탐구하며 그들이 내포하는 시간성을 탐구하여 『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를 만들었다. 결국 그가 인간에 대한 탐구를 진행한 것으로 실존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고 형이상학적인 존재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절대주의로 분류되기도 한다.현대 철학의 대표 인물은 비스켄슈타인도 있다. 그는 철학이 모든 문제가 언어 사용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전기 철학에서는 철학의 문제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면서 생겨나므로 언어를 정밀화하고 형식적, 논리적으로 오류를 제거하려하며, 철학자들의 잘못된 언어 사용 방식을 고쳐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후기에는 자신이 기존에 다룬 언어가 특수한 언어에 한정 되어있음을 깨달아 세계와 언어가 대응 된다는 개념이 무너지고 단어가 공통분모의 ‘본질’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유사성’임을 밝힌다.마지막으로 실존주의는 냉전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등장했고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사르트르가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기 때문에 본질로힘인 만유인력으로 정의했으며 이를 달이나 천체에까지 작용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뉴턴 역학의 의의는 기존 과학의 관심을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뉴턴 이전의 과학은 기하학에 의해서 자연적 사물들을 수학화 하는 것 이었다면 뉴턴에 이르러 보이지 않는 것까지 수학적으로 정리하며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뉴턴 역학 이후 19세기 말에는 ‘빛’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빛을 파장으로 인식하고 이 파장을 전달하는 ‘에테르’라는 매질이 우주를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빛의 속도 위와 같이 일정하다면 시, 공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또한 이후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에 대한 이론을 발표한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1919년의 개기일식 중 멀리서 오는 별빛이 태양 주변을 지나면서 구부러지는 현상을 관측하면서 증명되었다.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도가 구분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중력이 강해질수록 시간은 느려지고 공간은 변형되므로 결국 중력에 의해 공간의 휘게 한다. 이를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곡률’이라 한다.앞서 말한 아인슈타인과 갈릴레이, 뉴턴은 우주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 즉 절대주의적 성향을 띤다. 그러나 현대 과학으로 들어서면서 물리학에서 상대주의적 경향을 띠는 양자역학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은 원자 이하의 세계를 관측하기 때문에 미시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미시세계의 미립자는 너무 작아서 기존의 법칙과 같이 ‘위치’와 ‘속도’라는 기본적인 물리량이 동시에 확인될 수가 없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미시세계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미시세계의 원리를 ‘불확정성 원리’라고 칭했다고 이어 ‘코펜하겐 해석’이 등장했다. 그러나 슈뢰딩거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대 미술의 첫 출발은 그리스 미술이다. 그리스 미술은 신화적인 존재들을 대상으로 조화와 균형을 지키며 아름다움이라는 독자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대제국 건설 후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여 탄생한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와 같은 문화라는 뜻으로 그리스 문화의 정체성에 넓은 대제국의 특성상 동, 서양 문화를 혼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후에 로마에 의해 제국이 흡수되고 그리스가 정복되면서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성질을 띤 로마 미술로 확장된다.그러나 이러한 절대주의적 측면의 고대 미술은 중세가 되면 사라진다. 약탈과 전쟁이 잦은 정치적 혼란기 인데다가 그리스도교의 탄생으로 예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종교적이고 교리를 보조하는 작품들만 예술로 판단하였다. 특히 초기 미술에서는 예술을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와 교리를 전달하는 보조수단으로만 여겼다. 더불어 미술가의 재능은 신에게 받은 것이므로 작품은 대부분 익명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에 다다르면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교회가 많아지는 탓에 로마풍의 웅장하고 단단하며 육중한 느낌의 석조 건물들이 등장한다. 동양과의 전쟁으로 높은 탑의 지붕은 둥근 돔 형태를 띠고, 교회가 종교적 이념을 보호한다는 이념 때문에 성과 같은 육중한 모습으로, 그리고 이런 모습을 위한 기술적 한계 때문에 벽은 두껍고 기둥은 무거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건축술의 발전으로 고딕 양식에 이르면 훨씬 가벼운 모습의 건축 양식으로 변모한다. 벽의 두께가 얇아지자 큰 창문이 생겨 그곳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려 천국에 대한 동경과 신의 영광을 드러내며, 높은 첨탑을 올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파리의 샤르트르 대성당이 있다. 결국 중세 시대의 예술의 형태를 종합해 보면 중세의 종교 중심의 세계관 때문에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운 형식은 퇴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르네상스 미술이 시작되면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에 저항한다. 교회의 종속에서 벗어나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운 가치를 분된다.
요약1. 역사시간에 대한 입장은 ‘직선적 시간관’과 ‘원형적 시간관’으로 나뉘어 인류의 역사를 설명한다. 직선적 시간관은 시간이 하나의 방향으로 전진하므로 역사 또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류의 발전에 집중한 서양의 ‘진보적 역사관’을 만들었다. 반면 원형적 시간관은 시간이 같은 패턴을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시간관으로, 역사가 발전과 퇴보를 반복한다는 동양의 ‘순환적 역사관을 만들었다.이 책은 특히 진보적 역사관을 토대로 역사를 설명한다. 진보적 역사관에 따라 인류의 역사를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5단계 설’에 의해 좀 더 자세히 나누어 보면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 현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시대를 설명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시부터 근대까지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소유관계에 따른 권력의 이동에 따라 설명할 수 있고, 근대부터 현대까지는 공급량에 비해 수요량이 적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기반으로 설명할 수 있다.인류 역사는 아주 옛날의 원시 공산사회에서 시작된다. ‘공산’이라는 의미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의미인 만큼 원시 사회는 사람들끼리 평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함께 일을 하고 이를 통해 얻은 생산물들을 공평이 나누어 생활한 것이다. 그러나 생산물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 생겨나고 이를 누군가가 독점하게 되자 평등했던 사회적 관계는 무너진다. 생산수단을 독점한 사람은 노동력이 증가하여 생산물을 더 많이 생산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권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이라는 물질 형태가 권력이라는 비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 독특한 상황이다.평등한 사회가 무너지며 인류는 고대 노예제사회로 들어선다. 고대사회의 인류는 지배구조에 따라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더욱 확고해진다. 왕과 귀족, 평민과 노예의 관계가 형성되었고, 지배계급은 토지와 영토라는 보다 거대한 생산수단을 가지게 되었다. 는 오히려 손해였다. 결국 부르주아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그곳의 수요를 늘리며 공급과잉을 해결하려 한다. 이때 그들은 새로운 시장의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도록 강요하고, 대가로 받은 원자재로 다시 물건을 공급하는 제국주의 시대를 형성해 나간다.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산업화된 유럽 국가들은 점점 식민지를 건설해 나갔다. 이들은 서로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며 제국주의 시대를 이끌었다. 영국은 인도를, 스페인은 남미를,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러나 늦게 산업화를 이룬 독일은 이미 다른 국가들의 경쟁 때문에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할 식민지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피살되는 사건을 기회로 삼아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게, 독일은 러시아에게 선전포고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전쟁의 표면적인 이유는 위의 이유가 맞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가 피살되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오스트리아와 동맹국 독일이 러시아에게 전쟁 선전포고를 했고 이후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 프랑스, 더불어 미국까지 참전하면서 세계전쟁으로 번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전쟁의 원인은 독일이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를 만들고자 다른 경쟁국들과의 전쟁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제 1차 세계대전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로 이루어진 3국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로 이루어진 3국 협상의 전쟁 결과 독일이 패배하였고,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 독일 경제는 침체되었다.전쟁 후 세계가 안정화 되자 다시 자본주의의 공급과잉 문제가 반복됐다. 그러자 세계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상품의 가격을 낮추려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곧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에 해고를 하면 할수록 아무리 상품의 가격이 낮아져도 사회 전반의 소비는 감소했고 경기는 더욱 나빠졌다. 다시 말해,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공장 간 가격 경쟁을 펼치다 구조조정을 하고, 이로 인해 대하며 이후부터는 자본주의 독주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는 대공황 이후의 수정자본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정부의 시장개입에 반대하고 자유 시장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한다.2. 경제‘시장’은 상품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정부는 시장에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개입할 수 있다. 만약 시장의 자유가 정부의 개입보다 더 중시 된다면 걷어지는 세금은 감소하고 세금에 의한 복지는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정부 개입을 더욱 추구한다면 세금이 많아지고 복지 또한 증대될 것이다. 이런 정부의 개입 정도에 따라 경제 체제를 4가지로 세분화 해보면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나눈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민영화’의 방법을 택한 체제이고, 공산주의는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국가가 이를 관리하는 ‘국유화’를 택한 체제이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 덕에 세금과 복지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자본주의는 다시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나뉜다. 초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의 자유만 존재하므로 세금과 복지가 거의 없다. 후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세금과 복지가 모두 높은 편이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여 세금과 복지가 다시 낮아진다.순서대로 살펴보면 우선 초기 자본주의는 산업혁명기, 즉 근대에 시작된 첫 자본주의 체제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이 깊은데, 시장은 스스로 가격을 조절하고 유지하고, 이러한 시장의 자유로운 가격 경쟁이 사회 전체의 부를 축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 시장에서는 막대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경쟁하여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자본력’이라는 지키며 독재를 하는 사회이고, 사회주의는 소수 엘리트 등에 의해서 운영되는 사회이다.결론적으로 경제체제의 문제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다. ‘성장중심정책’은 국가가 시장에 대한 간섭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해당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에게 이득을 준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와 같은 소외계층을 돕기는 어렵다. 반대로 ‘분배중심정책’은 복지 수준을 높이고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으로 후기 자본주의에 해당하는 정책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지만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렇듯 성장과 분배는 기본적으로 반비례의 관계를 갖고 이를 통해 경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3. 정치정치적 입장은 경제체제 중 어떤 것을 세계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며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보수적 입장과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진보적 입장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지만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진보는 후기 자본주의와 유사하게 빈부격차를 감소시키지만 경기침체를 낳는다. 보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에 세계는 안정적이며 세상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때문에 세상의 문제는 개인보다는 사회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수는 신자유주의의 호혜자인 기업과 자본가들이 옹호하고 보수는 노동자들이 옹호한다.앞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토대로 보수와 진보로 한국의 정당을 구분할 수 있다. 한국당(책 속의 새누리당)이 보수당인 것이 그 예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이름을 쉽게 변경하고 변화가 잦기 때문에 정당의 입장이 확실치는 않다. 반면 세계의 정당은 보편적이고 정통적으로 보수당과 진보당을 구분할 수 있다. 보통 공화당과 민주당은 보수적 입장이고, 사회당과 공산당은 진보적 입장을 취한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룬 나라들은 민주당과 사회당의 경쟁이 이루어지지만,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경지기 때문에 서민들은 반대하고 기업은 찬성할 것이다. 이를 보수와 진보의 연장선으로 보면 결국 보수계와 보수언론은 FTA에 찬성하여 그 장점을 부각하여 보도할 것이고, 진보계와 진보 언론은 소규모 기업의 손해와 서민들의 피해를 들어 FTA에 반대하는 입장일 것이다.이어서 무상급식 문제에 보수와 진보 문제에 적용할 수도 있다. 무상급식이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복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세금을 인상해야 해서 보수는 반대하고 진보는 찬성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영화는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정부가 아니라 개인과 민간에게 주기위해 판매하는 것이다. 민간에게 시장을 맡김으로써 시장의 자유를 확대되므로 정부의 세금과 규제가 줄어들기 때문에 민영화는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찬성하겠지만 진보적 입장에서는 반대할 것이다.정치적 견해로 위에서 말한 보수와 진보가 있다면 이 보수와 진보를 결정하는 방법으로는 민주주의가 있다. 민주주의는 민중이 주인으로 이들, 즉 다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정치방식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들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기는 하지만 다수의 시민을 정치 전문가 집단이 대리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제 형식을 띤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는 권력의 근거가 시민과 대중에게 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두 종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 대리인이 독재를 하거나 정치 대리인을 선출할 때 다수에 의해서만 선출되어 소수가 무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필연적으로 독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형식적 측면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에 해당하는 내용적인 측면도 보완되어야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주의와 엘리트주의이다. 흔히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경제체제로, 민주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반대개념이다.엘리트주의는 사회의 중심을 엘리트로 보는 체제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해 지지되었는데, 어리석은 대중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