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곳에서, 사랑하는 법을 상상하기-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발제국어국문학과1. 자유와 사랑을 상상해볼 수 있는 세계한국대중문화론2010년대에 ‘페미니즘 문학’의 약진과 더불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문학은 정세랑, 김보영, 천선란, 김초엽 등의 여성 작가가 쓴 SF 문학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형 베스트셀러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은 김초엽을 대표적인 여성 SF 작가로 주목받게 했다. 수록작 일곱 편 중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은 ‘여성 우주인 영웅’을 다룬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와 경력이 단절된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는 ?관내분실? 두 편 정도인데도 그의 작품이 ‘여성 서사’ 혹은 ‘페미니즘 서사’로 불리는 까닭엔 전통적으로 SF가 남성들의 장르였다는 역사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남성이 전유했던 장르에서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킨다는 사실만으로는 흥행의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 이유는, 독자들이 김초엽이 SF라는 장르를 다루는 방식에서 여성 서사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조애나 러스는 SF의 첫 번째 미학적 특성으로 ‘교훈성’을 꼽는다. 그는 SF를 설명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전제하는 것은 문학예술과 극예술이 인간이 처한 삶의 조건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다루는 수단으로 분석과 교육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청받았다는 가정”(44)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SF가 삶의 변화를 다룸으로써 인간적 조건, 가치에 관한 정치적 분석과 메시지 전달을 수행하는 장르이며, 어떤 주제와 현상을 문제 삼는지 명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김초엽 소설의 장르를 굳이 이름 붙이자면 ‘근미래’ ‘소프트 SF’ 혹은 ‘슬립스트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마거릿 애트우드나 어슐러 르 귄처럼 SF적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페미니즘 디스토피아/유토피아를 건설하지는 않는다. SF적 설정을 ‘라이트’하게 다루는 방식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인기 있는 이유가 비단 ‘주류문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거나 SF적 문법을 시간을 들여 익히지 않아도 쉽게 읽을 수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설정된 세계관일수록, 어떤 기술이 발전하고,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즉 무엇이 달라졌다고 설정하는지에 따라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현 인류의 가치관과 철학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주제가 더 명확해지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현실 지구에 사는 인간의 삶이 부각된다. 지금 여기의 것과 많이 닮은, 하지만 여전히 가상인 공간과 관계 속에서는 현실의 세계에서는 낭만적으로만 여겨지는 희망과 가능성, 자유와 탈출, 그리고 사랑을 말할 수 있다. 김초엽의 소설들은 인간/비인간, 남성/여성, 장애/비장애 등 이분법적 범주를 극복하는 윤리적 대안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은 ‘기대감’인 경우가 많다. ‘마을 사람들은 지구 사람들과 계속 사랑하고, 지구에 탈위계적 변화를 이끌어낼 지도 몰라.’(?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안나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몰라.’(?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와 같은. 따라서 김초엽의 SF가 여성서사로서 호명되는 까닭은,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금 여기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모순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힘과, 미래에는 이해, 사랑과 연대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이 공존하는 답을 내놓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2. 이해 불가능한 이들을 이해하기단편집 뒤편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서 김초엽은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340)라고 말했다. 김초엽은 실제로 수록작 대부분에서 이해 불가능한 것들, 뒤에 남겨지거나 잊혀져 찾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화자인 관찰자가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서사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안나는 자신이 도착하지 못하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버려진 정거장에서 가족이 묻혀 있는 슬렌포니아로 향한다. 안나를 설득하기 위해 파견된 직원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안나를 결국 이해하고 일부러 무기를 비껴 발사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 단편은 인간이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는데도,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182)하려는 욕망과 목표를 달성하려 우주 쓰레기와 함께 ‘남겨진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183)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외되고 남겨지는 이들을 고려치 않는 소비와 확장의 논리로 생각했을 때 큰 업적이나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위치에서, 김초엽의 인물들은 있는 힘껏 거꾸로 향한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선 고통을 견뎌 신체를 개조한 뒤 우주가 아닌 지구의 바다로 뛰어든 재경을, 조카는 다른 선택을 하면서도 이해한다. ?스펙트럼?에서 희진은 자신이 헛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몰리는 데도, 그리고 20여년을 홀로 우주에서 보내야 했음에도 무리인들을 지키기 위해 행성의 정보를 알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를 그의 손녀가 이해한다. ?공생가설?은 어른의 언어를 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자, ?감정의 물성?은 부정적 감정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전개된다. 이와 같은 형식은 주변적 존재들이 폭력에 맞서 이탈하고 저항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독자의 연대와 이해를 요구한다.소설들은 또한 SF의 클리셰들을 전복하는 방식으로 기술이 아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행한다. ?순례자?에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설계된 마을에서 나와 지구로 향하는 올리브와 데이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다들 망각하고 신경 쓰지 않는, 유전적 특성으로 차별받지 않는 유토피아 건설 뒤에 남겨진 디스토피아적 지구에 남겨진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여기서 사랑이 지구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넷플릭스 SF 시리즈인 의 ?샌주니페로(San Junipero)?에피소드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이 에피소드는 사회의 억압 때문에 살아생전 사랑해보지 못한 시한부 노년 레즈비언이 기술의 발명으로 가상 세계인 유토피아로 간 뒤 비로소 자유롭게 사랑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김초엽은 사랑의 가능성을 완전한 가상의 세계로 떠넘기지 않는다. 차별과 억압이 사라진 유토피아는 망각이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곳이고, 어딘가 의심스러운 곳이다.마을 사람들은 지구로 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사랑하고, 연대해서 더 나은 곳으로 바꿀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관내분실? 역시 같은 전략을 취하는 서사이다. 고인의 마인드 업로딩은 매우 흔한 SF 모티프인데, 복원된 고인의 언캐니(uncanny)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시리즈의 ?돌아올게(Be Right Back)?역시 고인을 기술로 복원한다는 내용인데, 복원된 고인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메시지 전달하는 데에 집중한다. 영화 도 마찬가지로 진짜 인간인가?를 질문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끔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관내분실?에서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기술의 성공과 실패는 별로 중요한 지점이 아니다. 대신 인간의 ‘분실’에 중점을 둔다 - “엄마를 이해해요”(271) 뒤에 흐르는 정적 속에서 독자는 기술의 성패나 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이 아닌,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현대문화론 중간고사 대체 과제베트남 결혼이주 여성과 한국 남성의 ‘사랑’ (불)가능성국어국문학과김현미의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는 다양한 이주자들의 유형과 그들의 경험, 현실에 대한 사례를 분석한 인류학적 글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2부 첫 글인 ?송금과 사랑: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의 가족 만들기?(이하 ?송금과 사랑?)는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의 삶과 그들이 한국에서 부여받는 역할, 그리고 상대 한국 남성의 심정과 기대, 이들이 결혼을 통해 맺는 관계에 대해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여성에게 만들어진 여성성을 ‘공연’하도록 압박을 하고 남편의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그리고 이 권력이 한국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옹호하는 강력한 부권 중심의 우월의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러나 저자는 또한 이러한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에 ‘송금’과 ‘사랑’의 관계가 긴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들이 “신자유주의 아래서 혜택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공통 범주에 속해 있다고 보고 송금과 사랑이라는 ‘서로 부족한 부분과 욕망’을 거래해서 글로벌적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일종의 기획으로 본다. 이 ‘초국적 호혜관계’를 통해 부부간의 ‘아래로부터의 실천적 연대’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젠더와 글로벌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결혼이주 여성은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다중적인 억압 아래에서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동등한 조건 아래 이루어지는 ‘사랑’ 또한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스피박의 ‘하위주체(subaltern)’ 개념을 적용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의 삶을 재현한 서사인 서성란의 파프리카 를 분석해 보겠다.1.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은 말할 수 있는가?김현미는 ?송금과 사랑?에서 베트남 이주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최근 급증하는 국제결혼은 두 국가에 사는, 자원이 빈약한 시민들이 이성애적 결합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여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려는 아래로부터의 실천 전략이다. 급격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베트남 여성과 한국의 저소득층 남성이 구성해가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가족 만들기 전략은 이런 점에서 매우 창의적인 한편 불안정하다.”며 이주민 여성과 선주민 남성의 이성애적 결합을 글로벌 신자유주의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창의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의 국제결혼, ‘글로벌 가족 만들기’가 부족한 자원을 매개, 교환해서 글로벌 재생산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아래로부터의 초국적 실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혼이 남녀 간의 기능적 결합이 아닌 감정, 친밀성, 신뢰, 이해, 동반자적 협업 등을 포함하는 삶의 행위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결론이다. 그러나, 결혼 보편은 물론 이주민 여성이 이중, 삼중의 권력관계 아래에서 착취당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는 국제결혼에서 ‘사랑’이라는 정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무화시키는 합리화 수단이자 권력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사랑과 결혼은 저항적 실천이 될 수 없다.스피박은 민족주의 담론과 식민주의 담론에 이중적으로 억압받는 피식민지 민중들을 하위주체(subaltern)이라 호명하면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서발턴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발턴들은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말할 능력도 없으며 권력도 없다. 그들은 항상 ‘재현’(representation)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재현은 대상을 구획하고 전유하며 타자화한다. 그렇게 때문에 스피박의 최종적 대답은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인 것이다. 이러한 스피박의 하위주체 개념은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의 복합적인 위치를 설명하는 데에 매우 적절하다.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최해한 자신의 정체성을 삭제하고 다양한 층위에서 일정하게 요구, 부여되는 역할과 정체성을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이들은 끝없이 단일한 ‘재현’된 대상으로 오해, 오독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발화는 불가능하고, 재현체계 속에서 오해되어 사라져버린다.2. 서발턴의 ‘사랑’과 ‘연대’ (불)가능성서성란의 파프리카 는 홀어머니를 두고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40대 남성 하중일이 ‘관광형 맞선’을 해 결혼한 베트남 여성 츄옌이 결혼 생활을 하며 겪는 고초를 그린 단편이다. 중일은 츄옌에게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며 한국식 이름인 ‘수연’으로 부르겠다고 통보한다. ‘호명’의 실패가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는 부분이다. 이후 작품에서는 츄옌 혼자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장면에서는 ‘츄옌’으로, 시모나 중일의 시각에서 오해되고 연기되는 츄옌이 등장할 때마다 ‘수연’으로 호명되고 서술된다.중일은 처음부터 파프리카 농사를 할 노동력과 어머니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성욕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여성을 구할 의도로 맞선에 참여한다. 작품은 중일의 시각에서 묘사되는 ‘수연’과의 성애 장면으로 시작하며, 맞선에서 츄옌을 처음 본 중일은 “몸에 꽉 끼는 병아리색 아오자이를 입”은 츄옌을 보며 “허벅지 아래 터진 틈 사이로 흰색 바지가 보였지만” “미끈하고 탱탱한 종아리와 가느다란 발목을 엿보기라도 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묘사한다. ‘수연’이라는 이름의 정체성, 이미지와 “역사적으로 구축된 성애화된 이미지”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츄옌은 결혼생활을 하며 고된 시집살이를 하며 노동 착취를 당한다. ‘정상가족 만들기’라는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시켜야하기 때문에 츄옌은 한국인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을 연기하기 위해 한글을 배우러 다녀야 하고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을 때는 작게 욕을 하거나 혼자만 보는 일기를 쓸 때뿐이다. 그러나 중일은 내심 수연이 한국어를 영영 못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부부싸움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순종적 상태로 남아 감금하고픈 욕망이 투영된 생각이다. 이렇게 충돌하는 욕망 속에서 기대되는 역할, 여성성을 최대한 수행해야 하는 츄옌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추어야 할지 모를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추더라도 그는 ‘결핍’이며, 실제로 노동과 수모에 상응하는 물질적 보상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참기만 해야 한다. 결혼은 무슨 일이 있든지 ‘사랑’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이제 절대로 시내에 나가면 안 된다고 야멸차게 소리쳐 놓고 그는 금세 후회했다. (…) 왜 화를 냈는지, 화를 내고 오히려 마음이 무거운 까닭은 무엇인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해 미안하고, 힘들어도 당신은 내 아내니까 함께 견뎌야 한다는 말까지. 그는 꾸역꾸역 밀려나오려는 말들을 억지로 삼켰다.점심때가 지나 도착한 츄옌에게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부어놓고 중일은 “힘들어도 당신은 내 아내니까 함께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사랑’이라는 정동이 신자유주의적 거래 성립이라는 전제 하에 태어난 선주민 남성과 이주민 여성과의 결혼관계에서 그 어떠한 약속, 거래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관계를 정당화하고 강제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수연에 대한 중일의 측은지심, 연애감정 혹은 ‘사랑’은 성립 불가능한 관계, 이중, 삼중의 억압을 이득 없이 견뎌야만 하는 서발턴으로 존재하며 키우는 개 ‘버들이’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수연이 이를 이유 없이 ‘견뎌야’하고 도망치지 말아야 하는, ‘발화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할 때만 개입한다. 성립 불가능한 관계에서 한국 남성들의 결함과 결핍으로 인한 위기감이 이들을 감금, 감시하고 경제권을 박탈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들 부부들이 자신들의 결혼이 경제적 ‘거래’나 ‘협상’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 역시 남성이 성과 정상가족적 역할 수행, 착취적 노동력까지 구매했으나 정작 여성은 본원적 이유였던 돈, ‘송금’마저 얻지 못하는 권력관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카렌 프리만(Caren Freeman)은 ‘권력의 지도’는 단순히 남성의 특권을 강화하고 성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일방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기보다 훨씬 복잡다단하고 따라서 경계와 영역을 구분하는 선을 긋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김현미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송금’이 당장 불가능한 상황을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며 극복해나가는 사례와, 이것이 확장된 사례로 역이주의 경우를 들며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의 국제결혼을 경제적 위기를 초국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연결망, 가족 간 협조와 지원을 통해 위기를 해결하도록 하는 ‘아래로부터의 초국적 실천’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의 대전제는 베트남 여성을 다면적으로 착취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능력, 즉 ‘송금’의 부재로 인한 신자유주의적 거래 관계 실패이다. 그리고 이 거래 관계의 실패는 베트남 여성이 주체성을 회복해 호혜적 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구실’을 제공해주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남성의 삶 지속이라는 과제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양보나 합리화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라고 볼 수 없다. 저자가 1부 ?이주는 왜 일어나는가, 이주자는 누구인가?에서 언급했듯 결혼이주는 국가가 부여하는 신자유주의적 재생산을 위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맹목적 가치를 생산, 유지하기 위해 가족계획정책으로 인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본질적 목적하에서 사랑, 특히 철저한 교환질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이성애적 결혼이라는 법제도 안에서의 사랑, 낭만, 애정, 헌신이란 ‘순종’의 동의어와 다를 바 없다. 한국 남성의 자국 내 결혼시장에서 배제되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 구매한 이주 여성의 성, 순종과 아내로서의 역할 등과 등가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존중’, ‘이해’, ‘사랑’은 서발턴의 발화를 막는 억압적 담론이다. 이처럼 초국가적 독해능력(transnational literacy)이 부재한 상황에서 초국적 ‘아래로부터의 극복 전략’은 성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