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국제 결혼이주여성다양한 이주민, 소수자의 사례들 중 나는 국제 결혼이주여성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다. 결혼이주여성이란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국제결혼을 해 시집을 온 여성을 말한다.1990년대 들어 아시아에서는 ‘이주의 여성화’(feminized migration)라는 현상이 주목되었다. 한국에서도 1990년 이후 이주자의 출신국은 다양화 되는 추세이며 여성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총 결혼율과 비교해 보았을 때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통해 배우자를 구하고 있으며 농촌지역의 경우 4쌍 중 1쌍이 외국여성을 배필로 삼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이주의 여성화와 관련하여서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을 통한 아시아여성의 이주가 대부분이다. 이들로 인하여 한국 여성과 결혼이 힘든 남성들의 가족 구성이 가능해지고 가부장적 가족관계가 지속되며, 아내의 역할로서 남성과 아동, 노인 돌보기가 강조되어 가정부나 간병인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우 가정 내 폭력이나 갈등 상황은 심각한편이며, 의사소통이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피해를 보는 쪽도 이주 여성인들 이라고 한다. 국제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부나 국가의 지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1998년 이후 국적법은 결혼 후 2년이 지나고 어떤 형태로 든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국적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남편이나 시댁식구의 횡포를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럼에도 결혼 이주여성이 증가하는 이유는, 경제세계화로 인한 국가 간 소득 격차의 확대이다. 이는 아시아 여성들이 본국 가족을 돕고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선택하도록 한다. 그 밖에도 한국의 사회변화, 한국의 결혼 중매문화, 중개업소나 종교단체의 이해관계 등 다양한 층위에서 경제적 동기를 보완하여 이주를 유발하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문화인류학 2006:161-163 참조)ⅱ.우리사회의 인식, 태도, 문제점이렇게 증가하는 국제결혼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정부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다. 첫 번째로, 이주여성과 한국남성들은 결혼에서부터 기대치가 다르다.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남자를 만나 자신의 삶을 가꾸고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목적을 가진다. 반면에 남자는 자신이 선택해주고 베풀었다는 사고에 빠져 끝없이 의무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들은 평등한 관계라고 볼 수 없다. 이어서 한국사회는 가부장적 풍토가 강하기에 이주여성들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은 묵살되고 한국적인 구조에 적응하게 된다.2.결혼이주 여성의 문화적 부적응 문제결혼이주 여성들이 한국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문화적 부적응 문제이다. 특히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아내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앞서 말한 부부 간 문화적 갈등을 자주 겪는다. 남편 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역시 외국인 아내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한국문화를 강요하면서 정작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이주 여성(신부)의 소외감은 더욱 크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주 여성(신부)들의 언어문제로 인해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고, 이주여성들이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3.자녀문제이주여성들의 자녀문제 또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언어가 서툰 이주여성의 특성상 아이에게 학습지체, 언어장애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이런 문제점과 더불어 피부색과 외모차이로 인해 또래집단에게 왕따를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로 아이들에 비해 한국어 구사능력이 부족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스스로 위축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 자녀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아이들이 13.8%로 나타났다고 한다. 친구로부터 가장 많은 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교우관계에 매우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화 거점 학교는 몇 개에 불과해 일부 다문화가족들의 자녀들만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4.취업문제결혼이주여성들이 처음에 낯선 언어와 문화차이로 인하여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이들이 가장원하는 것은 취업이다. 상당수가 도시 저소득층이나 농촌남성과 결혼하는 만큼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민여성 가운데 현재 일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6.9%에 불과했다. 즉, 한국여성 평균 취업률 50%를 크게 밑도는 수준인 것이다. 또한, 취업을 하더라도 근로조건은 열악한 상태이다. 취업 여성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원에 미치지 못한 반면, 주당 노동시간은 40시간을 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다. 취업직종도 서비스나 단순노무가 대부분이었다.5.가정폭력문제외국인 여성이 결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한국에 오는 것은 국내서 결혼이 여의치 않은 한국남성의 사정과 외국인 여성들의 경제적 욕구의 결과물이라고 우리사회는 인식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여성들을 '돈 목적으로 결혼하는 사람', 또는 '목적을 위해 위장결혼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외국인 아내와 결혼한 한국인 남편들이 의처증을 갖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들은 대부분 ‘자기 부인이 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고 자기와 위장결혼을 했으니까 언젠가는 도망갈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생활기반이 약한 한국인 남편들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아내들에게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여성(신부)를 돈을 주고 사온 신부라는 남편들의 잘못된 사고도 가정폭력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결국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이주 여성(신부)들은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사례를 통하여 보자면, 2007년 11월 한국인 남편(50)과 결혼한 가엔 티 홍씨는 결혼식 날 첫 폭행을 시작으로, 8개월여 동안 휴대폰을 받지 않았다는 등 사소한 이유로 말을 못 알아듣거나 밥이나 반찬 맛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남편(47)과 시누이로부터 수없이 폭행을 당하다 결혼 두 달 만에 협박에 못 이겨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 길로 집에서 쫓겨나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앞의 사례처럼 모든 다문화가정이 가정폭력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먼 이국에서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 외국인 아내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가정폭력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6.불안정한 체류자격결혼이주여성들은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는다. 결혼 2년이 채 안 돼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주 여성들의 신분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 있다. 국적취득 신청 때도 남편이 보증을 서줘야 하고, 1년마다 갱신하는 비자 신청권도 남편에게 있다. 국적취득 전에 이혼하면 이주여성은 체류자격을 박탈당한다고 한다. 국적법은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피해가 입증되면, 귀화신청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입증이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에 이주여성들은 '강제퇴거'의 위험이 있다. 이처럼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체류자격으로 인해 강제이혼, 양육권 박탈 등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ⅲ. 문제해결대책우리사회에서 이주민, 소수자는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도 안되고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조차 부인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자발성이 낮으며 그들을 이해하려는 정도가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소수자의 문화적 표현의 권리를 확대하고, 문화 간 소통과, 교육과 정책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사회와 이주민간의 소통을 상호 이해의 태도를 갖는 청책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한국문화교육, 한국어, 상담 등 복지차원이나 한국화 정책만이 중심이 되어왔으며, 문화 다양성과 문화 간 소통을 강화하는 정책은 미흡하였다. 먼저 우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들의 문제가 이주여성 개인의 문제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또한 ‘내가 못사는 나라에서 돈 주고 선택했다’는 식 프로그램은 5개월 과정과 여성가족부에서 시행하는 1년 과정이 있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며, 또한 한 번 받고 난 후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큰 실효성이 없기에 한국어 방문교사 프로그램 외에도 결혼이민자를 위한 단계별?언어별 한국어교재 발간 및 보급을 통해서 지속적인 언어습득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대만의 경우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교육지원은 76단계로 나눠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달에 20~24시간씩 본인이 원하면 평생토록 공립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을 통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교육체제가 부족한 편이다. 각종의 지원책은 많이 제시되고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성부나 가족부, 법무부 등에 비하여 교육부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다문화가정은 더욱 늘어나고, 그 가정의 자녀들은 계속 자라나고 태어날 것이다. 더 좋고 다양한 사례들을 받아들여서 좀 더 체계적인 교육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또한, 다문화가정 자녀 중에는 언어습득지체를 겪고 있는 아동이 많기에 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문제해결을 위해 민?관?학 공동으로 언어발달지체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의 언어습득을 도와야 한다. 생계 때문에 일거리를 찾아 밖으로 도는 아버지나 한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어머니에게 맡길 수 없는 처지에서 민?관?학 프로그램은 이런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방안이 될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다문화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2.사회적 편견 개선일반국민의 의식 제고를 위한 홍보를 통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 중에서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그들은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일반가정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과 편견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문화 관련 공익광고 한다.
목차Ⅰ. 서론1. 인물소개2. 선정이유3. 룰라대통령의 업적4. 룰라대통령의 정책한계Ⅱ. 본론1. 룰라대통령의 리더십2. 리더십비교연구Ⅲ. 결론1. 룰라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평가2. 결론Ⅳ. 참고문헌I. 서론1. 인물 소개- 성명: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Luiz Inacio Lula da Silva- 직책/직위: 브라질35대 대통령룰라 대통령의 풀 네임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로 1945년 10월 27일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주의 농촌마을 카에치스에서 8남매중 7번째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학교를 10살 때 진학하고, 4학년 때 그만둠으로써 초등학교 4학년이 학력의 배움의 전부였다. 그 후 상파울루의 거리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다 금속공장에 들어갈 기회를 얻어 1966년 금속공장에 취직하였다. 금속공장에서 일을 하다 산업재해로 인하여 손가락을 잃게 된 후 그는 그 계기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1969년에 노동운동가로 나선다. 이후 1975년 브라질 금속 노조위원장에 당선이 된다. 그는 노조위원장 때부터 소통의 리더였다고 한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리더로써의 역할을 해나갔다. 그 후 그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브라질 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을 한다. 다음과 같이 룰라 대통령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그의 지지율은 역대 브라질 대통령 가운데 최고인 81%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는 학문적으로 월등하고 정치적 경험이 풍부한 경쟁자들과 대조적으로 초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중남미 국가 중 제일 큰 국가인 브라질에서 금년 1월 1일에 처음으로 노동자 출신이며 좌파성향의 인물인 룰라가 3번의 패배 끝에 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당시 나라의 안팎의 비난과 회의를 품은 사람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취임 후 지금까지는 국정을 성공삶의 질을 향상 시킨 ‘사람을’ 생각하는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제도적으로만 서민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한 대통령이었다. 가난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던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틈만 나면 대통령궁을 나와 빈민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서민들과의 소통과 스킨십을 즐긴 가까운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그는 빈곤층을 위해 최저임금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다. 2002년 대선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4년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었다.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공약은 공약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그는 집권 8년 동안 2002년 월 200레알이던 최저임금을 현재 510레알까지 올리는 등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서민을 위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집권 시기 복지정책 및 토지 개혁을 내세웠고, 굶주림을 근절시키자는 캠페인을 확대하였다. 또한 사회 민주주의 정권으로서, 남미에서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복지국가를 만들어감으로써 줄이고자 하였다. 다음과 같이 이러한 룰라의 업적을 사회, 경제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1) 룰라정부의 사회정책룰라정부의 차별성은 경제정책보다 사회정책에서 더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룰라의 정책에 따르면 사회정책 항목들의 예산을 직접 지출 부문을 중심으로 대폭 증액시켰고,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 가족들에게 일정액의 기초생활비를 지급하고 미취학 연령 어린이 가족에게 자녀 취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하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역점을 두었다. 노동 빈곤층의 임금 인상을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주로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부조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농촌 지역 무토지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에 박차를 가해 토지 수령 가족 수를 확대하는 한편 효율적 경작을 위한 지원도 병행했다. 또한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 이라고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하여 브라질 판 뉴딜정책인 경제성장 촉진 계획을 내세웠다. 경제성장 촉진계획(PAC)이란 브라질의 낙후된 기초산업을 강화, 경제를 자극시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체에너지개발에 힘써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을 해소하고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정책이다. 이에 따른 정책으로 3년간 대규모 유전개발, 상하수도와 주택보급 확대, 인프라 확대 등의 구체적인 성과를 이루었으며 퇴임할 때 당시 경제성장률 7.5% 달성, 세계 제8경제국으로 부상하는 등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4. 룰라 정부의 한계2003년 1월 1일 취임 이후 6년 반 동안 그가 거둔 성과는 2009년 초 무려 80%가 넘는 지지율과 지난 수년간 5%대의 성장,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확대와 높아진 위상으로 나타났다. 룰라가 카르도주 정부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비교적 지속적인 성장과 빈곤의 완화에 기여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하지만 룰라 대통령이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룰라에 대한 비판과 불신의 목소리도 있었으며, 효과적이지 못한 정책들도 많았다. 이러한 룰라 정부에도 한계점이 있으며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경제룰라정부의 경제 정책은 엄격한 재정운용과 통화안정을 최우선시하였다. 그 결과2005년 현재 인플레는 5.8% 수준으로 2002년의 12.5%보다 크게 낮아졌으며, 공공부문 적자폭도 GDP의 3.6%로 2002년 10.3%보다 크게 개선되었다. 룰라 정부는 이러한 안정 기조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2005년 GDP 성장률이 2.2%에 불과하여 아직 본격적인 성장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05년 말 현재 실업률은 9.5%로 2002년의 10.5%보다 약간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인플레 억제를 위한 19%대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이자율은 산업성장을 저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예산의 23%를 부채 상환과 이자로 지불되었다. 또한 공공부채의 35% 정도는 은. 문제가 있으면 좌우여야 구분 없이 당 의회 가리지 않고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게 룰라 식 소통정치였다. 더불어 룰라의 가장 큰 소통 능력은 인내와 타협에 바탕을 두고 있다. 룰라는 노조운동을 하면서 과거 군사정권으로부터 모진 고통을 받았지만, 집권 후에는 기득권층에 대해 어떠한 한풀이도 복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권 후 정적이었던 사회민주당(PSDB) 지지자들도 정부 요직에 앉혔다. 소통과 통합으로 정치적 반대세력까지 끌어 않은 룰라는 성정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양면적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월수입 69달러 미만의 빈곤층 가구에 생계수당을 지급하는 포미제로(Fome Zero)라는 기아퇴치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1,100만 가구가 직접 혜택을 받았으며, 이는 내수시장의 기반을 다지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변화하되 변하지 않는 유연성과 초심을 잃지 않는 태도,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시키는 소통, 반대파까지 포용하는 통합, 이 세 가지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 룰라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퇴임 직전 룰라는 차기 대통령에게 “심장에서 우러나는 정치를 하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를 실천하라”라고 당부했는데, 룰라 리더십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룰라는 2010년 퇴임할 때 지지율이 87%이었다. 룰라의 높은 지지율과 대국민 소통 능력의 결과 정부는 20%도 안 되는 노동자당의 의석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연정 파트너와 의회 내 연대 정당들의 반란 없이 정치적 안정 속 에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2) 카리스마 리더십룰라는 타고난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그것도 남을 압도하는 강압적인 카리스마가 아니라 “부드러운 카리스마”, 말잔치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민을 위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도자, 그러면서도 빈민층에 나누어줄 빵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분배와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이다. 또한 그는 ‘나는 전직 대통령들처럼 사임하거나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발언평등한 인간으로 보았다는 측면에서 개별적 배려의 요소를 보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 하며 끝까지 가난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정책을 통하여 국민들의 교육의 질을 높이고 그들이 스스로 합리적인 생각을 하게끔 함으로써 이러한 측면에서 지적자극의 요소를 보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린이들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즉 경제발전에까지 이어진다고 보고 그들의 교육에 힘썼다.또한 그는 노동자들에게조차 외면 받고 노동조합의 단체저항권조차 보장되지 않은 때에도 노조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정당 정치 생활을 하면서 다양하고 서로 충돌하는 이념을 가진 많은 당원들을 포용하면서 통제력을 잘 유지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눈물과 진정성, 공정성을 가장 중요시했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의 원천은 그의 공직 생활 이전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대인관계에서의 신뢰를 중요시했지만 윤리적인 행동을 위한 기준을 스스로 수립하였고 그 스스로 그러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모범이 되었다. 룰라가 위의 인터뷰에서 밝힌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차별 점 한 가지는 많은 수의 지지자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우정을 맺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수백만, 수천만 사람들의 염원 즉 노동자들의 염원에 항상 충실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따르는 리더십은 그의 리더십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룰라대통령은 변혁적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소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변혁적 리더십의 형태를 띈다고 할 수 있다.4) 경로-목표이론경로-목표이론이란 부하는 리더의 행동이 그들의 기대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동기가 유발된다는 리더십이론을 말한다. 즉 리더는 부하가 바라는 보상을 받게 해 줄 수 있는 경로(즉 행동)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해줌으로써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로 목표 이론에서 룰라대통령의 리더십을 적용하여 보았다.룰라대통령은 경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빈곤한다.