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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근현대사 발표ppt 함께읽는동아시아근현대사-'개항장과 그주변'
    개항장의 민중과 그 주변 국사학과 동아시아근현대사1. 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2. 신문물과 외국인 3. 사회반응의 양극화 목차 개항장의 민중과 그 주변동아시아 삼국의 무역 활성화 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중국 - 상하이에서 영국과 미국이 중일 정기항로 개설 - 스스로 기선회사를 설립 → 중국 내 각 도시와 동남아 , 미국과 교류 일본 - 무역이익을 통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수교교섭에 적극적 → 1871 년 청일수호조규 - 미쯔비시 양행을 상하이에 설립하여 중일 정기항로 개시 조선 - 중국과의 무역번성 → 유럽산 제품을 저렴하게 수입했기 때문 - 조선 스스로 기선 도입하고 양국 상인들과 경쟁하여 상권성장 → 정부직영의 기선회사 ‘ 이운사 ’ 설립 → 민영회사 ‘ 대한협동우선회사 ’ 설립 ( 무역의 중심 !!)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개항장 주변의 외국인 거주 개항 이후 각국 개항장에는 외국인들이 이주해 와서 집단으로 거주 →대표적으로 중국의 상하이 , 일본의 요꼬하마 , 조선의 인천 조계 거류지 → 국가 안의 외국이라 할 만큼 굴욕적인 제도로 여김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개항장 주변의 외국인 거주 거류지에는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외국인의 수가 증가 및 감소 - 청일 전쟁 , 만주사변 이후 일본인 수 급증 중국인 수 급감 - 러일전쟁과 경술국치 이후 일본인 수 급증 상하이 일본 , 조선 조선 조선인의 해외 이주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전신의 도입 신문물의 도입 전신은 국가 간의 상호 통신에 이용 되기도 하고 침략에 이용되기도 함 - 각 지역 간의 연결을 강화시켜 국가의 구심력을 강화신문물과 외국인 2.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신문물의 도입 신문의 발달 일반 민간인을 독자로 하는 상업화된 신문 선박의 출입일정 , 물가정보 등 정보전달의 매체로 활용 중국과 일본은 구미열강에 의해 창간된 신문으로 시작해서 자국에 의해 자국어로 창간 조선은 한문신문에서 국문신문으로 변화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신문물의 도입 자국어 신문으로의 발전 일본 → 중국 → 조선 순서 중국은 ‘ 신문은 과거제에 낙오한 사람들의 하소연 ’ 이라고 생각해서 신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발전이 더딤 과거도 합격 못한 것들이 무슨 할말이 많다고 !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개항장의 확대에 따른 사회의 양극화 부를 거머쥔 소수의 상인들 상하이에서 수입품을 판매하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상인들과 외국상인을 상대로 중국인과 매매교섭을 중개해주는 매판들이 큰 성공을 거둠 일본에서 도시상인들이 외국상인에게 일본의 지방상품을 납품하면서 이익을 남기며 부를 축적 조선에서는 조세가 금납화되면서 미곡운송을 위해 공동회사가 설립되었고 , 외국회사들과의 무역경쟁에 힘썼지만 정치적인 안정과 지원이 사라지면서 쇠락2.신문물과 외국인 1.개항장의 발전과 운송망 3.사회반응의 양극화 대부분의 개항장 주민들 외국인에게 밀려 집 자체가 철거되거나 최악의 경우 해외이민을 선택 능력이 없는 주민들은 개항장 주변 방직공장 , 전차 , 철도회사에서 노동자가 되지만 , 일본인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임금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감 이마저도 값싼 중국노동자가 유입되면서 개항장의 조선인은 설 곳을 잃게 됨 개항장의 확대에 따른 사회의 양극화Thank you. 201 5 - 09 -1 4 동아시아근현대사{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17.11.16| 11페이지| 2,0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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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교육 중학교 역사1 단원분석 과제 (1단원)
    -역사교재연구 및 지도법 1단원 분석-1단원은 역사란 무엇인지와 역사공부의 목적을 학습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선사시대의 생활모습을 살펴보고, 세계의 문명 성립 및 국가 형성의 과정도 알아본다. 또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고조선과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여러 나라들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학습내용이다.우선 소단원1에서는 역사의 정의를 배우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구성되어있다. 역사를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며 기록으로서의 역사에는 기록자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을 서술한 것이며 때문에 주관적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서술이 틀린 것은 아니나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울 역사가 자칫 한사람의 주관적인 역사라고 인식시킬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이는 17페이지에 역사 체험 활동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활동은 역사는 역사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선별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활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는 실제 역사가가 기록하고 싶은 것만을 기록한 것이라고만 보는 것은 어려우며, 보편적인 사실을 기록하되 그 기록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의 의견이 개입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학생들이 배울 역사는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으며 보편적인 사건을 서술한 것이며, 다만 그 과정에서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되게 서술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발췌하여 예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소단원2에서는 인류의 출현과 선사시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단원은 너무나 먼 과거이기 때문에 그 생활이 학생들의 머리에 이미지화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화 작업은 이해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그 생활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때문에 교사는 이 그림 잘 활용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학생들은 선사시대의 생활을 이미지화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25페이지에 역사체험활동에서 학생들이 각자 시대를 정해 그 시대의 인물이 되어서 일기를 작성해보는 활동이 있으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추측한다.한편, 소단원2의 학습내용 중 하나가 세계의 선사시대 생활모습을 살펴본다고 이 교과서에서 제시하고 있지만 세계 선사시대 생활 모습을 찾아보면 수록된 그림 몇장이 다이다. 때문에 문명시대 이전의 세계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을 한반도의 선사시대 생활과 비교 및 공통점을 서술해줄 필요가 있다.소단원3에는 각 지방의 문명의 발생을 설명하고 있다. 문명의 형성은 지역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이해가 중요하다. 때문에 각 문명발생지의 당시 지도를 첨가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높여야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의 차이를 설명할 때 지역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할 것으로 기대한다.한편, 35페이지에 문명의 발달을 설명하고자 중국의 봉건제의 출현을 넣은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원전3000~1600년 경의 이야기에서 너무 시간적으로 뛰어넘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뜬금없어 보인다. 때문에 이 내용을 생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인문/어학| 2017.11.13| 2페이지| 1,000원| 조회(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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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증의탄생'글쓰기전략'요약본
    논증의 탄생 -글쓰기 전략 요약-목차1. 준비와 계획1). 논증을 설계하는 3가지 전략2). 시도해선 안되는 논증구조들3). 논증글 작성을 위한 준비4). 논증글의 구성(체계화 작업)2. 초고쓰기1). 많은 생각에 갇히지 말고 우선 시작하자!2). 서론 초고쓰기3. 고쳐쓰기1).서론과 결론을 조율하라.1. 준비와 계획논증글을 작성하기 위해서 우선 사전의 준비해야할 작업이 있고, 논증글을 어떻게 써내려 갈지 계획을 짜두어야 하는 작업이 있다. 이에 대해 이하의 하위목차를 통해 알아보자.1). 논증을 설계하는 3가지 전략논증을 설계할 때에는 세가지 전략이 있다. 우선 첫째,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이다.(아무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했는데, 논증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워서 글로 표현해내는 것 아닌가?? 계획하는 행위가 과정으로 들어나지 않는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좀 잘못된 생각 같음!!)그냥 생각 나는 대로 논증을 적어내는 전략이다. 둘째, 글쓰기 교재에서 제시하는 표준논증구조를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은 이 표준논증구조를 따르되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 자신의 논증을 틀에 얽매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논증을 할 때마다 계획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두 번째외 세 번째 전략을 적절히 활용하는 사람들이다.2). 시도해선 안되는 논증구조들우선 서론 본론 결론을 단순히 예시 들기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섯 문단 에세이라고 하는데 서론에서 주장을 제시하고 본론에서 주장에 대한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고 결론에서 주장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논증이 끝나버리는 논증구조이다. 이는 너무나 유치하고 어수룩한 논증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의 흐름대로 서술하는 것을 피해야한다. 만약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여과 없이 글 속에 담는다면 독자들은 정리돼있지 않은 글을 읽게 될 것이다. 이는 좋은 논증글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논증구조가 단순히 참고한 글을 요약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글을 읽고 자기가 이해한대로 재구성하여 논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요약하는 수준의 글이라면 그것은 도용에 그치는 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상을 비교하는 글을 쓸 때에는 논증이 그 대상의 개수만큼 분리되는 방식으로 글을 쓰면 안된다. 예를 들어 콩쥐팥쥐전과 신데렐라를 비교 및 분석하는 논증을 쓸 때, 콩쥐팥쥐전에 대한 분석을 주르륵 나열하고 신데렐라에 대한 분석을 나열하는 방식은 각각의 연계성을 떨어트리고 분리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주제, 극적요소 등 과 같은 여러 요소들을 주제로 삼아 두 작품을 동시에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3). 논증글 작성을 위한 준비우선 논증을 구성하기 위한 재료들을 모으는 작업이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우선 글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기 위해 어떤 내용들로 구성할 것인가를 구상하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주제로 잡은 문제나 질문과 해결책을 생각하여 서론으로 작성하고, 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5가지 이상 생각해낸다. 다음으로 각각의 이유를 뒷받침 해줄 만한 사실적 데이터나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때 초고이기 때문에 굳이 세세하게 작성할 필요는 없다. 다음으로 그 이유 하단에 독자들이 제시할 수 있는 반대의견 및 대안을 생각해보고 그것에 대해 재반박할 거리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논증글에 들어갈 요소들을 미리 구상해 놓는다면 살을 덧붙이는 작업을 오래 걸리지 않고 탄탄한 글을 작성할 수 있다.4). 논증글의 구성(체계화 작업)다음으로는 이러한 재료들을 어떻게 구성할 지에 대해 생각해봐야한다. 주장을 서론에 제시하면 좋을지 결론에 제시하면 좋을지, 아니면 서론과 결론 두 곳에서 제시하면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보통은 서론에서 주장을 제시해야 독자들이 적절한 흥미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읽어나갈 수 있다. 또한 서론을 작성할 때에는 전체적인 글에서 설명할 내용들을 정리해서 구성하여 간략하면서도 핵심있게 서술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각 단락마다 그 주장에 대한 이유를 어디에 놓을지 기준을 설정해 결정하고, 단락을 어떤 순서로 전개해 나갈지, 어떤 전개가 이해하기 쉬운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주장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 위치하는게 나은지 결정하고 어디에 전제를 놓을지도 결정해야한다. 또한 그 근거나 주장에 대한 반론에 대해 미리 구상해보도고 반론수용과 반박을 어디에 놓을지 결정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재료들의 위치를 구성했다면 좋합하여 논증구조를 만들고 그 틀에 맞게 글을 작성하면 된다.
    인문/어학| 2017.11.13| 3페이지| 1,500원| 조회(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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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교육 중학교역사1 교과서분석(2-3단원)
    -역사교재연구 및 지도법 2-3단원 분석-2단원에서는 삼국의 성립과 발전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설명이 완전히 맞다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51페이지에 고구려의 성장 부분에서 고국천왕이 기존의 형제 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꾸었다고 설명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 설명은 자칫 고구려는 원래 형제상속을 원칙으로 했던 나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실상은 고구려가 형제상속을 원칙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반란이나 무적자로 인해 형제상속이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에 고구려가 형제상속을 원칙으로 했다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막상 고국천왕은 아들이 없어 산상왕에게 형제상속을 하였으며, 고국천왕 이후에도 4차례나 형제상속이 이루어 졌다.이를 고려하여 교과서에서 설명할 때에는 형제상속을 부자상속으로 확립하였다고 서술하기 보다 기존의 왕권이 탄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란 등으로 인해 형제상속이 번번이 행했었는데 이에 고국천왕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대표적으로 혈연집단으로 강력한 왕권을 형성하려고 한 왕위의 부자상속이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다음으로 53페이지에 백제가 요서지역에 진출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부가설명으로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백제의 요서진출에 대해서 완전히 틀린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드물지만 그 해석의 차이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우선 요서지방에 척을 두지 않은 나라인 송과 양의 역사서에 나온다는 점과 그 조차 같은 시기에 존재한 진에는 기록돼있지 않고 그 후대인 송과 양의 역사서에만 기록되어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백제가 사료적인 증거는 많으나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요서진출설에 대해 반박하는 측이 있다.반면, 백제의 요서진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기록돼있지 않다는 부정설에 대한 반박으로 애초에 삼국사기는 백제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에 비판할 근거로 내세우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삼국사기 최치원전에서 중국 땅을 경략했다고 당나라 고관에게 이야기하는 기사를 들어 요서진출설에 대한 근거를 들고 있다. 또한 북조에서 역사서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북조는 남조만큼이나 백제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위의 두 주장들을 미루어 보면 백제가 요서지방에 진출했다고 표현하면 자칫 백제가 요서지방을 완전히 경략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으며,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기에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둘을 절충하여 백제가 요서지방에 일시적인 진출을 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따라서 교과서에도 ‘백제가 강성했던 4세기 후반에 요서지방에 일시적으로 진출했다.’라고 기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54페이지에 신라의 성장 부분 2번째 문단에서 왜가 신라를 공격해왔다는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의 전문을 통해 밝혀낸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광개토대왕릉비의 전문을 해석해보면 왜와 함께 백잔(백제)이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해왔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누락한 것이 국수주의 때문인지 해석이 차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지금과 같이 서술한 이유에 대해서 부가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문단내용이 고구려의 내정간섭 아래에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이해하게 되면 소제목인 신라의 성장과 부합되는 설명이 아니라고 오해할 수 있다. 때문에 고구려가 신라의 내정 간섭을 하게 된 것이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풀어서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55페이지에 신라의 골품제에 대해서 설명할 때 최고 귀족인 진골은 중요관직을 독점하였다고 서술되어있으며, 부가설명으로 성골과 진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교과서 수록된 성골 진골에 대한 부가설명은 다소 모호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성골과 진골이 어떤 차이를 지닌 개념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여러 설들이 존재하지만, 성골과 진골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최고 귀족인 진골 어구에서 진골만 귀족으로 표기한 이유 등 성골과 진골의 부가설명이 달라 질 것이다.57페이지에 충주 고구려비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충주 중원고구려비로 불리기도 한다. 중원이 신라시대 충주지역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현대에 맞게 충주고구려비로 공용되는 것이 맞으나 기존의 많은 역사서에는 중원고구려비라고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괄호에 중원고구려비로 함께 표기해주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58페이지 아래 궁금증 해결에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우측의 홀로서있는 남자가 동성왕으로 추측된다. 당시 백제왕의 복식은 구당서에 기록되어 있기를, 소매가 넓은 자색포에 청색 비단 바지를 입고 흰색 가죽대를 둘렀으며 머리에는 금동관이나 오라관(烏羅冠)을 썼고 신발은 금동식리 또는 오피리(烏皮履)를 신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반영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59페이지에 성황이 사비천도를 한 이유와 남부여로 국호를 일시적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되있지 않아서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웅진은 방어하기에는 적당하지만 대규모 시설과 인구가 존재하기에는 협소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사비천도를 감행했으며, 부여족의 단결을 도모함으로써 수도를 옮기는 것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호를 남부여로 일시적으로 바꾸었다고 기록할 필요가 있다.65페이지는 연맹왕국에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우선적으로 국가의 발전단계에 대한 설명하나 없이 활동을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부족국가 및 성읍국가 - 군장국가 - 연맹왕국 - 중앙집권국가의 발전단계를 설명한 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또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 체제가 반드시 성립되어야 하는데 그런 제도는 고구려에는 잘 설명돼있지 않다. 따라서 지방제도의 개편 등을 추가하여 중앙집권국가의 요소를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69페이지에 불상은 6세기 경부터 제작되었다고 명시되어있는데삼국의 불상 중에서 6세기 이전으로 올라간다고 보이는 확실한 예는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6세기 경으로 추정하는 것이지 정확하게 결론내릴 수 없는 내용이다. 불교가 4세기 경에 들어왔기 때문에 불상은 6세기 전부터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많기 때문에 이 문장은 불상은 6세기의 불상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72페이지에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서 고구려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소개할 때 그들이 왜 고구려인으로 추정되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그림에서 고구려 특유의 복식인 조우관(새의 깃으로 장식한 모자)을 쓰고 환두대도(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를 찬 모습이라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학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84페이지에 안시성싸움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계절이 동절기였기 때문이었다. 60일에 걸쳐 공격했지만 그 공격은 쉽지 않았고 설상가상 폭설로 인해 더 이상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침략에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추가해주면 좀 더 사실적인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또한 천리장성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을 추가하면 천리장성을 이해하고 당의 침입을 막아내는 장면을 상상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천리장성은 기존 성곽 밖에 새롭게 축조한 방어선이 아니라 기존 성곽들을 서로 연결하여 적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연결된 성곽마다 방어 주요거점이 되었으며 당이 침입할 때 막아낸 곳도 이런 성곽에서 였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것으로 예상한다.86페이지에 나당동맹 체결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신라의 자주적인 의지로 나당동맹이 체결될 수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이 동맹의 제의를 받아들인 데에는 단지 김춘추가 제의했기 때문만은 아니며, 이미 당의 계획의 일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시 당의 입장도 고려하여 서술할 필요성이 있다.88페이지에 도독부와 도호부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데 도독부와 도호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통괄하는 지역 크기의 차 도독부는 도호부보다 작은 지역으로 웅진지역의 통치기관인 웅진도독부가 모여 안동도호부가 되는 것이다. 안동도호부는 한반도를 서해쪽으로 수직으로 가로질러 만주지방까지 이르는 큰 통치단위였다.또한 같은 페이지에서 삼국 통일의 의의를 설명할 때에 중국과 우리 민족 간의 전투였던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단순히 중국과 한반도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삼국 간의 항쟁의 연속선상일 때 갖는 의의(≒신라에 의한 통일이 갖는 의의)도 함께 서술하면 민족적인 역사관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90페이지에 통일 이후 신라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면 앞서 김춘추는 통일의 기반을 다져놓았으며 문무왕에 이르러서 통일이 완성되었다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시작하는 문단이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라고 표현한다면 무열왕 때 통일이 완성되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93페이지 원효가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잘 들어나 있으나 의상에 대해서는 설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사는 연기설로 왕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 냈으며 관음사상으로 백성을 통합하는데 힘썼다고 추가 서술해준다면 이해가 쉬울 것으로 예상된다.102페이지에 발해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신라를 견제하기 때문이었음을 서술하면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사실 일본은 발해와의 무역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함께 서술하면 당시 발해의 대외교류를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과 문왕때 친선관계를 맺어다고 하는데 이 친선관계는 사실 조공책봉이라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정치외교형태 아래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의 대외교류에서 조공책봉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국수주의나 사대주의에 빠져버릴 수 도 있기 때문에 발해의 대외교류의 모습을 설명하며 조공책봉은 강국과 약국 사이의 맺어지는 굴욕적인 제도가 아닌 외교전략 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면 102페이지 긍금증 해결에서 조공도와 영주도를 잘 이해할 수 이다.
    인문/어학| 2017.11.13| 4페이지| 1,000원| 조회(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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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교육 중학교역사1 교과서분석(4단원)
    -역사교재연구 및 지도법 4단원 분석-4단원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통치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그 과정 속에서 문벌귀족의 형성 또한 설명한다. 또 이후 무신정변이 일어난 배경과 무신정권에 대해 살펴보고, 몽골의 침략과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한 권문세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려 말기에는 신흥세력의 성장으로 고려의 판도가 바뀌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크게 지배세력의 변화를 흐름의 기준으로 삼아 고려의 변천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116페이지에서 태봉의 왕 궁예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국호를 여러번 바꾼 전적이 있으므로 이에 대해 간략히 부가설명을 추가해주면 학생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118페이지에 태조는 옛 고구려나 백제 출신 세력을 지배 세력으로 수용하여 민족을 통합하고자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태조는 민족을 통합하고자 한게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왕권의 안정이 궁극적인 큰 목적이었다. 때문에 고려에게 순순히 편입하는 지방 세력을 우대하였다는 이야기를 추가하고, 고구려, 백제 출신의 세력을 지방체제 안으로 편입시킴으로써 반란을 잠재우고 왕권을 안정시키려 했다고 문단을 정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119페이지에 광종이 연호를 사용했다는 부분에서 부가설명이 돼있는데 연호를 사용하는 것의 의의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독자적인 연호는 자국이 천하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천하의식을 보이는 것이라고 추가해야한다.120페이지에 중앙 정치 조직의 정비에서 동병마사와 식목도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 싶다. 이 두 회의기구는 원래는 비상설적인 기구로 위급한 일을 해결할 때 소집되는 회의 기구이다. 후에 귀족의 힘이 성장하면서 상설기구화 되며,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구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서술해 학생들에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또한 지방행정 조직의 정비 부분에서 지방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심관 제도와 기인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추가적으로 설명하여 고려 초기 지방귀족세력과 왕권사이의 길항관계를 설명해주어야 한다.121페이지에 관리등용부분에서 과거제와 음서제에 대해 설명할 때 고려사회를 귀족사회로 볼 것인지 관료사회로 볼 것인지에 대해 부가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바로 과거제도와 음서제도이다. 따라서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며 사회특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또 교육제도를 설명할 때 국가주도의 교육만을 서술하고 있는데 사학12도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전시과 제도는 지배계층에게 해당하는 토지제도이다. 지금까지 교과서의 전반적인 내용이 지배계층에 대한 설명만 있었다면 토지부분에 있어서는 농민들과 관련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과 제도로 인해 농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는 등의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를 둘러싼 계급의 구성(지주와 전호)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한다면 토지의 운영과 농민계층의 삶까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129페이지에 무신정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무신정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농장의 확대이다. 이에 대한 언급은 하고 있지 않은데 뒷부분에 농민봉기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한 농장의 확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마지막부분에 무신집권기의 역사적 의의가 추가되면 좋을 것 같다. 정치적으로 전기 문벌사회를 뒤집었으며 사회적으로 신분이동이 활발해질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농장의 확대에 이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역사적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의의를 추가한다면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무신정권에 대한 편견도 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인문/어학| 2017.11.13| 2페이지| 1,000원| 조회(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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